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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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터눈 티] 런던 모모 티룸 - 모로칸 민트티 Momo Tearoom, Lond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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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여행

2009. 12. 9.

 

 

 

 

영국 출장을 오신 가필드 님을 모시고 다쓰 부처는 오늘도 또 티룸에 갔습니다. 오늘은 피카딜리 서커스 어느 뒷골목에 숨어 있는 모로칸 티룸입니다. 북적이는 피카딜리 서커스 안쪽, 자동차 소리도 들리지 않는 조용한 골목에 이런 이색적인 공간이 다 숨어 있었습니다. 각기 다른 토기 화분들을 이렇게 일렬로 늘어놓기만 해도 제법 그럴듯해 보이는걸요.

 

 

 

 

 

 

 

 

 

내부는 이렇습니다. 술을 따르고 있는 직원 위로 보이는 알록달록 호리병들은 아라비아의 물담배인 '시샤'라고 합니다. 파이프 물고 시샤 피우고 있는 사람을 볼 때마다 꼭 관악기 불고 있는 연주자 같아 호기심에 한참을 들여다보게 되죠. 여기서 잠깐 시샤에 대한 토막 공부.


우리나라 옛 노인들이 곰방대에 담배를 피웠듯 중동 사람들도 특이한 담배를 피워 왔다. 여행자들에게 인기가 높은 물담배이다. 물담배, 아라비안 담배, 시샤 등으로 불리는 물담배는 터키에서는 '나질리 살로누'라고도 부르며 영어로는 '워터 파이프'라 한다. 물담배는 이슬람 국가들에서는 어디서나 볼 수 있으며 파이프의 모양과 색깔도 여러가지다. 먼저 병에 물을 채우고 조립한 후 사기 깔때기 같은 곳에 담배를 넣고 그 위를 쿠킹호일로 감싼 뒤 석탄 태운 조각을 올려놓으면 물 소리가 나면서 연기를 들이마시게 된다. 담배의 원료가 딸기나 사과 같은 천연과일을 절인 것이기 때문에 과일 냄새가 나면서 연한 연기가 몸 속으로 들어오는 것 같다. 처음 피우면 석탄을 태워 나오는 연기나 연탄가스를 들이마시는 것 같아서 강한 기침이 나기도 한다.

ⓒ 두산세계대백과 encyber & encyber.com 세계문화탐방 <아랍의 물담배 시샤>

 

 

영국인들 중에는 가끔 모로코풍으로 집을 꾸며놓고 즐기는 사람들이 있는데, 오늘 이곳에 와 보니 이유를 알 것 같기도 합니다. 알록달록 조명들과 가구들과 정교한 문양이 근사하네요.

 

 

 

 

 

 

 



테이블조차 이국적입니다. 곰곰 생각해보니, 소싯적 우리 한국의 대폿집에도 이런 비슷한 테이블이 있었던 것 같아요. 그래도 모로칸들의 것은 황금색인데다 조명의 영향을 받으니 좀더 호화로운 느낌이 나긴 하네요. 역시 아라비안 = 황금색. 아니, 더 정확히 말한다면, 아랍 문화권의 북아프리카 = 역시 황금색. 두들겨 만든 단조 방식이라 테이블 표면이 울퉁불퉁합니다. 촛대도 찌그러져 있어 초도 비뚤게 꽂힙니다. 더 매력적인걸요.

 

 

 

 

 

 

 



입구쪽에 있는 조명들을 당겨서 찍어보았습니다. 가격표를 아직도 안 뗀 것인가 했는데, 소규모의 바자르Bazaar를 겸하고 있으므로 구매자를 위해 붙인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소위 '이국적'이라는 곳에 가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게 그 나라의 색다른 조명이 아닐까 싶습니다. 외국인들이 잘 꾸민 한식당에 가서도 지금 제가 느끼는 것과 같은 인상을 받을까요?

 









방문기를 남기고 싶을 때는 입구의 간판이나 티룸 이름이 적힌 메뉴판을 찍어 두면 훗날 이름 찾느라 누리터를 뒤질 필요가 없어 좋지요. 알파벳에 아랍 글자의 느낌을 살짝 가미한 것이 제법 디자인 감각이 있네요. 티룸인데 포크와 나이프가 나오는 것이 어째 심상치가 않아요. 모로칸들은 차음식으로 단것 아닌 뭔가 거창한 것이라도 먹는 걸까요?










모로칸처럼 생긴 직원이 와서 먼저 차부터 따라줍니다. 다쓰 부처는 모로칸 민트티를 시켰고, 민트가 체질에 잘 맞지 않는다는 가필드 님은 캐모마일을 시켰습니다. 민트티는 한 번의 리필이 가능하기 때문에 직원이 잔에 따라주고 찻주전자를 그냥 가져가버리지만 캐모마일은 일인용 찻주전자째로 내줍니다. 만일 이곳을 방문해 방문기를 남기고 싶은 분들은 이 이국적인 찻주전자를 사진에 담을 수 있도록 찻주전자째 내주는 차를 시키는 것이 좋겠네요. 그래도 모로칸 티룸에서는 역시 모로칸 민트티를 마셔줘야.


만일 시원한 칵테일 형태로 모로칸 민트를 즐기고 싶은 분들은 민트잎, 보드카, 레몬 주스로 만든 콕테일 'Momo Special'을 시켜도 좋겠습니다. 이 티룸의 간판 상품이거든요. (그럼 티룸이 아니라 술집 아니냐, 하실 분들 계실 텐데요, 바를 겸하고 있는 티룸이라 분위기가 더 좋습니다.) 뜨거운 민트티에 비해 값은 세 배 정도 비싸지만 (£8.50) 양은 네 배 많고 생 민트 잎이 잔뜩 들어 있어 화려합니다.








 


모로칸 브레드라는데, 꼭 두툼한 또띠아 눌러 놓은 것 같네요. 인도인들이 먹는 빵과도 또 다르구나 생각했습니다. 그릴로 참 예쁘게도 줄을 냈어요. 성경에 있는 용어로 바꾸자면 '누룩(이스트)'을 넣지 않은 밀전병인 '무교병unleavened bread'인 셈인데, 아직도 구약시대의 관습을 충실히 따르고 있다니, 이들 입장에서 보면 아무거나 닥치는 대로 마구 먹어치우는 기독교인들은 변질 타락한 사람들일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빵맛이 좋네요.

 









차음식으로는 이런 것들을 주문했습니다. 단것은 하나도 없는데, 민트티가 워낙 달다 보니 이런 짭짤한 술안주풍 음식이 더 잘 어울리긴 합니다.

 









차 블로거가 티룸 와서 찻주전자를 안 찍고 가면 섭섭하죠. 캐모마일이 담겼던 찻주전자였는데, 작은 종을 그대로 하나 얹어 놓은 것 같아 앙증맞죠. 질 좋은 은제 주전자가 아니라서 그리 비쌀 것 같진 않은데, 이런 건 어디서 사야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손잡이도 없는 작은 잔에 뜨거운 차를 다들 어떻게 마시나 했는데, 우리도 정신 차려 보니 어느새 별 문제없이 마시고 있었습니다. (가만, 내가 저 뜨거운 잔을 어떻게 쥐고 마셨더라?)


모로칸 민트티는 마치 롯데 스피아민트 껌 같은 맛이 납니다. 온갖 차를 다 마셔봤어도 개운하기로 치면 이 모로칸 민트티 따라올 차가 없는 것 같아요. 늘 마시던 페퍼민트 향초차와도 또 다르네요. 튀김에, 치즈에, 온갖 기름진 음식을 먹고 났는데도 이 모로칸 민트티를 한 잔 마시고 나니 모든 것이 원점으로 돌아가고 불렀던 배가 도로 다 꺼진 듯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만큼 개운하다는 소립니다. 그런데, 집에서 이런 단맛을 내려면 설탕이나 시럽을 보통 많이 넣지 않으면 안될 텐데, 맨정신에 자기가 마실 차에 설탕을 퍼 넣는 건 도저히 불가능하니 이런 건 역시 그냥 밖에 나와 사 마시는 게 상책일까요? 기름 범벅 짜장면도 그렇고요.

 









티룸을 떠나면서 아쉬운 마음에 한 장 찍어봅니다. 나무와 철창 사이로 몰래 들여다보며 찍은 사진인데, 다시 봐도 내부가 근사하네요. 별전치입니다. 사각 문이 아니라 둥글둥글, 마치 회교 사원에서나 볼 수 있을 법한 아치형 문입니다.


1회에 한해 리필이 가능한 민트티는 한 잔에 2.5파운드. 차음식은 이것저것 다섯 접시 한 세트에 19파운드. 메뉴에 있는 스물 한 개의 요리 중 먹고 싶은 걸로 다섯 접시를 고르면 됩니다. 혼자나 둘이 갈 경우 단품으로 하나 또는 두 개 정도만 시켜 먹어도 되고, 손님이 없는 한산한 낮시간에는 심지어 차만 달랑 마시고 나와도 된다고 합니다. 우리는 셋이었으므로 다섯 접시 한 세트 메뉴로 골랐었습니다. 런던 여행 오셔서 이곳을 방문하고 싶은 분들은 ☞ 누리집을 참고하세요. 정오부터 자정까지 운영한다 하니 영국에서 밤 늦게 방문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티룸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나서는 오르가니스트 가과장님을 위해 또 오르간 독주회를 들으러 갔습니다. 오늘은 웨스트민스터 사원입니다. 들으면서 역시 멘델스존은 모범생 타입이구나 생각했습니다. 곡이 너무 반듯해요. 메씨앙은 이건 뭐 완전 날라리에 정신분열자. 이 양반 오케스트라 곡은 홀리우드 총천연색 야단법석 영화음악 같아도 피아노곡 중 몇 곡과 오르간 곡들은 들을 만합니다. 그래도 역시 오르간 곡의 대마왕으로는 바흐만 한 사람이 없다는 진부한 결론도 내려봅니다.


연주를 듣고 있는 동안 사원 안으로 비둘기 한 마리가 들어와 높은 천장을 몇 번이나 맴돌았는데, 마치 "성령이 비둘기처럼" 내려와 이 일천년 묵은 사원이 지닌 신비롭고 경건한 아우라를 한층 더하는 듯했습니다. 발 밑으로는 영국의 내로라 하는 위인들의 주검이 안장돼 있었고요.

 









이건 또 뭐냐면요, 가필드 님께서 주고 가신 <포트넘 & 메이슨>의 호화 견과류 선물 세트입니다. 포트넘의 그 비싼 군것질거리를 다 먹게 되다니, 이런 호사가 있나요.


하여간 가필드 님의 이번 영국 출장 덕에 다쓰 부처는 평소엔 엄두도 못 냈던 이런 저런 경험을 할 수 있었으니 가필드 님을 영국으로 출장 보내기로 결정한 가필드 님 회사 윗분이 다 고마울 지경이었지요. (회사윗분 님, 우리 가필드 님 앞으로도 계속 잘 부탁드려요. 굽신굽신)


손님으로 오신 분께 영국 문화의 정수 아프터눈 티와 달콤한 간식과 녹찻잎과 이런 견과류 모둠까지 다 받았으니 이런 민망한 일이 어데 있을까요. 자정 넘어 출출해지자 다쓰베이더와 단단은 식탁에 마주 앉아 다람쥐마냥 오도독오도독 호두와 브라질넛과 헤이즐넛과 아몬드를 씹으며 가필드 님은 혹시 여름에 돌아다니는 성급한 싼타가 아닐까 생각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