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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음식] 웰쉬 래빗, 웰쉬 래어빗 Welsh Rabbit, Welsh Rarebi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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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음식

2016. 5. 16.

 

 

 

 

 

오늘은 치즈 애호가들께서 좋아하실 만한 'cheese on toast' 요리를 하나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직역하면 '웨일즈 지역의 토끼고기 요리'인데, 고기는 일절 들어가지 않으니 재미있죠. 이름에 대해서는 제가 글을 따로 하나 써도 될 만큼 의견이 분분하고 언급해야 할 사항이 많으니 오늘은 그냥 레서피만 전해 드리겠습니다. 1852년에 출판된 요리책 <A Plain Cookery Book for the Working Classes>에서는 웰쉬 래빗을 다음과 같이 만들도록 지시하고 있습니다:

 

"First, make a round of hot toast, butter it, and cover it with thin slices of cheese; put it before the fire until the cheese is melted, then season with mustard, pepper, and salt, and eat the rarebit while hot.

식빵을 토스트 한 뒤 버터를 바르고 얇게 썬 치즈를 덮어 불 앞에 둔다. 치즈가 녹으면 겨자, 후추, 소금을 뿌리고 뜨거울 때 바로 낸다."


맛있겠죠? 옛 시절엔 버터, 얇게 저민 치즈, 겨자, 후추, 소금만으로 맛을 냈는데 후대에 와서는 여기에 달걀 노른자와 에일, 우스터셔 소스를 추가해 좀 더 복잡하고 농후한 맛을 내게 되었습니다. 버터 바른 토스트 위에 치즈를 그냥 척 얹어 녹이는 방식에서 치즈 소스를 만들어 부어 그릴로 굽는 음식으로조리법도 바뀌었고요. 이제는 조리법이 거의 굳어진 음식이므로 요리사별로도 레서피에 큰 차이는 안 나고, 치즈와 에일을 어떤 걸로 쓰느냐에 따라 맛의 뉘앙스만 조금 달라집니다.

 

 

 

 

 

 

 



웰쉬 래빗에는 소젖으로 만든 영국 하드 치즈를 씁니다. 영국은 하드 치즈의 왕국이죠. 다양한 하드 치즈들 중에서 자기 취향에 맞춰 고르시면 되는데, 한국에서는 아무래도 체다가 가장 구하기 쉽겠지요. 맛도 사실 체다가 가장 균형 잡혀 있어 좋기도 하고요. 체다로 쓰실 경우엔 장기 숙성된 것들말고 어린 '마일드 체다[강도2]'나 적당히 숙성된 '미디엄 체다[강도3]'로 쓰세요. 체다와 같이 넣는 다른 재료들이 하나같이 맛이 강한 것들이므로 체다까지 장기 숙성된 걸 쓰면 소스가 지나치게 농후해집니다. 영국에 계신 분들은 다음의 것들 중 어떤 것이든 쓰셔도 됩니다.

 

☞ 영국 치즈 - 체다

☞ 영국 치즈 - 서섹스 차머

☞ 영국 치즈 - 랭커셔

☞ 영국 치즈 - 체셔

☞ 영국 치즈 - 더블 글로스터

☞ 영국 치즈 - 레드 레스터

영국 치즈 - 레드 폭스

☞ 영국 치즈 - 화이트 폭스

 

영국에서도 체다가 가장 흔하게 쓰이기는 하는데, 완성된 음식에서 단맛을 좀 더 느끼고 싶은 분들은 서섹스 차머, 더블 글로스터, 레드 폭스, 화이트 폭스 중 하나를 쓰시면 좋습니다. 랭커셔와 체셔는 순하면서 고소하고 크렘 프레쉬crème fraîche 같은 산미가 있어 또 나름의 매력이 있습니다. 레드 레스터는 아나토annatto 색소 덕에 진한 주황색이 나서 식욕을 좀 더 돋구기는 하지만 이 색소 때문에 약간 씁쓸한 맛이 나기도 합니다. 거슬릴 정도는 아니고요.

 

그런데,
시간 들이고 돈 들이고 고생해서 치즈 공부를 해 두니 이럴 때 차암 좋네요. 대체 치즈도 권해 드릴 수 있고, 치즈별 뉘앙스 차이도 설명해 드릴 수 있고 말이죠. 우리 한식 요리사들이 김치 공부, 장 공부를 해야 하듯, 서양 요리사들에게는 이 치즈와 향신료 공부가 필수입니다. 


저는 랭커셔 치즈를 쓰겠습니다. 특별한 이유는 없고, 오늘은 그냥 산미 있는 치즈가 먹고 싶어서입니다. 평소에는 체다를 많이 씁니다. 겨자와 우스터셔 소스, 그리고, 사용하게 될 에일의 강한 맛들을 잘 버텨 낼 수 있는 치즈이기만 하면 무엇이든 됩니다.

 

 

 

 

 

 

 



액체는 주로 에일이나 우유를 쓰는데, 우유를 쓰면 고소하면서 익숙하고 평범한 맛이 나고, 에일을 쓰면 아무래도 좀 더 깊은 맛이 납니다. 에일에 따라 뉘앙스 차이도 나게 되고요. 저는 평소에 인디안 페일 에일(IPA)을 즐겨 씁니다. 향긋하거든요. 오늘은 포터를 쓰겠습니다. 포터나 스타우트를 쓰면 깊은 맛이 납니다. 저 사진에 있는 런던 포터를 한모금 입에 머금었다가 뱉었는데, 와아, 술에서 어떻게 다크 쵸콜렛 맛이 날 수가 있습니까? 다크 쵸콜렛풍의 산미가 매력적이네요. 완성된 요리에서는 또 어떤 맛을 낼지 기대가 됩니다.

 

 

 

 

 

 

 



치즈 소스를 만들려면 사진에 있는 재료들이 필요합니다. 읊어 드리겠습니다. 일간지 <가디언>에서 본 레서피인데 제가 재료와 공정에 약간의 손을 보았습니다. 2인분입니다.



재료


 잉글리쉬 머스타드 파우더 1작은술 [1작은술 = 5ml]
IPA, 포터, 스타우트 중 취향껏 하나, 3큰술 [1큰술 = 15ml]
버터 30g
우스터셔 소스, 양은 취향껏 조절. (나중에 더 넣을 수 있으니 처음에는 소량.)
영국 소젖 하드 치즈 175g, 강판에 갈 것
달걀 노른자 2개
카이옌 페퍼, 양은 취향껏 조절. (생략 가능.)


식빵이나 잉글리쉬 머핀 2장

 

 

 

 

 

 

 



치즈 소스를 만들어야 하므로 소스팬이 필요합니다. 저희 집에서 가장 많이 쓰는 냄비 중 하나인 12cm 소스팬입니다. 둥근 바닥을 가진 소시에saucier 팬도 많이 씁니다.

 

 

 

 

 

 

 



식빵을 제외한 재료들을 소스팬에 모두 넣고 약불에 올려 천천히 녹입니다. 거품기balloon whisk로 부지런히 저어 뭉치지 않도록 하시고, 열에 의해 달걀 노른자가 스크램블드 에그가 되지 않도록 각별히 주의하십시오. 필요하면 소스팬을 열원에서 떼었다 다시 대는 방법으로 열조절을 하셔도 됩니다.

 

 

 

 

 

 

 



치즈 소스가 완성되면 식빵이나 잉글리쉬 머핀을 토스트한 뒤 그릴의 열기를 견딜 수 있는 내열 그릇에 담습니다.

 

 

 

 

 

 

 



치즈 소스를 넉넉히 끼얹습니다.
소스가 멍울지지 않고 매끈하게 잘 나왔죠?

 

 

 

 

 

 

 



먹음직스러운 색이 날 때까지 그릴 밑에 둡니다.
소스가 천천히 부풀어 오를 텐데, 식으면서 도로 꺼지니 염려 마시고요.

 

 

 

 

 

 

 



완성.
스테이크 썰어 먹듯 드시면 됩니다. 쫄깃한 잉글리쉬 머핀을 농후한 치즈 소스가 적시고 있으니 이거 맛없을 수가 없죠. 컴포트 푸드 중의 컴포드 푸드입니다. 포터를 써서 만든 건 이번이 처음인데, 확실히 맛의 깊이가 다르네요. 어른의 맛입니다. 저 스위스 퐁듀 같은 와인 넣은 치즈 소스와도 또 다릅니다. 웰쉬 래빗 자체에는 단맛이 없으므로 영국식 칠리 잼이나 어니언 처트니 같은 새콤달콤한 것들을 곁들여 내면 아주 좋습니다.

 

 

 

 

 

 

 



부재료를 얹어 웰쉬 래빗에 변주를 주는 것도 얼마든지 가능합니다. 이건 브라이튼Brighton의 티룸에서 사 먹었던 버섯과 오리알 수란 웰쉬 래빗인데, 수란이나 프라이를 얹은 것은 '벅 래빗buck rabbit'이라고 이름을 따로 붙여 부릅니다.

 

 

 

 

 

 

 



이건 바쓰Bath에서 사 먹었던 베이컨 앤드 머쉬룸 웰쉬 래빗.
어니언 처트니와 샐러드를 곁들였네요.

 

 

 

 

 

 

 



이건 제가 집에서 흉내 내 본 것.
훈향 나는 베이컨smoked bacon이 웰쉬 래빗에 참 잘 어울립니다.

 

쌀쌀할 때 해먹으면 좋은 음식인데 게으름 떨다가 여름 다 돼 가는 지금에야 소개를 합니다. 영국인들의 컴포트 푸드입니다. 치즈 좋아하시는 분들께 추천합니다. 웰쉬 래빗 외에도 치즈와 토스트를 쓰는 영국음식을 두 개 더 소개해 드린 적 있습니다.


☞ 제이미 올리버의 날개 달린 치즈 토스티

☞ 체다 앤드 햄 토스티

 

그 외 더 읽을 거리들도 걸어 드립니다.

 

☞ 잉글리쉬 머핀

☞ 영국 칠리 잼

☞ 우스터셔 소스 한 병 사 왔는데 어따 쓰는 건가욤?

☞ 영국음식 열전

☞ 구리 냄비에 관하여

☞ [기사] 아주 간략하게 정리한 맥주의 종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