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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아트릭스 포터] 까불까불 다람쥐 넛킨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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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책방

2012. 11. 25.

 

 

 

 

 

영국 동화 작가 베아트릭스 포터Beatrix Potter, 1866-1943의 동물 이야기는 모두 23권이 출판되었습니다. 오늘은 그 중 다람쥐 '넛킨Nutkin'에 관한 이야기를 소개해 드릴까 합니다. 이름 잘 짓지 않았나요? 다람쥐 이름이 '넛nut' + '킨kin'이라니.

 

 

 

 

 

 

 

 

 

1903년 초판 표지입니다. 제가 갖고 있는 책이 이 초판과 거의 같은데, 현대에 와서 초판 디자인으로 다시 찍은 거라서 그렇습니다. 천으로 제대로 장정한 하드 커버에 금박 글씨가 정말 야무지게 꼭꼭 찍혀 있어요. 막 찍어 낸 대량생산 책들이 범람하지만 영국에는 아직도 수작업으로 고급 장정 책을 내는 이들이 있습니다. 큰돈은 못 벌고 어렵게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지만요. 전자책과 싼 제본 책이 난무하는 세상에 공들여 수작업한 고급 장정 책들을 펼쳐 보는 것은 소중한 경험입니다. 원래 책이란 비쌀 수밖에 없는 물건인데 요즘은 너도나도 싼 값에 사서 볼 수 있으니 감사하면서도 한편 아쉬운 점도 있지요. 하드 커버라고 다 같은 하드 커버가 아니더라고요. 제가 본 최악의 하드 커버 책은 바로 <해리 포터> 영문판 시리즈. 전세계 어린이들이 쉽게 접할 수 있도록 싸게 만들어 싸게 파는 것도 좋지만 본드로 대충 붙이지 말고 좀 제대로 만들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었습니다.
가운데를 펼치니 책이 쩌억.
내 마음 한복판도 쩌억.

 

 

 

 

 

 

 

 


이 붉은 색 영국 다람쥐red squirrel에 대해 언급을 좀 하고 넘어가야 할 것 같습니다. 붉은 다람쥐들이 바로 영국 토종 다람쥐입니다. 베아트릭스 포터를 비롯한 영국 작가들의 작품에 등장하는 다람쥐는 대개 이 붉은 다람쥐입니다.

 

 

 

 

 

 

 



이렇게 생겼고요,

 

 

 

 

 

 

 

 

 

19세기 중반, 저 호기심 많던 수집가 빅토리안들이 미국 여행 가서 동부에 살고 있던 회색 다람쥐들을 보고 "어? 이거 우리 영국엔 없는 놈들인데 갖다 놔야겠네." 경솔하게 데리고 와 각자의 영지에 풀어놓은 것이 화근이 되어 현재는 사진에 있는 회색 외래종이 영국 토종 다람쥐를 거의 멸종 직전에까지 몰고가는 사태에 이르렀습니다. 영국인들의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녜요. 회색 외래종 녀석들이 덩치도 더 크고 힘도 세고 극성맞아 먹이와 거처를 독차지하는 바람에 토종 숫자가 급감했거든요. 동물이나 식물 검역을 철저히 해야 하는 까닭이 바로 여기에 있나 봅니다.

 

 

 

 

 

 

 

 


어휴, 정말 심각하죠. 하긴 저도 영국 와서 지금까지 공원과 정원에서 다람쥐를 수도 없이 많이 봤지만 영국 토종은 한 번도 본 적이 없을 정도니까요.

 

 

 

 

 

 

 

 

 단단이 매우 아끼는 다람쥐 머그, 토끼 머그. 경이로움 님 기증.

 


책 자랑 계속 합니다. 윗면에는 금박을 발라 습기와 먼지로부터 책을 보호합니다. 금박 처리를 한 것과 안 한 것은 책 보존에 있어 많은 차이를 가져온다고 하지요.


한국에도 이 책이 번역돼 들어가 있을 텐데, 번역하신 분들 정말 존경스럽습니다. 영국 작가들은 말장난을 매우 즐기는데 그걸 우리말로 어떻게 번역들을 하셨을지 궁금합니다. 이 넛킨 이야기는 이렇게 시작합니다.


This is a tale about a tail -
이것은 꼬리에 관한 이야기예요 -

 

뜻은 통하지만 우리말에서는 말장난이 주는 재미가 사라졌지요. 포터의 작품에는 의성어, 의태어, 시구, 노랫말 등이 많이 쓰이기 때문에 아이들용 이야기라 할지라도 외국인인 단단에겐 영어로 읽기가 아주 쉽지만은 않더라고요. 번역하신 분들도 애 많이 먹었을 겁니다.

 

 

 

 

 

 

 

 


다람쥐들이 올빼미 '올드 미스터 브라운'에게 조공까지 바쳐 가며 도토리 모으기에 열심입니다. 공물을 바치지 않으면 자기들이 잡아먹힐 테니까요.

 

 

 

 

 

 

 

 

우리 집 올드 미스터 브라운.
본래 조리용 숟가락 받침으로 지음 받았으나 과자 접시로 요긴하게 쓰임.

 

 

 

 

 

 

 

 

 

공물로 바친 쥐 세 마리 중 한 마리는 벌써 입 속으로 꿀꺽.
꼬리 보이십니까? (갑자기 쥐포가 먹고 싶네.)
포식자 올빼미 님 무서운 줄 모르고 넛킨이 계속해서 깐죽깐죽 까불락까불락.

 

 

 

 

 

 

 

 

 

이렇게 복실복실 탐스러웠던 넛킨의 긴 꼬리가

 

 

 

 

 

 

 

 

 

이렇게 토끼 꼬리처럼 짧아지게 된 사연이 이 <넛킨 이야기>에 담겨 있다는 거지요. 독자분들의 즐거움을 위해 더 자세한 내용 설명은 하지 않겠습니다. 넛킨이 내는 아홉 개의 수수께끼도 한번 맞혀 보십시오. 정답은 모두 본문 안에 숨어 있어요. 그림 솜씨, 글 솜씨뿐 아니라 재치도 대단합니다.

 

 

 

 

 

 

 

 

 오늘의 홍차 - Brodies <Famous Edinburgh>. 경이로움 님 기증.

 

 

베아트릭스 포터의 이야기들은 유럽 동화답게 '엽기 호러 모드'가 밑바닥에 얇게 깔리면서도 주인공들의 (성공담이 아닌) 좌충우돌 실패를 그린 것들이 많아 재미있어요. 영국 특유의 블랙 유머 양념도 살짝 뿌려지고요. 혹자는 이 넛킨 이야기를 절대권력과 실패한 계급 투쟁으로 읽기도 하지만 제가 보기엔 해석이 과합니다. 우화의 성격보다는 그냥 세심하게 관찰해서 쓴 재미난 동물 이야기로 보는 게 좋겠습니다. 작품이 다양한 해석을 낳는다는 건 어쨌거나 작가에게 좋은 일이지요. 틈날 때마다 포터의 이야기를 간단하게 소개해 드릴게요. 영어판은 아이패드 무료 앱으로도 나와 있으니 참고하시고요.

 

한국에 있을 때 아차산 자락에서 아줌마 아저씨들 도토리 쓸어 담는 것 보고 광분해 한 시간 동안 '빛의 속도'로 주워 모은 뒤 인적 없는 숲에 도로 다 던져 주고 온 기억이 납니다. 아우 증말, 산이나 숲에 가서 도토리 좀 깡그리 쓸어 담아 오지 좀 마세요. 도토리묵 아니어도 우리 인간은 먹을 거 많잖아요. 도토리 담는 인간들을 향해 다람쥐가 이렇게 성질 부릴지도 모르죠.


... he will throw sticks at you, and stamp his feet and scold, and shout - "Cuck-cuck-cuck-curr-r-r-cuck-k-k!"

 

 

 

 

 

도토리 찻잔.

 

 

자, 이제 차 한 잔 우려 과자 한 조각과 함께 컴퓨터 옆에 놓으시고요,
☞ 여기를 클릭해 책을 펼치시고요,

아래의 동영상을 재생해 영국 발음의 낭독을 동시에 들으면서 읽어 보세요.

영어 공부와 영국 문학 산책을 겸하는 훌륭한 티타임이 될 겁니다.
티타임에 읽기 좋은 영국산 짤막한 이야기들을 틈날 때마다 소개해 드리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