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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 사진 - 바비 두 마리를 놓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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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연 있는 사물

2010. 7. 11.

 

 

 

 

 

 

어떤 이는 풍경 사진만 죽어라 찍는다.

 

어떤 이는 야생동물이나 곤충만 담는다.

(→ 이 분야가 제일 힘들 것 같다. 거적때기 덮어쓴 채 숨 죽이고 몇날 며칠 노숙자 신세.)

 

내 셋째 오라버니는 인물 사진만 찍는다.

 

나는 식탁 위 정물만 찍는다.



어떤 사진을 찍든 그 분야 고유의 노하우가 필요하기 마련인데, 우리 집 바비들을 놓고 안 하던 인물 촬영을 해보니 오, 이게 만만치가 않다. 미일리어의 얼굴이 이리나 얼굴보다는 좀 더 굴곡이 심하고 입체감이 있는데 이것 때문에 접사로 초점 맞추기가 여간 힘든 것이 아니다. 여성일 경우는 씨터(피사체라고 합니까?)의 피부 색, 머리 색, 화장, 옷, 악세사리 등의 톤을 함께 고려해야 하고, 더 좋기로는 인물의 성격까지 담아 낼 수 있어야 한다는데 말이야 쉽지, 장비도 없이 그저 창가 자연광에 의지해 찍는 나 같은 초보가 무슨. 초점과 노출만 맞아 줘도 다행이지.



그래도 우리 바비 두 마리 꽤 그럴 듯하게 나오지 않았나?

인물이 좋으니 촬영자의 부족한 솜씨도 커버가 되는구나.

아이고 예쁜 것들.

그냥 깨물어 주고 싶네.

 

 

미일리어와 이리나를 볼 때마다 나도 살 마저 빼고 멋 좀 내고 다녀야겠다는 의지가 솟구친다. 페미니스트들의 공격 대상 1호가 바로 이 바비들이라는데, 나는 생각이 좀 다르다. 인형이란 어차피 머리가 크거나 눈이 크거나 손가락이 네 개밖에 없다거나, 하여간 신체 어느 부위가 꼭 못된 머글들에 의해 왜곡되기 마련인데, 허리 좀 줄이고 가슴 좀 키우고 다리 좀 늘린 걸 가지고 무슨 말들이 그리 많은가. 패션 쪽에서는 이 바비들이 또 아주 중요한 사료가 된다 하지 않느냐.


남자들이 바비를 비판하는 이유 중 그럴듯한 것이 하나 있기는 했다. 액션 피규어에 익숙한 이 털 숭숭 난 남정네들한테는 "혼자 서 있지도 못 하는" 야리야리한 바비가 어이없는 모양. 그래도 뒤꿈치 살짝 들어올려 생긴 매끈한 각선미, 죽이잖아~

 

 

 

 

 

 

 



우리 미일리어와 똑같은 바비를 가진 어떤 코쟁이는 자기 미일리어를 아예 '내춰리스트naturist'로 만들어 정원을 낙원인양 연출해 가며 찍었다. 머리 염색도 다 해주고 곱게 땋아 주기까지 했다. 이 이도 아마 나처럼 자기 미일리어를 애지중지하는 모양인데, 어쨌거나 우리 미일리어, 문명의 옷을 입든 자연을 벗삼아 헐벗든 참으로 섹시하구나. 본 바탕이 지대루라서 가능한 일일 게야. 암.

 


참.


러시아에서는 한때 저 썩은 자본주의 반동국가의 마스코트나 다름 없는 바비인형의 수입을 금지하려는 ☞ 움직임이 다 있었다. 아이들에게 신체와 성에 관한 그릇된 가치관을 심어 줄 수 있다는 것이 명목상의 이유였다. 영국의 식자들도 비슷한 생각을 한다.

 

어린 시절 숱한 시간을 마론 인형과 함께 했던 나로서는 어른 작자들의 이런 말들이 도무지 이해가 가질 않는다. 마론 인형 가지고 놀면서 한 번도 '마인드'가 '커럽티드'된 적 없었다. 그저 동무들과 꺄르륵거리며 즐겁게 가지고 놀거나 혼자 목욕하기 심심할 때 벗삼아 같이 목욕한 죄밖에는 없는데, 도대체 이런 거대 담론들이 다 어디서 나오는 건지 모르겠다. 커럽트한 어른들의 시각에서 나온 기우라고밖에는.

 

단언컨대, 아이들은 어른들이 우려할 만큼 그렇게 나약하지 않다. 그렇다고 순진하지도 않다. 바비 따위의 영향이 아니더라도 나쁜 건 어떤 경로를 통해서든 금방 배우게 돼 있는 게 우리 인간이고 인간 어린이인 것이다. (성악설 주의자임.)



어쨌거나 조국에서 박대 받는 우리 이리나.
그녀의 운명은 험난하기만 하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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