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LY JESUS & 하늘 빛 사랑

시 3:5 내가 누워 자고 깨었으니 여호와께서 나를 붙드심이로다

40강. 곡식 추수와 포도송이 심판 (계 14:1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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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강해/요한계시록 강해

2021. 5. 27.

 

[40강. 곡식 추수와 포도송이 심판 (계 14:14-20)]

-.정낙원 목사

 

계 14:14-20= “또 내가 보니 흰 구름이 있고 구름 위에 사람의 아들과 같은 이가 앉았는데 그 머리에는 금 면류관이 있고 그 손에는 이한 낫을 가졌더라 15 또 다른 천사가 성전으로부터 나와 구름 위에 앉은 이를 향하여 큰 음성으로 외쳐 가로되 네 낫을 휘둘러 거두라 거둘 때가 이르러 땅에 곡식이 다 익었음이로다 하니 16 구름 위에 앉으신 이가 낫을 땅에 휘두르매 곡식이 거두어지니라 17 또 다른 천사가 하늘에 있는 성전에서 나오는데 또한 이한 낫을 가졌더라 18 또 불을 다스리는 다른 천사가 제단으로부터 나와 이한 낫 가진 자를 향하여 큰 음성으로 불러 가로되 네 이한 낫을 휘둘러 땅의 포도송이를 거두라 그 포도가 익었느니라 하더라 19 천사가 낫을 땅에 휘둘러 땅의 포도를 거두어 하나님의 진노의 큰 포도주 틀에 던지매 20 성 밖에서 그 틀이 밟히니 틀에서 피가 나서 말굴레까지 닿았고 일천 육백 스다디온에 퍼졌더라”



예수라는 이름은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하실 자라는 뜻입니다.

이는 모든 인간들을 다 구원하지 않고 작정이 된 자기 백성들만 구원을 하신다는 뜻입니다.

이를 요한계시록에서는 창세전에 어린 양의 생명책에 녹명이 된 자들이라고 합니다.

사도행전에서는 이를 영생 주시기로 작정 된 자들은 다 예수를 믿더라고 하였습니다.



누가 예수를 믿느냐?

창세전에 어린 양의 생명책에 녹명이 된 자들입니다.

예수님은 창세전에 어린 양의 생명책에 녹명이 된 자들을 찾으려고 오신 것입니다.

아버지께서 예수님을 보내서 창세전에 아버지와 아들 간에 맺은 언약에 의한 어린 양의 생명책에 녹명 된 자들을 찾아서 천국으로 데리고 오라고 하신 것입니다.



구원을 부르시고 빼내심을 입었다고 하지요.

이건 추수 되었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예수님에 의하여 구원을 받아 천국으로 가는 것을 곡식을 곡간에 들이는 추수라고 하는 것입니다.



오늘은 곡식의 추수와 가라지의 심판 이야기를 하고자 합니다.

어떤 추수인가 하면 자기 백성들의 영생으로서의 추수입니다.

어떤 심판인가 하면 땅에 속한 자들의 영벌로서의 심판입니다.



추수와 심판은 동시성으로 일어납니다.

예를 들어서 철수와 영희가 함께 세상에서 놀고 있다고 합시다.

그런데 어느날 영희의 엄마가 찾아 와서 영희를 집으로 데리고 갑니다.

철수는 그대로 광야에 두고 말이에요.

이렇게 되면 영희는 집으로 돌아가는 구원을 받은 것이고 철수는 세상에 버려진 심판을 받은 것입니다.



성도의 구원이 와와 같아요.

자기 백성들은 영희처럼 엄마가 찾아와서 데리고 천국이라는 곡간에 들어가는 추수를 당하는 것입니다.

반면에 자기 백성 아닌 자들은 철수처럼 세상에 버려지는 형벌로서의 심판을 당하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 세상에 추수꾼으로 오셨습니다.

자기 백성들을 찾으러 오셨습니다.

자기 백성과 자기 백성 아닌 자들이 함께 섞여 있는데 예수님이 오셔서 자기 백성들만 찾아서 천국으로 데리고 가십니다.



이게 오늘 본문의 곡식 추수이야기입니다.

이것이 믿어지는 사람은 세상에 이런 횡재가 어디 있느냐고 대박이라 할 것이고,

이것이 안 믿어지는 사람은 이런 개 같은 경우가 어디에 있느냐고 뚜껑이 열릴 것입니다.

실제로 창세전 언약을 이야기 하면 화를 내는 사람들이 있어요.

이는 안 믿어지기 때문입니다.



마태복음 13장을 봅시다.



마 13:24-30= “예수께서 그들 앞에 또 비유를 베풀어 가라사대 천국은 좋은 씨를 제 밭에 뿌린 사람과 같으니 25 사람들이 잘 때에 그 원수가 와서 곡식 가운데 가라지를 덧뿌리고 갔더니 26 싹이 나고 결실할 때에 가라지도 보이거늘 27 집 주인의 종들이 와서 말하되 주여 밭에 좋은 씨를 심지 아니하였나이까 그러면 가라지가 어디서 생겼나이까 28 주인이 가로되 원수가 이렇게 하였구나 종들이 말하되 그러면 우리가 가서 이것을 뽑기를 원하시나이까 29 주인이 가로되 가만 두어라 가라지를 뽑다가 곡식까지 뽑을까 염려 하노라 30 둘 다 추수 때까지 함께 자라게 두어라 추수 때에 내가 추숫군들에게 말하기를 가라지는 먼저 거두어 불사르게 단으로 묶고 곡식은 모아 내 곳간에 넣으라 하리라”



예수님께서 천국을 비유 하시는데 원수들과 함께 공존하는 것으로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이 세상에서의 천국의 모습이 곡식과 가라지가 함께 공존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점을 유의하셔야 합니다.

잘 보세요.



예수님이 농부가 되어서 씨를 밭에 뿌립니다.

당연히 농부는 자기 밭에 씨를 뿌립니다.

그런데 원수들이 예수님의 밭에 가라지를 덧 뿌려 놓은 것입니다.

밭에 곡식과 가라지가 함께 살고 있는 겁니다.



농사를 지어 보신 분들은 알겠지만 밭에 곡식과 가라지가 섞여 있으면 곡식들이 엄청난 피해를 입어요.

왜냐하면! 가라지들의 생명력이 엄청 강해서 모든 양분들을 빨아 먹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농부들은 가라지를 뽑아버립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비유에서 이상한 것은 일하는 종들이 곡식 속에 가라지가 있다는 것을 알고 주인에게 가라지를 뽑아야 하겠다고 합니다.

그러자 주인의 대답이 황당합니다.



가라지를 뽑지 말라고 합니다.

둘 다 추수 때까지 두라고 하는 겁니다.

그 이유는 가라지를 뽑다가 곡식까지 뽑힐까봐서라는 겁니다.

이러면 곡식과 가라지가 추수 때까지 한 밭에서 살고 있음이 됩니다.



이게 교회 안에 이야기에요.

교회 안에서 가라지가 곡식을 끝 날까지 괴롭히게 된다는 뜻입니다.

이게 성경에서 말하는 하나님의 자기백성 양육법입니다.



이건 구약의 이스라엘을 통해서 보여주셨어요.

이스라엘을 애굽에 종살이 시켜 놓고 정한 때가 되어서야 건져 내시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정한 때까지 애굽에서 죽도록 고난 받았어요.

언제까지 고난 받았느냐 하면 창세기 15장을 보면 아브라함과 언약 하실 때 아모리 족속의 죄악이 관영 할 때까지에요.

예수님이 곡식과 가라지 비유를 어떻게 해석하시느냐를 봅시다.



36-43절입니다.



36-43= “이에 예수께서 무리를 떠나사 집에 들어가시니 제자들이 나아와 가로되 밭의 가라지의 비유를 우리에게 설명하여 주소서 37 대답하여 가라사대 좋은 씨를 뿌리는 이는 인자요 38 밭은 세상이요 좋은 씨는 천국의 아들들이요 가라지는 악한 자의 아들들이요 39 가라지를 심은 원수는 마귀요 추수 때는 세상 끝이요 추숫군은 천사들이니 40 그런즉 가라지를 거두어 불에 사르는 것같이 세상 끝에도 그러하리라 41 인자가 그 천사들을 보내리니 저희가 그 나라에서 모든 넘어지게 하는 것과 또 불법을 행하는 자들을 거두어 내어 42 풀무불에 던져 넣으리니 거기서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 43 그 때에 의인들은 자기 아버지 나라에서 해와 같이 빛나리라 귀 있는 자는 들으라”



제자들이 곡식과 가라지 비유를 묻습니다.

이는 아무리 봐도 자기들의 농사법과는 다르기 때문입니다.

제자들이 알고 있는 농사법으로는 가라지가 보이면 즉시로 뽑아내야 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추수 때까지 가만 두라는 것입니다.



이게 인간들의 생각과 하나님의 생각이 충돌을 일으키는 대목입니다.

인간들은 곡식을 잘 자라게 하려고 원수들을 뽑아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곡식들을 가라지 틈에 둡니다.

이는 양을 이리 가운데 두신 것과 같아요.



곡식을 가라지 가운데 두고서 하나님께서 곡식들을 보살피고 있음을 알려주는 것입니다. 

가라지 속에 곡식은 농부의 세밀한 보살핌이 없이는 자라서 열매를 맺을 수가 없습니다.

농부가 돌보기 때문에 열매를 맺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이 비유에 앞서서 말한 씨 뿌리는 비유에요.

씨 뿌리는 비유 속에 좋은 밭이란? 농부가 관리하는 밭을 말해요.

이 세상 자체가 죄 아래 있기 때문에 좋은 밭은 없어요.



다 나쁜 밭이에요.

하나님의 아들들이 자라가기에 부적합 곳이에요.

이러한 곳에 하나님이 씨를 뿌린 겁니다.

그리곤 관리를 합니다.



농부가 때를 따라서 물을 주고 북을 돋우고 비료를 주면서 관리를 하시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삼십배 육십배 백배의 결실을 맺게 하는 것입니다.

곡식이 자랄 수 없는 환경에서 열매를 맺는다는 것은 농부의 공로이지 곡식의 공로가 아니에요.



이건 성도의 구원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상이 죄 아래 팔렸어요.

마치 애굽과 같아요.



우린 애굽의 바로 아래서 압제 당하고 있는 이스라엘과 같아요.

이미 죽어 없어져야 함에도 인동초 같이 살고 있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에요.

그럼에도 우리는 그걸 몰라요.

우리는 우리들이 세상에서 당하는 일신상의 불편함으로 인하여 늘 원망하면서 하나님이 있네 없네 따지고 있어요.



고난 속에서도 버젓이 살고 있음이 하나님의 은혜인데 말이죠.

우리의 일생을 돌아보세요.

우린 수없이 죽을 고비를 넘기고 살아왔어요.



어떤 이는 병으로,

어떤 이는 사고로,

어떤 이는 사업의 실패로,

어떤 이는 가정의 불화로,,,,

우린 수없이 생을 마감하고 싶은 환경들을 거쳐 왔어요.



저 같은 경우에는 목회를 하면서 수없이 조롱당하고 모멸감을 느끼곤 했어요.

한마디로 쪽 팔릴 때가 많았어요.

스스로가 한심스럽고 미울 때가 있었어요.

그래서 목회를 그만 할까 수없이 생각했어요.



그럼에도 이렇게 하고 있어요.

이건 내 능력이 아니라 주의 은혜에요.

제가 끈기가 있어서도 아니고 의지가 강해서도 아니에요.

그냥 끌려 오다가 보니까 지금 여기에 이렇게 서 있는 것입니다.

쪽 팔려도 때려치우지 못하고 말이에요.

우리의 삶이 다 그래요.

따지고 보면 도낀 개낀이에요.

잘났다고 더 나은 것도 아니고 못 났다고 모자란 것도 아니에요.



인간의 삶이란 오십보 백보에요.

잘났다 못났다 따지지 말고 우리가 그동안 그토록 하나님을 원망하며 살아왔음에도 지금 이 순간 이렇게 예수를 믿고 있고 복음을 전하고 있고 듣고 있다는 것이 은혜인 것입니다.

이 모두가 하나님이 농부처럼 우리의 인생을 간섭해 오신 증거에요.



우리는 여기까지 오면서 사도 바울의 고백처럼 아시아에서 당한 극한 고난 속에서 생명의 끊어짐의 경각 속에서 살아난 것은 우리를 의뢰치 말고 하나님을 의뢰하는 법을 배워 온 것입니다.

죽어야 하는데 죽지 못하고 살고 있는 것이 하나님의 은혜이고 기적이에요.



물론 역설적으로 들리겠지만 말이에요.

하지만 사실이에요.

구약의 이스라엘이 애굽의 바로 아래서 400년을 압제 당하고서도 망하지 않고 살아온 것이 하나님의 은혜이고 기적이에요.

벌써 없어져야 할 민족이 끈질 지게 유지되어 온 것이 하나님의 간섭하심이에요.



지금 저 중동 지역에 존재하는 이스라엘의 역사를 보세요.

수천 년 동안 나라 없이 떠돌며 디아스포라로 유리방황 하던 자들이 지금 저 가나안 땅에 이스라엘이라는 나라로 버젓이 존재하고 있잖아요.

이건 육적 표상이에요.



하나님이 지금 우리를 이스라엘처럼 간섭하고 계신 것입니다.

기독교가 그토록 극심한 핍박과 박해 속에서 사라지지 않고 유지되어 온 것이 바로 가라지 속에 곡식이 자라온 것과 같아요.



하나님은 가리지 속에 곡식을 두고서 하나님의 은혜를 가르치고 있는 것입니다.

곡식들은 스스로의 힘으로 가라지 속에서 살 수 없음을 알아요.

그러므로 늘 하나님의 도움을 구하고 은혜를 사모하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밭은 광의적으로는 이 세상 전체를 말합니다.

그러나 성경의 이야기는 교회 안에 이야기입니다.

구약에서는 아브라함의 집안 이야기로 말하고 있고 신약에서는 교회 이야기로 말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곡식과 가라지 비유의 결론을 가라지들을 “그 나라에서 넘어지게 하고 불법을 행하는 자들이라” 고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어디인가요?

교회에요.

마귀가 교회 안에 하나님의 원수들인 가라지를 뿌려 놓았어요.

곡식들을 넘어지게 한단 말입니다.

마귀가 하나님의 밭에다가 자기 씨를 뿌려서 하나님의 백성들을 괴롭히게 한단 말입니다.

이걸 요한계시록에서 땅에 거하는 자들이 하늘에 속한 자들을 핍박하고 죽인다고 하는 것입니다.



어느 시대이고 영적 전쟁은 항상 교회 안에서 일어난 것입니다.

예수님은 악인 중에서 의인을 골라내서 천국으로 데리고 가십니다.

이게 예수님의 농사법이고 추수하는 방법이에요.

이미 추수가 되어서 천국에 간 우리 앞선 믿음에 선배들을 보세요.

그들이 지금 이 모순된 세상 속에 있는 자기 형제들을 위하여 하나님께 탄원하고 있어요.



요한계시록 6장을 봅시다.



계 6:9-11= “다섯째 인을 떼실 때에 내가 보니 하나님의 말씀과 저희의 가진 증거를 인하여 죽임을 당한 영혼들이 제단 아래 있어 10 큰 소리로 불러 가로되 거룩하고 참되신 대주재여 땅에 거하는 자들을 심판하여 우리 피를 신원하여 주지 아니하시기를 어느 때까지 하시려나이까 하니 11 각각 저희에게 흰 두루마기를 주시며 가라사대 아직 잠시 동안 쉬되 저희 동무 종들과 형제들도 자기처럼 죽임을 받아 그 수가 차기까지 하라 하시더라”



잘 보세요.

천국의 모습입니다.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의 증거로 인하여 죽임을 당한 자들이 제단 아래서 하나님께 이 세상을 빨리 심판해 달라고 탄원을 합니다.



무슨 탄원을 합니까?

원수를 갚아달라고 합니다.

이 원수들이 가라지들이에요.



그런데 하나님이 뭐라고 합니까?

조금 기다리라고 하지요.

언제까지 기다리라고 합니까?

저 아래 있는 너희 동무들이 너희들처럼 죽임 당할 때까지 기다리라고 하십니다.



무슨 말입니까?

하나님이 곡식들을 가라지들에게 죽임 당하도록 하신단 말입니다.

이걸 요한계시록 13장에서 창세전에 어린 양의 생명책에 이름이 녹명된 백성들이 바다와 땅에서 올라온 짐승들에게 죽임을 당하는 것으로 말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 본분도 그 연장선상에 있는 내용이에요.

예수님께서 세상 끝이 되면 곡식과 가라지를 추수한다고 하지요.

곡식은 모아서 천국 곡간에 들이고 가라지는 단을 묶어서 불에 태운다고 하지요.

어떻게 천국 곡간에 들이는가 하면 이 세상이라는 밭에서 뽑아서 데려가는 갑니다.



이건 죽음을 말해요.

성도에게 있어 죽음이란? 방 옮기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성도의 죽음은 존귀한 것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요한계시록은 이 사실을 말해주고 있어요.



이는 극심한 환란 속에 있는 성도들에게 위로와 소망을 주고자 함입니다.

그래서 밧모 섬에서 죽음 앞에 놓인 사도 요한을 모든 성도들을 대표로 하여서 천상으로 올라오게 하여서 죽음 이후 천국에서 안식하는 모습들을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이 세상은 하나님의 밭입니다.

하나님이 예수님을 보내서 구원 농사를 짓습니다.

그래서 이 세상을 일컬어 예수님의 타작마당이라고 합니다.



씨를 뿌리신 분도 하나님(예수님)이시고,

농사를 지으신 분도 하나님(예수님)이시고,

추수하는 것도 하나님(예수님)이 하십니다.



예레미야가 여호와를 어떻게 소개했는지 봅시다.



렘 33:2절 “일을 행하시는 여호와, 그것을 만들며 성취하시는 여호와, 그의 이름을 여호와라 하는 이가 이와 같이 이르시도다” 

 

일을 행하는 여호와,

그 일을 만들고 성취하는 여호와라고 합니다.

이는 여호와께서 시작부터 끝까지 다 하신다는 뜻입니다.

이 말씀은 하나님의 백성들을 바벨론에 포로 되게 하셨다가 돌아오게 하시겠다는 말씀이에요.



1절부터 봅시다.



렘 33:1-18= “예레미야가 아직 시위대 뜰에 갇혀 있을 때에 여호와의 말씀이 그에게 두 번째로 임하니라 이르시되 2 일을 행하시는 여호와, 그것을 만들며 성취하시는 여호와, 그의 이름을 여호와라 하는 이가 이와 같이 이르시도다 3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은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 4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니라 무리가 이 성읍의 가옥과 유다 왕궁을 헐어서 갈대아인의 참호와 칼을 대항하여 5 싸우려 하였으나 내가 나의 노여움과 분함으로 그들을 죽이고 그들의 시체로 이 성을 채우게 하였나니 이는 그들의 모든 악행으로 말미암아 나의 얼굴을 가리어 이 성을 돌아보지 아니하였음이라 6 그러나 보라 내가 이 성읍을 치료하며 고쳐 낫게 하고 평안과 진실이 풍성함을 그들에게 나타낼 것이며 7 내가 유다의 포로와 이스라엘의 포로를 돌아오게 하여 그들을 처음과 같이 세울 것이며 8 내가 그들을 내게 범한 그 모든 죄악에서 정하게 하며 그들이 내게 범하며 행한 모든 죄악을 사할 것이라 9 이 성읍이 세계 열방 앞에서 나의 기쁜 이름이 될 것이며 찬송과 영광이 될 것이요 그들은 내가 이 백성에게 베푼 모든 복을 들을 것이요 내가 이 성읍에 베푼 모든 복과 모든 평안으로 말미암아 두려워하며 떨리라 10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너희가 가리켜 말하기를 황폐하여 사람도 없고 짐승도 없다 하던 여기 곧 황폐하여 사람도 없고 주민도 없고 짐승도 없던 유다 성읍들과 예루살렘 거리에서 즐거워하는 소리, 기뻐하는 소리, 신랑의 소리, 신부의 소리와 및 만군의 여호와께 감사하라, 여호와는 선하시니 그 인자하심이 영원하다 하는 소리와 여호와의 성전에 감사제를 드리는 자들의 소리가 다시 들리리니 이는 내가 이 땅의 포로를 돌려보내어 지난 날처럼 되게 할 것임이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12 만군의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황폐하여 사람도 없고 짐승도 없던 이곳과 그 모든 성읍에 다시 목자가 살 곳이 있으리니 그의 양 떼를 눕게 할 것이라 13 산지 성읍들과 평지 성읍들과 네겝의 성읍들과 베냐민 땅과 예루살렘 사면과 유다 성읍들에서 양 떼가 다시 계수하는 자의 손 아래로 지나리라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니라 14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보라 내가 이스라엘 집과 유다 집에 대하여 일러 준 선한 말을 성취할 날이 이르리라 15 그 날 그 때에 내가 다윗에게서 한 공의로운 가지가 나게 하리니 그가 이 땅에 정의와 공의를 실행할 것이라 16 그 날에 유다가 구원을 받겠고 예루살렘이 안전히 살 것이며 이 성은 여호와는 우리의 의라는 이름을 얻으리라 17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이스라엘 집의 왕위에 앉을 사람이 다윗에게 영원히 끊어지지 아니할 것이며 18 내 앞에서 번제를 드리며 소제를 사르며 다른 제사를 항상 드릴 레위 사람 제사장들도 끊어지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예레미야가 백성들에게 이스라엘이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가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합니다.

그러자 거짓 선지자들이 백성들을 선동해서 예레미야를 이단이라고 하면서 옥에 가두었어요.

그럴 때 하나님의 말씀이 예레미야에게 임합니다.



여호와의 말씀이 내가 유다 왕궁을 헐어서 갈대아인에게 붙인 것은 유다가 악행으로 타락하였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싸워서 유다 왕궁을 지키게 하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바벨론에 패하고 망하게 하여서 포로로 잡혀가게 하겠다고 하시는 것입니다.



바벨론에 붙인 것은 징계하는 것입니다.

징계는 정한 때가 되면 풀리게 되어 있어요.

하나님께서 노가 풀리면 그 때 망했던 성읍을 다시 건설하여서 옛날의 영광을 회복시켜 주겠다고 하시는 것입니다.



망했던 민족이 다시 건설이 되게 하여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게 된다고 합니다.

이게 실제로 70년 후에 일어났어요.

하나님께서 고레스를 통해서 이스라엘을 해방시켜서 고토로 돌아오게 하였어요.

그런데 중요한 것은 하나님은 이 사건을 영적 이스라엘의 회복을 말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15-18= “그 날 그 때에 내가 다윗에게서 한 공의로운 가지가 나게 하리니 그가 이 땅에 정의와 공의를 실행할 것이라 16 그 날에 유다가 구원을 받겠고 예루살렘이 안전히 살 것이며 이 성은 여호와는 우리의 의라는 이름을 얻으리라 17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이스라엘 집의 왕위에 앉을 사람이 다윗에게 영원히 끊어지지 아니할 것이며 18 내 앞에서 번제를 드리며 소제를 사르며 다른 제사를 항상 드릴 레위 사람 제사장들도 끊어지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잘 보시면 그 날이라는 말이 나옵니다.

이 날은 어떤 날인가 하면 바벨론으로부터 해방 되는 날입니다.

근데 내용이 이상합니다.



다윗에게서 한 공의로운 가지를 나게 하신다고 합니다.

이건 메시야에 대한 예언입니다.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시는 것을 말합니다.



다윗에게서 한 공의로운 가지가 나서 무슨 일을 한다고 합니까?

다윗의 가지가 백성들에게 여호와의 의를 준다고 합니다.

그리하여 유다가 구원을 받고 의에 성읍이 된다고 합니다.



이렇게 되면 예레미야가 받은 말씀은 단순하게 육적 이스라엘이 바벨론에서 해방 되는 사건만이 담겨져 있는 것이 아니란 뜻입니다.

그 속에 영적 이스라엘의 구원 이야기도 담겨져 있다는 뜻입니다.



전체적으로 다시 설명합니다.

예레미야는 남쪽 유다가 악행을 저질러서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갔다가 해방되는 것을 계시로 받았습니다.

그런데 그 계시 속에는 예수그리스도에 의한 성도의 구원 이야기도 담겨져 있습니다.



성도의 구원 이야기란? 교회의 구원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교회의 구원 이야기로 한다면 어떻게 될까요?

교회의 타락이 전제가 되겠지요.

타락된 교회 안에서 자기 백성을 구원하는 이야기가 되겠지요.



그래서 요한계시록에서는 종말의 타락한 교회를 바벨론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18장을 보면 타락한 교회를 음녀라고 하고 이 음녀가 성도들의 피에 취하여 있다고 합니다.

성도들이 교회 안에서 죽임 당하고 있는 겁니다.



이게 계시록 13장 이야기에요.

짐승이 어린 양의 생명책에 녹명이 된 자들을 죽이고 있어요.

그래서 14장에서 주 안에서 죽은 자들이 복이 있는데 이는 하늘의 시온 산에서 어린 양과 더불어 안식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성도의 구원이 이 땅에서 등 따습고 배부른 환경에 있다가 구원을 받는 것이 아니고 지옥 같은 환경 속에서 구원 받는 것으로 되어 있는 것입니다.

가라지들 속에서 고난 당하다가 추수당하는 것으로 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시나리오를 누가 썼는가요?

하나님이에요.

여호와에요.



그래서 요한계시록에서는 예수님을 소개 할 때 알파와 오메가요, 시작과 끝이요, 처음과 나중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는 성도의 구원을 예수님이 다 하신다는 뜻입니다.



예수님이 시작하셨고,

예수님이 이루어가시고,

예수님이 끝내신다는 것입니다.



구원은 그 자체가 택하심으로 부르심을 입고 기존의 세상으로부터 빼내심을 당하고 갈라지는 것이기 때문에 심판성을 담고 있어요.

이렇게 기존의 곳으로부터 빼내짐을 당하는 것을 추수라고 합니다.



성도에게 추수란? 죽음이에요.

마치 바다에 살아야 하는 물고기가 어부에게 잡히는 순간 죽음을 맛보는 것과 같아요.

어부에게 잡힌 물고기는 새로운 세계에서의 삶이 주어지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그랬어요.

갈대아 우르에서 잘 살고 있는 아브라함을 빼내버리는 것입니다.

이건 아브라함의 죽음이에요.

아브라함을 믿음에 조상으로 삼았어요.

이것은 성도들을 아브라함처럼 간섭하겠다는 뜻입니다.



예수님에게 붙잡히면 인생 종치게 되어 있어요.

기존의 인생에서 새로운 인생으로 살아가게 됩니다.

예수님의 초림으로는 아담 안에서 예수 안으로 옮겨지고,

내 인생에서 예수의 인생으로 사는 것으로 나타나고,

예수님의 재림으로는 이 세상에서 하늘나라로 옮겨지는 추수를 당하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오심을 빛이 어둠에 비추었다고 합니다.

이건 심판입니다.

빛이 비취자 누가 암까마귀이고 누가 수까마귀인지 드러나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이 오시자 누가 천국 백성이고 누가 지옥 백성인지 드러나게 된 것입니다.



예수를 믿는 자와 믿지 않는 자로 나누이게 되었어요.

십자가상의 두 강도처럼 예수님을 중심으로 하나는 구원을 받고, 하나는 심판을 받는 일들이 일어나게 된 것입니다.



이 세상은 예수님을 주되심을 알리기 위하여 창조가 되었습니다.

예수님을 주라고 하는 것은 심판의 기능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사도 바울은 예수님을 일컬어 만유의 주라고 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가시는 곳에는 항상 두 부류로 갈라지는 심판이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복음이 증거 되면 갈라지는 일들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이렇게 갈라지는 것을 추수와 심판이라고 합니다.

구원을 받는 자들 입장에서는 추수를 당하는 것이고,

구원 받지 못하는 자들 입장에서는 심판을 당하는 것입니다.



요한계시록에서는 이 사실을 증거해 주고 있습니다.

어린 양의 생명책에 녹명이 된 자들은 이 땅에서 죽임당하고 천국에 가는 것으로 말해주고 있고,

이 땅에 속한 자들은 짐승과 더불어 이 땅에 것으로 잘 먹고 살다가 불심판을 당하게 됩니다.

그래서 요한계시록에서는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의 증거로 인하여 목 베임을 받은 자들과 땅에 거하는 자들을 교차하여서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성경이 우리에게 소망이 되는 것은 우리 앞선 믿음에 선진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기 때문입니다.

믿음에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의 증거로 인하여 이 땅에서는 비록 버림을 당하였지만 모두가 살아서 천국에서 어린 양과 더불어 안식을 누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성경을 통해서 이 땅에서의 고단한 삶에 위로와 소망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슬픔에 잠긴 제자들에게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세상으로부터 미움을 받는 것은 너희가 내 것으로 택함을 입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예수 때문에 당하는 아픔이기 때문에 예수와 함께 천국에서 안식도 누리게 되므로 기뻐하라고 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천국을 바다에 그물을 쳤는데 끌어 올려 보니 그물 속에 각종 고기들이 가득해서 좋은 고기와 나쁜 고기를 구별해서 좋은 고기는 곡간에 들이고 나쁜 고기는 버리는 것으로 비유하셨습니다.

이는 곧 이 세상에는 두 부류의 사람이 섞여 있다는 뜻입니다.

좋은 고기와 나쁜 고기처럼 구원 받을 자와 구원 받지 못할 자로 나누어져 있다는 것입니다.



좋은 고기와 나쁜 고기의 기준은 주인의 판단에 따라서 결정 됩니다.

예를 들어서 주인이 마귀이면 마귀의 백성들이 좋은 고기가 되고,

주인이 예수님이면 예수님의 백성들이 좋은 고기가 됩니다.



알다시피 만물의 주인은 예수님입니다.

이 세상 자체가 예수님에 의해서 예수님을 위하여 예수님이 창조를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옳고 그름의 기준은 예수님에 의하여 결정이 됩니다.



그래서 성경은 예수님에게 속한 자들을 자기 백성으로서 ‘너희’라고 하고,

예수님에게 속하지 아니하고 마귀에게 속한 자들을 ‘저희’라고 합니다.

예수님은 유대인들 속에서 ‘너희’와 ‘저희’를 구분하셨습니다.

이렇게 ‘너희’와 ‘저희’를 구분하는 것을 추수라고 하고 심판이라고 합니다.



오늘 살펴볼 말씀은 두 추수 이야기입니다.



하나님께서 이 세상에서 곡식과 포도송이를 추수 하십니다.

요한계시록 14장을 보시면 두 부류의 사람들이 나타납니다.

하늘의 시온 산에 이마에 어린 양의 이름이 적힌 십사만 사천 명과 땅에 짐승의 이름이 적힌 자들입니다.



이마에 어린 양의 이름이 적힌 자들을 일컬어 예수의 증거와 하나님의 말씀으로 인하여 목베임을 받은 자들이라고 하고, 이마에 짐승의 이름이 적힌 자들은 땅에 속한 자들이라고 합니다.

어린 양의 이름이 적힌 자들은 수고를 그치고 쉼을 얻지만,

짐승의 이름이 적힌 자들은 밤낮 쉼을 얻지 못한다고 합니다.



무슨 말인고 하니 어린 양의 이름이 새겨진 자들은 비록 이 땅에서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의 증거로 인하여 버려짐을 당하고 목 베임을 당하는 지옥 같은 삶을 살았지만 살아서 천국에서 영생의 복을 누리게 되지만,

반대로 이 땅에서 짐승의 표를 받고 짐승과 더불어 고난 없이 편안하게 살던 자들은 지옥에서 밤낮 쉬지 못하고 영원한 형벌을 받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오늘 본문은 성경의 결론을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이 세상의 마지막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마치 예수님의 일생을 축약해서 보여주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인하여 목 베임을 당하였지만 살아서 천국에서 영원한 안식을 누리고 계십니다.

이 일에 성도들을 동참시키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들의 이 세상에서의 운명은 철저하게 예수그리스도와 연합된 자로서 살아가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과 한 몸으로 묶여서 사망의 늪을 지나서 천국으로 가게 되는 것입니다.

영원한 복음 속에는 구원과 심판의 소식이 동시에 들어가 있습니다.

그래서 영원한 복음을 말하면서 시온 산에 서 있는 구원 받은 자와 하나님의 진노의 포도주를 마시는 땅의 짐승에게 속한 자들의 심판을 이야기 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곡식과 포도송이 추수로 말하는 것입니다.



땅에 속한 자들은 하나님을 이용하여서 이 땅에서 달콤한 포도주를 마셨는데 그것이 종말에는 하나님의 진노의 포도주로 나타난 것입니다.

쉬운 말로 이 땅에서 예수 이용해서 호의호식한 자들은 모두가 유황불 속에 들어가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들은 이 땅에서 예수의 피를 빨아 먹고 산 자들입니다.

예수를 이용하여서 세상연락을 누리던 자들입니다.

사도 바울은 이러한 자들을 자기 배를 섬기는 십자가의 원수라고 했어요.



반면에 어린 양의 생명책에 녹명이 된 자들은 이 땅에서 예수와 함께 고난의 쓴 포도주를 마셨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이들에게는 영원한 안식으로 갚아주십니다.

부자처럼 예수 이용해서 이 땅에서 잘 산 놈들은 영벌에 처하게 하고,

거지 나사로처럼 예수 때문에 버림당한 자들은 영생으로 인도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두 추수 이야기를 말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둘째 천사가 큰 성 바벨론이 무너졌다고 합니다.

큰 성 바벨론의 정체를 음행의 포도주로 온 나라를 미혹하던 자라고 합니다.

이게 계시록 17장에서는 음녀로 나타납니다.



음녀가 마시던 포도주이기 때문에 음행의 포도주라고 하고 진노의 포도주라고 하는 것입니다.

포도주는 포도주인데 음행의 포도주입니다.

음행이란? 이 세상과 짝하는 것을 말합니다.



야고보서에서는 이 세상과 짝하는 것을 간음하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왜 이 세상과 짝하는 것을 간음이라고 할까요?

이는 하나님을 떠난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과 함께 한 자는 상을 주고, 하나님을 떠난 자는 벌을 주어요.

이게 하나님의 공의에요.

그럼 오늘 본문에서 상과 벌을 받는 두 추수를 상세하게 살펴봅시다.



먼저 14-16절을 봅니다.



14-16= “또 내가 보니 흰 구름이 있고 구름 위에 사람의 아들과 같은 이가 앉았는데 그 머리에는 금 면류관이 있고 그 손에는 이한 낫을 가졌더라 15 또 다른 천사가 성전으로부터 나와 구름 위에 앉은 이를 향하여 큰 음성으로 외쳐 가로되 네 낫을 휘둘러 거두라 거둘 때가 이르러 땅에 곡식이 다 익었음이로다 하니 16 구름 위에 앉으신 이가 낫을 땅에 휘두르매 곡식이 거두어지니라”



사도요한이 보니 흰 구름이 있고 구름 위에 사람의 아들과 같은 이가 앉았습니다.

그 머리에는 금 면류관이 있고 손에는 이한 낫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때 다른 천사가 성전에서 나와 구름 위에 앉은 이를 향하여 큰 음성으로 외쳐 네 낫을 휘둘러 곡식을 거두라고 합니다.

구름 위에 있는 사람의 아들과 같은 이를 다니엘 7장에서는 인자라고 합니다.



인자란? 사람의 몸을 입고 온 하나님을 말합니다.

이는 예수님을 말합니다.

예수님을 인자로 이 세상에 보내신 분은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이 왜 예수님을 이 세상에 보냈습니까?

자기 백성을 구원하기 위함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추수하는 연장인 이한 낫을 가지고 오신 것입니다.



낫은 곡식을 추수하는 연장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오심을 자기의 타작마당을 정하게 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이것은 종말의 추수를 의미합니다.



옛 언약적 관점에서는 구약 교회의 추수를 말하고,

새 언약적 관점에서는 신약 교회의 추수를 의미합니다.



구약 교회의 추수는 율법에서의 추수입니다.

이것은 죄인을 구원하는 추수입니다.

신약교회의 추수는 은혜에서의 추수입니다.

이것은 의인을 구원하는 추수입니다.



율법은 죄를 고발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율법 아래서의 추수는 자기가 죄인임을 아는 자가 잘 익을 곡식이 됩니다.

은혜는 용서 받음과 덮어주심입니다.

그러므로 은혜 아래서의 추수는 용서 받은 자로서 감사하고 사는 자가 잘 익은 곡식이 되는 것입니다.



이걸 로마서 11장에서 참 감람나무 비유로 말해주고 있습니다.

암튼 하나님은 예수님을 추수꾼으로 보냈습니다.

그런데 추수할 때와 시기는 하나님이 정하십니다.



하나님이 천사를 예수님에게 보내서 이제 추수를 하라고 알려 주시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추수의 사실을 알리는 천사가 하나님이 계신 성전에서 나온다고 말해주고 있습니다.

천사들이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전령을 예수님에게 전해 주는 것입니다.

 

“주님 이제 낫을 가지고 주님의 백성들을 추수하십시오!” 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낫이란? 영원한 복음을 말합니다.

그래서 영원한 복음 속에 구원과 심판의 소식이 동시에 담겨져 있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두 종류의 추수가 나타나지만 실상은 구원과 심판을 동시적으로 말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자기 백성은 구원의 추수가 되고 자기 백성 아닌 자들은 심판을 당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두 번 추수하십니다.

초림으로 오셔서는 율법 아래 있는 자들을 추수하십니다.

이들이 대표적으로 12 제자들입니다.

구약의 12 지파 속에서 12 제자들을 뽑아내신 것입니다.



이것은 예수님이 탄생 하실 때 천사들이 들에 있는 목자들에게 알려주는 것과 같습니다.

이 땅에 하나님으로부터 기뻐하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예수님의 오심은 구원의 소식입니다.

그러므로 기쁜 소식이 되는 것입니다.

이 기쁜 소식이 바로 천국 복음이고 곡식을 추수하는 낫과 같은 것입니다.



예수님이 초림 때 하신 추수는 율법입니다.

율법 아래서 신음하던 자들을 추수하여서 은혜 아래로 옮겨 놓은 것입니다.

이 일을 수가성 여인을 통해서 보여 주셨습니다.



요한복음 4장을 봅시다.



요 4:1-37= 예수의 제자를 삼고 세례를 주는 것이 요한보다 많다 하는 말을 바리새인들이 들은 줄을 주께서 아신지라 2 (예수께서 친히 세례를 주신 것이 아니요 제자들이 준 것이라) 3 유대를 떠나사 다시 갈릴리로 가실새 4 사마리아로 통행하여야 하겠는지라 5 사마리아에 있는 수가라 하는 동네에 이르시니 야곱이 그 아들 요셉에게 준 땅이 가깝고 6 거기 또 야곱의 우물이 있더라 예수께서 행로에 곤하여 우물곁에 그대로 앉으시니 때가 제 육시쯤 되었더라 7 사마리아 여자 하나가 물을 길러 왔으매 예수께서 물을 좀 달라 하시니 8 이는 제자들이 먹을 것을 사러 동네에 들어갔음이러라 9 사마리아 여자가 가로되 당신은 유대인으로서 어찌하여 사마리아 여자 나에게 물을 달라 하나이까? 하니 이는 유대인이 사마리아인과 상종치 아니함이러라 10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네가 만일 하나님의 선물과 또 네게 물 좀 달라 하는 이가 누구인줄 알았더면 네가 그에게 구하였을 것이요 그가 생수를 네게 주었으리라 11 여자가 가로되 주여 물 길을 그릇도 없고 이 우물은 깊은데 어디서 이 생수를 얻겠삽나이까? 12 우리 조상 야곱이 이 우물을 우리에게 주었고 또 여기서 자기와 자기 아들들과 짐승이 다 먹었으니 당신이 야곱보다 더 크니이까? 13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이 물을 먹는 자마다 다시 목마르려니와 14 내가 주는 물을 먹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나의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 15 여자가 가로되 주여, 이런 물을 내게 주사 목마르지도 않고 또 여기 물 길러 오지도 않게 하옵소서 16 가라사대 가서 네 남편을 불러오라 17 여자가 대답하여 가로되 나는 남편이 없나이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네가 남편이 없다 하는 말이 옳도다 18 네가 남편 다섯이 있었으나 지금 있는 자는 네 남편이 아니니 네 말이 참되도다 19 여자가 가로되 주여, 내가 보니 선지자로소이다 20 우리 조상들은 이 산에서 예배하였는데 당신들의 말은 예배 할 곳이 예루살렘에 있다 하더이다 21 예수께서 가라사대 여자여 내말을 믿으라 이 산에서도 말고 예루살렘에서도 말고 너희가 아버지께 예배할 때가 이르리라 22 너희는 알지 못하는 것을 예배하고 우리는 아는 것을 예배하노니 이는 구원이 유대인에게서 남이니라 23 아버지께 참으로 예배하는 자들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아버지께서는 이렇게 자기에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24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지니라 25 여자가 가로되 메시야 곧 그리스도라 하는 이가 오실 줄을 내가 아노니 그가 오시면 모든 것을 우리에게 고하시리이다 26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게 말하는 내가 그로라 하시니라 27 이 때에 제자들이 돌아와서 예수께서 여자와 말씀하시는 것을 이상히 여겼으나 무엇을 구하시나이까? 어찌하여 저와 말씀하시나이까? 묻는 이가 없더라 28 여자가 물동이를 버려두고 동네에 들어가서 사람들에게 이르되 29 나의 행한 모든 일을 내게 말한 사람을 와 보라! 이는 그리스도가 아니냐? 하니 30 저희가 동네에서 나와 예수께로 오더라 31 그 사이에 제자들이 청하여 가로되 랍비여, 잡수소서 32 가라사대 내게는 너희가 알지 못하는 먹을 양식이 있느니라 33 제자들이 서로 말하되 누가 잡수실 것을 갖다 드렸는가 한대 34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의 양식은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며 그의 일을 온전히 이루는 이것이니라 35 너희가 넉 달이 지나야 추수할 때가 이르겠다 하지 아니하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눈을 들어 밭을 보라 희어져 추수하게 되었도다 36 거두는 자가 이미 삯도 받고 영생에 이르는 열매를 모으나니 이는 뿌리는 자와 거두는 자가 함께 즐거워하게 하려 함이니라 37 그런즉 한 사람이 심고 다른 사람이 거둔다 하는 말이 옳도다 38 내가 너희로 노력지 아니한 것을 거두러 보내었노니 다른 사람들은 노력하였고 너희는 그들의 노력한 것에 참예하였느니라



예수님께서 어떤 식으로 사마리아 여자를 추수하는지를 잘 보세요.

예수님이 유대 땅 갈릴리를 떠나 사마리아로 가십니다.

당시 사마리아는 이방인 취급을 당한 곳입니다.

사마리아인들은 과거 북쪽 이스라엘이 앗수르에 멸망을 당하고 난 후 앗수르가 혼혈 정책을 펴서 이스라엘을 이방화 시켜 버렸어요.



이스라엘 민족과 앗수르인들이 결혼하여 생겨난 민족이 사마리아 인들이에요.

이것은 율법에 어긋나는 행위입니다.

율법에는 이방인과 혼인을 금지해 놓았어요.

그러니 자칭 의롭다고 하는 바리새인들은 율법이 금하는 이방인과 혼인하여서 태어난 자들이 살아가는 사마리아인들을 개같이 취급을 하고서는 상종을 하지 않았습니다.



사마리아 땅으로 가는 것 자체가 불결한 행위로 간주하고 돌아서 다니곤 하였어요.

그런데 지금 예수님이 그리로 가신 것입니다.

이건 의도적으로 가신 거에요.



누굴 찾아 갑니까?

수가라는 성에 물 길으러 온 한 여인을 찾아 가지요.

'수가' 라는 말이 '마지막'이라는 뜻이에요.

의역을 하면 에수님이 사마리아 여자를 추수하러 갔다는 뜻입니다.



사마리아 여자가 어떤 자인가요?

창기에요.

본문에서는 창기라는 말은 없지만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것을 토대로 하여서 이 여인의 모습을 추적해 보면 창기라는 것을 알수가 있어요.

남편이 여섯이나 있었으니 말입니다.



이 여자도 스스로 수치스러움을 알고 사람들과 부딪치지 않으려고 아무도 물 길러 오지 않는 시간대인 낮 12시에 물을 길으러 온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찾아 간 겁니다.

수치를 감추고자 한 여자를 수치를 드러내고자 하시는 것입니다.



그러자 여자가 하는 말이 가만히 보니까 당신은 유대인인데 어떻게 유대인들이 부정하다고 하고 금기시하는 사마리아 땅에 왔느냐고 합니다.

거기다가 다 꺼리는 창기인 자기에게 말을 붙이느냐고 합니다.



예수님이 물 좀 달라고 하자 여자가 왜 유대인이 사마리아 사람에게 물을 달라고 하느냐 라고 의아해 합니다.

그러자 예수님이 네가 만약에 내가 메시야인지 안다고 하면 네가 도리어 나에게 물을 달라고 하였을 것이고 그럼 내가 생수를 너에게 줄 것이라고 합니다.



그러자 여자가 이 우물이 깊은데 어떻게 이 속에서 생수를 뜬단 말이냐 라고 합니다.

이에 예수님이 내가 그 물을 주겠다고 합니다.

내가 주는 물을 마시면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할 것이라고 합니다.



여자가 그 물을 내게 달라고 합니다.

그러자 예수님이 뜬금없이 남편을 데리고 오라고 합니다.

여자가 난 남편이 없는데요, 라고 하자 예수님이 그래 네 말이 맞다!

지금 있는 남편도 네 남편이 아니고 앞서 있던 다섯 명도 네 남편이 아니라고 합니다.

그러니까 이 여자에게는 남편이 도합 여섯이나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자 여자가 당신은 선지자입니다.

선지자가 아니고서는 어떻게 내 인생을 송두리째 안단 말입니까?

이제 내 죄가 들통이 났으니까 제사를 지내야 하겠는데 어디 가서 제사를 지낼까요?

유대인들이 제사를 지내는 예루살렘 성전에 가서 제사를 지낼까요?

아니면 사마리아 인들이 제사를 지내는 그리심 산에 가서 지낼까요?



이에 예수님이 그런데 갈 필요가 없다.

보이는 성전에 가서 예배하는 것은 예배가 뭔지 모르기 때문에 그런데 가서 지낸다고 하면서 하나님은 그런 예배를 받지 않고 신령과 진정으로 드리는 예배를 받으신다고 합니다.

그러자 여자가 그건 메시야가 와야 되는 것 아닙니까? 라고 합니다.

이에 예수님이 내가 바로 그 메시야라고 합니다.



그 때 제자들이 동네에 가서 빵을 사 가지고 와서 예수님에게 잡수시라고 합니다.

그러자 예수님이 난 먹었다고 합니다.

내가 먹을 양식은 아버지의 뜻을 행하는 것인데,,

아버지의 뜻은 저 사마리아 여자와 같은 죄인들을 구원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그러면서 제자들에게 봐라!

너희들은 넉 달이 지나야 추수를 한다고 하는데 아니다 이미 추수가 시작이 되었단다.

예수님은 사마리아 여자를 추수한 것입니다.



어떻게 추수를 했나요?

이는 율법 아래 있던 자를 은혜 아래로 불러들인 것입니다.

보이는 성전에서 제사하던 자들을 예수로 말미암아 제사하는 자리로 빼내 오신 것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내가 온 것은 이렇게 창기 같은 죄인을 구원하러 온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여자의 죄를 고발하는 일을 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이 여자의 죄를 고발하자 여자는 제사 이야기를 했고,

여자가 율법적 제사 이야기를 하자 예수님은 새로운 제사를 알려 주십니다.

새로운 제사란? 성령이 오셔서 예수님을 통하여서 아버지께 나아가는 제사를 드리게 한다는 것입니다.

누가 예수님을 통해서 아버지께 나아가는가 하면 자기가 죄인인줄 아는 자입니다.



예수님은 지금 사마리아 여자에게 율법 역할을 한 것입니다.

그래서 사마리아 여자는 예수님 앞에서 자기가 죄인임을 알고 하나님께 나아가는 제사에 대하여 물은 것입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여자를 추수하신 것입니다.



어디에서 추수했나요?

율법에서 추수했어요.

예수님은 율법 아래 있는 자들을 추수하러 오셨어요.



그래서 예수님은 의도적으로 율법주의자들과 충돌을 일으켜서 그들의 죄를 고발하는 일을 하신 것입니다.

이 충돌로 죄가 고발당한 자들이 추수 당하여야 할 잘 익은 곡식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너희는 넉 달이 지나야 추수한다고 하는데 아니다 내가 이 땅에 옴으로서 이미 추수는 시작이 되었다고 합니다.



예수님은 죄인을 구원하러 오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오시기 전에 먼저 세례 요한을 보낸 겁니다.

세례 요한을 일컬어 율법과 선지자라고 하지요.

이는 율법과 선지자가 하는 일이 죄를 고발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예수를 보내기 전에 먼저 율법으로 고발하는 사람을 보내서 전부 죄 아래 가두고 죽이는 일을 하게 하신 것입니다.

이것이 세례 요한의 물세례로 나타난 것입니다.

물 세례는 죽이는 것입니다.



주여 나는 죽을 죄인이 맞네요 라고 손드는 것이 율법을 제대로 아는 자에요.

이런 자들이 추수대상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자기가 죄인임을 아는 사마리아 여자를 잘 익은 곡식이라고 추수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사마리아 여자를 시청각교제로 사용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사마리아 여자에게 남편 이야기를 하면서 여자의 죄를 고발하는 일을 하신 것입니다.

이건 율법으로 자기 죄가 고발당하는 것과 같습니다.



예수님의 남편 이야기에 사마리아 여자는 자기의 죄를 고발당하고 성전에 가서 제사를 지내야 한다고 합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이제는 율법적인 제사는 끝이 나고 예수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과 만나는 일들이 일어나게 된다고 하십니다.



성령이 오시면 이 일을 하실 것이라고 합니다.

이렇게 예수님을 앞세워서 하나님께 나아가는 것을 신령과 진정으로 드리는 영적 예배라고 합니다.

하나님은 이런 자들을 찾으십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사마리아 여자에게 복음을 전하고는 이러한 것이 바로 하나님의 일이고 자신이 이 세상에 온 목적이고 이는 곧 밥을 먹는 것과 같은 일이라고 제자들에게 알려 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사마리아 여자의 구원을 예수님의 양식이라고 하였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자기가 죄인임을 아는 자들을 죄와 사망에서 의와 거룩의 나라로 옮겨주는 일을 하십니다.

이게 예수님의 곡식 추수입니다.

예수님의 곡식 추수는 이미 시작이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처음 오신 때부터 추수는 시작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추수 방법은 먼저 자기 백성들을 추수 하십니다.

곡식을 먼저 추수해서 곡간에 들이십니다.

그리고 가라지를 심판합니다.

이러면 곡식은 추수가 되어지는 것이고, 가라지는 심판을 당하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오심은 자기 백성에게는 구원이지만 자기 백성 아닌 자들에게는 심판입니다.

그래서 성도를 상징하는 곡식의 추수와 악인들을 상징하는 포도송이를 심판하는 것을 동시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럼 악인들을 상징하는 포도송이들을 심판하는 모습을 봅시다.



17-20절입니다.



17-20= “또 다른 천사가 하늘에 있는 성전에서 나오는데 또한 이한 낫을 가졌더라 18 또 불을 다스리는 다른 천사가 제단으로부터 나와 이한 낫 가진 자를 향하여 큰 음성으로 불러 가로되 네 이한 낫을 휘둘러 땅의 포도송이를 거두라 그 포도가 익었느니라 하더라 19 천사가 낫을 땅에 휘둘러 땅의 포도를 거두어 하나님의 진노의 큰 포도주 틀에 던지매 20 성 밖에서 그 틀이 밟히니 틀에서 피가 나서 말굴레까지 닿았고 일천 육백 스다디온에 퍼졌더라”



또 다른 천사가 하늘에 있는 성전에서 나옵니다.

그 손에 이한 낫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어서 불을 다스리는 천사가 제단으로부터 나와서 이한 낫을 가진 천사에게 그 낫을 휘둘러 땅의 포도송이를 거두라고 합니다.



제단은 제물이 죽임 당하는 곳입니다.

그럼 불을 다스리는 천사가 제단에서 나와서 이한 낫을 가진 자에게 포도송이를 거두라고 하는 것은 자신의 원수를 갚아 달라고 하는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6장을 봅시다.



계 6:9-10절 “다섯째 인을 떼실 때에 내가 보니 하나님의 말씀과 저희의 가진 증거를 인하여 죽임을 당한 영혼들이 제단 아래 있어 큰 소리로 불러 가로되 거룩하고 참되신 대 주재여 땅에 거하는 자들을 심판하여 우리 피를 신원하여 주지 아니하시기를 어느 때까지 하시려나이까 하니”



죽임을 당한 자들이 제단 아래서 큰 소리로 탄원합니다.

어떤 탄원입니까?

원수를 갚아 달라는 것입니다.



원수들이 누구인가요?

땅에 거하는 자들입니다.

죽임 당한 영혼들이 누구로부터 죽임을 당하였나요?

땅에 속한 자들입니다.



땅에 속한 자들이 누구를 죽였나요?

어린 양의 생명책에 녹명이 된 자들을 죽였습니다.

그러므로 이 땅에 펼쳐지는 심판은 어린 양의 원수들에게 행하여지는 심판인 것입니다.



이를 진노의 포도주 틀에 밟는 것으로 말해주고 있습니다.

이는 철저하게 응징하는 장면입니다.

그래서 불 심판으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불을 다스리는 천사가 제단으로부터 나오지요.

이것은 제물을 태우듯이 완전하게 심판을 단행 하시겠다는 뜻입니다.

심판이 얼마나 잔인한가 하면 포도를 포도주 틀에 넣고서 밟듯이 하겠다고 하십니다.

완전히 으깨어버린다는 뜻입니다.

더 이상 자비와 긍휼이 없다는 뜻입니다.



그 피가 말 굴레까지 닿는다는 말은 피가 홍수를 이룬다는 말입니다.

홍수를 이룬 피가 일천육백 스다디온 이라고 합니다.

1600 스다디온은 320Km 인데 이는 이스라엘 전역을 상징하고 있습니다.



마치 부산에서 신의주까지 피가 홍수가 되어 흐른다는 말입니다.

이것은 일차적으로는 온 이스라엘을 가리키는 것이기도 하지만 광의적으로는 온 세상에 임할 하나님의 심판을 말하기도 합니다.



예수님의 초림은 유대인의 심판이었지만, 예수님의 재림은 온 세상의 심판입니다.

예수님의 초림은 유대인의 왕으로 오셨지만, 예수님의 재림은 만 왕의 왕으로 오십니다.

만유의 주가 되어서 오십니다.



심판이 성 밖에서 이루어지지요.

이것은 예수님께서 성 밖에서 고난을 당한 것처럼 그대로 갚아 주신다는 뜻입니다.

예루살렘 성 밖이란 지옥을 상징합니다.



구약을 보면 이스라엘의 진 밖은 저주의 곳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스라엘의 진 밖으로 쫓겨남을 당하는 것은 이방인으로 취급을 받아서 저주 받은 것으로 이해하였습니다.

이게 신약에서는 출교와 같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땅에 속한 악의 무리를 일컫는 포도송이들을 저주 받은 자들이 쫓겨나는 성 밖에서 심판을 단행하는 것입니다.

포도가 익었다는 것은 죄악이 관영하다는 뜻입니다.



욜 3:13절 “너희는 낫을 쓰라 곡식이 익었도다 와서 밟을지어다 포도주 틀이 가득히 차고 포도주 독이 넘치니 그들의 악이 큼이로다”



포도주의 독이 넘치고 악이 크다고 하지요.

이걸 음녀가 마시던 진노의 포도주라고 합니다.

음행의 포도주라고도 합니다.



하나님의 복음을 가지고 이 세상의 부귀영화를 꿈꾸게 하는 것이 음행의 포도주입니다.

진노의 포도주입니다.

천국 복음은 이 세상을 떠나게 하는 복음입니다.

그런데 거짓 선지자들이 이 세상을 떠나게 하는 복음을 가지고 도리어 이 세상에 정착하고자 하였으니 이게 참람이고 거짓이고 음행입니다.



종말의 교회를 일컬어 각종 더러운 영들이 모이는 귀신의 처소가 되었다고 하는 것은 교회 안에 귀신의 말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둔갑되어서 증거되고 있다는 뜻입니다.

하늘에 말이 땅에 말로 전해지고 있다는 뜻입니다.

이를 일컬어 거짓 선지자들이 쑥 물을 먹인다고 합니다.



하나님은 악이 관영 할 때까지 길이 참으시고 계십니다.

창세기 15장을 보면 하나님께서 아브람에게 언약을 하실 때 언약의 후손들을 이방의 객이 되게 하였다가 사 대만이 돌아오게 한다고 합니다.



이는 아직까지 아모리 족속들의 죄악이 관영치 않아서라고 하였습니다.

이는 죄가 무르익기까지 기다린다는 뜻입니다.

즉 죄가 모두 드러날 때 심판을 단행하시겠다는 것입니다.



육적으로 보면 마귀가 이긴 것처럼 보일 때 예수님이 오셔서 마귀를 멸하시고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시겠다는 뜻입니다.

이 세상은 노아의 때와 같이 죄악이 점점 더 관영해 가고 있습니다.

비진리가 진리를 삼키고 있습니다.

그래서 십자가 복음을 전하면 이단 소리 듣는 겁니다.



이 모두가 죄악이 관영해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그 때까지 참고 있는 것입니다.

이제 곧 그 날이 가까워 옵니다.

천사가 낫을 휘둘러 땅의 포도송이를 거두어서 하나님의 진노의 큰 포도주 틀에 던질 때가 가까이 오고 있습니다.



스가랴서 5장을 봅시다.



슥 5:1-11= “내가 다시 눈을 든즉 날아가는 두루마리가 보이더라 2 그가 내게 묻되 네가 무엇을 보느냐 하기로 내가 대답하되 날아가는 두루마리를 보나이다 그 장이 이십 규빗이요, 광이 십 규빗이니라 3 그가 내게 이르되 이는 온 지면에 두루 행하는 저주라 무릇 도적질하는 자는 그 이편 글대로 끊쳐지고 무릇 맹세하는 자는 그 저편 글대로 끊쳐지리라 4 만군의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내가 이것을 발하였나니 도적의 집에도 들어가며 내 이름을 가리켜 망령되이 맹세하는 자의 집에도 들어가서 그 집에 머무르며 그 집을 그 나무와 그 돌을 아울러 사르리라 하셨느니라 5 내게 말하던 천사가 나아와서 내게 이르되 너는 눈을 들어 나오는 이것이 무엇인가 보라 하기로 6 내가 묻되 이것이 무엇이니이까? 그가 가로되 나오는 이것이 에바니라 또 가로되 온 땅에서 그들의 모양이 이러하니라 7 이 에바 가운데에는 한 여인이 앉았느니라 하는 동시에 둥근 납한 조각이 들리더라 8 그가 가로되 이는 악이라 하고 그 여인을 에바 속으로 던져 넣고 납 조각을 에바 아구리 위에 던져 덮더라 9 내가 또 눈을 들어 본즉 두 여인이 나왔는데 학의 날개 같은 날개가 있고 그 날개에 바람이 있더라 그들이 그 에바를 천지 사이에 들었기로 10 내가 내게 말하는 천사에게 묻되 그들이 에바를 어디로 옮겨 가나이까 하매 11 내게 이르되 그들이 시날 땅으로 가서 그를 위하여 집을 지으려함이니라 준공되면 그가 제 처소에 머물게 되리라 하더라”



스가랴가 날아가는 두루마리를 봅니다.

두루마리가 장이 이십이고 광이 이십입니다.

장과 광이 같습니다.

이는 성소의 면적과 같습니다.



그런데 이 두루마리를 온 지면에 두루 행하는 저주라고 합니다.

두루마리란? 책을 말합니다.

그런데 그 책의 내용이 저주입니다.



이 저주가 적힌 두루마리가 도적의 집에도 들어가고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고 맹세하는 집에도 들어갑니다.

이것은 타락한 교회를 말합니다.



스가랴가 하도 이상해서 이것이 무엇이냐고 묻습니다.

그러자 천사가 하는 말이 이것은 에바 라고 합니다.

에바란? 곡식을 되는 말을 말합니다.



그 에바 위에 한 여인이 앉아 있습니다.

그런데 천사가 그 여자를 에바 속에 가두어 놓고 이것은 악이라고 하면서 납으로 에바의 입구를 봉해 버립니다.

그리고는 학의 날개 같은 날개를 가진 두 여인이 나타나서 그 에바를 시날 산으로 옮겨서 그들이 살 집을 짓게 하고서는 집이 준공 되면 거기서 살도록 한다고 합니다.



이 환상이 무슨 뜻인고 하니 타락한 교회의 심판을 말하는 것입니다.

날아가는 두루마리가 나오지요.

두루마리를 ‘메기라’ 라고 하는데 이는 ‘낫’이라는 말입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심판하는 도구인 낫과 같은 뜻입니다.

그런데 두루마리 규격이 성소의 규격과 같다고 하지요.

이것은 교회가 타락하여서 하나님께서 타락한 교회를 심판 하겠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두루마리가 여호와의 이름으로 망령되이 맹세하는 집으로 들어간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 망령된 집을 곡식을 담는 에바 라고 하는 것은 교회가 물질적 가치로 뒤덮혀 있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그 에바에 앉아 있는 여자를 악이라고 하고 이는 이 여자가 여호와의 집을 장사꾼의 소굴로 만들어 놓았다는 뜻입니다.

이게 예수님 초림 당시 강도의 굴혈이 되어버린 성전으로 나타났습니다.



이들의 고향이 어디냐 하면 시날 땅이에요.

시날 땅은 바벨탑을 쌓았던 곳입니다.

바벨론을 말해요.

이것은 우상숭배의 본산을 말합니다.



바벨론이 요한계시록에서 타락한 교회로 나타납니다.

타락한 교회를 일컬어 각종 더러운 영들이 모이는 귀신의 처소라고 합니다.

그래서 귀신의 처소가 된 타락한 교회를 일컬어 큰 성 바벨론이라고 하고 음녀라고도 하는 것입니다.

이들이 성도들의 피에 취하여 있어요.

그래서 하나님이 타락한 교회를 이한 낫으로 심판을 하시는 것입니다.



이한 낫이란? 저주의 두루마리인 심판의 말씀이에요.

그래서 영원한 복음 속에는 곡식의 추수와 포도송이의 심판이 동시에 담겨져 있는 것입니다.

어린 양의 생명책에 녹명이 된 자들에게는 영원한 복음이 축복의 소리이지만, 땅에 거하는 자들에게는 저주의 소리가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창세전 언약을 전해 보면 어떤 이들은 기뻐하는데, 어떤 이들은 기분이 나빠서 화를 내는 것입니다.

어떤 자들은 창세전에 어린 양의 생명책에 구원 받을 자의 이름이 녹명이 되어 있다고 하니까 신경질을 내면서 예정론은 똥이라고 악담을 해요.



왜? 창세전 예정을 싫어합니까?

이는 하나님의 일방적인 선택이 인간의 자존감을 빼앗아 가기 때문입니다.

인본주의자들은 구원을 받아도 내 노력으로 받아야 한다고 해요.



거저 주는 구원을 싫어해요.

자기 힘으로 받고자 해요.

결국 자기 공로 챙기기입니다.

이런 자들을 일컬어 땅에 거하는 자들이라고 합니다.



예수님은 자기 백성 구원 하시려고 오셨어요.

사마리아 여자처럼 찾아 가셔서 구원을 해 내세요.

아브라함을 찾아 가서 빼내듯이 지금도 목자가 잃은 양을 찾아 가서 구원해 내십니다.

그래서 구원이 은혜이고 감사이고 기쁨이 되는 것입니다.



요한계시록이 증거하는 것이 무엇인가요?

교회의 심판이에요.

교회 안에 땅에 거하는 자들을 심판한다는 내용입니다.



교회 안에 곡식과 포도송이가 있어요.

마치 아브라함 집안에 이스마엘과 이삭이 있었듯이 말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교회의 주인이 되셔서 하늘에 속한 자와 땅에 속한 자를 갈라내서 각자가 있어야 할 곳으로 분리시키는 일을 하시는 것입니다.



이게 곡식의 추수이고 포도송이의 심판이에요.

이제 잠시 후면 영원히 갈라지는 일들이 일어날 것입니다.

지금은 영적으로 갈라지지만 장차 주님이 오시면 실제적으로 영원히 갈라지게 될 것입니다.



스스로의 신앙을 확증해 보세요.

나는 어디에 있나요?



어린 양과 더불어 시온산에 서 있나요?

아니면 짐승과 함께 땅에 거하고 있나요?



무엇을 바라보고 살고 있습니까?

어디를 지향하고 있습니까?

내가 지향하고 바라보는 그곳이 내가 가야할 자리입니다.

부디 여러분의 눈에 하늘에 시온 산이 보이고 여러분의 발걸음이 땅을 떠나 하늘로 향하는 발걸음이시기를 축원합니다.





기도합시다.

하나님 아버지, 어린아이가 어미의 젖을 사모하듯이 주의 구원을 사모합니다. 우리의 눈을 열어 하늘에 시온산이 보이게 하시고 우리의 발걸음을 하늘로 향하게 하여 주옵소서. 우리의 원대로 두지 마시고 아버지의 뜻에 이끌려 가는 인생이 되게 하옵소서. 예수그리스도를 따라가는 믿음 때문에 이 땅에서의 버려짐이 축복임을 알게 하시고 범사 속에서 감사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여호와의 정하신 날"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보라 용광로 불 같은 날이 이르리니

교만한 자와 악을 행하는 자는 다 지푸라기 같을 것이라

말라기 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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