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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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그릇] 로얄 알버트 올드 컨트리 로즈 - 영국적인, 너무나 영국적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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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음식

2012. 2. 1.

 

 

 

 

 

로얄 알버트 올드 컨트리 로즈.

역사상 가장 많이 팔린 찻잔이 아닐까 싶습니다.

여러분, 이 찻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마치 랍상 수숑 홍차처럼 호불호가 극명히 갈리는 찻잔이죠. 순한 색의 도자기를 즐겨 왔던 우리 한국인들에게는 무늬와 색상이 너무 화려해 보일 수 있어요. 단단은 지인으로부터 이 찻잔 한 조를 결혼 선물로 받았었습니다. 어린 시절엔 이런 요란한 꽃무늬가 어쩐지 나이 들어 보이고 싫었지요. 그래서 받자마자 돌아 와서 누군가에게 줘 버렸습니다. 순결하고 고결하기 짝이 없는 순백색 무지 그릇이나 젠 스타일의 깍쟁이 그릇들을 주로 즐기던 때였습니다.

 

영국 와 살면서 비로소 이 찻잔의 매력을 알게 되었습니다. 굴지의 영국 도자기 회사 웨지우드와 로얄 알버트의 찻잔을 비교하면 두 회사의 표방하는 바가 다르다는 것을 금방 알아차릴 수 있습니다. 웨지우드는 조지안 시대에 일으켜[1759년] 번창한 기업이고, 로얄 알버트는 빅토리안 시대에 창업[1896년]을 했지요. 두 회사 모두 자사 제품에 당대의 미감과 유행을 고스란히 담아내고 있습니다. 단단은 단정한 선과 압축된 무늬의 (신)고전적인 웨지우드도 좋아하지만 나이 들어가면서 점점 관능적이고 복잡한 로코코 스타일 선과 영국 코티지풍 과감한 꽃무늬를 가진 로얄 알버트가 좋아집니다. 살 날이 많지 않으니 찻잔으로나마 아름다운 자연을 만끽하겠다, 이런 거지요. 최측근중 한 명이었던 우리 영감님이 "얘들아, 나 이제 간다." 일언반구 없이 갑자기 우리 곁을 떠난 이후 단단은 하루도 빠짐없이 죽음에 관해 생각을 합니다. 죽는 건 두렵지 않으나 일년 중 잠깐 때만 보는 이 아름다운 꽃들을 언제까지나 볼 수는 없겠구나 생각에 이르니 어쩐지 섭섭합니다. 게다가 빠듯한 유학 생활, 꽃 사서 즐길 형편이 안 되니 더욱 꽃에 집착하게 되는 것 같아요.

 

제가 오늘 드리고자 하는 말씀은 이겁니다. 할머니가 물려주셨든, 엄마가 주셨든, 자기 취향에 맞지 않는다고 그릇 함부로 버리거나 남 줄 생각 하지 마시고 집에 잘 갖고 있어 보시라는 거예요. 사람 취향은 변할 수 있거든요. 지금 단단이 좋아하는 것들, 불과 5,6년 전만 해도 질색을 하던 것들이었습니다. 나이 들면서 좋아했던 것들을 싫어하게 되는 일보다는 싫어하던 것을 좋아하게 되는 일이 더 많아지는 것 같아요. 지평이 넓어지고 포용력이 생기는 거죠. 그러니 뭐든 잘 갖고 있어 보세요. 십여 년 전 선물로 받은 걸 남에게 홀랑 줘 버리고는 영국 와서 제 돈 주고 다시 사다니, 이런 한심한 일이 또 있습니까.

 

이 찻잔은 정말이지 영국식 낭만주의의 극치를 보여 줍니다. 달빛에 비친 장미를 담은 파란색 라인[Moonlight Rose]도 있는데, 달빛 아래서 본 장미라니 더욱 낭만적이죠. 단단은 둘 다 갖고 있습니다. 만일 누군가 저에게 가장 영국적인 물건 하나만 꼽으라 한다면 주저 없이 이 로얄 알버트 올드 컨트리 로즈 찻잔을 꼽겠습니다. 꽃 중에서도 장미를 특별히 좋아하는 영국인들의 취향과 자연주의, 가드닝, 티타임, 본 차이나 등등 영국적 가치가 충만합니다. 이름부터 벌써 이를 드러냅니다. '올드'한 것, '컨트리'스러운 것, '로즈' 좋아하는 취향이 이름에 고스란히 담겨 있죠. 저는 이 찻잔을 볼 때마다 영국에서 겪었던 장미 일화들이 새록새록 떠올라 행복해집니다.

 

 

 

 

 

 

 



플라워 쇼 갔을 때 본 장미 전문 꽃집.
장미 종자가 한국에서 흔히 보던 것과는 달라 보이죠. 양배추를 닮아 동그랗고 통통하고 겹이 많은 장미입니다. 영국인들이 좋아하는 품종입니다. 유럽 정물화에 나오는 꽃꽂이 같지 않나요? 꽃꽂이 취향도 한국과 많이 다른데, 전반적으로 꽃 조합과 스트럭춰가 좀 더 과감한 것 같습니다.

 

 

 

 

 

 

 



플라워 쇼에서 신품종 장미향 맡고 행복해하는 어느 한국 여인. (손님 떨어질까봐 블러 처리)
장미는 잉글랜드를 상징하는 꽃인 동시에 단단의 탄생꽃birth flower이기도 합니다[6월]. 질 좋은 아쌈 찻잎에서도 사과향을 닮은 장미향이 납니다.

 

 

 

 

 

 

 



8월의 런던 리젠트 파크 입구.
런던 여행하실 분들께 이곳 장미 정원을 강력히 추천합니다. 후미진 곳에 있어 사람들이 잘 모르는데 장미가 그득하고 정말 아름답습니다. 《캔디캔디》의 앤쏘니 생각이 날 겁니다.

 

 

 

 

 

 

 



앤쏘니치고는 좀 두꺼운 한국인 아저씨.
아저씨들도 장미를 즐길 줄 아나 봅니다.
어느덧 미중년을 꿈꾸는 나이에 접어들었습니다.

 

 

 

 

 

 

 



플라워 쇼에서 마주쳤던 그 한국인 아주머니 또 만났습니다. 이 사진은 마치 인상파 화가의 유화 같지 않나요? 리젠트 파크의 장미 정원이 이렇게 아름답습니다. 꼭 방문해 보세요.

 

 

 

 

 

 

 



언젠가 소개해 드렸던 시골스러운 빈티지풍 찻상이죠. 장미 찻잔이 다소 요란하고 촌스러워 보여도 이렇게 차려 놓으니 근사합니다. 영국인들은 은제 다구 잔뜩 올린 격식 갖춘 찻상보다는 이런 시골스럽고 낭만적인 찻상을 더 좋아하는 것 같습니다. 홍차인이라면 살면서 언젠가는 이런 찻상 꾸밀 날이 올 수 있으니 집에 있는 장미 찻잔 취향에 맞지 않는다고 남 홀랑 줘 버리지 말고 잘 갖고 계시라는 거예요.

 

 

 

 

 

 

 



우리 집.
장미 꽃 만발한 어느 화창한 날, 이리나, 미일리어와 함께.

 

 

 

 

 

 

 

 


다음 해에 또다시 꽃을 피워준 우리 집 미니 장미.
로얄 알버트 사의 여러 찻잔 형태 중 '몬트로즈Montrose'라는 이름의 것이 있죠? 1962년에 올드 컨트리 로즈 제품을 내면서 첫 선을 보인 형태인데, 올록볼록 여인의 허리와 엉덩이를 닮은 매우 관능적인 선을 하고 있죠. 첫 사진에서 찻잔을 유심히 보세요. 매끄러운 엉덩이가 보일 겁니다. 장미에서 영감을 얻었는지, 빼꼼 얼굴을 펴기 시작한 장미 꽃봉오리와도 똑 닮았습니다. 찻잔을 두 손으로 감싸면 짜릿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