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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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 공원에서의 아프터눈 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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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나 한 잔

2010. 9. 13.

 

 

 

 

Summer afternoon - Summer afternoon...

the two most beautiful words in the English language.

 

- Henry James -

 

 

 

셰익스피어를 비롯, 수많은 작가들이 극찬했다던 영국의 '글로리어스'한 여름 날씨. 9월이지만 아직까지는 유효합니다. 이런 날은 무조건 집 밖으로 뛰쳐 나와야 합니다. 영국에서는 여름에 햇빛을 쬐어 두지 않으면 비타민D 부족과 피부병으로 겨울을 날 수 없다고 합니다. 다들 기를 쓰고 밖으로 나옵니다. 1층 할머니가 또 머그 한가득 밀크티 담아 일광욕 하러 마당에 나오셨습니다.

 

햄퍼hamper와 담요는 아직도 못 샀습니다만, 오늘은 공원 벤치에라도 앉아 차를 즐겨야겠습니다. 간단하게 싸 들고 집 근처 공원으로 향합니다. 5분 거리에 근사한 공원이 하나 있어요. 다쓰베이더와 단단이 날마다 걷기 운동을 하는 곳이기도 합니다.

 

 

 

 

 

 

 



오, 저기 괜찮아 보이는 자리가 있습니다. 나무 그늘 밑 벤치네요.

 

 

 

 

 

 

 

 


이야, 명당입니다.

 

 

 

 

 

 

 



도토리가 한 알 똑 떨어져 있습니다.
단단과 다쓰베이더를 위한 '예약석' 표시인 게죠.

 

 

 

 

 

 

 

 


다른 사람들이 맡기 전에 일단 싸온 것들을 먼저 주섬주섬 꺼내 놓습니다.

 

 

 

 

 

 

 



날씨 정말 좋죠?
컴컴한 실내에서만 찍다가 밖에 나오니 사진기의 측광 센서가 엄청난 광량에 잠시 어리둥절해하는 것 같습니다. 영국에도 소나무가 제법 많은데, 구불구불하지가 않고 훤칠하게 키 큰데다 기개가 곧습니다.

 

 

 

 

 

 

 



레몬 크림치즈를 바른 연어 베이글 샌드위치 먼저 먹겠습니다.

 

 

 

 

 

 

 



인도인들의 집에 하나씩 있게 마련인 향신료 합masala dabba에다 이것저것 담아 봤습니다. <올해의 체다>로 뽑혔다는 아주 맛난 빈티지 체다를 저렴한 값에 입수했습니다. 적게 먹는 대신 맛있는 걸 먹고 살기로 했습니다. 최고의 식재료들을 언제 할인하는지 틈틈이 정보 수집해 두고 부지런 떨어 발품 잘 팔면 돈 많이 안 들이고도 미식을 즐길 수 있겠더라고요. 포도와 올리브, 로즈마리 귀리oat 비스킷도 싸 왔습니다. 체다와 아주 잘 어울립니다. 저더러 만일 스코틀랜드의 대표 과자 세 가지를 꼽으라면


1. 쇼트브레드
2. 오트 비스킷

3. 진저 비스킷

을 꼽겠습니다. 오트 비스킷은 술안주용 짭짤한 것에서부터 티타임용 단 것에 이르기까지 온갖 종류가 다 있습니다. 스콧들이 또 이 오트에 일가견이 있어 납작하게 눌린 오트에 우유를 부어 끓여 근사한 죽porridge을 만들기도 합니다. 저희도 좋아해서 자주 해먹습니다.

 

 

 

 

 

 

 



그림 좋네요. 젊은 남녀가 햇빛 쬐느라 우통을 훌렁 벗어제꼈습니다.

 

 

 

 

 

 

 



티타임은 단것으로 마무리 해야죠. 브리티쉬 클래식인 당근 케이크입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케이크의 상당수가 영국에서 온 것들인데, 언제 날 잡아 영국 케이크 한번 정리해 드리겠습니다.

 

 

 

 

 

 

 

 


오늘의 차는 불량소녀 님이 보내 주신 인스턴트 분말차인 <아리조나> '레몬티' 입니다. 사악할 정도로 달고 맛있습니다. 이런 차들은 피곤을 푸는 데 아주 좋아요. 야외에서 찻자리를 가질 때는 홍차 우리기가 좀 곤란하죠. 제아무리 물 팔팔 끓여 보온병에 담아 와도 이동 중 식게 마련, 그렇다고 집에서 차를 미리 우려 담아 오는 것은 더욱 좋지 않죠. 시간이 지날수록 차 맛이 쓰고 텁텁해지거든요. 이럴 땐 인스턴트 분말 홍차를 이용하는 것도 한 방법입니다. 비교적 저온에서 우리는 녹차나 우롱차는 야외로 갖고 나와 우려도 문제 없어요.

 

 

 

 

 

 

 



느긋하게 티타임을 가진 후 일어섰더니 까마귀들이 와서 부스러기를 청소해 줍니다. 까마귀가 비둘기보다는 좀 더 우아하다는 것을 오늘 처음 알았습니다. 공원 벤치에 앉아 무언가를 먹고 있노라면 안하무인 비둘기 녀석들은 사람 무서운 줄도 모르고 달려들어 극성을 피우죠. 까마귀들은 멀찌감치 떨어져서 우아하게 산책하는 척 눈치 보다가 사람이 자리를 뜨면 그제서야 다가와 천천히 간식을 즐깁니다. 어느덧 그림자 방향이 바뀌어 앉은 자리에 해가 들기 시작했습니다. 이제 공원을 천천히 돌아보기로 하죠.

 

 

 

 

 

 

 



이건 '스노우베리'라고 부릅니다. 영국 와서 이 녀석들을 처음 보았을 때 나무에 웬 뻥튀기가 매달려 있는 줄 알고 한참을 들여다봤지요. '베리'라는 이름이 붙긴 했지만 식용은 아니고 영국에서는 주로 겨울철 실내 장식으로 쓰입니다. 크리스마스 센터피스에 많이 씁니다. 아래 사진을 한번 보세요.

 

 

 

 

 

 

 



근사하죠? 스노우베리를 호두, 장미와 섞어 센터피스를 만들었습니다. 크리스마스 테이블이라고 해서 빨간색 일색으로 꾸밀 필요는 없지요.

 

 

 

 

 

 

 



우리 동네에 지천인 블랙베리입니다. 동네 길과 공원에 있는 블랙베리를 다 따면 아마 두 트럭은 나올 겁니다. 영국인들은 길에 무심히 난 이런 열매들에 욕심을 내지 않습니다. 아무도 안 따가서 저 혼자 땅에 떨어지거나 말라 가는 열매들을 보면 아깝다는 생각이 들 정도죠. 숲이나 산 속에 있는 베리들을 따다가 잼을 만드는 사람이 아주 가끔 있긴 하지만 대개는 그냥 내버려 두는 편입니다. 벌레 잡기가 쉽지 않은 겨울철에 새들이 쪼아먹는 걸 보는데 아마 이 때문에 그냥 두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포트메리온> '포모나' 시리즈에도 블랙베리 그림이 있네요. 영국 도자기들에 그려진 꽃과 과일들은 다 영국의 길거리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그런 것들이라고 말씀 드린 적 있습니다. 훗날 한국에 가면 저도 영국의 꽃과 과일이 그리워 포트메리온 그릇 몇 점을 사게 될지 모르죠.

 

 

 

 

 

 

 

 


공원의 호숫가에 앉아 낚시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가끔 산책 나온 개들이 풍덩 뛰어들어 산통 다 깨기도 하죠.

 

 

 

 

 

 

 



걷다가 블랙베리를 또 찍습니다. 녹색에서 빨간색으로, 그리고 까만색으로 변합니다. 빨간색이 다 익은 게 아니라 까만색이 다 익은 거예요. '블랙'베리지요.

 

 

 

 

 

 

 



또 포트메리온 블랙베리 접시

아무래도 샌드위치 담을 큰 접시 하나 사야 될 것 같네요.

 

 

 

 

 

 

 



저희가 평소 운동 삼아 걷는 길을 계속 보여 드리고 있습니다. 아주 멋있는 길인데 사진기가 분위기를 전혀 못 잡아내는군요. 사람 눈만 못합니다. 안타깝습니다.

 

 

 

 

 

 

 



가다 말고 마지막으로 블랙베리 한 번 더 찍습니다. 아이고, 이거 왜 이렇게 예쁜겨... 초록색 빨간색 검은색이 한데 모여있습니다. 하도 잘 익어 손으로 건드리기만 해도 똑 떨어집니다. 어찌나 탐스럽던지 한 바구니 따오고 싶은 마음 굴뚝같았습니다.

 

 

 

 

 

 

 



이건 차통으로 써도 좋을 것 같습니다. 우리 동네에 많은 녀석들이라 그런지 각별한 구석이 좀 있습니다. 제가 사는 동네에는 아이비와 홀리, 블랙베리가 아주 많습니다. 대개 아이비는 벽이나 담을 기어오르는데 우리 동네에서는 길바닥을 덮고 있어요. 처음 이곳에 왔을 때 깜짝 놀랐었죠. 한국에선 실내용 화분에서나 보았던 아이비가 잔디처럼 바닥에 깔려 있으니 장관입니다.

 

 

 

 

 

 

 



저희가 운동하는 중간에 앉아서 쉬는 벤치입니다. 호수가 내려다보여 좋아하는 장소입니다. '공원 근처에 살다니, 복 받았네.' 생각하실 분 있겠는데요, 영국에선 어느 동네에 살든지 다 '공원 근처'가 될 정도로 공원이 널렸습니다. ㅋ 이들에 의하면, 시골은 시골이니까 녹지가 많아야 되는 게 당연하고, 도시는 도시니까 공원이 꼭 있어야 하는 겁니다. 윤기 잘잘 흐르는 관리 잘 된 멋진 개 데리고 나온 부스스하고 뚱뚱한 영국인들. 영국 공원에서 볼 수 있는 전형적인 모습이죠. 주인의 행색이 개만 못합니다.

 

 

 

 

 

 

 



다쓰베이더와 단단이 운동하다 말고 앉아서 내려다본다는 그 호수입니다.

 

 

 

 

 

 

 

 


도토리가 니트모자를 썼습니다.
다 익은 놈들이 많아 걷다 보면 머리 위로 똑똑 떨어지기도 합니다.

 

 

 

 

 

 

 

 


이제 집으로 돌아갑니다. 공원에서 아프터눈 티타임 한 번 갖는 게 숙제였는데 날씨가 하도 좋아 오늘 드디어 숙제 해결했습니다. 이 길도 다쓰베이더와 단단이 아주 좋아하는 아름다운 길인데 역시 눈으로 직접 보는 것만 못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