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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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에드워디안 시대 다이닝 테이블 엿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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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음식

2011. 10. 24.

 

 

 

 

 

오늘은 영국 드라마 <다운튼 애비Downton Abbey>의 만찬 장면을 꼼꼼히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우선 여인들의 이브닝 드레스가 이전 시절인 빅토리아 여왕 때보다 한결 가벼우면서 우아해졌지요? 뒷짐 지고 서있는 웨이터footman를 보세요. 집안 살림의 총 책임자인 집사butler가 아닌 이런 웨이터의 봉급은 신장에 따라 결정되었다고 합니다. 키가 클수록 보기 좋다고 여겼는지 (흑;) 키 큰 웨이터는 키 작은 웨이터보다 봉급을 더 많이 받았다고 하네요.


식탁 위에 무려 초 다섯 개짜리 칸델라브라candelabra가 세 개나 올라와 있습니다. 전부 순도 92.5%의 스털링 실버죠. 부잣집이니 파라핀 초 대신 아마도 비싼 밀랍bees wax 초를 썼을 겁니다. 영국의 수퍼마켓이나 백화점에서는 요즘도 밀랍 초를 팝니다. 이런 초들은 첫눈에도 벌써 고급 티가 줄줄 납니다. 단단은 성분을 알 수 없는 싸구려 아이키아IKEA 초도 감지덕지하며 씁니다.


촛대 뒤로 살짝 보이는 장미꽃 센터피스를 보세요. 빅토리안들이 짙은 갈색의 마호가니 가구를 중심으로 패브릭이나 집기류 등을 중후한 색으로 선택한 데 반해 에드워디안들은 파스텔조의 밝고 가벼운 색상을 선호했습니다. 그래서 센터피스로 쓴 꽃들도 흰색과 연노랑, 파스텔 분홍색으로 꾸며져 있는 겁니다. 전문가까지 동원해 고증해내느라 드라마 찍는 데 돈이 많이 들었다고 하죠. 흰색의 다마스크 식탁보도 고급스럽고 아름답죠?


이제 테이블 세팅을 눈여겨보세요. 한 사람 당 무려 네 개나 되는 크리스탈 컷-글라스가 올라와 있습니다. 코스에 따라 곁들이는 술이 계속 달라지는 겁니다. 스푼이 들어있는 소금기saltcellar, 뚜껑 달린 겨자통mustard pot, 키 큰 후추기pepper caster도 개인 별로 제공되었습니다. 이런 럭셔리한 식탁에서는 "Could you pass the salt, please?"라는 말을 할 필요가 없는 거죠. 죄다 스털링 실버로 된 것들이니 저게 도대체 얼마어치입니까? 입이 떡 벌어집니다.

 

포크 세 개, 스푼 한 개, 나이프 두 개가 올라왔습니다. 영국의 실버 전문가에 의해 알게 된 사실인데요, 코스에 따라 커틀러리를 계속해서 바꿔가며 쓰는 것은 오히려 신흥 부자들이나 중간계급middle class 사람들이 만들어낸 '천박한' 관습이라네요. 돈이 많았으니 가급적 많은 은제품을 사서 식탁 위에 늘어놓고 자랑하고 싶어하던 데서 비롯되었다는군요. 오히려 뼈대 있는 귀족 가문에서는 조상 대대로 물려 쓰던 것 몇 가지만 단촐하게 올려놓고 식사 시간 내내 같은 것을 썼다고 합니다. 컷-글라스와 실버 모두 그 시절 제품들을 갖다 썼다고 하니 에드워디안 디자인이 어떤 것인지 잘 봐두십시오.

 

그 날의 메뉴를 적은 카드도 각 사람마다 제공돼 세워져 있습니다. 프랑스 혈통의 군주를 맞게 된 이후 상류층에서는 불어가 필수가 되었습니다. 이 때문에 메뉴는 대개 불어로 적게 되었고, 불어로 도저히 번역이 안 되는 영국 음식들은 영어로 적었다고 합니다.


흰 냅킨도 올라왔는데, 미국인들과 달리 영국인들은 테이블 세팅 시 냅킨 링을 여간해서는 쓰지 않는다고 합니다. 골동품 프로그램을 보다 보면 냅킨 링들이 간혹 등장하기는 합니다만, 영국인들은 그리 즐겨 쓰지 않는다고 하네요. 영국인들 생각이 맞는 게, 냅킨을 풀고 나서 그 링을 다 어디다 둡니까? 풋맨이 일일이 걷어가지 않는 한 식탁 위에 어지럽게 계속 놓여 있어야 할 텐데요.

 

접시들을 보십시오. 귀족들은 자기 가문의 문장이 입혀진 그릇을 따로 맞춰 썼으므로 이 드라마를 위해 고용된 전문가가 따로 가상의 문장을 만들어 스포드 무지 접시 위에 일일이 전사를 했습니다.

 

이 시절 사람들이 만찬 때 즐겨 먹던 음식으로는 물냉이watercress 수프, 가자미, 토끼 고기, 송아지 고기, 비프 스튜, 삶은 햄, 머랭, 젤리 등이 있었다고 전해집니다. 영국인들은 대식가죠. '대식'으로 치자면 이 에드워디안 시대를 능가할 시대가 없었지요. 매일 저녁 기본 6-코스 식사를 즐겼고 손님을 치르는 특별한 날은 최대 22-코스까지 즐겼다고 합니다.

 

대개 수프와 셰리주로 식사를 시작해 생선 코스가 이어지고, 생선과 고기요리 사이에 나오기 마련인 앙트레로 양고기mutton 등이 올라오고 나면 마디 단위로 큼직하게 잘라 구운 고기를 냅니다. 고기를 방금 두 코스나 먹었는데도 그 다음 풍미가 짙은 사냥 고기game를 또 먹습니다. 그 뒤 야채 중심의 작은 3-코스 앙트르메entremets를 먹고, 드디어 달콤한 후식을 즐깁니다. 헥헥; 후식으로는 대개 아이스크림, 젤리, 블라망제 등 살살 녹는 것들이 올라오는데, 꿈같이 달콤한 후식을 즐기고 난 뒤엔 과일과 견과류로 마무리를 합니다.

 

이걸로 끝?
아니죠. 여자들은 응접실로 자리를 옮겨 수다를 위한 티타임을, 남자들은 바깥 양반의 서재에서 식후주와 담배를 즐깁니다. 사진에서는 훈제연어가 제공되고 있네요. 음식이 놓인 순서를 보면 누가 이 식탁의 어른인지 감이 올 겁니다. 귀여운 매기 스미스 할머니 접시 위에 맨 먼저 놓였다는 걸 알아차릴 수 있겠지요.

 

 

 

 

 

 

 


'신여성'인 그랜섬 백작가 막내딸.

가족들 앞에서 최초로 바지를 입어 선보이는 중.
파스텔 톤의 실내도 눈여겨보세요.

 

 


단단은 개인적으로 에드워디안 시절(1901-1910)의 분위기와 공예품을 무척 좋아합니다. 화사하면서도 섬세하고 우아한 맛이 좀 있거든요. 여인들의 옷차림도(아르 데코 시절만은 못 하지만) 참으로 사랑스럽지요. 이 드라마는 에드워디안 시대보다 약간 지난 시대(1912- )를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에드워디안 시대를 막 지났으므로 그 시절의 특징을 고스란히 담고 있습니다. 그래서 에드워디안 시대극으로 분류가 되는 겁니다.

 

우리 홍차인 여러분들이 아실 만한 이 시절 대표 인테리어 공간으로는 런던의  <리츠Ritz> 호텔이 있습니다. 리츠 호텔 아프터눈 티룸이 이제 방문객들로 하여금 사진을 찍을 수 있도록 허락하는 모양이니 궁금하신 분들은 누리터에서 리츠 호텔 아프터눈 티룸 <팜코트> 방문기를 한번 찾아서 보십시오. '에드워디안' 할 때의 그 에드워드 7세가 이 럭셔리한 리츠 호텔 티룸을 애용했다고 합니다.

 

 

 

 

 

 

 


런던 리츠 호텔 아프터눈 티룸 <팜코트Palm Court>.

프렌치 영향으로 색조가 한결 밝아졌습니다.

 


한국에서도 고급 호텔 양식당에서는 제법 복잡한 테이블이 차려진다는데, 이런 테이블은 뭐가 뭔지 몰라 보기만 해도 두려움이 엄습한다는 분들 계실 거예요. 이런 분들께 유용한 사자성어가 하나 있지요.


좌빵우물.
빵은 왼쪽에 놓인 것이, 물은 오른쪽에 놓인 것이 내 거라는 것. 이것만 알아도 한시름 놓겠다고요? 양식기는 바깥쪽에 있는 것부터 차근차근 사용하시면 됩니다.

 

 

 

 

 

 

 

 

 리츠 호텔 아프터눈 티 상차림

 

 


☞ 다운튼 애비 시즌 5의 그릇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