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 빛 사랑

시3:5 내가 누워 자고 깨었으니 여호와께서 나를 붙드심이로다

♣(성경강해)67강. 찢어진 채색 옷 (창 37:1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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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강해/창세기 강해

2021. 9. 3.

 

 

67강. 찢어진 채색 옷 (창 37:12-36)

-.정낙원 목사

 

 

 

오늘 본문은 야곱의 명을 받고 요셉이 형들에게 심부름을 갔다가 버림(죽임) 당하는 내용입니다.

이것은 예수님께서 아버지의 명을 받고 이 세상에 오셔서 죽임 당한 것을 예표하고 있습니다.

이러면 요셉이 형제들에게 버림(죽음)을 당하고 애굽으로 팔려가는 이야기는 예수님의 이야기를 겨냥하여서 일어난 이야기가 되는 것입니다.

 

요셉이 아버지의 명을 받고 형제들이 양치는 곳으로 갑니다.

그러자 형제들이 그를 죽이기로 결안을 합니다.

형제들은 요셉의 채색옷을 벗겨서 찢고 구덩이에 던져버립니다.

그리고는 구덩이에서 건져내서 은 20 개에 요셉을 애굽 사람들에게 팔아 버립니다.

 

형제들이 요셉을 미워하고 버린 이유는 단 하나입니다.

요셉이 아버지로부터 특별한 사랑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되면 아버지의 편애가 요셉을 형제들로부터 버림당하는 구조 속으로 밀어 넣은 것이 되고 맙니다.

그런데 시편 기자는 이러한 요셉의 버려짐은 하나님의 말씀을 응하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시편 105편을 봅시다.

 

시 105:16-19절 “그가 또 기근을 불러 그 땅에 임하게 하여 그 의뢰하는 양식을 다 끊으셨도다 17 한 사람을 앞서 보내셨음이여 요셉이 종으로 팔렸도다 18 그 발이 착고에 상하며 그 몸이 쇠사슬에 매였으니 19 곧 여호와의 말씀이 응할 때까지라 그 말씀이 저를 단련하였도다”

 

하나님이 온 세상에 기근을 내리기 전에 요셉을 애굽으로 내려 보냅니다.

그리곤 야곱이 살던 동네에 기근을 불러서 그들이 의뢰하는 양식을 다 끊어버립니다.

요셉에게만 양식을 주십니다.

 

그런데 이 일을 하나님께서 요셉에게 주신 꿈을 이루고자 함이라고 합니다.

요셉이 꾼 꿈은 형제들의 주가 되는 것입니다.

어떻게 주가 되는가 하면 자신을 죽이고 버린 자들을 용서해주는 방식으로 하십니다.

그것이 기근 속에서 양식을 주어서 살려내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이 일을 진행하는 과정에 요셉의 형제로부터 버려짐이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시편 기자는 하나님이 기근이 오기 전에 한 사람을 먼저 보냈다고 합니다.

그리곤 하나님의 말씀이 응하기까지 요셉을 착고에 채워서 단련케 하였습니다.

 

무슨 말인가요?

야곱이 요셉을 편애한 것이나 형제들이 요셉을 애굽에 팔아버린 것 모두가 하나님의 언약에 의한 것이라는 뜻입니다.

한마디로 하나님의 예정된 시나리오에 의한 것입니다.

이러한 일을 신약에서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룬다고 합니다.

 

야곱의 집안은 언약의 집안입니다.

아브라함 언약에 의하여 생겨난 집안입니다.

아브라함 언약은 창세전 언약을 근거로 주어진 것입니다.

 

창세전 언약이 어떤 것인가요?

자기 백성들을 죄에서 구원하는 언약입니다.

예수그리스도의 피로서 자기 백성들이 거룩하고 흠이 없어지는 것입니다.

무슨 말인고 하니 예수님의 죽음으로 죄와 사망 가운데 있는 자기 백성들이 구원을 받게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자기 백성들에게 예수를 구원자로 보냅니다.

그런데 자기 백성들이 예수라는 구원자를 죽입니다.

하나님은 자기 백성들이 죽인 예수를 살리셔서 그들을 용서하는 방식으로 구원을 해 내십니다.

이는 창세전 언약이 원수를 용서해 주는 용서의 언약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구약에서는 야곱의 집안에서 일어난 사건으로 보여 주셨습니다.

형제들이 요셉을 버렸는데 버림당한 요셉이 자신을 버린 형제들을 살려주는 방식으로 나타난 것입니다.

이것이 만개 되어서 나타난 것이 바로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요셉의 버려짐의 원본인 것입니다.

요셉은 복사본이고 예수님이 원본입니다.

요셉의 자리에 예수님이 있고,

형제들의 자리에 유대인들이 있는 것입니다.

 

알다시피 창세전 언약은 죄인을 용서하는 방식으로 구원이 주어지는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용서가 되려면 먼저 범죄함이 선행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먼저 자기 백성들을 죄 아래 가두는 일을 하십니다.

그것이 예수님을 보내서 자기 백성들로부터 미움을 받고 죽임 당하는 것으로 나타난 것입니다.

 

육체로 오신 예수님은 자기 백성들이 과실을 고발합니다.

예수님이 오셔서 유대인들의 율법 신앙이 틀렸음을 고발합니다.

그러자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죽여 버립니다.

이것이 요셉이 형제들의 과실을 아버지에게 고하다가 미움을 받고 버림(죽임) 당하는 것으로 나타난 것입니다.

 

오늘은 요셉의 채색옷이 찢어진 사건이 주는 영적인 의미를 살펴볼까 합니다.

 

이 사건을 잘 추적해 가면 예수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옷을 발가벗김 당하는 사건으로 귀결이 됨을 알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십자가에서 예수님을 옷을 벗겨서 자기 백성들에게 입혀주신 것입니다.

 

성경은 옷 입혀주는 사건으로 시작을 합니다.



아담이 범죄하자 하나님이 수치를 가리기 위하여 흠 없는 제물을 죽여서 그 가죽으로 옷을 만들어서 입혀주는 것으로 인류 역사의 시작을 엽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재림을 하실 때 어린 양의 신부들에게 흰 세마포 옷을 입혀주는 것으로 인류 역사의 문을 닫습니다.

 

이렇게 되면 인류 역사는 옷 입는 역사인 것입니다.

아담처럼 스스로의 힘으로 수치를 가리고자 무화과나무 잎사귀로 치마를 만들어 입는 것과,

하나님께서 흠 없는 제물의 희생으로 만든 옷을 입혀주는 것으로 나타나게 됩니다.

 

옷을 의로 말합니다.

그럼 인간의 의와 하나님의 의로 구분이 됩니다.

인간들은 자신들의 의로 하나님에게 나아오고자 하는데,

하나님은 아니다! 너희의 의로 나오지 말고 하나님의 의로 나오라고 하십니다.

 

그 하나님의 의가 바로 예수그리스도의 의입니다.

예수그리스도가 바로 흠 없는 제물이며 그의 죽으심이 바로 의에 옷인 것입니다.

하나님은 자기 백성들에게 예수그리스도의 의에 옷을 입혀주시고자 하십니다.

 

예수그리스도의 의에 옷이 바로 용서와 긍휼의 옷입니다.

은혜와 자비의 옷입니다.

사랑의 옷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자기 백성들에게 용서와 긍휼을 남기는 일을 하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사랑을 입은 자들이 자기 백성들로부터 버림당하는 모습으로 나타난 것입니다.

 

아벨이 버림당하고 가인이 살아났고,

요셉이 버림당하고 그 형제들이 살아났고,

예수님이 버림당하고 자기 백성들이 살아나게 된 것입니다.

 

그럼 요셉이 왜 미움을 받고 버림을 당하게 되었는지를 살펴봅시다.

먼저 요셉의 출생의 비밀부터 추적해 갑니다.

요셉의 출생 속에 예수그리스도와 그의 백성들의 출생의 비밀이 담겨져 있습니다.

 

요셉이 어떻게 태어났나요?

라헬이 합환채를 먹고 태어 낳습니다.

 

합환채는 임신촉진제입니다.

이걸 먹으면 임신을 한다는 속설이 있습니다.

그래서 고대에는 아이를 낳지 못하는 불임 여성들에게는 합환채는 아이를 낳게 하는 명약으로 통했습니다.

 

여자에게 있어 자식은 상급입니다.

그런데 라헬에게는 자식이 한 명도 없습니다.

레아와 몸종들은 하룻밤만 자면 아이를 덜컹 임신해서 잘 낳았습니다.

그런데 라헬은 아무리 해도 아이가 생기지 않는 것입니다.

라헬은 불임 여성입니다.

 

그래서 라헬이 야곱에게 따집니다.

자기에게도 아이를 좀 넣어주라고 합니다.

그러자 야곱이 화를 내면서 내가 하나님이냐!

아이는 하나님이 주시는 것인데 어떻게 나에게 아이를 달라고 하느냐고 신경질을 냅니다.

 

오매불망 아이 생각만 하고 있는 라헬 앞에 언니인 레아의 소생인 르우벤이 합환채를 들고 온 것입니다.

이 때가 맥추 때입니다.

맥추 때는 신약의 오순절입니다.

 

맥추 때에 르우벤이 들에서 합환채를 가지고 옵니다.

이것을 라헬이 보았습니다.

라헬이 르우벤에게 합환채를 달라고 합니다.

그러자 르우벤이 자기 엄마 주려고 가지고 온 것이라고 하면서 거절을 합니다.

 

이에 라헬이 언니 레아에게 거래를 합니다.

언니는 합환채를 안 먹어도 아이들을 순풍 순풍 잘 낳으니까

오늘 밤이 내가 야곱을 차지하는 순번인데

언니가 합환채를 나에게 주면 오늘 밤 내가 차지할 신랑을 언니에게 주겠다고 합니다.

그러자 언니 레아가 오케이 콜~ 그러면서 합환채를 라헬에게 줍니다.

 

그 후에 라헬이 합환채를 먹고 아이를 낳습니다.

그가 바로 요셉입니다.

이러면 요셉은 야곱의 아들이 아니고 합환채가 낳은 자식인 것입니다.

이게 굉징히 중요합니다.

 

라헬은 신랑을 바꾼 것입니다.

야곱 대신 합환채를 얻은 것입니다.

영적으로 보면 라헬은 합환채를 먹고서 요셉을 낳았습니다.

 

합환채를 의인화 하면 라헬의 남편인 것입니다.

야곱의 말대로 아이는 하나님이 주시는 것이니까

라헬이 합환채로 요셉을 낳았으니까 합환채는 곧 하나님과 같은 것입니다.

 

르우벤이 합환채를 얻은 때가 언제인가요?

맥추 때입니다.

맥추 때란 오순절이라는 뜻입니다.

 

신약의 오순절에 어떤 일이 일어났나요?

성령이 강림하셨습니다.

성령이 임하자 하나님의 아들들이 생겨나기 시작을 하였습니다.

 

이러면 라헬이 먹은 합환채는 신약적으로 보면 성령이 되는 것입니다.

요셉은 성령으로 낳아진 자인 것입니다.

성령으로 낳아졌기 때문에 꿈을 꾸는 것입니다.

 

성령이 임하면 어떻게 된다고 하던가요?

이상을 보고 꿈을 꾼다고 하지요.

야곱의 12 아들들 중에서 누가 꿈을 꾸나요?

합환채로 태어난 요셉입니다.

 

꿈이란? 언약을 말합니다.

요셉이 언약을 이어갈 적통자인 것입니다.

하나님은 꿈을 준 요셉을 어떻게 하나요?

형제들로부터 미움을 받고 버려짐을 당합니다.

 

그럼 하나님으로부터 언약을 받은 자는 버려짐을 당하게 된다는 뜻입니다.

누구로부터 버려짐을 당합니까?

육적 형제들입니다.

 

예수님이 그랬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언약을 이루고자 오셨습니다.

그런데 형제들로부터 죽임을 당하였습니다.

 

예수님도 성령으로 잉태되어 오셨습니다.

그러자 육적 유대인들이 핍박을 합니다.

육적 유대인들은 율법 아래 있는 자들입니다.

 

오순절에 성령이 강림하셨습니다.

성령 강림으로 생겨난 초대 교회 성도들이 누구로부터 죽임을 당합니까?

율법 아래 있는 자들입니다.

 

요셉이 합환채로 낳아진 것은 성령으로 낳아진 것과 같습니다.

그래서 육적으로 낳아진 형제들이 핍박을 하는 것입니다.

초대교회도 성령으로 낳아진 성도들을 율법 아래 있는 자들이 핍박을 했습니다.

 

하나님은 성령으로 낳아진 자를 가지고 언약의 후손들을 은혜와 용서와 긍휼의 자리로 끌고 오는 일을 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교회 안에는 영에 속한 자들이 육에 속한 자들로부터 미움을 받는 모습으로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것은 자기 백성들을 구원하기 위함입니다.

자기 백성이 누구인가요?

언약의 후손입니다.

예수님 초림 당시에는 이들이 구약 이스라엘로 나타난 것입니다.

 

이걸 야곱의 집안 속에 셋팅을 해 놓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야곱의 집안에서 일어나는 일은 예수님의 초림 때에는 예수님과 유대인들의 모습으로 나타났고 예수님의 재림 때에는 교회 안에서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면 모든 성경은 하나의 이야기를 하고 있음이 깨달아 질 것입니다.

예수그리스도를 통한 자기 백성들 구원하는 이야기인 것입니다.

 

이런 구조를 누가 만들었나요?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은 교회 안에서 자기 백성 구원하는 일을 펼치시는 것입니다.

결국 하나님은 교회 안에 있는 성도들에게 그 아들의 죽음으로 너희가 구원을 받았다는 이 사실을 알리고 싶어하는 것입니다.

 

이럴 때 교회가 모두가 예수그리스도의 죽음을 통해서 용서를 받은 자들이 모인 은혜의 공동체가 되는 것입니다.

이게 하나님 나라이고 천국입니다.

      

야곱은 왜 요셉을 편애 했나요?

이는 요셉이 합환채로 태어나서 하나님으로부터 꿈을 받은 자이기 때문입니다.

언약을 이어갈 자이기 때문입니다.

 

요셉이 받은 꿈은 만유의 주가 되는 꿈입니다.

만유의 주가 되는 꿈은 예수님이 품은 꿈입니다.

하나님이 예수님을 이 세상에 만유의 주로 보내셨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만유의 주를 만드는 방법이 독특합니다.

 

빌립보서 2장을 봅시다.

 

빌 2:5-11절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6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7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8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9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10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11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

 

하나님이 그 아들을 종의 형체로 보내셨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지만 아버지 앞에서는 종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아버지의 뜻을 이루고자 이 세상에 오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죽기까지 아버지의 뜻에 복종을 하였습니다.

이것이 십자가의 죽음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예수님을 죽음에서 부활케 하였습니다.

모든 족속으로 예수 앞에 무릎을 꿇게 하시고 입으로 주라 시인케 하였습니다.

예수님을 만유의 주로 삼아 버리신 것입니다.

 

그러면서 뭐라고 하나요?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고 합니다.

예수의 마음입니다.

 

무슨 말인가요?

예수의 마음을 품게 되면 예수님처럼 버림당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세상에서 예수를 품으면 버림을 당하게 됩니다.

즉 예수를 믿으면 미움을 받는다는 뜻입니다.

 

지금 요셉이 그러합니다.

꿈을 품었습니다.

예수의 마음을 품은 것입니다.

그러니까 형제들에게 미움을 받고 버려짐을 당하게 되는 것입니다.

 

요셉의 버려짐의 이야기는 남의 이야기가 아니고 우리 이야기입니다.

이는 하나님의 사랑을 입은 자는 이 땅에서 버려짐을 당하게 된다는 것을 알려주고자 함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입고 오신 분이 누구인가요?

예수님입니다.

 

예수님을 누가 죽였나요?

자기 백성들이 죽였어요.

마치 요셉의 형제들이 요셉을 미워해서 애굽에 팔아 버린 것과 같습니다.

애굽에 팔아 버린 것은 죽인 것과 마찬가지에요.

 

그런데 나중에 보면 밉다고 죽인 그 형제가 자기를 죽인 형제들을 살려내는 일을 합니다.

이게 바로 복음입니다.

하나님이 하나님의 백성들 속에 남기고 싶어 하는 은혜와 긍휼입니다.

 

구원이 뭐냐?

은혜와 긍휼을 입는 것입니다.

용서 받는 것입니다.

 

용서를 알게 하려고 요셉을 미워하게 한 것입니다.

은혜와 긍휼을 알게 하려고 자기들이 죽인 형제로부터 살아남을 당하게 되는 것입니다.

언약의 후손들은 은혜 아래 있는 자들입니다.

 

하나님은 자기 백성들 속에 하나님의 은혜와 긍휼을 남기는 일을 하십니다.

그것이 역설적으로 하나님으로부터 사랑을 입은 자를 죽였는데 그가 살려내는 일을 하는 것으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이것이 예수님의 십자가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하나님의 은혜와 긍휼과 용서의 집합체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죽였는데 하나님은 그 예수님의 죽음을 가지고 우리를 살려내는 일을 하시는 것입니다.

이럴 때 용서와 은혜와 긍휼을 입게 되는 것입니다.

 

용서와 은혜와 긍휼은 죄인에게 주어지는 것입니다.

자기가 죄인이라는 사실을 아는 자들에게 주어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언약의 후손들에게 자기가 죄인이라는 사실을 알리는 일을 하십니다.

여기에 누가 투입이 되는가 하면 하나님으로부터 사랑을 입은 자가 투입이 되는 것입니다.

 

그 사람이 야곱의 집안에서는 요셉으로 나타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야곱의 집안 속에 은혜와 용서와 긍휼을 남기고 싶어 합니다.

야곱의 아들들에게 하나님의 용서와 은혜와 긍휼을 남기고 싶어 하는 것입니다.

 

요셉의 버려짐(죽음) 속에는 예수님의 죽으심이 담겨져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목적이 자기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하는 것입니다.

그러자면 자기 백성들이 죄 아래 가두어져 있어야 합니다.

이를 위해 예수님이 자기백성들에게 죽임을 당하게 된 것입니다.

자기백성들이 예수님을 죽임으로서 죄 아래로 가둬지게 된 것입니다.

이제 하나님께서는 그 죄를 용서해주는 식으로 자기백성을 구원하십니다.

 

이것은 창세전에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구원의 시나리오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시어서 걸어가야 할 코스를 구약에서는 언약의 후손의 가문인 야곱의 가문 속에서 요셉을 통하여 미리 보여주신 것입니다.

 

아브라함 언약은 창세전 언약에서 나왔습니다.

창세전 언약은 예수그리스도의 언약입니다.

그러므로 아브라함 언약도 예수그리스도에게 종속이 되어 있는 것입니다.

야곱의 집안도 언약의 가문이니까 야곱의 가문에서 일어나는 일들은 모두가 예수그리스도에 의하여 이루어지는 창세전 언약을 보여주는 퍼즐들로 채워져 있는 것입니다.

 

만물이 주께로 나오고 주께로 인하고 주께로 돌아갑니다.

만물은 주의 백성들을 상징합니다.

주의 백성들은 예수그리스도의 운명에 동참 되어서 살아가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니까 예수님 속에 요셉이 있고 요셉 속에 이스라엘이 있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속에 우리가 있는 것입니다.

 

야곱의 후손들은 요셉의 운명과 같이 합니다.

요셉이 걸어간 그 코스를 걸어가게 되어 있습니다.

그것이 애굽에서 종살이하는 것으로 나타난 것입니다.

 

이렇게 생각하세요.

언약을 받은 사람들은 이 땅에서 예수그리스도의 것으로 살아가게 되어 있습니다.

쉬운 말로 예수의 팔자로 살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를 믿게 되면 예수님의 팔자 속으로 뛰어 들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가 원치 않아도 가게 되어 있어요.

 

이 길을 걸어간 사람들의 열전이 히브리서 11장입니다.

히브리서 11장에서의 주어(主語)는 '믿음으로' 입니다.

그래서 믿음으로 누구는 이렇게 살았고 누구는 저렇게 살았다고 증거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믿음이 각 사람들을 예수그리스도가 가실 길을 선취적으로 걸어가게 하신 것입니다.

 

이들을 일컬어 구름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 맨 시작과 끝을 예수그리스도라고 합니다.

그래서 “믿음의 주요 온전케 하신 예수를 바라보라”고 하는 것입니다.

믿음의 주라는 말은 시작(근원)이라는 말이고, 온전케 하신 것이란 끝이란 뜻입니다.

 

히브리서 1장의 믿음을 다른 말로 하면 예수님입니다.

예수님이 자기 백성들을 이리저리 끌고 다니신 것입니다.

이걸 요한복음 21장에서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성령이 오시면 띠를 띠고 네가 원치 않는 길로 가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걸 견인이라고 합니다.

구원이란? 견인 당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우리를 견인하는 것입니다.

이는 예수님이 우리를 구원 하셨기 때문입니다.

 

구원을 하신 분도 예수님이고,

구원을 이루어 가시는 분도 예수님이시고,

구원을 완성하시는 분도 예수님이십니다.

 

예수님이 우리를 구원 했기 때문에 끌고 가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무사히 천국에 도달하게 돠는 것입니다.

천국에 가면 이 사실을 알고 그 은혜의 영광을 세세토록 찬미케 되는 것입니다.

“잘 끌고 와 주셔서 고맙습니다” 라고 찬양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걸 지금은 교회를 통해서 맛보게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주일에 교회로 모이는 것은 예수님이 우리의 발걸음을 인도해 오셨기 때문입니다.

교회 생활은 현재 천국을 맛보는 것입니다.

현재 구원이 없는 사람은 미래 구원도 없습니다.

 

신앙은 생명과 같습니다.

생명은 현재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신앙생활도 “오늘 날”로 해야 하는 것입니다.



오늘 날이란? 영생의 날이란 뜻입니다.

성령이 임하면 역사적 존재에서 묵시적 존재로 바뀌어요.  

그러므로 성령으로 거듭난 성도는 날마다 주의 날로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영생의 세계에서는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세계입니다.

성령으로 거듭난 성도는 영생을 이미 받은 자들입니다.

그러므로 항상 오늘 날로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창세기 1장을 보면 첫째 날부터 여섯째 날까지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된다는 말이 있습니다.

그러나 일곱째 날에는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그 말이 없습니다.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라는 말이 없다는 것은 역사에 속한 날이 아니고 영원한 세계에 속한 날이란 말을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미 창세기 1장 속에 자기백성들을 어떤 식으로 구원해 낼 것인가를 담아 놓았습니다.

그것이 저녁에서 아침으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저녁이란? 죄를 말하고 죽음을 말합니다.

그러니까 구원이 죄 아래서 건짐을 받는 것이고 죽음에서 살아나는 것입니다.

 

창세기 1장 2절에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셨는데 어떤 모습인가요?

흑암과 혼돈과 공허와 깊음 속에 있지요?

이것은 죄와 사망을 상징합니다.

구원이 뭐냐? 죄와 사망의 동네에서 건져짐을 당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을 잘 보세요.

 

야곱이 요셉을 형제들이 양치는 곳으로 보내지요.

요셉은 아버지와 함께 집에 있고,

다른 형제들은 세겜이라는 땅에 있습니다.

아버지 야곱이 요셉에게 세겜에 가서 형제들이 양을 잘 치고 있는지 살펴보라고 합니다.

 

14절 보면 헤브론에서 세겜으로 보내지요

 

헤브론이 어떤 곳이냐?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이 사는 곳이에요.

이건 언약의 땅을 상징합니다.

 

야곱과 요셉의 관계를 예수님과 하나님으로 보세요.

그럼 이해가 쉬울 것입니다.

하나님이 사는 곳이 어디인가요?

천국입니다.

창세전이라는 하나님 나라입니다.

 

야곱이 헤브론에서 요셉을 세겜으로 보낸 것은 하나님 나라에서 아버지 하나님께서 그 아들 예수를 이 세상에 보내신 것과 같은 것입니다.

이 세상에 하나님의 백성들이 살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신 것은 하나님 백성이 어떻게 지내는지 보라고 하신 것입니다.

 

야곱이 요셉을 왜 보냈나요?

형제들이 잘하고 있는지 보고 와서 아버지에게 보고하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창세기 37장에서 야곱의 약전은 이러 하니라 라고 하면서 요셉은 형제들의 과실을 아버지에게 고하더라고 말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요셉이 받은 사명이 형제들의 과실을 고발하는 것입니다.

죄를 고발하는 것입니다.

고발하니까 어떻게 반응하던가요?

죽이는 것으로 반응합니다.

이건 육체로 오신 예수님이 유대인들이 죄를 고발하다가 죽임당하는 것과 같아요.

 

잘 보세요.

요셉은 합환채로 낳은 자입니다.

그래서 야곱은 요셉에게 다른 형제들이 입지 않은 채색 옷을 입혀 주었습니다.

이것은 아버지의 편애를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있는 것입니다.

 

형제들 입장에서 보면 아버지의 사랑을 독차지 하고 있는 요셉을 보면 시기심이 발동을 해요.

요셉이 아무 짓을 안해도 미워요.

그런데 요셉은 형제들의 과실을 아버지에게 고자질까지 하고 있는 것입니다.

형제들의 노는 하늘을 찌를 것 같이 높았어요.

 

이 사실은 야곱도 다 알고 있어요.

그런데 야곱이 요셉을 형제들이 양을 치고 있는 것으로 보냅니다.

이건 죽임 당하라고 보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이 땅에 왜 보내셨느냐?

죽으라고 보내신 거예요.

 

예수님께서 겟세마네 동산에서 어떤 기도를 합니까?

아버지여 이 잔을 내게서 옮겨 달라고 하지요.

이건 십자가 안지겠다는 것입니다.

그럴 때 하나님께서 천사들을 동원해가지고서 예수님을 설득케 합니다.

 

천사들이 어떻게 설득합니까?

십자가에서 죽으라고 설득을 하는 것입니다.

아버지의 뜻이 십자가에 죽는 것이라고 알려 줍니다.

예수님이 죽어야 자기 백성들이 살아나기 때문입니다.

이걸 한 알의 밀알이 죽어서 많은 열매를 맺는다고 합니다.

 

쉬운 이야기로 예를 듭니다

예수님 속에 수많은 하나님 백성들이 있어요.

마치 한 알의 밀 알 속에 수많은 밀알이 들어 있는 것과 같습니다.

그 백성들은 예수님이 죽어야 나와요.

 

그래서 하나님이 예수님을 죽이는 일을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죽자 무덤 속에 있던 자들이 살아나지요.

이것은 하나님이 예수님의 죽음을 통해서 자기 백성들을 살려내신 것입니다.

 

이 모습을 구약의 출애굽 때 홍해바다 사건으로 보여주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홍해를 건널 때 그냥 건넌 것이 아니고 모세에게 속하여 건넜다고 합니다.

이것은 모세가 백성들을 안고 건넜다는 뜻입니다.

 

홍해바다는 죽음의 바다입니다.

바로와 애굽의 군대는 다 죽었습니다.

그럼 이스라엘도 죽어야 합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은 살아났어요.

 

어떻게 살아났습니까?

모세가 안품에 고 건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들은 죽음의 바다 속에 집어넣었다가 빼내신 것입니다.

이게 구원입니다.

 

왜 죽었다가 살아나는 방식으로 구원을 하느냐 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주고자 함입니다.

알다시피 하나님은 영생하시는 분입니다.

하나님 나라는 영생의 나라입니다.

영생의 나라를 유업으로 물려받으려면 영생하는 사람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인간은 죄 아래서 태어난 죽은 자들입니다.

죽은 자는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받을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죄인을 먼저 죽이는 일을 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자기 백성들을 먼저 죽음의 자리로 보내는 것입니다.

이게 야곱의 후손들을 죽음의 나라인 애굽으로 내려가게 하였다가 다시 끄집어내는 것으로 나타난 것입니다.

 

야곱의 후손들을 애굽으로 데리고 간 사람이 누구인가요?

요셉입니다.

요셉이 애굽의 총리로 있으니까 내려간 것입니다.

 

그런데 이게 함정이었어요.

요셉이 죽자 올무에 걸리고 만 것입니다.

이것이 애굽에서 400년 동안 종살이하는 것으로 나타난 것입니다.

하나님이 그 수순을 밟게 하려고 요셉이 형제들에게 버림당하는 것으로 일을 하신 것입니다.

 

요셉이 어디에서 버림을 당합니까?

세겜이지요.

세겜이 어떤 곳인가요?

야곱의 딸인 디나가 강간을 당한 곳입니다.

야곱이 세겜에 정착하려고 할 때 하나님이 디나의 강간 사건을 일으켜서 강제로 떠나도록 한 곳입니다.

 

그럼 그 땅에 가고 싶겠어요?

안 가고 싶겠어요?

안 가고 싶어요.

그런데도 야곱의 아들들은 그 땅에 가 있는 것입니다.

 

이건 마치 출애굽한 백성들이 애굽으로 돌아가겠다고 하는 것과 같아요.

백성들이 광야에서 어디를 동경합니까?

애굽이에요.

애굽으로 돌아가겠다고 합니다.

 

광야에서 애굽의 떡을 그리워하고 있어요.

애굽에 떡을 그리워 한다는 것은 마음은 출애굽 하지 않았다는 뜻입니다.

몸뚱이만 나온 것입니다.

 

종살이 했으면 지긋 지긋 할 텐데,,

도리어 그곳을 그리워하고 있어요.

이게 죄인의 모습인 것입니다.

 

야곱이 아들들이 그러고 있는 것입니다.

이들이 세겜에 왜 갔을까요?

보암직하고 먹음직하고 탐스러운 것이 있으니까 간 것입니다.

세겜이 양을 치기가 좋은 곳이기 때문입니다.

 

세겜은 디나가 강간을 당한 곳이에요.

디나가 강간을 당했을 것 같으면 그 형제들은 강간을 당한다?

안 당한다?

당연히 강간당하지요.

 

강간과 간음은 그 의미는 동일해요.

남이 하면 강간이고 내가 하면 간음이에요.

강간은 강제이지만 간음은 자발적인 것입니다.

야곱의 아들들은 자발적으로 세겜에 내려 간 것은 간음하러 간 것입니다.

 

야고보서 4장 4절에 보면 세상을 사랑하는 것이 간음이라고 했어요.

야곱의 아들들이 세겜을 사랑하고 있어요.

이들은 세겜과 간음하고 있는 것입니다.

 

야곱이 사는 헤브론은 천국을 상징하고,

야곱의 아들들이 양치는 세겜은 세상을 상징해요.

세겜은 땅의 것을 주어요.

하늘의 것이 없어요.

 

하늘의 것은 헤브론에 있어요.

요셉이 헤브론에 살았다는 것은 요셉은 하늘에 것을 쫓아갔다는 뜻입니다.

반대로 그 형제들은 세겜에 살았다는 것은 세상 것을 쫓아갔다는 뜻입니다.

 

영적으로 보면 세상 것을 쫓아가면 세겜에 머무는 것입니다.

교회가 세속적인 가치를 가르치면 성도들을 세겜에 머물게 하는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18장의 음녀가 바로 성도들을 세상과 간음시키고 있는 것입니다.

 

지금 이 시대에 수많은 교회들이 세상 것을 주고 있어요.

대 부분의 목사들이 세겜에서 양을 치고 있는 것입니다.

세겜 목회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야곱의 아들들이 세겜에 내려가서 양떼를 치기 좋은 곳으로 이동하였어요.

거기가 어디인가 하면 도단입니다.

도단은 세겜에서 약 30 km 떨어져 있어요.

 

요셉이 세겜으로 내려가서 그 형제들이 있는 도단으로 갔습니다.

거기서 버려짐을 당합니다.

도단에서 죽임 당하였어요.

 

도단이라는 말은 “두 개의 우물”이라는 뜻입니다.

 

이게 영적인 의미가 굉장히 깊어요.

성경에서는 우물은 교회를 상징합니다.

그럼 도단은 두 개의 교회가 되겠지요.

구약 교회와 신약 교회인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세겜이라는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그리고 자기 백성들이 있는 것을 찾아 갑니다.

자기 백성들이 있는 곳이 바로 교회입니다.

 

요셉이 도단에서 죽임을 당하였듯이 예수님이 교회에서 죽임을 당합니다.

구약 교회의 손에 죽임을 당하였어요.

예수는 자기 백성들이 죽였어요.

 

신약교회는 어떠할까요?

예수님을 죽일까요?

안 죽일까요?

죽여요.

 

빌립보서 3장을 봅시다.

 

빌 3:18-19절 “내가 여러 번 너희에게 말하였거니와 이제도 눈물을 흘리며 말하노니 여러 사람들이 그리스도 십자가의 원수로 행하느니라 19 저희의 마침은 멸망이요 저희의 신은 배요 그 영광은 저희의 부끄러움에 있고 땅의 일을 생각하는 자라”

 

바울은 신약 교회에 말하고 있습니다.

그것도 눈물을 흘리면서 한 두 번 말한 것이 아니고 여러 번 말하였다고 합니다.

세상 것 쫓아가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세상 것을 쫓아가는 것은 십자가의 원수라고 합니다.

예수를 십자가에 다시 못 박는다고 합니다.

세겜식 목회를 하면 예수를 죽이는 것입니다.

이들에게 신은 자기 배입니다.

이들이 추구하는 것은 땅의 일입니다.

 

예수님은 땅에서 빼내주셨습니다.

그런데 다시 땅으로 돌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마치 하나님이 야곱의 후손들을 세겜에서 빼내 주셨는데 다시 돌아간 것과 같습니다.

 

도단에서 요셉의 형제들이 요셉을 은 20에 애굽 상인에게 팔아버립니다.

목사들이 삯을 위하여 성도들을 세상에 팔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초림으로 오셨을 때 구약 교회가 강도의 굴혈이 되었어요.

교인들을 세상에 팔고 있다는 뜻입니다.

 

오순절 날에 성령이 임하고 난 후 베드로가 성전에 들어갑니다.

그런데 성전 미문에 나면서부터 된 앉은뱅이가 은과 금을 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성전에 드나드는 제사장들이 은과 금을 주었어요.

그러니까 여느 때와 같이 은과 금을 달라고 구걸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때 베드로가 나사렛 예수를 줍니다.

그러자 땅에서 일어나 걷기도 하고 뛰기도 하면서 성전 안으로 들어가서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이것은 예수님이 땅에 속한 자들을 하늘에 속한 자들로 거듭나게 하신다는 뜻입니다.

앉은뱅이는 그동안 단 한번도 성전 안에 들어가 보지 못하였습니다.

땅에서 일어난 본 적이 없습니다.

그런데 예수그리스도가 땅에서 일어나게 하십니다.

 

신약의 교회가 이렇게 출발을 하였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재림이 임박한 지금의 교회의 모습은 예수님의 초림 때 구약 교회의 모습과 동일합니다.

교인들이 교회에 와서 성전 미문의 앉은뱅이처럼 은과 금을 구하고 있습니다.

목사들이 은과 금을 주고 있습니다.

 

예수님을 십자가에 다시 못 박고 있는 것입니다.

이건 악이라고 고발해 주어야 합니다.

요셉이 형제들의 과실을 고발하다가 죽임을 당하였고,

예수님은 구약 교회를 강도의 굴혈이라고 하였다가 죽임을 당하였듯이,

종말에도 두 증인들이 이 시대 교회가 세상과 간음하고 있다고 하다가 죽임을 당하게 됩니다.

 

어느 시대이고 하나님이 보낸 자들을 자기 백성들이 죽였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예루살렘을 일컬어 하나님이 보내신 자들을 돌로 치는 자들이라고 한 것입니다.

의인 아벨의 피로부터 시작해서 사가랴의 피로 물들어 있다고 하였습니다.

 

요셉이 형제들의 손에 죽임을 당하였고,

예수님이 형제들이 손에 죽임을 당하였듯이,

지금도 하늘에 신령한 복인 창세전 언약을 전하면 땅에 거하는 육에 속한 자들이 이단이라고 하면서 죽입니다.

 

이 시대 복음을 증거 해 보세요.

육적 신자들이 핍박을 합니다.

복음을 안다는 것은 죽임 당하게 되어 있습니다.

 

야곱이 요셉에게 채색 옷을 입혀 놓고 죽음의 자리로 밀어 넣은 것처럼 두 증인들에게 작은 책인 영원한 복음을 먹여 놓고서 교회에 가서 죽임 당하게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죽음의 자리로 밀어 넣는 것입니다.

 

요셉의 형제들이 요셉을 오는 것을 보고 꿈꾸는 자가 온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요셉의 채색 옷을 벗겨버리고 찢어 버립니다.

이것은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옷 벗김 당하는 것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실 때에 옷이 벗겨지고 네 조각으로 나눠지지요.

네 조각으로 나뉘었다는 것은 온 사방으로 나누어졌다는 뜻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옷을 벗김 당한 것은 하나님이 에덴동산에서 범죄한 아담에게 흠 없는 제물이 죽어서 가죽 옷을 만들어서 입혀주신 것과 같습니다.

 

예수님의 옷을 누가 입느냐?

제비 뽑은 자가 입습니다.

구약에서 제비 뽑는 것은 하나님으로부터 선택 당한 것을 상징합니다.

제비를 뽑은 자는 언약의 후손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창세전에 구원 받기로 예정이 된 자를 상징합니다.

 

예수님의 옷은 창세전에 어린 양의 생명책에 녹명이 된 자들이 입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십자가 아래서 제비를 뽑아서 예수님의 옷을 차지한 자들은 창세로부터 어린양의 생명책에 녹명이 된 자를 상징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지금 제비 뽑아서 얻은 옷을 입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그리스도의 의에 옷을 입고 있는 것입니다.

이게 바로 요셉이 입은 채색 옷과 같습니다.

 

채색 옷을 입은 자는 반드시 죽임을 당해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예수그리스도의 옷을 입혀주시고 죽임 당하게 하십니다.

왜 죽이느냐?

예수그리스도의 부활에 동참시키기 위해서입니다.

 

빌립보서 3장을 봅시다.

 

빌 3:9-14절 “내가 가진 의는 율법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것이니 곧 믿음으로 하나님께로서 난 의라 10 내가 그리스도와 그 부활의 권능과 그 고난에 참예함을 알려하여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11 어찌하든지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에 이르려 하노니 12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 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좇아가노라 13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14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좇아가노라”

 

사도 바울은 자기가 가진 의는 율법에서 난 것이 아니고 예수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에서 난 하나님의 의라고 합니다.

그 의가 바로 옷입니다.

 

그 의에 옷을 입고 어디로 쫓아 간다고 합니다.

어디로 간다고 합니까?

그리스도의 부활입니다.

 

그리스도의 부활에 참예 하려고 앞으로 달려간다고 합니다.

앞으로 달려가는 그 길이 바로 그리스도의 고난에 동참 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그리스도의 고난이 바로 죽음입니다.

바울은 죽음의 길로 달려가고 있는 것입니다.

 

사도행전 21장을 봅시다.

 

행 21;10-14절 ‘여러 날 있더니 한 선지자 아가보라 하는 이가 유대로부터 내려와 11 우리에게 와서 바울의 띠를 가져다가 자기 수족을 잡아매고 말하기를 성령이 말씀하시되 예루살렘에서 유대인들이 이같이 이 띠 임자를 결박하여 이방인의 손에 넘겨주리라 하거늘 12 우리가 그 말을 듣고 그 곳 사람들로 더불어 바울에게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지 말라 권하니 13 바울이 대답하되 너희가 어찌하여 울어 내 마음을 상하게 하느냐? 나는 주 예수의 이름을 위하여 결박 받을 뿐 아니라 예루살렘에서 죽을 것도 각오하였노라 하니 14 저가 권함을 받지 아니하므로 우리가 주의 뜻대로 이루어지이다 하고 그쳤노라’

 

아가보라는 선지자가 허리띠를 갖고 와서 이 허리 띠 임자는 예루살렘에 가서 죽임을 당한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허리 띠 임자가 바울인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가지 말라고 합니다.

 

이에 바울은 뭐라고 합니까?

죽을지 뻔히 알고도 간다고 합니다.

그것이 주의 뜻이라고 합니다.

 

바울은 예수그리스도의 옷을 입었습니다.

그 옷은 하나님이 입혀 주었습니다.

그런데 그 옷을 입은 것 때문에 옷을 입지 못한 자들로부터 극심한 핍박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그리스도의 고난에 동참함입니다.

 

요한계시록 6장을 보면 천상에 일찍 죽임을 당한 성도들이 하나님께 자기들의 원수들을 갚아 달라고 신원을 합니다.

그러자 하나님이 흰 두루마기를 주시면서 저 아래 너희의 동무들이 너희들처럼 죽임을 당하여 그 수가 차기까지 잠시 쉬라고 합니다.

 

무슨 말인가요?

하나님 나라는 이 땅에서 죽임 당하고 가는 나라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하늘의 시온산에 144000명이 어린 양과 더불어 있는데 이들을 일컬어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의 증거로 인하여 목 베임을 당한 자들이라고 합니다.

 

이들을 목 베임 한 자들이 누구인가요?

계시록 13장을 보면 적그리스도와 그를 따르는 거짓 선지자들입니다.

거짓 선지자들이 어디에서 활동을 합니까?

교회 안입니다.

그러니까 144000명은 교회 안에 형제라고 하는 자들로부터 죽임을 당한 것입니다.

 

이것이 아담의 집안에서는 가인이 아벨을 죽인 것으로 나타나고,

아브라함 집안에서는 이스마엘이 이삭을 희롱하는 것으로 나타났고,

이삭의 집안에서는 에서가 야곱을 죽이려고 하는 것으로 나타났고,

야곱의 집안에서는 형제들이 요셉을 죽이는 것으로 나타났고,

왕에게서는 사울 왕이 다윗를 핍박하는 것으로 나타났고,

국가적으로는 북쪽 이스라엘이 남쪽 유다를 핍박하는 것으로 나타났고,

예수님 초림 당시에는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죽이는 것으로 나타났고,

신약의 교회 안에서는 땅에 속한 육적 신자들이 하늘에 속한 영적 성도들을 핍박하는 것으로 나타납니다.

 

예수님이 양을 이리가운데 보냈어요.

이리가 누구인가 하면 율법 아래 있는 자들입니다.

복음을 받으면 율법 아래 있는 자들에게 죽임을 당합니다.

율법 아래 있는 자들은 예수의 옷을 입지 못하였어요.

그러니까 예수의 옷을 입은 자들을 미워하는 것입니다.

 

신앙의 싸움은 형제 싸움입니다.

복음을 받으면 누구에게 죽임을 당하느냐 하면 복음을 받지 못한 형제들에게 핍박을 당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의인들은 예루살렘 밖에서 죽임 당하는 법이 없다고 하신 것입니다.

교회 안에서 죽임을 당한다고 하신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18장을 봅시다.

 

계 18:16-24절 “가로되 화 있도다 화 있도다 큰 성이여 세마포와 자주와 붉은 옷을 입고 금과 보석과 진주로 꾸민 것인데 17 그러한 부가 일 시간에 망하였도다 각 선장과 각처를 다니는 선객들과 선인들과 바다에서 일하는 자들이 멀리 서서 18 그 불붙는 연기를 보고 외쳐 가로되 이 큰 성과 같은 성이 어디 있느뇨 하며 19 티끌을 자기 머리에 뿌리고 울고 애통하여 외쳐 가로되 화 있도다 화 있도다 이 큰 성이여 바다에서 배 부리는 모든 자들이 너의 보배로운 상품을 인하여 치부하였더니 일시간에 망하였도다 20 하늘과 성도들과 사도들과 선지자들아 그를 인하여 즐거워하라 하나님이 너희를 신원하시는 심판을 그에게 하셨음이라 하더라 21 이에 한 힘센 천사가 큰 맷돌 같은 돌을 들어 바다에 던져 가로되 큰 성 바벨론이 이같이 몹시 떨어져 결코 다시 보이지 아니하리로다 22 또 거문고 타는 자와 풍류하는 자와 퉁소 부는 자와 나팔 부는 자들의 소리가 결코 다시 네 가운데서 들리지 아니하고 물론 어떠한 세공업자든지 결코 다시 네 가운데서 보이지 아니하고 또 맷돌 소리가 다시 네 가운데서 들리지 아니하고 23 등불 빛이 결코 다시 네 가운데서 비취지 아니하고 신랑과 신부의 음성이 결코 다시 네 가운데서 들리지 아니하리로다 너의 상고들은 땅의 왕족들이라 네 복술을 인하여 만국이 미혹되었도다 24 선지자들과 성도들과 및 땅 위에서 죽임을 당한 모든 자의 피가 이 성중에서 보였느니라 하더라”

 

24절을 보세요.

선지자들과 성도들이 이 성중에 있다고 하지요.

이 성이란? 음녀인데 이를 큰 성 바벨론이라고 합니다.

 

큰 음녀가 있고 땅의 음녀들이 있습니다.

큰 음녀는 적그리스도를 의미하고 땅의 음녀들은 그를 따르는 거짓 선지자들을 말합니다.

이들은 모두가 이 땅에 육적 교인들 위에서 왕 노릇하던 자들입니다.

이들은 갖가지 복술로서 육적 교인들을 미혹하여서 그들의 피를 빨아 먹은 자들입니다.

이것은 사람의 영혼을 사고팔았다고 합니다.

이들이 성도들이 피에 의하여 있습니다.

 

요한계시록 11장을 보세요.

두 증인들이 성전에서 죽임 당하잖아요.

누구에게 죽임 당하느냐?

땅에 거하는 자들에게 죽임을 당합니다.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의 증거를 가진 선지자들은 이들의 악을 고발하다가 죽임을 당합니다.

마치 요셉이 세겜에서 양을 치는 형제들의 과실을 아버지에게 고발하니까 형제들이 미워하여서 죽인 것과 같습니다.

 

아모스 6장을 봅시다.

 

암 6:1-7절 “화 있을진저 시온에서 안일한 자와 사마리아 산에서 마음이 든든한 자 곧 열국 중 우승하여 유명하므로 이스라엘 족속이 따르는 자들이여 2 너희는 갈레에 건너가고 거기서 대 하맛으로 가고 또 블레셋 사람의 가드로 내려가 보라 그곳들이 이 나라들보다 나으냐? 그 토지가 너희 토지보다 넓으냐? 3 너희는 흉한 날이 멀다 하여 강포한 자리로 가까와지게 하고 4 상아 상에 누우며 침상에서 기지개 켜며 양떼에서 어린 양과 우리에서 송아지를 취하여 먹고 5 비파에 맞추어 헛된 노래를 지절거리며 다윗처럼 자기를 위하여 악기를 제조하며 6 대접으로 포도주를 마시며 귀한 기름을 몸에 바르면서 요셉의 환난을 인하여는 근심치 아니하는 자로다 7 그러므로 저희가 이제는 사로잡히는 자 중에 앞서 사로잡히리니 기지개 켜는 자의 떠드는 소리가 그치리라”

 

화 있을진저 라고 합니다.

누구에게 그럽니까?

열국 중에 유명한 자들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따르는 자들입니다.

한마디로 많은 교인들이 추종하는 유명한 목사들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들이 어떤 짓을 하는가요?

 

4-6절을 보세요.

 

4-6절 “상아 상에 누우며 침상에서 기지개 켜며 양떼에서 어린 양과 우리에서 송아지를 취하여 먹고 5 비파에 맞추어 헛된 노래를 지절거리며 다윗처럼 자기를 위하여 악기를 제조하며 6 대접으로 포도주를 마시며 귀한 기름을 몸에 바르면서 요셉의 환난을 인하여는 근심치 아니하는 자로다”

 

어린 양과 송아지들을 잡아먹고 있습니다.

어린 양과 송아지는 육적 신자들을 말해요.

하나님의 말씀을 모르는 자들을 말합니다.

그러니까 이들을 속여서 그들 위에서 왕 노릇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들이 바로 요한계시록 18장의 음녀들입니다.

 

거짓 선지자들은 예수 이름을 팔아서 호의호식하는 자들입니다.

이들은 구약의 아합 왕 시절에 거짓 선지자들이 바알을 하나님이라고 둔갑을 시켜서 백성들을 미혹하였듯이 거짓 예수로 미혹을 합니다.

 

복 주는 예수,

병 고쳐주는 예수,

출세 시켜주는 예수,

부귀영화 주는 예수를 가르칩니다.



이게 종말의 타락한 교회인 음녀의 복술이고 미혹입니다.  

이들의 미혹은 땅에 속한 자들은 다 넘어가요.

땅에 속한 자들은 이놈들을 주의 종이라고 여기고 추종합니다.

그래서 교회 안에 이단이 생기고 교주가 생겨나는 것입니다.

 

주변을 한번 살펴보세요.

교회가 크면 목사는 신이에요.

교인들이 그렇게 따르고 있어요.

 

아모스 선지자가 이들에게 경고를 합니다.

어떤 경고입니까?

요셉의 환란을 기억하지 못한다고 경고하고 있습니다.

 

왜 요셉의 환란이 나옵니까?

이는 영적으로 요셉의 때와 같다는 뜻입니다.

요셉의 때는 온 세상에 기근이 당하는 때입니다.

 

요셉의 환란은 두 가지가 있습니다.

첫째는 요셉이 겪었던 환란으로서 이는 요셉이 형제들로부터 죽임을 당하는 것입니다.

둘째는 요셉의 형제들이 당하는 환란으로서 이는 기근을 당하는 것입니다.

 

이 시대는 말씀이 홍수를 이루고 있습니다.

홍수 속에는 마실 물이 없습니다.

요한계시록 12장을 보면 붉은 용이 하늘에서 쫓겨나서 땅에 있는 교회를 핍박을 합니다.

어떻게 핍박을 하느냐 하면 뱀의 입에서 큰 물을 토하여서 강을 이루어서 교회를 떠내려가게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거짓 선지자들이 땅의 말로 교인들을 세속화 시킨다는 뜻입니다.

마치 마귀가 예수님을 찾아와서 주겠다고 하는 것으로 미혹하는 것입니다.

육신의 정욕과 안목 정욕과 이생의 자랑거리들로 미혹하는 것입니다.

육신의 정욕과 안목 정욕과 이생의 자랑거리들은 선악과처럼 보암직하고 먹음직하고 탐스러워요.

육적 신자들은 보는 순간 훅하고 빠져들게 되어 있어요.

 

선악과를는죽이는 것입니다.

세상 것도 죽이는 것입니다.

육신의 정욕과 안목 정욕과 이생의 자랑거리들을 붙잡는 순간 지옥으로 향하게 됩니다.

이 시대 음녀 교회들은 교인들을 지옥으로 가는 열차에 태우고 있어요.

 

예수님은 이 땅에서 빼내고자 오셨는데,

거짓 선지자들은 땅을 못 떠나도록 붙잡고 있는 것입니다.

이 세상은 아담의 범죄로 인하여 하나님으로부터 저주를 받은 곳이에요.

땅의 것에는 생명이 없어요.

 

거짓 선지자들은 양떼들을 세상으로 끌고 가는 것입니다.

세상이 바로 요셉의 형제들이 양을 치는 세겜이에요.

세겜은 교인들이 간음을 하고 또한 강간당하는 곳입니다.

 

요셉은 형제들에게 세겜은 우리를 강간하는 곳인데 어찌하여 헤브론을 버리고 이곳에 와서 양을 치느냐고 형제들의 과실을 고발합니다.

그러자 형제들이 너는 뭐냐,

네가 뭔데, 우리가 하는 일을 잘했니 못했니 나무라느냐고 죽이는 것입니다.

 

말씀을 정리 합니다.

 

부활은 죽음이 전제가 되어 있습니다.

죽음이 먼저이고 부활이 나중입니다.

부활시키기 위하여 죽이는 것입니다.

농부는 씨앗 속에 생명을 끄집어내기 위하여 씨앗을 죽음에 넘기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농부가 되어서 자기 백성들을 농사를 짓는 것입니다.

그래서 먼저 죽음에 넘겨주는 일을 하십니다.

하나님이 자기백성들을 다뤄감에 있어서 항상 아픔을 먼저 주세요.

지옥을 경험케 하세요.

천국은 지옥 속에서 보여요.

 

예수님의 사랑을 받으면 반드시 세상으로부터 미움을 받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세상이란 육적 신자들을 말합니다.

마치 요셉이 꿈을 꾸니까 꿈을 받지 못한 형제들에게 죽임을 당한 것처럼 복음을 받으면 복음을 받지 못한 자들로부터 공격을 당합니다.

복음을 받았기 때문에 아픔을 당하는 것입니다.

 

이 말씀으로 위로 삼으시길 바랍니다.

 

요 15:18-19절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면 너희보다 먼저 나를 미워한 줄을 알라 19 너희가 세상에 속하였으면 세상이 자기의 것을 사랑할 터이나 너희는 세상에 속한 자가 아니요 도리어 세상에서 나의 택함을 입은 자인고로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느니라”

 

세상에서 예수의 것으로 택함을 입었기 때문에 미움을 받는다고 합니다.

이러면 미움 받는 것이 축복인 것입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의 것으로 택함을 입었기 때문입니다.

 

마치 술람미가 솔로몬으로부터 사랑을 받으니까 사랑을 받지 못한 예루살렘 여자들이 핍박을 하였듯이 말이에요.

술람미가 어떻게 극심한 핍박을 이겨냈나요?

그건 솔로몬에 대한 사랑이고 약속 때문입니다.

 

사랑,

그 사랑 때문에,

 

사랑이 고난을 이기게도 하지만,

그 사랑 때문에 아픔도 당합니다.

이게 사랑의 속성이에요.

 

요셉은 아비로부터 사랑을 받았기 때문에 형제들이 미움을 이겨내는 것입니다.

속된 말로 사랑 받은 죄로 이해하고 참아 내는 것입니다.

사랑이 이해하게 하고 용서하게 하고 참게 하는 것입니다.

 

우린 모두가 꿈을 받았습니다.

채색 옷을 입었습니다.

채색 옷이기 때문에 찢겨짐을 당하는 것입니다.

채색 옷이 아니면 찢김을 당하지도 않아요.

 

예수 믿는 것이 아픕니까?

채색 옷을 입었기 때문입니다.

이 옷은 아무나 입는 옷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아무에게나 채색 옷을 입혀주지 않습니다.

 

창세전에 어린 양의 생명책에 녹명 된 자들에게만 입혀 주십니다.

그러니 예수 믿는 것 때문에 손해를 보고 아픔을 당한다고 슬퍼하지 마세요.

살아가는 것이 조금 힘들다고 징징거리지 마세요.

이건 아무나 당하는 게 아니니까요.

 

머물러 있는 것은 없습니다.

고난도 지나갑니다.

그래서 바울은 아내 있는 자는 아내 없는 것처럼 살고,

또한 아내 없는 자는 주님 곧 오신다는 소망으로 살라고 합니다.

 

무슨 말인가요?

없다고 징징거리지 말고,

있다고 자랑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다 지나가는 것들이기 때문입니다.

 

밤이 깊으면 아침도 오고,

낮이 깊으면 또 밤도 옵니다.

그러니 잘 풀린다고 우쭐하지 말고, 안 풀린다고 억울해 하지 마세요.

 

성도는 하늘을 보고 사는 자이지 세상 것 보고 사는 자들이 아닙니다.

힘들면 하늘 한번 쳐다보세요.

그리고 허허 웃으세요.

 

주님이 지금 오고 계시니까요.

말발굽 소리가 들리지 않나요?

 

만물이 예수님의 오심을 징조로 토해내고 있습니다.

일어나 머리를 드세요.

우리의 구속이 곧 가까이 오고 있습니다.

 

 

기도합시다.

아버지 하나님 감사합니다. 요셉이 형제들에게 버림당하는 것은 모두가 아버지의 사랑을 입었기 때문임을 알았습니다. 우리 또한 채색옷을 입었음을 알았습니다. 살아가면서 당하는 갖가지 아픔들은 모두가 하나님으로부터 사랑을 받았기 때문에 당하는 아픔이라는 것을 깨달았사오니 어떤 환경에서도 낙망치 말고 이겨내게 하소서. 잠시잠깐 후면 오실 주님을 소망삼고 이겨내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여호와의 정하신 날"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보라 용광로 불 같은 날이 이르리니

교만한 자와 악을 행하는 자는 다 지푸라기 같을 것이라

말라기 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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