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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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즈 5 ◆ 프랑스 이푸아스 Epoisses de Bourgog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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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치즈

2014. 3. 17.

 

 

 

 

 

영국에서는 치즈를 보통 일곱 종류로 분류를 합니다. 나라마다 다르다기보다는, 사람마다 다르다고 해야 맞을 것 같습니다. 국가별로도 딱 부러지게 정한 분류법이 없거든요. 영국에서는

 

① Fresh 신선 치즈
② Aged Fresh 숙성 신선 치즈
③ Soft White 흰곰팡이 연성 치즈
④ Semi-Soft 반연성 치즈, 혹은, 껍질을 닦은 반연성 치즈
⑤ Hard 경성 치즈
⑥ Blue 푸른곰팡이 치즈
⑦ Flavour-Added 맛치즈

 

로 나누는 사람들이 있는데, 저는 이 분류법이 가장 소비자 친화적이라는 생각을 합니다. 치즈의 외형과 질감을 보고 나누는 방법이거든요. 다른 분류법들은 치즈 제법에 의한 것들이 많아 일반 소비자가 이해하기 어려운 기술적인 용어들을 많이 포함합니다.

 

냄새가 가장 고약한 것부터 순한 것으로 번호를 매겨 내려가자면,


① Semi-Soft

② Blue

③ Soft White

④ Hard

⑤ Aged Fresh

⑥ Flavour-Added

⑦ Fresh


이건 순전히 제 주관에 의한 겁니다. ③번과 ④번은 순서가 서로 바뀔 수도 있겠습니다. 사람마다 순서가 다를 수 있긴 해도 '껍질을 닦은washed rind 연성 치즈'나 반연성 치즈의 향이 가장 '숭악'하다는 데는 이견이 별로 없을 거라 봅니다.

 

오늘 소개해 드릴 치즈가 바로 이 '껍질을 닦아 낸 연성 치즈'에 속합니다. 이푸아스를 반연성 치즈로 분류하는 전문가도 있습니다. 부르고뉴 지방의 시토 수도승들이 만들던 치즈입니다. 껍질을 닦은 (반)연성 치즈는 처음 소개하는 것 같네요. 숙성 기간 중 치즈의 표면을 소금물이나 술 혼합물로 반복해서 닦은 치즈들을 '껍질을 닦은 연성 혹은 반연성 치즈'라 하는데, 이때 쓰이는 술은 나라마다 다릅니다. 대개는 생산지의 술을 쓰는데, 프랑스에서는 브랜디를 많이 쓰고 영국에서는 배로 만든 술인 페리perry를 많이 씁니다. 소금물이나 술로 닦게 되면 표면에서 강렬한 냄새가 풍기게 되는데, 이런 치즈들로 유명한 것에는 이 이푸아스 외에 뽕 리베크Pont l'Eveque, 피에 덩글루와Pie d'Angloys, 이태리의 탈렛지오Taleggio, 영국의 스팅킹 비숍Stinking Bishop 등이 있습니다.

 

영국에도 껍질을 닦아낸 (반)연성 치즈 중 유명한 것들이 몇 개 있는데 생산량이 워낙 적어 구하기가 힘듭니다. 프랑스 치즈들은 생산 규정이 엄격한 AOC 치즈라 할지라도 생산 규모가 다들 어마어마하기 때문에 영국에서도 구하기가 쉬운 반면, 영국 치즈들은 '깡촌' 소규모 농가에서 소량 만들기 때문에 오히려 구하기가 힘듭니다. 고급 레스토랑들이 주문하거나 미식가들만 몰래 찾아 먹죠. 껍질을 닦은 (반)연성 영국 치즈들은 현재 우리 동네 수퍼마켓에선 취급하지 않고 있어서 치즈 전문점에 가야만 구할 수 있는데, 아, 우리 동네가 또 촌동네 아니겠습니까. 대학생 우글거리는 대학가 동네에 치즈 전문점이 있을 리 만무하죠. 런던 갈 일 있을 때나 알아봐야죠.

 

 

 

 

 

 

 



동네 수퍼마켓에서 사 왔습니다. 이건 좀 비쌌습니다. 250g짜리를 4.50파운드, 우리돈으로 무려 8천원이나 주었습니다. 영국인들 체감 물가로는 한 4천5백원 정도. 여기서는 치즈가 이 정도면 비싼 축에 듭니다. 한국에서는 이푸아스를 3만원 넘게 줘야 살 수 있죠? 작은 치즈 한 덩이가 3만원 넘는다니 '억' 소리가 나긴 하지만, 한국 수입업자들이 꼭 폭리를 취하는 것만은 아닐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영국은 프랑스와 이웃하고 있지만 한국은 멀잖아요. 냉장으로 실어 날라야 하니 배송비가 얼마나 많이 들겠습니까. 한국에서 이런 미식가용 치즈는 찾는 이도 많지 않을 테니 재고 부담도 있고 구매량이 적으니 단가도 오를 테고요. 하여간 영국에서 저렴하게 사 먹을 수 있을 때 이것저것 먹어 두는 것이 상책이겠습니다.

 

치즈 포장에 2013년 수퍼마켓 자사 상품 대회에서 은상을 수상했다고 돼 있지요. 이곳에서는 수퍼마켓들이 이름난 세계 각지의 유명 치즈들을 본고장에서 납품 받아 자기네 수퍼마켓 이름을 붙여 저렴하게 파는 관행이 있습니다. 수퍼마켓 자사상품들 중 맛과 품질에 자신 있는 것들은 대회에 출품하기도 하는데, 이 치즈는 그런 대회에서 은메달을 수상했습니다. 질 좋은 치즈들을 저렴한 값에 즐기는 셈이지요. 괜찮은 제도예요. 우리나라로 치면 프랑스 AOC나 유럽연합 PDO[AOP] 마크를 획득한 프랑스 정통 치즈들을 이마트나 롯데마트 같은 대형 마트들이 수입해 자사 이름 붙여 파는 것과 같다고 이해하시면 되겠네요. 제대로 된 제품인 줄은 어떻게 아느냐? 포장에 다 써 있어요. 생산지와 생산자, AOC나 PDO 마크, 법으로 정해진 정통 생산 공정이 포장에 간략하게 서술돼 있기 마련입니다. 치즈 표면을 마르 드 부르고뉴Marc de Bourgogne 브랜디로 닦았다는 문구가 보이죠.

 

서론이 길었습니다. 맛과 향이 하도 고약한 치즈라길래 궁금해서 샀으니 얼마나 고약한지 뚜껑 열어 한번 알아보도록 하죠.

 

 

 

 

 

 

 

 


훗.
코쟁이들아, 니들이 한국의 김치와 청국장을 모르는 게로구나.
이 정도 냄새를 갖고 그 호들갑이라니.


뚜껑을 열어 비닐을 제거하니 처음에는 잘 익은 김치 냄새가 훅 올라옵니다. 치즈 표면에 코를 가까이 대니 그 다음으로는 짙은 청국장 냄새가 올라옵니다. 아아, 그리운 고국의 발 고린내 음식들.


미국에 장-조지Jean-George라는 미슐랑 스타 셰프 있잖아요? 한국계 마르자Marja 씨와 결혼해 <김치 크로니클> 한식 소개 프로그램에 나왔던 양반이요. 그 양반이 마르자 씨 냉장고 열어 봤다가 김치 냄새 처음 맡고선 냉장고 안에서 웬 시체가 썩고 있는 줄 알았다잖아요. 김치 냄새가 코쟁이들한테는 그렇게 강렬한 겁니다. 좌우간 이 치즈는 냄새 측면에서는 우리 한국인이 그리 걱정하지 않아도 될 만한 수준이니 안심하고 드셔도 될 것 같습니다. 대개 4주에서 6주를 숙성시킨다고 합니다. 포장에 숙성 기간이 표시돼 있질 않아 정확한 정보를 알 수가 없네요.

 

 

 

 

 

 

 



치즈 표면이 심상치 않아 보입니다. 주름이 많죠. 숙성 기간 중 술 혼합물로 표면을 자주 문질러 줄수록 주황색이 더욱 짙어지고 표면은 촉촉하면서 끈적해집니다. 숙성이 될수록 껍질은 두꺼워지면서 주름이 깊어지는 반면 속은 많이 흐르면서 부드러워집니다.

 

 

 

 

 

 

 



나무 상자에서 꺼내 보았습니다. 대개는 가문비나무spruce를 씁니다. 꺼내서 치즈보드에 올려놓는데, 표면이 어찌나 끈적거리던지 만질 때마다 매번 손을 씻어야 했습니다. 일반 치즈 나이프로 썰었더니 예상 대로 치즈가 나이프에 들러붙고 속살이 무너져 난장판이 되었습니다. 날에 구멍이 뽕뽕 뚫린 치즈칼을 쓰거나 얇은 날을 가진 칼을 써야 자를 때 편하겠습니다. 아무래도 하나 장만해야겠어요.

 

이푸아스는 지름 10cm짜리 작은 것과 18cm짜리 중간 크기, 이렇게 두 가지로 만들어 나무 상자에 넣어 판매를 합니다. 보기에 따라 괴물 같기도 하고 주름 잡힌 예쁜 천 같기도 하지요. 애벌레 우글대는 것 같다고요?

 

 

 

 

 

 

 



푸른곰팡이 치즈에서 나는 특유의 메주 냄새, 특히 쌍 따귀르Saint Agur의 냄새를 약 세 배 정도 농축시킨 거라 생각하시면 되겠습니다. 쇠고기 육수 냄새와 흡사한 마마이트Marmite 향과 발효 빵의 누룩yeast 향도 납니다. 그 때문인지 프랑스의 옛 수도승들이 고기를 먹을 수 없는 날에는 고기 대신 이 이푸아스를 먹었다는 기록도 전해져 옵니다. 껍질만 따로 씹으면 부드러운 양념 불고기를 씹는 듯한 느낌도 납니다.

 


생산자가 추천하는 맛있게 먹는 법

 

 견과류와 건포도가 든 빵에 발라 (저는 깔끔한 흰 사워도우 빵이 더 나았습니다.)
꺄몽베흐처럼 오븐에 구워 겉껍질 단단하고 속은 촉촉한 빵에 곁들여서
삶은 감자 썬 것 위에 올려 오븐에 구워서
빵 위에 올려 그릴로 살짝 녹인 다음 프렌치 어니언 수프 위에 띄워서
Burgundy Pinot Noir
Chardonnay
Riesling
Marc de Bourgogne

 

김치나 청국장이 맛있긴 하지만 맨입에 그냥 먹지 않는 것처럼, 이푸아스도 그냥 먹기에는 향이 강해 중화시켜 줄 무언가가 필요합니다. 맛있는 사워도우 빵과 함께 먹어 보니 기가 막힙니다. 흐르는 성질이 있어 버터처럼 잘 발립니다. 맨입에 먹기 힘든 분들은 빵에 얹거나 발라 드시면 술술 잘 넘어갈 겁니다. 크래커에는 안 어울렸고 빵이 훨씬 나았습니다. 향에 비해 맛 자체는 순한 편입니다. 꺄몽베흐처럼 오븐에 구우면 단맛이 증폭되어 색다른 맛이 난다고들 하는데, 저는 열을 가하지 않고 그냥 먹는 편이 더 맛있었습니다. 위의 추천 대로 삶은 감자 위에 얹어 그릴에 구워 먹어 봤더니 잘 녹아 벨벳처럼 부드럽기는 하나 묽은 소스처럼 힘이 너무 없어지는데다 숨어 있던 북엇국 냄새가 증폭돼 좀 역했습니다.

 



2014년 6월 30일 추기 -

 

 


이푸아스를 이번에는 유명한 <베르또> 사Fromagerie Berthaut의 제품으로 사 먹어 보았습니다. 잊혀져 있던 이푸아스를 1956년에 되살려낸 장본인이라 하니 의미가 남다릅니다. 아래는 그 사진들입니다.

 

 

 

 

 

 

 

 

 

 

 

 



앞서 소개한 것과 기본 제조법은 같아 보입니다. 베르또 사 이푸아스는 대개 5주를 숙성시킨다고 합니다. 이것도 저온살균유로 만들고 숙성 기간 중 물에 마르 드 부르고뉴 브랜디를 섞은 것으로 치즈 표면을 아홉 번 정도 닦아 줍니다. 신기한 것이, 제가 치즈 문헌에서 읽은 바로는 숙성이 더 진행될수록 이푸아스의 표면이 테라코타 색에 가깝게 짙어지고 맛과 향도 더 고약해진다고 하는데, 맛을 보니 오히려 정반대인걸요. 지난 번에 맛본 이푸아스보다 이 베르또 제품이 색이 훨씬 짙은데도 맛과 향은 오히려 더 순합니다. 생긴 것과는 달리 순둥이 치즈네요. 같은 이름의 치즈라는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맛과 강도에 차이가 많이 납니다. 생산자에 따라 치즈 맛이 조금씩 차이 날 수는 있다고 생각하지만 이 둘은 달라도 한참 다른걸요. 마치 두 개가 다른 종류의 치즈 같아요.

 

그러니 어떤 치즈를 처음 먹고 맛이 없다고 느꼈을 때는 등 돌리고 두 번 다시 거들떠보지 않을 게 아니라 여러 생산자의 제품을 두루 먹어 보고 최종 판단을 내리는 게 현명하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저는 두 제품 다 맛있었습니다. 남한테 권하기에는 <베르또> 사의 이푸아스가 좀 더 낫겠습니다. 순하면서 향긋한 꿀맛이 나고 식감도 매우 관능적이거든요. 쫄깃하게 씹히면서도 실크처럼 부드럽게 넘어갑니다.


맛을 묘사하자면, 이건 마마이트 같은 쇠고기 맛 대신 북엇국 맛이 좀 더 나고, 막걸리의 누룩 맛, 청국장 맛, 꿀맛 등이 복합적으로 어우러져 납니다. 맛과 향이 생각보다 순해서 앉은자리에서 빵 없이 맨입에 반이나 먹어제꼈습니다. 다쓰베이더는 한여름 열무김치 국수 먹고 난 듯한 기분 좋은 청량감이 느껴진다고 표현했습니다.


제가 먹어 본 껍질을 닦은 연성 치즈나 반연성 치즈들 - 이푸아스, 피에 덩글루와, 뽕 리베크, 탈렛지오, 쌍 베흐니에, 폰티나 중에서는 폰티나가 가장 순하고, 그 다음은 피에 덩글루와, 그 다음은 베르또 사의 이푸아스가 순한 것 같습니다. 껍질을 닦은 연성 치즈에 입문하고 싶은 분들은 구매 시 참고하시면 좋겠습니다.



☞ 이푸아스의 자매품, 아피델리스 오 샤블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