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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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스포드 ③ 대학가의 상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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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여행

2010. 8. 9.

 

 

 

 

 

대학 구경을 마친 뒤 '지붕 씌운 시장'이라는 'Covered Market'에 들렀습니다. 즉석 쿠키 가게 앞에 학생들이 줄을 섰습니다. 막 구운 미국식 쫀득쫀득한 '쿠키' 냄새가 시장 안을 가득 메웠습니다. 침이 꼴깍 넘어갔으나 이제 줄 서서 쿠키 사 먹기엔 머쓱한 나이가 된지라 그냥 사진만 찍었습니다. 그림체가 익숙하죠? 영국에서 현재 가장 잘나가는 아동 문학가 겸 삽화가인 쿠웬틴 블레이크Quentin Blake가 그려 주었다고 합니다. 크고 달고 기름져서 입에 넣자마자 혼을 쏘옥 빼앗는 저 미국식 맛난 쿠키가 영국의 전통 티타임 비스킷들을 몰아내고 있다고 ☞ 걱정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영국인들이 좋아하는 고기 파이 가게입니다.
포크 파이가 보이는데, 봄철 피크닉과 티타임, 특히 하이 티high tea 테이블에 자주 올라 옵니다.

 

 

 

 

 

 

 

 

 

정육점입니다. 창문 오른쪽에 붙어 있는 스티커를 보세요. "(대형 수퍼마켓 가지 마시고) 동네 정육점을 이용해 주세요." 하는 호소문입니다. 어느 나라나 마찬가지이겠지만 영국인들 역시 대형 수퍼마켓이 동네 작은 상점들을 고사시키고 있다고 염려합니다. 영국에서는 이 푸주한butcher들의 위상이 대단합니다. 고기 좋아하는 영국인들이 아주 소중히 여기는 직업군 사람들 중 하나가 이 푸주한들입니다. 이들이 일할 때 입는 옷차림은 또 얼마나 말쑥한지 모릅니다. 꼭 흰 가운을 입고 까만 앞치마를 두르는데, 남들이 잘 보지도 않는 저 가운 속에는 흰 셔츠와 넥타이까지 하고 있습니다. 사진에서는 다들 맨머리를 하고 있지만 대개는 모자까지 갖춰 씁니다. 영국 하면 또 엄격한 '드레스 코드'가 떠오르지요. 그런데 이곳에 살아 보니 이런 것들이 반드시 꽉막히고 답답하게 보이지만은 않습니다. 대개는 그런 옷을 입는 사람들이 자신의 직업에 대한 자부심을 드러내는 것이니까요.

 

'Butcher's stripe'이라 불리는 저 흑백 대비의 앞치마는 원래 푸주한들의 상징이지만 요즘은 이곳 요리사들도 많이 두릅니다. 우리 집 다쓰베이더도 저 '부처스 스트라이프'를 두르고 단단에게 맛난 요리를 해줍니다. 푸주한들이 자기들만의 제복을 갖춰 입고 일을 하기 시작한 것이 벌써 1540년대부터라고 합니다. 조합으로부터 공인되지 않은 사이비 푸주한들은 이런 차림을 함부로 할 수 없었다 하니 아마도 자부심들이 대단했겠지요.
☞ It's about stripes

☞ 1535년부터 지금까지 정육점을 해 왔다는 영국의 어느 집안 이야기

 

 

 

 

 

 

 

 


영국 소세지 매대.
영국인들은 생소세지를 먹습니다.
따로 쓴 ☞ 영국 소세지에 관한 글을 참고하세요.

 

 

 

 

 

 

 

 

 

유행하는 미니 케이크가 이 집의 전문인 모양입니다. 손이 많이 가기 때문에 크기는 작아도 값은 꽤 비싸더라고요. 단단은 컵케이크나 미니 케이크보다는 조각 케이크를 더 좋아합니다. 큰 덩어리에서 한 조각씩 떼어 나눠 먹는 왁자지껄한 파티가 연상되거든요.

 

 

 

 

 

 

 

 


스니커즈나 마르스 바 등을 뚝뚝 잘라 그냥 얹은 칼로리 폭탄 쵸콜렛 케이크입니다. 깔끔하지가 않고 어째 어수선 지저분합니다. 일본식 제과제빵이 너무 깔끔해 음식처럼 보이지 않는다며 오히려 이상히 여기는 사람들이 이 영국인들입니다.

 

 

 

 

 

 

 

 


곰들이 야외 티파티를 갖고 있네요. 빵 한입 베물고 나뒹구는 녀석, 누워서 트름하는 녀석이 다 있습니다. 곰이 연어를 참 좋아하죠. 저 연어 샌드위치 좀 보세요. 샌드위치 자른 단면이 실물처럼 정말 생생하지 않나요? 찻주전자도 있고 차를 따라 놓은 찻잔도 보이는데, 차가 식어서 홍차와 우유가 살짝 분리된 것까지 어쩜 똑같은지요. 만든 이의 관찰력에 감탄을 합니다. 깔고 앉은 담요에 살짝 무늬 낸 것도 좀 보세요.

 

 

 

 

 

 

 

 


애써 쿠키 냄새를 무시하고 밖에 나왔더니 쿠키 파는 곳이 또 있습니다. 어이쿠 이거, 점점 홍차 고프게 만드네요. 티룸을 찾아 헤맵니다.

 

 

 

 

 

 

 

 

 

겨우 찾은 티룸인데 이름과는 달리 가게 밖에 꽃이 전혀 없는 것으로 보아 다소 무미건조하고 현대적인 티룸 같습니다. 뜨내기 관광객이 많은 곳이니 너무 기대는 하지 않고 들어가 봅니다.

 

 

 

 

 

 

 

 


음악회장이나 미술관 안에 입점한 간이 카페 같은 그런 건조한 분위기입니다. 간략한 아프터눈 티가 있으니 그걸로 한번 시켜 봅니다.

 

 

 

 

 

 

 

 

 

이런 곳에서는 대개 스테인레스 스틸 찻주전자에 티백을 넣어 내는 게 보통인데 찻잎 거르는 체가 딸려 나왔습니다. '느슨한 잎'으로 우려줄 모양입니다. 기대가 됩니다.

 

 

 

 

 

 

 

 

 

광이 번쩍번쩍 나는 찻주전자를 보니 티룸이 그리 오래 된 것 같지는 않습니다. 흉기로 돌변할까봐 그런지 나이프는 항상 냅킨으로 둘둘 말아서 냅니다. 단단은 중국 홍차인 '기문Keemun'을 시켰고 다쓰베이더는 얼 그레이를 주문했습니다.

 

 

 

 

 

 

 

 


은은한 대나무 향. 오랜만에 기문을 마시니 좋네요.

 

 

 

 

 

 

 

 

 

다질링도 그렇고, 아쌈도 그렇고, 이 중국 홍차들도 그렇고, '홍차'라고 묶어 부르기에는 다들 너무나 개성 있는 차들이라고 생각하곤 합니다. 그건 그렇고 이 티룸은 모던한 겉모습과는 달리 차 하나는 제대로 내는 것 같습니다. 차 마시는 동안 차음식들이 나왔습니다.

 

 

 

 

 

 

 

 


에? 이게 다야?
샌드위치는 너무 형편없어 평을 할 수 없는 수준이고, 케이크 역시 솜씨 없는 이 단단이 구운 것보다도 한참 못합니다. 잼은 흐리멍덩. 여간해서는 맛없기가 쉽지 않은 클로티드 크림조차도 다른 크림을 섞어 희석시킨 게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들 정도로 싱겁고 맛이 없습니다. 스콘은 그나마 먹을 만합니다.


이렇게 간략 버전으로 시켜 먹는 데도 무려 15파운드나 들었습니다. 단단과 다쓰베이더는 이제 (얻어 먹는) 호텔 아프터눈 티가 아니면 밖에 나와 아프터눈 티를 먹지 않는 게 좋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차와 차음식 둘 다 잘해서는 수지 맞추기가 쉽지 않은지 쓰고 아린 맛의 싸구려 티백을 써서 차를 망치거나, 차는 괜찮은데 차음식이 형편없거나, 꼭 둘 중 하나입니다. 지난 번 <메이즈 오브 오너Maids of Honour> 티룸에 갔을 때는 사실 차 맛이 아주 형편없었지요. 차와 차음식 둘 다 형편없는 경우도 수두룩합니다. 그런 곳은 볼 때마다 새록새록 화날까봐 방문기도 올리지 않습니다.

 

잘 알아보지도 않고 아무데나 들어가 아프터눈 티를 먹겠다고 한 저한테 일차적인 책임이 있겠지만, '홍차의 나라'인데 의외로 참 안이하고 게으르기 짝이 없는 티룸들이 많아요. 정성도 솜씨도 감성도 부족, 한숨이 나올 지경입니다. 티룸이면 차와 차음식만 전문으로 하는 집일 텐데 이를 위한 최소한의 연구들도 안 하는 모양입니다. 설상가상, 정수기로 거르지도 않은 석회 범벅 수돗물을 그대로 써 차 맛도 텁텁하기 이를 데 없는 집도 많아요.


영국 여행 오셔서 아프터눈 티를 경험해 보겠다 기왕 결심하셨다면 돈 좀 들여 꼭 잘하는 호텔 티룸이나 이름난 티룸으로 가십시오. 형편이 안 되는 분들은 차라리 여행지 곳곳에 있는 <막스 앤 스펜서> 식품관에 들러 냉장 코너에서 샌드위치와 클로티드 크림, 미니 푸딩을 사고, 선반에서 딸기잼과 스콘, 조각 케이크 몇 종 사서 저녁에 호텔 방에서 BBC 방송 보시면서 느긋하게 혼자 즐기시던가요.


왜 <Marks & Spencer>냐?
이곳 샌드위치와 단것들이 맛있거든요. 이 백화점은 속옷과 샌드위치로 큰 회사입니다. 어차피 여행 중이라 잎차 제대로 우려 마시긴 힘드니 차는 그냥 호텔 방에 비치돼 있는 티백 홍차로 드세요. 이렇게 하시면 저렴한 값에 호텔급 아프터눈 티를 즐기실 수 있습니다. 꿇릴 것 전혀 없죠. 호텔(방) 아프터눈 티, 맞잖습니까? 웬만한 티룸보다는 훨씬 나으리라 제가 장담합니다.
털고 싶은 수퍼마켓, 막스 앤 스펜서

 

 

 

 

 

 

 

 


넋두리는 그만 하고 가게들을 계속 돌아보기로 합니다.
사탕 가게도 있고요.

 

 

 

 

 

 

 

 

 

빨간 칠을 한 장난감 가게도 있고요.
어른들이 다들 환장하며 장난감 가게 창 앞에 닥지닥지 붙어 있었습니다.

 

 

 

 

 

 

 

 

 

펜만 파는 가게도 있고요. 손가락 모양 펜촉 찾으셨습니까?

 

 

 

 

 

 

 

 

 

 


영국 최초의 커피 하우스가 있던 자리에 다시 세웠다는 커피 하우스도 있고요. 주의! 영국에서 가장 오래 된 커피 하우스라는 뜻이 아녜요. 여기서 커피와 조각 케이크나 먹을 걸 그랬습니다. 젠장.

 

 

 

 

 

 

 

 


그 옆에는 안으로 엄청 넓은 근사한 골동품 가게도 있고요.

 

 

 

 

 

 

 

 


잠깐.
단단과 다쓰베이더가 그냥 지나칠 리 있습니까. 들어가서 실컷 구경했지요. 여기서 결혼 10주년 기념이 될 만한 무언가를 샀을까요? 아니면 돈이 없어서 그저 구경만 하다 나왔을까요?

 

 

 

 

 

 

 



그 외에도 각종 전문 가게들이 많았고 미술전문서점, 음악전문서점도 있었는데, 책과 악보 들여다보느라 둘 다 넋이 빠져 사진 찍는 걸 깜빡했지 뭡니까. 대학 폴로 티셔츠를 파는 기념품점도 시내 곳곳에 많이 있었습니다. 다음 편에서는 역으로 돌아가는 길에 보았던 이런저런 다른 건축물들 이야기를 하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