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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부적 감각, 제이미 올리버의 '무늬만' 김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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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식과 세계 음식

2012. 7. 9.

 

 

 

 

 

 

오늘은 영국 요리사 제이미 올리버Jamie Oliver에 대해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제이미의 요리책은 현재까지 모두 열 세 권이 나와 있는데, 단단은 이 열 세 권을 다 갖고 있습니다. (제이미 올리버 요리책 두 권 또는 두 권 이상 갖고 계신 분, 저랑 친구 합시다!) 날 잡아 각각의 요리책을 하나씩 소개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지금까지 해 먹어 본 것들은 다 맛있었습니다. 한국에 계신 분들은 재료 구하기 쉽지 않아 고전하시겠지만 단단은 운 좋게도 제이미의 애용 수퍼마켓 두 곳 <웨이트로즈Waitrose>와 <세인즈버리즈Sainsburys>가 엎어지면 코 닿을 아주 가까운 곳에 살고 있기 때문에 별 어려움 없이 재료 사다 레서피를 실천해 보고 있습니다. 한국인들에게는 제이미 요리책 열 세 권 중 다음의 두 권이 좀 각별할 겁니다.

 

 30분 안에 3-코스 또는 4-코스 상차림을 후다닥 차릴 수 있게 도와 주는 <Jamie's 30-minute meals>
미국 각지를 돌며 맛본 음식을 자기 식으로 재해석한 <Jamie's America>


이 두 권에는 우리 한국인들이 호기심을 갖고 볼 만한 레서피가 하나씩 소개되어 있지요. 바로 '김치'입니다. <Jamie's 30-minute meals>에는 김치를 코울슬로coleslaw로 재해석한 'Kimchee Slaw'가, <Jamie's America>에는 뉴욕 차이나타운 편에 제이미식 'Quick and Punchy Kimchi'가 소개되어 있습니다. 아래의 사진이 바로 그 제이미식 김치입니다. 백김치처럼 생겼죠?

 

 

 

 

 

 

 



다쓰 부처는 한국 사람인데도 김치를 잘 먹지 않습니다.

"아니, 김치를 안 먹는 한국인이 다 있다니? 맛이 없나요?"

 

천만에요. 겨울철 땅 속 항아리에서 꺼낸 살얼음 낀 김치의 그 '톡' 쏘는 맛은 천국을 엿보게 할 정도로 황홀하지요. 김치 맛있다는 것 잘 압니다. 다쓰 부처가 김치를 먹지 않는 이유는 맵고 짜기 때문입니다. 맵고 짠 음식을 즐기질 않거든요. 짜게 먹으면 하루 종일 정신이 혼미하고 혈관이 아픕니다. 김치, 장아찌, 젓갈, 자반 생선, 찌개, 이런 건 여간해서 잘 먹지 않습니다. 심지어 밥 먹을 때 국도 먹지 않습니다. 저희 집 밥상에는 국이 없어요. 누가 라면 끓여 주면 면만 후루룩 건져 먹고 국물은 안 먹습니다. 다이어트 하실 분이라면 더더욱 짜게 드시면 안되죠. 짠 음식들은 하나같이 '밥도둑'이라는 별명이 붙어 있어 밥을 많이 먹게 만들거든요.

 

하여간, 소금에 절이는 과정 없이는 김치가 성립되지 않기 때문에 다쓰 부처는 아예 김치를 먹지 않고 있는데, 희한하게도 제이미 올리버식 저 '짝퉁' 김치는 열심히 해먹습니다. 소금이 많이 안 들어가거든요. 재료와 조리법을 소개해 드리면 아마 깜짝 놀라실 텐데, 이게 무슨 김치냐며 역정내시는 분들이 누리터에 수두룩합니다. 먼저 재료를 보시죠.

 

 

 참기름 70ml

마른 홍고추, 중간 크기, 속 제거하고 채썰기

팔각star anise 2개

화쟈오花椒, Szechuan pepper 1작은술 [1작은술 = 5ml]

자염 조금

배추 1포기 (약 500~600g) 양배추도 가능

고운 황설탕golden caster sugar 2큰술 수북이 [1큰술 = 15ml]

화이트 와인 식초 또는 쌀식초 70ml

마늘 2~3알, 다지기

생강, 엄지손가락만 한 크기, 다지기

 

이 레서피를 보고 격노하시는 분들이 많습니다. 참기름과 식초를 쓰고 우리의 소중한 김치에 감히 중국풍 향신료를 쓴 것이 못마땅하다며 아우성들입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저는 사실 왜들 그리 화를 내시는지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제이미가 언제 자기 김치를 '정통authentic'이라고 우기기라도 했냔 말이죠. 제이미 요리책 열 세 권에 소개된 다른 나라 음식들도 저는 절대 '오쎈틱'할 거라 생각하지 않습니다. 제이미 요리책은 제이미가 자기 식으로 해석한 '제이미' 요리책이라서 의미가 있는 거지, 오쎈틱한 것 찾으시려면 각 나라 전통classic 요리책을 사서 보면 될 일입니다. 그런데, 어떤 요리가 '오쎈틱'한지 아닌지는 누가 결정하는 걸까요? 지역마다 다르고 집집마다 다르고 물 건너가면 또 달라지고 시대마다 조금씩 변하는 게 바로 요리의 묘미인데요. 제이미 김치 보고 오쎈틱하지 않다며 씩씩거리시는 분들, 집에서 까르보나라 해드실 때 '생크림국'으로 만드시는 분들 많을 겁니다.

 

한국 김치를 맛본 서양인이 발효 과정 없이 만들어 바로 먹을 수 있도록 자기 식으로 뚝딱 재해석 해냈다는 사실이 저는 그저 재미있기만 합니다. 하물며 그 코쟁이가 보통 사람도 아닌 재능 있는 요리사라면요. 김치에 대한 제이미의 짤막한 변을 들어 보도록 하지요.


Kimchi is a classic Korean cabbage pickle. Traditionally, it's fermented over the course of days or weeks; my version here is faster and a bit coarser, but still delicious. I've eaten kimchi in so many ways: in delicious buns stuffed with slow-cooked pork, with lovely grilled meat, in burgers and even in noodle dishes. It's hot, spicy, fresh, cold and zingy and delicious with a cold beer. Even though there are three dried chilies in this, it's a lot milder than you might expect. It will keep happily in a sterilized jar for a few days, so you should have plenty of opportunities to find ways of eating it up.


"김치는 한국의 전통 배추 절임이야. 원래는 담그고 나서 수일에서 수주 발효시킨 뒤 먹어야 하는 건데, 여기 내가 만든 버전은 속성인데다 날림이야. 그래도 맛은 있어. 김치는 그간 여러 가지 방법으로 먹어 봤는데, 장시간 익힌 돼지고기나 구운 고기와 함께 번 사이에 넣어 먹어도 봤고, 버거에도 넣어 먹어 봤고, 심지어 국수에도 넣어서 먹어 봤지. 맵고, 향 강하고, 신선하고, 차갑고, 톡 쏘는 맛도 있고, 찬 맥주랑도 잘 어울리더라. 내 레서피에 마른 고추를 무려 세 개나 쓰라고는 했지만 기대치보다는 훨씬 덜 매울걸? 열탕 소독한 병에 보관하면 며칠은 간다. 당장 다 먹어치우지 않아도 되니 두고 천천히 먹으면서 어떻게 이런저런 요리에 응용할 수 있을지 궁리해 봐."

 


어떻습니까? 제이미가 김치를 제대로 이해하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지요? 인터뷰 한 걸 보니 여러 방법으로도 먹어 봤고 직접 담가 보기까지 했다고 합니다. 제이미의 김치 레서피를 곰곰히 분석해 보면 그가 생각하는 김치의 '불편한 점'이 무엇인지 금방 알아차릴 수 있습니다.


1. 일단, 소금에 절이는 과정을 과감히 생략한 것으로 보아 다쓰 부처처럼 제이미도 김치가 너무 짜다고 생각한 것임에 틀림없습니다. 서양인들은 아무 간이 안 된 싱거운 밥과 그 싱거운 밥을 상쇄할 짠 반찬들로 구성된 밥상에 익숙치 않습니다. 서양인들의 식탁에 올라오는 거의 모든 요리에는 처음부터 적당한 간이 돼 있는데, 여기에 우리 '오쎈틱'한 김치를 같이 먹으라는 건 성인병으로 삶을 빨리 종료하라는 말밖에 안 됩니다.

 

2. 외국인들이 일상에서 쉽게 접하기에는 담가서 먹기까지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린다는 점도 불편했을 겁니다. 제이미는 김치를 즉석 샐러드처럼 만들어 먹으면 좋겠다고 여긴 모양입니다. 올리브 오일과 레몬 즙 써서 샐러드 드레싱 만드는 게 제이미 특기이지요. 제이미가 누차 강조하는 샐러드 드레싱 공식, 제이미 팬들은 다 알고 계실 겁니다.

 

오일 : 신맛 (식초나 신 과일 즙, 주로 레몬 즙) = 3 : 1

 

김치를 샐러드처럼 만들어 먹기 위해 제이미는 여기서 참기름과 식초를 씁니다. 그런데, 참기름은 세상 그 어느 기름보다도 맛과 향이 강한 기름이므로 3:1 공식을 따르지 않고 식초와 1:1로 쓰고 있습니다. 오래 발효해서 생긴 톡 쏘는 맛은 아쉽게나마 식초로 해결하고 있고요. 머리 좋아요.

 

3. 마늘 생강은 원래 들어가는 거니 문제가 없다만, 저 중국 향신료들은 대체 뭐냐고 따지시는 분이 많아요. 영양학자들의 지침 중에 이런 게 있습니다.

 

싱겁게 먹으려면 조리할 때 소금을 적게 넣는 대신

기름을 넉넉히 써서 고소하게 하거나

식초나 과일 즙을 써서 새콤하게 만들거나

다양한 향신료를 써서 맛에 생기를 부여하라.

 

짠맛을 포기한 대신 영양학자들의 이 세 가지 지침을 충실히 따르고 있는 거지요. 공부에 소질 없는 제이미가 영양학을 공부했을 리 만무, 감각이 대단한 거라고 생각할 수밖에요. 그러니 저 이국 향신료 좀 썼다고 너무 흥분하지 마시라는 겁니다. 향신료 얘기가 나왔으니 말인데, 사실 한식은 양념이 몇 가지로 한정돼 있고 향신료 사용에 너무 인색하다는 생각 안 드십니까? 영국도 한국처럼 자급할 수 있는 향신료가 많지 않은 나라입니다. 그런데도 부지런히 수입해서 이런저런 요리에 많이 활용들을 하고 있죠.

 

 

 

 

 

 

 

 


이것이 문제의 그 화쟈오, '쓰촨 후추'와 팔각입니다. 쓰촨 후추는 향은 마치 라벤더 같은데 씹으면 유자향이 나고 신기하게도 혀끝에 전기가 오르는 것처럼 파르르한 떨림이 생기면서 한참 동안 아릿합니다. 맛이 맵다기보다는 향이 그윽하고 알싸한 느낌이 나서 쓰는 것 같아요. 팔각은 회향fennel seeds과 비슷한데 좀 더 달고 웅숭깊은 우아한 향이 납니다. 아래에 제이미의 가짜 김치 사진 나갑니다.

 

 

 

 

 

 

 

 

 

 

4. 제이미가 정말 감각 있다고 느끼게 만든 대목은 바로 배추를 끓는 물에 살짝 데쳐서 쓰라는 부분. 소금에 절여진 배추가 장시간 발효되었을 때 나는 그 독특한 식감이 놀랍도록 흡사하게 나거든요. 이 제이미식 김치는 만들자마자 바로 먹어도 참 맛있습니다. 샐러드처럼 먹을 수 있죠. 기름이 많아 보이는데, 젓가락으로 배추를 들어올리면 배추 겉에만 기름이 살짝 묻고 죄다 그릇에 남기 때문에 생각보다 기름 섭취가 많지 않습니다. 몸에 좋은 참기름, 일부로도 먹는다는데요.

 


재료를 알려 드렸으니 이제 조리법을 드릴 차례입니다. 싱겁게 먹기 실천하고 계신 분들께 이 제이미식 김치 추천 드립니다. 제이미의 말대로 열탕 소독한 병에 담으면 바로 다 먹어치우지 않아도 되니 삼사일 정도 냉장 보관하면서 어떻게 응용할지 궁리해 보세요. 국수에 고명으로 올려 먹어도 맛있습니다. 사일 정도 묵으면 이것도 그 사이에 나름 숙성이 좀 돼서 우리 오쎈틱한 김치 느낌이 살짝 납니다.



조리법


1. 약불에 작은 냄비를 올려 분량의 참기름을 붓고 마른 홍고추와 팔각, 쓰촨 후추알을 넣어 향을 입힌다. 향신료를 익히려는 게 목적이 아니라 기름에 향을 입히는 게 목적이니 갈색 나도록 방치하면 안 된다. 5분 정도만 두어도 충분하다. 5분이 지나면 불에서 내린다.


2. 배추는 지저분한 잎을 떼고 적당히 다듬은 뒤 1~2cm 정도로 썬다.


3. 끓는 소금물에 뚜껑 덮고 1분 정도 데친 뒤 체에 받쳐 물기를 빼고 넓은 데 펼쳐 10분 정도 김을 날린다.


4. 우묵한 그릇에 향신료 향 입힌 참기름과 설탕, 식초, 마늘 생강 간 것, 소금 적당량을 넣고 잘 섞은 뒤 데쳐서 한김 식힌 배추를 넣어 버무린다. 살균한 병에 담아 냉장 보관하면 3-4일은 두고 먹을 수 있다. 끝.

 


오늘의 결론: 

제이미는 천재다.  

 

 

 

 

 

 

 

국수 고명으로 올려도 맛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