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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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치즈 49 ◆ 레드 폭스 Red Fo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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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치즈

2015. 2. 22.

 

 

 

 레스터셔 Leicestershire, England

 

 

 

 

 

 

 

 

 

 

 


체다, 체셔, 랭카셔, 레드 레스터, 더블 글로스터 등 영국의 경성 치즈들을 전문으로 만드는 ☞ 벨튼 팜Belton Farm이 수년간 공들여 개발한 제품입니다. 전통 치즈인 레드 레스터의 변주라고 하는데, 12개월에서 18개월까지 장기 숙성시키기 때문에 풍미가 레드 레스터와는 많이 다릅니다. 제가 사 온 것은 18개월짜리 '빈티지'입니다. 레드 폭스는 선명한 주황색에, 마치 얼렸다 녹인 두부처럼 표면에 작은 구멍들이 점점이 패여 있어 한눈에 알아볼 수 있습니다. 벨튼 팜은 제법 규모가 큰 치즈 생산자이지만 치즈들을 일일이 수작업해 만듭니다.

 

 

 

 

 

 

 

 


칼로 자를 때의 느낌은 여느 영국 경성 치즈들과 비슷합니다. 장기 숙성 체다보다는 좀 덜 부서지긴 하나 스위스 치즈들이나 네덜란드 하우다처럼 "스극"거리며 깔끔하게 썰리지는 않습니다. 부분부분 떨어져 칼에 들러붙기도 하고 주변에 부스러기가 떨어지기도 합니다. 사진에서는 깔끔하게 보이는데, 그건 제가 '사진발'을 위해 하도 심혈을 기울여 조심히 썰었기 때문이고, 무심히 자르면 막 부서집니다.

 

 

 

 

 

 

 



치즈 표면이 좀 독특하죠?
작은 홈들이 패여 있어요. 이런 모습을 한 영국 경성 치즈는 저도 처음 봅니다.
제조법이 몹시 궁금해집니다.

 

 

 

 

 

 

 




오홋?
향이 제법인걸요?
영국 치즈인데 놀랍게도 네덜란드의 국민 치즈인 하우다Gouda 향이 납니다. 신선한 우유 향도 물씬 납니다. 기분 좋네요. 표면에 자잘한 구멍cheese eye이 막 형성되다 말았고 치즈에서 하우다 향이 나는 걸로 보아 혹시 레드 레스터 제법에 하우다 제법이나 하우다 만들 때 쓰는 배양균culture을 쓴 건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듭니다. 생산자가 치즈 제법에 관한 것을 일절 밝히고 있지 않아 잘은 모르겠습니다.

 

주황색 경성 치즈는 그간 하도 많이 먹어 봐서 이제는 봐도 별 감흥이 없기에 기대 않고 먹어 보았는데요,
휴...
털썩
제가 지금까지 맛본 영국 주황색 경성 치즈들 중 가장 맛있습니다. 잘 숙성된 하우다의 단맛과 땅콩버터의 고소한 맛, 중간 숙성된 체다의 신맛과 우마미가 어우러져 천상의 맛을 냅니다. 천연 색소인 아나토annatto가 들어 쌉쌀한 맛도 납니다. 단맛, 짠맛, 고소한 맛, 쌉쌀한 맛이 조화를 잘 이루고 있습니다. 특히, 단맛이 아주 인상적인데, 제가 지금까지 맛본 숙성 치즈들 중 단맛이 가장 많이 납니다. 다 삼키고 나니 목구멍에서 매운 기운도 살짝 느껴집니다. 다쓰 부처 둘 다 감탄사를 내뱉으며 먹었습니다. 이 치즈가 앞으로 레스터셔 지역의 명물로 자리잡을 거라고 저는 확신합니다.

 

식감
칼로 썰 때도, 입에 넣고 씹을 때도, 잘 부스러집니다. 그러나 일단 한번 씹고나면 부드럽고 촉촉하고 찐득하게 입안에 달라붙으면서 녹습니다. 마치 캬라멜 같아요. 장기 숙성 치즈에서 나타나는 특징인 젖산칼슘 결정calcium lactate crystals이 기분 좋게 깨작깨작 씹혀 부드러운 식감에 경쾌한 대비를 줍니다. 식감도 나무랄 데 없네요.


미국에도 수출돼 들어가 있는 모양인데, 미국의 치즈 애호가들은 이 치즈에서 토피toffee, 메이플 시럽, 미국 위스키인 버본Bourbon 맛이 난다고 묘사를 하더군요. 토피 맛과 메이플 시럽 맛은 저도 확실히 느낄 수 있었습니다. 술을 안 마시니 버본 위스키 맛이 어떤지는 잘 모르겠네요.

 

가성비도 매우 좋습니다. 18개월이나 숙성을 시키는데다 이런 훌륭한 맛을 내는데도 값은 참 쌉니다. 이런 제대로 만든 가성비 좋은 영국 치즈들을 한국에서도 수입하면 얼마나 좋을까요? 유럽 치즈 베껴 만든 미국산 짝퉁 치즈 시장의 두 번째 큰손이 우리 한국이라는데, 어차피 수입해다 먹는 거, 제대로 만든 진짜 유럽 치즈들이나 좀 수입하면 좋으련만. 우리 한국인들, 요새 집밥이든 식당 밥이든, 한식이든 양식이든, 여기저기 치즈 안 올려 먹는 데가 없잖아요. 가만 보면 유럽인들보다 더 과격하게 치즈를 즐기고 있는데 말이죠. (그런데 그 치즈가 대개는 가공치즈이거나 식용유로 만든 모조치즈인 게 문제.)

 

영국에 계신 유학생 여러분들은 이 치즈를 꼭 한번 맛보시기를 바랍니다. 저는 <웨이트로즈> 치즈 카운터에서 아직 아무도 개시하지 않은 새 치즈를 쪼개 아주 신선한 것으로 사 왔습니다. <아즈다>, <모리슨스>, <코-옵>에서도 팝니다. 웨이트로즈 것은 18개월 숙성시킨 '빈티지'라서 맛도 더 깊고 돈도 조금 더 줘야 합니다. 보통은 12개월을 숙성시킨다고 합니다. 간식용 치즈snacking cheese로 더없이 훌륭하고, 요리에 써도 아주 좋을 것 같습니다. 영국의 클래식 티 샌드위치인 ☞ 치즈 앤 어니언 샌드위치에 레드 레스터 대신 넣어도 단맛이 많이 나 맛있겠습니다.

 

참, 왜 이름이 '레드 폭스'냐?벨튼 팜 지붕 위의 풍향계가 여우 형상을 하고 있답니다. 보통은 닭 모양 풍향계를 많이들 달잖아요? 게다가, 벨튼 팜이 위치한 곳이 잉글랜드의 레스터셔 주인데, 이곳이 원래 예로부터 여우 사냥터로 유명합니다. 그래서 주 문장The Coat of Arms에도 여우가 들어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