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LY JESUS & 하늘 빛 사랑

시 3:5 내가 누워 자고 깨었으니 여호와께서 나를 붙드심이로다

16강. 성(聖)과 속(俗)을 구별하라 (레 11: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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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강해/레위기 강해

2021. 5. 30.

 

[16강. 성(聖)과 속(俗)을 구별하라 (레 11:1-47)]

-.정낙원 목사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

이는 자기 백성들에게 사랑을 주시는 분이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는 역설적으로 다가옵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가장 잘 보여주는 것이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죄인을 죽이는 것입니다.

우리가 죽어야 할 자리에 예수님을 대신 죽이셔서 우리의 죄를 도말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자기 백성들에게 십자가로 다가오십니다.

십자가로 다가오시는 것은 우리의 옛 사람을 죽이기 위함입니다.

세상에 대한 정과 욕심을 버리게 하시기 위함입니다.

 

우리 옛 사람은 흙에서 나서 흙에 기운으로 살아가는 자입니다.

흙에서 난 사람은 세상에 대한 정과 욕심으로 살아가는 자들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우리가 가장 좋아하는 세상에 대한 정과 욕심을 죽이는 일을 하십니다.

이걸 사랑이라고 합니다.

 

어째서 세상에 대한 정과 욕심을 죽이는 것이 사랑인가요?

이는 땅에 것을 빼앗음으로 하늘로 나아가게 하시기 때문입니다.

구약의 이스라엘은 애굽이 살기 좋았을 때는 떠날 생각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애굽에서 핍박과 고난이 심하자 하나님께 살려 달라고 하였습니다.

그러자 하나님은 그들을 애굽에서 뽑아내는 일을 하셨습니다.

이게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들을 사랑하는 사랑 법입니다.

 

아담이 범죄하고 난 후 하나님은 땅을 저주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흙에는 나는 것으로는 생명을 얻을 수가 없습니다.

생명은 하늘로서 나는 것을 먹어야 합니다.

그것이 예수그리스도라는 생명의 떡입니다.

 

하나님은 예수님을 자기 백성들의 양식으로 주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나는 하늘로서 온 생명의 떡이라고 합니다.

누구든지 나를 먹고 마시면 영생을 얻는다고 하셨습니다.

 

어떻게 예수를 먹을 수 있을까요?

이는 성령이 오셔서 먹게 하십니다.

그것이 주 예수를 믿음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의 나라는 하늘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떡의 가치로 살지 않고 하나님 말씀의 가치로 살았습니다.

 

신앙생활은 세상의 가치로 살지 않고 하늘의 가치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 사실을 자기 백성들에게 알리시는 일을 하십니다.

그것이 구약에서는 각종 정결 규례로 나타났습니다.

 

하나님은 출애굽 한 백성들에게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라고 합니다.

“나는 너희의 하나님이 되려고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여호와라”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 라고 하십니다.

 

하나님은 내가 너희를 애굽에서 빼내 온 것은 너희를 거룩케 하고자 하심이라고 합니다.

너희가 어떻게 거룩함을 입었고,

그 거룩을 어떻게 지켜내는지를 가르치는 일을 하십니다.

 

이스라엘은 출애굽 시에 어린 양의 죽음으로 죽음의 재앙으로부터 살아났습니다.

그리고 홍해를 건너서 광야로 나옵니다.

사도 바울은 이스라엘이 홍해를 건너 온 것을 세례라고 하였습니다.

 

세례란? 옛 사람의 죽음을 상징합니다.

이스라엘이 홍해를 건넌 것은 애굽의 사람이 죽임을 당한 것입니다.

옛 사람이 죽고 새 사람으로 살아난 것입니다.

 

애굽의 사람은 죄 아래서 난 사람이고,

홍해를 건너온 사람은 어린 양에서 살아난 사람입니다.

죄 아래서 난 사람은 죄인이고,

어린 양 안에서 난 사람은 거룩함을 입은 거룩한 사람입니다.

 

거룩은 어린 양의 죽음으로 주어진 거룩입니다.

하나님은 이 사실을 기억케 하시려고 제사 제도를 주신 것입니다.

성막에서 드려지는 제사는 어린 양의 희생을 기념케 하는 제사입니다.

백성들은 자신들이의 죄를 대신하여서 흠 없는 제물로 제사를 드리면서 자신들이 살고 있는 것은 어린 양의 죽음 때문임을 알아야 합니다.

 

신앙생활이란? 어린 양으로부터 주어진 거룩을 보존하고 유지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어린 양으로 거룩함을 입은 자들에게 거룩한 삶을 요구하십니다.

너희는 거룩한 자이므로 거룩한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어떻게 거룩한 사람으로 살아가는지를 레위기를 통해서 말해주고 있습니다.

거룩한 삶의 모습을 날과 달과 절기와 월삭을 지키는 것과 입고 먹고 마시는 것과 또한 이웃과 어떻게 살아가는지 모든 삶의 부분 속에 담아 두셨습니다.

 

레위기는 거룩을 가르치는 말씀입니다.

 

1-10장까지는 어떻게 거룩해지는지를 5대 제사를 통해서 알려 주었습니다.

거룩은 흠 없는 제물의 희생을 통해서 주어진다는 것을 5대 제사를 통해서 가르쳐 주었습니다.

그리고 11장부터는 흠 없는 제물의 희생으로 거룩을 입은 자들이 어떻게 삶 속에서 그 거룩을 유지해 가는지를 여러 가지 정결규례를 통해서 말해주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는 정결한 짐승과 부정한 짐승으로 말해주고 있습니다.

짐승 중에서도 먹어야 할 것과 먹지 말아야 할 것으로 말해주고 있습니다.

짐승의 특징을 가지고 거룩과 비거룩을 가르치고 있는 것입니다.

 

교육 중에서 은물 교육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어린아이들을 교제를 가지고 눈으로 보고 손으로 만지게 하면서 사물의 이치를 가르치는 교육법을 말합니다.

쉬운 말로 시청각 교육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짐승을 가지고 은물 교육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창조한 것들은 모두가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은 것들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짐승 중에서 이러한 것은 거룩하고 저러한 것은 속된 것으로 규정을 합니다.

 

하나님 앞에서는 거룩하고 속 된 것이 없습니다.

다만 이스라엘에게 성(聖)과 속(俗)을 구별하는 교육 차원에서 짐승의 특징과 속성들을 가지고 설명을 하고 있는 것뿐입니다.

 

짐승 중에서 이런 신체적 구조를 가진 놈들은 정결한 것이고 저런 몸의 구조를 가진 놈들은 부정한 것으로 구분을 해 놓은 것입니다.

짐승의 특성을 가지고 가르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어디까지나 율법 아래서 규정입니다.

 

미리 말씀 드리지만 예수님의 십자가 이후 새 언약 안에서는 성과 속의 기준이 달라졌습니다.

예수 안은 성이고, 예수 밖은 속입니다.

신약에서는 정결한 짐승과 부정한 짐승은 없습니다.

그냥 짐승일 뿐입니다.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옛 언약 아래서는 유대인은 정결하고, 이방인은 부정하였습니다.

그러나 새 언약 안에서는 예수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정한 자이고,

예수그리스도 바깥에 있으면 부정한 자가 됩니다.

 

하나님은 베드로에게 이 사실을 알려 주었습니다.

 

행 10:11-16절. “하늘이 열리며 한 그릇이 내려오는 것을 보니 큰 보자기 같고 네 귀를 매어 땅에 드리웠더라 12. 그 안에는 땅에 있는 각색 네 발 가진 짐승과 기는 것과 공중에 나는 것들이 있는데 13. 또 소리가 있으되 베드로야 일어나 잡아먹으라 하거늘 14. 베드로가 가로되 주여 그럴 수 없나이다 속되고 깨끗지 아니한 물건을 내가 언제든지 먹지 아니하였삽나이다 한 대 15. 또 두 번째 소리 있으되 하나님께서 깨끗케 하신 것을 네가 속되다 하지 말라 하더라 16. 이런 일이 세 번 있은 후 그 그릇이 곧 하늘로 올리워 가니라”

 

베드로는 기도 중에 하늘에서 큰 보자기에 각종 짐승을 보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잡아먹으라고 하였습니다.

이에 베드로는 율법적 기준으로 이러한 것은 부정한 것이므로 먹지 않겠다고 합니다.

그러자 하나님이 내가 깨끗하다고 하는데 네가 왜 부정하다고 하느냐고 책망합니다.  



베드로는 이것이 무얼 뜻하는지 몰랐습니다.

그런데 기도가 끝나자 이방인인 고넬료의 집에서 초청이 왔습니다.

베드로는 이를 기도 중에 보여주신 응답인 것을 알고 이방인인 고넬료의 집에 가서 복음을 전하게 되고 고넬료의 집 사람들이 구원을 받게 되었습니다.

 

율법 아래서는 이방인은 부정한 짐승과 같습니다.

그런데 새 언약 안에서 유대인과 이방인은 차이가 없어졌습니다.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입니다.

 

베드로가 본 환상 속의 각양의 짐승들은 이방인을 뜻하고 있는 것입니다.

구약의 율법 아래서 말하던 정결한 짐승과 부정한 짐승 이야기가 신약에서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와 그리스도 밖에 있는 자로 나타난 것입니다.

 

구약은 그림자이고 신약은 실상입니다.

하나님은 구약의 그림자 속에 신약의 영적 의미를 담아 놓은 것입니다.

율법 속의 먹고 마시는 문제가 신약에서는 복음으로 나타난 것입니다.

 

구약에서는 교육용으로 짐승으로 정결한 것과 부정한 것으로 구분을 하였지만,

신약에서는 복음 안에서 영적인 의미가 이해가 되었으면 짐승을 먹어도 되느냐 안 되느냐 로 가릴 것이 없습니다.

 

안식교에서처럼 돼지고기는 부정한 것이므로 먹어서는 안 된다고 하면 안 됩니다.

그건 구약을 살고 있는 사람입니다.

토요일을 안식일이라고 하는 것도 틀린 것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날과 달과 절기와 먹고 마시는 모든 것을 폐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음식으로 성과 속을 나누고 날을 가지고 성과 속을 구분하는 것은 스스로 율법 아래 있음을 드러내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예수님의 십자가를 믿지 않음이 되므로 이방인과 다름이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구약의 먹고 마시는 율법의 조문들을 다 도말을 하셨기 때문에 믿음으로 받으면 돼지도 소나 양처럼 먹을 수 있는 짐승일 뿐입니다.

그러므로 짐승으로 정결하다 부정하다 나누일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서 에덴동산에서 뱀이 인간을 미혹하였습니다.

뱀은 사단을 상징하는 것이지 뱀 자체가 사단은 아닙니다.

뱀은 하나님이 지으신 들짐승입니다.

 

뱀은 그저 뱀일 뿐입니다.

하나님은 들짐승인 뱀을 사단의 표상으로 사용한 것입니다.

우리가 뱀을 보고 사단아 물러가라고 하면 안 됩니다.

 

정결하고 부정한 짐승도 마찬가지입니다.

예를 들어서 소는 정결하고 돼지는 부정하다고 분류를 해 놓았습니다.

그렇다고 소는 깨끗하고 돼지는 더럽다는 뜻이 아닙니다.

 

소는 먹어도 되고 돼지는 먹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 아닙니다.

물론 율법 아래서는 부정하다고 분류한 돼지는 먹어서는 안 됩니다.

그러나 신약의 은혜 아래서는 소나 돼지는 그냥 짐승일 뿐입니다.

 

노아의 방주에는 정결한 짐승과 부정한 짐승이 함께 타고 있었습니다.

모두가 하나님의 은혜로 홍수 속에서 살아났습니다.

이렇게 되면 노아의 방주 안에서는 정결한 짐승이나 부정한 짐승이나 차별이 없습니다.

 

홍수가 끝이 난 후 노아는 정결한 짐승을 잡아서 하나님께 제사를 드립니다.

그러자 하나님이 그 제사를 흠향하시고 노아 언약을 세우십니다.

흠 없는 제물의 희생을 근거로 다시는 물로 심판하지 않겠다고 하십니다.

이것은 흠 없는 제물의 희생으로 세상을 유지하시겠다는 뜻입니다.

 

홍수 후에 살아가는 자들은 자신들이 죄 아래서 살 수 있는 것은 흠 없는 제물의 희생이라는 것을 기억하여야 합니다.

그래서 율법이 있기 전에도 사람들은 흠 없는 제물의 희생 제사들은 드렸던 것입니다.

 

율법이 오기 전에는 정결한 짐승과 부정한 짐승이 어떤 것인지를 몰랐습니다.

그런데 이것이 출애굽 한 이스라엘에게 율법이 주어지면서 그 정체가 드러납니다.

하나님은 짐승의 특징을 가지고 정결과 부정을 가르칩니다.

먹을 수 있는 것과 먹어서는 안 되는 것을 알려 주십니다.

 

그럼 정결한 짐승과 부정한 짐승이 어떤 것인지 살펴봅시다.

 

첫째, 짐승들 중에서 구별법입니다.

 

정결한 짐승은 굽이 갈라지고 되새김질 하는 것으로 먹어도 되는 것이지만,

반대로 굽이 갈라지지 않거나 되새김질을 하지 않는 것은 부정한 것으로 먹어서는 안 됩니다.

 

둘째, 바다의 물고기 중에서 구별법입니다.

 

바다의 물고기 중에서 정결한 고기는 비늘과 지느러미가 있는 것으로서 먹어도 되지만,

반대로 비늘이나 지느러미가 없는 고기는 부정한 것으로 먹어서는 안 됩니다.

 

셋째, 하늘을 나는 새와 곤충들 구별법입니다.

 

하늘을 나는 새와 곤충들 중에서 먹을 수 있는 정결한 새는 날개가 있어 날아다니고 것이라야 하고 곤충은 땅에서 뛰는 것이라야 합니다.

반대로 날개는 있어도 땅에서 걸어 다니는 것은 부정한 것으로 먹지 못하게 하였습니다.

하늘을 나는 새 중에서는 고기를 먹는 맹금류와 같이 포악한 것들은 부정한 것으로서 먹어서는 안 됩니다.

 

짐승이나 고기나 새를 의인화 하면 신자와 불신자를 상징합니다.

사람들 중에서도 하나님이 받으시는 사람이 있고,

하나님이 받지 않는 사람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거룩한 사람은 받으시고 부정한 사람은 거부하십니다.

 

누가 거룩한 사람이고,

누가 부정한 사람인가요?

그것은 정결한 짐승의 특성과 부정한 짐승의 특성으로 말해주고 있습니다.

 

굽이 갈라졌다는 것은 구별이 되었음을 의미합니다.

이는 세상 사람들과 구별되게 살아간다는 뜻입니다.

되새김질을 하는 것은 말씀을 듣고 묵상한다는 의미입니다.

하늘을 날고 땅에서 뛰는 것은 하늘의 기운으로 살아가고 천국에 소망을 두고 살아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특히 하나님은 땅에 기어 다니는 것들은 가증이 여기므로 절대로 먹어서는 안 된다고 하십니다.

땅에 기어 다닌다는 것은 땅의 기운으로 살고 있다는 뜻입니다.

땅의 기운으로 산다는 것은 땅의 소속이라는 뜻입니다.

양식이 그 사람의 소속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은 하늘 소속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은 하늘의 기운으로 살아가는 자들입니다.

이를 알려 주시고자 어린 양의 피로 출애굽을 하여 광야에 나온 백성들에게 하늘에서 만나를 주어서 먹게 하신 것입니다.

 

신자와 불신자는 생명이 다릅니다.

신자는 하늘의 생명을 가진 자이고,

불신자는 땅의 생명을 가진 자입니다.

 

하나님은 각자 먹을 양식들을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하늘에 속한 자들에게는 하늘의 기운으로 살아가는 것을 먹게 하셨고,

땅에 속한 자들에게는 땅의 기운으로 살아가는 것을 먹게 하셨습니다.

 

생명이 다르다는 것은 먹을 양식이 다르다는 뜻입니다.

하늘의 생명을 가진 자는 하늘의 양식을 먹어야 하고,

땅의 생명을 가진 자는 땅의 양식을 먹어야 합니다.

 

하늘에 만나를 일컬어 하늘에 있는 천사들이 먹는 양식이라고 하였습니다.

출애굽 한 백성들에게 하늘의 천사들이 먹는 양식을 주신 것은 어린 양의 희생으로 살아난 자들은 하늘의 백성이라는 뜻입니다.

이를 땅의 접촉으로부터 벗어나 뛰거나 날아다니는 것들을 정결한 짐승으로 규정하고 먹게 함으로서 너희는 하늘에 속한 자라는 정체성을 알려주신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정결한 짐승은 먹고 부정한 짐승은 멀리함으로서 우리는 땅이 기운으로 사는 자가 아니라 하늘이 기운으로 살아가는 자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애굽은 땅의 기운으로 살아가는 곳이고,

광야는 하늘의 기운으로 살아가는 곳입니다.

 

땅의 기운으로 살던 자는 출애굽 때 홍해에서 죽임을 당하였습니다.

광야에 나온 자들은 만나를 먹고 하늘의 기운으로 살아가는 자들입니다.

애굽에서는 정결과 부정 구분치 않고 모든 것을 먹었습니다.

그러나 광야에서는 정결과 부정한 것을 구분하여서 기어 다니면서 흙의 기운으로 살아가는 것은 먹어서는 안 되고 땅에서 뛰면서 하늘의 기운으로 사는 것만 먹어야 합니다.

 

하늘이 백성이기 때문에 하늘의 것을 먹으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신약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성도는 하늘에 속한 자들입니다.

그래서 너희가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심을 받았으면 위엣 것을 찾으라고 합니다.

 

골 3:1-5절.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았으면 위엣 것을 찾으라 거기는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느니라 2. 위엣 것을 생각하고 땅엣 것을 생각지 말라 3. 이는 너희가 죽었고 너희 생명이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감취었음이니라 4. 우리 생명이신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그 때에 너희도 그와 함께 영광 중에 나타나리라 5. 그러므로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라 곧 음란과 부정과 사욕과 악한 정욕과 탐심이니 탐심은 우상 숭배니라”

 

너희는 하늘에 속한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땅에 지체(육신의 소욕)를 죽이라고 합니다.

너희는 하늘 백성이니 하늘의 기운으로 살아가라는 뜻입니다.

 

신앙의 싸움은 옛 사람을 벗어 버리고 새 사람을 입는 것입니다.

육신의 소욕을 죽이고 성령의 소욕을 쫓아가는 것입니다.

왜 전쟁이라고 할까요?

이는 진 자는 이긴 자의 종이 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뱀에게 종신토록 흙을 먹도록 하였습니다.

흙이란? 이 세상을 말합니다.

그래서 마귀를 이 세상 신이라고 합니다.

세상 임금이라고 합니다.

 

마귀는 세상 것으로 미혹합니다.

마귀는 예수님에게 세상 것으로 미혹하였습니다.

자기에게 절만 하면 세상의 모든 부귀영화와 권세를 주겠다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으로부터 위임을 받은 것이므로 자기가 원하는 자에게 주겠다고 하였습니다.

이에 예수님은 사람이 떡으로 살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산다고 하면서 거절하였습니다.

 

마귀는 어느 시대이고 떡으로 미혹하였습니다.

온 인류가 이 미혹에 빠졌습니다.

우리가 죄 아래 있을 때는 마귀가 주는 떡의 기운으로 살았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사람으로 살아났습니다.

그 증거로 우리 안에 하늘로부터 성령이 오셨습니다.

성령은 우리 안에서 하늘에 기운으로 살도록 간섭하십니다.

성령께서 육신의 소욕을 죽이는 전쟁을 하십니다.

 

세상 가치로 살지 않고 하늘의 가치로 살아가도록 하십니다.

세상에 대한 정과 욕심을 죽이게 하십니다.

이것이 우리 안에서 일어나는 거룩한 전쟁입니다.

성령의 소욕과 육신의 소욕이 싸우는 거룩한 전쟁입니다.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을 죽이는 전쟁입니다.

 

요일 2:15-17절.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치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속에 있지 아니하니 16.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 좇아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 좇아 온 것이라 17. 이 세상도 그 정욕도 지나가되 오직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이는 영원히 거하느니라”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은 모두가 세상으로부터 온 것입니다.

세상으로부터 온 것이라는 말은 세상의 기운이라는 뜻입니다.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은 죽음의 기운인 것입니다.

세상의 기운을 먹으면 세상을 떠나지 못하게 됩니다.

 

그래서 주검을 만지지 말라고 합니다.

주검을 만지지 말라는 것은 죽은 자들과 함께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하늘에 속한 자는 산 자이고 땅에 속한 자는 죽은 자입니다.

 

산 자와 죽은 자와 함께 할 수가 없습니다.

그리스도와 벨리알이 함께 할 수가 없듯이,

믿는 자는 믿지 않는 자와 멍에를 같이 할 수가 없습니다.

하늘에 속한 자와 땅에 속한 자는 멍에를 함께 할 수가 없습니다.

 

산 자와 죽은 자가 함께 하면 산 자가 피해를 당하게 되어 있습니다.

믿는 자와 믿지 않는 자가 멍에를 같이 하면 믿는 자가 손해를 입게 됩니다.

착한 아이와 불량아이가 놀면 착한 아이가 불량 아이로 물들어 버리는 것과도 같습니다.

부모들은 아이에게 불량한 아이는 멀리하고 착한 아이와 가까이 사귐을 가지라고 합니다.

이는 착함이 악함에게 먹힘을 당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성과 속이 함께 하면 속이 성을 삼켜버립니다.

그래서 구원이 애굽에서 빼내심을 입는 것으로 주어진 것입니다.

세상 속에서 교회로 빼내심을 입는 것으로 나타난 것입니다.

 

거룩이란? 구별입니다.

거룩한 삶이란? 구별된 삶을 말합니다.

세상 가치로 살지 않고 하늘의 가치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새 언약 안에서는 누구의 의로 사느냐로 성과 속이 구분이 됩니다.

예수그리스도의 의는 성이고 인간의 의는 속입니다.

예수그리스도의 의로 살아가는 것이 정결한 짐승을 먹는 것이고,

인간의 의로 살아가는 것은 부정한 짐승을 먹는 것입니다.

 

부정한 짐승은 먹지 말라는 것은 인간의 의로 살지 말라는 것이고,

정결한 짐승을 먹으라는 것은 예수그리스도의 의로 살아가라는 것입니다.

예수그리스도의 의로 살면 거룩한 자이고,

자기 의로 사는 자는 부정한 자입니다.

 

이 시대는 혼합 주의가 창궐하고 있는 때입니다.

인본주의가 교회 안에 휩쓸고 있습니다.

영적으로 깨어서 잘 분별하시길 바랍니다.

 

 

 

 

 

 

"여호와의 정하신 날"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보라 용광로 불 같은 날이 이르리니

교만한 자와 악을 행하는 자는 다 지푸라기 같을 것이라

말라기 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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