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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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차 좋아하는 사람 지성미 뿜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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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나 한 잔

2018. 3. 15.

 

 



재미있는 옛날 기사 하나를 우연히 보게 되었습니다.
☞ 서울대에서만 유독 잘 팔리는 음료가 있다

으흐흐흐흐흐,
서울대 아그들아, 니들이 뭘 좀 아는구나.
그쟈? 밀크티 맛있쟈?
커피 왕국 한국에서 홍차(맛) 좋아하는 사람 보면 호감도 급상승,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어요. 막 그 자리에서 친구 하고 싶어요.

단단은 씹어먹는 단것은 좋아해도 음료는 웬만해서는 달게 마시지 않습니다. 혈당을 급상승시키고, 이 부식시키고, 갈증 나게 하거든요. 아침 식사 때 미국인들처럼 오렌지 주스 마시는 것도 못 합니다. 오렌지 주스의 신맛이 식욕을 돋군다는 연구가 있기는 한데 저는 어쩐 일인지 식사 때 너무 단 음료를 마시면 밥맛이 떨어지더라고요. 그래서 햄버거나 피짜 먹을 때도 콜라를 곁들이지 않습니다. 밀크티 만들 때도 설탕을 일절 넣지 않습니다. 아, 티푸드를 하나라도 더 집어먹어야지, 차에다 설탕을 넣고 있으면 안 되죠. 밖에 나가서도 늘 500ml 생수를 사 마시고, 친목차 다같이 커피 하우스를 갔을 때도 가당 안 한 라떼를 주문해 마십니다. 간혹 여러 사람들과 우르르 편의점 들어가서 단 음료가 든 캔을 하나씩 골라야 할 때가 있는데, 그때는 차선책으로 '데자와'를 고릅니다. 그러니까, 단단이 유일하게 마시는 시판 단 음료가 데자와인 겁니다. 차게 마셔도 좋고 데워 마셔도 좋죠. 데우면 군고구마 맛도 나 오묘하기 짝이 없어요. 덜 달면 좀 더 자주 사 마실 텐데요.   

집에서 데자와 맛 내보겠다고 찻잎 가지고 이렇게저렇게 실험을 해본 적이 있는데요, 잘 안 됩니다. 일단 맨 정신에 내가 마실 음료에 설탕을 삽으로 퍼 넣기가 쉽지 않고, 이름이 암시하듯 저게 인도네시아산 홍차라서 찻잎 구하기가 은근 힘들어요. 스리랑카 홍차인 실론을 진하게 우린 뒤 설탕 잔뜩 넣고 우유 섞어 식히면 살짝 비슷한 맛이 나기는 하는데, 데자와에는 결정적으로 '홍차향' 첨가물을 따로 넣어 주기 때문에 찻잎만 우려 만든 진짜 찻물보다 오히려 홍차향이 더 진하게 납니다. 재밌죠. 그래서 정직하게 찻잎만 써서는 같은 맛을 내기가 어렵습니다.     

<동아오츠카> 데자와 로얄 밀크티 성분:
정제수, 홍차추출액 29.6%(고형분 0.33%, 홍차엽:인도네시아산), 백설탕, 전지분유 2.9%(국산), 합성향료(홍차향), 자당에스테르. 끝.

이 정도면 성분이 나쁘지 않습니다. 액상과당 대신 백설탕을 쓰니 한결 낫고요.   

 

 

 

 

 

 

 

 


우리나라에서 영국(식) 식품을 광고할 때는 꼭 저렇게 '왕실', '고급', '품격' 드립을 해대서 아주 웃겨 죽것어요. 유럽 식품 얘기할 때면 늘 '정통'이라는 단어가 따라 붙는 것도 그렇고요. 그래도 광고 문구에는 대개 'finest quality'라고 쓰는데 'fine quality'로 낮춰 적어 겸양의 미덕을 발휘했습니다.

참고로, 영국에서는 '로얄 밀크티'라는 용어를 안 씁니다. 밀크티면 밀크티지, 그 앞에 '로얄' 자를 붙일 하등의 이유가 없어요. 영국 11년 살면서 한 번도 못 들어 봤습니다. 일본 인스탄트 분말 제품들에 '로얄' 자가 자주 붙던데, <동아오츠카> 쪽에서 문화 차이를 잘 모르고 있는 듯합니다. 아니면 알면서도 '있어' 보이려고 마케팅 차원에서 이용하는 걸 수도 있고요. 사실 영국식 밀크티라면서 인도네시아산 찻잎에 네덜란드어로 이름 붙인 것도 조화롭지가 못 하죠. 영국에서 티타임에 인도네시아산 찻잎을 본 적이 있던가...

데자와는 제가 영국 가기 전부터 즐기던 음료였습니다. 귀국해 편의점 온장고에 데자와가 들어 있는 것 보고 꼭 옛 친구를 만난 듯 반가워했죠. "너 아직 살아 있었구나!"  


 

 

 

 

 



그런데. 
두둥

이거 뭡니까?

미국산 '데자와'네요.
이건 밀크티가 아니라 미국식 '아이스(트) 티'라서 성격이 좀 다르긴 하지만 이름도 같고 포장 디자인도 비슷하니 누가 원조이고 누가 베낀 건지가 궁금해집니다. 일본 제품을 베꼈을 수도 있고요. 참고로, 영국인들은 아이스크림은 잘 먹어도 아이스 티는 안 마십니다. 찬 음료를 마실 만큼 더운 날이 없어요. 반바지도 잘 안 입습니다. '가스파쵸'를 처음 접했을 때도 낯설어했다죠?  "세상에나, 차가운 토마토 수프라니." 

차 얘기 나왔으니 말입니다,
우리 차인들은 "야아, 반갑다. 언제 차나 한 잔 하자." 해놓고는 만나서 엉뚱하게 밥 먹고 커피만 마시고 헤어지는 사람들을 가장 가증스러워 합니다. 왜 차 안 마십니까? 왜 약속 안 지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