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윈체스터 ② 대성당 - 크리스마스 캐롤 촛불 예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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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여행

2011. 12. 22.

 

 

 

아프터눈 티를 즐기고 나왔더니 5시도 안 됐는데 깜깜해졌습니다. 거리에 크리스마스 조명이 하나 둘 들어오기 시작했습니다. 불경기라 그런지 과하지가 않습니다. 어쨌거나 불황에도 불을 밝혔다는 게 중요한 거죠. 우리 권여사님의 인생 철학 중 단단이 좋아하는 게 몇 가지 있어요. 그중 하나 -

 

어려운 때일수록 (그 '어려움'이란 게 물질적인 것이든 심리적인 것이든 뭐든 간에) 더욱 공들여 크리스마스 장식을 하고 크리스마스를 잘 보내자.


지치지도 않는지 힘든 여행을 다녀오셔서는 그 다음 날 바로 크리스마스 트리와 장식품을 꺼내 집안을 꾸미고 남의 가게까지 다 꾸며 주셨다고 합니다. 정말 대단한 분입니다. 아이언 레이디가 따로 없어요.

 

 

 

 

 

 

 



소박한 크리스마스 트리.
어떻게 하면 저렇게 꼬마전구들을 무질서하면서도 아름답게 두를 수 있는 걸까요?
영국식 가드닝의 정수입니다. 

 

 

 

 

 

 

 



영국의 마켓 타운 중심부에는 항상 이런 조형물Market Cross들이 세워집니다. 지극히 영국적인 거라죠? 아무 곳이나 다 마켓 타운이 될 수 있었던 건 아니고, 왕이 허가를 내려야만 마켓이 들어설 수 있었던 모양입니다. 영국인들이 이민 가서 세운 나라들에도 이런 조형물들이 제법 있다고 하지요. 윈체스터에 있는 건 <The City Cross>라 불립니다. 마켓 한 가운데에 왜 십자가cross가 있는 걸까요?

 

'장사 잘 되게 해주소서.'
'물건 잘 사게 해주소서.'
서로 기도하라는 거죠.

 

사는 사람은 상품 값 지나치게 깎아 상인들 사기 떨어뜨리지 말고 적당한 선에서 흥정해 서로서로 덕 보라는 의미가 담겨 있다고 합니다.

 

 

 

 

 

 

 


일전에 '코니쉬 파스티Cornish Pasty'라는 만두 모양의 맛난 영국 파이를 소개해 드린 적 있죠? 코니쉬 파스티 전문점이랍니다. 영국 오시면 꼭 맛보시길 바랍니다. 건물이 왠지 《해리 포터》에 나오는 작은 숍 같지 않나요? 엇, 2층에 남자분 한 분이 홀로 외롭게 코니쉬 파스티를 즐기고 있습니다. Bon Appetit! 메리 크리스마스!

 

 

 

 

 

 

 



거리에서 튜더풍 목조 건물을 맞닥뜨릴 때마다 내가 정말 유럽에 있구나 깨닫습니다.

 

 

 

 

 

 

 



형광등 간판이나 네온 사인이 없어 눈이 시원하죠.

 

 

 

 

 

 

 



이런, 박물관이 있는 줄도 모르고 빈둥빈둥 시간을 보냈네요;;

문이 이미 닫혔으니 다음을 기약하며.

 

 

 

 

 

 

 



이날 윈체스터에 간 목적은 크리스마스 마켓 구경과 윈체스터 대성당의 캐롤 서비스에 참여하기 위해서였는데, 맙소사, 6시30분에 시작되는 예배를 위해 5시 전부터 사람들이 줄을 섰어요. 홍차 마시며 노닥노닥하다 일찍 줄 선답시고 5시 전에 나왔는데도 줄이 이미 200m를 훌쩍 넘었습니다. 화살표 붙여 놓은 곳이 줄 시작 부분입니다. 허허, 까마득합니다. 영국인들의 줄 서기는 정말 세계적이죠. 크리스마스 캐롤 사랑도 대단하고요.

 

 

 

 

 

 

 



기다리면서 심심해 교회 옆모습도 좀 찍어 보았습니다. 이 정도면 손각대가 훌륭하죠? 다운튼 애비인 줄 알았다고요?

 

 

 

 

 

 

 



교회가 대단히 크기 때문에 어느 자리에 앉아 듣느냐에 따라 감동과 감흥이 완전히 달라질 수 있습니다. 음악 잘 들리고 오르간 잘 보이는 곳에 앉게 해 주십사 짧게 기도하고 입장했는데 최고의 자리에 앉을 수 있었습니다. 다쓰베이더의 기도빨이 좀 셉니다. 포스가 충만한가 봅니다. 내부가 정말 아름답죠?


가○○ 님을 위해 오르간 정면의 운치 있는 성가대석에 앉지 않고 사진 찍기 좋은 옆쪽 보조 의자에 앉았습니다. 오르간 전체를 찍을 수 있으니 더욱 좋지요.

 

 

 

 

 

 

 

 

예배 시작 전 연주됐던 오르간 곡목입니다. 영국인들은 무얼 하든 구색 갖춰 놓고 즐기는 걸 좋아하기 때문에 교회 예배 때도 시대별로 작곡된 곡들을 늘어 놓고 연주와 찬양을 합니다. 현대 작곡가 곡들이 자주 연주 되죠. 부러운 풍토입니다.

 

 

 

 

 

 

 

 

예배 시작 전 신나게 오르간을 찍었습니다. 촛불 예배라 실내가 너무 어두웠어요. 이 정도 나온 것만 해도 감지덕지 해야죠. 오르간을 마음껏 찍을 수 있어 좋았는데, 가만 보니 천장도 황홀합니다.

 

 

 

 

 

 

 

 

나무로 일일이 조각해 붙였어요. 오르간 소리 들으며 천장을 우러러보고 있노라니 신앙심이 절로 샘솟을 지경입니다. 유서 깊은 교회에 앉아 최고 수준의 공예품들과 음악에 둘러싸여 크리스마스를 보낸다는 것 - 인간이 맛볼 수 있는 행복의 극치가 아닐까 싶기도 하고요. 아무튼 감개무량했습니다. 수용할 수 있는 한계를 넘어 무언가를 경험하고 나면 단단은 꼭 이삼일 간 끙끙 앓아 눕습니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몸에서 열이 나고 머리가 좀 아픕니다.

 

 

 

 

 

 

 

 

성가대석의 나무 장식들은 또 어떻고요. 한숨.

 

 

 

 

 

 

 

 

그 많던 사람들이 거대한 공간을 빼곡히 채우고 이제 소년 성가대원들이 입장하기만을 기다립니다. 오르간 소리가 잠잠해지고 조명이 꺼져 촛불만 남은 가운데 성가대원들이 손에 초를 들고 들어왔습니다. 예배 시간 중에 촬영하는 것은 예의가 아니니 다 끝난 후 다시 찍도록 하죠.


프랑스나 독일 등 유럽 대륙의 코리스터들과 영국 코리스터들은 소리를 울리는 신체 부위가 다르다고 합니다. 영국인들이 듣기엔 대륙 쪽 음색이 (좋게 말하면) 깊고 (달리 말하면) 아이들 목소리치고는 좀 징그럽게 느껴질 수 있겠죠. 반면, 대륙 쪽에서 볼 때는 영국 코리스터의 연주가 너무 가볍고 산뜻해 경박하게 느껴질 수 있고요. 순전히 각 나라의 취향과 전통의 문제입니다. 영국 성가나 캐롤은 그래서 대륙 쪽 성가와 느낌이 많이 다릅니다. 결국 작곡가들은 자국 코리스터의 소리에 맞춰 곡을 쓰게 되는 거지요. 다쓰 부처의 소견으로는 이 윈체스터 대성당의 코리스터와 합창단이 그간 들었던 영국의 코리스터 팀들 중에서는 음색과 균형, 표현력, 집중도 등이 가장 훌륭합니다.

 

 

 

 

 

 

 



촛불 예배는 다 끝나고 이제 오르간이 연주되는 가운데 사람들이 떼지어 교회 문을 나섭니다. 다쓰 부처는 항상 오르간 곡을 끝까지 다 들은 뒤 오르가니스트에게 박수 쳐주고 자리를 뜹니다. 극장에서도 영화 본 뒤 엔드 크레딧 다 올라갈 때까지 보고 앉아 있는 좀 별스런 습관이 있어요. 예배 끝나고 연주된 오르간 곡은 J. S. Bach의 In dulci jubilo (BWV 729)와 Louis Vierne(1870-1931)의 Final (Symphonie IV)이었습니다.

 

 

 

 

 

 

 



왼쪽 구석에 앉아 진지한 얼굴로 오르간 연주를 듣고 있는 다쓰베이더.

(얼굴은 제가 사진 편집하면서 가렸습니다.)

 

 

 

 

 

 

 

 

다쓰베이더가 오르간 연주를 감상하고 있을 동안 저는 블로거의 본분을 지키며 열심히 사진 찍습니다.

설교대pulpit마저도 근사하죠.

 

 

 

 

 

 

 

 

옛 색슨 시절의 군주와 성직자들의 유골이 담긴 상자.

죽음을 터부시하는 한국과 달리 유럽은 어딜 가나 죽은 이의 흔적이 있지요. 동네 교회 뜰에도 석관과 비석이 그득합니다.

 

 

 

 

 

 

 

 

쩌렁쩌렁 울리고 있는 오르간 사진 마지막으로 한 번 더 찍고,

 

 

 

 

 

 

 

 

조각상이 촘촘히 서 있는 <Great Screen>도 찍어 봅니다. 웨스트민스터 사원과 비슷한 느낌입니다.

 

 

 

 

 

 

 

 

전구가 아닌 진짜 초로 밝힌 샹들리에 실물은 처음 봅니다. 초를 끄기 위해 아래로 끌어내릴 수도 있더라고요. 신기했습니다.

 

 

 

 

 

 

 

 

교회 관리인이 초를 다 끈 뒤 원 위치로 올리는 중입니다. 교회 구석구석에 있는 공예품들은 모두 문화재나 다름 없죠. 이 때문에 초는 공해 물질이 적은 밀랍 초를 쓰는데, 이 밀랍 초가 좀 비싸야 말이죠. 예배가 끝나면 이렇게 얼른 끄는 수밖에요. 옛 시절엔 밀랍 초에 붙는 세금이 하도 세서 손님 가시자마자 초부터 끄는 일이 귀족 집 하인들의 우선 할 일이었다죠. 적은 수의 양초만 갖고도 방을 환히 밝히려면 식기들은 전부 은제품으로 쓸 수밖에 없었고요.

 

 

 

 

 

 

 


소등된 샹들리에.

샹들리에 뒤 정교한 조각들을 충분히 보시라고 여러 장 찍어 올리고 있습니다.

 

 

 

 

 

 

 

 

크리스마스 때만 꺼내 세워 두는 작은 성탄nativity 입상들. 가까이서 담아 봅니다. 권여사님은 아마 올해도 <코스트코>에서 산 합성수지 성탄 입상들을 세워 두셨을 거예요. 영국에서 근사한 공예품 사서 부쳐 드리면 좋겠는데, 제 형편에 영국산 수공예품 사고 나면 아마 2주 정도는 굶어야 할 겁니다.

 

 

 

 

 

 

 

 

오르간 연주를 다 들은 뒤 12세기 철제 스크린을 지나 신랑身廊 쪽으로 나왔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곳에 앉고 다쓰 부처는 저 나무 스크린 뒤쪽에 앉아 캐롤을 들었던 거죠. 명당 중의 명당이었습니다. 단단이 좋아한다는 그 '딸기대문' 쪽에 서서 교회 안을 바라보면서 찍은 겁니다. 사진을 찍다 보니 어느덧 그 많던 사람들이 거의 다 사라지고 없었습니다.


"자, 이제 돌아갈 시간입니다."
관리인이 다가오면서 점잖게 내쫓습니다.


한편,
아까 그 기특한 코리스터 꼬맹이들은 예배와 연습이 없는 낮시간엔 무얼 하고 있느냐?

 

 

 

 

 

 

 

 


교회 밖 아이스링크에서 이러고 놉니다. 그 고운 목소리는 다 어디로 가고, 꽥꽥 굉음을 내며 신나게 얼음을 지칩니다. 조카들 생각이 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