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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식 밀크티를 위한 최적의 우유 - 1% fat mil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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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음식

2013. 8. 17.

 

 

 

 

 

영국인들은 혼합blended 홍차 티백에 우유와 설탕을 넣어 먹습니다. 그래서 '밀크티'라고 하지요. 설탕은 꼭 넣지 않아도 되나 우유를 넣지 않으면 써서 못 마셔요. 밀크티용으로 조제된 홍차라서 그렇습니다. '브렉퍼스트'라 이름 붙은 홍차들도 우유를 꼭 넣어 주셔야 합니다. 반면, 아쌈이나 다질링, 실론, 랍상수숑, 기문, 운남, 얼그레이, 아프터눈 블렌드는 우유와 설탕 없이 마시는 게 일반적입니다. 실론과 실론 찻잎을 기본으로 혼합하는 아프터눈 블렌드는 레몬을 썰어 잠깐 넣었다 빼 레몬 향을 입혀 주는 것도 좋지요.

 

영국인들은 대부분 밀크티를 마십니다. 하루에 몇 잔씩 마셔요. 다쓰 부처는 영국 와서 처음 2,3년 동안은 우유 없이 마실 수 있는 다양한 (고급) 차들을 즐기면서 영국인들을 무시했었습니다. '이 나라 사람들은 차를 마실 줄 모르는군. 차에 우유와 설탕이라니, 훗, 초딩 입맛.'


영국 살아 보세요, 사람 취향 변하는 거 삽시간입니다. 저도 이제는 사계절 내내 밀크티를 마십니다. 이 나라 기후가 사람을 그렇게 만들어요. 바람 불고, 비 오고, 안개 끼고, 서리 내리고... 밀크티가 다른 어떤 차들보다도 더 마음을 어루만지고 위로해 주는 것 같거든요. 한여름 낮인데도 지금 여기는 바깥 온도가 16˚C밖에 안 됩니다. 부럽죠? 추위를 잘 타기 때문에 저는 영국 날씨가 항상 춥게 느껴집니다. 두루 관찰해 본 바, 영국인들은 난방을 참 안 하고 지내더군요. 겨울에 지도교수 댁 갔다가 얼어 죽는 줄 알았습니다. 죄다 민영화한 바람에 가스, 전기, 교통, 통신비 등이 터무니없이 올라 그렇다고 합니다. 그러니 영국에선 뜨겁고 '쑤딩soothing'한 밀크티가 최고죠.


오늘은 밀크티의 필수 요소인 우유 이야기를 좀 해보겠습니다. 차를 잘 우리고 잘 마시는 일은 참으로 섬세한 작업이라, 물의 온도는 물론이요, 심지어 차를 담는 잔의 재질과 두께, 특히 입술 닿는 부분인 '입전'의 두께마저도 차맛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곤 합니다. 그러니 찻잎뿐 아니라 우유나 설탕 등 몸 속으로 직접 들어가는 요소들이 내는 차이는 말할 것도 없겠죠. (저는 홍차에 우유는 넣지만 설탕은 넣지 않습니다.) 하루에 몇 잔씩 마시는 차, 기왕이면 좀 더 맛있고 건강하게 먹고 싶은 바람이 있어 그간 이런저런 차도 사 보고 우유도 종류별, 브랜드별로 사서 맛을 보았습니다. 한국에 있을 때는 우유를 일절 마시지 않다가 영국에 와서야 우유에 맛을 들였는데, 확실히 코쟁이들 기본 식재료라 그런지 우유, 버터, 달걀이 한국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맛있습니다.

 

영국에서 팔리는 우유는 현재 다음과 같이 분류됩니다:

 

 

 

 

 

 

 

 

 

유지방 3.5%의 전지방 우유full fat milk는 홍차에 넣기에는 좀 느끼합니다. 풍미가 진해 그냥 마실 때는 아주 좋지만요. 전지방 우유 특유의 그 '꼬수운' 맛은 단연 으뜸이지요. 영국에서는 자연의 맛을 그대로 살린 무균질unhomogenised 우유도 흔한데, 뚜껑을 열면 위에 유지방이 따로 뭉쳐 떠 있어서 우유를 따를 때 불편할 때가 종종 있기는 합니다. 고소한 풍미의 전지방 우유를 찾는 사람들이 저지방이나 무지방 우유를 찾는 사람들보다 평소 몸에 좋지 않은 식품을 즐기고 있을 확률이 높다는 연구 결과가 있습니다. 그런데 사실, 뚱보가 많은 코쟁이들 나라에서나 벌벌 떨고 유지방 따져 가며 우유 마시지, 개도국이나 먹거리 부족한 나라에선 어디 그런가요.

 

무지방skimmed 우유는 포화지방산이 적어 고지혈증이나 뇌졸중, 심장병 등 심혈관계 질환 있는 사람들이 주로 이용합니다. 몸에는 덜 나쁠지 몰라도 색이 흐리고 싱거워서 저는 사용하지 않습니다. 비만을 걱정해 아이에게 무지방 우유를 주는 부모들이 많다는데, 무지방 우유를 마시는 아이들이 오히려 마음이 헛헛해 달고 기름진 음식을 더 찾게 된다는 연구 결과가 있습니다. 이해가 가고도 남죠. 그런데, 우유에서 무언가를 제거했다고 하니 영양 성분이 많이 줄었을 거라 생각하기 쉽지만, 지방만 뺐을 뿐 비타민, 미네랄, 식이섬유 등은 오히려 무지방이나 저지방 우유가 전지방 우유보다 많다고 합니다. 이런 영양 성분들은 유지방이 아닌 물로 된 유장 성분에 녹아 있기 때문에 같은 양을 마셨을 때 유용한 성분을 더 많이 섭취하게 된다는군요.

 

영국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우유는 유지방 1.5-1.8%의 저지방semi-skimmed 우유입니다. 저도 그간 이 저지방 우유를 썼었습니다. 우유의 고소한 맛은 충분히 나면서도 느끼하지 않거든요.

 

과학자들과 영양학자들이 어떻게 하면 국민들의 포화지방 섭취를 더 줄일 수 있을까 연구해서 내놓은 것이 유지방 1% 우유입니다. 일반적인 저지방 우유에 비해 지방이 겨우 0.5~0.8% 정도 적은 제품인데, 이게 밀크티 한 잔 마실 때처럼 밥숟가락 하나(15-20ml) 정도의 적은 양일 때는 별 차이가 없으나, 하루에 너댓 잔씩 마실 경우, 아침마다 씨리얼을 말아 먹을 경우, 혹은 오트 포리지porridge를 끓여 먹을 경우엔 제법 유의미한 차이를 가져 온다고 합니다.

 

한 달쯤 전부터 호기심에 1% 유지방 우유를 사서 밀크티에 넣어 보고 있는데요, 웬걸요, 1%P도 안 되는 유지방 차이이지만 밀크티 맛에 엄청난 변화를 가져오는걸요?


무지방 우유를 넣었을 때처럼 싱겁지는 않으면서 1.5~1.8%의 저지방 우유 먹을 때 나는 약간의 느끼한 지방 맛마저 안 나는 것이 차맛을 매우 또렷하게 살려 줍니다. 다쓰 부처 입맛엔 1% 유지방 우유를 넣은 밀크티가 가장 맛이 좋네요. 사소한 유지방 함량 차이가 맛에 이렇게 큰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는 게 놀랍습니다. 한국에도 1% 유지방 우유가 있는지 궁금하네요. 밀크티 애호가 분들께 1% 유지방 우유 추천해 드립니다. 맛 보시게 되면 소감을 좀 말씀해 주세요.

 

참, 한국에서는 냄비에 끓이는 밀크티를 영국식 밀크티로 알고 계시는 분이 많더라고요. 잘못 알고 계신 겁니다. 일본식, 인도식, 홍콩식 밀크티를 냄비에 끓여 만들죠. 냄비 밀크티는 진하고 고소해 맛있기는 하나 어쩌다 한 번 마시기에나 좋지 하루 너댓 잔씩 마시기엔 다소 무리가 있지요. 우유 섭취가 너무 많아집니다. 무엇보다, 준비하고 뒷설거지하는 게 번거롭죠. 우유 끓였던 냄비 씻는 거, 생각만으로도 '어휴' 소리가 절로 나지 않나요?

 

영국식 밀크티는 100˚C에서 펄펄 끓은 물 200ml에 5분간 우린 뒤 데우지 않은 찬 우유 10-15ml를 찔끔 넣어 만듭니다. 이것이 홍차 깡통에 써있는 그 'little touch of milk'입니다. 화학자들은 잔에 우유를 먼저 붓고 뜨거운 찻물을 나중에 부을 것을 권하는데, 그건 찻주전자에 우려 잔에 따라 마실 때나 가능하지, 머그나 찻잔에 바로 티백을 우릴 때는 우유를 나중에 부을 수밖에 없게 되죠. 설탕은 취향에 따라 듬뿍 넣어도 되고 넣지 않아도 됩니다. 대개는 흰 각설탕 한 개 정도를 넣습니다. 냄비 밀크티에 비하면 다소 싱거우나 하루 어느 때나 부담 없이 즐길 수 있고 심지어 식사 때 물처럼 함께 마셔도 좋습니다. 저는 찬물 마시는 걸 싫어해서 식사 때는 슴슴한 영국식 밀크티를 마시곤 합니다. <영국식 밀크티> 다시 정리해 드립니다. 자자자, 다들 수첩에 적어 두세요.


펄펄 끓은 물 200ml를 찻잔에 붓고 (영국인들은 대개 머그를 씀.)

밀크티용 홍차 티백 하나 얌전히 퐁당 (티백당 찻잎 3.125g 든 제품들이 맛있음.)

온도와 향을 유지하기 위해 찻찬 받침이나 접시로 덮고

3분에서 5분 우린 뒤 (저는 5분 우립니다. 오래 우릴수록 몸에 좋아요.)

티백을 알뜰하게 쥐어짜 마지막 한 방울 '엑기스'까지 취하고

흰 각설탕 하나 넣어 잘 저어 주고

냉장고에서 막 꺼낸 차가운 우유, 데우지 말고 찔끔 10~15ml 정도 부은 뒤

영국 ☞ 클래식 티타임 비스킷 한 조각 곁들여 호로록

 

 

 

 

 

 

 



차를 마실 때는 항상 창 밖을 내다봅니다. 저희 집은 한국으로 치자면 '서민용 소형 빌라'쯤 됩니다. 그런데 공동주택인데도 어쩜 이렇게 시골 외딴집에 사는 것처럼 조용하고 창 밖 경치가 좋은지 모르겠습니다. 바람에 나뭇잎 흔들리는 '쏴아' 소리와 새소리밖에 안 나요. '쏴아' 소리가 마치 파도 소리처럼 들립니다. 가구 수가 많은 빌라인데도 유령의 집처럼 조용합니다. 전망 좋은 티룸 일부러 찾아갈 필요 없이 집에서 즐기면 되니 복 받은 거지요. 사실, 차는 밖에서 고생하다 내 집에 돌아와 복장 해체하고 발 뻗고 마시는 차가 최고죠.

 

아주 오랜만에 비가 오려고 합니다. 비 많이 오는 영국이라지만 올해는 가물어서 과일이 야무지게 영글었습니다. 과일 농가들이 노래를 부르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