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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덜한테 역사를 가르치는 영국 어른들의 쌈빡한 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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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이야기

2014. 6. 25.

 

 

 

 할아버지는 사탕 공장 근로자, 아버지는 치과 의사였던

어느 영국인이 쓴 단것의 역사에 관한 책.

 

 


제가 영국에 와서야 비로소 '역사'라는 과목에 흥미를 갖기 시작했습니다. 한국에서는 교과서만 갖고 역사 과목 참 지루하게 배웠더랬죠. 영국 와서 보니 웬걸요, 일단 '히스토리안'의 숫자가 한국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많은데다 역사를 배우는 통로가 참으로 다양합니다. 책과 토론을 통해 진지하게 배울 뿐만 아니라 TV 도큐멘터리나 (BBC 도큐멘터리 최고!) 각종 시청각 자료들을 통해 역사를 생생하게 각인시킬 수가 있지요. 깊이와 해학을 두루 담은 역사책들도 많고, 역사적 사건을 기리기 위한 박물관도 참 많고요. 역사 드라마나 영화는 또 왜 이리 많나요. 이런 것들은 물론 재미를 위해 각색되었을 확률이 높고 '깊이'가 없을 수도 있지만, 중요한 것은, 이를 접하는 이로 하여금 역사에 흥미를 붙이고 더 찾아서 공부하게 만든다는 긍정적인 효과가 있다는 겁니다.


영국인들은 역사 이야기를 정말정말정말정말 많이 합니다. 자랑할 일은 아니지만 제가 한국 역사보다 영국 역사를 더 많이 알아요. 여기서는 TV만 켰다 하면 역사 이야기를 해대기 때문입니다. 사회 정치적 측면에서만 역사를 다루는 게 아니라 우리가 쓰는 일상의 용품들을 통해 역사를 엿보기도 하고, 개인의 뿌리를 찾아 조상들의 삶의 궤적을 더듬어 보기도 하고, 음식에 관한 역사도 참 많이 다루죠. 통념과는 달리 영국인들은 음식에 대해 담론하는 것을 즐기며 음식의 기원과 전파에 대해 파고들어 연구하는 것 역시 매우 즐깁니다. 제가 영국 와서 들인 습관 중 하나가 바로 어떤 음식을 먹을 때마다 유래를 꼭 찾아보고 기록해 두는 일입니다. 이 블로그도 그렇게 해서 꾸려가고 있고요. 집에 영국음식에 관한 역사책이 많아요. 모두 채리티 숍에서 산 것들입니다. 영국인들의 아침 식사 변천사, 사탕의 역사, 홍차의 역사, 향신료와 무역 전쟁, 커리 이야기, 수프의 역사, 파이의 역사 등등...


또, 왕실의 역사와 전쟁사도 빼놓을 수 없지요. 역대 왕들 이야기와 전쟁 이야기도 TV에서 끊임없이 해줍니다. '가십' 즐기듯 대중들이 역대 군주들을 비교해 가면서 낄낄거리기도 하고요. 영국 역사뿐 아니라 고대 문물 이야기와 다른 나라 이야기도 많이 하고 고고학 이야기도 많이 합니다. 저녁 황금 시간대에 고고학 프로그램을 다 내보낼 정도로 고고학이 인기 있는 나라이지요. 고고학이 이토록 매력적인 학문이라는 것도 영국에 와서야 깨닫게 되었습니다.

 

 

 

 

 

 

 


 우리 집 부엌에 붙어 있는 영국 왕실 가계도.

영국에서는 역사를 서술할 때
"Victorian era", "Georgian period", "Tudor times" 등으로

지칭하기 때문에 연대를 알고 있어야 한다.

 


올해로 1차대전 발발 100주년이 되었습니다. TV에서 이에 관한 온갖 도큐멘터리와 프로그램들을 연초부터 계속해서 내보내는 중입니다. 그러다가 보게 된 재미 난 영상 하나를 소개해 드릴게요. BBC가 제작한 1차대전 발발 원인과 각국의 입장에 관해 정리한 짤막한 음악 영상입니다. 1차대전이 비극적이었던 이유 중 하나는 바로 각국 왕실들이 혼인 관계로 엮여 혈족끼리 서로 총부리를 겨누게 되었다는 거죠. 빅토리아 여왕의 딸들이 각 나라 왕실로 시집을 간 탓입니다. 당시 영국, 독일, 러시아의 군주가 모두 빅토리아 여왕의 손자들이었죠. BBC가 제작한 아래의 '깜찍한' 영상을 한번 보세요. 영국 공영방송 참 쿨할세, 한참을 웃었습니다. 어른들이 아이들에게 역사를 가르치기 위해 이토록 애쓰는구나 생각하니 놀랍기도 하고요. 자국 역사를 자국의 블랙 코미디 전통과 클럽 DJ 문화와 합쳐 유쾌하게 그리는 일이 다반사, 아래의 경우는 '랩 배틀rap battle' 형식으로 전개되고 있고요. 음악 좀 잘 아는 분들은 랩 배틀 배경 음악에 각국의 음악 전통들이 반영돼 있음을 알아차리실 수 있을 겁니다. 예를 들어, 러시아의 성부 수 많고 저음이 강화된 합창이라든가, 발랄라이카 소리라든가, 영국 군악대의 나팔 소리라든가. 참고로, 상대방에게 손등이 보이게 V 자를 그리는 건 영국에서 'fuck y**'에 해당하는 지독한 욕으로 통합니다. 중간중간 몇 번 나옵니다. 독일 카이저의 말투와 제스처가 어째 뒤로 갈수록 히틀러스러워집니다.

 

 



<1차대전 발발 당시 각국의 입장>

 

 

 

 

 

 

 

 

 

 

<크롬웰의 공포 정치와 왕정 복고로 즉위한 허랑방탕 찰스 2세 이야기> 꼬마들용 역사 프로그램의 일부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