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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6강. 하나님께 심판 받을 자들 (히 10:26-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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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강해/히브리서 강해

2021. 6. 10.

 

[56강. 하나님께 심판 받을 자들 (히 10:26-34)]

-.정낙원 목사

 

오늘은 하나님의 심판에 대하여 상고해 봅시다.
하나님께서 어떤 자들을 심판하시고,
하나님의 원수가 누구인지 살펴보기로 합시다.
그리고 성도가 끝까지 붙잡고 있어야 할 것이 무엇인지에 대하여서도 상고해 보기로 합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실 때 성소의 휘장이 찢어졌지요.
이건 경천동지(驚天動地)할 사건이에요.
우주의 질서가 바뀌는 것과 같이 엄청 중요합니다.
 
이게 왜 중요한가 하면!
그동안 굳게 잠겨 있던 에덴동산의 문이 열리는 사건이기도 하면서,
숨어 계시던 하나님이 죄인을 만나 주는 것이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한마디로 죄인과 하나님의 만남이 이루어지는 역사적인 사건이에요.
예수님이 자기 몸으로 천국에 문을 열어주신 것입니다.
 
이걸 알려면 성막을 알아야 해요.
 
성소의 휘장은 성막에 보면 성소와 지성소를 가로 막은 커텐을 말합니다.
휘장이 찢어졌다는 것은 곧 성소에서 지성소로 나아가는 길이 생겼다는 말입니다.
성소는 이 세상을 상징하고 지성소는 하늘을 상징합니다.
성소는 일반 제사장들이 매일 드나드는 곳이지만 지성소는 대제사장이 일 년에 단 한번 들어갈 수 있는 곳입니다.
 
일반 제사장은 구원 받은 성도를 상징하고 대제사장은 예수그리스도를 상징합니다.
앞서서 살펴보았듯이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신 것은 예수님이 대제사장이 되어서 자기 피를 앞세우고 하늘 지성소로 들어가신 것입니다.
 
중요하니까 다시 말합니다.
성막은 성전이에요.
알다시피 성전은 하나님의 집이에요.
하나님이 죄인을 만나기 위해서 마련한 처소에요.
 
성전은 이 땅에서만 필요해요.
천국은 성전이 필요가 없어요.
예수님 자체가 성전이니까요.
 
큰 의미로 천국 자체가 성전이에요.
그러니 성막은 천국의 축소판이라고 할 수가 있어요.
마치 아파트 모델하우수와 같아요.
 
성막에 보면 성소와 지성소가 구분이 되어 있습니다.
성소는 매일 드나드는 곳이지만!
지성소는 일 년에 딱 한 번 들어가는 곳이에요.
 
성소에는 일반 제사장들이 순번을 정해서 들어갔어요.
하지만 지성소에는 대제사장만이 들어갈 수가 있는 곳입니다.
지성소는 대제사장이 자기 목숨을 담보로 하고 들어가는 곳이에요.
지성소는 아무나 출입 할 수가 없는 아주 특별한 곳입니다.
그런데 그곳에 이제부터 일반 제사장들도 들어가게 되었어요.
 
히브리서에서는 이 지성소를 하늘에 있는 성소라고 합니다.
다른 말로 하나님이 계신 천국이란 말입니다.
그래서 성소의 휘장이 찢어진 것을 일컬어 하늘로 가는 “새롭고 산 길” 이라고 합니다.
천국에 가는 길이 생겼다는 말입니다.
 
땅에 있는 성막에선 대제사장이 지성소에서 하나님을 만났어요.
하나님은 지성소에서만 만나 주셨어요.
그것도 아무나 만나주지 않고 대제사장만 만나주세요.
하나님은 아무나 만날 수 없어요.
하나님이 지목한 대제사장만이 만날 수가 있어요.
 
대제사장은 장차 오실 예수님을 예표하고 있어요.
대제사장이 지성소에 들어간다는 것은 하나님을 만난다는 겁니다.
그럼 성소하고 지성소를 가로막고 있던 휘장이 찢어졌다는 것은 성소를 드나드는 길이 생겨서 이제부터는 일반 제사장들도 하나님을 만날 수 있게 되었다는 말입니다.
 
이게 무지 무지하게 중요한 말입니다.
왜냐하면! 일반 제사장은 우리 성도를 상징하고 대제사장은 예수님을 상징하기 때문입니다.
베드로가 그랬지요.
성도를 일컬어 너희는 거룩한 나라요 왕 같은 제사장이라고,,,
 
예수님의 죽으심으로 우리가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길이 열린 겁니다.
정리해서 말하면 원래 하나님은 대제사장이신 예수님하고만 만나 주셨는데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어주심으로서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길을 만들어 주신 것입니다.
 
이걸 요한복음 14장에서 처소라고 합니다.
예수님이 자기 몸으로 하나님과 우리가 만날 수 있는 처소를 마련해 주신 것입니다.
즉 죄인과 하나님을 화목시켜 주셨다는 말입니다.
 
예수님이 미련한 처소가 바로 성령이 우리 안에 오신 것입니다.
성령이 우리 안에 처소를 마련해 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성령이 오시면 우리 몸이 성전이 된다고 하는 것입니다.
 
천국에 가면 우리가 하나님을 만나요.
그러나 지금은 성령 안에서 영적으로 만나요.
천국에서는 얼굴과 얼굴을 대면해요.
 
이걸 에베소서에선 예수님의 십자가로 하나님과 죄인 사이에 가로 막힌 담을 헐었다고 합니다.
이젠 하나님과 죄인이 만날 수 있게 된 겁니다.
어떻게 만나느냐 하면 예수님의 피를 앞세우고 만납니다.
 
과거엔 죄인이 하나님을 만날 수도 없었을 뿐더러 혹시 만난다 하여도 즉사했어요.
아담이 에덴동산에서 쫓겨난 이후로 그 누구도 단 한 번도 하나님을 만난 적이 없어요.
일부러 하나님이 숨어계셨습니다.
 
모세가 하나님을 보여 달라고 하자 얼굴을 보여주지 않고 등만 보여 주셨지요.
이는 죄인이 하나님을 만나면 죽기 때문에 모세를 배려해서 얼굴을 안 보여 준 겁니다.
그런데 이제부터 그 휘장 뒤에 숨어계시던 하나님을 만날 수 있어진 것입니다.
 
어떻게요?
예수님의 죽으심으로 되었어요.
그러니 이제부터 우리도 예수님 피를 앞세우고 하나님을 만날 수 있게 되었다는 말입니다.
이 얼마나 놀라운 일입니까!
 
그래서 히브리서 기자는 흥분하면서!
야~ 이 사람들아!
예수님이 자기 육체로 하늘가는 새롭고 산(生) 길을 열어 놓았다고 증거하고 있는 것입니다.
굳게 잠겼던 에덴의 문이 예수님의 죽음으로 열리게 된 것이라고 말해주고 있는 겁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십자가를 기쁜 소식 즉 복음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창세전 언약이 비로소 역사 속에서 현실로 이루어진 겁니다.
비록 영적인 것이지만 말이에요.
창세전 언약을 보면 죄인이 예수님 피로 거룩하고 흠이 없어지고 하나님의 아들들이 된다고 하였거든요.
그 언약이 예수님의 죽음으로 성취가 된 것입니다.
이 얼마나 놀라운 일안가요!
그만큼 예수님의 십자가가 중요해요.
 
예수님이 하늘가는 길이에요.
예수님이 아담의 범죄로 굳게 닫혀 있던 에덴의 문을 여신 것입니다.
한 번도 열린 적이 없었는데!
예수님의 죽으심으로 비로소 열리게 된 것입니다.
 
마태복음 27장에서 이걸 상세하게 말해주고 있어요.
중요하니 한번 살펴봅시다.
 
마 27:50-53절. “예수께서 다시 크게 소리 지르시고 영혼이 떠나시다 51. 이에 성소 휘장이 위로부터 아래까지 찢어져 둘이 되고 땅이 진동하며 바위가 터지고 52. 무덤들이 열리며 자던 성도의 몸이 많이 일어나되 53. 예수의 부활 후에 저희가 무덤에서 나와서 거룩한 성에 들어가 많은 사람에게 보이니라”
 
보세요.
예수님이 죽으시자 성소의 휘장이 위로부터 아래로 쭉 찢어졌지요.
이건 하늘이 확 찢어진 겁니다.
 
예수님이 죽으시자 땅이 진동을 하고, 바위가 터지고, 무덤이 열리고, 자던 성도들이 살아났어요.
땅이 진동하고 바위가 터졌다는 것은 땅의 질서가 흔들렸다는 말입니다.
땅의 질서가 흔들리니 죽은 자가 살아나는 일들이 발생한 겁니다.
그동안 죽음이 모든 사람을 지배 했는데 이제 죽음을 이기는 자들이 나타난 것입니다.
죽음을 이긴 새로운 민족이 나타난 것입니다.
 
이건 예수님의 죽으심으로 새로운 질서가 생기게 되었다는 의미에요.
어떤 질서냐 하면 예수 안에서 죽은 자들이 살아나는 질서에요.
예수 안에서 죽은 자가 살아나서 어디로 갔습니까?
거룩한 성으로 들어갔다고 하지요.
 
거룩한 성은 천국을 말해요.
부활 하신 예수님이 가신 곳이 어디인가요?
하늘 예루살렘 즉 천국이에요.
그러니까 예수님이 부활 하실 때 무덤에서 나온 자들이 지금 천국에 가 있는 것입니다.
이걸 7대 절기 중에서 초실절에 첫 단을 흔들어서 드리는 것으로 보여 주셨어요.
 
예수님의 죽으심으로 비로소 천국이 공개가 된 것입니다.
이 얼마나 흥분되고 놀라운 일입니까!
마치 어렸을 때 즐겨 들었던 옛날이야기 같지 않나요.
 
“열려라 참깨”
그러면 문이 열린다는 이야기와 같아요.
동화 같은 이야기가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으로 일어난 것입니다.
천국의 문은 예수님의 피로서만 열리게 되어 있어요.
 
그래요.
예수님의 십자가 이야기는 동화 같은 이야기에요.
인간의 이성으로는 이해되지 않으니까 동화 같은 이야기라고 하는 겁니다.
하지만 믿는 자들에게는 실제 이야기인 것입니다.
 
천국 문이 예수의 피로 열린다!
이상하지 않나요.
세상 사람들에게 여러분~ 천국은 예수님 피로 갑니다!
그래 보세요.
미친놈 소리 듣지요.
 
세상 사람은 천국에는 착한 사람이 가고, 지옥에는 나쁜 사람 간다고 믿어요.
그래서 세상 사람들은 초상집에 가서 조문(弔文)을 할 때 망자(亡者)는 착하게 살았으니 좋은데 갔다고 하잖아요.
이는 사람들의 인식 속에는 착한 사람은 죽으면 천당에 간다가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성경을 열면 그게 아니거든요.
천국은 예수의 피로 간다고 단호하게 말해주고 있습니다.
예수님 피로서만 천국의 문이 열린다고 말해주고 있어요.
인간의 행함으로 가지 않고 예수를 믿음으로 간다고 하고 있어요.
예수님의 피가 없는 사람은 지옥으로 가요.
 
그런데 이걸 진리라고 합니다.
오늘 우리가 살펴 볼 이야기는 진리 이야기입니다.
진리가 뭐냐!
예수의 피로 천국에 간다는 것입니다.
 
이걸 우습게 여기는 자는 하나님이 심판하신다고 합니다.
성령을 받은 사람은 이 사실을 알기 때문에 아멘이라고 받아요.
하지만 성령을 받지 않은 사람은 웃기지 말라고 합니다.
무슨 그런 황당한 말을 하느냐 라고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말라고 해요.
 
세상은 하나님의 진리를 받지 못해요.
왜냐하면! 인간의 상식으로는 납득이 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진리 문제는 조금 후에 살펴보기로 합시다.
 
다시 성막을 말합니다.
성막에 보면 지성소가 있지요.
지금 히브리서가 말하는 성소란 성막의 지성소를 말해요.
그런데 이 지성소를 하늘에 있는 성소라고 합니다.
다른 말로 천국이란 말입니다.
 
뭘 말하려고 하는가 하면 지성소에 피 뿌리는 이야기를 하고자 함입니다.
지성소엔 뭐가 있는가 하면 법궤가 있어요.
법궤가 뭔가 하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범죄한 증거물들을 담아 놓은 상자입니다.
범죄한 증거물들을 담아 놓았다고 해서 증거궤라고도 합니다.
 
상자 속에는 세 가지 불순종의 증거물들이 담겨져 있습니다.
 
“만나를 담은 항아리”와,
“아론의 싹난 지팡이”와,
“십계명이 적힌 두 돌 판”이 있어요.
 
이 세 가지는 이스라엘이 광야에서 하나님께 범죄한 증거물들입니다.
 
“만나”는 고기 안준다고 데모하면서 탐욕을 부리다가 죽은 사건을 담고 있고!
“아론의 싹난 지팡이”는 고라일당이 모세에게 덤비다가 죽은 사건을 담고 있고!
“십계명이 적힌 두 돌 판”은 우상 숭배하다가 죽은 사건을 담고 있어요.
 
세 가지 모두가 하나님에게 덤비다가 죽은 사건들을 증거하는 물품들이에요.
이런 증거물들을 지성소에 보관하도록 한 것은 하나님이 너희들은 나에게 배반한 놈들이라는 것을 알려주고 있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에게는 나쁜 기억이므로 지워 버리고 싶은 것들입니다.
없애버리고 싶은 아주 기분 나쁘고 아픈 흔적들이에요.
그런데 하나님은 보관하시고선 아픈 기억을 끄집어내는 겁니다.
너희는 내 앞에서 죄인이라는 사실을 알려주는 겁니다.
 
법궤 속에 담긴 세 가지 물건들은 이스라엘이 범죄하여서 생긴 증거물이므로 이는 곧 이스라엘을 상징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상자 속에 담겨져 있는 셈입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보면서 그래요.
에이~ 이 나쁜 놈들!
은혜를 욕으로 갚는 놈들!
하나님께 원망하고 돌을 던진 놈들!
틈만 나면 나에게 덤비는 놈들이라고 하고 있는 겁니다.
 
그런데 그 법궤 속에 담긴 증거물들을 보이지 않게 뚜껑으로 덮어 놓았어요.
그 뚜껑을 시은좌라고 합니다.
뚜껑이 범죄한 이스라엘을 감싸고 있는 겁니다.
이는 너희들이 누구 때문에 살고 있는지 알기나 하느냐고 묻고 있는 겁니다.
 
하나님 눈에는 이스라엘은 안 보이고 뚜껑만 보이는 겁니다.
이스라엘은 뚜껑 안에 있는 거예요.
까불고 뚜껑 밖으로 나오면 죽어요.
이는 하나님 앞에서 자기 주제를 모르는 소치이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은 범대로 하면 저주 받아야 할 자들입니다.
그런데 그 저주를 뚜껑이 덮고 있는 것입니다.
저주를 풀어주는 일을 7월 10일 대 속죄일이 되면 대제사장이 흠 없는 희생제물의 피를 뚜껑에 뿌림으로서 행하였습니다.
 
그런데 이 피를 히브리서 기자는 예수님의 피라고 합니다.
이렇게 되면 이스라엘은 예수님의 피 때문에 저주에서 풀려나게 되는 것입니다.
아주 의미심장하지요.
 
예수님의 피가 뭐냐!
하나님의 저주를 풀어주는 겁니다.
하나님의 진노를 풀어주는 신비의 묘약이에요.
 
중요하니 다시 설명합니다.
 
대제사장이 일 년에 단 한 차례 이 상자 위 뚜껑에 희생 제물의 피를 뿌립니다.
상자 위에 피를 뿌린다는 것은 곧 이스라엘에게 뿌리는 것과 같아요.
희생 제물의 피를 뿌린다는 것은 곧 이스라엘 대신 제물이 죽었다는 의미에요.
 
법궤란? 법이 시행되는 곳이란 말입니다.
법이란? 착한 놈에겐 상을 주고 나쁜 놈에겐 벌을 주는 겁니다.
그럼 하나님이 이스라엘에게 준 법이 뭡니까?
 
신명기 28장에 잘 나와 있어요.
말씀에 순종하면 복을 받고, 불순종하면 저주 받는 겁니다.
그럼 법궤 속에 담긴 증거물들이 말해주듯이 이스라엘을 불순종했으니 저주 받아야 해요.
법궤가 말하는 것은 너희는 범죄 하였으니 죽어야 한다는 겁니다.
 
누구든지 하나님께 범죄하면 죽어요.
왜냐하면! 하나님은 죄를 용납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비록 이스라엘이라 할지라도 하나님께 범죄 했으니 죽어야 해요.
그래야 법이 제대로 시행이 되는 겁니다.
 
이스라엘이라고 해서 봐 준다면 그건 형평성에 어긋나는 일이에요.
이렇게 되면 하나님의 공의성이 무너집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만의 하나님이 아니고 온 세상의 하나님이잖아요.
이방인의 하나님도 되세요.
그러므로 하나님은 그 누구라도 이유를 불문하고 범죄 하면 법대로 시행하여야 합니다.
비록 자기 백성이라 할지라도 예외가 없어요.
 
그럼 이스라엘이 범죄 했으니 당연히 법대로 시행하여 죽여야지요.
그런데 이스라엘은 아브라함 후손이에요.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네 후손들에겐 복을 주겠다고 일방적으로 약속을 하셨어요.
그럼 그 약속대로 아브라함 후손은 그 어떤 잘못을 저질렀다 하여도 복을 받아야 합니다.
그래야 약속이 시행되는 것입니다.
 
여기서 복이란? 용서받고 구원을 받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야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약속한 것이 지켜지잖아요.
이렇게 되면 범죄한 자는 누구를 막론하고 죽임 당한다는 법도 추상같이 시행이 되고,
아브라함에게 네 후손에겐 반드시 복을 준다고 한 약속도 시행되어야 하나님다운 것이 되어요.
둘 중에 하나라도 어기면 하나님은 거짓말하는 분이 되고 말잖아요.
 
그럼 어떻게 이스라엘에게 법도 시행하고, 약속대로 복도 줄 수 있을까요?
여기에 동원된 것이 이스라엘의 죄를 누가 대신 담당하는 것입니다.
누군가가 이스라엘의 죄 값을 대신 책임져 주는 방식을 도입한 겁니다.
이걸 대속이라고 합니다.
 
이건 창세전에 언약하신 방식입니다.
아브라함에게 한 언약도 창세전 언약을 바탕으로 주어진 것이기 때문에 그렇게 한 것입니다.
그래서 아브라함과 약속을 쪼개진 제물로 하신 겁니다.
 
창세기 15장에 보면 하나님과 아브람이 약속을 체결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창 15:1-17절. “이 후에 여호와의 말씀이 이상 중에 아브람에게 임하여 가라사대 아브람아 두려워 말라 나는 너의 방패요 너의 지극히 큰 상급이니라 ~ 5. 그를 이끌고 밖으로 나가 가라사대 하늘을 우러러 뭇별을 셀 수 있나 보라 또 그에게 이르시되 네 자손이 이와 같으리라 ~ 7. 또 그에게 이르시되 나는 이 땅을 네게 주어 업을 삼게 하려고 너를 갈대아 우르에서 이끌어낸 여호와로라 8. 그가 가로되 주 여호와여 내가 이 땅으로 업을 삼을 줄을 무엇으로 알리이까 9.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나를 위하여 삼년 된 암소와 삼년 된 암염소와 삼년 된 수양과 산비둘기와 집비둘기 새끼를 취할찌니라 10. 아브람이 그 모든 것을 취하여 그 중간을 쪼개고 그 쪼갠 것을 마주 대하여 놓고 그 새는 쪼개지 아니하였으며 11. 솔개가 그 사체 위에 내릴 때에는 아브람이 쫓았더라 12. 해질 때에 아브람이 깊이 잠든 중에 캄캄함이 임하므로 심히 두려워하더니 13.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정녕히 알라 네 자손이 이방에서 객이 되어 그들을 섬기겠고 그들은 사백년 동안 네 자손을 괴롭게 하리니 14. 그 섬기는 나라를 내가 징치할찌며 그 후에 네 자손이 큰 재물을 이끌고 나오리라 15. 너는 장수하다가 평안히 조상에게로 돌아가 장사될 것이요 16. 네 자손은 사대 만에 이 땅으로 돌아오리니 이는 아모리 족속의 죄악이 아직 관영치 아니함이니라 하시더니 17. 해가 져서 어둘 때에 연기 나는 풀무가 보이며 타는 횃불이 쪼갠 고기 사이로 지나더라”
 
하나님이 아브람에게 네 후손에게 가나안 땅을 주겠다고 약속을 합니다.
그러자 아브람이 아니 그 약속을 어떻게 믿습니까?
의문을 제기합니다.
 
그러자 하나님이 아브람에게 삼년 된 암소와 삼년 된 암 염소와 삼년 된 수양과 산비둘기와 집비둘기 새끼를 반으로 쪼개서 제물로 바치라고 합니다.
제물들을 반으로 쪼갰어요.
 
그리곤 하나님이 그 사이로 지나갑니다.
하나님 홀로 그 사이로 지나갔어요.
이는 하나님이 자신의 목숨을 담보로 하여 언약을 맺은 겁니다.
 
이때 세운 언약이 출애굽 할 때 유월절 어린양의 피로 맺은 언약으로 구체화되어 나타납니다.
출애굽 언약 속에는 가나안 땅 까지 오는 것이 담겨져 있습니다.
알다시피 법궤 속에 담긴 범죄한 증거물들은 모두가 가나안 땅까지 오는 과정에서 일어난 것들입니다.
 
그럼 아브람과 한 언약대로면 그 어떤 범죄라 할지라도 하나님이 다 책임져 주셔야만 해요.
왜냐하면! 하나님이 쪼갠 고기 사이로 지나갔기 때문입니다.
이런 언약은 하나님이 세우셨습니다.
그러니 하나님이 자기 목숨을 걸고 책임을 져야 하는 겁니다.
 
이처럼 아브라함 언약 속에는 이스라엘의 범죄를 대신하여 하나님이 죽을 것을 담아 놓았잖아요.
다른 말로 이스라엘의 죄를 하나님이 담당해 주신다는 겁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스라엘 속에 하나님을 대신하는 대 제사장을 세워서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대신하고 있다는 것을 표상적으로 알려준 것입니다.
 
대제사장은 하나님을 대신하는 분이에요.
하나님이 대제사장을 이스라엘을 대신 하는 분으로 세워놓았습니다.
대제사장은 이스라엘을 대표하면서도 하나님을 대신하는 분으로 서 있는 것입니다.
이를 일컬어 중보자라고 합니다.
 
그러니 대 속죄일에 드려지는 제사는 대제사장의 목숨을 담보로 드려지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대제사장은 하나님을 대신하면서도 이스라엘을 대신하는 이중인물인 겁니다.
그래서 대제사장을 이스라엘의 모든 죄를 짊어지는 형식으로 두 가지 다를 시행하게 하신 것입니다.
이해가 되시지요.
 
대제사장이 지성소에 들어가서 범죄한 이스라엘이 담겨져 있는 법궤 위에 피를 뿌립니다.
그 피는 곧 대제사장 자기 피와 같아요.
피를 뿌렸다는 것은 자기가 죽었다는 뜻입니다.
 
대제사장이 자기 목숨을 들고 하나님 앞에 들어가서!
‘하나님!’
‘여기 이 범죄한 이스라엘 대신 내가 죽겠습니다!’
‘내 피를 가지고 왔습니다!’
그러고 있는 것입니다.
 
히브리서에서는 이걸 예수님이 아버지에게 말씀하셨다고 했어요.
 
히 10:7절. “이에 내가 말하기를 하나님이여 보시옵소서 두루마리 책에 나를 가리켜 기록한 것과 같이 하나님의 뜻을 행하러 왔나이다 하시니라”
 
예수님은 아버지 여기 보세요.
내가 두루마리 책에 기록된 대로 죽으러 왔습니다.
내 백성들의 죄를 대신 담당하여 죽고자 왔습니다! 라고 말하고 있는 겁니다.
 
대제사장은 예수님을 예표하고 있어요.
그래서 히브리서 기자는 이 사실을 알고 예수님이 대제사장이 되셔서 자기 피로 하늘에 있는 성소에 문을 열었다고 말해주고 있는 겁니다.
 
두루마리 책에 기록 되었다는 말은 성경에 약속이 되었다는 말입니다.
두루마리 책에 기록되었다 함은 아브라함과 맺은 언약을 위해서 왔다는 겁니다.
아브라함 언약은 창세전 언약을 근거로 주어진 겁니다.
창세전 언약을 보면 자기 피로 구속한다는 것이 담겨져 있거든요.
 
이게 하나님 앞에 진리이니 이 진리를 앞세우고 나아오라고 하는 겁니다.
반면에 이 진리를 훼손하는 자는 가만두지 않겠다고 합니다.
예수의 피를 우습게 여기는 자는 지옥 불에 집어넣겠다고 합니다.
 
옛 언약 아래선 짐승의 피를 뿌렸지만 새 언약 하에선 예수님의 피를 뿌려요.
그러니 구약 시대 대 제사장이 뿌린 피는 곧 신약에선 예수님 피가 되는 겁니다.
그럼 하나님은 그 피를 보고 이스라엘을 용서해 주는 겁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대신 대제사장의 목숨을 받은 겁니다.
이렇게 되면 이스라엘은 대제사장 안으로 귀속이 되어 버려요.
복속이 되었어요.
 
귀속이나 복속이나 같은 뜻입니다.
귀속은 주께로 돌아간다는 의미이고!
복속은 예수 안에 감추어진다는 의미에요.
 
귀속이란 주께로 나왔다가 주께로 돌아가는 것이고!
복속은 주님 품 안에 감추이는 것입니다.
귀속이나 복속이나 모두가 예수님 안에 감추어졌다는 말입니다.
이것은 이스라엘은 없다는 뜻입니다.
 
독자적인 이스라엘은 사라지고 대제사장 안에서 이스라엘로 존재하게 되는 겁니다.
이를 신약식으로 그리스도 안에서 산다고 해요.
하나님은 이스라엘과 상대하지 않고 대제사장 하고만 상대를 하는 겁니다.
그럼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만나려면 대제사장을 앞세우고 만나야 해요.
 
그래서 지난 시간에 예수의 피를 힘입어 하나님을 만나러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다고 말씀 드렸던 겁니다.
이걸 천국의 문을 여는 열쇠가 예수님의 피라고 했어요.
 
성령이 오시면 이 사실을 믿어지게 하세요.
예수님 피를 들고 하나님을 만나라고 해요.
나는 예수님 피 뒤에 졸졸 따라가면 되어요.
이게 진리에요.
 
오늘 본문을 보면 진리를 아는 지식이란 말이 나오지요.
 
진리를 아는 지식이란 뭐냐?
예수님 피로 죄 사함 받는다는 것을 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 피로 하나님을 만난다는 것을 아는 것입니다.
예수님 피로 천국 문을 들어간다는 것을 믿는다는 말이에요.
 
이 사실을 성령께선 택한 자들에게 알려주어서 믿음으로 나아가도록 인도하세요.
그래서 우리가 진리를 아는 지식을 받았다고 하는 겁니다.
성령을 받은 사람은 이 사실을 알기 때문에 예수님 피를 앞세우고 살게 되는 겁니다.
이걸 믿음이라고 합니다.
 
진리의 지식을 받은 성도는 이 사실만을 고집하게 되어 있어요.
성령을 받은 성도의 특징이 뭐냐 하면 예수님 피만 고집해요.
오직 예수님 피에요.
 
바울이 그랬어요.
그래서 바울은 교회에 모일 때 마다 예수의 피로 모이라고 한 겁니다.
서로 서로 이러한 사실로 격려하라고 하였어요.
 
모여서 우린 예수님의 피로 구원받았다는 것을 찬양하라고 한 겁니다.
사람의 외모를 보지 말고 너나 나나 다 죄인인데 예수님의 피가 덮어 주어서 산다고 차별하지 말라고 했어요.
 
예수님의 피만 자랑되어지는 곳이 교회에요.
교회를 일컬어 진리의 기둥이니 사도들의 터 위에 세운다는 말은 이를 두고 하는 말입니다.
바울은 누구든지 예수님 피에다 다른 것을 섞으면 다른 복음 전하는 자라고 하여서 자신을 비롯하여서 하늘로부터 온 천사라 할지라도 저주를 받으라고 단호하고 분명하게 말했어요.
 
그래서 저도 예수님의 피 이외 다른 것을 말하는 자를 저주 받을 이단이라고 단호하게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걸 이 시대에 적용하여서 인간에게 가능성을 두는 인본주의 개혁주의와 성화주의를 이단이라고 하는 것도 다 이런 근거에서 하는 말입니다.
 
저는 인간이 하나님 말씀을 지켜서 거룩해 진다고 하는 인본주의 개혁주의와 성화주의를 갈라디안식 다른 복음 신앙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을 보니 이런 사실을 우습게 여기는 자들이 있다고 합니다.
본문을 다시 한 번 봅시다.
 
히 10:26-29절. “우리가 진리를 아는 지식을 받은 후 짐짓 죄를 범한즉 다시 속죄하는 제사가 없고 27. 오직 무서운 마음으로 심판을 기다리는 것과 대적하는 자를 소멸할 맹렬한 불만 있으리라 28. 모세의 법을 폐한 자도 두 세 증인을 인하여 불쌍히 여김을 받지 못하고 죽었거든 29. 하물며 하나님 아들을 밟고 자기를 거룩하게 한 언약의 피를 부정한 것으로 여기고 은혜의 성령을 욕되게 하는 자의 당연히 받을 형벌이 얼마나 더 중하겠느냐 너희는 생각하라 ”
 
오늘은 굉장히 중요한 공부를 하니 정신 바짝 차리고 들으세요.
다시 차근차근 말합니다.
중요하니까 잘 들으세요.
 
우리가 진리를 아는 지식을 받았다고 하지요.
무슨 지식을 받았습니까?
진리를 아는 지식이지요.
 
진리는 언약의 피에요.
그럼 진리의 지식을 안다는 것은 “언약의 피”를 안다는 말입니다.
“언약의 피” 속에 담긴 의미를 안다는 말입니다.
“예수님의 피” 속에 담긴 의미를 안다는 뜻이에요.
 
언약이란? 한자적 의미로 보면 “말씀 언(言)”이고, “묶을 약(約)”이에요.
 
언약이란? 하나님의 일하심을 말씀으로 묶어 놓았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이 태초에 인간을 어떤 말씀에 묶어 놓았어요.
말씀에 묶여 있는 백성이 언약 백성이에요.
그런데 그 말씀에 묶여 있는 것이 뭔가 하면 “예수님의 피” 에요.
말씀이라는 끈을 살살 잡아당기면 “예수님의 피” 가 나와요.
예수님의 피!
 
말씀을 따라가면 “예수님의 피” 가 나와야 한단 말입니다.
왜냐하면! 창세전 언약을 보면 예수님의 피로 자기 백성들을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해 준다고 했거든요.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해 준다는 말은 구원시켜 준단 말입니다.
하나님이 만나 주겠다는 말입니다.
 
지난 금요일 밤 11시 반경에 기독교 방송을 보았는데 이00 라는 여자 목사가 나와서 히브리서 11장을 설교하면서 아브라함의 부활신앙이라는 제목으로 설교를 해요.
설교의 주제가 아브라함을 본 받자에요.
그래서 아브라함처럼 말씀에 순종해서 하나님께 복을 받으라는 겁니다.
성경 말씀들을 쭈욱~ 열거하면서 시종일관 하나님 말씀대로 살아야 한다는 겁니다.
 
말씀대로 사는 게 뭐냐?
성경을 문자 풀이하는 겁니다.
봐라! 아브라함이 아들까지 바치지 않았느냐!
여러분도 자식보다 하나님은 더 사랑해야 한다!
 
성경에 말씀에 순종하라고 하지 않았느냐!그러니 말씀대로 살라는 겁니다.
결국 행하라는 겁니다.
 
그런데 오늘 분문을 보니 말씀을 따라가면 우리의 행함이 나오는 것이 아니고 “예수님의 피”가 나옵니다.
“피” 말이에요.
“피”가 그냥 “피”가 아니고 “언약의 피” 에요.
 
그럼 하나님이 언제 언약을 했나요?
창세전에 했어요.
바울이 성령의 감동으로 창세전 언약을 알려 주었어요.
 
에베소서 1장을 봅시다.
 
엡 1:4-7절.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5.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6. 이는 그의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우리에게 거저 주시는바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미하게 하려는 것이라 7.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은혜의풍성함을 따라 그의 피로 말미암아 구속 곧 죄 사함을 받았으니”
 
창세전에 아버지와 아들 간에 약속을 했어요.
무슨 약속인가 하면 우리를 택하여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해 주신다는 약속이에요.
우리란? 성도를 말해요.
교회를 말해요.
 
성도가 어떻게 거룩하고 흠이 없게 되는가 하면 예수님의 피로 된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의 피로 구속 곧 죄사함을 받는다고 말해주고 있는 겁니다.
예수님의 피로 거룩하게 된다고 했어요.
이것이 창세전 언약이에요.
 
언약이란? 말씀에 묶어 놓은 것이라고 했지요.
그럼 그 언약이라고 하는 묶인 말씀을 따라가면 무엇이 나와야 하는가 하면 “예수님의 피”가 나와야 합니다.
“예수님의 피”가 무엇을 하는가 하면 자기 백성들을 죄에서 거룩하게 만들어 줍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에서도 그냥 피라고 하지 않고 “거룩하게 한 언약의 피” 라고 하는 겁니다.
무슨 “피” 라구요?
“거룩하게 하는 언약의 피”에요.
그냥 “피” 가 아니고 “거룩하게 하는 피” 에요.
하나님 앞에서 의롭다고 인정받는 “피” 에요.
그 “피” 만 있으면 거룩해집니다.
 
그럼 그 피가 누구 “피” 입니까?
“예수님 피” 이지요.
“예수님의 피”로 거룩해 진다는 것이 진리에요.
이건 잠시 후에 더 설명을 할게요.
 
그럼 말씀대로 살라는 말을 따라가면 누가 나와야 하는가 하면 “예수님 피”가 나와야 합니다.
“예수님 피”를 내어 놓아야 말씀대로 사는 것이 됩니다.
그런데 그 여 목사님이 전하는 말씀을 따라가면 “예수님 피”가 나오는게 아니고 “인간의 행함”이 나와요.
인간의 열심과 충성이 나와요.
그러니 가짜이지요.
짝퉁이에요.
사도 바울은 이걸 “다른 복음”이라고 했어요.
그러니 그 여자 목사는 거짓 선지자인 겁니다.
 
구약에 바알과 아세라의 선지자들과 같은 자에요.
이 여자 목사뿐만 그런 게 아니고 기독교 방송에 나오는 99%가 다 거짓 선지자들이에요.
기독교 방송에 안 나와도 한국교회 안에는 거의 대 부분의 목사들이 모두가 거기서 거기에요.
왜냐하면! 그들이 증거하는 말씀을 따라가면 인간의 열심과 충성과 교회에 열심을 내라는 것들이 나오기 때문입니다.
 
저는 지금까지 기독교 방송 곧 TV에서든지 라디오에서든지 예수님 피를 말하는 설교를 들어보지를 못했어요.
혹시 제가 듣지 못한 부분이 있을 수 있기 때문에 100%라고 말하지 못하고 99%라고 말하여 1%는 남겨둔 겁니다.
이것도 아니라고 말하고 싶지만 혹시나 해서 남겨 두는 겁니다.
 
그래서 전 기독교 방송을 개구리 영들이 모인 아마겟돈이라고 해요.
왜냐하면! 거짓 종들이 다 모이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왜 요한계시록 16장을 보면 그랬어요.
 
아무리 바빠도 찾아봅시다.
 
계 16:13-16절. “또 내가 보매 개구리 같은 세 더러운 영이 용의 입과 짐승의 입과 거짓 선지자의 입에서 나오니 14. 저희는 귀신의 영이라 이적을 행하여 온 천하 임금들에게 가서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의 큰 날에 전쟁을 위하여 그들을 모으더라 15. 보라 내가 도적같이 오리니 누구든지 깨어 자기 옷을 지켜 벌거벗고 다니지 아니하며 자기의 부끄러움을 보이지 아니하는 자가 복이 있도다 16. 세 영이 히브리 음으로 아마겟돈이라 하는 곳으로 왕들을 모으더라”
 
보세요.
개구리 같은 세 더러운 영이 용의 입과, 짐승의 입과, 거짓선지자의 입에서 나온다고 하잖아요.
이 모두를 “귀신의 영” 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이 귀신의 영이 아마겟돈이라는 곳으로 왕들을 모아요.
여기서 왕이란? 목사를 말할 수 있어요.
지금 거짓 목사들은 전부 왕 노릇하고 있잖아요.
 
내가 주의 종이다!
내 말을 듣고!
목사를 하나님처럼 섬기라고 하잖아요.
전부 예수님 자리에 앉아서 교인들 위에 군림하고 왕처럼 행세하면서 호의호식하고 있잖아요.
 
하나님이 그렇게 만들었어요.
이걸 단으로 묶는다고 합니다.
가짜들끼리 한군데 모아서 추수하는 겁니다.
그러면 가짜 신자들도 모두 왕들을 따라서 모이는 겁니다.
 
예수님이 이런 일이 있을 것이란 것을 마태복음 24장에서 이미 예언을 하셨습니다.
 
마 24:4-5절.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너희가 사람의 미혹을 받지 않도록 주의하라 5. 많은 사람이 내 이름으로 와서 이르되 나는 그리스도라 하여 많은 사람을 미혹케 하리라”
 
마 24:11절. “거짓 선지자가 많이 일어나 많은 사람을 미혹하게 하겠으며”
 
하나님은 세상을 하나님의 시나리오대로 다스립니다.
그러므로 세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은 모두가 하나님의 시나리오대로 펼쳐지게 되어 있어요.
지금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그 시나리오를 말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내가 다시 올 때 이런 일들이 일어나 날 것이라고 알려주고 계신 거예요.
 
거짓 선지자들이 많이 일어나서 많은 사람들을 미혹한다고 하지요.
여기서 많다는 말은 우굴 우굴 하다는 말입니다.
개구리가 낳아 놓은 올챙이처럼 바글바글한다는 거예요.
 
예수님이 내가 다시 올 때 믿는 자를 보겠느냐고 하셨지요.
이는 예수의 피를 믿는 자들이 희소하다는 말이에요.
예수님 피를 말하는 종들이 없다는 말입니다.
 
마치 엘리야시대처럼 온 백성이 바알과 아세라를 섬기고 있어요.
찾아보기 어렵다는 말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은혜를 입고 남겨진 7천명들처럼 남은 자들이 있어요.
 
은혜로 남겨진 7천명들이 있기 때문에 한국교회는 다 이단이라고는 말을 하지 못하고 거의 다 이단이라고 말하는 겁니다.
엘리야 시대에 온 백성과 남은 자가 7천명이라고 명시한 것은 그만큼 가짜들은 셀 수 없이 많지만 남은 자는 셀 수 있을 정도로 미미하다는 겁니다.
 
마테복음 24장은 예수님의 예언이에요.
예언은 반드시 그렇게 되어야 합니다.
지금을 이구동성으로 종말이라고 하지요.
말세 중에서도 지말 이라고 하잖아요.
 
예수님의 예언대로 한국교회도 거짓선지자들이 우굴우굴해요.
거짓 선지자가 많다는 것은 그만큼 거짓 교인들이 많기 때문이에요.
거짓 신자들이 많기 때문에 하나님이 거짓 선지자들을 많이 일으켜서 미혹하게 한 겁니다.
 
금요일 밤에 설교한 그 여자 목사 교회도 비디오로 교인들을 잡아 주는데 보니 엄청 많아요.
그런 설교에 아멘 아멘하고 있어요.
유유상종입니다.
하나님께서 같이 한 단으로 묶어 둔 것입니다.
마치 아마겟돈으로 만국에 왕들을 보아놓은 것과 같아요.
 
이 시대 자기 이름 떨치고 자기교회 자랑하고 싶은 자들은 서로가 기독교방송에 나오려고 돈다발 싸들고 경쟁하고 있어요.
기독교 방송은 이들을 이용해서 장사하고 있는 것입니다.
서로 윈 윈 하는 겁니다.
그러니 영적으로 말하면 온갖 귀신의 영을 받은 자들이 모이는 아마겟돈과 같지요.
 
기독교 방송을 들어보세요.
99%가 열심을 다해 하나님 말씀대로 살고 충성해서 복을 받자고 하잖아요.
기독교 방송에서 예수님 피 이야기를 듣는다는 것은 낙타가 바늘귀 들어가는 것만큼 어려워요.
설령 복음을 말한다고 하면서도 끝에 가면 교회 충성하라는 것으로 귀결 나요.
 
열심을 다해서 믿음을 지키라고 합니다.
좌우지간 인간에게 뭔가 하여야 할 것이 있는 것처럼 말하면 다 다른 복음이라고 보면 틀림이 없어요.
설교는 주께서 하신 일을 증거하는 것이지 인간의 행함을 끄집어내는 것이 아니에요.
 
바울이 갈라디아서에서 다른 복음이라고 정의한 것이 바로 인간의 열심을 끄집어내는 것이라고 했어요.
예수님의 피에다 인간의 열심을 섞는 것이었어요.
 
요즘 식으로 말하면 인본주의 성화론이나 개혁주의에요.
인간의 행함에 가치를 두는 인본주의 개혁주의나 성화론은 다른 복음이에요.
왜냐하면! 인간의 행함을 열어 놓기 때문입니다.
이들은 인간의 역사를 연장시켜 나가고 있는 것입니다.
자기 의를 쌓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성화론 설교의 특징이 인간이 하나님 뜻대로 살아야 한다는 겁니다.
창세전 언약에 보면 이런 게 없어요.
인간이 하나님 말씀대로 살아서 거룩해 진다는 것이 없어요.
창세전 언약은 도리어 예수님의 피로 거룩하고 흠이 없게 된다고 했어요.
 
그러니 하나님 말씀대로 살아서 거룩해지라고 하는 성화주의자들이나 개혁주의자들은 창세전 언약에 의하면 이단인 겁니다.
왜냐하면! 창세전 언약은 인간이 말씀대로 살아야 한다는 것이 나오지 않고 예수님의 피가 나오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이 뭐라고 합니까?
하나님 아들을 밟고 자기를 거룩하게 한 언약의 피를 부정한 것으로 여기고 은혜의 성령을 욕되게 하는 자의 당연히 받을 형벌이 얼마나 더 중하겠느냐 너희는 생각하라 고 하잖아요.
예수님의 피로 거룩하게 된다는 진리의 지식을 받은 후 짐짓 죄를 지은 자들은 다시 속죄하는 제사가 없다고 하지요.
이는 그 어떤 것으로도 속죄할 수가 없다는 말입니다.
 
이를 “성령 훼방 죄” 라고 합니다.
성령은 예수님 피로서만 거룩하게 된다는 것을 진리라고 해요.
그러므로 인간의 선한 행위도 거룩이 된다고 하는 성화주의는 성령의 가르침을 훼방하는 죄가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령 훼방 죄는 용서받지 못한다는 겁니다.
 
그 안에 성령이 있는 성도는 예수의 피를 부정하지를 못해요.
성령으로 거듭난 성도는 성령 훼방 죄를 지을 수가 없어요.
안심하세요.
성령이 이를 허락하지 않아요.
만약에 예수님의 피 이외에 다른 것을 말하는 자는 성령이 그 속에 없는 자에요.
 
신앙은 우리가 지키는 것이 아니에요.
예수는 우리가 믿을 수가 없어요.
믿음은 우리가 지켜 낼 수가 없어요.
하나님이 지켜 주세요.
 
우리가 받은 믿음은 하나님이 주신 선물입니다.
그러니 우리의 믿음에 주인이 하나님이세요.
그러므로 성도의 믿음도 하나님이 지켜주세요.
성령을 보내서 지키게 하셨어요.
 
믿음을 못 지키면 어쩔까 염려하지 마세요.
우린 그냥 예수님의 피로 거룩해 진다는 약속을 믿고 담대하게 살면 됩니다.
그 누가 성화하여야 한다고 하여도 너나 잘 하세요! 라고 하고 여러분은 편안하게 사세요.
주여 감사합니다! 하고 사시면 됩니다.
 
이게 진리의 지식을 받은 성도만이 내 뱉을 수 있는 신앙고백이에요.
진리란? 변하지 않는 것을 말합니다.
다른 말로 만고불변의 법칙이에요.
 
예수님 피로 거룩하게 된다는 것은 하나님 나라에서도 통용되는 법이에요.
진리는 하나님이 하나님 자신에게 약속한 법입니다.
그러니 영원히 변하지 않습니다.
이 법만 가지고 있으면 하나님도 어쩌지 못해요.
이는 하나님이 자신의 이름을 걸고 맹세한 법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절대로 변할 수 없는 진리라고 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합니다.
진리란? 하나님 앞에서도 인정되는 법칙이에요.
그러므로 이 법만 가지고 있으면 당당해요.
그 누구도 시비 걸지 못해요.
마귀도 시비 걸지 못하고!
천사들도 시비 걸지 못해요.
 
천사 이야기를 하니까 생각이 나네요.
지성소에 보면 법궤를 지키고 있는 천사에 대하여 살펴보고 갑시다.
아까 지성소에 피를 뿌리는 것을 말할 때 잊은 겁니다.
대제사장이 피를 어디다 뿌리는가 하면 법궤 뚜껑에 뿌려요.
 
법궤 뚜껑을 시은좌라고 합니다.
시은좌란? 하나님의 은혜가 내려앉는 곳이란 말입니다.
은혜란? 용서해 주는 거예요.
하나님이 범죄한 이스라엘을 대 제사장이 뿌린 피를 보고 용서해 주는 겁니다.
 
그런데 이 법궤 뚜껑을 누가 지키고 있는가 하면 두 그룹이에요.
그룹은 천사에요.
천사 둘이서 눈에 불을 켜고 지키는 겁니다.
이건 마치 에덴동산을 지키는 천사들을 말합니다.
 
왜 지키느냐 하면 “피” 때문이에요.
하나님이 요구하는 피가 맞는지!“흠 없는 제물의 피” 인지,
아니면 “흠 있는 다른 피” 인지!
또 하나님이 준비한 제물인지 인간이 준비한 제물인지 눈에 불을 켜고 지키는 겁니다.
 
신약 식으로 말하면 진짜 예수인가 다른 예수인가 구별하는 겁니다.
바울이 그랬잖아요.
다른 예수!
다른 복음!
다른 영이 있다고 하였잖아요.
 
예수님 당시에도 다른 예수가 있었는데 지금은 오죽 하겠어요.
목사는 천사와 같이 교회를 지켜야 해요.
그런데 지금은 꺼꾸러 되어서 교인들이 목사를 지켜야 하는 형국이 되었어요.
왜냐하면! 목사들이 다른 예수를 전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다른 예수를 전한다는 말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다 이루심을 믿지 않는 겁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율법의 요구를 완성하셨어요.
율법의 정죄를 다 담당 했다는 말입니다.
율법이 입을 다물게 만든 겁니다.
 
율법이 뭡니까?
하나님 말씀대로 살지 않으면 죽는다는 거잖아요.
법이 뭡니까?
죄인을 옥에 가두거나 죽이는 거잖아요.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율법을 주었다는 것은 취조해서 죽이겠다는 말입니다.
하나님께서 난 반드시 너희를 죽이고 말겠다는 의지를 보이시려고 율법을 준 겁니다.
그래서 범죄한 인간들에게 율법을 준 겁니다.
 
죄인에게 율법이 주어 졌다는 것은 아~ 난 죽었구나!
이제 꼼짝없이 지옥에 가야 하는구나! 를 알게 하려는 거예요.
하나님이 이런 법을 이스라엘에게 주었습니다.
 
그럼 이스라엘은 죽은 자에요.
율법이 이스라엘에게 주어졌다는 것은 이스라엘을 죽음 속으로 가두어 버린 것입니다.
죽음에서 벗어날 길이 없어요.
사형 선고가 떨어진 겁니다.
 
사형 선고가 떨어지면 이미 죽은 자입니다.
당신은 죽음!
쾅! 쾅! 쾅!
이걸 살았다 하다 실상은 죽은 자라고 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자기백성인 이스라엘의 흑기사가 되어서 나타나셨어요.
자기백성 대신 죽으려고 오신 것입니다.
그리곤 십자가에 달려 죽었어요.
아주 처참하게 말이에요.
 
예수님이 죽은 것은 곧 자기백성도 죽었다는 말입니다.
무엇에 대하여 죽었느냐 하면 율법에 대하여 죽은 겁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이 우리가 지키지 못한 율법 때문에 대신 죽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되면 성도는 율법의 요구로부터 자유로워진 것입니다.
이걸 율법에서 해방 되었다고 합니다.
율법이 죽은 것이 아니라 율법의 요구로부터 자유롭게 되었다는 말입니다.
 
율법은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없어지지 않아요.
율법이 살아서 인간들을 죄인이라고 지적을 해 주어야 합니다.
그래야 예수님을 만날 수가 있습니다.
 
율법이 뭡니까?
하나님 말씀을 가지고 늘 추궁하는 겁니다.
너 하나님 말씀대로 살았어!
안 살았어!
 
죄인에게 하나님 말씀을 가지고 추궁하면 설 자리가 없어요.
우리 육신은 죄를 이기지 못해요.
달리 죄인입니까?
하나님 말씀대로 살 수 없으니 죄인이지요.
그런 죄인에게 너 하나님 말씀대로 살았어! 못 살았어! 라고 추궁하면 죄인은 꼼짝할 수가 없이 죄인으로 드러나게 되어 있어요.
 
그런데 예수님이 나타나서 그 아이들을 추궁하지 말고 날 추궁해라!
그 아이들이 받아야 할 저주를 내가 대신 받겠다고 하시면서 십자가에 죽으셨습니다.
그리곤 자기 아이들에겐 이제 율법이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고 너희들을 겁박하면 내 피를 보이라고 합니다.
 
내 피가 율법의 입을 막아 줄 것이라고 합니다.
이 사실을 믿고 살라고 성령을 주셨어요.
성령을 받은 성도는 이 사실이 믿어져요.
그래서 성령을 받은 성도는 율법으로부터 자유자로 살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죄를 안 지어서 율법으로부터 자유자가 아니라!
죄를 짓고 살아도 예수님의 대신 죽으심으로 인하여 자유자로 살게 되는 거예요.
항상 예수 안에서만 자유자에요.
그래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겐 결코 정죄함이 없다고 하는 것입니다.
율법이 정죄 할 수가 없는 이유는 예수님의 피가 성도를 감싸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마귀는 성도들에게 공갈을 쳐요.
성화주의자들이 마귀의 종이 되어서 공갈을 치고 있어요.
거짓말을 해요.
뭘로 공갈을 치는가 하면 죄를 둘로 나누어서 공갈쳐요.
 
이름하여 원죄와 자범죄에요.
원죄는 아담의 범죄로 인하여 우리 의지와 상관없이 주어진 죄라고 해요.
아담 때문에 주어진 죄를 예수 때문에 없애 준다는 겁니다.
그러니 예수 믿는 사람은 원죄에선 해방이 되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자범죄는 우리가 싸워서 이겨야 한다고 해요.
이제부터 성령의 능력으로 죄 짓지 말고 살라는 겁니다.
최선을 대해서 하나님 말씀을 지키고 살아야 한다고 합니다.
죄를 싸워서 이겨야 한다고 합니다.
 
어디서 많이 들어 보았지요.
기독교 방송을 틀면 이런 소리 하잖아요.
이 시대 많은 목사님들이 하는 설교 내용입니다.
개혁주의 성화주의를 외치는 목사들의 단골 메뉴에요.
 
그래서 교인들을 다시 하나님 말씀대로 살아야 한다는 신종 율법으로 꽉 잡아매잖아요.
그 따위로 신앙생활해서 천국에 가겠느냐고 공갈을 치잖아요.
누가 이의를 제기하면 한발 물러나서 천국에서 개털모자 쓴다고 하잖아요.
이렇든 저렇든 교인들로 하여금 불안감을 조성하여 충성과 봉사를 끄집어내고자 하는 것은 동일해요.
 
목사님 말 안 들으면 저주 받는 것처럼 만들어 놓아서 신앙생활이 기쁨이 아니라 짐이 되게 만들어 놓았어요.
교회 충성이 곧 하나님께 충성한다는 공식을 만들어 놓은 겁니다.
목사에게 순종하는 것이 곧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이라고 만들어 놓았어요.
 
그러니 교인들이 교회에 죽도록 충성한다고 아이고~ 아이고! 곡(哭) 소리 내고 있는 겁니다.
마음은 하기 싫은데 억지로 해야 하니 그 마음이 어찌 속 타지 않겠어요.
교회 다니는 것이 스트레스가 되지요.
겉은 천국에서 사는 천사처럼 연기한다고 바쁜데 속은 마귀이고 지옥인 겁니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나고 있는가 하면 거짓 목사들이 다른복음을 전하기 때문이에요.
 
다른 복음이란? “예수 믿기 + 말씀대로 = 온전한 구원” 이에요.
바울이 갈라디아서에서 말한 다른 복음이란? 예수도 믿고 율법도 지켜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시대 성화주의자들의 말과도 같습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이런 자들이 일어날 것을 미리 아시고 말했어요.
 
오늘본문을 통해서 예수님의 속죄사역을 믿지 않는 자들에 대하여 경고를 하고 있는 겁니다.
진리를 아는 지식이란? 예수님의 피로 죄사함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이런 사실을 말로는 안다고 하면서도 실제로는 믿지 않는 자들이 있었어요.
 
예수님이 속죄 제물이라는 것을 못 믿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다 이루었다는 것을 못 믿는 겁니다.
그래서 자신의 행함을 믿음에 보태려고 합니다.
 
이러한 상태를 진리를 아는 지식을 받은 후 짐짓 죄를 범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믿음이 없으면 자꾸만 자기 행위로 믿음을 대체하려고 해요.
이런 것을 아들이 피를 부정한 것으로 여기는 것이라고 합니다.
성령을 욕되게 하는 것이라고 해요.
 
히 10:29-31절. “하물며 하나님 아들을 밟고 자기를 거룩하게 한 언약의 피를 부정한 것으로 여기고 은혜의 성령을 욕되게 하는 자의 당연히 받을 형벌이 얼마나 더 중하겠느냐 너희는 생각하라 30. 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 하시고 또 다시 주께서 그의 백성을 심판하리라 말씀하신 것을 우리가 아노니 31. 살아계신 하나님의 손에 빠져 들어가는 것이 무서울진저”
 
하나님의 원수라고 하지요.
마귀는 천국 문을 여는 비밀이 뭔지 알아요.
천국 문은 예수님의 피로서만 열린다는 것을 알아요.
그리고 하나님도 예수님 피만 받는 다는 것을 알아요.
 
그래서 인간들에게 인간의 행함을 동원해서 예수님 피를 가리는 일을 해요.
예수님 피 대신 교회 충성과 하나님 말씀대로 살기 운동을 벌려요.
여기에 성화주의가 걸려든 겁니다.
그러니 성화주의자들은 예수님 피를 말하면 신경질을 내는 겁니다.
 
당신은 왜 예수님 피만 말하느냐!
성도다운 삶도 있지 않느냐!
새 생명의 삶이 있지 않느냐! 라고 해요.
결국 새 생명의 삶이란 것이 성화라는 겁니다.
 
새 생명이란 예수님의 대속에 은혜로 사는 생명인데!
그럼 예수님 피가 나와야지 어떻게 말씀대로 살았다는 자기 행함이 나오느냐 입니다.
말씀대로 살았다는 자기 행함은 자기 생명이지 어떻게 예수의 생명이냐 라고 하는 겁니다.
잘 이해하세요.
엄청 중요하니까요.
모르면 새 생명의 삶에 대한 오해라는 글을 참고하세요.
 
오늘 본문에서 그러잖아요.
아들의 피를 부정하게 여기는 자들은 하나님이 원수라고!
성령을 욕되게 하는 자라고 하잖아요.
성령은 오직 예수님 피만 말해요.
예수님 피 말고 다른 것을 말하면 다른 영이에요.
 
사람들이 하나님 말씀대로 살아야 한다고 하는 것은 불안하기 때문이에요.
믿음이 없기 때문에 말씀대로 살지 못한 죄를 불안해하는 겁니다.
하나님 말씀대로 살지 못한 것이 죄라고 여겨지면 대책이 없어요.
말씀대로 사는 수밖에 없어요.
 
결국 말씀대로 살지 못하면 저주 받을까봐서 불안한 겁니다.
말씀대로 살지 못한 것이 불안하니 그 불안감을 해소하기 위해서 갖가지 행위로 믿음을 대체시키려고 하는 것입니다.
말씀대로 살아서 거룩해지려고 하는 겁니다.
 
그래서 모든 말씀을 믿으려고 하지 않고 행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자기 안에 율법이 살아 있으니 불안하지요.
바울은 이런 자는 저주 아래 있는 자라고 했습니다.
 
갈 3:10절. “무릇 율법 행위에 속한 자들은 저주 아래 있나니 기록된바 누구든지 율법 책에 기록된 대로 온갖 일을 항상 행하지 아니하는 자는 저주 아래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
 
말씀대로 살아야 한다는 자는 율법 아래 있는 자에요.
그러니 말씀대로 살아야 한다고 하는 겁니다.
이런 자는 저주 아래 있어요.
그러니 불안해서 입만 열면 말씀대로 살아야 한다고 말하는 겁니다.
 
사람이 불안하면 그 불안을 해소하여야 안심이 되어요.
어떻게 불안을 해소하는가 하면 자기가 말씀을 지켜서 해소하려고 시도해요.
그런데 막상 말씀을 지키려고 하니 안 되는 겁니다.
여기에 동원된 것이 최선을 다해서 하면 하나님도 정상은 참작해 줄 것이 아닌가! 라는 자기식의 속죄 관을 가지고 이해하는 것입니다.
 
복음은 예수님이 행하신 것을 믿는 것이지, 우리가 무엇을 행하는 것이 아닙니다.
복음이라는 보따리 속에는 흔히 말하는 원죄와 자범죄라는 것을 몽땅 다 처리했다는 것이 담겨져 있어요.
 
솔직히 죄를 원죄다 자범죄다 구분하는 것 자체가 비성경적이에요.
성경은 그냥 죄라고 하지 원죄와 자범죄로 나누지 않아요.
죄는 그냥 죄에요.
흔히 원죄는 과거의 죄이고, 자범죄는 현재의 죄 미래의 죄라고 하잖아요.
 
그러나 하나님은 인간 자체를 죄인으로 규정해요.
인간을 과거 현재 미래로 나누지 않아요.
아담 안이라는 영역에 있으면 과거나 현재나 미래나 아담 안이에요.
아담 안은 저주 받은 영역인데 과거나 현재나 미래가 무슨 의미가 있어요.
없어요.
 
과거도 죄인이고!
현재도 죄인이고!
미래도 죄인이에요.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항상 죄인이에요.
 
구원이란? 아담 안에서 예수 안으로 영역이 이동된 것입니다.
인간이 바뀐 것이 아니고 영역이 이동이 된 것이에요.
하나님은 어느 영역에 있느냐를 묻지!
너 어떤 인간이냐를 묻지 않아요.
 
그리스도 예수 안이라는 영역 안에 있으면 묻지도 따지지도 않아요.
예수 안에서 있으면 살인자도 구원받고 강도도 구원받고 창녀도 구원받아요.
그 어떤 것으로도 정죄당하지 않아요.
왜냐하면! 예수 안은 무조건 예수님 피로 용서해 주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예수 안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묵시의 세계에요.
묵시의 세계는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세계이므로 과거니 현재니 미래라는 개념이 없어요.
그냥 오늘로만 존재해요.
이걸 영생 또는 영원이라고 합니다.
 
성도는 창세전에 이미 예수 안에 있었어요.
역사라는 세계에 있어도 여전히 예수 안에 있어요.
성도는 영원한 존재인 겁니다.
 
그러니 예수님의 피는 과거니 현재니 미래의 모든 것을 처리했어요.
복음 속에는 모든 죄를 깨끗케 한다는 약속이 담겨져 있어요.
원죄 자범죄가 아니고 모든 죄에요.
설령 성화주의자들의 말대로 원죄와 자범죄가 있다고 합시다.
 
그런데 예수님의 피가 이 모두를 사해주세요.
이게 복음 속에 담겨져 있어요.
어디서 어디까지는 되고가 없어요.
몽땅이에요.
날 구원 했으면 끝까지 책임져 주시지 어디까지는 책임지고 어디까지는 못하는 게 없어요.
 
교인들이 흔히 묻는 말이에요.
목사님! 예수 믿고 죄 지으면 지옥 갑니까?
이런 질문이 왜 나오는가 하면 원죄다 자범죄다 라는 엉터리 구원관을 가지고 있기 때문엔 나오는 겁니다.
 
이런 질문은 마치 어린아이를 엄마 뱃속에서 낳아 놓고 너 앞으로 내 말 안 들으면 다시 뱃속으로 집어넣을 꺼야 라는 말과 같아요.
이건 말도 안 되는 말이지요.
부모가 되어서 자식에게 이런 말을 하지 않아요.
 
구원을 거듭남이라고 하지요.
거듭남이란? 하늘로부터 태어나는 것을 말합니다.
성령이 천국 백성으로 태어나게 했어요.
천국 백성으로 태어났으면 이 신분은 변하지 않아요.
그 어떤 것으로도 이 신분은 변할 수가 없어요.
 
예를 들어서 제가 정씨에요.
제 속에 정씨라는 피가 흐르고 있습니다.
그런데 제가 에이~ 나 더러워서 정씨 안 할래 한다고 해서 사라지는 것이 아닙니다.
또 제가 정씨 가문에 영광을 가려서 족보에서 파 낸다고 하여도 제가 정씨에게 박씨로 변하지도 않아요.
이건 내 의지로도 또는 외부적인 조건으로도 변하지 않아요.
비록 제가 박씨로 개명을 해서 호적을 바꾼다 할지라도 내 속에 흐르는 정씨라는 피는 없어지지 않아요.
 
성도의 구원도 이와 같습니다.
우리가 구원 받는 것은 우리 원함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에요.
우린 구원 받아야 한다는 것조차 모르고 살았어요.
그런데 성령이 우리에게 덮쳐 오니 내가 구원 받아야 할 죄인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겁니다.
이 사실을 알 때는 이미 구원을 받은 후에요.
구원을 받았기 때문에 내가 죄인인 줄 알게 된 겁니다.
 
성령이 우릴 살려 놓고 되돌리기를 하는 겁니다.
역순으로 말이에요.
구원 시켜 놓고 우리가 어떤 존재이고!
어떻게 구원을 받았는지를 알려 주는 겁니다.
 
마치 엄마가 내가 태어나기 전부터 비디오로 찍어 놓은 것과 같아요.
임신 2주째부터 초음파로 내 심장 박동 소리를 듣고!
엄마 배가 점점 불러오고!
10달이 되어서 엄마의 산고로 인하여 내가 태어납니다.
 
그리고는 핏 덩이를 강보에 싸서 젓을 물리고!
똥 싸고 오줌 싸는 것을 씻겨주고!
아프면 병원에 데리고 가고!
유치원에 보내고!
학교를 보내고!
시집가고 장가가고 하고선 내 일생의 비디오테이프를 준 것과 같아요.
 
우린 비디오테이프를 보면서 야~ 내가 이런 인간이었구나!
내가 부모님 속을 무던히도 썩인 불효자이구나! 를 알고 부모님의 은혜에 감사하게 된다고요.
비디오테이프를 통해서 나의 나 된 것은 부모님의 은혜란 것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그 비디오테이프를 보면서 놀라는 것은 그렇게 속을 썩였음에도 나를 호적에서 빼내지 않고 지켜주었다는 것을 알고 놀라는 겁니다.
그래서 내가 지금 정씨로 버젓이 살고 있다는 것을 알아요.
 
그런데도 내가 만약에 제 부모님에게 제가 말 안 들으면 정씨라는 호적에서 빼 낼 것입니까? 라고 묻는 다면 어찌하겠습니까?
그건 귀 싸대기를 후려 패야지요.
조근 조근 이야기 할 것도 없어요.
다리몽둥이를 분질러 놓아야 해요.
그래야 아~이런 말을 하면 다리가 분질러지는구나! 를 알게 되지요.
호적엔 변함이 없이 제 이름이 적혀져 있고 내 몸뚱이만 다리가 분질러진 겁니다.
 
그러니 예수 믿고 죄 지으면 지옥에 갑니까! 라는 말은 성립이 안 되어요.
신앙생활이란? 우리가 점점 나아지는 것이 아니고 나를 나 되게 하신 비디오테이프를 보면서 하나님의 은혜를 더 깊이 알아가는 거예요.
내가 여기 이렇게 있다는 것의 바탕엔 하나님의 언약과 예수님의 피 흘리심과 성령의 은혜가 넘치고 있다는 것을 점점 많이 알아가는 겁니다.
그래서 지금 당장 죽는다 하여도 하나님의 은혜임을 알고 감사하는 겁니다.
 
그러니 예수 믿다가 죄 지으면 지옥 갑니까? 라는 질문이 얼마나 철딱서니가 없는 질문인가를 알겠지요.
이런 질문을 한다는 것은 참 구원을 받았다고 볼 수가 없어요.
사이비 구원을 받았기 때문에 이런 말에 현혹되고 이런 말을 서슴지 않고 하는 겁니다.
 
그래서 전 성화주의자들을 신자로 보지 않아요.
그들은 종교인들이에요.
성령이 그 안에 없다고 보아요.
그러니 자꾸만 자기 변화를 도모하는 겁니다.
왜 자기 변화를 도모합니까?
 
그건 자기 잘남을 쌓아가겠다는 뜻이에요.
바벨탑을 쌓는 겁니다.
자기 잘남을 쌓아서 하나님 앞에 당당해 지겠다는 거예요.
마치 탕지 비유에서 맏아들처럼 말이에요.
이게 얼마나 큰 죄악인지를 몰라요.
 
맏아들 신앙에는 도무지 은혜가 없어요.
생명의 따뜻함이 없어요.
긍휼이 없어요.
성화주의자들에겐 서로 서로 누가 누가 잘하나 경쟁하고 서로가 서로에게 정죄하고 비판만 난무하지 보듬어주고 안아주는 따스함이 없어요.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인간의 행함 자랑이니 서로 간에 우열이 생기고 차별이 생기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용서받음이 묻어나오는 것이 아니고 자기 자랑만 묻어나서 남을 깔보고 잘난 척하게 되는 겁니다.
조금 잘났다 싶으면 남 위에서 군림하는 겁니다.
이게 신종 니골라당이에요.
‘니골라’ 라는 말이 백성들 위에 군림한다는 말이에요.
 
십자가 안에는 너나 나나 차별이 없어요.
누가 누구 위에 군림하고 자시고 할 것이 없어요.
그러니 십자가 안에선 니골라 당이 나올 수가 없어요.
니골라가 되려면 차별이 있어야 하잖아요.
많이 성화 된 자와 적게 성화 된 자로 우열이 생겨야 군림이 되잖아요.
 
결국 성화주의자가 신종 니골라 당이란 말이에요.
그런데 성화를 외치는 자가 도리어 십자가 피만 의롭다고 외치는 저를 니골라 당이라고 하고 있어요.
이런 것을 두고 어리석은 자들은 그 어리석음을 스스로 드러낸다고 하는 겁니다.
성화주의를 외치는 본인이 니골라 당이라고 스스로 드러내고 있는 겁니다.
 
성화주의에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가 없어요.
“반드시 정죄가 있으리니” 가 있어요.
십자가 피 안에는 정죄가 없지만 성화에는 정죄가 있어요.
십자가 피 안에는 우열이 없지만 성화에는 반드시 우열이 있어요.
 
목사들이 성화를 외칠 수밖에 없는 것은 교인들 위에 군림하여야 하기 때문입니다.
목사라는 직위를 이용하여서 교인들을 가르치는 자의 위치에 있고자 하는 것입니다.
가르치는 자가 되어야 서열이 정해지고 우열이 생기고 군림이 되거든요.
목사들이 왕 노릇을 하는 겁니다.
그래서 목사들이 성화를 외치는 겁니다.
 
실제로 교인들은 성화에는 관심이 없어요.
그저 복 받고 잘 사는 것이 관심이에요.
교인들은 복음에 관심이 없어요.
돈이에요.
다른 말로 복이에요.
 
복을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여야 한다고 하니 목사들이 말하는 것에 순종하는 겁니다.
그래서 지옥에 가면 전부 자기는 억울하다고 하는 놈들만 있는 겁니다.
목사들에게 속았다는 것을 알고 이빨을 뿌드득 뿌드득 가는 겁니다.
난 목사에게 속아서 억울하다고 하는 겁니다.
 
아마도 지옥은 꼭 교도소와 같을 겁니다.
교도소에 가보세요.
난 억울합니다!
난 죄 없어요!
난 잘못한 것이 없다! 고 하고 있어요.
 
바리새인들이 지옥에서 뭐라고 하고 있을 것 같습니까?
부자와 거지 나사로의 비유를 보면 알 수가 있어요.
부자와 나사로 비유에서의 부자는 그 당시 바리새인들을 비꼬아서 하는 말이에요.
바리새인인 부자가 세리와 창기 같은 죄인인 나사로가 천국에 가 있는 것을 보니 자기는 억울해 죽겠는 겁니다.
 
저 놈은 평생 자기 집 앞에서 문둥병으로 거지로 산 놈인데!
그래도 자기는 구제도 하고 이웃도 돌보고 했어요.
아마도 잘 살았으니 이미지 관리차원에서도 거지로 산 나사로보다 착한 일을 많이 했을 겁니다.
가난한 사람을 보면 쌀 됫박이라도 퍼 주었을 겁니다.
 
부자로서 지역 유지로서 이미지 관리 차원에서도 최소한의 선행은 하고 살았을 것이에요.
그런데 빈둥거리고 논 거지는 천국에 가 있고 선행이라도 한 자기는 지옥에 와 있는 겁니다.
그러니 얼마나 억울하겠어요.
이건 너무 합니다!
너무해요!
 
그러니 예수 믿고 죄지으면 지옥에 갑니까? 라는 말은 나는 믿음이 없습니다 라는 말입니다.
예수님의 속죄가 안 믿어지니 자기 행함 하나 하나에 희비하는 겁니다.
예수 밖에 있으니 자기가 자기를 관리하는 겁니다.
그래서 성화주의를 불신자라고 하는 겁니다.
 
예수 안에 있으면 이런 생각이 아예 안 들어요.
나 지옥 가면 어떨까 라는 생각이 안 든다구요.
하나님의 사랑 안에 있으면 두려움이 없어요.
그러니 구원 문제로 두려워 한다는 것은 그 안에 하나님의 사랑이 없다는 겁니다.
 
사람들은 착각하기를 예수 믿으면 인간이 바뀌는 줄 알아요.
한국교회에선 그렇게 가르쳐요.
그러나 성경은 예수 믿어도 인간은 바뀌지 않는다고 해요.
 
또 이단 소리 들어봅시다.
제발 죄 안 지으려고 하지 마세요.
제발 죄짓고 사세요.
야! 파격적이다.
그러지 않아도 이단이라고 하는데 꼽배기로 이단이 되어 봅시다.
 
죄 짓고 살라는 말은 죄인이라는 사실을 자인하고 살란 말이에요.
제발 예수님의 피와 상관없는 자가 되지 말고 예수님의 피가 필요한 인간으로 살란 말입니다.
인간은 타고난 죄인이잖아요.
그럼 예수 믿어도 죄인은 바뀌지 않아요.
 
예레미야 선지자가 이를 잘 증거해 주었어요.
 
렘 13:23절. “구스인이 그 피부를 표범이 그 반점을 변할 수 있느뇨 할 수 있을찐대 악에 익숙한 너희도 선을 행할 수 있으리라”
 
보세요.
표범이 반점을 없앨 수가 없고 흑인이 그 검은 피부를 희게 할 수가 없듯이 죄인도 그 죄 짓는 일을 멈출 수가 없다고 하잖아요.
그래서 죄 짓고 살라고 하는 겁니다.
아니 죄인에겐 죄 짓고 살라는 말 자체가 성립이 안 되어요.
그냥 사는 것 자체가 죄 짓는 일이니까요.
 
목사들이 교인들에게 여러분 죄짓지 마세요! 라는 말의 뜻은 알아요.
저도 심정적으로는 이해해요.
하지만 말이 좋다고 하여서 진리는 아니에요.
아무리 말이 그럴듯하더라도 지키지 못할 말이라면 틀린 겁니다.
죄인이 각오를 다진다고 해서 죄를 이길 수가 없어요.
이건 불가능해요.
 
죄인의 본성이 죄 짓는 겁니다.
그러니 죄인에게 죄 짓지 마세요! 라는 말은 거짓말이 되는 겁니다.
도리어 당신들은 죄를 안 지을 수가 없는 존재들입니다! 라고 말해주어야 해요.
그래야 자기 가능성으로부터 손을 떼게 되어요.
 
그렇지 않으면 끝까지 자기 가능성으로 하나님 앞에 나와요.
우리 잘해 볼게요!
앞으로 열심히 말씀대로 살게요! 라고 해요.
이걸 예레미야가 구스인이 그 피부를 희게 할 수가 없는 것과 같다고 한 겁니다.
 
죄는 없애지는 것이 아니에요.
죄인으로 사는 한 죄는 늘 발생하게 되어 있어요.
그래서 예수를 믿으라고 하는 겁니다.
죄는 예수님의 피로 덮어주는 겁니다.
마치 더러운 벽을 페인트로 칠하여서 깨끗하게 하듯이 예수님의 피가 우리 죄를 깨끗하게 도배를 해 주세요.
 
그래서 성경은 예수 안에서 의롭다 여김을 받는다고 하는 것입니다.
내가 의로운 것이 아니고 예수님의 의로 의롭다고 여겨주는 겁니다.
예수님의 의에 옷을 입혀서 의롭게 여겨 주시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우리의 몸에선 항상 예수님의 생명이 풍겨 나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피 뿌리심이 나를 감싸고 있기 때문에 내 몸에선 난 예수님 때문에 삽니다! 라는 고백이 나오게 되는 것입니다.
이걸 그리스도의 향기라고 합니다.
 
우리 몸에서 그리스도의 향기가 넘친다고 하는 거예요.
난 예수님의 피 흘리심 때문에 용서 받고 삽니다! 라고 하라는 겁니다.
그런 의미에서 죄 짓고 살라고 하는 겁니다.
아니~ 제가 죄 짓고 살라는 말을 하지 않아도 이미 죄를 줄줄 흘리면서 살고 있잖아요.
 
얼마 전에 마트에 가서 대구 한 마리를 샀어요.
그래서 손질을 해 달라고 했어요.
그러니 손질 하시는 분이 칼로 대구의 배를 쫙 가르는 겁니다.
그러니 그 속에 창자에서부터 곤이라는 것이 쭉 흘러나오는 겁니다.
 
대구 속에 창자나 곤이나 간이나 쓸개나 하는 것들이 대구와 따로 분리 되어 있지 않고 다 하나에요.
창자도 대구이고!
간도 대구이고!
쓸개도 대구이고!
곤도 대구에요.
이 모두가 대구에요.
이건 분리할 수가 없어요.
 
우리 죄인들도 마찬가지에요.
우리 안엔 더러운 것들이 가득 차 있어요.
이름하여 죄의 부산물들이에요.
이건 없앤다고 없어지지 않아요.
그냥 안고 살아야 하는 겁니다.
대구 안에서 곤이나 쓸개나 창자를 분리 할 수가 없듯이 분리 할 수가 없어요.
 
우리 안에는 미움과 시기와 질투와 음란과 부정과 사욕과 탐심과 악함들이 들어 있어요.
하나님 말씀을 어기는 것도 들어가 있습니다.
이게 언제 튀어 나올지 몰라요.
이 모두가 죄로 인하여 주어진 부산물이에요.
 
마치 감기 걸리면 콧물이 나오고!
기침이 나오고!
열이 나고!
목이 아프고!
으슬으슬 추워지는 것과 같아요.
 
감기 속에 이런 것들이 다양하게 들어가 있어요.
그래서 콧물이 나와도 감기라고 하고!
기침이 나와도 감기라고 하고!
열이 나도 감기라고 하고!
목구멍이 따가워도 감기라고 해요.
 
야고보 사도가 열 가지 계명 중에 그 하나만 여겨도 다 어긴 것이 된다고 하였지요.
이는 죄인은 계명을 다 지켜 낼 수가 없다는 뜻이에요.
다른 말로 너흰 죄 안 지을 수가 없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긍휼히 여겨서 구원을 한다는 겁니다.
 
자기가 죄인임을 안다면 긍휼을 구하여야지 앞으로 잘해 볼게요! 라고 하면 안 되어요.
열심과 충성이 나오면 안 되고 주여 불쌍히 여겨주세요 가 나와야 합니다.
그래야 죄인임을 고백하는 것이 됩니다.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난 없다는 말이에요.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내 꼬라지를 보지 않는다는 겁니다.
믿음이란? 믿어야 할 대상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내 꼬라지하고는 상관이 없습니다.
 
믿음이란? 타인이 한 것을 의지 하는 것을 말해요.
내가 하는 것은 행함이라고 합니다.
믿어야 하는 것은 타인이 한 것입니다.
그러니 “예수를 믿는다” 라는 말은 “예수님이 하신 일을 의지한다”는 말이에요.
 
믿음과 행함은 같이 할 수가 없어요.
믿든지 행하든지 둘 중에 하나를 해야만 해요.
내가 무엇을 행하든지 아니면 예수님이 하신 것을 믿든지 둘 중에 하나를 내어 놓아야 해요.
 
오늘 본문에 전 날에 빛을 받은 게 있다고 하지요.
이걸 아브라함 식으로 말해 봅시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언약이 있지요.
아브라함이 언약을 받은 것은 빛을 받은 거와 같아요.
 
그럼 아브라함이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언약 속엔 용서가 들어가 있지요.
어떤 것은 용서하고 어떤 것은 정죄하겠다는 것이 없지요.
그리고 어느 정도만 용서한다는 것도 없어요.
다 용서 한다는 말입니다.
 
죄의 경중도 따지지 않고!
죄의 양도 따지지 않고!
죄의 기간도 따지지 않지요.
무조건 용서해 준다는 것이 담겨 있지요.
 
아브라함을 일컬어 믿음에 조상이라고 합니다.
성도는 믿음으로 아브라함의 후손입니다.
그럼 저와 여러분이 지금 아브라함 언약을 받았어요.
아브라함 언약의 실체가 믿음입니다.
 
성도가 믿는 실체가 뭔가요?
예수님이 피로 맺은 새 언약이에요.
우리는 새 언약을 받았어요.
그럼 새 언약 속에는 아브라함 언약처럼 몽땅 다 들어가 있겠지요.
 
죄의 경중도 따지지 않고!
죄의 양도 따지지 않고!
죄의 기간도 따지지 않는다는 것이 담겨져 있겠지요.
 
우리가 믿을 때 이런 것을 몽땅 받았어요.
풀 셋트로 받았다구요.
예수님의 피가 모든 죄에게 깨끗케 해 준다는 것을 몽땅 받았어요.
 
지금 히브리서 기자가 묻잖아요.
‘야! 너 예수 믿을 때 받은 것 있지!’
‘너~ 새 언약 받았지!’
‘그 새 언약이라는 보따리 풀어봐!’
‘그 속에 뭐가 들어 있는지 읽어봐!’
 
‘큰 소리로 읽어 보리니까!’
‘예~에~???’
‘너 글 읽을 줄 몰라!’
‘아는데요!’
‘그럼 읽어봐!’
‘마귀가 듣도록 읽어보란 말이야!’
‘성화를 외치는 목사들이 듣도록 읽어봐!’
 
“누구든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는 결코 정죄함이 없다는 것이 들어 있는데요!”
 
‘차근 차근 단락 단락으로 다시 읽어!’
 
“누구든지!
예수 안에 있으면!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뭐라고 적혀 있어!’
‘결코 정죄하지 않는다고 적혀 있는데요!’
‘그럼 내가 믿음을 줄 때 그걸 믿으라고 주었잖아!’
‘예~’
‘그럼 그걸 믿음으로 살면 되잖아!’
‘그런데 왜 성화 한다고 지랄이야!’
‘지랄은!’
 
지금 어린아이처럼 말하는 이 말이 믿어집니까?
농담하는 게 아니고 이게 새 언약이에요.
예수님 피로 세운 새 언약이란 말입니다.
 
예수님의 대속이 안 믿어지면 자꾸만 자기 행위를 가지고 자기가 자기를 심판하게 됩니다.
안 믿어지면 자기가 자꾸만 법을 만들어요.
오늘은 이렇게 살고 저렇게 살아야지 하는 법을 만들어요.
 
오늘은 성경 3장을 보고!
기도는 30분을 하고!
전도하고!
봉사하고!
거짓말 하지 말고!
분내지 말고!
욕하지 말고!
착한 마음을 품고!
탐내지 말고!
자꾸만 법을 만들어요.
자기가 정한 법에 가두어져 끙끙거려요.
 
결국 자기가 법을 만들어서 자기가 자기에게 시달리고 있는 겁니다.
내가 나를 채찍으로 치듯이 하면서 우리 자신을 못살게 굴어요.
에라이~ 이 등신아!
그래 그걸 못 하느냐!
 
그러지 말라고 하여도 말을 안 들어요.
이런 말을 하면 도리어 화를 내요.
그래서 오늘 본문에서 이런 말을 하면 사람들로부터 비방을 당하고 욕을 먹고 구경거리가 된다고 하는 겁니다.
 
그러더라도 이런 형편에 처한 성도들과 서로 위로하고 살라고 합니다.
교회란? 이런 성도가 모이는 곳이에요.
예수님의 피만 자랑하는 자들이 모이는 곳이어야 해요.
인간의 자랑은 일체 발 붙이지 못하도록 하여야 해요.
 
예수님의 피가 믿어지십니까?
예수님의 피가 모든 죄로부터 깨끗케 해 주신다는 것이 믿어지십니까?
예수님의 피로 맺은 새 언약을 받았나요?
새 언약이라는 보따리 속에 있는 것을 다 받으세요.
취사선택해서 받지 말고 다 받아서 누리세요.
 
죄 용서만 있는 것이 아니고,
예수 때문에 욕먹고 핍박 받는 것도 담겨져 있어요.
그러니 누가 예수님 피를 말한다고 이단이라고 욕을 하더라도 슬퍼하지 마세요.
아! 새 언약 속엔 욕 먹는 것도 들어가 있지! 하고 감사하세요.
 
부디 하나님으로부터 진리를 아는 지식을 받았으면 언약의 피만 나를 거룩하게 해 준다는 약속만을 믿고 담대하게 사시기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합시다.
하나님 아버지! 우리에게 진리를 아는 지식을 주신 것을 감사합니다. 예수그리스도의 피가 그 모든 죄에서 깨끗케 하신다는 이 새 언약을 굳게 믿고 살게 하옵소서. 그 누가 무슨 말을 하더라도 치우치지 말게 하시고 그 어떤 핍박이나 참소가 오더라도 흔들리지 말고 예수님의 피로 맺은 새 언약만 자랑하고 살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여호와의 정하신 날"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보라 용광로 불 같은 날이 이르리니

교만한 자와 악을 행하는 자는 다 지푸라기 같을 것이라

말라기 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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