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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3:5 내가 누워 자고 깨었으니 여호와께서 나를 붙드심이로다

(성경강해)18강. 산모의 정결 규례 (레 1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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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강해/레위기 강해

2021. 9. 12.

 

 

18강. 산모의 정결 규례 (레 12:1-8)

-.정낙원 목사

 

 

 

성경은 하나님의 입장에서 이해를 하여야 합니다.

인간 입장에서 접근하면 이해 할 수가 없습니다.

오늘 본문이 그러합니다.

 

인간들은 아이를 낳으면 축하를 해 줍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아이를 낳으면 부정한 자로 여기십니다.

이것은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 하라는 말씀과 정면으로 대치되는 말씀입니다.

 

상반된 이러한 말씀을 어떻게 이해를 하여야 할까요?

 

이는 하나님의 입장에서 바라보면 쉽게 이해가 됩니다.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 하라는 말씀은 죄 없는 자에게 주신 말씀입니다.

하지만 오늘 본문의 여인이 아이를 낳으면 부정한 것이라 하는 것은 죄인에게 하신 말씀입니다.

 

이렇게 이해하면 쉬울 것입니다.

사람과 바퀴벌레가 있습니다.

사람 입장에서는 사람의 출생을 축하하고 기뻐할 일입니다.

그러나 바퀴벌레가 새끼를 낳는 것은 부정하게 여기게 됩니다.

 

바퀴벌레 세계에서는 새끼를 낳으면 축하 받을 일이지만 사람들 입장에서는 골칫덩어리가 하나 더 생긴 것이므로 새끼를 낳은 놈이나 낳아진 그 새끼까지 박멸의 대상으로 여깁니다.

인간들 세계에서는 바퀴벌레는 사라져야 할 것들입니다.

 

하나님 앞에 죄인은 바퀴벌레와도 같습니다.

하나님은 죄인의 충만을 기뻐하지 않습니다.

도리어 죄인의 소멸을 기뻐하십니다.

 

노아 시대 하나님은 인간 지음을 한탄하셨습니다.

이는 인간들이 죄악으로 충만 하였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에게 얼마나 미웠으면 홍수로 심판하는 일을 하였겠습니까?

 

홍수 후 인간들은 번성하자 바벨탑으로 또 다시 하나님께 반역을 합니다.

이에 하나님은 그들의 언어를 혼잡케 하여서 흩어버리십니다.

흩어진 자들이 자기 좋은 대로 신을 만들어서 우상숭배를 하여서 하나님께 노를 쌓게 됩니다.

 

에덴동산에서 쫓겨난 인간들은 늘 하나님을 반역해 왔습니다.

하나님은 반역하는 인간의 번성을 기뻐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인간의 번성은 하나님께 반역을 몰고 오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여인이 죄를 짓는 또 다른 죄인을 생산한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여인이 아이를 낳으면 부정한 것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서는 죄인의 번성은 결코 기쁜 일이 아닙니다.

이러한 사실을 여인이 아이를 출산하는 것으로 교육하고 있는 것입니다.

시청각 교제로 사용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여인이 아이를 낳는 것을 경도(월경) 하는 것과 같이 부정한 것으로 규정을 합니다.

경도란? 죽은 피를 쏟는 것을 말합니다.

피를 쏟는다는 것은 죽음을 유출한다는 의미입니다.

 

그래서 번제와 속죄제를 드려서 정결케 되는 의식을 치르라고 합니다.

번제로는 어린 양을 드리고, 속죄제는 비둘기를 드리라고 합니다.

번제는 아이 낳은 본인의 죄를 어린 양이 대신 죽어주심으로 용서 받는 것이고,

속죄제는 아이를 죄악 된 세상에 태어나게 한 죄 값으로 드리게 되는 것입니다.

 

왜 여인이 아이를 낳는 것을 경도 하는 것과 같이 부정한 것이라고 할까요?

 

여자는 한 달에 1개의 난자(卵子)를 생산합니다.

난자는 남자의 정자(精子)를 만나야 생명을 낳습니다.

남자의 씨를 만나지 못하면 죽고 맙니다.

그 죽음이 피로 유출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죄인은 예수그리스도를 만나지 못하면 죽는다는 것입니다.

예수를 만나지 못한 자들은 여인의 경도로 죽음 피를 쏟아내는 것과 같습니다.

그래서 경도하는 여인을 시체를 만진 것과 같이 부정한 것으로 간주를 하는 것입니다.

 

여인이 경도하는 것은 죽음을 쏟아내는 것과 같습니다.

그런데 여인이 아이를 낳는 것이 바로 여인이 죽음을 쏟아내는 경도와 같이 부정한 것입니다.

죽음을 퍼뜨릴 죽은 자를 낳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번제를 드리라고 합니다.

 

번제란? 대속제입니다.

내 대신 어린 양이 대신 죽어주는 것입니다.

어린 양이 내 죄를 대신하여서 희생당하는 것입니다.

죽은 자를 낳은 죄를 어린 양의 희생으로 용서 받게 되는 것입니다.

 

본문을 잘 보시면 여인(女人)과 여자(女子)가 나옵니다.

아이를 낳은 여자는 여인이라 하고,

여인에 의해서 낳아진 아이는 여자라고 합니다.

 

여인은 “이솨” 라고 하고,

여자는 “네케바” 라고 합니다.

 

처음 창조가 된 아담 속에는 “남성” 성(性)과, “여성” 성(性)이 함께 있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아담 속에 있던 “여성 성(性)”을 빼내서 하와를 만듦으로서 아담은 남자가 되고 하와는 여자가 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담 속에 있던 “여자(이솨)”를 빼내면서부터 아담이 “남자(이쉬)”가 된 것입니다.

성(性)으로 남자와 여자로 구분이 된 것입니다.

성(性)을 떠나서는 남자나 여자나 모두가 사람입니다.

 

남자와 여자가 한 몸이 되면 사람이 됩니다.

사람이라는 말에는 남자나 여자의 구분이 없습니다.

남자도 사람이고, 여자도 사람입니다.

 

여인은 “이솨” 로서 아담 안에서 나온 여자를 말합니다.

그래서 “이솨”는 남자의 아내를 뜻하는 것으로 말합니다.

그런데 남자의 아내인 여인(이솨)이 낳은 아이를 여자(네케바)라고 합니다.

 

여자는 “네케바” 라고 하는데,

이는 타락을 상징하는 “나카브” 에서 유래한 말입니다.

“나카브” 는 “찌르다”, “구멍을 내다”, “훼방하다”, “저주하다” 라는 뜻입니다.

이는 부정적인 의미로서 타락을 말합니다.

 

그러니까 여인이 여자를 낳은 것은 하나님의 일을 훼방하는 죄인을 낳은 것입니다.

속된 말로 여자를 낳은 것은 죄인을 생산하는 공장을 하나 만든 것과도 같은 것입니다.

그래서 여자 아이를 낳으면 남자 아이를 낳은 것보다 배나 더 부정한 기간을 지나서 정결케 되는 것으로 말씀 하신 것입니다.

 

남자를 낳으면 7일 동안 부정합니다.

그리고 33일이 지나야 온전케 되고 성전에 가서 예배 할 수가 있습니다.

남자를 낳으면 도합 사십일(7일 + 33일= 40일) 동안 부정한 것입니다.

40일이 지난 후에 성전에서 예배를 드릴 수가 있습니다.

 

40일은 고난과 시련을 이겨내는 기간을 상징합니다.

모세가 40일을 금식하면서 율법을 받았습니다.

이스라엘은 40년 동안 광야의 시련을 겪었습니다.

예수님도 40일을 주리시면서 마귀로부터 시험을 받았습니다.

 

남자는 아버지의 가문을 유업으로 이어가는 자로서 시험을 이겨내야 합니다.

시험을 이겨야 남자로서의 구실을 할 수가 있습니다.

출애굽 할 때 이스라엘을 남자만 계수한 것은 여자는 남자에게 복속된 자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남자가 유업을 이어갈 자들이기 때문에 여자는 계수치 않은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어린 양의 피로 죽음에서 살아난 모든 자들을 하나님의 장자라고 하셨습니다.

 

여자를 낳으면 남자보다 갑절인 14일 동안 부정합니다.

그리고 66일이 지나야 성전에 가서 예배를 드릴 수가 있습니다.

여자를 낳으면 도합 80일(14일 + 66일= 80일) 동안 부정한 것입니다.

 

왜 여자는 남자보다 갑절의 정결 기간이 필요한가요?

이는 여자가 남자를 범죄케 하였기 때문입니다.

죄를 짓게 한 원인 제공자를 더 악하게 보는 것입니다.

여자는 일절 순종함으로 배우라고 합니다.

 

딤전 2:11-15절. “여자는 일절 순종함으로 종용히 배우라 12. 여자의 가르치는 것과 남자를 주관하는 것을 허락지 아니하노니 오직 종용할지니라 13. 이는 아담이 먼저 지음을 받고 이와가 그 후며 14. 아담이 꾀임을 보지 아니하고 여자가 꾀임을 보아 죄에 빠졌음이니라 15. 그러나 여자들이 만일 정절로써 믿음과 사랑과 거룩함에 거하면 그 해산함으로 구원을 얻으리라”

 

여자는 남자에게 순종함으로 배우라는 것은 아담이 먼저 지음을 받고 하와가 나중에 지음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다도 여자가 뱀의 미혹으로 죄에 빠졌기 때문입니다.

 

여자는 죄의 원인을 제공한 자입니다.

그래서 여자 아이를 낳으면 정결해지는 기간이 남자의 배가 되도록 하신 것입니다.

 

여자의 출산은 죄의 삯으로 주어진 것입니다.

 

창 3:16절. “또 여자에게 이르시되 내가 네게 잉태하는 고통을 크게 더하리니 네가 수고하고 자식을 낳을 것이며 너는 남편을 사모하고 남편은 너를 다스릴 것이니라”

 

여자는 해산의 고통을 통해서 죄값을 치루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여자에게 해산의 고통을 당하지만 남편의 다스림도 받으라고 합니다.

남자에게 다스림을 받는 것은 해산의 수고와 같다고 하십니다.

해산의 수고를 구원이라고 합니다.

 

왜 남자의 다스림을 받는 것이 해산의 수고라고 하는가요?

그리고 여자가 남자에게 순종하는 것을 어째서 구원 받는 것이라고 하는가요?

이는 여자가 남자를 떠났다가 뱀에게 미혹 당하였기 때문입니다.

 

남자에게 순종하라는 것은 여자는 남자의 품 안에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는 여자는 남자로부터 나왔기 때문입니다.

여자를 존재케 하는 근원이 남자입니다.

여자가 남자를 떠나는 것은 생명으로부터 끊어짐이 됩니다.

 

그래서 여자는 반드시 남자 아래 있으라고 합니다.

여자는 독자적으로 사는 자가 아닙니다.

남자로부터 생명을 공급 받음으로서 살아가는 자입니다.

 

아담과 하와는 예수님과 성도의 표상입니다.

 

예수님은 남자이고 성도는 여자입니다.

여자인 성도는 남자인 예수님으로부터 생명을 받았고 또한 계속해서 공급을 받아야 하기 때문에 남자인 예수님을 떠나서는 안 됩니다.

 

여자는 남자를 떠나는 순간 뱀의 공격을 받게 됩니다.

여자는 뱀의 미혹을 이길 수가 없습니다.

그 이유는 뱀은 여자가 원하는 것들을 주기 때문입니다.

 

뱀은 남자를 떠난 여자들을 선악과로 미혹합니다.

여자에게 선악과는 너무도 달콤한 것이라서 거부 할 수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선악과 속에는 자기 의가 있기 때문입니다.

 

여자는 자기 의로 살아가는 자입니다.

자기 자랑으로 살아가는 자입니다.

그런데 인간의 의로는 하나님께 나아 갈 수가 없습니다.

그럼에도 여자들이 인간의 의(선악과)를 좋아하는 것은 자기 자랑이 있기 때문입니다.

 

신앙을 순종이라고 하는 것은 인간의 의를 배제하기 때문입니다.

성도는 여자 입장에서 남자인 예수그리스도의 다스림을 받아야 합니다.

예수그리스도의 의로 살아야 합니다.

이걸 순종이라고 합니다.

 

죄인의 속성은 독자적으로 살고자 합니다.

독자적으로 살고자 하는 죄인이 예수그리스도의 다스림 안에서 순종하면서 산다는 것은 자기 인생을 차압당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해산의 수고와 같이 아픈 것입니다.

 

해산의 수고로 여자가 구원을 받는다고 하는 것은 여자에게 있어 해산의 수고는 죽음과 같기 때문입니다.

여자는 아이를 잉태하면서 자기 인생이 차압당하여 집니다.

뱃속의 아이가 여자를 주장하게 됩니다.

 

뱃속의 아이가 여자의 인생을 차압하는 것입니다.

뱃속의 아이는 여자로 하여금 자기 삶을 살지 말고 아이를 위한 삶을 살게 함으로서 구원을 이루게 합니다.

 

이것은 성도 안에 성령이 오시면 나타나는 현상과 같습니다.

성령이 오시면 성도는 잉태한 여자와 같이 인생을 차압당하게 됩니다.

성령이 우리 인생으로 살지 말고 예수그리스도의 인생을 살도록 간섭을 하시는 것입니다.

세상에 대한 정과 욕심을 못 박게 하십니다.

 

이러한 상태를 나는 날마다 죽고 예수로 산다고 합니다.

우리 안에 예수라는 아이가 잉태가 되면 예수가 우리로 하여금 죄인의 삶을 살지 말고 의와 거룩의 삶을 살라고 간섭을 하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여자가 해산함으로 구원을 받는 것입니다.

 

여인이 아이를 낳으면 부정하고 그 부정을 어린 양의 번제와 비둘기의 속죄제를 통해서 부정함을 벗고 정결케 되는 것은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들을 어떻게 거룩케 하는지를 보여주는 그림과 같은 것입니다.

 

영적으로 보면 어린 양의 번제는 예수님의 십자가를 상징하고,

비둘기로 드리는 속죄제는 성령의 오심으로 우리로 하여금 예수그리스도의 의 안에서 살아가게 하시는 것과 같습니다.

 

레위기는 거룩케 하는 책입니다.

하나님은 비록 죄 아래서 난 죄인이지만 어린 양의 번제와 비둘기의 속죄제의 정결 규례를 통해서 거룩함을 입게 하셨습니다.

 

여인은 어린 양으로 거룩함을 입고,

여인에게서 태어난 아이는 할례를 받음으로 거룩함을 입게 됩니다.

이것은 부정한 자가 어떻게 거룩케 되는지를 말씀하고 계신 것입니다.

 

할례는 남자의 생식기를 자르는 것입니다.

이것은 아이의 죽음을 상징합니다.

할례로 아이는 새로 태어나는 것입니다.

죄의 사람은 죽고 거룩의 사람으로 거듭난 것입니다.

 

8일 만에 할례를 받는 것은 8일이 되면 새로운 피조물이 된다는 것입니다.

성경 속에서 8의 의미는 새롭게 난다는 의미입니다.

새로운 세계를 8로 표현을 합니다.

 

예수님께서 안식 후 첫날에 부활을 하셨습니다.

안식 후 첫 날이 8일입니다.

7대 절기 속에도 맨 마지막 절기인 초막절에 7일 동안 축제를 벌이고 난 후에 여덟째 날 8일 안식일로 지킵니다.

 

7일 안식일은 역사 속의 안식일이고,

8일 안식일은 묵시에 속한 안식일입니다.

이를 여덟째 안식일이라고 합니다.

 

7은 역사에 속한 날이고,

8은 역사 바깥에 속한 날입니다.

죄 아래서 태어난 아이는 8일 할례를 받음으로서 역사 바깥 예수그리스도의 부활의 세계에 속한 자가 되는 것입니다.

 

새 사람은 예수그리스도의 의로 살아가는 자들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인간의 의를 자랑하는 율법 신앙을 버리라고 합니다.

율법 신앙을 버리는 것을 일컬어 해산의 수고라고 합니다.

 

갈 4:8-20절. “그러나 너희가 그 때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여 본질상 하나님이 아닌 자들에게 종노릇하였더니 9. 이제는 너희가 하나님을 알뿐더러 하나님의 아신바 되었거늘 어찌하여 다시 약하고 천한 초등 학문으로 돌아가서 다시 저희에게 종노릇하려 하느냐 10. 너희가 날과 달과 절기와 해를 삼가 지키니 11. 내가 너희를 위하여 수고한 것이 헛될까 두려워하노라 ~ 19. 나의 자녀들아 너희 속에 그리스도의 형상이 이루기까지 다시 너희를 위하여 해산하는 수고를 하노니 20. 내가 이제라도 너희와 함께 있어 내 음성을 변하려 함은 너희를 대하여 의심이 있음이라”

 

옛 사람이 새 사람으로 산다는 것은 해산의 수고와 같이 아픈 것입니다.

또한 옛 사람으로 사는 것은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 원수로 행하는 것으로서 여인의 경도와 같이 부정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어린 양의 번제로 주어지는 산모의 정결 규례는 신약에서는 십자가 복음인 것입니다.

 

산모의 정결 규례 속에는 세 가지 복음적 의미가 담겨져 있습니다.

 

첫째, 혈육을 따라 태어나는 인간은 모두가 죄인이라는 것입니다.

둘째, 죄 아래서 난 자가 어린 양의 죽음으로 정결함을 입게 된다는 것입니다.

셋째, 죄인이 옛 사람의 죽음인 할례를 통해 하나님의 백성이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보시기에 인간은 저주의 대상이라는 것입니다.

출생은 하나님의 원수가 하나 더 생긴다는 의미에서 부정하다고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출생 제사를 통해서 인간이 어떤 존재인가를 알려주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악인의 번성함을 기뻐하지 않습니다.

범죄한 아담의 혈통으로 태어나는 자들은 모두가 악인입니다.

악인의 죄값을 치러야 합니다.

 

그것이 정결 의식입니다.

우리는 출산한 여인처럼 어린 양의 번제로 정결함을 받아야 합니다.

신약의 정결 의식은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로 이루어졌습니다.

그러므로 날마다 예수그리스도 안에서 정결한 새 사람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고후 5:17)

 

 

 

 

 

 

"여호와의 정하신 날"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보라 용광로 불 같은 날이 이르리니

교만한 자와 악을 행하는 자는 다 지푸라기 같을 것이라

말라기 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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