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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치즈 10 ◆ 코니쉬 블루 Cornish Blu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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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치즈

2014. 4. 12.

 

 

 

잉글랜드 콘월 Cornwall, England

 

 

 

 

 

 

 

 

 

 

영국 수퍼마켓들이 우윳값을 자꾸만 후려쳐 영국 우유 농가들이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습니다. 사회적으로도 큰 문제가 되고 있죠. <웨이트로즈Waitrose> 같은 윤리적인 수퍼마켓은 우윳값을 잘 쳐주는 편인데 다른 수퍼마켓들은 그놈의 가격 경쟁을 하느라 부담을 전부 우유 농가들에게 떠넘기고 있어요. 생필품 중의 생필품인 우유가 싸야 소비자가 그 수퍼마켓을 믿고 찾는다는 겁니다. 아니? 그 비용을 왜 우유 농가에게 떠넘기는 걸까요? 영국 와서 질 좋은 우유가 한국보다 싸다고 신나 했었는데, 우윳값이 마냥 싼 게 결코 좋은 것만은 아니라는 걸 점차 깨닫는 중입니다. 버티지 못해 문 닫는 데어리dairy가 속출하고 있어요. 커피 빈이나 코코 빈, 홍차 같은 제3세계 농작물에는 공정무역fair trade이다 뭐다 하며 제값 치러주고 윤리적인 척 하면서, 정작 자국의 데어리 농가들은 이렇게 홀대를 하고 있었다는 사실이 우습지 않나요?

 

그래서 영국의 우유 농가들은 요즘 생존 전략으로 우유 납품보다는 아이스크림이나 치즈 같은 2차 유가공품을 만들어 파는 일에 힘을 쏟고 있습니다. 수익 면에서 훨씬 낫거든요. 오늘 소개해드릴 코니쉬 블루도 이런 환경에서 탄생한 치즈입니다. 수퍼마켓에 우유 납품만 하고 살다간 굶어 죽겠구나 위기를 느낀 한 농부가 고생 끝에 2001년 선보인 신생 블루 치즈입니다. 2차 유가공품 판매로 돌파구를 마련해보고자 하는 시도들이 반드시 다 성공하는 것은 아닙니다. 이 코니쉬 블루는 그런 면에서 운이 아주 좋았다고 볼 수 있어요. 운이라기보다는, 노력과 집념과 실력이 두루 뒷받침된 드문 예라고 할 수 있죠.

 

코니쉬 블루 탄생 비화를 들으니 눈물겹습니다. 어떤 치즈를 만들면 좋을까 하고 시장 조사만 2년을 했다는데, 시장을 두루 살펴보니 콘월 지역을 대표할 수 있는 블루 치즈가 없더랍니다. 이에 '코니쉬 블루'라 이름 붙인 자기 고장 블루 치즈를 생산하기로 결심을 했다죠. 뛰어난 풍미, 역사성, 지역 특수성 등을 모두 갖춘 스틸튼과 경쟁하는 것은 무모한 짓이라 여겨 스틸튼보다는 순하면서 질감이 부드러운 블루 치즈를 생산하기로 마음을 정하고 연구에 들어갔답니다. 개발하는 데 1년이 넘게 걸리고, 최종 제품을 내기까지 버린 치즈만도 40,000파운드, 우리돈으로 7천만원이 훨씬 넘었다고 합니다. 인간극장 사연은 이쯤하고, 치즈란 어쨌거나 맛이 가장 중요하니 평가를 해보겠습니다.

 

 

 

 

 

 

 

 


12주 숙성 시킨 소젖 반경성 치즈입니다. 색상이 차분하고 어쩐지 가을 느낌이 나죠? 웨일즈의 대표 치즈인 캐필리Caerphilly 인상과 유사합니다. 푸른곰팡이가 스틸튼처럼 가운데를 중심으로 방사형으로 고르게 분포돼 있지가 않고 곰팡이 수가 매우 적은데다 불규칙하게 박혀 있네요. 그 때문에 블루 치즈 특유의 쏘는 매운 맛이 덜 나고 순합니다.

 

 

 

 

 

 

 



차분한 색상과 거친 껍질 때문에 치즈가 마치 골동품처럼 보입니다. 스틸튼과 마찬가지로 껍질은 먹지 않는 치즈입니다.

 

 

 

 

 

 

 



버섯 크림 수프의 우마미, 버터스코치의 단맛, 놀랍게도 한국 참크래커의 고소한 맛이 납니다. 각각의 풍미가 잘 어우러져 가히 환상의 맛을 냅니다. 순한 블루 치즈라서 맛있는 게 아니라 다채로운 맛들이 최적의 상태로 조화를 이루고 있어 맛이 있습니다. 마치 원색의 스틸튼을 카키색으로 '톤 다운'시킨 뒤 캐필리와 섞어 놓은 듯한 느낌이랄까요. 고소하면서 단맛이 많이 나는 우아한 블루 치즈라서 블루 치즈 초심자에게 마음 놓고 권할 수 있겠습니다. 맛이 조화롭고 기품이 있어 블루 치즈 애호가에게도 권하고 싶습니다.


곁들임 음식은 없어도 되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 자체로 완성도가 있어 작게 깍둑 썰어 맨입에 그냥 한두 개 정도 먹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제맛을 즐길 수 있습니다. 포도와 함께 먹어봤는데 맛이 안 어울려요. 블루 치즈도 푸른곰팡이 특유의 향긋한 과일 향을 갖고 있는데, 이게 진짜 과일의 향과 만나면 충돌을 일으켜 치즈와 과일 양쪽의 향을 모두 무효로 만듭니다. 정 무언가를 곁들이고 싶다면 치즈용 담백한 크래커가 그나마 어울릴 듯합니다. 맛이 우아한 치즈라 요리에 쓰기에는 좀 아까워요. 그냥 드세요. 아주 맛있는 치즈입니다.

 

질감이 과연 스틸튼보다는 부드러워 혀 위에서 크림처럼 기분 좋게 녹아 내립니다. 가끔 소금 결정이 바삭하게 씹히는 것도 재밌고요. 각종 치즈 대회에서 수상한 경력이 있다고 치즈 장인이 누리집에 자랑을 해놓았길래 그런가 보다 했는데 충분히 이유가 있어 보이네요. 우리 집 냉장고에 블루 치즈는 당분간 스틸튼과 이 코니쉬 블루가 놓이게 될 것 같습니다. 우윳값 후려치는 악덕 수퍼마켓들 때문에 영국인들이 자국 치즈 목록에 불후의 명작인 이 코니쉬 블루를 더하게 되었으니, 이거 웃어야 하는 걸까요, 울어야 하는 걸까요?

 


생산자 누리집을 걸어드립니다.
☞ Cornish Cheese Company

 

비슷한 맛의 블루 치즈가 또 있습니다. 웨일즈산 블루 치즈입니다.
☞ 펄 라스

 

 

 

 

 

 

 

 

치즈 포트 속에 담긴 코니쉬 블루 큐브.

콘월 지역의 두 명물 코니쉬웨어Cornishware와 코니쉬 블루의 결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