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렘 1:19 내가 너와 함께 하여 너를 구원할 것임이니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39강. 영원한 복음과 성도의 죽음 (계 14: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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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강해/요한계시록 강해

2021. 4. 16.

 

♣ -.39강. 영원한 복음과 성도의 죽음 (계 14:6-13).-

-.정낙원 목사

 

성도의 구원은 창세전에 예정이 된 것입니다.

이것은 아버지와 아들 간에 창세전에 언약을 맺었기 때문입니다.

그 언약의 내용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자기 백성들이 거룩하고 흠이 없어지는 것입니다.

죄 아래서 구원을 받는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이들을 아들(양자)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양자가 된 자들의 이마에 어린 양과 아버지의 이름이 새겨져 있는 것입니다.

천국은 예수그리스도로 구속을 받은 하나님의 아들들이 하나님께서 세세토록 그 은혜의 영광을 찬미하게 됩니다.



이것이 성경의 전체 내용입니다.

이를 설명하기 위해서 만물이 창조가 된 것입니다.

하나님은 만물을 가지고 자기 백성들 구원하는 이야기를 하고 계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은 자기 백성과 자기 백성 아닌 자 두 사람의 이야기로 전개가 되는 것입니다.



자기 백성을 약속으로 난 자라고 하고 자기 백성 아닌 자를 육으로 난 자라고 합니다.

약속으로 난 자의 소속은 하늘이고 육으로 난 자의 소속은 땅입니다.

그래서 성경 속에는 약속으로 난 하늘에 속한 자들은 이 땅에서 나그네와 행인으로 살아가는 모습으로 나타나고 있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11장의 믿음에 선진들이 바로 이들입니다.

이들은 모두가 믿음에 이끌려 살았습니다.

이들 속에는 모든 성도들이 포함 되어 있습니다.

우리도 그들 속에 포함 되어 있습니다.



왜 믿음이 이들로 하여금 그리스도의 삶에 동참케 하였을까요?

이는 창세전에 영생 받기로 작정이 된 어린 양의 생명책에 녹명이 된 자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영생 주시기로 작정 된 자들은 다 예수를 믿더라고 합니다.

이를 요한계시록 14장에서 어린 양의 생명책에 녹명이 된 자들은 다 구원을 받아 하늘에 있는 시온산에서 어린 양과 더불어 함께 있는 것으로 말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누구입니까?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 하실 분이십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오셔서 저희와 너희를 구분하시는 일을 하신 것입니다.

너희에게는 천국의 비밀을 알려 주셨고, 저희에게는 비밀로 하셨습니다.



그래서 성경을 성령의 감동으로 기록을 한 것입니다.

이는 성령으로 거듭난 하늘 백성들만 알아듣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땅에 속한 자들은 성경을 표피적으로 나타나는 것만 보지만 성령으로 거듭난 하늘에 속한 자들은 문자 속에 담긴 하나님의 뜻을 읽어내게 됩니다.



구원이란? 사망에서 생명으로 불러냄을 당하는 것입니다.

이를 창세기 1장 3절에서 어둠에서 빛을 불러내는 것으로 말해주었습니다.

창세기 1장의 창조 이야기는 성도들이 구원이야기입니다.

그래서 창조 기사가 불러내고 갈라내고 채우는 것으로 되어 있는 것입니다.



이걸 구약 이스라엘을 통해서 보여주셨습니다.

이스라엘은 아브라함의 후손입니다.

아브라함의 후손들이 애굽의 바로 왕에게 종 노릇하고 있습니다.

이에 하나님은 구원자 모세를 보내서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빼내십니다.



이것은 죄와 사망의 권세로부터 빼내심을 입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구원은 분리 됨이고 갈라짐으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이 세상의 모든 인간은 겉으로는 하나인 것 같으나 실상은 두 부류입니다.

하늘에 속한 자와 땅에 속한 자가 있습니다.



이는 예수그리스도가 만유의 주가 되는데 있어서 필요한 것들입니다.

만물 자체가 예수님이 주와 그리스도라는 것을 드러내고자 창조가 되었기 때문에 이 세상에 두 부류의 인간들이 서로 섞여서 살고 있는 것입니다.

세상에 수많은 민족과 다양한 인종이 있다고 하여도 실상은 하늘에 속한 자와 땅에 속한 자 두 부류뿐입니다.



이걸 요한계시록에서는 하늘에 속한 자들이 이마에는 어린 양과 가 아버지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고 하고 땅에 속한 자들의 이마에는 짐승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고 합니다.

하나님은 이마에 어린 양의 이름이 새겨진 자들을 이 땅에서 빼내는 일을 하시고 짐승은 이마에 짐승의 이름이 새겨진 자들을 이 땅에 붙잡아 두는 일을 합니다.



이러한 구조가 한 집안 속에서 나타납니다.

한 부모로부터 난 자이지만 하늘에 속한 자와 땅에 속한 자가 있습니다.

이것은 마치 예수 안에서 만물이 나왔고 만물 속에 하늘에 속한 자와 땅에 속한 자가 있는 것과 같습니다.

 

창세전에 어린 양의 생명책에 녹명이 된 자가 있고 유기된 자가 있습니다.

예정 된 자들은 천국으로 가고 유기 된 자들은 지옥으로 갑니다.

이걸 인간들 입장에서는 불합리하다고 여기질 것입니다.

왜냐하면, 인간의 의지와 상관없이 정해진 것에 따라 운명이 결정이 되어지기 때문입니다.

이게 죄에요.



죄란? 하나님의 일하심을 자기주체로부터 출발합니다.

나도 좀 인정해 달라는 것입니다.

이게 선악과를 먹은 인간의 모습입니다.



선악과가 뭔가요?

하나님 같이 되고자하는 것입니다.

이게 피조물이 창조주의 자리에 앉고자 하는 교만이에요.



피조물은 하나님의 필요에 의해서 창조가 되었습니다.

피조물의 주인이 하나님입니다.

이걸 토기장이 비유로 말씀 하셨어요.



토기장이가 귀히 쓸 그릇도 만들고 천히 쓸 그릇도 만듭니다.

각각 용도에 따라 사용을 합니다.

여기에 토기가 날 왜 이렇게 만들었느냐고 따질 수가 없어요.

원래 흙인 것을 그릇으로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인간의 존재로부터 출발하면 성경은 사사건건 충돌이 일어나게 되어 있어요.

그러나 언약으로 출발하면 모든게 술술 풀려져요.

모순도 없고 억지도 없어요.

아주 자연스러워요.



육에 속한 자들은 내 인생은 나의 것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하늘에 속한 자들은 내 인생은 하나님의 것이라고 합니다.

언약의 후손들은 자기 인생이 없어요.

언약을 위한 인생이에요.

그러므로 생사화복을 하나님께 맡기고 살게 되는 것입니다.

귀히 쓸 그릇으로 작정이 되었다는 것에 감사와 찬송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생각해 보세요.

하나님께서 인간을 창조 하실 때 아담 한 사람을 창조했습니다.

하와는 아담 속에서 나온 자이므로 아담 속에 포함이 된 자입니다.

그러므로 인류의 조상은 아담 한 사람인 것입니다.



아담이 범죄하자 하나님은 에덴동산에서 쫓아냅니다.

쫓아내면서 여자의 후손이 와서 뱀의 후손과 싸울 것을 약속을 하십니다.

이것은 아담 한 사람 속에서 여자의 후손과 뱀의 후손이 나올 것을 예언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담에게서 가인과 아벨이 등장합니다.



가인은 뱀의 후손으로 아벨은 여자의 후손으로 나타납니다.

그런데 뱀의 후손이 여자의 후손을 죽입니다.

이것은 에덴동산에서 말씀 하신 것과 다릅니다.

에덴동산에서 말씀을 하실 때는 뱀의 후손은 여자의 후손의 발꿈치를 문다고 하고 여자의 후손은 뱀의 머리를 깨트릴 것이라고 하였기 때문입니다.



이 말씀대로 라면 아벨이 가인을 이겨야 합니다.

그러나 나타난 것은 그 반대입니다.

어째서 그런가요?



이는 성도의 구원이 흙에서 난 몸을 벗고 하늘에 몸을 입도록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즉 땅에서 하늘로 빼내심을 입는 것으로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늘에 속한 자들은 땅에 속한 자들로부터 죽임을 당하는 것으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이것이 아브라함 집안에서도 그대로 나타납니다.

아브라함에게 두 아들이 있습니다.

이스마엘과 이삭입니다.



이스마엘은 육으로 낳고 이삭은 하나님의 약속으로 낳습니다.

육으로 난 이스마엘은 뱀의 후손이고 하나님의 약속으로 난 이삭은 여자의 후손입니다.

그런데 육으로 난 이스마엘이 하나님의 약속으로 난 이삭을 핍박합니다.



이것이 이삭의 집안에서도 나타납니다.

이삭에게도 두 아들이 나타납니다.

육에 속한 에서와 영에 속한 야곱으로 나타납니다.



이 구조가 야곱의 집안에서도 그대로 나타납니다.

야곱에게서는 레아와 라헬이라는 두 여자의 후손으로 나타납니다.

레아의 후손이 라헬의 후손을 죽입니다.

이것이 요셉이 그 형제들에게 버림받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이것이 국가적으로도 나타납니다.

북쪽 이스라엘과 남쪽 유다입니다.

북쪽 이스라엘이 남쪽 유다를 늘 괴롭힙니다.



여기서 잘 보시면 항상 뱀의 후손에게 속한 자들이 장자로서 강한 자로 나타나고, 여자의 후손에게 속한 자들은 차자로서 연약한 자로 나타납니다.

그래서 성경은 여자의 후손은 뱀의 후손으로부터 늘 핍박을 받는 것으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이 모두가 언약을 이루기 위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요한계시록에서는 이마에 짐승의 이름이 적힌 자와 어린 양의 이름이 적힌 자로 나타납니다.

짐승의 이름이 적힌 자들을 땅에 거하는 자들이라고 하고,

어린 양의 이름이 적힌 자들은 하늘에 속한 자들이라고 합니다.

여기서도 어린 양의 생명책에 녹명이 된 여자의 후손에 속한 자들이 뱀에게 속한 짐승들에게 핍박을 받고 죽임 당하게 됩니다.



이러한 일들은 창세전에 계획된 일입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에서 천사들이 영원한 복음을 전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복음은 여러 나라와 족속과 방언과 백성들에게 전해지는 것이라고 합니다.

이는 온 세상에 흩어져 있는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전해지는 소식이라는 뜻입니다.



이것은 구원이 구약의 육적 이스라엘에게 국한 된 것이 아니라 온 세상에 흩어져 있는 창세전에 어린 양의 생명책에 녹명이 된 자들에게 주어지는 것이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온 세상에 증거 되는 영원한 복음이라고 합니다.



영원한 복음이란? 창세전에 주어진 복음이라는 뜻입니다.

예수님께서 창세전에 예정된 영원한 복음을 성취하기 위하여 이 세상에 오신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신 것을 천국복음이라고 합니다.



예수님이 탄생 하실 때 하늘에 천사들이 들에 있는 목자들에게 소식을 전합니다.

하늘에는 영광이요.

땅에서는 기뻐하심을 입은 자들에게 평화라고 합니다.



예수님이 육신을 입고 이 세상에 오심으로 창세전에 예정된 복음이 펼쳐지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는 영광이 되고, 땅에서는 어린 양의 생명책에 녹명이 된 자들이 구원을 받게 됨으로 기뻐하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평화가 되는 것입니다.

기뻐하심을 입었다는 말은 예전부터 기쁨을 얻게 되어 있다는 뜻입니다.



죄인에게 기쁨이란 무얼까요?

구원입니다.

죄와 사망으로부터 해방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탄생 하시자 하늘에 천사들이 이 땅에 기뻐하심을 입은 자들을 찾아가서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다고 복음을 전한 것입니다.



복음이란? 죄에서 구원 받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하나님의 백성들을 볼모로 붙잡고 있는 세력들에게는 저주의 소리가 됩니다.

그들에게는 종말을 고하는 소리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천사들이 외치는 영원한 복음 속에 악의 세력을 상징하는 바벨론의 멸망 소식이 함께 들어가 있는 것입니다.



영원한 복음의 내용은 구원과 심판을 동시에 담고 있습니다.

세상 나라는 망하고 성도들이 구원을 받게 됩니다.

구원이 뭐냐? 빼내심을 입는 것입니다.

어떻게 빼내심을 입는가 하면 죽임 당함으로서 빼내심을 당하게 됩니다.

그래서 영원한 복음 속에 바벨론의 망함과 성도들의 죽음이 들어가 있는 것입니다.

지난 시간 성도에게 죽음이란? 하늘나라로 가는 수순이라고 했습니다.



요한복음 10장을 봅시다.



요 10:17-18=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시는 것은 내가 다시 목숨을 얻기 위하여 목숨을 버림이라 18 이를 내게서 빼앗는 자가 있는 것이 아니라 내가 스스로 버리노라 나는 버릴 권세도 있고 다시 얻을 권세도 있으니 이 계명은 내 아버지에게서 받았노라 하시니라”



예수님께서 내가 목숨을 얻기 위하여 목숨을 버린다고 하셨습니다.

얻는 목숨은 무엇이고, 버리는 목숨은 무엇입니까?

얻는 목숨은 하늘에 목숨이고, 버리는 목숨은 땅에 목숨입니다.

예수님은 하늘에 목숨을 얻기 위하여 땅에 목숨을 버린 것입니다.



이걸 하나님 사랑이라고 합니다.

어째서 죽음을 사랑이라고 합니까?

이는 땅에 목숨을 버림으로서 하늘에 목숨을 얻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자신이 십자가를 지는 것이 아버지께 영광이 된다고 한 것입니다.

죽음으로서 창세전에 아버지와 가졌던 그 영광을 함께 누린다고 하신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예수님에게 속한 어린 양의 생명책에 녹명이 된 자들도 예수님과 같은 운명 속에 놓여 있음이 됩니다.

그래서 예수 때문에 죽임 당한 어린 양의 생명책에 녹명이 된 십사만 사천이 하늘에 있는 시온 산에서 어린 양과 함께 있는 것으로 말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뱀의 후손들에게 하늘에 속한 자들을 이 땅에서 쫓아내라고 합니다.

우리가 자진해서 나가지 않으니까 강제로 쫓아내는 것입니다.

이것이 요한계시록에서 땅에 짐승들이 어린 양의 생명책에 녹명이 된 자들을 죽이는 것으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 중 13절을 보면 “주 안에서 죽은 자들은 복이 있다”고 합니다.

어째서 주 안에서 죽는 것이 복인가요?

이제부터 이 땅에서의 수고를 그치고 주의 나라에서 쉬게 되기 때문입니다.

이 말 속에는 이 땅에서의 성도들의 운명은 수고하고 슬픔 속에 처해 있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주 안에서 죽은 자는 그 수고를 그치고 쉬게 된다고 하는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21장 3-4절을 봅시다.



계 21:1-4= “또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보니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이 없어졌고 바다도 다시 있지 않더라 2 또 내가 보매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니 그 예비한 것이 신부가 남편을 위하여 단장한 것 같더라 3 내가 들으니 보좌에서 큰 음성이 나서 가로되 보라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들과 함께 있으매 하나님이 저희와 함께 거하시리니 저희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은 친히 저희와 함께 계셔서 4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씻기시매 다시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러라”



사도 요한이 새 하늘과 새 땅이 하늘로서 내려오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리고는 하나님의 장막이 성도들 위에 임하는 것입니다.

천사들이 이제 하나님과 구원 받은 성도들이 함께 거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자기 백성들의 눈에 눈물을 닦아 주시고 계신 것입니다.



이는 자기 백성들이 눈물 골짜기로 통행에 왔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그 눈에 눈물을 닦아주시면서 다시는 사망이나 애통이나 곡하거나 아픈 것이 없게 해 주신다고 하시는 것입니다.

이 말은 곧 천국은 지옥을 지나온 사람들에게 주어지는 곳이란 뜻입니다.

그래서 십자가 없이는 천국도 없다고 하는 것입니다.



우린 모두가 우리 의지와 상관없이 예수 라는 배에 태워져서 풍랑 이는 이 세상을 항해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계신데도 풍랑은 닥칩니다.

배에 물이 들어오고 난리입니다.

이 모두가 다 예수님을 모시고 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서 예수님과 함께 지옥을 순행하는 것입니다.

마치 구약 이스라엘이 죽음의 바다를 모세에게 속하여서 건넌 것처럼 말입니다.



지옥을 지나지 않고서는 천국에 갈 수가 없듯이 죽음을 지나가지 않으면 영생도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 땅의 짐승들에게 어린 양의 생명책에 녹명이 된 성도들을 죽이게 하는 권세를 주신 것입니다.

이는 하늘에 속한 자기 백성들을 이 땅에서의 수고와 슬픔을 그치게 하려는 것입니다.

이걸 하나님의 사랑이라고 합니다.



지난 시간에 짐승은 이마에 짐승의 이름이 적힌 자들은 죽이지 않고 어린 양의 이름이 적힌 자들만 골라서 죽인다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성도는 이 땅에서 필연적으로 땅에 거하는 자들로부터 미움을 받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같은 소속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요한복음 15장을 봅시다.



요 15:18-21=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면 너희보다 먼저 나를 미워한 줄을 알라 19 너희가 세상에 속하였으면 세상이 자기의 것을 사랑할 터이나 너희는 세상에 속한 자가 아니요 도리어 세상에서 나의 택함을 입은 자인고로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느니라 20 내가 너희더러 종이 주인보다 더 크지 못하다 한 말을 기억하라 사람들이 나를 핍박하였은즉 너희도 핍박할 터이요 내 말을 지켰은즉 너희 말도 지킬 터이라 21 그러나 사람들이 내 이름을 인하여 이 모든 일을 너희에게 하리니 이는 나 보내신 이를 알지 못함이니라”



본문을 잘 보면 예수님과 세상은 서로 원수지간임을 보게 됩니다.

세상이 예수님을 미워한 것은 예수님이 세상에 속하지 아니하였기 때문입니다.

세상을 장악하고 있는 마귀 입장에서는 예수님은 적이에요.



그래서 마귀는 세상에 속한 자들을 시켜서 예수를 죽인 것입니다.

이것이 예수님에게만 국한 된 것이 아니고 예수를 믿는 자들에게까지 전이 되어서 나타납니다.

이를 알고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는 것은 너희가 세상에 속하지 않고 나에게 속하였기 때문이라고 미리 알려 주시는 것입니다.



이러한 일이 닥치거든 당황하거나 놀라지 말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에게 속한 자들은 세상에 속하지 않았기 때문에 핍박을 받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에서는 예수 때문에 죽임 당하는 자들은 복이 있는 자들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성도의 고난은 우리가 원하고 자처해서 받는 것이 아니에요.

예수님에게 속한 자들은 자연적으로 예수님과 동일한 운명으로 살게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억지로 고난을 자초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마치 갈멜산에서 바알 선지자들이 자기 몸에 피를 내면서 자신의 종교적 열정을 드러냈듯이 지금도 과도한 종교적인 열심으로 자기 몸을 학대하는 자들이 있어요.

이들은 성경을 문자적으로 보기 때문에 예수 믿으면 고난 받는다고 하니까 스스로 고난을 자초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신앙은 억지로 고난을 당하는 것이 아니에요.

억지로 고난당하는 것은 고난이 아니라 고생이에요.

자기 몸을 학대하는 거에요.

이건 세상 종교에서 행하는 것들입니다.



성도의 구원은 구약 이스라엘을 통해서 보여 주셨습니다.

구약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사백 년 동안 종살이 한 것은 그들의 원함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하신 언약을 이루기 위하여서입니다.

하나님께서 정한 때까지 애굽의 바로 아래서 핍박을 당하도록 하신 것입니다.

애굽에서 빠져 나오는 것도 그들의 힘으로 나오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이 업고 나온 겁니다.



그러니까 고난 속에 집어넣은 것도 하나님이고, 고난에서 빼내는 것도 하나님이십니다.

우린 장기판의 졸처럼 장기를 두시는 하나님에 의하여 이리저리 쓰임 받다가 결국에는 죽임을 당하고 하늘로 가게 되어 있습니다.

이게 이 땅에 어린 양의 생명책에 녹명이 된 자들의 운명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거든 그것은 곧 나를 미워하는 것이라고 알려 주신 것입니다.



우린 예수님 때문에 미움 받습니다.

그런데 그 미움을 지나고 나면 쉼이 주어집니다.

성도의 죽음은 천국에 쉬러 가는 것이기 때문에 축복인 것입니다.



이것을 오늘 본문에서 주 안에서 죽은 자는 복이 있다고 말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이 소식을 천사들이 이 땅에 있는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전해 주고 있습니다.

본문을 보면 천사들이 바쁘게 움직이지요.



세상 속에 있는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영원한 복음도 전하고,

이 세상을 상징하는 바벨론이 망한다는 것도 전하고,

주 안에서 죽은 자들이 복이 있다는 것도 전하고 있습니다.



천사는 하나님의 메시지를 전하는 전령들입니다.

천사들이 바삐 움직이고 있다는 것은 그만큼 하나님이 바삐 일하시고 계시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이 급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일컬어 졸지도 아니하시고 주무시지도 아니하신다고 하는 것입니다.



성도들을 이 세상에 보내신 분이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이 성도들의 주인입니다.

주인이기 때문에 불철주야로 자기 백성들의 인생을 간섭하시고 있는 것입니다.

짐승들이 일어나도 두려워 할 것이 없습니다.

그것은 모두 하나님의 허락 하에서 일어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자기 백성들의 구원을 위하여서는 반드시 짐승이 필요하기 때문에 짐승에게 권세를 준 것입니다.

모두가 하나님께서 사용하는 도구들입니다.

비록 우리가 종일 도살 할 양처럼 놓인다고 하여도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어지지 않으니까 안심하시길 바랍니다.



요한계시록을 통해서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하나님께서는 자기 백성들을 반드시 구원을 해 내신다는 것입니다.

어린 양의 생명책에 녹명이 된 자들은 하나님의 이름을 걸고 지켜내신다고 하십니다.

그래서 자기 백성들의 이마에 어린 양과 하나님의 이름을 새겨 놓은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파송하시면서 하시는 말씀이 몸을 죽이는 자를 두려워하지 말고 몸과 영혼을 멸하시는 하나님을 두려워하라고 하셨어요.

그러면서 참새 한 마리도 아버지의 허락 없이는 떨어지지 않는다고 합니다.



이 말은 너희들의 생명도 아버지께서 관리하고 계신다는 뜻입니다.

설령 너희들이 원수들로부터 죽임을 당한다 하여도 그것은 하나님께서 허락한 죽음이므로 두려워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원수들은 기껏해야 너희 몸만 죽일 뿐이라는 것입니다.



지난 시간 살펴본 시온 산에 서 있는 십사만 사천은 무얼 말하고 있나요?

13장에서 땅의 짐승들이 어린 양의 생명책에 녹명된 자들을 죽였는데 이들이 모두가 살아서 하늘에 있는 시온 산에서 어린 양과 더불어 안식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마귀가 죽였는데 하늘에서 버젓이 살고 있어요.



그러니 너희도 죽임을 당한다고 하여도 어린 양과 함께 하늘에서 영원히 살게 될 것이니까 육신의 죽음을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는 것입니다.

육신의 죽음은 하늘에 살 수 있는 몸을 받기 위한 바꿔치기이니 안심하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계획을 창세전에 세웠어요.



그래서 오늘 본문을 보면 천사들이 영원한 복음을 전하고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들은 모두가 창세전에 계획이 된 일들입니다.

하나님께서 역사를 다스리는데 있어서 우발적으로 즉흥적으로 하시지 않습니다.

창세전에 정한 시나리오대로 하십니다.

누구를 만나고 헤어짐도 다 정해진 것입니다.

이를 창세전 언약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구약 이스라엘에게 스스로를 계시 하실 때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으로서 말씀하시면서 나는 너희들의 조상들과 언약하신 하나님이라는 것을 밝히신 것입니다.

너희 조상에게 약속하신 것을 지키는 하나님이라는 뜻입니다.

우리가 성경을 상고하는 것도 하나님께서 어떤 언약을 하셨고 그 언약을 하나님이 어떻게 이루어내셨는지를 알기 위함입니다.



구약 이스라엘을 간섭하신 그 하나님이 지금 우리를 간섭하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구약의 이스라엘의 구원은 우리의 구원에 예표적인 사건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 인생은 우리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것이에요.

우리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들은 다 하나님의 허락 하에서 일어나는 것이니 안심하세요.

죽어도 사니까 안심하라는 것입니다.



봐라! 이 땅에서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의 증거 때문에 죽임 당한 자들이 모두가 살아서 시온 산에서 어린 양과 더불어 평안을 누리고 있지 않느냐!

그러니까 땅에서 짐승들에게 핍박을 당하고 죽임을 당하더라도 그것은 모두가 하늘에 있는 시온 산으로 가기 위한 과정이고 수순이니까 염려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하늘에서 살자면 하늘에 몸이 필요해요.

이 땅에 몸으로 하늘에서 살 수가 없어요.

그래서 하나님은 하늘에서 살 수 있는 몸을 바꿔치기 해 주시는 것입니다.

그것이 육신의 죽음으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하늘에 몸을 입고 살자면 이 땅에 몸을 반납해야 해요.

그래서 바울이 땅에 있는 장막이 무너지면 하늘로부터 오는 장막을 덧입게 된다고 한 것입니다.

예수님도 육신의 몸은 죽으시고 하늘에 몸을 입으셨어요.



요한계시록은 죽음 아래 놓여 있는 성도들에게 이 사실을 알려주고 있는 것입니다.

요한계시록은 육신의 죽음을 피하게 해 주신다는 말씀이 아니에요.

그 반대에요.

육신이 죽는 것은 하늘에 사람으로 살기 위한 수순이니까 두려워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죽임 당한 영혼들이 하늘에서 어린 양과 더불어 안식하는 것을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구약에서부터 지금까지 어린 양의 생명책에 녹명이 된 성도들은 모두가 믿음으로 살다가 다 죽었어요.

그런데 하늘에서 다 어린 양과 함께 살고 있는 겁니다.

우리도 그들과 같은 길을 가고 있어요.



그래서 히브리서 11장에서 믿음으로 살다가 죽임 당한 믿음에 선진들을 일컬어 12장에서는 구름같이 들러선 허다한 증인들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 증인들의 첫 주자가 예수님이에요.

믿음에 선진들은 모두가 예수님의 길을 걸어간 것입니다.

우리도 지금 그 길을 가고 있어요.



그래서 제가 요한계시록을 가지고 공포를 주는 것은 이단이라고 한 것입니다.

또한 요한계시록을 가지고 이 땅에서 죽지 않고 살아남는 비결을 가르치는 자들도 이단이에요.

요한계시록은 이 땅에서 안 죽고 살아남는 비결을 가르치는 책이 아니에요.



예수그리스도의 계시의 책이에요.

그가 일찍 죽임 당하였는데 살아서 만유의 주가 되어서 이 세상을 심판하시고 있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어요.

이것은 성도들을 위로하고자 하는 말씀입니다.



성도들은 예수님과 연합된 자들입니다.

공동 운명체에요.

그러므로 예수님처럼 죽임당하고 예수님처럼 부활하게 되는 것입니다.



어린 양의 생명책에 녹명 된 자들을 죽인 자들은 어떻게 되나요?

하나님의 진노의 포도주를 마시고 불과 유황으로 고난을 당하게 됩니다.

왜 하나님의 진노의 포도주를 마시게 되나요?

이는 하나님의 포도주를 음행의 포도주로 변질을 시켰기 때문입니다.



포도주는 복음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의 복음은 사람을 살리는 것입니다.

땅에 속한 자들을 하늘로 끌고 가는 것입니다.

이 세상을 떠나게 하는 복음입니다.



그런데 마귀가 복음을 변질시켜 놓은 겁니다.

어떻게 복음을 변질을 시키느냐 하면 땅에 것으로 변질시킵니다.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거리들을 채우는 것으로 전락을 시켰어요.

예수를 이용해서 이 땅에서 육신의 안락함을 추구한단 말입니다.

그러므로 뱀에게 미혹 당한 자들은 생명의 복음을 저주의 복음으로 이용하게 되는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11장을 봅시다.



고후 11:2-6= “내가 하나님의 열심으로 너희를 위하여 열심 내노니 내가 너희를 정결한 처녀로 한 남편인 그리스도께 드리려고 중매함이로다 3 뱀이 그 간계로 이와를 미혹케 한 것같이 너희 마음이 그리스도를 향하는 진실함과 깨끗함에서 떠나 부패할까 두려워하노라 4 만일 누가 가서 우리의 전파하지 아니한 다른 예수를 전파하거나 혹 너희의 받지 아니한 다른 영을 받게 하거나 혹 너희의 받지 아니한 다른 복음을 받게할 때에는 너희가 잘 용납하는구나 5 내가 지극히 큰 사도들보다 부족한 것이 조금도 없는 줄 생각하노라 6 내가 비록 말에는 졸(拙)하나 지식에는 그렇지 아니하니 이것을 우리가 모든 사람 가운데서 모든 일로 너희에게 나타내었노라”



바울은 가는 곳마다 예수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했습니다.

이를 성도들에게 예수그리스도를 중매 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뱀이 그 간계로 하와를 미혹한 것처럼 성도들을 미혹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간계’ 라는 말은 ‘파눌기아’ 라고 하는데 이는 계교, 궤변, 교활함 이라는 뜻입니다.

그럴 듯하게 속인다는 뜻입니다.

이성적으로 들으면 그럴 듯해요.

이걸 공교하게 지은 말이라고 합니다.

마치 보석 세공업자가 보석을 정교하게 세공하듯이 인간의 이성에 근거하여서 그럴듯하게 말을 한다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그 속에 진리의 영이 없는 사람들은 다 속아 넘어가는 것입니다.

공교하게 지은 말을 철학이라고 합니다.

철학이란? 이성을 바탕으로 한 학문이에요.



그러므로 이성에 바탕을 두고서 예수를 따르는 자들은 거짓 선지자들의 말에 다 넘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성경이 왜 어린 아이가 되지 말고 장성한 자가 되라고 합니까?

이는 어린 아이처럼 진리를 분별치 못하면 거짓 선지자들의 말에 미혹당하기 때문입니다.

거짓 선지자들은 땅에 것으로 미혹해요.



이걸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이러한 것들은 모두가 이 세상으로부터 온 것입니다.

이러한 것 속에는 하나님의 사랑이 없어요.



마귀가 예수님에게 와서 하는 말을 잘 음미해 보세요.

육신에게는 너무도 달콤한 말이에요.

떡을 주고 세상의 부귀영화를 주고 영웅호걸을 만들어 주겠다고 하잖아요.

그것도 네가 만약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한다면 말입니다.



마귀가 제시한 하나님의 아들 상이 어떤 것인가요?

이 땅에서 성공한 사람입니다.

고급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모든 사람들이 우러러봄을 당하는 유명한 사람이 되라고 합니다.



부자와 거지 나사로 비유를 보십시오.

부자는 날마다 호화로이 연락을 하였어요.

육신의 일락을 즐겼어요.



이건 이 세상에서 성공한 삶을 살았다는 뜻입니다.

세상 가치로 살았다는 뜻입니다.

세상에 취하여 살다가 보니까 하나님 나라를 잊고 살게 되는 것입니다.



부자에게는 떡에 생명이었어요.

관심사는 세상이었어요.

어떻게 하면 이 땅에서 잘 살까 였어요.



이걸 요한계시록 18장에서 음녀가 부와 사치와 연락을 즐겼다고 합니다.

음행의 포도주에 취하여 하나님처럼 살았어요.

이러한 자들에게 천국은 필요 없어요.

이 땅이 천국이니까요.



이들은 예수로 인하여 눈물 흘리거나 아픈 것이나 애통하거나 곡하는 것이 없어요.

도리어 예수를 세상의 일락을 위하여 이용한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 세상에서 빼내려고 오셨는데 음녀들은 예수를 이용해서 이 땅에서 부귀영화를 누렸어요.



사도 바울은 이러한 자들을 십자가의 원수라고 하였어요.

이들은 땅에 일을 생각하는 자이고 그들의 신은 배라고 하였어요.

이것은 에서처럼 한 그릇 팥죽을 위하여 장자권을 판 것과 같아요.

그래서 성경은 에서의 이러한 행동을 망령된 자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 시대 기독교는 세상의 기독교가 되고 말았어요.

고상한 기독교가 되고 말았어요.

세상 사람들보다 더 차원 높은 사람들이 되라고 가르칩니다.

하늘을 바라보게 하여야 할 예수를 가지고 땅에 것을 추구하도록 하고 있어요.



중국에 가면 온천지가 복(福)으로 가득 찼어요.

집집마다 복을 받기 위하여 복이라는 글씨를 도배를 해 놓았어요.

그런대 그들의 사상은 용(龍) 사상이에요.

복과 용이 중국을 뒤덮고 있어요.



이것은 용이 복을 준다고 믿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그런데 그 용을 요한계시록 12장에서는 옛 뱀 마귀 사단이라고 합니다.

마귀가 이들의 정신세계를 장악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용은 복을 주는 길한 동물이라고 여기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용 꿈을 꾸면 좋아하지요.

아마도 용 꿈을 꾸면 로또 복권을 살 것입니다.

대 부분의 사람들이 여출일구하게 하는 말이에요.

그만큼 세상 사람들에게는 용이 친근해요.



그런데 마귀가 용을 예수로 둔갑을 시켜놓았어요.

이 시대 교회에서 가르쳐 지는 예수는 바로 땅에 복을 주는 용이에요.

마치 엘리야 시대에 거짓 선지자들이 바알을 하나님으로 둔갑을 시켜서 온 이스라엘을 미혹케 하였듯이 지금도 동일해요.



목사들이 떡 주는 예수로 전락시켜 놓았어요.

그러다 보니까 교회 안에서 사회적으로 유명하거나 성공하고 돈 있는 사람이라야 장로나 권사 직분을 받을 수가 있게 되었어요.

직분이 매관매직 되고 있어요.



모든 것이 돈에 가치로 결정이 되어요.

유전무죄 무전유죄가 되고 말았어요.

돈 있으면 복 받았다고 하고 돈 없으면 저주 받았다고 합니다.

물량주의 기복주의가 강단을 뒤덮고 있어요.



이게 바로 하나님으로부터 진노를 받을 음행의 포도주를 마신 결과입니다.

이 음행의 포도주가 종국에는 666 짐승표를 받는 것으로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아시아의 일곱 교회에 주신 편지 속에 짐승으로 하여금 땅에 거하는 자들에게 666 짐승표를 받게 하신 것은 교회 안에 들어와 있는 거짓 신자들을 추수하기 위함입니다.



짐승은 거짓 선지자거든요.

그러니 거짓 선지자들의 말을 듣는 자들도 거짓 신자들인 것입니다.

둘 다 소속이 땅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들이 마신 포도주는 하나님을 떠나게 하는 음행의 포도주이고 진노를 받을 포도주가 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종말의 교회의 심판을 말하고 있습니다.

이들의 모습이 요한계시록 17-18장에서 타락상을 자세하게 말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타락한 교회를 음녀라고 말하는 것은 각종 더러운 영과 간음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내 백성아 거기서 나와 그들이 받을 재앙을 받지 말라고 하신 것입니다.



이건 마치 예수님께서 초림 때 오셔서 강도의 굴혈이 된 구약 교회로부터 자기 백성들을 빼내신 것과 같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재림 때의 영적 상황은 초림 때와 같다고 하는 것입니다.

종말에도 타락한 교회에서 빼내는 일을 하시는 것입니다.

이 타락한 교회의 소속이 세상과 같기 때문에 음녀를 바벨론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바벨론이 어떤 곳입니까?

남쪽 유다를 함락시킨 제국입니다.

이는 교회를 삼킨 것과 같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이 재림하실 때 종말의 교회가 세상의 각종 더러운 영들이 모인 귀신의 처소라고 하는 것입니다.

타락한 교회와 세상이 같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요한계시록에서는 세속화 된 교회와 바벨론을 동의어로 말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항상 기억할 것은 이 편지의 수신자가 누구인가를 보아야 합니다.

요한계시록의 수신자는 교회입니다.

그러므로 모든 이야기가 교회 안에서 일어나는 이야기가 되는 것입니다.



누가 하나님의 고난의 불과 유황의 심판을 받습니까?

하나님의 진노를 받습니까?

예수그리스도를 믿지 않는 자들입니다.

교회 안에 짐승표를 받은 거짓 신자나 마귀가 주는 떡으로 사는 세상 사람이나 동일해요.



지옥에 누가 가나요?

불신자들이에요.

예수님께서 부자와 거지 나사로의 비유를 하실 때 부자와 나사로는 이스라엘 속에 표면적 이스라엘과 이면적 이스라엘을 상징하고 있어요.



마치 아브라함의 집안 속에 육으로 난 이스마엘과 약속으로 난 이삭과 같아요.

그래서 둘 다 죽고 난 후에 부자는 지옥으로 가고 나사로는 천국으로 간 것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지옥에 간 부자가 아브라함을 아버지라고 부른다는 것입니다.



이건 마치 육으로 난 이스마엘이 아브라함을 아버지라고 부른 것과 같아요.

그러니까 성경의 이야기는 교회 안에 육에 속한 자와 영에 속한 자의 심판 이야기를 중심 주제로 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 라는 이름의 뜻이 뭔가요?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하실 자’ 이잖아요.

예수님이 어디에서 너희와 저희로 갈라내셨습니까?

교회에요.



그러므로 어느 시대이고 교회 안에는 항상 뱀의 후손과 여자의 후손이 공존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한 집안 속에 육으로 난 자와 약속으로 난 자로 나타난 것입니다.

형제 싸움으로 나타난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육으로 난 자들이 항상 영으로 난 자들을 핍박하고 죽였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누구에게 죽임 당하셨나요?

자칭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하는 자들에게 죽임 당했어요.



요한계시록 2-3장의 아시아의 일곱 교회를 보세요.

누가 누구를 핍박했나요?

자칭 유대인이고, 자칭 선지자이고, 자칭 사도들이 진짜 성도들을 핍박했어요.



세상 사람들은 핍박하지 않아요.

그 사람들은 교회에 관심이 없어요.

예수에 관심이 없어요.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파송 하실 때 이방인의 길로도 가지 말고 사마리아로도 가지 말고 오직 이스라엘의 잃어버린 양을 찾으러 가라고 하셨지요.

이는 구약 교회로 파송하신 거에요.



바울을 보세요.

가는 곳마다 유대인들 회당에 가서 복음을 전했어요.

이 때 유대인들이 예수를 말하지 말라고 하면서 핍박을 했어요.



이 시대 복음을 누가 싫어하나요?

예수님의 피로 맺은 새 언약을 누가 싫어하나요?

교회 안에 옛 언약에 속한 자들이에요.

율법주의자들이에요.



자기 행위에 의미를 두는 자들이 예수님의 피로 맺은 새 언약을 싫어하는 것입니다.

인간의 행위에 의를 부여하는 자들입니다.

이게 알미니안 주의자들이에요.

알미니안 계통의 성화주의자들이에요.



쉬운 말로 제가 창세전 언약을 전하면 누가 태클을 거는 줄 아세요.

창세전에 예정 되었다는 것을 싫어하는 자들이에요.

이들은 왜 인간의 행위를 무가치하게 하느냐고 따져요.

이게 바로 구약의 유대교 신앙인데 말이죠.



이들이 예수를 죽였어요.

지금도 동일해요.

그 뿌리가 같기 때문입니다.

인간의 행위에 가치를 두기 때문입니다.



로마서 9장과 10장을 봅시다.



롬 9:30-10:3=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 하리요 의를 좇지 아니한 이방인들이 의를 얻었으니 곧 믿음에서 난 의요 31 의의 법을 좇아간 이스라엘은 법에 이르지 못하였으니 32 어찌 그러하뇨 이는 저희가 믿음에 의지하지 않고 행위에 의지함이라 부딪힐 돌에 부딪혔느니라 33 기록된바 보라 내가 부딪히는 돌과 거치는 반석을 시온에 두노니 저를 믿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치 아니 하리라 함과 같으니라 10:1 형제들아 내 마음에 원하는 바와 하나님께 구하는 바는 이스라엘을 위함이니 곧 저희로 구원을 얻게 함이라 2 내가 증거하노니 저희가 하나님께 열심이 있으나 지식을 좇은 것이 아니라 3 하나님의 의를 모르고 자기 의를 세우려고 힘써 하나님의 의를 복종치 아니하였느니라”



바울은 지금 두 의(義)를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는 율법으로 난 의이고, 다른 하나는 예수그리스도를 믿는 의입니다.

율법으로 난 의를 붙잡은 자들은 법에 이르지 못하고,

믿음에서 난 의를 가진 자들이 법에 이르렀다고 합니다.



여기서 법이란? 하나님이 옳다함을 받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누구를 옳다고 하였나요?

예수를 믿음으로 난 의를 가진 자들입니다.

반대로 율법에 의를 가진 자들은 다 넘어뜨렸어요.



율법으로 난 의가 이 시대 알미니안주의 성화주의들이에요.

알미니안 성화주의자들은 하나님의 의를 모르고 자기 의를 세우는 자들이에요.

이 시대 성화주의자들은 유대교인들과 같아요.

이들이 예수를 죽여요.

복음 전하는 자들을 핍박해요.



성화주의자들은 창세전 언약을 싫어해요.

창세전에 어린 양의 생명책에 녹명이 된 것을 부정해요.

영생 주시기로 작정이 된 자들이 있다고 하면 화를 내요.



그럼 인간은 뭐야?

인간에게도 자유의지가 있지 않느냐?

내가 예수를 믿을 수도 있고 안 믿을 수도 있다고 해요.

그래서 알미니안주의자들은 인간의 각오와 결단을 요구하는 겁니다.

마음을 열어서 예수를 영접하라고 합니다.



이 모두가 성경을 문자적으로 보기 때문이에요.

이 사람들은 마치 인간이 마음만 먹으면 예수를 믿을 수 있다고 합니다.

아니에요.



예수는 창세전에 어린 양의 생명책에 녹명이 된 자들만 믿을 수가 있어요.

성령이 아니고서는 누구라도 예수를 주라 할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그 성령은 예수님으로부터 선택을 입은 자들에게만 와요.



요한복음 1장을 봅시다.



요 1:10-13= “그가 세상에 계셨으며 세상은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되 세상이 그를 알지 못하였고 11 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이 영접지 아니하였으나 12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13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서 난 자들이니라”



세상을 누가 만들었나요?

예수님이지요.

그런데 예수님이 자기 땅으로 오시지요.

오셨는데 자기 백성들이 영접하지 않아요.



그런데 영접하는 자들이 있어요.

이들이 누구인가 하면 하나님께로 난 자들입니다.

이들이 바로 창세전에 어린 양의 생명책에 녹명이 된 하나님의 아들들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는 예수를 믿을 수가 없다고 하는 것입니다.



혈통이란? 아브라함의 후손이라고 해서 예수를 다 믿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고,

육정으로란? 인간의 각오나 의지로도 예수를 믿을 수가 없다는 뜻이며,

사람의 뜻으로란? 인간의 지혜와 지식으로도 예수를 믿을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인간 쪽에서는 예수를 믿을 방법이 없다는 것입니다.

왜 그런가요?

이는 예수님은 창세전에 영생을 주시기로 작정하고 어린 양의 생명책에 녹명이 된 자기 백성들을 찾으러 오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들을 예수에게로 인도 하세요.

그리곤 믿음을 주어서 믿어지게 해 주세요.



예수 믿는 것은 인간 쪽에서 불가능해요.



똑똑해도 안 되고,

많이 배워도 안 되고,

잘난 것도 안 되어요.

이것은 인간의 조건과 상관이 없다는 뜻입니다.



예수는 오직 하나님께로 난 자들만이 믿을 수가 있어요.



못 배워도,

똑똑치 않아도,

못 났어도 하나님께서 믿어지게 해 주시면 믿게 되는 것입니다.

이걸 은혜라고 합니다.



교회란? 하나님께로 난 자들만이 모인 곳이에요.

그런데 마귀가 밭에 곡식 가운데 가리지를 뿌려 놓은 것처럼 교회 안에 인본주의자들을 심어 놓은 것입니다.

이들이 인간의 가능성으로 나아오는 것입니다.

이게 율법주의자들이에요.



인간의 가능성을 신앙으로 인정하는 알미니안 성화주의자들이에요.

이들이 바로 교회를 인본주의로 타락케 하는 것입니다.

이걸 음녀라고 하는 겁니다.



중요한 것은 교회 안에 이들이 많다는 겁니다.

이들의 목소리가 더 커요.

이건 마치 바로가 꾼 꿈 이야기처럼 파리한 소가 살찐 소를 잡아먹는 것과 같아요.

이걸 역리라고 합니다.



이 세상은 역리로 움직여요.

가짜가 진짜를 죽이는 것입니다.

항상 하나님께 속한 자들이 죽임 당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에서 자금 이후로 주 안에서 죽는 자들은 복이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어째서 그런가요?

이는 하나님께 속하였기 때문입니다.

땅에 속하지 아니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땅에 속한 자들이 하늘에 속한 성도들을 죽이는 것입니다.

이 일이 어디서 일어났나요?

교회 안이에요.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을 향하여 의인 아벨로부터 사가랴까지 죽인 곳이라고 하지요.

그들의 피가 이 성중에서 하나님께 호소한다고 하지요.

이게 요한계시록 이야기에요.



그래서 요한계시록에서는 천국에 있는 자들을 일컬어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의 증거로 인하여 목베임을 당한 자들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천국은 이 땅에서 예수 믿음 때문에 죽임 당한 자들이 가는 곳이에요.

그래서 천국을 상급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12-13절을 보고 마칩시다.



계 14:12-13= “성도들의 인내가 여기 있나니 저희는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 믿음을 지키는 자니라 13 또 내가 들으니 하늘에서 음성이 나서 가로되 기록하라 자금 이 후로 주 안에서 죽는 자들은 복이 있도다 하시매 성령이 가라사대 그러하다 저희 수고를 그치고 쉬리니 이는 저희의 행한 일이 따름이라 하시더라”



성도들의 인내가 여기 있다고 하지요.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 믿음을 지키는 것입니다.

이들에게 쉼을 주는 것입니다.

그동안 수고 했다고 하면서 이제 푹 쉬라고 하는 것입니다.

반대로 짐승에게 경배하고 그 표를 받은 자들은 쉼을 얻지 못한다고 합니다.



짐승에게 경배한 자들은 짐승이 죽이지 않아요.

짐승은 짐승에게 경배하지 않고 그 표를 받지 않는 자들만 죽여요.

이들이 바로 하늘에 속한 자들입니다.

짐승이 하늘에 속한 자들을 땅에서 뽑아내는 것입니다.

이게 복이에요.



그러므로 신약의 교회 시대가 시작이 되고 난 이후로부터 주 안에서 죽는 자들은 복이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요한계시록은 초대교회 그 극심한 핍박 속에서 죽어가는 성도들에게 소망과 위로는 주었던 것입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은 요한계시록을 읽으면서 감동하고 기뻐하면서 울었어요.

그래서 초대교회에 많은 순교자들이 나타나게 되었던 것입니다.



기독교의 역사는 순교의 역사에요.

어느 시대나 믿음으로 산 사람들은 핍박을 받았어요.

이는 예수에게 속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 예수 믿음 때문에 죽임 당한 자들이 예수님과 함께 하늘에 있는 시온 산에 서 있는 것입니다.

어린 양과 더불어 쉼을 누리고 있는 것입니다.

이 얼마나 감격적인가요.



영원한 복음이란? 핍박을 면하게 해 주는 것이 아니에요.

도리어 핍박을 받게 된다는 것입니다.

예수 때문에 죽어서 예수와 함께 살아나는 것이 영원한 복음인 겁니다.



밧모 섬에 유배당한 요한에게 왜 이러한 광경을 보여 주셨나요?

이는 하나님께서 네가 당하는 고난은 모두가 하늘나라 백성이기 때문이라는 것을 알려주고 있는 것입니다.

낙심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두려워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우리도 요한계시록을 통해서 위로를 받아야 합니다.

소망을 가져야 해요.

예수님이 잠시잠간 후면 오십니다.



그 때까지 믿음으로 이겨내시길 바랍니다.

죽고자 하면 살고 살고자 하면 죽는다는 이 사실을 알고 예수 때문에 세상에서 버려짐을 당하고 하늘나라에서 영원히 사는 그 길을 걸어가시길 축원 드립니다.





기도합시다.

아버지 하나님, 믿음으로 산다는 것이 참으로 아픕니다. 고통스럽습니다. 하지만 이 아픔이 모두가 창세전에 어린 양의 생명책에 녹명이 된 하늘에 속한 자이기 때문에 당하는 아픔이기에 감사를 드립니다. 예수 믿음을 우리의 의지나 각오로 지켜 낼 수가 없으니 아버지께서 붙잡아 주셔야지만 합니다. 어떤 상황 속에서도 믿음이 흔들리지 말게 하소서. 불의와 타협도 하지 말게 하여 주옵소서. 오직 믿음으로만 살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여호와의 정하신 날"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보라 용광로 불 같은 날이 이르리니

교만한 자와 악을 행하는 자는 다 지푸라기 같을 것이라

말라기 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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