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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음식] 이튼 메스 Eton M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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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음식

2015. 6. 11.

 

 

 

 

 

한국은 딸기철이 지났나요?
영국은 지금이 제철입니다.


오늘은 딸기로 만드는 쉬운 영국 디저트를 하나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난장판mess'이라는 재미난 이름을 달고 있는 맛있는 딸기와 크림 디저트입니다. 영국의 명문 사립 중˙고등학교인 이튼 컬리지 학생들이 1930년대부터 학교 만찬에서 먹어 왔던 건데, 이제는 학교 밖으로 퍼져 영국 어디서든 볼 수 있는 음식이 되었습니다. 검은 연미복 교복 입은 남학생들이 난장판이라는 이름의 딸기 디저트를 만찬에서 먹고 있다니, 뭔가 엉뚱합니다. 


고로, 이 음식은 미슐랑 스타 셰프들처럼 깔끔 떨면서 담아 내면 안 되고 이름처럼 최대한 '메씨messy'하게 담아 내야 제맛이 납니다. 실제로 맛에도 영향을 미칩니다. 이렇게 뒤죽박죽 섞여 있는 게 훨씬 맛있어요. 영국인들은 아마 제가 담은 것도 너무 얌전하다고 생각할지 모릅니다.
☞ 이튼 메스의 다양한 모습들

 

영국은 디저트가 상당히 발달해 있는 나라인데, 영국 디저트의 기본을 이루는 재료 조합이 몇 가지가 있습니다. 그 중 하나가 딸기와 크림입니다. 스트로베리 앤드 크림. 익숙하죠? 영국인들이 딸기와 크림을 함께 먹기 시작한 지가 최소 500년이 넘었습니다. 튜더 시대 이전부터 기록이 있는데, 기록이 되었다는건 이미 그 전부터 먹고 있었다는 소리죠. 소를 키우기 좋은 환경이라 질 좋은 크림 얻기가 수월했고 딸기도 많이 나니 이 조합이 안 나올 수가 없죠. 딸기와 크림을 쓰는 영국 디저트나 간식을 몇 가지 열거해 보자면,

 

여러분이 잘 아시는 크림 티 (딸기잼 + 클로티드 크림 + 스콘)


오늘 소개해 드릴 이튼 메스
(딸기 + 크림 + 머랭)


윔블던 테니스 경기 기간에 먹는 윔블던 스트로베리 앤드 크림
(딸기 + 액상 크림)


해변 휴양지에서 즐겨 사 먹는 니커보커 글로리Knickerbocker Glory
(딸기 포함 과일 + 아이스크림 + 크림 + 바삭한 비스킷 + 견과류 + 시럽 등)

 

스트로베리 치즈케이크 (영국에서는 치즈케이크 위에 과일 콤포트나 과일 젤리 층을 올림)


스트로베리 타트Strawberry Tarts
(딸기 + 크림 혹은 커스타드 + 쇼트 크러스트 페이스트리)


퀸 오브 푸딩스Queen of Puddings
(딸기잼 + 커스타드 + 스폰지 케이크 + 머랭 + 액상 크림)

 

트라이플Trifle (딸기를 포함한 과일 + 과즙 젤리 + 커스타드 + 크림 + 술에 적신 스폰지 케이크 등을 큰 유리 그릇 안에 층을 내가며 담은 것)


하나같이 다 맛있는 것들입니다. 마지막 네 개가 좀 복잡해 보이는데, 다른 것들에 비해 시간만 좀 더 걸릴 뿐 만들기는 어렵지 않습니다.

 

 

 

 

 

 

 



영국 딸기는 대체로 알이 작고 향이 짙습니다. 여기 사람들은 개량을 거쳐 덩치를 키운 딸기를 별로 안 좋아하는 것 같아요. 영국 토종 딸기가 원래 알아 작아서 그런 것 같습니다. 웨지우드의 와일드 스트로베리 문양 아시죠? 그게 영국에 원래 있던 딸기입니다. 알이 작고 제법 성깔 있게 생겼죠. 사과와 마찬가지로 딸기도 품종이 다양하니 영국에 계신 분들은 저 '엘산타Elsanta' 같은 맛없고 유통기한만 긴 수퍼마켓용 품종 사지 마시고 맛있는 품종으로 잘 골라서 사 드시기를 바랍니다. 제철에는 보름 단위로 맛있는 품종이 바뀌니 누리터에서 정보를 한번 찾아 보십시오. 저도 작년에 정리를 한번 해 드린 적 있지요.
☞ 윔블던 스트로베리 앤드 크림

 

 

 

 

 

 

 



이 정도 딸기 양이면 약 4인분이 나오겠습니다. 1/3에서 반 정도는 도깨비 방망이로 갈아 쿨리coulis로 만들어 주세요. 접시에 까는 소스로 쓸 겁니다.

 

 

 

 

 

 

 



서양인들은 이 쿨리에도 설탕을 넣을 게 분명하지만 저는 넣지 않겠습니다. 머랭이 매우 달기 때문에 쿨리에까지 설탕을 넣으면 우리 한국인들은 달아서 못 먹습니다. 영국 딸기에는 신맛이 충분하지만 한국 딸기로 만드실 경우엔 쨍한 산미를 위해 레몬즙을 좀 넣어 주셔야 할 겁니다.

 

 

 

 

 

 

 



그 다음, 설탕이 들지 않은 휘핑 크림을 사서 거품을 내줍니다. 영국에 계신 분들은 '더블 크림'을 쓰시면 됩니다. 유지방 48%의 진하고 고소하면서도 신선한 유크림 맛이 물씬 나는 아주 맛있는 크림입니다. 진한데도 느끼하지가 않아요. 변주를 주어 크림에 그릭 요거트나 일반 플레인 요거트를 섞어 쓰는 사람도 있긴 한데 요거트를 넣으면 산미가 생겨 느낌이 좀 달라집니다. 상큼함과 산미는 딸기에서 얻고 크림에서는 위로를 얻을 수 있어야 합니다. 상처 받은 영혼을 어루만지며 치유하는 게 이 크림 아니겠습니까.

 

크림은 뿔이 살짝 처지는 정도로만 쳐도 좋고, 꼿꼿하게 설 정도로 좀 더 쳐도 좋으니 취향껏 하세요. 저는 곁들일 쿨리를 만들었으므로 크림은 뿔이 꼿꼿해지도록 단단하게 쳤습니다. 쿨리를 따로 만들어 쓰지 않고 딸기를 설탕에 절여서 쓰는 경우는 물기가 적으므로 크림을 약하게 치셔도 됩니다.

 

 

 

 

 

 

 



머랭도 필요합니다. 크림과 딸기가 부드러우므로 바삭한 머랭을 넣어 식감에 대비를 주어야 합니다. 코쟁이들은 음식 먹을 때 식감을 정말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머랭이 안 들어가면 '이튼 메스'가 아니라 그냥 평범한 '스트로베리 앤드 크림'이 되니 꼭 넣으셔야 합니다.


사진에 있는 시판 머랭, 근사하죠? 영국에서는 머랭을 집에서 만들 필요가 없습니다. 수퍼마켓들이 다양한 크기의 제품들을 내고 있거든요. 성분도 집에서 만드는 것과 똑같고 값도 싸서 집에서 시간 들여 설거지거리 만들면서 고생할 필요가 없어요. 제가 사 온 머랭도 성분이 설탕과 저온살균한 자연방사란 흰자, 이 두 개가 다입니다.


머랭을 사실 땐 가급적 크기가 작고 바삭한 것으로 고르십시오. 큰 머랭을 사면 찐득한 속 비율이 너무 높아져 이튼 메스에는 적합하지가 않습니다. 바삭한 식감 때문에 넣는 것이니 최대한 바삭한 걸로 사셔야 합니다. 크기가 작은 것들이 큰 것들에 비해 표면적이 넓어 좀 더 바삭한 경향이 있습니다. 모양 안 망가진 예쁜 걸로 고르느라 시간 허비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어차피 부숴서 쓸 거거든요. 집에 부숴진 머랭 있으면 이튼 메스 만들어 처치하셔도 좋지요. 머랭을 부술 때 떨어지는 가루는 버리지 마시고 모아 두셨다가 크림에 머랭과 딸기를 섞을 때 같이 뿌려 주셔도 됩니다. 머랭으로 단맛을 조절할 수 있기 때문에 제가 쿨리와 크림에 설탕을 별도로 넣지 않은 겁니다.

 

 

 

 

 

 

 



흰 그릇에 곱게 간 딸기 쿨리를 먼저 깔고,

 

 

 

 

 

 

 



크림 + 머랭 + 딸기 섞은 것을 올려 줍니다. 각 재료의 양은 그야말로 취향껏 결정해 섞으시면 됩니다. 먹다 보면 무얼 좀 더 넣으면 좋을지 감이 올 겁니다. 저는 먹다 말고 머랭을 더 부숴서 넣어 주었습니다.

 

어디, 맛을. 


어우, 눈물 나게 맛있네요. 1930년대에 이튼 컬리지 학생들이 이미 이런 맛있는 디저트를 먹고 있었단 말이죠. 제가 외식할 때 이튼 메스를 디저트로 몇 번 사 먹어 본 적 있는데요, 여느 서양 디저트와 마찬가지로 밖에서 사 먹는 이튼 메스는 우리 한국인들 입맛엔 좀 많이 달아요. 제가 알려 드린 대로 집에서 만들어 드시면 아주 좋습니다. 딸기도 듬뿍 넣어 먹을 수 있고요. 추가로 설탕 넣을 생각 마시고 그저 머랭으로만 단맛을 조절하시면 됩니다. 좀 더 달게 드시고 싶은 분들은 머랭 부술 때 생긴 가루를 설탕 삼아 뿌리세요.


영국인들처럼 제대로 달게 드시고 싶은 분들은 딸기도 아예 설탕에 잠깐 절였다 쓰시면 됩니다. 영국에서는 절인 딸기를 많이 씁니다. 잠깐 절여진 딸기는 형태를 유지하고 있으면서도 표면에 윤이 나서 좀 더 예쁘게 보입니다. 절인 딸기를 쓸 경우엔 딸기에서 즙이 소량 나오므로 쿨리를 따로 만들 필요가 없고요. 우리 한국인들은 디저트라도 너무 단 건 싫어하고 물기 있는 음식을 좋아해 제가 생딸기를 쓰고 설탕 안 넣은 쿨리를 만들어 깔아 본 겁니다. 바닥에 쿨리가 깔리니 좀 더 안정감 있어 보이고 제대로 된 디저트 같죠.


이튼 메스를 담아 내는 그릇은 그야말로 취향껏 선택하시면 됩니다. 냉동실에 넣어 차갑게 얼려 둔 유리컵에 담아 내도 보기 좋으니 그릇은 개의치 마시고 자유롭게 선택해 쓰세요. 다만, 경험상 길죽하고 좁은 유리컵보다는 낮고 지름이 넓은 유리컵이, 유리컵보다는 제가 오늘 쓴 것 같은 우묵한 그릇에 담긴 것이 먹는 사람 입장에서는 좀 더 편했습니다. 어디에 담으시든 깔끔히 담을 생각 마시고 반드시 범벅을 해서 내세요. 재료들을 켜켜이, 층층이 쌓는 것은 금물입니다. 딸기도 조로록 줄 맞춰 두를 생각 마시고요. 이름이 '메스'라는 사실을 상기하십시오. 라즈베리를 대신 쓸 수도 있는데, 딸기로 만든 것이 원형이고 더 맛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