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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서 즐기는 아프터눈 티] 다이아몬드 쥬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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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음식

2012. 6. 3.

 

 

 

 

 

영국인들.
무슨 일만 있다 하면 거리로 쏟아져 나와 '스트리트 티파티'를 합니다.
전승 기념 티파티,
로얄 웨딩 기념 티파티,
대관식 기념 티파티,
25주년 실버 쥬벌리 티파티,
50주년 골든 쥬벌리 티파티,
60주년 다이아몬드 쥬벌리 티파티,
. . .

 

로얄 웨딩이나 대관식은 영국인이라면 살면서 몇 번 정도는 볼 수 있지만, 군주의 재위 60주년을 기념하는 다이아몬드 쥬벌리는 여간해서는 맞기가 힘들죠. 역대 영국 왕들 중 빅토리아 여왕과 현 여왕만이 재위 60주년을 맞았습니다. 제아무리 까칠한 사람이라도 누군가 공직에 60년 세월 동안 몸 담고 있었다는 건 마땅히 축하해야 할 일이라고 고개를 끄덕입니다. 여왕의 다이아몬드 쥬벌리를 기념하기 위해 영국은 2일부터 5일까지 나흘간의 연휴에 들어갔습니다.

 

 

 

 

 

 

 



아침 일찍부터 쿵짝쿵짝 동네가 시끄럽길래 나가봤더니 여기저기 사람들이 모여 먹고 마시고 놀고 있었습니다. 모처럼 신나게 사진 좀 찍어볼까 싶어 사진기를 챙겨 나갔는데, 다른 동네들처럼 길까지 막고 거창하게 벌이는 티파티가 아니라서 좀 아쉬웠습니다.

 

 

 

 

 

 

 



집 근처 노인 요양소care home에서도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휴일을 맞아 찾아온 자식들과 함께 티파티.

 

 

 

 

 

 

 



티파티라 여기저기서 다들 베이킹질.

 

 

 

 

 

 

 

 

 

이에 질세라 단단도 베이킹질.
베이킹 용품들과 파티 용품들이 전국적으로 불티나게 팔렸을 겁니다. 영국인은 아니지만 이렇게 하니 애국삘이 좀 나죠? 영국인들은 평소에도 자기네 국기를 가져다 집 꾸미고 과자 꾸미는 데 많이 활용을 합니다. 국기 자체가 리본 두른 선물 포장처럼 보이긴 하지요.

 

 

 

 

 

 

 

 



내 평생 언제 또 영국 군주의 다이아몬드 쥬벌리를 보겠나 싶어 기념으로 요런 잔재주 부리는 키트도 다 사봤지요. 수채화 느낌의 차분한 종이 케이스로 골라보았습니다. 영국인들은 컵케이크cupcakes 대신 페어리 케이크fairy cakes를 즐깁니다. 컵케이크는 1796년 미국의 어느 요리책에서 처음으로 언급된 후 지금까지 미국의 발명품으로 알려져 있는데, 영국의 페어리 케이크에 비해 덩치가 크고 짜 올리는 크림도 <롯데삼강 빵빠레>처럼 수북이 올라갈 때가 많죠. 영국인들의 페어리 케이크는 제가 만든 것처럼 크기가 작고 크림 대신 하얀 아이싱 슈가를 물에 풀어 얇게 끼얹습니다. 저는 아이싱 대신 버터크림을 짜 올렸지만요. 크기도 작고 크림도 없으니 페어리 케이크 쪽이 칼로리가 적습니다. 페어리 케이크용 종이 케이스는 컵케이크 것에 비해 크기가 작아야 하지요. 아래의 광고 사진에 있는 케이크가 바로 페어리 케이크입니다. 컵케이크와 비슷하나 토핑과 크기에서 차이가 난다는 거죠.

 

 

 

 

 

 

 



영국인들, 특히 영국의 노인들은 밤낮 저 '천박한' 미국 문화가 영국 문화를 고사시키려 든다고 투덜댑니다. 색소 넣어 화려하고 칼로리만 높은 미국식 컵케이크가 자기들의 작고 아담한 페어리 케이크를 몰아내려 하고, 크고 달고 기름져 입에 넣자마자 혼을 쏙 빼놓는 미국 쿠키들 때문에 담백하고 소박한 자신들의 전통 티타임 비스킷들이 사라질 위기에 처했다고 개탄들을 합니다. 미국 과자나 가공식품들은 정말 입에 넣자마자 즉각적으로 강렬한 맛을 선사하곤 하지요. 과자 겉에 마약을 묻혔는지 봉지 뜯어 몇 개만 먹고 치워두는 것도 거의 불가능하더라고요. 식품공학도인 막내 오라버니에 따르면 여기에는 과자 회사들의 '트릭'이 좀 있다는군요. 영국의 단과자들은 영국식 밀크티에 곁들이도록 고안되었기 때문에 자극적인 맛에 길들여진 현대인의 입맛에는 단맛과 유지가 부족하게 느껴질 수 있어요. [버터 함량 30% 이상인 쇼트브레드 제외]

 

 

 

 

 

 

 



두둥.
찻상에 앉아 페어리 케이크 하나 집어 먹으려는 순간, 여왕님이 등장하셔서는 "나 잡아 봐~라~" 하십니다. 다쓰베이더가 깜짝 선물로 수퍼마켓에서 사왔습니다. 진저브레드 맨이 아니라 진저브레드 퀸입니다. 진저브레드는 아주 오래 전부터 각 국가별로 다양한 형태로 만들어 즐기고 있었는데, 이를 사람 모양 비스킷으로 만들어 먹기 시작한 건 네덜란드와 잉글랜드라고 합니다.

 

 

 

 

 

 

 



지난 번에 말씀 드렸던 '화려한 깡통만 보고 산 종이맛 홍차'가 여기 또 있습니다. 이런 종이맛 차가 아직 세 통 더 있어요. 꽈당 맛 없어도 버리지 않고 끝까지 다 먹습니다. 이 홍차도 열심히 먹어 티백이 이제 몇 개 안 남았습니다. 의지의 한국인이죠. 그래도 지난 번 것보다는 종이맛이 좀 덜 납니다. 실론차들만 갖고 블렌딩을 했기 때문에 꽉찬 느낌이 많이 부족하고 뒷맛이 좀 날카롭습니다.

 

 

 

 

 

 

 

 


남의 나라 여왕이지만 신문 방송에서 하도 많이 뵌 탓에 꼭 우리 할머니 같은 친근감이 듭니다. 할머니께서 남편 필립 공과 함께 오래오래 건강하게 사셨으면 좋겠습니다.

 

영국의 왕실이 사라질 날이 과연 올까요? 글쎄요, 전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왕실'을 갖고 있다는 자부심이 대단한 걸로 보아 그럴 날은 쉽게 오지 않을 듯합니다만. 첫 손주를 품에 안은 어느 캐나다 할머니가 그럽니다.


"Well, my first granddaughter arrived safely, in good health and very happy at 9lbs., 8oz., a little less than the original estimated eleven pounds. We are very happy and trust that the Monarchy will still be in fine fettle when our little new one turns sixty. How great would that be?"

 

"이 꼬맹이가 60살이 되어서도 왕실 가족들의 건재함을 볼 수 있다는 건 정말 근사한 일이지 않겠니?"

 

무언가 위기에 처한 것 보존하는 데 일가견이 있는 사람들이 또 이 영국인들이니 아마도 왕실이 존폐 위기에 처하면 멸종 위기 동물처럼 측은히 여겨 보존에 힘쓸 테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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