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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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즈 18 ◆ 프랑스 발랑세, 발롱쎄 Valencay 염소젖 치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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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치즈

2014. 5. 22.

 

 

 

 앵드흐 Indre

 

 

 

 

 

 

 

 



프랑스 중부에서 생산되는 전통 치즈를 하나 소개할까 합니다. 위가 '툭' 잘린 피라미드 형상의 염소젖 치즈입니다. 왜 저 모양이 되었느냐? 나폴레옹이 나일강 전투Battle of the Nile에서 영국과 패권을 놓고 다투다가 넬슨에게 대패를 하게 됩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발롱쎄 성에 머물게 되었는데, 그곳에서 생산되는 피라미드 모양의 치즈를 대접 받고는 이집트에서 대패한 악몽이 떠올라 분통이 터졌다죠. 분을 못 참고 칼을 꺼내들어 에잇 싹둑! 치즈 윗면을 베어버렸다는 이야기. 원, 성질머리하고는. 치즈 장인이 애써 만든 것을.

 

이 이야기가 사실인지 아닌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치즈에 이런 재미난 이야기가붙으면 판매에 유리하죠. 그리하여 프랑스인들은 그냥 맛있게 먹는 치즈, 영국인들은 승전을 떠올리며 '즐거워하면서' 맛있게 먹는 치즈가 이 발롱쎄인 것입니다. 영국에도 발롱쎄와 비슷한 치즈가 있습니다. ☞ 팀스보로라고, 이것도 염소젖으로 만들고 모양도 색도 비슷합니다. 영국에 계신 분들은 발롱쎄 구하기 힘들면 팀스보로로 대체하셔도 됩니다. 대체 치즈로 삼기에는 팀스보로가 더 비싸다는 게 문제이긴 하지만요.


저는 이 치즈는 그냥 처음부터 위가 잘린 피라미드 모양이었을 거라고 생각을 합니다. 틀에 넣어 유장whey을 좀 더 내보내 굳혔다가 빼내어 숙성시키는 치즈인데, 만일 끝이 뾰족한 형태의 틀을 쓴다면 세우기도 힘들거니와 틀에서 뺄 때 깔끔하게 떨어지질 않고 끝부분이 박혀서 잘 안 빠지거나 부러져서 나오는 일이 빈번할 겁니다. 숙성실로 옮기거나 포장할 때, 혹은 유통 과정 중 뾰족한 끝이 손상되는 일도 잦았을 테고요. 운송을 위해 차곡차곡 쌓기도 힘들었겠지요. 그러니 설사 처음에는 피라미드 형태로 뾰족하게 만들었다 해도 몇 번 만들어 보다가 불편해서 결국은 위를 평평하게 깎은 형태로 전환했을 거라고 저는 확신을 합니다.

 

그런데 이 치즈의 결정적인 단점이 하나 있습니다. 치즈를 종이로 꽁꽁 싸 놓으니 포장을 끄를 때마다 치즈 겉이 종이에 죄 뜯기고 뭉개진다는 겁니다. 이 치즈도 풀면서 엉망진창이 돼 버려 도저히 사진을 찍을 수가 없었어요. 아우, 짜증 나. 크기도 작은 게 값은 또 얼마나 비싼데요. 치즈가 다 뭉개져 나왔으니 치즈 이야기를 제대로 하려면 이 비싼 걸 또 사야 하잖아요.

 

 

 

 

 

 

 



몇 달 뒤 떨이로 나온 것을 다시 사 보았습니다. 이것도 좀 불안해 보입니다. 치즈 포장지가 약간 젖어 보이는 것이 어째 또 잔뜩 달라붙어 뭉개질 것 같은 불길한 예감이 드네요.

 

 

 

 

 

 

 



아휴, 또 잔뜩 뜯겼네. 그래도 지난 번보다는 양호합니다. 발랑세 생산자들은 외국에 수출할 때는 종이로 싸는 것을 좀 고려해야 할 듯합니다. 치즈를 팔 때 왁스 종이에 싸서 주는 것과는 달라 처음부터 종이에 싸서 나온 것들은 이렇게 죽이 되기 쉬워요. 치즈보드에 폼 나게 올려 보려고 샀다가 낭패 보는 사람 많겠습니다.

 

 

 

 

 

 

 



살균하지 않은 생유 염소젖으로 만드는 '숙성 신선aged fresh' 치즈입니다. 다른 치즈들에 비하면 늦게 AOC로 지정되었는데[1998년 지정 / 2002년 개정], AOC로 지정된 치즈들은 생산 규격이 정해져 있어 이를 엄격히 고수해야 합니다. 발롱쎄의 자격 요건과 특징 중 몇 가지를 적자면 아래와 같습니다:

 

 저온살균하지 않은 생유 염소젖을 쓸 것 [미국과 한국에 수출 불가]
동물성 효소로 굳힐 것 [채식주의자 취식 불가]
응고 시간을 24시간에서 36시간 사이로 길게 잡을 것
응유를 틀에 담을 때는 국자를 써서 살살 담을 것
틀에 담긴 응유 윗면에 소금을 뿌리고 틀에서 빼낸 뒤 소금과 식용 재를 섞어 뿌릴 것
응고 효소를 넣은 시점부터 최소 11일이 지나서 출하할 것
밑면은 한 변의 길이가 6.5cm 정사각형이 되어야 하며 피라미드 형태여야 할 것
표면에 곰팡이가 보송보송 나 있어야 하며 색은 회색 바탕에 흰색과 청색이 얼룩덜룩 해야 할 것 (점차 녹색빛으로 변해감)
속살은 단단하면서 질감이 일정하며 도자기 흰색이 나야 함
맛에서 신선한 유산균과 호두의 고소한 맛, 건과일의 향긋한 느낌 등이 나야 함

 


이 치즈는 짧게는 10일, 길게는 5주까지도 숙성을 시킵니다. 위가 잘린 피라미드 모양의 틀에 응유를 넣어 24시간에서 36시간 굳힌 뒤 틀에서 빼내어 숯가루를 뿌려 줍니다. 그런 뒤 습도 80% 방에 넣어 표면에 곰팡이를 잔뜩 피웁니다. 그 때문에 치즈 겉이 저렇게 청회색이 되는 겁니다. 속은 아주 뽀얗죠.


첫 번째 샀던 것은 과숙을 했는지 흐물흐물 흘러내리면서 굉장히 복잡한 맛과 향이 났었습니다. 막걸리 혹은 술빵의 강한 누룩yeast 맛, 발냄새 심한 남정네의 땀에 젖은 양말 향(발롱쎄=발냄새), 희미한 청국장 맛, 요거트의 산미, 정체를 알 수 없는 쏘는 맛, 껍질 부분에서는 말린 대추 같은 향긋한 과일향이 났습니다.

 

두 번째 산 것은 과숙까지는 안 갔으나 많이 숙성한 상태였는데, 고트 치즈 특유의 머스크한 향과 맛, 연한 막걸리 맛, 향긋한 건과일 향이 나면서 겉은 쫀득하니 부드럽고 안은 보슬보슬 삶은 달걀 노른자 같은 고운 입자가 느껴졌습니다.

 

치즈도 나름 제철이 있습니다. 발랑세는 대략 3월부터 12월까지 살 수 있으나 봄에서 여름으로 넘어가는 시기에 만들어진 것이 가장 맛있다고 하니 이 글 보시는 분들은 지금부터 사 드시면 되겠습니다. 염소젖 치즈이면서 생유를 쓰는 데다 곰팡이까지 덮여 있으니 맛과 향이 강한 축에 듭니다. 고형분 중 지방 함량은 45% 정도로, 숙성 신선 치즈치고는 좀 높은 편입니다. '떼루아terroir'를 따져 보통은 치즈 생산지와 같은 곳에서 생산되는 술을 곁들인다고 하죠. 이 치즈도 같은 지역의 화이트나 레드 와인, 로제와 함께 즐기면 좋다고 합니다.

 

 

 

 

 

 

 

 

아니, 이렇게 종이로 싸면

나중에 종이가 젖어 치즈가 다 뜯긴다니까?

 

 

 

 

 

 

 

 

 옳지, 요람berceau에 넣은 건 좀 나아 보이네.

 

 

 

 

 

 

 


내 방에 편히 앉아서 루와흐 강 주변의 샤또들을
구경해 봅시다.

16분 30초께부터 음식과 치즈 이야기가 나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