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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치즈 60 ◆ 레드 윈저 Red Winds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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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치즈

2015. 5. 30.

 

 

 

 

 

 

 

 

바쓰의 길드홀 마켓에 입점한 <니블스 치즈Nibbles Cheese>에서 사 온 치즈입니다. 치즈 색상과 생긴 것 좀 보세요. 꽃분홍색 자연 치즈라니. 치즈 매대에서 이 치즈를 얼핏 보고는 '치즈들 사이에 뜬금없이 웬 살라미가 있어?' 했다가 자세히 들여다보고 그제서야 이게 바로 그 유명한 전설의 빨간 치즈 '레드 윈저'임을 알아차렸습니다.

 

 

 

 

 

 

 

 


아, 자연 치즈인 걸 알면서도 불량식품 같다는 생각을 떨쳐버릴 수가 없네요. 분홍색은 강화 포도주인 포트와 브랜디를 섞어서 내거나, 보르도 같은 레드 와인으로 내거나, 엘더베리 술 같은 빨간 과실주로 낸다고 합니다. 더 선명한 분홍색을 내기 위해 간혹 코치닐 색소를 넣는 곳도 있는데, 색소를 쓰고 안 쓰고는 생산자마다 다릅니다. 제가 사 온 것은 포트와 브랜디를 써서 맛과 색을 냈습니다. 포트는 영국인들이 식후주로 많이 마시는 술입니다. 후식을 먹고 치즈를 먹은 뒤 포트로 마무리를 하는 게 영국의 만찬 순서인데 치즈와 포트를 합쳐 놓은 셈이지요.


체다를 바탕으로 만든 맛치즈입니다. 대체 누가 이 '정신 사나운' 치즈를 처음 개발했는지는 정보를 찾기가 너무 힘들어 찾다가 포기했습니다. 시초를 알 수 없는 미스테리한 치즈입니다. 체다를 만들 때 유장을 뺀 넙적하고 단단한 응유curd 판을 전동 맷돌에 넣어 조각조각 잘게 부수는 과정이 있는데, 그렇게 해서 얻은 작은 응유 조각들을 포트에 버무려 다시 압착을 하면 저런 무늬가 형성됩니다. 짧게 숙성시켜 내보내는 어린 체다라서 치즈 풍미가 아직 강하지 않아 포트 맛이 잘 삽니다. 완성된 치즈에 부재료를 넣어 맛을 내는 맛치즈들과 달리 치즈 생산 초기 단계에 포트를 넣어 맛을 내므로 포트가 치즈와 함께 숙성을 하게 됩니다. 숙성하는 동안 알콜이 날아갔는지 완성된 치즈에서 알콜 기운은 전혀 느껴지지 않아 술 안 마시는 다쓰 부처도 문제없이 먹을 수 있었습니다.

 

 

 

 

 

 

 



캬핫, 숙성이 덜 된 어린 체다에 베리맛 풍선껌이 합쳐진 듯한 맛이 납니다. 희미하지만 꿈같은 단맛이 있습니다. 불량식품 껌, 사탕, 캬라멜 등에서 나는 딸기향 비슷한 향이 나고 포도주향도 살짝 납니다. 포도주 짜고 남은 포도 찌꺼기인 머스트must를 덕지덕지 붙인 이태리 치즈 ☞ 오껠리 알 바롤로와 비슷한 풍미도 나는데, 포도주 풍미가 오껠리 알 바롤로만큼 강하게 나지는 않습니다. 포트 풍미가 더 많이 나면서 더 개성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싸이키델릭'한 외모에 비해 치즈 자체의 풍미는 순합니다. 어린 치즈라서 확실히 장기 숙성 체다만은 못해요. 수분이 많고 반경성 치즈 같은 탄력이 있어 장기 숙성 체다와는 질감도 많이 다릅니다. 열을 가해 녹이면 어떤 모습이 될지 궁금해서 빵 위에 얹어 그릴을 해보았습니다.

 

 

 

 

 

 

 



크읔, 분홍색이 더 진해졌습니다. 이거 과연 먹어도 되는 걸까요? 불량식품 먹는 기분입니다. 맛과 색이 도무지 조화가 되질 않아요. 치즈 맛도 진분홍 형광색에 걸맞게 좀 쨍하고 강렬하면 좋을 텐데 어른이 먹기에는 너무 순하네요. 아이들이 먹기에는 좋겠습니다. 특이한 외관을 하고 있으니 크리스마스나 파티 때 재미 삼아 치즈보드에 올리기도 좋겠습니다. 얼핏 보면 시뻘건 고깃덩어리 같아 할로윈에 특히 잘 어울리겠고요. 녹아내린 치즈는 더욱 심란해 보이니 할로윈 베이킹에 잘 활용하면 걸작이 나올 듯합니다. 분홍색의 순한 치즈이니 발렌타인스 데이에 활용할 수도 있지 않을까요? 맛만 생각한다면 장기 숙성 체다를 사 먹는 게 낫습니다. 이런 재미있는 자연 치즈도 있다는 사실만 알아두시면 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