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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스포드 ① 크라이스트 처치 (컬리지) Christ Church, Oxfor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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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여행

2010. 8. 1.

 

 

 

 

 

 

집에서 기차로 한 시간 반 거리에 옥스포드가 있습니다. 이렇게 가까운데 왜 진작 와 보지 않았을까 의아해하며 기차에서 내렸습니다. 역에서 번화가 쪽을 향해 걸으면서 다쓰 부처는 거리에 한국인이 매우 많아 깜짝 놀랐습니다. 관광객 신분으로 부모와 함께 돌아다니는 중고생쯤 돼 보이는 아이들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영어를 배우러 온 젊은이들이라 하네요. 그러고 보니 곳곳에 영어학교 간판이 눈에 띕니다. 이름도 대개 '옥스포드 ○○○ 컬리지' 형태를 하고 있어 잘 모르는 사람은 옥스포드 대학인 줄 착각하겠어요. 옥스포드 대학과는 아무 상관 없지만 같은 동네에 있다는 사실 하나 때문에 그럴듯하게 이름 지은 것 같습니다. 부모님 따라 관광 온 아이들은 영국의 공부 잘하는 언니·오빠들을 코 앞에서 보면서 자극도 받고 영어 공부 의지도 다질 겸 오는 것 같았습니다. 이곳은 또 오래된 멋진 건물들이 많아 관광하기가 좋습니다.

 

중세 대학 도시라 그런지 분위기가 역시 많이 다릅니다. 심지어 길가의 우체통도 다르더라고요. 우체통 옆에 현금을 찾고 있는 사람이 보이는데, 영국인들은 'ATM'이라는 딱딱한 이름을 쓰지 않고 '벽 속의 구멍Hole in the wall'이라는 재미있는 이름으로 부릅니다. 원래 'hole-in-the-wall'이란 단어는 '시시한, 하찮은'이란 뜻을 갖고 있는데, 이게 별명이 아니라 영국에서는 ATM의 정식 이름인 모양입니다. 간혹 현금입출금기에 그렇게 새겨져 있는 걸 볼 때가 있거든요. 일종의 유머죠. 이곳 은행 중 바클리Barclay's 은행 ATM의 고유명사였다가 이제는 보통명사처럼 퍼졌다고 합니다. 참, ATM을 처음 고안해 낸 사람도 영국인이라 합니다.

 

 

 

 

 

 

 

 

 

 

옥스포드는 유서 깊은 중세 대학 도시로, 옥스포드 최초의 컬리지는 1249년에 세워졌습니다. 옥스포드 내 여기저기 산재해 있던 대학들을 통합해 만든 것이 옥스포드 대학입니다. 미국이나 한국과 달리 영국에서는 여러 작은 독립 대학들이 모여 하나의 큰 대학을 이룹니다. 케임브리지 대학, 옥스포드 대학, 런던대학이 그렇습니다. 런던에 가셔서 '런던 대학' 찾아 봐야 헛고생입니다. 런던 대학은 존재하지만 런던 대학 건물은 없는 거죠. 그러니 이곳에 도착하셔서 "저, 실례합니다. 옥스포드 대학이 어디 있나요?"라고 물으면 안 되고요, 옥스포드 대학 중 어느 컬리지를 갈 건지 정확히 물으셔야 됩니다. 오늘은 옥스포드 대학을 이루는 38개 컬리지 중 '크라이스트 처치 (컬리지)'를 돌아보기로 했습니다. 이 대학의 정식 이름은 그냥 '크라이스트 처치'이고 뒤에 '컬리지'는 붙이지 않는다고 하네요. 그러나 공신력 있다는 언론을 비롯해 많은 사람들이 '크라이스트 처치 컬리지'라고 부릅니다. 컬리지라고 따로붙여 주지 않으면 교회 이름인 줄로 착각할까봐 그런 것 같습니다. 무려 13명의 수상을 배출한 명문입니다. 빌 클린턴과 그의 딸 첼시도 이곳에서 유학했습니다. 왼편에 보이는 건물이 바로 크라이스트 처치입니다. 입구를 찾아 주욱 걸어가 보겠습니다.

 

 

 

 

 

 

 

 

 

오, 여기가 입구인가 봅니다. 재학생과 교직원용 출입구라고 하네요. 관광객이 하도 많다 보니 출입구를 따로 두나 봅니다. 이해가 가죠.

 

 

 

 

 

 

 

 

 

관광객용 입구는 더 멋있네요.
길 양쪽에 라벤더가 흐드러지게 피어 있었습니다.

 

 

 

 

 

 

 

 

 

왼쪽에 보이는 뾰족한 첨탑 건물을 보세요.
꼭 교회처럼 생겼는데 학생들 밥 먹는 식당이라고 합니다.

 

 

 

 

 

 

 

 

 

들어가다 말고 잠시 삼천포로 새 봅니다. 대학 입구의 정원에서 호박벌bumble-bee을 보았거든요. 이 녀석들이 주로 라벤더 같은 키 크고 자잘자잘한 보라색 꽃들을 좋아한다고 합니다. 이런 꽃들의 꿀이 맛있나 보죠? 저는 이 호박벌들이 얼마나 예쁜지 모르겠어요. 어딜 가든 보기만 하면 꼭 찍습니다. 보송보송한 털과 통통한 몸, 통통한 몸매에 비해 가련하기 짝이 없는 빈약한 날개, 노란 꽃가루 잔뜩 묻히고도 태연한 털털한 성격, 노란색과 검은색의 선명한 색상 대비 등이 이 녀석들의 매력이죠. 벌 개체수가 감소하고 있다고 영국인들의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닙니다. 환경도 살릴 겸 취미로 자기 집 마당에서 벌을 치는 사람들이 꽤 있습니다. 자기 집 정원 벤치에 양봉업자 옷을 입고 앉아 윙윙거리는 벌들 바라보며 흐뭇해하는 모습이 어찌나 재미있던지요.

 

 

 

 

 

 

 

 

 

이렇게 신기하게 생긴 꽃도 있고요. 어떻게 저렇게 작은 공이 저토록 크고 화려한 꽃으로 짠! 변신할 수 있는지 궁금합니다.

 

 

 

 

 

 

 

 

 

대학 교정에 있는 등이 이렇게 멋있어도 되는 건가요.

 

 

 

 

 

 

 

 

 

아무도 볼 것 같지 않은 후미진 곳을 빼꼼 들여다봤더니 역시나 외벽에도 이런 천사 상이 은밀히 붙어 있었습니다.

 

 

 

 

 

 

 

 

 

건물이 정말 낡긴 낡았지요. 하도 밟아대 바닥도 아주 반들반들해졌습니다. 오랜 세월 빛 바랜 돌들이 햇빛을 받아 다시 뿜어내는 저 따뜻한 기운. 원래 수도원이었던 건물을 대학으로 전환한 것으로 이 회랑回廊은 천 년이나 되었다고 합니다.

 

 

 

 

 

 

 

 

 

저는 이 오래된 돌판의 문구를 읽고 저으기 감동 받았더랬습니다. 아주 오래 전, 이 대학에서 일했던 어느 성실한 수위porter를 기려 새긴 것처럼 보이는데 이 돌판말고도 주변엔 기타 허드렛일을 하던 사람들을 추모하는 돌판들이 꽤 있더라고요. 좋아하는 영국 영화 <The History Boys>의 한 장면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옥스포드 입시 준비를 하는 한 무리의 악동 녀석들 중 성적이 다소 부진한 아이가 하나 있었는데, 그 아이의 아버지가 지원하고자 하는 대학의 사환scout이었다는 사실을 면담에서 알게 된 교수들이 흔쾌히 입학을 허가하는 장면이 있거든요. 교수나 높은 위치에 있는 교직원 연줄도 아닌 구내 심부름꾼의 아들을 입학시킨다는 사실이 한국의 풍토에서는 어쩐지 낯설잖아요. 이 돌판을 보고 나니 이해가 갑니다.

 

 

 

 

 

 

 

 

 

영국의 대학들은 이렇게 중정을 둔 미음(ㅁ)자 형태를 하고 있는 곳이 많습니다. 건물 어디서든 바깥 햇빛에 쉽게 접근할 수 있고 밖을 내다볼 수도 있으며 아늑한 맛도 좀 있습니다. 인솔자의 설명을 듣느라 다들 귀가 쫑긋합니다. 야구 모자에 반바지 입은 할아버지를 보니 아마도 북미 쪽에서 오신 듯합니다. 영국 할아버지들은 절대로 반바지를 입지 않거든요. 영국인들이 특별히 점잖아서가 아니라 반바지 입을 만큼 더운 날이 없어요. 야구 대신 크리켓을 즐기므로 이곳엔 야구 모자 쓴 이도 드뭅니다.

 

 

 

 

 

 

 

 

 

화장실 외벽에 붙어 있던 천사상입니다. 아이 얼굴을 하고는 눈을 야무지게 부릅떴습니다. 인상적이죠? 이 날 날씨가 (여느 때와 같이) 좀 오락가락했는데 마침 햇빛이 강하게 비춰 그림자가 선명하게 드리워졌습니다. 대학 곳곳에 이렇게 눈여겨볼 만한 공예적 요소들이 많아 다쓰베이더와 단단은 아주 신이 났었지요.

 

 

 

 

 

 

 

 

 

이건 천사상 밑에 있던 맨홀 뚜껑이고요.
영국의 맨홀 뚜껑 중에는 초콜릿을 연상케 하는 것들이 제법 있어요.

 

 

 

 

 

 

 

 

 

중정을 지나 다시 실내로 들어와 부채 모양 천장을 찍어 봅니다.

 

 

 

 

 

 

 

 

 

이곳이 그 유명한 학생식당 '그레이트 홀The Great Hall'입니다. 영화 <해리 포터>에서 꼬마들이 교수들과 함께 식사하던 홀이 바로 이 그레이트 홀을 본떠 지은 세트라죠. 좀더 넓어 보이도록 CG를 입혔고요. 미국이나 호주의 몇몇 대학들에도 이 홀을 따라 지은 홀들이 꽤 있다고 합니다. 시카고 대학도 그 중 하나라고 들었습니다.

 

 

 

 

 

 

 

 

 

지금 여러분은 단단이 근래 찍은 사진 중 가장 웃긴 사진을 보고 계십니다. 도대체 무엇이 웃긴 걸까요? 자세히 보십시오. 옥스포드 학생들의 엉덩이 자국은 저 프랑스인들의 사랑스러운 하트 모양 과자 팔미에Palmier를 닮아 참으로 탐스럽기도 하죠.

 

 

 

 

 

 

 

 


평소의 테이블 세팅은 이렇고요, 특별한 날엔 제대로 된 흰 린넨의 냅킨을 까는 모양입니다. 포크에 특이하게 끼워놓은 종이 냅킨을 눈여겨봅니다. 관광객들이 하도 많아 분실 염려가 있어 그랬는지 커틀러리를 모두 싸구려로 갖다가 얹어 놓았습니다.

 

 

 

 

 

 

 

 


세팅이 좀 더 복잡해졌습니다. 스푼과 티포크, 티컵이 추가되고 냅킨 색이 달라졌습니다. 학년별로 차별을 둔 걸까요? 궁금합니다.

 

 

 

 

 

 

 

 

 

벽난로도 있고 대학 교수들과 걸출한 졸업생들로 보이는 초상화도 많이 걸려 있습니다. 영국엔 어딜 가나 초상화가 꼭 있는데, 저도 죽기 전에 촉망 받는 싱싱한 미대생 데려다 초상화나 누드화 꼭 하나 남기고 말 겁니다.

 

 

 

 

 

 

 

 

 

작아서 잘 보일지 모르겠는데, 이 대학 수학과 교수였던 루이스 캐롤의 <이상한 나라 알리스> 캐릭터들을 창 곳곳에 그려 넣었습니다. 아이들이 읽기엔 좀 난해한 작품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어째 좀 투박해 보이는 것이 꼭 튜더 시대 의자 같습니다.
그래도 학생식당의 의자치고는 꽤 볼 만하죠.

 

 

 

 

 

 

 

 

 

홀 정면에 따로 마련된 좀 더 고급스러워 보이는 식탁들은 교수용이라고 합니다. 학생들과 교수들이 함께 식사하는 장면. 딱 <해리 포터>의 그 장면과 같을 거라 상상해 봅니다.

 

 

 

 

 

 

 

 

 

밖으로 나왔더니 들어갈 때 보았던 멋진 등이 또 보입니다. 사진쟁이들은 영국 전역에 있는 오래된 등만 골라 찍으며 여행해도 작품집 한 권 나오겠습니다. 가고일gargoyle만, 혹은 육중하고 멋진 나무 문들만, 혹은 묵직한 철제나 브라스로 된 문 손잡이들만. 좋은 생각이죠? 저는 돌아다니며 우체통을 찍고 있어요.

 

 

 

 

 

 

 

 

 

이건 뭘까요? 해시계일까요? 집에 와 사진 올리고 나서 어떻게 읽는 건지 한참 생각하며 들여다보고 있는데 다쓰베이더가 "11시 30분." 단호히 말합니다. 사진 메타 정보에서 찍은 시각 확인을 해보니 11시 39분입니다. 저도 30분으로 보이는데, 오차가 좀 있네요. 이런저런 자료들을 살펴보니 이 크라이스트 처치 안에서는 그레니치 표준시보다 5분 늦게 시간을 맞춘다고 합니다. 아마도 런던 그레니치 천문대가 있는 곳에서 5분 정도 시차가 나는 위치에 이 크라이스트 처치가 있나 본데, 한 시간 단위로 시간을 끊어 맞추는 현대식을 버리고 옛 관습을 꼬장꼬장하게 지켜 오는 모양입니다. 그렇다면 오차는 4분으로 줄어들게 되겠지요. 만일 정면에서 정확히 본다면 11시 39분쯤 됐겠네요. Well done, lad!

 

 

 

 

 

 

 

 

 

'ㅁ'자 형태로 된 대학 건물 안에 자리잡은 안뜰 전체를 찍어봅니다. 뜰이라고 하기엔 거대합니다. 날이 갑자기 흐려져 분위기가 더욱 그럴싸해졌습니다.

 

 

 

 

 

 

 

 

 

아까 밖에서 보았던 교수와 학생 전용 출입구를 이번에는 안에서 다시 봅니다. 정문이겠지요. 가만 보니 외벽 끝자락이 체스 말에서 많이 보던 형태입니다. 이곳 노르만 시대 건물들이 저런 형태를 많이 하고 있어요. 옛날에 감옥으로 쓰였던 런던 탑Tower of London에 가시면 그곳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이곳을 거니는 동안 다쓰 부처는 한국의 명문대들을 떠올려 보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어느 나라 학생들이 더 똑똑한가 하는 문제는 차치하고 저는 우선 예술적 안목이나 미감에 있어서는 옥스포드대 학생들이 월등한 위치에 있지 않나 생각을 해봅니다. 보세요, 학생들 잠시 앉아 쉬라고 복도에 마련해 놓은 저 벤치 팔걸이의 세부를요. 저거 찍느라 바닥에 철퍼덕 주저앉아 초점 맞추면서 단단은 많은 생각을 했습니다. 사방에 있는 것 어느 하나라도 멋없는 직선, 장식 하나 없는 밋밋한 선으로 된 것이 없습니다.

 

 

 

 

 

 

 

 

 

끝으로, 이 대학의 전공을 아래에 열거해 봅니다. 강한 인문학의 향기가 느껴지죠. 요원한 바람이 되겠지만 세상 모든 인문학자들이 밥 굶지 않고 잘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로또 당첨은 인문학자들과 작곡가들과 글쟁이들이 싹쓸이 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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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이 제공하는 가상 투어를 하실 분들은
Virtual Tour of Oxford

 


다음 편에서는 이 대학 안에 있는 작지만 멋진 교회를 들여다보기로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