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꽃

차와 과자, 치즈와 조제고기, 음식과 그릇, 음식우표, 음악, 영국 이야기

암만 생각해도 중국인들 대단한 것 같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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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생각

2015. 3. 18.

 

 

 

한국에서 갖게 된 중국인에 대한 편견이 영국에 와서 사라졌다. 물론 여기 영국의 언론들은 중국 정부 욕을 많이 한다. 공산당 1당 독재 국가를 잘한다 칭찬할 수는 없는 노릇이니. 인권 문제들도 심심찮게 불거지고. 베이징 올림픽 때 노래는 딴 애가 부르고 공은 눈 초롱초롱 얼굴 예쁜 아이가 입 뻥끗 립싱크해 다 가져가게 한 중국 어른들의 만행을 생각하면 그놈의 나라 백번 욕 먹어도 싼 나라는 맞다.

 

그런데 그들은 어떻게 그렇게 세계 구석구석 안 가는 곳이 없고, 어디를 가든 자기들 커뮤니티를 그토록 융성하게 할 수 있는 걸까? 이거 정말 부럽지 않나? 우리 한국인들은 입버릇처럼 "이민 가서 한국인을 조심해."라고 하지 않나. 참으로 슬픈 현실이다.

 

일본 만화 <맛의 달인>에 이런 대목이 있다. 중국 이민자들 세계에서는 성공해서 먼저 자리를 잡은 상인들 위주로 조직을 만드는 관행이 있는데, 커뮤니티에 재능 있는 젊은이가 새로 들어오면 자기들끼리 모여 회의를 하고 실력 평가를 해서 그 젊은이가 사업을 새로 시작할 수 있게끔 자금을 융통해 준다는. 그렇게 해서 빌린 돈은 사업을 일으켜 번 돈으로 천천히 갚아 나가면 되고.

 

며칠 전 BBC에서 영국의 이민자들과 그들이 가져온 음식들에 대한 도큐멘타리를 내보냈는데, 거기에는 또 이런 대목이 있었다. 다른 나라에서 온 이민자들은 대개 그들의 커뮤니티나 장사가 잘 될 만한 번화한 곳에 식당을 여는 경향이 있는데, 중국인들은 그 동네에 이미 누군가가 먼저 중식당을 열어 영업을 하고 있으면 다른 동네를 찾아 음식점을 연다고. 그래서 중식당은 영국 구석구석 깡촌에까지 안 퍼진 곳이 없다고 한다. 중국음식이 단기간에 영국 전역에 확산돼 인기를 끌게 된 연유 중 하나가 여기에 있는 것이다. '텃세' 탓일 수도 있겠으나 동포의 영업권을 침해하지 않으려고 서로 조심하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오늘 있었던 일이다. 다쓰베이더가 수퍼마켓 유제품 코너에서 이런저런 요거트를 둘러보고 있는데 웬 50대 후반쯤 돼 보이는 점잖은 중국인 신사가 와서 중국말로 뭐라고뭐라고 하더란다. "아, 저는 중국어를 못합니다."라고 영어로 말하니 "아, 이거 미안합니다." 영어로 사과를 하고는 머쓱해져서 사라졌다고 한다. 하하, 나를 중국인으로 알았나 보다, 가볍게 속으로 웃고 치즈 코너를 향하는데, 저쪽 구석에서 유통기한이 임박한 치즈들, 그것도 비싸고 맛있는 스위스 치즈들 몇 가지를 반값도 아닌 1/4 값으로 대폭 할인해 팔고 있는 것이 보였단다. 이게 웬 횡재냐, 이 맛있는 스위스 치즈들이! 신나서 장바구니에 이것저것 담고 있으려니 문득 방금 전의 그 중국인 신사가 떠올랐다고 한다. 그러고 보니, 그 신사가 한 중국말들 가운데 '치즈'라는 영어 단어가 섞여 있었던 것이 기억났다고 했다. 그러니까 그 중국인 신사는 자기보다 어린 애송이 동포한테 '저기 질 좋은 치즈가 엄청 싸게 나왔으니 한번 가보라'는 정보를 주려던 것이 분명했다.


우리는 떨이 치즈를 오물오물 씹으며 어딜 가나 번영·번창할 수밖에 없는 그네들을 진심으로 부러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