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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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니한테 까불지 마라 Please Do Not Annoy or Tease the MIN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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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이야기

2022. 5. 3.

 

(반말 주의)

 

 

 

 

1964년도 <몬테 카를로 랠리> 우승을 기념해 2020년에 100대 한정 생산한 미니 이야기.

[2분 37초 소요]

 

 

 

집이 산꼭대기에 있는 데다 역세권이 아니니 대중교통을 이용해 대학에 다니는 것은 여간 힘들고 시간 걸리는 일이 아니었다. 운전 면허를 취득할 수 있는 나이에 이르자 부지런히 면허를 따고 첫 차로 티코Tico를 장만했다. 첫 차는 펄pearl이 가미된 푸른색peacock blue 티코, 두 번째 차는 펄이 가미된 빨간색 티코였다. 티코가 얼마나 마음에 들었는지 생애 첫 차와 두 번째 차를 모두 티코로 선택해 20대 전체를 티코와 함께 보냈다.

 

어디를 가도 내 차 주차할 공간 정도는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었고, 내 몸처럼 마음 먹은 대로 민첩agile하게 움직여 주어 운전하는 즐거움이 있었다. 남들 버벅거리며 유턴할 때 늘 한 번에 가뿐히 턴한 뒤 쌩 하고 사라졌고, 편도 네 시간 거리의 고속도로도 수 차례 달려 보았다. 파워 스티어링 옵션이 없었던 덕에 팔 힘도 쑥쑥 자라 아브라함의 시종이 청하면 우물에서 물을 오십 번이라도 길어 올릴 태세였다. (☞ 당찬 이삭의 아내, 가부장적인 사회를 일깨우다) 해치백이라서 짐도 꽤 많이 실을 수 있어 첼로 두 대도 넣고 다녀 봤다. 값싼 차였지만 나름 개성 있게 꾸미고 정비도 배워 간단한 문제들은 손수 해결, 닦고 기름 치고 조이며 애지중지 돌봤다. 그 작은 차 안에서 남친과 즐거운 시간도 가져 "작은 차 큰 기쁨"이라는 광고 문구를 몸으로 실감할 수 있었다. 

 

장점은 여기까지.

이제부터는 'harsh reality'에 대하여.

 

작은 체구의 20대 처자가 깜찍하게 꾸민 경차를 몰고 다녔으니 운전자 보행자 가릴 것 없이 거리의 무수한 남정들로부터 얼마나 많은 희롱과 성희롱을 당했을지는 짐작할 수 있으리라. 평생을 살아가는 데 필요한 전투력은 이때 다 쌓은 것 같다. 지금처럼 '썬팅'을 진하게 할 수가 없던 때여서 차 안을 고스란히 보이며 다닐 수밖에 없었는데, 심지어 주황 신호일 때 건넜음에도 신호 위반을 구실로 차를 세워 면허증을 빼앗고는 자기가 사 주는 밥 먹고 데이트 해 주면 없던 일로 하고 면허증을 돌려 주겠다는 의경도 있었다. 신호 받아 나란히 정차중인 옆 차의 남성 운전자가 창문 내려 보라고 손짓하더니 "바퀴에 껌 붙었어요." 킬킬거리던 날은 단단이 썬글라스를 가운뎃손가락으로 치켜올리기 버릇을 들인 첫 날이 되었다.

 

 

 

 

 

 

 

 

얼마 전에 ☞ 잉글랜드 남부 여행기를 올리면서 "작은 차를 좋아해 첫 차로 티코를 몰았었다, 다시 내 차를 사게 되면 이번에는 레이싱 그린racing green 색상의 미니를 사고 싶다"는 소망을 피력했었다. 그런데 '어느 세련된 훈남'께서 덧글에 아래의 글을 링크 걸어 전투력 만땅 시절의 단단을 소환하셨다. 

 

 

 

세계가 놀란 독일 아우토반에서의 티코 이야기

어느 한적한 오후.

 

독일의 아우토반을 달리던 우리의 자랑스런 티코가 그만 고장으로 갓길에 정차중이었다.

알다시피 독일은 히치하이크hitchhike로 손을 흔들어 방향만 맞으면 누구나 태워 주는 분위기 좋은 나라이다. 하여튼 우리의 티코 운전자는 고속도로이긴 하지만 손을 흔들어 일단 아우토반을 빠져나갈 생각으로 하치하이킹을 시도했다.

몇 대의 차가 지나가고 드디어 나타난 티코의 구세주!

멋진 벤츠를 끌고 등장했다.

벤츠: 아, 차가 고장났군요. 제가 도와 드릴 일은 없나요?
티코: 정말 고맙습니다. 제 차를 톨게이트까지만 끌어다 주시면 견인차를 불러 옮길 수 있을 것 같으니 부탁 좀 드릴게요.

벤츠 운전자는 왕년의 카레이서로서 자신의 벤츠를 자랑하고 싶었다.

게다가 딱 보니 티코는 자신의 차로 끌어도 아무 무리 없어 보이기도 해 자신의 차로 직접 끌고 다음 톨게이트까지 데려다 주겠다고 말했다.

벤츠: 제가 너무 빨리 달린다고 생각되면 뒤에서 경적을 울려 주세요. 그럼 천천히 달릴게요.

한참을 그렇게 다음 톨게이트까지 가고 있는데

난데없이 뒤에서 포르셰가 시속 200km의 속력으로 쌔앵! 지나가는 게 아닌가.

이에 열받은 왕년의 카레이서 벤츠 운전자,

뒤에 티코를 매달고 있다는 사실도 잊은 채 순간적으로 흥분해서 포르셰와 경쟁을 벌이게 되었다.

벤츠와 포르셰는 정말 빨랐다. 포르셰가 250km를 넘어서자 벤츠 역시 250km로 달리면서 영화에서나 보던 대추격전을 벌이며 아우토반의 끝까지 달리게 되었다.

그 사건이 있은 지 3개월 후.

대우의 직원이 독일의 티코 시장조사를 위해 독일에 갔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아우토반을 달리는 차 중 40-50% 정도가 티코인 게 아닌가!

대우 직원은 예상치 못 했던 티코의 열풍에 놀라 이 상황이 어떻게 된 것인지 수소문하여 당시 사건을 직접 목격한 어느 운전자를 만날 수 있었다.

목격자: 내가 그날 아우토반을 달리고 있었다오. 나도 한스피드 하는 놈이라 200km 정도로 스피드를 즐기고 있는데 갑자기 뒤에서 포르셰하고 벤츠가 250km 넘는 속도로 내 옆을 쌩 하고 지나가는 게 아니겠소? 그런데, 오오, 그 벤츠 뒤를 티코가 바짝 붙어서 똑같은 속도로 달리고 있는 거요. 그 세 대가 온 아우토반을 자기 무대인 것처럼 휘젓고 다녔지.

대우 직원은 티코가 250km로 달렸다는 데 의아해하지 않을 수 없었지만 끝까지 얘기를 들었다.

목격자: 그런데 더 놀라운 건, 그 벤츠 뒤를 바짝 뒤쫓던 티코가 글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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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적을 마구 울리며 그 벤츠와 포르셰한테 비키라고 하는 게 아니겠소?

 

[출처: https://hansfamily.kr/48 『한』가족]

 

 

 

 

 

 

 

 

하............ (장탄식)

묻어 두고 잊고 있었던 티코 희롱을 이 나이에 또 당하다니.

 

분노의 날아차기를 재차 시전하려다 역대 티코 희롱글 중 가장 정교하고 내가 생각해도 재미있어 참는다. 

 

티코와 2세대 경차인 마티즈가 우리 사회에 끼친 공로에 대해 생각해 보자.

 

(1) 흰색, 쥐색, 검은색 차로 가득한 우리의 무채색 도로에 매력적인 블루로, 레드로, 은행잎 색으로 악센트를 찍어 온 국민의 눈을 즐겁게 하고 컬러의 소중함을 일깨워 주었다. 

 

(2) 한국 최초의 경차였다. (예술가는 '최초'라는 말에 홀리는 경향이 있다.) 인구 밀도 높고 건물 밀도 높은 대도시의 인간들은 경차를 경시할 하등의 이유가 없다. 차의 1차 목적은 과시가 아니라 굴러가는 것이고, 사람을 이 지점에서 저 지점으로 옮겨 주는 것이다. 경차 소유자는 남의 눈을 개의치 않는 꿋꿋하고 자유로운 영혼의 깨인 (돈 없는) 사람이다.

 

(3) 기름을 덜 소비한다. 우리는 지구와 다음 세대를 생각해야 한다. 혼자 그 큰 차의 그 많은 공간을 비운 채 달려 기름을 낭비해서는 안 된다. 

 

 

 

 

 

 

 

 

 

 

 

 

 

 

 

이제 미니 이야기를 해보자.

 

영국에 가기 전에는 도로에서 외제차 보기가 힘들었는데 강산이 한 번 변한다는 10년이 지나 귀국했더니 깜짝 놀랄 정도로 외제차가 많아졌다. 어제는 그 잠깐 걷는 새 포르셰만 일곱 대를 봤다. 미니도 많다. 단단은 잘 꾸민 미니를 보면 기분이 좋아져 사진기에 꼭 담는다. 미니 소유자를 보면 악수 청하고 차 한 잔 나누고 싶어진다. 가만 보니 한국의 미니 소유자들이 본고장인 영국의 미니 소유자들보다 차를 훨씬 공들여 꾸민다.

 

참,  

미니 뒷번호판 하단에 작은 글씨로 경고문이 써 있는데 자세히 보신 분?

"Please Do Not Annoy or Tease the MINI"

티코 몰던 옛 시절이 떠올라 웃음이 난다. 

 

車 브랜드의 번호판 밑 치열한 '한줄 썰전'

 

 

 

 

 

 

 

 

미니 애호가인 단단은 이런 것도 다 가지고 있다. 큰 사진으로 올렸으니 클릭해서 크게 띄워 놓고 보시라.

 

1959년생인 미니가 단단이 영국에 있던 2009년에 탄생 50주년을 맞았었다. 영국 조페국과 우정국이 협력해 15,000개 한정으로 기념 동전과 기념 우표를 발행했었는데, 차도 없으면서 기념품을 다 사 두었다. 우표에 찍힌 맞춤 소인이 깜찍하다.

 

동전 앞면은 이렇고,

 

 

 

 

 

 

 

 

동전 뒷면은 이런데,  

차 뒷면과 동전 뒷면을 함께 배치한 센스 보소.

영국은 디자인 감각이 참으로 탁월한 나라여서 디자인 중시하는 단단은 영국에 있을 동안 늘 흥분 상태로 지냈었다.

 

봉투 속 내용물이 궁금하니 꺼내서 살펴보자.

 

 

 

 

 

 

 

 

속에 든 소책자booklet 표지에는 미니 속을 찍어 놓았다. 

빨간 티코 속에 있는 것 같아 추억이 새록새록, 저 아늑한 실내.

 

우려와 달리 놀라울 정도로 실내 공간이 넓었다는데, 어떻게 해서 이를 성취할 수 있었는지에 대해서는 아래의 영상이 잘 설명해 준다. [8분 28초 소요]

 

 

 

 

 

 

 

 

 

즉, 엔진 방향을 바꾸어 엔진룸 길이를 줄이고, 기어 복스를 엔진 밑으로 보내고, 전륜 구동을 택해 뒷바퀴로 이어지는 구동축을 없애고, 창문을 밑이 아닌 옆으로 밀게 해 문짝 두께를 줄여 실내 공간을 많이 확보할 수 있었다는 것. 

 

 

 

 

 

 

 

 

서양인들의 좋은 습관 중 하나는 디자이너를 반드시 밝히고 기리는 것으로,

이케아 카탈로그를 보면 심지어 단돈 만원짜리 소품의 디자이너 이름도 일일이 밝히고 있다. 

우리는 티코나 마티즈의 디자이너 이름은커녕 디자이너 자체를 의식해 본 적도 없지 않나.

 

"The public don't know what they want; it's my job to tell them."

미니의 디자이너가 한 말로, 모든 분야의 창작자가 마음에 새겨야 할 경구다.

스티브 잡스도 똑같은 말을 했었다.

 

 

 

 

 

 

 

 

미니의 간략한 역사.

영국인들은 자기들의 1960년대를 'swinging 60s'라고 부르며 소중히 여기는데, 미니와 함께 미니스커트가 유행을 했고 대중음악도 쟁쟁했던 때니 근사했던 시절임에는 틀림없다고 생각한다. 나도 티코 타고 다닐 때 미니스커트를 즐겨 입었었는데, 예쁜 얼굴은 아니었지만 미니스커트 입은 작고 날씬한 20대 여성과 작은 차는 내가 생각해도 잘 어울리는 조합 같기는 하다. 미니를 사면 이제는 늙었으니 몸을 꽁꽁 가리고 다녀야겠지만. 

 

 

 

 

 

 

 

 

미니의 역사 계속.

미니는 영국 자동차 역사상 가장 많이 팔린 차로, 인기를 끌게 된 계기가 몇 가지 있었다.

 

1956년 영국과 이집트 사이의 수에즈 운하 소유권 분쟁으로 유조선 운항에 차질이 생겨 휘발유 소비를 줄여야 했기에 작은 차의 필요성이 대두되었고,   

터프한 아마추어 랠리에서 튜닝한 '미니 쿠퍼'와 '미니 쿠퍼 S'가 무려 153회나 우승을 해 화제가 됐었던 것과,

영화 <Italian Job>(1969)에서 당차고 쿨하게 그려졌던 것이 인기를 촉발해 판매가 급상승했었다고.   

 

아래에 미니 운전자들과 애호가들이 환호하고 짜릿해할 만한 영화 속 명장면을 걸어 본다. [11분 30초 소요]

단단이 자동차 추격 씬 중 최고로 좋아하는 것으로, 아찔한 장면이 수두룩, 'health and safety'고 뭐고 없다.

음악도 재미있다.

즐겁게 감상하신 뒤 앞으로는 경차와 미니를 놀리지 마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