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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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레고쓰난 홍차 Tregothnan Tea - 말 그대로 영국 홍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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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나 한 잔

2014. 2. 17.

 

 

 

 

 

영국에서도 차를 재배한다는 사실, 알고 계셨나요?

 

잉글랜드 남서부 끝에 콘월Cornwall이라는 지역이 있습니다. 영국의 예술가들이 무척 사랑하는 곳이죠. 가서 죽치고 앉아 그림 그리는 화가가 많아요. 바람과 햇빛이 특별하다나요?

 

'트레고쓰난Tregothnan'이라 불리는, 콘월 지역 어느 귀족의 영지에서 놀랍게도 차를 재배하고 있습니다[빨간 색 A 지점]. 이 영지는 200년 전 영국에서 최초로 차나무가 속해 있는 동백나무속 관상수를 재배해 지금까지 2천여 종에 달하는 동백나무들을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유명합니다.

 

그러던 어느 날, '동백과 같은 계통에 속하니 차나무 재배도 가능하지 않을까?' 의문을 품고 2001년부터 심기 시작한 것이 결실을 맺어 2005년에 영국 땅에서는 최초로 완성품 차를 생산해내게 되었지요. 이를 <포트넘 & 메이슨>에서 판매했고 지금도 취급을 하고 있습니다. 재배량이 많지 않으니 값이 몹시 비싸 호기심 많고 돈 많은 차 애호가들이나 맛볼 수 있는 차이지만요. 50g에 75파운드. 꽥!

 

 

 

 

 

 

 

 


그런데, 얼마 전부터 영국의 한 수퍼마켓 체인이 이 차를 취급하기 시작했습니다. 이제는 수퍼마켓에 공급할 수 있을 정도로 차 재배량이 늘고 자리가 잡혔다는 거죠. 집에서 3분 거리에 이 수퍼마켓 지점 하나가 있습니다. 홍차 블로그 주인장인 단단이 그간 비싸서 엄두도 못 내던 이 영국 홍차, 말 그대로 '영국 홍차'를 동네 수퍼마켓 선반에서 발견하고 얼마나 신이 났겠습니까.

 

 

 

 

 

 

 



"Tea grown in England"
영국 국민 여러분, 영국에서 재배된 홍차이옵니다.
역사적인 홍차가 되겠사오니 날래날래 집어가옵소서.


뭐, 이런 뉘앙스라 보시면 됩니다. 이건 한국의 홍차 동무들도 필시 맛봐야 할 차라고 생각합니다. 포장도 지극히 영국스럽습니다. 그런데, 포장의 문구를 좀 잘 보셔야 할 것 같네요. 트레고쓰난 홍차 100%가 아니고 인도의 아쌈 홍차와 섞은 혼합blended 차이거든요. 트레고쓰난 홍차만 담으면 값이 아마 지금보다 몇 배는 더 비싸질 겁니다. 그렇게 되면 대중을 위한 수퍼마켓에서는 취급할 수가 없지요. 그래도 트레고쓰난 홍차를 최소 60% 가량은 넣는다고 합니다. 포트넘에서는 100% 트레고쓰난 홍차를 팔고 있으니 관심 있는 분은 포트넘 백화점엘 가보시면 되겠습니다.

 

 

 

 

 

 

 



제가 영국인들의 습관 중 좋아하는 것이 몇 가지 있는데요, 그 중 하나가 바로 '과대포장질'을 안 한다는 겁니다. 영국처럼 지구를 끔찍히 걱정하는 나라가 또 있을까 싶을 정도로 환경 문제에 예민한데, 이런 나라에서 과대포장은 어림도 없는 일이죠. 종이 상자에 담긴 영국 홍차 사보신 분은 무슨 말인지 잘 아실 거예요. 비닐도 안 씌운 종이 상자 안에 티백이 속 포장도 없이 그냥 들어있어요. 뜯자마자 밀폐용기로 얼른 옮겨놓아야 하지요. 다이제스티브나 커스타드 크림, 진저 비스킷 같은 티타임용 비스킷들 포장도 놀라울 정도로 가뿐합니다. 포장 크기 만큼 과자가 정말 정직하게 꽉 차 있지요. 그래도 이 홍차는 영국인들 기준에서는 나름 신경 써서 포장한 축에 듭니다. 티백을 하나씩 종이에 한 번 더 쌌으니까요. 10개들이 포장을 무려 4파운드 주고 샀습니다. 아직도 좀 비싸긴 하죠. 찻잎도 적게 들었어요. 티백당 겨우 2g이 들었습니다. 영국인들이 수퍼마켓에서 일반적으로 사 마시는 홍차는 티백당 3p, 우리돈으로 약 60원, 이 트레고쓰난 홍차는 40p, 우리돈으로 약 800원 정도 하니 '영국 홍차'가 얼마나 비싼지 감이 오실 겁니다.

 

 

 

 

 

 

 

 


티백 손잡이가 영국스럽죠? 한국의 홍차 동무들 중에는 이 티백 손잡이를 애지중지하며 모으는 분들이 있더라고요. 한국에서 홍차가 얼마나 귀하고 비싸면 이걸 다 모을까, 신기하기도 하고 재밌기도 해서 한참을 들여다봤습니다. 영국에서 '해외 토픽'으로 소개될지 모르니 계속 잘 모아보십시오. 여기 사람들은 주로 찻잔이나 티포트, 홍차 깡통 등을 모읍니다. 손잡이 달린 티백 보기가 힘들거든요. 티백 손잡이, 일명 '티백 꽁다리' 모으시는 분들은 영국 국기가 떡하니 박혀 있는 이 트레고쓰난 것도 포함시키면 좋을 것 같습니다.

 

 

 

 

 

 

 



기념비적인 홍차이다보니 소개서가 다 들어있습니다. 자기네 영지로 관광 오라는 홍보도 함께 하고 있고요. 이곳은 정원이 아름답기로 유명한 곳이거든요. 관심 있는 분은 ☞ 누리집을 방문해보세요. 홍차뿐 아니라 영지에서 생산한 향초차나 꿀, 잼, 꽃 등도 판매하고 있으니 콘월 쪽 여행하시는 분은 이곳도 한번 들르시면 좋겠습니다.

 

 

 

 

 

 

 



"우리Boscawen Family는 1335년부터 이곳에 터 잡고 이어 내려온 가문입니다."

 

이곳은 영지를 원예 쪽으로 특화해 성공한 사례로 꼽히곤 합니다. 귀족은 죄 놀고먹는 사람인 줄 알았다가 영국에 와서야 현대의 귀족들이 얼마나 힘겹게 살고 있는지 알게 됐어요. 선대에 이루어 놓은 것, 번창시키기는커녕 현상 유지하고 보수하느라 허리가 휩니다. 이곳은 그래도 부지런하고 영민한 후손이 잘 유지를 해나가는 듯 보입니다. 속사정은 알 수 없지만요. <다운튼 애비> 생각이 납니다. 자, 이제 차를 우려보겠습니다.

 

 

 

 

 

 

 

 


홍차 블로그 주인장이니 우아하게 홍차생활 할 것 같죠? 으흐흐
하루 서너 번이나 마셔대는 차를 어떻게 매번 다구 제대로 갖춰 우릴 수 있겠습니까. 세 끼 밥 설거지도 지겨워 죽겠는걸요. 머그에 바로 우려서 마시는 일이 빈번하죠. 두툼한 유리라 예열 잘 시키면 얇고 어설픈 찻주전자보다 이게 나을 수도 있어요. 빈 공간이 많은 게 좀 흠이지만요. 차 우리는 용기에는 빈 공간이 없을수록 좋거든요. 중국인들이 하듯 둥근 형태의 작은 찻주전자에 물을 꽉 채워 우리는 게 최상의 방법입니다.

 

 

 

 

 

 

 

 


차 맛은 기대 이상입니다. 향이 그윽해 우유는 안 타도 될 것 같아요. 제가 우유 없이 차 맛만 느껴보려고 물 양을 많이 잡아보았는데요, 고소한 아쌈과 향긋한 다질링이 동시에 느껴집니다. 블렌딩을 잘했네요. 100% 트레고쓰난 홍차를 한 번쯤 마셔보고 싶은 욕망이 생겼습니다. 아쌈과 혼합했다고 하니 다질링 느낌은 아마도 트레고쓰난 홍차에서 왔을 거라 생각했는데, 자료를 찾아보니 과연 이곳의 차 재배 환경이 다질링 지역과 매우 유사하다고 하네요. 다질링 좋아하는 다쓰 부처는 신났습니다. 일본과 중국에서는 이미 이 차를 알고 애호가들 사이에서 수입해다 즐기고 있다고 합니다. 놀랍지 않나요? 일본과 중국은 자기들이 이름난 차 생산국이잖아요? '영국 홍차'의 가치가 이렇게나 큽니다. 한국에도 조만간 홍차인들 사이에 회자될 거라 확신합니다. 영국에 계신 분들은 트레고쓰난 누리집이나 아마존, <웨이트로즈>, <포트넘 & 메이슨> 등에서, 한국이나 기타 해외에 거주하고 계신 분들은 ☞ 영국 아마존에서 구입하실 수 있습니다. 이 차 말고도 종류가 다양하니 들어가서 한번 둘러보세요.

 

오늘 올린 사진들이 어째 회색조로 다들 칙칙하죠? 요즘 영국 날씨가 그렇거든요. 영국은 겨울이 우기입니다. 한국과 달리 겨울에 홍수가 납니다. 어제까지 영국 남부에는 태풍이 세 개나 지나가 난리도 그런 난리가 없었지요. 몇 백년 된 거목이 가정집 마당을 덮치며 쓰러져 뉴스 보면서 가슴이 저렸는데, 화를 가까스로 면한 그 집 아저씨가 인터뷰에서 하는 말이 압권.

"허허허, 평생 쓸 벽난로 장작이 제 발로 우리 집 마당에 와주었네."


위기일수록 더 침착해지고 재밌어지는 신기한 사람들 같으니. 저는 이게 다 뜨거운 홍차 탓이라 생각하고 있습니다. 저희 집은 무사한데 태풍 때문에 아끼던 빨간 우산의 살이 홀라당 다 꺾어졌어요. 겨울엔 집에 틀어박혀 케이크 굽고 밀크티나 홀짝거리는 게 상책입니다.

 

 

 

 

 

 

 

 

 

 

 

 

 

 

 

 

 

 

 

 

 

 

 

 꽃다발, 허브 부케와 심지어 차나무 묘목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