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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3:5 내가 누워 자고 깨었으니 여호와께서 나를 붙드심이로다

42강. 쏟아지는 하나님의 진노 (계 15:5-1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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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강해/요한계시록 강해

2021. 7. 2.

 

 

[42강. 쏟아지는 하나님의 진노 (계 15:5-16:21)]

-.정낙원 목사

 

오늘 본문을 보면 하늘에 있는 증거의 장막인 성전이 열리는 모습이 나옵니다.

성전이 열리니까 그 속에서 맑고 빛난 세마포 옷을 입고 가슴에 금 띠를 띤 일곱 천사가 일곱 재앙을 가지고 나옵니다.



그러자 네 생물 중 하나가 하나님의 진노가 가득 담긴 일곱 대접을 일곱 천사들에게 줍니다.

성전으로부터 큰 음성이 나서 하나님의 진노가 담긴 일곱 대접을 쏟으라고 합니다.

이에 일곱 천사가 이 땅에 일곱 대접을 쏟기 시작합니다.

그러자 이 땅에 갖가지 재앙들이 일어납니다.



그림을 그려 보면 이러합니다.

일곱 천사가 성전에 계신 하나님으로부터 결제를 받아서 나오는 모습입니다.

그 결제의 내용은 하나님의 진노가 가득 담긴 일곱 대접 재앙을 이 땅에 쏟는 것입니다.

즉 이 세상을 심판하는 내용입니다.



심판의 내용들을 보면 이 땅에서 일어나는 모든 재앙들입니다.

천재지변에서부터 인간들 세상에서 일어나는 갖가지 사건과 사고와 재앙 모두들입니다.

이렇게 되면 이 세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사건과 사고와 재앙들은 하나님의 허락 하에서 일어나고 있음을 알 수가 있습니다.



이것은 앞서서 계시록 6장에서 살펴보았습니다.

어린 양이 일곱 인으로 봉한 책을 하나님으로부터 받아서 그 인을 하나씩 떼시니까 말들이 뛰는데 말들이 뛸 때마다 이 땅에 갖가지 재앙들이 일어납니다.



이는 곧 이 땅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은 어린 양의 허락 하에서 일어나고 있다는 뜻입니다.

어린 양이 만물의 주인이 되어서 다스리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이 세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사건들은 어린 양의 계시가 되는 것입니다.



어째서 계시가 되는가요?

이는 모두가 어린 양의 허락 하에서 일어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나타나는 사건 속에는 뭔가를 알려주고자 하는 어린 양의 뜻이 담겨져 있기 때문에 계시사적 사건이 되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이 땅에서 일어나는 사건은 즉흥적인 것이 아니고 이미 책에 기록이 되어진 것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곧 이 세상 역사는 이미 정해진 시나리오대로 움직여지고 있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이 만물을 가지고 정한 시나리오를 사건으로 펼쳐 보이시고 계시므로 사건 자체가 하나님을 대신하여서 말을 하고 있는 것이 됩니다.



세상에서 일어나는 각종 천재지변은 만물 자체가 이 세상 종말이 다하였다고 인간들에게 알려주고 있는 것입니다.

마치 종말을 알리는 일기예보와 같은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만물을 가지고 이 세상에 대한 하나님의 뜻을 계시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걸 징조라고 했습니다.



이건 세상의 역사를 살펴보면 알 수 있어요.

새로운 나라는 반드시 옛 나라의 부패와 타락으로 무너지는 것을 기초로 해서 만들어져 왔습니다.

제국의 흥망성쇠를 보면 망하기 전에는 반드시 망할 징후들을 보여 왔어요.



무법천지가 되든가,

사회가 극도로 타락하고 혼란스러워지던가,

거짓이 정의로 둔갑이 되어서 혹세무민하든가,

좌우지간 망할 징조들을 보여요.



멀리서 찾을 것 없이 우리나라 역사를 보세요.

고구려, 백제, 신라, 고려, 조선 시대를 보세요.

나라가 망할 때는 항상 사회가 혼란스럽고 극심한 타락상을 보여 주었어요.

위정자들이 반목과 갈등으로 사분오열이 되어서 사회가 극도로 혼란스러웠어요.



그래서 성경은 종말의 징조를 말씀 하실 때 소문에 소문이 다하며 민족이 민족과 싸우며 난리와 난리가 더하고 사랑이 식어져 서로 죽고 죽이는 일들을 하게 된다고 하였어요.

이 세상을 하나의 제국이라고 보세요.

그럼 제국들의 흥망성쇠를 통해서 지금 이 시대를 읽을 수가 있습니다.

어느 경점인지 알 수가 있어요.



지금의 사회 현상이 바로 제국들이 망하는 시기의 징조들을 보여주고 있어요.

지구는 지구대로 천재지변으로 보여주고 있고 인간은 인간대로 세기말적인 현상들을 드러내고 있는 것입니다.

인간들 스스로도 이구동성으로 말세라고 하고 있어요.



요즘은 뉴스 보기가 겁나요.

연일 흉악한 범죄들이 뉴스 시간을 할애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지금 사람 목숨이 파리 목숨보다 못한 시대를 살고 있어요.



아무런 이유도 없이 사람을 죽이는 시대에요.

우리도 언제 어디서 어떤 재앙을 당할지 아무도 몰라요.

요즘 같은 때는 하루 하루 산다는 것 자체가 기적이에요.



왜 인간들이 이렇게 포학해 지나요?

이는 하나님께서 인간의 악함을 그대로 드러나게 하시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동안 하나님께서 간섭하시던 것을 풀어버리니까 스스로를 지키는 자제력이 상실 되어서 나타나는 현상들인 것입니다.



새로운 악을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니고

세상 끝이 다다르자 그동안 숨겨졌던 것을 그대로 드러내게 하시는 것입니다.

마치 죽으면 괄약근이 풀어져 속에 있는 내용물을 그대로 쏟아내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하나님의 간섭을 풀어 버리자 인간들 안에 응축 되어 있던 악의 모습들이 사건화 되어서 봇물처럼 터져 나오는 것입니다.

그래서 과거에는 제한적으로 작은 모습으로만 보여주던 것들이 이제는 광의적으로 온 세상에 편만하게 노골적으로 확대 되어서 나타나고 있는 것입니다.



인간은 원래 악한 자입니다.

악한 짓을 해서 악한 자가 아니고, 악한 자이기 때문에 악한 짓을 하는 것입니다.

살인을 해서 살인자가 아니고, 살인자이기 때문에 살인을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종말이 되면 사람들이 사랑이 식어져서 서로 죽이는데 내어준다고 하셨어요.



지금은 사회 자체가 사람들을 분노케 만들어요.

그러니 서로 죽이고 죽임 당하는 일들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이 모두가 세상 끝이 다가오니까 사회 자체가 악의 모습이 만개되어서 나타낼 수밖에 없는 환경으로 만들어져 가고 있는 것입니다.

이걸 사도 바울은 말세에 고통 하는 때라고 했어요.



디모데후서 3장을 봅시다.



딤후 3:1-5= "네가 이것을 알라 말세에 고통하는 때가 이르리니 2 사람들은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자긍하며, 교만하며, 훼방하며, 부모를 거역하며, 감사치 아니하며, 거룩하지 아니하며, 3 무정하며, 원통함을 풀지 아니하며, 참소하며, 절제하지 못하며, 사나우며, 선한 것을 좋아 아니하며, 4 배반하여 팔며, 조급하며, 자고하며, 쾌락을 사랑하기를 하나님 사랑하는 것보다 더하며, 5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는 자니, 이같은 자들에게서 네가 돌아서라"



말세에 고통하는 때가 온다고 하지요.

어떤 고통인가요?

사람들이 조급해져서 통제력을 상실한다는 것입니다.



극도의 이기주의가 되어서 남을 배려하는 배려심이 사라지고 자기 유익을 위해서는 무엇인든지 서슴치 않고 행하는 짐승이 되어간다는 것입니다.

이 시대 묻지마 살인이 일어나는 것들이 하나의 전조 현상이에요.



사회에 일어나는 사건들이 이 시대 인간상을 대변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분노 조절 게이지가 고장나서 억제되지 않고 폭발하는 것입니다.

이 모두가 종말의 현상이에요.



드라마를 보면 악한 자들이 처음부터 악한 모습으로 드러나지 않지요.

회 차가 거듭 할수록 악의 진면목을 서서히 드러내잖아요.

그래서 악이 더해지면 드라마가 종반을 치닫고 있다고들 합니다.



악인이 성공하는 것처럼 보이다가 어느 순간 한 방에 전세가 역전이 되어서 끝이 나잖아요.

드라마는 악인은 망하고 선인이 이긴다는 것으로 종결이 됩니다.

하나님이 드라마 속에도 이 세상이 어떻게 끝이 나는지를 간접적으로 계시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세상 역사가 드라마와 같아요.

하나님께서 시나리오를 마귀는 망하고 예수가 이긴다는 것으로 쓰고 계세요.

그래서 이 세상이 더욱더 패역해지고 악해져 가는 것으로 전개가 되는 것입니다.



바로의 꿈처럼 되어 가고 있어요.

바로가 꾼 꿈은 이 세상의 본질을 담고 있어요.

이 세상은 파리한 소가 살진 소를 잡아먹는 곳이에요.



비진리가 진리를 밀어내는 곳이에요.

어둠의 세력이 빛에 속한 자들을 핍박하고 죽이는 곳이에요.

어린 양의 생명책에 녹명이 된 자들이 땅의 짐승들에게 죽임을 당하는 곳이에요.

창조주가 피조물에게 죽임 당하는 곳이에요.

이걸 역리라고 하고 죄라고 합니다.



어둠이 깊으면 곧 새 날이 밝아옵니다.

이처럼 죄악이 관영할수록 이 세상이 끝이 다다랐고 새로운 세상이 가까워졌다고 하는 것입니다.

마귀가 이긴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마귀의 잔치도 다 끝나가고 있어요.

파장이에요.



요한계시록 17장을 보면 음녀가 이 땅의 것으로 사치하고 연락하면서 여황으로 살고 있지요.

그런데 그러한 것이 일순간에 사라집니다.

마치 맷돌이 바다에 빠뜨려져서 간곳이 없어지듯이 날아가 버립니다.

하나님은 자기 백성들에게 이 세상이 어떻게 멸망을 당하는지를 성경을 통해서 알려주셨어요.



그러므로 성도들은 성경 속의 제국들의 흥망성쇠를 통해서 이 세상이 가는 길을 알고 이 세상에 미련을 두지 않고 장차 오는 세상을 위하여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선물로 주신 믿음이 천국에 대한 소망을 주고, 천국에 대한 소망이 하나님 사랑으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이제 그 날이 가까이 왔습니다.

그래서 하늘에 성전이 열리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하늘에 성전이 열리지요.

그동안 한 번도 오픈 되지 않았던 하늘에 성전이 열린 것은 하나님이 친히 이 세상의 죄를 국문하시겠다는 뜻입니다.



사극을 보면 역적들을 국문 할 때 왕이 그 자리에 참석을 하지요.

그러면 형리(刑吏)들이 죄수들을 고문하고 죄를 토설 받게 되잖아요.

하늘에 성전이 열린 것은 이와 같아요.



하나님이 친히 국문을 하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종말의 마지막 심판을 알리는 일곱 천사들이 하나님의 진노를 담은 일곱 대접을 가지고 성전으로부터 나오는 것입니다.



성전이 열린다는 것은 하나님으로부터 결제가 떨어져서 집행을 한다는 뜻입니다.

일곱 천사들이 어떤 결제를 받았나요?

이 세상을 심판하라는 결제에요.

일곱 대접을 이 땅에 쏟아서 멸망시키라는 결제를 받은 것입니다.



그래서 일곱 천사가 일곱 대접을 땅에 쏟자 땅에서 각양의 재앙들이 일어나서 인간들을 심판하고 있는 것입니다.

마치 노아 시대 홍수로 인간들을 쓸어 버렸듯이 종말에도 하나님이 인간들을 쓸어버리는 심판을 단행하시는 것입니다.



이 말은 곧 이 시대가 노아 시대처럼 죄악이 관영하였다는 뜻입니다.

이 땅이 하나님 앞에 패괴하였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심판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이 세상의 멸망이야기입니다.

하나님은 왜 이 세상을 멸망시킬까요?

용도가 다 하였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은 창세전 언약을 이루기 위하여 한시적으로 만들어진 곳입니다.

이제 그 언약이 다 이루어져 갑니다.

그래서 철거를 하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일어나는 천제지변들은 마치 아파트 모델하우스 같이 철거 할 것이기 때문에 허름한 자재로 가건물을 지었어요.

그러므로 시간이 지나면 노후가 되어서 여기저기서 고장이 나고 붕괴의 조짐을 보이는 것입니다.

아파트를 다 지으면 모델하우스를 철거하듯이 이 세상도 심판을 하는 것입니다.



이 세상 입장에서는 슬픈 이야기이지만 성도 입장에서는 기쁜 소식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성도들의 원수를 갚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종말의 심판이 성도들의 기도가 담긴 금 대접을 쏟아버리는 것으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왜 심판이 성도들의 기도가 담긴 금 대접을 쏟아 버리는 것으로 타나날까요?



계시록 6장을 봅시다.



계 6:9-11= “다섯째 인을 떼실 때에 내가 보니 하나님의 말씀과 저희의 가진 증거를 인하여 죽임을 당한 영혼들이 제단 아래 있어 10 큰 소리로 불러 가로되 거룩하고 참되신 대 주재여 땅에 거하는 자들을 심판하여 우리 피를 신원하여 주지 아니하시기를 어느 때까지 하시려나이까 하니 11 각각 저희에게 흰 두루마기를 주시며 가라사대 아직 잠시 동안 쉬되 저희 동무 종들과 형제들도 자기처럼 죽임을 받아 그 수가 차기까지 하라 하시더라”



성도들이 하나님께 탄원을 하지요.

무슨 탄원입니까?

자기들을 죽인 원수들을 진멸시켜 달라는 탄원입니다.

이 탄원이 기도에요.



이 세상은 하나님의 아들들을 죽인 곳이에요.

하나님의 아들들이 이 세상에서 죽임 당함으로서 이 세상은 악의 근원지라는 것을 드러낸 것입니다.

마치 9.11 테러를 감행한 빈 라덴이 은거한 곳을 미군이 융단 폭격을 가하여서 멸절을 시켰듯이 하나님이 자기 백성들을 죽인 이 세상을 멸망시켜 버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진노가 금 대접에 담긴 것으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들의 죽음을 근거로 이 세상을 심판을 하시겠다는 뜻입니다.



다시 5장을 봅시다.



계 5:7-8= “어린 양이 나아와서 보좌에 앉으신 이의 오른손에서 책을 취하시니라 8 책을 취하시매 네 생물과 이십 사 장로들이 어린 양 앞에 엎드려 각각 거문고와 향이 가득한 금 대접을 가졌으니 이 향은 성도의 기도들이라”



성도들이 기도가 어디에 담겨져 있나요?

금 대접이지요.

왜 금 대접에 담겨져 있나요?

이는 예수님의 죽음을 근거로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금 대접은 성막의 성소 안에서 사용되는 그릇이에요.

성막을 보면 뜰과 성소와 지성소로 구분이 되어 있습니다.

뜰에는 놋으로 만든 번제단과 물 두멍이 있어요.

성소 안에는 금으로 만든 그릇들이 있어요.

성소 안에 사용되는 그릇은 전부가 금으로 된 것입니다.



성소에는 일반 백성들을 들어가지 못해요.

오직 제사장들만 들어갑니다.

제사장들이 성소에 들어가서 기도를 합니다.



성소는 번제단에서 죽은 흠 없는 짐승의 죽음을 근거로 들어갈 수가 있는 곳입니다.

제사장들이 뜰에 있는 물두멍에 손과 발을 씻고 들어갑니다.

물두멍에 손과 발을 씻는 것은 세례를 상징해요.



세례란? 연합을 뜻합니다.

그러니까 제사장들이 물두멍에서 손과 발을 씻는 것은 번제단에서 죽은 짐승은 곧 자기의 죽음으로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신약적인 의미로 보면 예수와 함께 죽고 살아난 자들이 하나님 앞에 나아가 기도를 드리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기도를 예수 이름으로 하라는 것은 예수님의 죽음을 근거로 하나님께 아뢰라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지금 금 대접에 담겨져서 하나님 앞으로 올라가는 성도들의 기도는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님의 증거로 인하여 죽임 당한 자들이 드리는 기도인 것입니다.



8장을 봅시다.



계 8:3-5= “또 다른 천사가 와서 제단 곁에 서서 금 향로를 가지고 많은 향을 받았으니 이는 모든 성도의 기도들과 합하여 보좌 앞 금단에 드리고자 함이라 4 향연이 성도의 기도와 함께 천사의 손으로부터 하나님 앞으로 올라가는지라 5 천사가 향로를 가지고 단 위의 불을 담아다가 땅에 쏟으매 뇌성과 음성과 번개와 지진이 나더라”



기도가 어디로 올라가는가요?

하나님 앞으로 올라가지요.

천사들이 성도의 기도를 금 향로에 담아서 하나님께 바치는 것입니다.



기도의 내용이 뭔가요?

원수들을 심판해 달라는 것입니다.

그러자 하나님이 천사에게 향로에 불을 담아서 땅에 쏟아 버리지요.

금 향로를 오늘 본문에서는 금 대접으로 말해주고 있어요.



오늘 본문을 보세요.



계 15:6-16:1= “일곱 재앙을 가진 일곱 천사가 성전으로부터 나와 맑고 빛난 세마포 옷을 입고 가슴에 금띠를 띠고 7 네 생물 중에 하나가 세세에 계신 하나님의 진노를 가득히 담은 금 대접 일곱을 그 일곱 천사에게 주니 8 하나님의 영광과 능력을 인하여 성전에 연기가 차게 되매 일곱 천사의 일곱 재앙이 마치기까지는 성전에 능히 들어갈 자가 없더라 16:1 또 내가 들으니 성전에서 큰 음성이 나서 일곱 천사에게 말하되 너희는 가서 하나님의 진노의 일곱 대접을 땅에 쏟으라 하더라”



천사가 성전으로부터 나오지요.

어떻게 나오는가요?

손에 하나님의 진노가 가득 담긴 금 대접을 들고 나오지요.



그리곤 땅에 쏟아 버립니다.

그러자 이 땅에 갖가지 재앙들이 일어납니다.

이게 일곱 대접 심판이에요.



대접을 쏟는다는 것은 진노를 하나도 남기지 않고 다 쏟아 붓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종말의 심판을 창세 이래로 이러한 진노는 없다고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그 동안에는 간헐적으로 부분적으로만 심판을 하였는데 이제는 완전하게 온 세상을 심판하겠다는 뜻입니다.



이 세상이 심판 받는 것은 한 가지 죄 때문이에요.

하나님의 아들을 죽인 죄에요.

예수를 죽였고, 예수 믿는 자들을 죽였기 때문입니다.



마귀가 어린 양도 죽였고, 그 이마에 어린 양의 이름이 적힌 백성들도 죽였어요.

이에 하나님이 어린 양과 어린 양에게 속한 자들의 죽음을 근거로 심판을 단행하시는 것입니다.

이걸 하나님의 공의라고 합니다.



데살로니가후서 1장을 봅시다.



살후 1:5-12= “이는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의 표요 너희로 하여금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한 자로 여기심을 얻게 하려 함이니 그 나라를 위하여 너희가 또한 고난을 받으리니 6 너희로 환난 받게 하는 자들에게는 환난으로 갚으시고 7 환난 받는 너희에게는 우리와 함께 안식으로 갚으시는 것이 하나님의 공의시니 주 예수께서 저의 능력의 천사들과 함께 하늘로부터 불꽃 중에 나타나실 때에 8 하나님을 모르는 자들과 우리 주 예수의 복음을 복종치 않는 자들에게 형벌을 주시리니 9 이런 자들이 주의 얼굴과 그의 힘의 영광을 떠나 영원한 멸망의 형벌을 받으리로다 10 그 날에 강림하사 그의 성도들에게서 영광을 얻으시고 모든 믿는 자에게서 기이히 여김을 얻으시리라(우리의 증거가 너희에게 믿어졌음이라) 11 이러므로 우리도 항상 너희를 위하여 기도함은 우리 하나님이 너희를 그 부르심에 합당한 자로 여기시고 모든 선을 기뻐함과 믿 음의 역사를 능력으로 이루게 하시고 12 우리 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대로 우리 주 예수의 이름이 너희 가운데서 영광을 얻으시고 너희도 그 안에서 영광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



환난 받게 하는 자들에게는 환란으로 갚으시고 환란 당한 자는 안식으로 갚으신다고 하지요.

누가 환란을 당했나요?

성도들이에요.



누가 성도를 핍박했나요?

마귀의 세력들입니다.

예수님이 왜 재림을 하시느냐?

마귀의 세력들을 심판하시기 위해서입니다.



예수님의 초림은 죽으러 오셨지만 예수님의 재림은 자기를 죽인 자들을 심판하고자 오세요.

만 왕의 왕으로서 심판 주로 오시는 것입니다.

초림 때는 힘 없는 모습으로 오셨지만, 재림은 힘 있는 장수의 모습으로 오세요.



그래서 바울이 예수로 인하여 고난당하는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에게 잠시 잠간 후면 예수님이 원수들을 심판하러 오시니까 염려하지 말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제가 성도는 이 땅에 악의 세력을 끄집어내는 미끼로 던져져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예수님은 양을 이리 가운데로 보낸다고 하셨어요.

이리를 찾아내고자 양을 보낸 것입니다.

양이 가니까 이리가 자기 정체를 드러낸 것입니다.



이리들이 누구인가요?

거짓 종들이에요.

적 그리스도 세력들이에요.

이 놈들이 양의 탈을 쓰고 있어요.



그래서 예수님이 그 놈들이 쓰고 있는 양의 탈을 벗겨 내고자 진짜 양을 그들에게 보내는 것입니다.

양을 보니까 이리의 본능이 발동하여서 잡아 먹어버린 것입니다.

결국 양은 이리의 정체를 폭로시키기 위한 미끼로 보내어진 것입니다.



이 세상은 하나님의 아들들의 피가 뿌려진 곳이에요.

아벨의 피로부터 사가랴의 피가 뿌려진 곳이에요.

이들이 피가 어디에 뿌려 졌다고 합니까?

예루살렘이에요.



예루살렘이란? 예수님이 죽임 당한 곳이에요.

누가 예수를 죽였나요?

타락한 교회에요.



이리가 어디에 있나요?

교회 안에 있어요.

종말에도 마찬가지에요.



예수님이 승천하시고 난 후 오순절 성령강림 후 교회가 세워집니다.

누가 교회를 핍박했나요?

사도들을 누가 핍박했나요?

율법주의자들이에요.

육에 속한 유대인들이 핍박을 했어요.



지금도 누가 복음 전하는 종들을 핍박합니까?육에 속한 자들이에요.

이들을 요한계시록에서는 땅에 거하는 자들이라고 합니다.

교회 안에 육에 속한 자들이 영에 속한 자들을 죽여요.



계시록 17-18장을 봅시다.



계 17:3-6= “곧 성령으로 나를 데리고 광야로 가니라 내가 보니 여자가 붉은 빛 짐승을 탔는데 그 짐승의 몸에 참람된 이름들이 가득하고 일곱 머리와 열 뿔이 있으며 4 그 여자는 자주빛과 붉은빛 옷을 입고 금과 보석과 진주로 꾸미고 손에 금잔을 가졌는데 가증한 물건과 그의 음행의 더러운 것들이 가득하더라 5 그 이마에 이름이 기록되었으니 비밀이라, 큰 바벨론이라, 땅의 음녀들과 가증한 것들의 어미라 하였더라 6 또 내가 보매 이 여자가 성도들의 피와 예수의 증인들의 피에 취한지라 내가 그 여자를 보고 기이히 여기고 크게 기이히 여기니”



계 18:20-24= “하늘과 성도들과 사도들과 선지자들아 그를 인하여 즐거워하라 하나님이 너희를 신원하시는 심판을 그에게 하셨음이라 하더라 21 이에 한 힘센 천사가 큰 맷돌 같은 돌을 들어 바다에 던져 가로되 큰 성 바벨론이 이같이 몹시 떨어져 결코 다시 보이지 아니하리로다 22 또 거문고 타는 자와 풍류하는 자와 퉁소 부는 자와 나팔 부는 자들의 소리가 결코 다시 네 가운데서 들리지 아니하고 물론 어떠한 세공업자든지 결코 다시 네 가운데서 보이지 아니하고 또 맷돌 소리가 다시 네 가운데서 들리지 아니하고 23 등불 빛이 결코 다시 네 가운데서 비취지 아니하고 신랑과 신부의 음성이 결코 다시 네 가운데서 들리지 아니하리로다 너의 상고들은 땅의 왕족들이라 네 복술을 인하여 만국이 미혹되었도다 24 선지자들과 성도들과 및 땅 위에서 죽임을 당한 모든 자의 피가 이 성 중에서 보였느니라 하더라”



음녀가 금 잔을 가지고 있지요.

그런데 그 금 잔 속에 뭐가 담겨져 있나요?

가증한 것들로 채워져 있습니다.

이는 비 진리를 말합니다.

비 진리로 성도들을 죽였어요.



그러니까 음녀의 금 잔에는 성도들의 피로 가득 채워져 있는 것입니다.

음녀는 성도들의 피로 사치하고 연락하고 희희낙락하면서 왕 노릇하면서 살았어요.

그래서 하나님이 맷돌을 바다에 던지듯이 심판해 버리는 것입니다.

사치하고 연락하던 그 금 잔에 하나님의 진노를 담아서 되갚아 주는 것입니다.



지금도 의인들의 피가 교회 안에 뿌려지고 있어요.

그래서 요한계시록에서는 의인들의 피를 흘리게 한 성을 타락한 음녀로 말하는 것입니다.

그 음녀를 바벨론이라고 합니다.

그 성이 어떤 곳이냐 하면 성도들의 피에 취한 곳이에요.

그래서 요한계시록은 타락한 교회를 심판하는 것을 이 세상 심판과 동의어로 말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교회의 심판은 곧 세상의 심판입니다.

교회가 타락하면 세상도 타락해요.

교회는 그 시대상을 그대로 담고 있어요.



이 시대 교회는 세상과 하나 되었어요.

세상 가치로 세워졌어요.

음녀에요.



그래서 하나님은 자기 종들을 성령으로 광야로 나아가게 하여서 예루살렘을 보게 하는 것입니다.

교회를 보게 하는 겁니다.

보니까 교회가 성도들을 죽이고 있는 겁니다.

거짓 목사들이 성도들의 피에 취해 있는 겁니다.

목사들이 성도를 죽이고 있어요.



그래서 참 성도들이 기도하는 겁니다.

성령의 감동을 입는 자들이 기도하는 것입니다.

천상에서는 일찍 죽임을 당한 예수의 증인들이 하나님께 기도하고 있고, 땅에서는 복음으로 사는 성도들이 기도하고 있는 것입니다.



원수를 갚아 달라고 말이에요.

그래서 성도들의 기도가 담긴 금 대접을 근거로 하나님의 진노가 담긴 일곱 대접이 이 세상에 쏟아지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성도들이 이긴 자가 되어서 자기를 죽인 마귀의 세력에게 원수를 갚는 것이 됩니다.



그럼 이 세상이 어떻게 흘러가는지에 대하여 살펴봅시다.



하나님은 창조주이십니다.

하나님이 만물을 창조하신 목적이 있습니다.

그래서 창조라는 말이 “~ ~으로 말미암았다” 라는 뜻을 담고 있습니다.



이는 이 세상은 “어떤 원인에 의하여 만들어졌다”는 뜻입니다.

원인을 이루기 위해서 만든 것입니다.

원인이 다 이루어지면 이 세상도 끝이 납니다.



그 원인이 무엇인가 하면 창세전 언약입니다.

만물의 창조 목적은 창세전 언약을 위해서입니다.

창세전 언약은 예수그리스도를 통해서 자기 백성이 구원받는 것입니다.

죄와 사망으로부터 건져짐을 당하는 것입니다.



골로새서 1장을 봅시다.



골 1:15-17= “그는 보이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의 형상이요 모든 창조물보다 먼저 나신 자니 16 만물이 그에게 창조되되 하늘과 땅에서 보이는 것들과 보이지 않는 것들과 혹은 보좌들이나 주관들이나 정사들이나 권세들이나 만물이 다 그로 말미암고 그를 위하여 창조되었고 17 또한 그가 만물보다 먼저 계시고 만물이 그 안에 함께 섰느니라”



그가 나옵니다.

그가 누구냐 하면 보이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의 형상을 가지신 분입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의 형상으로 오셨습니다.



왜 그런가요?

하나님은 창조주로서 피조물에게는 감추어진 분이십니다.

창조주를 피조물에게 알리려면 창조주가 피조물의 모습으로 와야 합니다.

창조주가 피조물의 모습으로 오신 분이 누구입니까?

바로 예수그리스도이십니다.



예수그리스도는 보이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을 드러내시기 위하여 오신 하나님입니다.

그래서 성육신 하신 예수님을 그는 보이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의 형상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비록 몸을 입고 오셨지만 창조주세요.

하나님입니다.



그래서 그는 모든 창조물보다 먼저 나신 자라고 하는 것입니다.

창조물보다 먼저 나신 분이란? 피조물을 만드신 분이란 뜻입니다.

그래서 만물이 그에게 창조가 되었다고 말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만물 속에는 하늘에 것과 땅에 것이 있습니다.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이 있습니다.

모든 권세도 있습니다.



하늘에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은 천사들을 말합니다.

쉬운 말로 영물을 말합니다.

여기엔 마귀도 속해 있습니다.



천사도 두 종류입니다.

천사가 두 종류란 말이 아니고 두 사역을 맡은 자들이라는 뜻입니다.

어떤 천사는 예수그리스도 편에 서서 사용이 되어지고, 어떤 천사는 마귀의 편에 서서 사용이 되어지는 것입니다.



이 천사들이 땅에서는 목사들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2-3장에서 아시아의 일곱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를 하지요.

사자가 천사에요.

그러니까 아시아의 일곱 교회 사자가 천사와 같은 일을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일곱 교회의 사자를 천사와 같은 동의어로 엥겔로이 라고 하는 것입니다.

두 천사가 있듯이 교회 안에도 예수그리스도의 종과 마귀의 종 두 부류가 있는 것입니다.

참 목사와 거짓 목사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참 목사는 하늘에 소리로 성도들을 하늘로 데리고 가고, 거짓 목사들은 땅에 소리로 교인들을 땅에 붙잡아 두는 일을 해요.

좋은 천사이든 나쁜 천사이든 모두가 하나님이 부리는 종들입니다.



욥기 1장을 봅시다.



욥 1:6-12= “하루는 하나님의 아들들이 와서 여호와 앞에 섰고 사단도 그들 가운데 왔는지라 7 여호와께서 사단에게 이르시되 네가 어디서 왔느냐 사단이 여호와께 대답하여 가로되 땅에 두루 돌아 여기 저기 다녀왔나이다 8 여호와께서 사단에게 이르시되 네가 내 종 욥을 유의하여 보았느냐 그와 같이 순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자가 세상에 없느니라 9 사단이 여호와께 대답하여 가로되 욥이 어찌 까닭 없이 하나님을 경외하리이까 10 그와 그 집과 그 모든 소유물을 산울로 두르심이 아니니이까 주께서 그 손으로 하는 바를 복되게 하사 그 소유물로 땅에 널리게 하셨음이니이다 11 이제 주의 손을 펴서 그의 모든 소유물을 치소서 그리하시면 정녕 대면하여 주를 욕하리이다 12 여호와께서 사단에게 이르시되 내가 그의 소유물을 다 네 손에 붙이노라 오직 그의 몸에는 네 손을 대지 말지니라 사단이 곧 여호와 앞에서 물러가니라”



하늘에 어전 회의가 열립니다.

거기에 사단도 참석을 합니다.

사단이 세상에 두루 다니면서 행한 것을 보고 합니다.



이에 하나님이 욥을 칭찬합니다.

그러자 사단이 진짜 신앙이 좋은지 시험을 해 보겠다고 합니다.

하나님이 사단에게 욥을 시험하라고 허락하십니다.



이로보건데 하나님은 사단을 가지고 자기 백성들을 시험하는 일을 하십니다.

여기서 시험이란? 잘라내는 것이 아니고 온전하게 세워가는 것입니다.

실력을 키워가는 훈련인 것입니다.



이처럼 사단도 창세전 언약을 위하여 창조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요한계시록에서는 용과 짐승들도 하나님으로부터 허락을 받고서 성도를 죽이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성도를 살릴 때가 있고 죽일 때가 있어요.

죽일 때는 죽여야 해요.

그게 사랑이에요.

계시록 11장에 보면 두 증인들이 사역이 끝나니까 하나님이 무저갱의 짐승을 풀어서 두 증인들을 죽이게 하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요한계시록 13장을 보면 하나님이 용에게 권세를 주고 용은 짐승에게 권세를 줍니다.

하나님이 용에게 준 권세가 어린 양의 생명책에 녹명이 된 하늘에 속한 성도들을 이 땅에서 뽑아내게 하는 일을 하게 하신 것입니다.

이것이 성도의 죽음입니다.



그래서 요한계시록에서는 주 안에서 죽는 자는 복이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주 안에서 죽는다는 것은 예수 때문에 죽임 당한다는 뜻입니다.

마귀는 예수에게 속한 자들만 골라서 죽입니다.

이들이 바로 하늘의 시온 산에 서 있는 십 사만 사천으로서 이마에 어린 양의 이름이 새겨진 성도들입니다.



그래서 만물이 다 그로 말미암고 그를 위하여 창조가 되었다고 증거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로 말미암았다는 말은 그가 창조했다는 뜻입니다.

왜 창조했느냐?

그를 위해서입니다.



그가 누구인가요?

예수그리스도입니다.

예수그리스도가 만물을 가지고 무슨 일을 하는가요?

자기 백성 구원하는 일을 하십니다.



자기 백성을 어디에서 구원을 합니까?

죄와 사망으로부터 구원을 합니다.

죄와 사망이 예수님의 백성을 붙잡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오셔서 자기 백성들을 붙잡고 있는 자를 심판하고 구해내는 것입니다.

이 일로 나타나는 것이 구원과 심판입니다.

자기 백성은 구원을 받지만 자기 백성을 사로잡고 있던 자들에게는 심판이 동반되어서 주어지는 것입니다.



이게 요한계시록의 내용입니다.

그래서 요한계시록은 자기 백성의 구원과 악의 세력들의 심판을 동시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이는 자기 백성의 구원 사건 속에는 반드시 마귀의 세력들의 심판 당함이 따르게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이게 이스라엘의 출애굽 때 홍해 사건으로 나타난 것입니다.



구약의 출애굽은 장차 일어날 종말의 심판을 예표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지난 시간에 짐승의 세력은 바로와 그 군대처럼 멸망을 당하기 때문에 심판을 상징하는 붉은 유리바다로 나타나고, 성도들은 구원을 받았기 때문에 유리바다가에서 모세의 노래와 어린 양의 노래를 부르는 것으로 보여주신 것입니다.



오늘 살펴보는 일곱 대접의 심판도 애굽의 열 가지 재앙을 담고 있어요.

애굽은 이 세상을 예표해요.

그럼 애굽에 내려진 열 가지 재앙은 이 세상의 모든 재앙을 함축하고 있어요.

그러니까 구약 시대 일어났던 애굽에 열 가지 재앙은 오고 오는 모든 세대 속에서 반복적으로 나타나고 있는 것들입니다.



이것을 요한계시록에서는 일곱 인과 일곱 나팔과 일곱 대접으로 중첩되어서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심판은 어느 한 시대만 있는 것이 아니에요.

항상 있어 왔어요.



물론 역사가 끝장이 나는 종말의 심판은 장차 예수님이 재림 하실 때 일어날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종말의 심판 모습은 예수님의 초림부터 재림까지 부분적으로 다 담겨져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처처에 기근과 지진과 온역과 난리와 난리 소문에 소문이 더하고 민족과 민족이 서로 싸우는 일들을 종말의 징조로 말씀하셨습니다.



이러한 징조적 사건들은 인류의 시작과 더불어 일어난 일들입니다.

그럼에도 이러한 사건을 종말의 징조로 말씀하시는 것은 이러한 사건 자체가 종말의 모습을 담고 있기 때문입니다.



천국에는 재앙이 없습니다.

이 세상에 재앙이 일어난다는 것은 곧 이 세상은 심판을 받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하나님께서 악의 세력을 유기시켜 놓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종말에는 각종 악이 난무하고 난리와 서로 죽이는 전쟁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계시록 6장을 보면 어린 양이 일곱 인을 떼지요.

그러자 이 땅에서 일곱 인으로 봉해진 책 속에 내용들이 사건화 되어서 일어납니다.

이것은 곧 이 땅에서 일어나는 일들은 우연히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다 하나님의 뜻으로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일곱 인 속에 담겨진 재앙들이 뭔가요?

마귀의 세력인 적그리스도의 출현이고 전쟁이고 기근이고 질병이고 사망입니다.

이 일곱 인 속에 일곱 나팔이 들어가 있고 일곱 나팔 속에 일곱 대접이 들어가 있어요.

그러므로 일곱 인 속에 담겨진 재앙 속에는 이 땅에서 일어나는 모든 재앙이 다 담겨져 있는 것입니다.



구약의 다니엘을 보면 하나님께서 장차 이 세상에 일어날 제국들을 금과 은과 동과 철 네 가지 금속성과 또한 사자와 곰과 표범과 열 뿔 가진 괴물인 네 짐승으로 보여주셨습니다.

이것은 장차 이 세상 역사가 이러한 성격으로 진행 되어 갈 것을 예언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세상의 성격과 전개 과정을 짐승으로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종말의 나라 모습은 괴물이에요.

종말에는 인간들이 괴물이 된다는 말입니다.

이 시대 인간들은 괴물이 되었어요.



사회가 괴물들을 만들고 있는 것입니다.

무늬만 인간이지 그 속은 짐승이에요.

돈 앞에서는 부모 자식도 모르는 자기 밥그릇 챙기는 짐승처럼 변해요.

돈 앞에 괴물이 되어요.



돈이면 부모 자식도 죽이는 괴물들이 되어요.

역사 이래로 지금처럼 인간들이 강포한 적이 없어요.

이것이 바로 세상 끝 날에 나타날 세상의 모습이에요.

세상이 돌아가는 모습이 곧 이 세상의 끝이 다다랐다는 세기말적인 현상을 스스로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잘 보시면 나타날 제국들이 금속성으로 말하면 갈수록 질이 떨어지고 강도적인 의미에서는 부드러움에서 단단한 것으로 나타나고 짐승으로 보면 점점 더 포학한 것으로 나타납니다.

이것은 세상이 갈수록 더욱 더 악해진다는 것입니다.

새로운 악을 만들어 낸다는 것이 아니라 원래 악한데 하나님께서 그 본질들을 서서히 더 적나라하게 드러내게 하신다는 뜻입니다.



죄인은 원래 짐승처럼 악합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시대마다 그 정체성을 점진적으로 드러내십니다.

예전에는 간헐적으로 드러내셨다고 하면 종말이 가까워질수록 그 농도가 짙어질 것입니다.

예수님이 재림을 하시기 전에는 인간은 짐승의 본 모습들을 확연하게 드러내게 될 것입니다.

인간들 스스로가 짐승보다 못한 자라는 것을 드러내게 되어요.



이미 이 시대가 그렇게 흘러가고 있어요.

인간이 얼마나 악한지를 사회전반에서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뉴스를 보세요.



온 지구상에 나타나는 인간들의 악함들을 보세요.

악하기가 이를 데가 없어요.

인간이기를 포기하는 일들이 얼마나 많이 일어나고 있나요.



어미가 자식을 죽이질 않나,

자식이 부모를 죽이질 않나,

시신을 토막 내서 버리질 않나,

지금은 사람의 목숨이 파리 목숨만도 못한 시대를 살고 있어요.



극단주의 이슬람 무장테러 단체가 일어나서 신의 이름으로 무차별적 살상을 감행하는 것도 모두가 세기말적인 증상이에요.

하나님께서 그동안 억제 시켰던 악의 세력들을 풀어 놓으니까 인간들 속에 있는 악의 모습들이 그대로 나타나고 있는 것입니다.



인간의 탈을 쓴 짐승인거에요.

인간들 스스로가 우리는 인간이 아니고 짐승만도 못한 지옥의 야차들이라고 짐승만도 못한 행동으로 커밍아웃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금수만도 못한 짓거리들을 하고서도 죄의식을 느끼지 못하는 인지부조화 현상을 보이는 것입니다.



교회도 마찬가지에요.

돈 앞에선 치부를 그대로 드러내고 있어요.

그러면서도 부끄러움을 몰라요.



이 시대 가장 썩은 곳이 종교 집단이에요.

이는 돈의 가치로 매몰되었기 때문입니다.

교회나 절간이나 동일해요.

목사나 중이나 똑 같아요.



돈 버러지들이에요.

목사들이 돈 맛을 알고 미쳐버렸어요.

부끄러움도 몰라요.

돈이 일만 악의 뿌리라는 것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어요.



풀을 먹어야 할 소가 고기를 먹고 미쳐서 광우병이 걸리듯이 하늘에 떡을 먹고 살아야 할 목사와 교인들이 짐승이 먹는 땅에 떡을 먹고 미쳐버렸어요.

교회가 하나님의 말씀을 버리고 세상의 경제논리에 빠져서 세워져 가고 있어요.

그러다 보니까 힘의 논리에 빠져서 교회가 부흥을 외치고 결국에는 사람의 수를 힘으로 삼는 조폭 집단이 되어버린 겁니다.



음녀가 되어서 치부를 다 드러내고 있는 것입니다.

오죽 하면 세상이 교회를 향하여 개독교 라고 조롱을 하겠어요.

빛이 되어야 할 교회가 어둠으로부터 조롱당하고 있어요.



이 모두가 하나님의 말씀을 버렸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말씀을 버리면 끈 떨어진 연처럼 이리저리 휘둘리게 되어 있어요.

사사기의 맨 마지막처럼 왕이 없으므로 자기의 소견대로 하는 것입니다.



제일 큰 저주가 뭔 줄 아세요.

하나님의 유기에요.

유기란? 죄성을 그대로 드러나게 하신다는 뜻입니다.



예수님께서 최후의 만찬 때 가룟 유다에게 이제 네 할 일을 하라고 하시지요.

가룟 유다가 할 일이란 무슨 일인가요?

예수님을 파는 것입니다.



성경은 이 때의 상황을 어떻게 말하는가요?

예수님께서 떡을 가룟 유다에게 주니까 마귀가 가룟 유다 속에 쏙 들어가서 예수를 팔 생각을 하더라고 합니다.

예수님은 애초부터 가룟 유다가 예수를 팔 자라는 것을 알고 있었어요.

그런데 그동안 막아 주신 겁니다.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실 때까지 마귀가 가룟 유다를 장난치지 못하게 말이에요.



이제 내일이면 예수님은 유월절 양으로 죽어야 합니다.

예수님의 죽음에 의미를 최후의 만찬으로 알려 주십니다.

예수님이 가룟 유다에게 떡을 주니까 마귀가 가룟 유다 속에 쏙 들어갑니다.

그러자 예수를 팔 마음이 생긴 겁니다.



예수님이 떡을 주고 이제 네가 할 일을 하라고 하시자 가룟 유다가 예수를 팔 마음을 먹게 되었다는 것은 마귀도 예수님의 허락 하에서 움직이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가룟 유다는 3년 동안 예수님과 동거동락하면서도 예수님을 팔 마음이 없었어요.



이는 하나님이 가룟 유다의 마음을 간섭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다가 이제 예수님이 유월절 양의 실상으로 죽어야 할 때가 되니까 하나님이 가룟 유다의 본래의 모습인 마귀의 모습을 드러내게 하신 것입니다.



이 세상이 그래요.

시작 할 때와 끝이 날 때가 있어요.

하나님이 역사를 운행하시면서 시작 할 때는 시작 할 때의 모습으로 간섭을 하시고, 끝이 날 때는 끝 날 때의 모습을 드러나게 하시는 것입니다.



사람도 그렇고,

천재지변도 그렇고,

사회현상도 그렇고,

사회전반 모든 것에 세기말적인 모습으로 나타나게 하시는 것입니다.



이걸 노아 시대의 모습으로 말하면 죄악이 관영하였다고 합니다.

죄악이 관영하였다는 말은 죄의 모습이 적나라하게 드러낸다는 뜻입니다.

죄인의 적나라한 모습이 뭔가요?

신앙적으로 배도하는 것입니다.



자기를 낳아준 어미를 잡아먹는 모습이에요.

예수님이 죄인을 독사 새끼라고 하지요.

독사 새끼란 어미 잡아먹은 자라는 뜻이에요.



노아 시대는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을 취하는 것으로 나타났어요.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을 취하는 것은 하나님을 배도하는 거에요.

배은망덕한 짓이에요.

이러한 것이 바로 어미 잡아먹는 살모사 새끼의 모습이고, 교회가 하나님 말씀을 버린 모습이고 이러한 현상을 죄악이 관영하다고 하는 것입니다.



지금 이 시대가 그래요.

사회적으로는 자식이 부모를 죽이고 부모가 자식을 죽이는 모습으로 나타나고 있어요.

신앙적으로는 교회가 예수를 버리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는 것입니다.

교회가 하나님의 말씀을 버리고 인간들의 말로 난무하고 있어요.

교회 안에 세속적 가치가 장악하고 있어요.



요한계시록에서는 종말의 교회 모습을 각종 더러운 영들이 모인 귀신의 처소라고 합니다.

이는 교회 안에 뱀의 말이 홍수를 이루고 있다는 뜻입니다.

인본주의가 판을 치고 있다는 뜻입니다.

이걸 쑥 물을 먹인다고 합니다.



이 시대는 교회가 노골적으로 종교통합을 외치고 예수 이외도 구원이 있다고 해요.

교인들도 그 소리를 듣고 있어요.

이 모두가 종말에 나타나는 현상입니다.



종말이기 때문에 이러한 배도의 현상들이 교회 안에서 나타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종말의 현상들이 나타나도록 그동안 간섭하던 끈을 놓아 버린 것입니다.

그러자 교회로서는 도무지 하지 말아야 하는 일들을 서슴없이 하게 되는 것입니다.



앞으로 더 적나라하게 드러날 것입니다.

교회가 교회이기를 포기하는 일들이 일어날 것입니다.

예수님 초림 때처럼 구약 교회가 하나님의 아들을 죽였듯이 종말에도 교회가 예수를 부인하는 일들이 일어나고 있는 것입니다.



이미 일어나고 있어요.

자칭 먹물 많이 먹고 깨어있는 목사라고 하는 자들이 예수 말고도 구원이 있다고 하잖아요.

교회에서 인본주의에 빠져서 모든 종교를 인정하자고 하잖아요.

종교 통합을 외쳐요.

모든 종교가 하나 되어서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자고 하잖아요.

그러면서 교회의 강단에 중들을 세우고 있어요.

결국 교회들의 관심사가 하나님 나라에 있지 않고 이 세상 나라에 있다는 것을 스스로 드러내고 있는 것입니다.



이 세상을 운영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에요.

하나님은 이 세상을 창세전 언약을 구현하는 도구로 사용하세요.

창세전 언약은 마치 시나리오와 같이 서론 본론 결론이 있어요.

시작과 끝이 있어요.



시작일 때는 시작의 현상으로 간섭을 하시고, 끝에는 종말의 현상으로 간섭을 하세요.

그래서 인간들 속에 있는 어둠의 본질인 죽음이라는 악의 잔인성과 포학함들이 종말을 향하여 가면 갈수록 더 적나라하게 드러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인간들이 사람의 목숨을 벌레처럼 여기는 모습들이 온 세계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는 것입니다.



쉬운 예로 요즘 즐겨하는 게임들을 보세요.

모두가 잔인하게 죽이는 것들이에요.

생명을 경시하는 것들이에요.

이것은 마귀적인 것이에요.



마귀는 어둠의 주관자이고 죽음의 신이고 파괴자에요.

이러한 마귀적인 죽이고 파괴하는 폭력적인 죄의 본성을 게임을 통해서 여과없이 어려서부터 마음껏 발설하도록 그대로 드러내고 있는 것입니다.



인간의 이성은 보고 듣는 것으로 억제당하고 지배를 받게 되어 있어요.

그래서 교육이 필요한 것입니다.

교육으로 인간의 내재된 근본 된 본성은 변화 시킬 수는 없지만 순화시키고 일정 부분 폭력성을 억제는 시킬 수가 있어요.



그래서 좋은 환경을 만들고 좋은 교육을 시키려고 하는 것입니다.

예전에는 교육이 인성을 가르쳤고 사회성을 가르쳤어요.

그러나 지금은 사회성을 가르치지 않아요.

인성 교육이 사라져 버렸어요.



물질만능주의가 되면서 교육이 경제 논리에 빠져서 학교가 사회에 필요한 기능인을 양성하는 곳이 되어 버렸어요.

인성 교육은 돈이 안 되니까 버린 것입니다.

결국 교육이 사람을 양산하지 않고 짐승을 양산하고 있는 것입니다.



지금은 모든 것이 내가 살기 위해서는 남을 죽여야만 하는 사회 구조가 되고 만 것입니다.

더불어 살아가는 시대가 사라지고 내가 살기 위해서는 반드시 남을 무너뜨려야 하는 시대가 되고 말았어요.



산다는 것 자체가 전쟁이에요.

학교에서부터 시험 점수로 서열과 우열로 나누는 이기기 게임을 가르치고 있어요.

그러니 내가 살기 위해서는 남을 죽여야 하는 생명 경시 현상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내가 살기 위해서 남을 죽여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인간들이 점점 더 포학해지고 잔인해져 가는 것입니다.

죄에 대하여 둔감해지는 겁니다.

정치도 경제도 사회도 문화도 다 전쟁 용어를 쓰면서 나와 다름은 모두가 타도의 대상으로 여기고 있어요.

영화도 드라마도 스포츠도 모두가 죽고 죽이는 게임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시대는 노아의 때와 같아졌어요.



하나님이 사람 지음을 한탄하실 정도로 악해졌어요.

이제 곧 쓸어버릴 때가 온 것입니다.

그래서 베드로는 이 세상은 노아의 때처럼 종말을 맞이하게 되는데 이제는 물이 아니라 불로 심판을 당하게 된다고 예언을 하였던 것입니다.



이 땅도 마찬가지에요.

이 땅도 더는 살 수가 없는 곳이라는 것을 더욱 더 드러내게 될 것입니다.

이게 기근과 지진과 온역과 같은 다양한 천재지변으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과학자들은 알고 있어요.

지구의 수명이 다해간다는 것을 알고 있어요.

그래서 새로운 살 땅을 찾아서 우주로 나아가자고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인간 스스로 하늘에 새로운 나라가 있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드러내고 있는 것입니다.



이 땅 자체는 시작과 끝이 있어요.

인간들이 발 딛고 사는 이 땅 덩어리는 마치 기계처럼 성능 좋은 새 제품에서 점점 낡아지고 종국에는 고장이 나서 사용하지 못하고 폐품이 되어서 버려지는 것처럼 흘러가게 되어 있어요.

언약이 완성이 되면 세상은 멸망하게 됩니다.



히 1:10-12= “또 주여 태초에 주께서 땅의 기초를 두셨으며 하늘도 주의 손으로 지으신 바라 11 그것들은 멸망할 것이나 오직 주는 영존할 것이요 그것들은 다 옷과 같이 낡아지리니 12 의복처럼 갈아 입을 것이요 그것들이 옷과 같이 변할 것이나 주는 여전하여 연대가 다함이 없으리라”



잘 보세요.

하나님이 태초에 멸망할 것을 창조하였다고 하잖아요.

옷과 같이 낡아진다고 합니다.

땅이 점점 후패해져 가요.



이것은 마치 사람이 늙어가면서 인간의 수명이 다하면 온 몸에 죽음을 상징하는 검 버섯이 나오고 다양한 병의 증상들이 나타나는 것과 같아요.

이 땅도 마찬가지에요.

수명이 다하면 다양한 증상들이 나타나요.



그래서 천재지변이 처음에는 간헐적으로 나타나던 것이 예수님의 재림이 가까워질수록 종말의 징후들을 동시다발적으로 드러내게 되는 것입니다.

이게 다 징조에요.



지구가 스스로 수명이 다 되어간다는 싸인을 보내고 있는 것입니다.

지구가 나 많이 아프고 병들었다는 증거로 홍수가 일어나고 가뭄이 일어나고 기근이 닥치고 지진이 일어나고 쓰나미가 일어나고 각종 전염병들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만물은 철저히 하나님의 언약을 위한 도구로서 존재하고 있어요.

하나님이 만물을 가지고 일을 하실 것을 다 하시고 나면 철거를 하십니다.

언약이 완성되면 철거가 됩니다.



이 모습이 출애굽 사건으로 보여주셨습니다.

애굽은 아브라함 언약을 위하여 등장합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람에게 언약을 하실 때 그 후손들이 이방에서 객이 되어 살다가 사대 만에 돌아 올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그 때가 되면 하나님은 하나님의 백성들을 괴롭힌 이방나라를 징치할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징치란? 멸망시켜 버린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애굽의 바로 왕과 그를 따르는 군대가 홍해바다에서 몰살당한 것으로 보여주셨습니다.

바로 왕은 마귀를 상징하고 이스라엘을 괴롭혔던 애굽의 군대들은 이 땅의 적그리스도의 세력들을 말합니다.



이 모습을 지난 시간 심판을 상징하는 붉은 유리 바다와 구원을 상징하는 평온한 유리 바다로 보여주셨습니다.

홍해에서 언약의 후손에게는 구원을 받았고 바로와 그 군대는 멸망을 당하였습니다.

동일한 홍해이지만 구원과 심판이라는 이중성을 담고 있는 겁니다.



이 세상도 홍해와 같습니다.

이 세상에는 구원을 받는 하늘에 속한 성도가 있는가 하면, 멸망을 당하는 땅에 거하는 자들이 있습니다.

동일한 땅이지만 하나는 구원을 받고 하나는 저주를 받습니다.

이게 창세전 언약이 담고 있는 내용입니다.



창세전 언약은 자기 백성과 자기 백성 아닌 자로 구분을 합니다.

이를 위하여 구원자이신 하나님이 예수라는 이름으로 오신 것입니다.

예수라는 이름의 뜻은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하실 자” 라는 뜻입니다.



자기 백성이 죄에 빠져 있습니다.

이 세상이 죄의 항아리입니다.

그러므로 구원이 이 세상으로부터 빼내심을 입는 것으로 되어 있는 것입니다.



이걸 구약에서는 애굽에서 빠져 나오는 것으로 미리 예표적으로 보여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모세를 보내서 자기 백성들을 애굽에서 빼내오게 하셨습니다.

이 모습이 신약에서 예수님에 의하여 실상으로 나타난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이 세상에 오셔서 ‘너희’와 ‘저희’로 가르는 일을 하신 것입니다.

너희는 하늘에 속한 자이고, 저희는 땅에 속한 자입니다.

너희에게만 천국의 비밀을 알려주셨습니다.



왜 저희에게는 천국을 감추고 너희에게만 천국을 알려주셨을까요?

이는 너희들은 천국에서 살아갈 자들이고, 저희는 지옥에서 살아야 할 자들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너희에게는 예수를 보내서 천국에 대하여 알려주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창세전에 영생 주시기로 작정이 된 자들을 찾아가서 천국을 알려주시는 일을 하셨던 것입니다.

반면에 저희에게는 마귀를 보내서 땅에 대하여 알려주십니다.

뱀에게 종신토록 흙을 먹게 한 것은 마귀에게 이 세상을 넘겨준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마귀에게 땅에 거하는 자들에게는 자기 이름의 표를 주어서 이 땅에서 주인으로 살게 하고 이마에 어린 양의 이름이 적힌 자들은 이 땅에서 뽑아내서 하늘로 보내는 일을 하도록 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에게 속한 성도는 마귀에게 죽임 당하고,

마귀에게 속한 땅에 거하는 자들은 하나님으로부터 진노를 받아요.



그래서 요한계시록에서는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의 증거로 인하여 짐승으로부터 죽임을 당하는 자들을 일컬어 주 안에서 죽은 복 있는 자라고 하는 것입니다.

일곱 대접의 재앙은 이 땅에서 일어나는 모든 재앙을 담고 있어요.



애굽에 내려진 열 가지 재앙이 일곱 대접에 다 담겨져 있어요.

하나님이 애굽을 어떻게 징치하였는지를 보세요.

그럼 이 세상이 어떻게 망할지를 알 수가 있습니다.



일곱 대접은 이미 쏟아졌고,

지금도 쏟아지고 있으며,

앞으로 강도가 점점 세어지면서 쏟아질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나타난 현상을 보고서 때를 가늠하게 되는 것입니다.

회사에서 퇴근하는 시간이 가까워지면 하던 일을 마무리하고 집으로 돌아갈 준비를 하듯이 세상이 돌아가는 모습을 보고서 우리의 인생도 돌아갈 때가 된 것을 알고 마감을 해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 회계할 자세로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이 땅에 영원한 것은 없습니다.

모두가 지나가는 것들입니다.

그러므로 부자라 자랑할 것이 없고 가난하다고 낙망할 이유가 없습니다.



처한 환경을 탓하지 말고 이 또한 지나가는 것이니까 세상 보지 말고 천국에 소망으로 살아야 합니다.

이제 곧 예수님이 오십니다.

빨리 퇴근 준비 합시다.





기도합시다.

하나님 아버지, 세상이 되어지는 일들을 통해서 하나님의 시간표를 읽을 수 있는 지혜를 주옵소서. 믿음의 잠에서 깰 때가 벌써 지난 줄 알게 하시고 하늘로 돌아갈 퇴근 준비를 하게 하소서. 세상에 휘둘리지 말고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살게 하옵소서. 주께서 주신 믿음이오니 주께서 지켜주어서 날마다 출애굽 하는 자세로 살도록 간섭해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여호와의 정하신 날"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보라 용광로 불 같은 날이 이르리니

교만한 자와 악을 행하는 자는 다 지푸라기 같을 것이라

말라기 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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