푸른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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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파 케이크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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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음식

2009. 12. 7.

 

 

 

 

통밀로 만든 다이제스티브Digestive라는 과자, 다들 아실 거예요. 영국의 거대 과자 회사 <유나이티드 비스킷United  Biscuits> 사의 하위 브랜드인 맥비티McVitie's의 효자 상품으로, 한국에서도 오리온을 통해 오래 전에 소개되어 꾸준히 사랑 받았었지요. 지금은 맥비티와의 계약이 끝나 다이제스티브라는 이름 대신 다이제Diget라는 이름을 달고 나온다고 하는데, 애호가들은 맛이 좀 달라졌다고 평하기도 합니다.

 

맥비티 과자 중 다이제스티브 다음으로 유명한 상품이 또 하나 있습니다. 한국에는 아직 많이 알려지지 않은 자파 케이크Jaffa Cakes입니다. 오늘 이야기의 주인공이 되겠습니다.

보기에는 단순하게 생겼어도 반을 가르면 세 개의 층이 보입니다. 약 5.5cm 지름의 작은 스폰지 케이크 위에 새콤한 단맛으로 침샘을 자극하는 3.8cm 지름의 오렌지 맛 젤리가 얹혀 있고, 그 위에는 쵸콜렛이 코팅되어 있습니다. 미니 케이크인 셈이죠. 스폰지 케이크와 쵸콜렛 코팅은 색다를 게 없어도 이 쨍한 오렌지 맛 젤리가 자파 케이크의 핵심이 됩니다. 달지만 중독성이 강합니다. 한 개만 먹는 게 절대 불가능해요.


영국에는 빵과자에 관련된 희한한 법이 하나 있습니다. 온 국민의 소중한 티타임을 위해 과자와 케이크에는 VAT를 매기지 않는 것인데, 예외로 '쵸콜렛이 발린 과자'에는 VAT를 부과하도록 별도의 단서를 달고 있습니다. 쵸콜렛 든 빵이나 쵸콜렛 씌운 케이크는 괜찮은데 한 쪽 면이라도 쵸콜렛 코팅이 되어 있는 비스킷은 반드시 세금을 내야 한다는 겁니다.


좀 희한한 법이죠? 쵸콜렛 케이크는 괜찮고 쵸콜렛 비스킷은 안 된다니? 이유야 어찌 되었건, 같은 맥비티 제품이라도 쵸콜렛 다이제스티브는 세금을 내야하고 자파 케이크는 비슷하게 생겼어도 케이크이기 때문에 세금 면제가 된다는 소리.


복지에 천문학적인 돈이 들어가는 영국인지라 어떻게든 세금 걷어들이는 데 혈안이 된 영국 국세청에서 오래 전에 이 자파 케이크를 놓고 맥비티와 한판 전쟁을 치른 적이 있습니다.


암만 봐도 쵸콜렛 비스킷인데 어여 세금 내!
이름 보면 몰라? 이건 케이크라고!

오랜 고심 끝에 법원은 맥비티의 손을 들어주었습니다. 당시 온 국민을 토론의 장으로 끌어들인 논쟁은 바로 이것이었습니다. 비스킷과 케이크의 차이는 과연 무엇인가?

판결.
비스킷은 공기 중에 오래 방치하면 부드러워지고 케이크는 반대로 뻣뻣해진다. 자파 케이크는 공기 중에 방치하면 딱딱해지므로 케이크임에 틀림없다. 비스킷 모양을 한 미니 케이크다. 고로, 17.5%나 되는 VAT를 내지 않아도 된다.
[2012년 현재 VAT가 20%로 올랐음]

 

정말?
하도 신기해 다쓰베이더와 시험 삼아 비스킷과 케이크를 각각 실온에 오래 두고 관찰해보았더니 정말로 비스킷은 눅눅해지고 케이크는 뻣뻣해집니다. 이로써 비스킷인지 케이크인지 겉모양이 애매할 때 구별할 수 있는 방법을 알게 되었습니다. 집에서 스콘 구울 때마다 과자처럼 딱딱하게 나와 매번 속상해했는데, 바로 먹지 말고 한번 오래 놔둬 볼까요?

 

 

 

 

 

 

 



참, 오늘 영국에는 18년 만에 처음으로 함박눈이 왔습니다. 이 정도 눈이야 한국에서는 흔한 일이지만 영국은 멕시코만류 덕에 한국보다 위도가 높아도 비교적 온화한 겨울을 보낼 수 있으므로 눈을 볼 일이 없거니와, 온다 해도 쌓일 만큼 오는 일은 극히 드뭅니다. 근 20년 만의 함박눈 때문에 오늘 영국인들은 다들 축제 분위기 속에 들떴었습니다. 런던 시내에는 스키 타고 나타난 사람도 다 있을 정도였다고 하네요.


아이가 있는 집들은 아이의 일생에 몇 번밖에 없을 이 소중한 기회를 놓칠 수 없으니 전부 밖에 나와 눈사람 하나씩 만들고 기념촬영도 다 했답니다. 무심코 창밖을 내다보니 우리 집 바로 밑에서도 그같은 광경이 벌어지고 있었습니다! 젊은 부부가 아이에 맞춰 작은 꼬마 눈사람을 만들고 당근으로 코도 다 박았어요. 내려다보다가 하도 재미있어 몰래 한 장 찰칵.

 

 

 

 

 

 

 



얼마나 눈이 많이 왔는지 자동차들이 아이싱 슈가 뿌린 크리스마스 케이크처럼 보입니다. 포실포실 탐스럽고 부드러운 저 곡선. 이런 날이야말로 뜨거운 차 한 잔이 절실하죠. 자파 케이크 글도 올렸고 하니, 포트넘 앤 메이슨의 크리스마스 티에 자파 케이크나 곁들여 즐겨야겠습니다. 둘은 맛과 향이 비슷해 서로 잘 어울립니다.


☞ 자파 케이크 든 과자 깡통 하나 사고 하루종일 즐거워하는 단순한 단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