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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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크림 티 Cream T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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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나 한 잔

2015. 5. 28.

 

 

 

- 오후 어둑어둑 할 때 조명 안 켜고 즐겼더니 사진이 좀 어둡습니다 -

 

 

 

 

 

 

 

 

 

 

 

 

 

 

 

 

 

 

 



오랜만에 크림 티 찻자리를 가져 봅니다.
'크림 티'란 스콘을 반 갈라 클로티드 크림과 딸기 잼을 바른 뒤 홍차와 함께 즐기는 찻상을 말합니다.


Q: 밀크 티는 홍차에 밀크를 타는 것, 크림 티는 홍차에 크림을 타는 것, 맞죠?
A: 아니오. 전자는 맞지만 후자는 안타깝게도 틀리셨습니다. 

 

크림을 홍차에 넣는 게 아니라 스콘 위에 얹습니다. 생크림은 아니 되옵니다. 반드시 영국 특산 클로티드 크림이어야 하고, 잼은 딸기 잼이어야 합니다. 클로티드 크림은 유럽연합으로부터 PDO로 보호를 받고 있는 지역 특산품입니다. 홍차는 취향껏 고를 수 있습니다. 다쓰 부처는 크림 티에 쌉쌀하면서 풀향과 은은한 청포도향이 풍기는 다질링을 선호합니다. 클로티드 크림의 기름진 맛을 깍쟁이 같은 다질링이 깔끔하게 끊어 주거든요. 크림 티를 아침부터 즐기는 사람은 많지 않고 대개 오후 티타임에 즐기는데, 오후용 홍차로는 묵직하지 않은 가벼운 홍차가 좋아요.


크림 티용 홍차로 저는 우유와 설탕 없이 즐길 수 있는 다질링과 실론을 권해 드리겠습니다. 얼 그레이도 가볍기는 하지만 향이 너무 강해 차음식과 먹을 때는 썩 잘 어울리지가 않더라고요. 차향이 차음식의 단맛과 충돌하는 것 같아요.


잘게 부순 험한 찻잎말고 질 좋은 실한 찻잎을 쓰세요. 잘게 부순 잎은 너무 금방 우러나 차가 쓰고 아립니다. 홍차는 100˚C에 가까운 뜨거운 물로 5분 정도 진득하게 우려야만 몸에 좋은 성분과 맛, 둘 다 얻을 수 있습니다. 1~2분 내로 짧게 우리면 카페인만 잔뜩 섭취하게 돼요. 홍차의 쌉쌀한 맛이 염려되는 분들은 시간을 짧게 잡지 마시고 차라리 찻잎 대비 물 양을 넉넉하게 해서 우리세요.


딸기잼에 단맛이 충분하므로 차에는 가능하면 설탕을 타지 않는 게 좋습니다. 실론을 드실 때는 얇게 썬 레몬 조각을 아주 잠깐 담갔다 꺼내면 색과 향을 증진시킬 수 있습니다. 오래 담가 두면 도로 탁해집니다. 음식에 레몬 즙 뿌리듯 꽉 짜서 뿌리면 안 되고 아주 얇게 썬 레몬 조각을 찻잔에 그저 넣었다 빼는 정도로만 향을 내시면 됩니다. 다질링에는 레몬이 필요없습니다.


스콘 위에 크림과 잼을 바르는 순서는 사람마다 다릅니다. 저는 잼을 먼저 얹고 다쓰베이더는 크림 먼저 얹습니다. 저는 입술에 부드러운 크림이 먼저 닿는 것을 좋아하고, 다쓰베이더는 빠알간 잼이 위에 올라와 있으면 시각이 자극되어 식욕이 더 솟는다고 합니다. 취향껏 하세요. 스콘을 갈라 반쪽씩 다른 경험을 해보셔도 좋지요. ☞ 완벽한 크림 티를 위한 수학자의 조언


딸기잼이 올라가기 때문에 건포도나 과일이 들지 않은 플레인 스콘이 좋습니다. 클로티드 크림의 부드러운 질감을 만끽하려면 스콘은 너무 기름지고 부드럽지 않게, 전통식으로 다소 퍽퍽하고 울퉁불퉁한 질감으로 굽는 게 좋고요.


위 사진들 중에 제가 잘못된 것을 일부러 한 장 삽입했는데요, 뭘까요?


크림 티를 즐길 때 스콘은 햄버거처럼 위뚜껑을 덮어서 먹지 않습니다. 반 갈라서 크림과 잼을 넉넉히 올린 후 그대로 드세요. 뚜껑을 덮어 먹으면 입을 크게 벌리느라 먹는 모습이 험악해집니다. 찻자리에서는 항상 우아~하게, 맛있게 먹되 우아~하게. 그래서 티 샌드위치도 식사용 샌드위치와 달리 작게 썰어서 내는 겁니다. '티 샌드위치' 혹은 '핑거 샌드위치'라고 부릅니다. 클럽 샌드위치마냥 잔뜩 올려 내면 먹을 때 후두둑 다 흘리고 입을 또 크게 벌리게 돼 험악한 모습이 됩니다. 찻자리에서는 항상 우아~하게, 맛있게 먹되 우아~하게. 찻잔이 멀리 놓여 있을 때는 찻잔만 덜렁 들어올리지 마시고 받침까지 같이 들어 우아~하게. 후루룩 소리 내며 들이켜지 마시고 소리없이 우아~하게. 찻자리는 사교의 장이므로 우아~하게 즐기시되 즐거운 대화는 잊지 마시고요.

 

그리고, 사진에 생딸기가 보이죠? 제가 일부러 올려 봤어요. 저러지 마시라고요. 한국에서도 영국식 아프터눈 티 내는 영업집들이 알록달록 예쁘게 보이라고 생과일 얹어 내는 경우가 많은데, 여기서는 찻상이나 디저트에 생과일 올리는 것은 페이스트리 셰프의 직무 유기로 칩니다. 안 익힌 과일의 싱그러움이 정 필요할 때는 최소한 설탕과 레몬 즙에 잠깐 절이기macerate라도 해줘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