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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즈 81 ◆ 프랑스 리바로 Livarot AO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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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치즈

2021. 6. 28.

 

 

 

 

 

원어민 발음을 들어 보니,

"리v봐ㄹㅎ오".

 

이 고약한 발고린내 치즈가 한국에 수입돼 들어왔다니 단단은 놀라 자빠지것습니다. 우리나라는 이제 생활 수준이 매우 높아진 선진국임에 틀림없습니다. 

 

꺄몽베흐, 뉴샤뗄, 퐁 리붸끠의 본고장이기도 한 프랑스 북부 노르망디산 치즈입니다. 1231년에 이미 '껍질을 닦은 치즈washed rind cheese' 리바로에 대한 기록이, 18세기 초에는 리바로 마을에서 만들어 파리에 공급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19세기에는 철도의 발달로 전국으로 퍼져 나가 꺄몽베흐를 제치고 가장 많이 팔리는 노르망디산 치즈가 되어 황금기를 맞았었다고 합니다. 1877년 한 해에만 25,000개가 팔렸습니다. 요즘은 미식가들이나 먹는 괴팍한 치즈로 간주되지만 "가난한 자의 고기"라는 기록이 있는 걸로 보아 옛 시절엔 노동자 계급이 먹었던 모양입니다. 

 

포장에 또 노란색 빨간색의 AOP[PDO] 인장이 보이죠? 1975년에 AOC(appellation d’origine contrôlée)를 획득해 그 뒤 유럽연합에 의해 AOP라는 새 명칭의 인장을 얻었는데, 이런 치즈들은 생산자가 마음 내키는 대로 만들어서는 안 되고 공문서화한 엄격한 제법에 따라 만들어야 합니다. 2017년부터 꺄몽베흐는 최소 50%, 리바로는 100% 노흐멍드 품종 소의 젖을 써서 만들어야만 한다는 규정이 추가되었습니다. 2000년에는 규정이 더 엄격해져 생산지가 칼바도스, 오르네, 디베, 투케, 이 네 개의 데파르트멍department에 걸쳐 있으면서 리바로 마을을 포함한 페이 도쥐Pays d’Auge 부근으로 한정되었습니다.   

 

이것도 꺄몽베흐, 뉴샤뗄, 퐁 리붸끠처럼 껍질에서부터 안으로 숙성해 들어가는 'soft ripened (pates molles) cheese'로 분류되고, 꺄몽베흐와 마찬가지로 원반형에 250g 무게를 하고 있습니다. 껍질이 주황빛을 띠는 걸 보니 'soft ripened cheese'이면서 'washed rind cheese'입니다. 숙성 기간 동안 치즈 표면을 스폰지나 붓을 써서 조제 소금물로 반복해서 문지르고 닦아 주는 겁니다. 흰곰팡이 연성 치즈 특유의 버섯맛에 발냄새를 포함한 이런저런 고약한 향이 추가됩니다.

 

 

 

 

 

 

 

 

제가 사 온 리바로의 <그랑도르쥐E. Graindorge> 브랜드가 생산하는 치즈들입니다. 대개 제법이 비슷한 치즈 여러 종류를 같이 생산하곤 하죠. 모두 AOP[PDO] 인장이 붙은 전통 치즈들인데, 노르망디에 쟁쟁한 치즈들 많네요. 클래식 치즈들이니 이름과 더불어 빛깔과 형태를 기억해 두시면 좋겠습니다.  

 

 

 

 

 

 

 

 

 

리바로는 누구든 금세 알아볼 수 있습니다. 옆면에 다섯 번 친친 감은, 갈색으로 숙성한 사초과의 풀laîches이 있거든요. 이 때문에 다섯 줄의 계급장을 단 ☞ 대령이라는 별명을 얻게 되었습니다.

 

이걸 왜 두르냐면요, 옛 시절엔 치즈보다 버터를 만드는 게 더 수지 맞는 일이어서 유지방을 걷어 버터 제조에 쓰느라 리바로의 유지방 함량이 총 5-10%밖에 되지 않았다고 합니다. 지방 함량이 일정 수준은 돼 줘야 치즈가 견고해지는데 너무 적으니 숙성시키는 동안 무너지는 일이 다반사, 그래서 옆구리를 지지하느라 저렇게 풀로 감아 주었던 거죠. 이후 1930년까지 유지방량을 30%, 오늘날에는 40%까지 늘려 치즈를 더이상 풀로 감아 줄 필요가 없어졌으나 수많은 치즈들 중 소비자의 눈에 띄기 위해 개성을 부여하고 전통 요소를 부각시키느라 여전히 이 관행을 고수하고 있습니다.   

 

요즘은 생산부터 숙성까지 생산자가 모두 도맡아 하지만 2차대전 때까지 농가는 뽀얀 신선fresh 치즈 상태까지만 만들고, 숙성장affineur은 갓 만든 리바로를 농가로부터 받아다 숙성을 담당했습니다.  

 

 

 

 

 

 

 

 

 

주황색의 두툼한 원반형에, 옆면에는 구멍이 숭숭 나 있는 것도 외형상의 큰 특징입니다. 표면이 매우 질척하고 끈적합니다. 지름 12cm, 높이 3cm, 무게 250g이 표준 규격입니다. 이보다 크거나 작게 만들 수도 있습니다.

 

생산 과정을 간략히 설명하자면,

 

 원유는 100% 그 고장 품종인 노흐멍드 종에서만 얻습니다. 일년에 최소 6개월이상 신선한 풀을 뜯겨야 하고 나머지 기간은 건초를 줘도 됩니다. 


 응고효소rennet를 넣기 전 저온살균 또는 가온처리를 할 수 있는데, 저온살균 온도보다 낮은 온도로 가온처리한 것은 '생유raw milk' 치즈가 됩니다. 2014년 기록에 의하면 리바로는 연간 1,200톤을 생산하는데, 이 중 12%가 생유를 써서 생산한 것입니다. 

 

 응유curd는 중간 크기가 되도록 잘라 성형틀에 담고 최대 48시간동안 딱 한 번만 뒤집으며 유장whey이 빠져 나가게 둡니다. 

 

 그 뒤 건염 또는 수염 처리하고 숙성실로 보냅니다.

 

참고로, 리바로에는 지오트리춤 칸디둠Geotrichum candidum이라는 곰팡이가 쓰이는데, 꺄몽베흐('Penicillium candidum'과 함께 씀), 머스떼허, 발롱세(염소젖 치즈), 샤비슈 뒤 푸아투(염소젖 치즈), 림부르거의 생산에도 같은 곰팡이가 쓰이고, 쌍 넥떼허, 똠 드 사부와에도 쓰여 초기 숙성 단계에서 중요한 작용을 합니다.  


숙성 기간 동안 최소 세 번은 조제 소금물로 닦아 줘야 하는데, 이때 고운 발색을 위해 아나토annatto를 첨가할 수 있습니다. 발냄새 나게 하는 브레비박테리움 리넨스Brevibacterium linens를 활성시키기 위해 붓으로 표면을 쓸어 줄 수도 있습니다. 


 그 뒤 늦여름에 수확해서 손질하고 말려 둔 사초과 풀laîches로 옆면을 친친 감아 전통과 리바로의 개성을 살려 줍니다. 치즈 공장 뒤에 아예 이 갈대를 심어 자급하는 생산자도 있습니다. 대개는 외부로부터 공급 받습니다. 붉은 빛의 종이 띠로 대체하기도 했으나 종이 띠를 사용하는 것은 2017년에 폐지되었습니다. 


리바로는 생산지에서 반드시 최소 21일은 숙성을 시킨 뒤 출하해야 합니다. 소비자 입 속에 들어갈 때까지 숙성은 계속됩니다.   
    

리바로 생산자는 다음의 네 개가 있습니다. 구매 시 참고하십시오.


Domaine Saint Hippolyte (생유를 쓰는 농가) 

Fromagerie de la Houssaye (사초를 직접 키워 자급)  

Fromagerie Graindorge (이 글에서 소개한 브랜드)

Société fromagère d’Orbec (<락탈리스Lactalis> 그룹 산하, '랑크토Lanquetot' 브랜드명으로 출시)

 

 

 

 

 

 

 

 

 

포장에 있는 <그랑도르쥐> 리바로의 정보를 옮겨 봅니다.

 

• 식품유형: 자연치즈
 살균여부: 72˚C에서 15초간 살균
 제조원: Fromagerie de Livarot [FDL]
 원산지: 프랑스
 내용량: 250g (735kcal)
원재료명: 우유, 소금, 젖산발효균, 게오트리춤 칸디둠, 레닛, 안나토 색소 

100g당
 열량: 294kcal
 나트륨: 640mg (소금 1.6g) 
 탄수화물: 0g 중 당류 0g
 지방: 22g 중 트랜스지방 0g, 포화지방 14g, 콜레스테롤 71mg
 단백질: 24g

 

 

 

 

 

 

 

 

 

조각조각 잘라 봅니다. 보슬거리는 심지 없이 속살paste이 균일하면서 구멍이 많고 폭신폭신 탄력 있습니다.

 

 

 

 

 

 

 

 

 

치즈맛을 한껏 음미하고 싶어 사워도우 빵 대신 바겟트를 집어 왔는데, 이런, 집에 와서 썰어 보니 호밀을 섞은 바겟트입니다. 겉을 잘 살피고 집어 왔어야지, 나무라시겠지만 저는 지금까지 바겟트는 무조건 백밀로만 만드는 줄 알았어요.;; 

 

냉장고 안에 최적기에 이른 김치 냄새가 가득 찼었습니다. 포장을 끄르니 맨 먼저 물에 불린 북어향이 화악 올라와 부엌 전체에 퍼집니다. 저는 홍어를 먹어 본 적이 없어 잘 모르겠는데 홍어 냄새라고 묘사하는 분들이 많더군요. 코를 가까이 대니 소금 잔뜩 친 막걸리향도 납니다. 매캐하게 쏘는 동물향도 납니다. 축사향이라고 하는 분도 있고요.

 

질감

껍질rind은 뻐득거리지 않고 쫄깃하니 퍼지fudge 씹듯 입안에서 녹습니다. 껍질을 닦은 치즈들에서 종종 관찰되는 미세한 분말이 지근지근 씹힙니다. 속살paste은 풍미를 회복시키기 위해 실온에 오래 두었는데도 차가운 느낌이 나면서 매끄럽고 탄력 있게 씹히다가 녹습니다. 'soft ripened cheese'들은 대개 속살의 중심부와 주변부 질감이 다른데 이건 그냥 균일합니다. 한입 크기로 잘라서 한 시간 이상 두면 속살이 용암처럼 흘러 내려 형태가 무너집니다. 사진은 아직 30분이 안 지난 상태입니다.

 

껍질쪽은 짠맛, 어릴 때 먹던 약방의 조제 가루 감기약 같은 쓴맛, 집된장에서 나는 쓴맛을 동반한 흙맛earthy, 볶은 콩가루의 고소한 맛, 새우의 단맛과 우마미가 아닌 바닷가재 같은 좀 더 묵직한 갑각류의 껍질과 대가리를 한데 넣고 끓여 농축시킨 육수의 우마미가 납니다. 속살은 시래기된장국, 잘 익은 열무김치, 진한 버섯크림수프 맛이 나 브리 드 모brie de meaux의 맛이 그대로 들어 있고, 여기에 껍질을 닦은 치즈 특유의 소금 잔뜩 친 막걸리 같은 짠맛과 이스트맛이 납니다. 양파맛, 건초향, 훈향도 리바로의 맛을 묘사하는 데 자주 동원되곤 합니다. 이푸아스에서 나는 꽃향과 꿀향 같은 화사한 느낌은 없고 영국의 스팅킹 비숍과 맛이 비슷합니다.

 

 

 

 

 

 

 

 

짜고 시어서 맨입에 한 조각 이상 먹기는 좀 힘들고 빵과 함께 먹거나 단맛이나 단향 나는 식품과 같이 먹는 게 좋겠습니다. 현지인들은 같은 고장 생산품인 사과 싸이더나 사과 브랜디인 칼바도스를 곁들여 먹는다고 합니다. 노르망디쪽은 일조량이 부족해 포도 농사가 잘 되지 않아 포도주 대신 사과로 만든 술을 즐깁니다. 영국과 비슷하죠. 치즈 자료를 찾다 보면 그 고장 치즈와 그 고장 술을 묶어서 좋은 궁합이라며 제시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렇게 먹는 게 가장 맛있어서라기보다는, 그냥 그 고장에서 그 둘이 같이 생산돼 왔으므로 습관에 의해, 그리고 지역 경제 활성화 차원에서 그런 것으로 이해하고 너무 교조적으로 받아들이지 않아도 됩니다.   

 

리바로 생산자가 제시한 위의 식품 궁합표를 참고하십시오. 뜻밖의 잘 어울리는 음료로 일본 녹차를 꼽고 있어 신기했습니다. 다음 번에는 저도 이렇게 준비해서 먹어 봐야겠습니다. 물에 갠 가루 녹차를 말하는 걸까요, 쪄서 말린 증제찻잎 우린 것을 말하는 걸까요?

 

한국에 이 치즈가 들어왔다는 것은 정말 놀라운 일입니다. 언제 수입이 끊길지 모르니 지금 꼭 맛보시기를 권합니다. 이 치즈를 맛있게 드실 수 있는 분은 치즈 내공이 최고 수준에 이른 분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향만 고약할 뿐 맛은 복잡하면서 좋습니다. 츄라이 츄라이.

 



껍질을 닦은 연성 치즈 - 일명 '발고린내' 치즈들

프랑스 이푸아스

☞ 프랑스 랑그르

프랑스 아피델리스 오 샤블리

☞ 프랑스 머스떼허

프랑스 쌩 베흐니에

☞ 이태리 탈레지오 탈렛지오

☞ 영국 스팅킹 비숍

 

지오트리춤 칸디둠을 쓰는 치즈

꺄몽베흐 

머스떼허

발롱쎄

샤비슈 뒤 푸아투

똠 드 싸부와

 

노르망디산 치즈

꺄몽베흐

뉴샤뗄

퐁 리베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