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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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우깡 럭셔리하게 먹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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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나 한 잔

2012. 7. 7.



여의도 63빌딩 57층에 <백리향>이라는 고급 중식당이 있지요. 그런 비싼 곳에서 외식할 처지가 못 되는 다쓰 부처를 어엿비 여긴 친척 어르신께서 가끔 맛있는 요리를 사 주시곤 하셨습니다. 으아아. 생각만 해도 침이 콸콸 나오는군요. 침샘이 다 아픕니다. 기억하기로 백리향 요리는 다 맛있었는데, 심지어 짜장면조차도 참 예술이었던 것 같아요. 맛있는 거 사 주시는 분은 두고두고 기억 나고 감사합니다.

 

코쟁이들 나라에 살면서 서양 요리를 주로 먹다 보면 한·중·일 음식 어디에나 들어 있던 저 글루탐산나트륨이 불현듯 그리울 때가 있습니다. 이태리 요리에는 자연적으로 글루탐산과 이노신산이 많이 들었기 때문에 (예를 들어, 파마산 치즈나 안초비, 토마토, 포르치니 머쉬룸 따위) 이태리 유학생들은 이태리 음식만 먹고도 그럭저럭 잘 견디는 편이지만, 영국 유학생들은 체다를 먹거나 라면 스프를 따로 복용하거나 굴소스를 한 숟갈씩 퍼먹어 줘야지만 금단증상이 가라앉습니다.

 

 

 

 

 

 

 



백리향 해산물 요리를 그리워하며 몸부림치고 있을 무렵, 한국에 계신 어느 고마운 분께서 갓 생산된 신선한 새우깡을 선물로 보내 주셨습니다. 한 봉지도 아니고 무려 30개들이 한 박스를! 캬핫, 이 분, 단단이 새우깡 좋아하는 거 어찌 아시고.

 

다쓰 부처는 한국 과자를 대체로 우습게 여기는 편인데 (왜냐? 죄다 일본 것 베낀데다 성분이 너무 후지고 포장과 광고가 기만적이므로.) 그래도 새우깡은 각별히 아낍니다. 요즘 새우깡은 옛날에 비해 덜 기름지고 보송보송해졌더라고요. 확실히 덜 느끼해졌어요. 원조인 일본 새우깡보다 맛있고요.

 

비싼 배송비 주고 물 건너 온 귀한 새우깡, 백리향 요리처럼 맛있게 먹어 보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중국 요리를 담으면 어울릴 만한 참한 접시를 하나 꺼냅니다. 영국 <스포드Spode> 사의 리젠시(1795-1837) 리프로덕션입니다. 중국풍이죠. 이 시기 유럽은 차와 함께 도자기, 가구 등 중국(풍) 물건들이 한바탕 인기를 끌고 지나간 뒤였지요. 채리티 숍에서 새우깡 전용 접시 삼으려고 집어 왔어요. 개나리처럼 생긴 하얀 작은 꽃들이 바로 '자스민'입니다. 녹차나 백차에 향 씌울 때 쓰는 향기롭고 예쁜 꽃, 다들 아실 겁니다.

 

 

 

 

 

 

 



봉지를 뜯어 새우깡을 봉긋하게 담아 줍니다.
으흠~ 고소하고 비릿한 이 새우향.
그 다음, 끼얹을 소스를 만듭니다. 재료는 아래와 같습니다.

 



미셸 루의 부아 부드랑 소스
Bois Boudran by Michel Roux


땅콩 기름 또는 포도씨 기름 300ml
와인 식초 50ml
소금·후추 입맛대로


토마토 케첩 150g
우스터셔 소스 1작은술
타바스코 5방울

 

샬롯 곱게 다진 것 100g 
처빌chervil 5g (구하기 힘들면 파슬리로 대체 가능하나 처빌이 좀 더 여리고 섬세함)
차이브chives 5g
타라곤tarragon 20g

 



2019년 추기: 요즘은 한국 마트에서도 위의 향초들을 다 팔더라고요. 저는 <이마트>나 <신세계백화점>에서 사 옵니다.

 

 

 

 

 

 

 

 왼쪽부터 처빌, 차이브, 타라곤



요즘 타라곤 작황이 안 좋아 값이 비싸졌으므로 단단은 저장해 둔 말린 것으로 쓰고 있습니다. 한꺼번에 다 넣고 잘 저어 준 뒤 쓰면 되는데, 맛은 마치 <이금기 XO 소스> 같다고나 할까요? 맛과 향이 럭셔리하기 짝이 없어요. 건더기 위주로 떠서 새우깡 위에 끼얹어 먹으면 기가 막혀요. 백리향 새우 요리라 해도 손색이 없습니다. 건더기만 떠서 쓰면 기름이 많이 남게 되는데, 이렇게 남은 기름은 통닭구이나 데친 생선 위에 뿌려 먹거나 볶음요리 할 때 쓰면 됩니다. 알감자 구이에도 좋고요. 향초와 각종 소스의 맛이 밴 맛기름이기 때문에 풍미가 아주 좋습니다.

 

 

 

 

 

 

 



새우깡과 소스가 준비 됐으면 이제 자스민향 입힌 녹차나 백차를 우립니다. 저는 백차로 우렸습니다. 이렇게 해서 먹으면 고급 중식당이 부럽지 않습니다. 사진 찍어 둔 지 좀 오래됐는데, 엥? 오늘 글 올리려고 보니 정작 소스 끼얹은 사진은 없네요? 너무 맛있어서 끼얹자마자 삽시간에 다 먹어치웠나 봅니다. 대신 아래에 제대로 된 요리 사진으로 올려 드립니다. 새우깡 좋아하시는 분들은 티타임에 이 소스 얹은 새우깡과 자스민 차를 한번 시도해 보세요. 별미입니다.

 

 

 

 

 

 

 


 미셸 루의 '부아 부드랑Bois Boudran' 소스.
스테이크, 로스트 치킨, 연어, 감자 위에 얹어 먹으면 천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