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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즈 8 ◆ 네덜란드 리어다머, 레르담 치즈 Leerdamm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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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치즈

2014. 4. 9.

 

 

 

 

 

원조가 있습니다. 그리고, 아류가 있습니다. 아류가 살아남으려면 원조의 역사성과 카리스마를 뛰어넘는 어떤 매력이 있어야 합니다. 매력은 이런 것들이 될 수 있습니다.

 

① 저렴한 값
② 이용 편리성 혹은 접근성
③ 원조보다 더 어필할 수 있는 어떤 요소


아류가 이 세 가지 조건을 다 갖췄다면 원조는 존폐 위기에 처할 수도 있겠지요. 오늘 소개할 이 리어다머 치즈가 위의 세 조건을 다 갖췄습니다. 영국에서는 '리어다머'라 발음하는데, 이게 나라마다 발음이 조금씩 다른 것 같더라고요. 체코 사람들이 '레르다메르'라고 발음하는 걸 들은 적 있습니다.


1977년, 네덜란드 사람 둘이서 자국의 하우다gouda와 스위스 에멘탈emmentaler을 결합시킨 새 치즈를 세상에 선보였습니다. 치즈를 처음 생산한 동네 이름을 따서 'Schoonrewoerd'라 이름 붙였다가 발음이 어려워 외국 시장 진입이 어려울 것 같다는 판단에 그 근처에 있는 레르담Leerdam의 이름을 대신 붙였습니다. 저온살균한 소젖을 쓰고 식물성 효소로 굳힙니다. 3개월에서 12개월간 숙성시키는 적당히 단단하고 탄력 있는 반경성치즈입니다. 아류이면서도 40년 가까이 꿋꿋이 살아남은 실력 있는 치즈입니다.

 

빨간 왁스 입힌 동글납작한 작은 치즈 <베이비벨Babybel> 아시죠? 리어다머와 베이비벨이 같은 회사의 제품입니다. 원료가 같고 제조법이 유사하니 맛에도 비슷한 기운이 좀 있으나 제 입맛에는 숙성 치즈인 리어다머가 치즈다우면서 깊은 맛이 나 훨씬 맛있습니다. 베이비벨 먹고는 맛있다고 느낀 적이 한 번도 없거든요.

 

 

 

 

 

 

 

 

 

스위스의 정통 에멘탈 생산자들이 요즘 독일산, 프랑스산 에멘탈과 이런 아류들에 밀려 많이 힘들어한다는 사연을 영국 신문에서도 접하곤 합니다. 수퍼마켓 치즈 선반 앞에 서면 스위스 에멘탈 생산자들의 고뇌와 번민을 소비자인 저도 단번에 느낄 수 있습니다. 이런 리어다머 같은 치즈는 스위스 정통 에멘탈의 반값도 안하거든요. 그렇다고 맛이 떨어지느냐? 휴... 정말 한숨 나오게 맛있습니다. 편리성에 대해 평가하자면, 으음... 아래 사진을 한번 보시죠.

 

 

 

 

 

 

 



이렇게 수선화 색의 새뜻한 포장을 하고선 소비자의 다양한 필요에 맞춰 다양한 형태를 하고 시장에 나와 있으니 정통 에멘탈 생산자들 땀날 만하죠. 치즈보드용 블록, 샌드위치용 얇은 슬라이스, 토스토용 두툼한 슬라이스, 날씬이와 만성질환자를 위한 저지방 버전... 편리성으로 치자면 이보다 더 편리할 수가 없죠. 정통 에멘탈 살 때처럼 치즈 카운터 가서 점원에게 일일이 등급이나 숙성 정도 등 치즈에 관한 정보를 이것저것 물어보면서 잘라 달라고 부탁할 필요 없이 치즈 선반에서 그냥 눈에 확 띄는 노란 포장의 이 리어다머를 용도에 맞춰 골라 집기만 하면 되니 얼마나 편합니까. TV 광고는 또 얼마나 해 대는데요. 광고도 한번 보시죠.

 

 

 

 

 

 

 

 

 

광고 재미있죠? TV에서 이것말고도 그간 여러 버전의 광고를 봤었는데, 하나같이 재미있게 잘 만들었습니다. 치즈 덩이가 에멘탈보다는 작네요. 다루기도 좀 더 편하고 운반도 용이하겠습니다.

 

 

 

 

 

 

 



접사해 봅니다. 아래 부분의 구멍들은 마치 눈 위에 곰발바닥 찍어 놓은 것 같네요. 에멘탈과 비슷해 보이죠?


맛도 에멘탈과 비슷한데 현대인의 입맛에는 정통 에멘탈보다 이 리어다머가 좀 더 잘 맞을지 모르겠습니다. 에멘탈보다 소금이 더 들어 짭짤하면서 풍미가 진한 것처럼 느껴지거든요. 1회 제공량 30g에 에멘탈은 소금이 0.14g, 리어다머는 0.5g이 들었습니다. 리어다머가 약 3.5배 더 짜죠. 소금이 더 든 탓인지 쓴맛도 에멘탈보다는 좀 적게 나는 듯합니다. 쓴맛은 적게 나면서 더 짭짤하고 고소하니 소비자가 좋아할 만하죠. 질감도 좀 더 부드러우면서 쫄깃거립니다.


생유를 쓰는 정통 에멘탈과 달리 리어다머는 저온살균유를 쓰니 시장도 훨씬 크겠지요. 당장 우리 한국만 해도 스위스 정통 에멘탈은 생유 치즈라 수입을 할 수 없는 반면 모방품인 이 리어다머는 수입이 가능하니, 정통의 비애가 바로 여기에 있는 겁니다.

 

 

 

 

 

 

 



다쓰베이더가 드디어 구멍 뚫린 치즈 나이프를 사 주었습니다. 쩍 달라붙는 이런 고무 질감의 치즈들과 브리 같은 수분 많은 치즈들은 여느 치즈 나이프로 자르면 뭉개지고 찌그러지고 난장판이 됩니다. 치즈 자를 때마다 하도 불평을 해 대니 다쓰베이더가 보다 못 해 수퍼마켓에서 하나 사다 주었어요. 치즈들을 얼마나 먹어 대면 이런 구멍 뚫린 치즈 나이프를 수퍼마켓에서 다 파는 걸까요? 구멍 송송, 치즈와 칼이 서로 닮았습니다.

 

 

 

 

 

 

 



들러붙지 않고 깔끔하게 정말 잘 썰립니다. 비싸지도 않은 칼, 진작 좀 사서 쓸걸. 그간 모양 망친 치즈들을 생각하면.

 

 

 

 

 

 

 



리어다머 광고 사진입니다. 예술이죠? 이 에멘탈 계열 치즈들이 이렇게 예쁘게 잘 말려 샌드위치 멋낼 때 좋아요. 그냥 먹어도 맛있지만 토스트에 올려 살짝 녹여 먹으면 더 끝내줍니다. 스위스 에멘탈 큰일났습니다. 제조법은 전통 방식대로 엄격하게 고수하되 소비자를 생각해 포장만이라도 이 리어다머처럼 좀 편리하게 바꿔 줬으면 좋겠어요. 껍질의 정통 표시 문구들을 보이기 위해 판형으로 길게 잘라서 파니 샌드위치용으로 얇게 저미기에도, 토스트용으로 썰기에도, 또, 치즈 보드에 올리기에도 크기가 어중간해서 불편합니다. 리어다머 토스트 먹으면서 재정 위기에 처한 스위스 정통 에멘탈 생산자들이 자꾸 생각 나 뒷골이 당겼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