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 빛 사랑

Only Jesus. 시 3:5 내가 누워 자고 깨었으니 여호와께서 나를 붙드심이로다

♣(성경강해)74강. 베냐민을 데리고 오라 (창 43: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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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강해/창세기 강해

2021. 9. 23.

 

 

딤후 3장 12-15 

무릇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자는 박해를 받으리라 악한 사람들과 속이는 자들은 더욱 악하여져서 속이기도 하고 속기도 하나니 그러나 너는 배우고 확신한 일에 거하라 너는 네가 누구에게서 배운 것을 알며 또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았나니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

 

 

74강. 베냐민을 데리고 오라 (창 43:1-34)

-.정낙원 목사

 

 

 

오늘은 요셉과 베냐민의 만남을 살펴볼까 합니다.

요셉과 베냐민은 어떤 관계이고,

또한 왜 베냐민을 데리고 가야지만 두 번째 양식을 얻을 수 있는지를 알아봅시다.

요셉은 왜 두 번째 양식을 베냐민을 통해서 주는지 이것이 신약적인 의미에서는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를 살펴봅시다.

 

모든 성경은 예수님의 자기 백성 구속사 이야기입니다.

요셉과 그 형제들의 이야기도 예수님과 자기백성들의 이야기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요셉의 형제들이 기근 속에서 요셉의 양식으로 살아나는 것은 어린 양의 생명책에 녹명이 된 성도들이 예수님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심으로 영생을 얻는 것과 같습니다.

 

이렇게 되면 요셉과 그 형제들의 이야기는 우리들의 구원을 보여주는 예표적인 이야기가 되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구약은 그림자라고 하고 신약은 실체라고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림자를 통해서 실체인 예수그리스도의 구속사로 보아야 하는 것입니다.

 

구원은 죄와 사망에서 빼내심을 입고 살아나는 것입니다.

이것을 요셉과 그 형제들 이야기에서는 기근에서 살아나는 것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요셉은 양식을 주는 주의 자리에 있고, 그 형제들은 요셉으로부터 살아남을 입게 되는 백성의 위치에 있게 되는 것입니다.

 

성경은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들을 구원하는 이야기입니다.

이를 위하여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세상에 오셔서 아버지께서 구원하라고 하신 자들만 구원을 하십니다.

이를 형제라고 합니다.

 

히브리서 2장을 봅시다.

 

히 2:11절. “거룩하게 하시는 자와 거룩하게 함을 입은 자들이 다 하나에서 난지라 그러므로 형제라 부르시기를 부끄러워 아니하시고”

 

히 2:11절. “거룩하게 하시는 분과 거룩하게 되는 사람들은 모두 한 근원에서 났습니다. 그러므로 예수께서는 그들을 형제자매라고 부르시기를 부끄러워하지 않으셨습니다” (새번역)

 

거룩하게 하시는 분이 있고,

거룩하게 함을 입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거룩하게 하시는 분은 예수님이고 거룩함을 입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백성들입니다.

 

그런데 이 둘이 한 근원에서 났다고 하지요.

그래서 형제라고 합니다.

마치 요셉과 그 형제들과 같은 것입니다.

 

요셉은 거룩케 하는 자이고,

그 형제들은 거룩함을 입는 자입니다.

거룩케 하는 것은 곧 구원과 같은 것입니다.

요셉 식으로 말하면 형제들에게 양식을 주어서 기근으로부터 살려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요셉을 애굽으로 내려 보낸 것은 장차 임할 기근으로부터 그 형제들을 살려내기 위함입니다.

요셉에 애굽으로 팔려 갈 때는 기근이 올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요셉이 애굽의 총리가 되어서 양식으로 그 형제들을 기근 속에서 살려 낼 것이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하였습니다.

 

이 모든 것들은 하나님의 계획 속에만 존재하였던 것입니다.

그 계획이 정한 때에 맞추어서 전개가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계획을 통해서 일어나는 일을 언약이라고 합니다.

 

하나님은 언약의 하나님이십니다.

언약을 하시고 언약을 이루어 가시는 분이십니다.

언약은 하나님이 하나님 자신에게 하신 것입니다.

“나는 이렇게 일을 하겠다” 라는 하나님의 의지의 표명인 것입니다.

 

하나님은 말씀 하신대로 일을 하십니다.

하나님이 어떤 일을 하고자 계획을 세우면 반드시 이루어지고 맙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한다고 하면 반드시 하시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이를 언약 또는 약속이라고 합니다.

 

하나님이 언약을 세우실 때 “난 이렇게 할 거야” 라고 하나님에게 맹세를 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언약은 하나님이 세우시고 하나님이 이루어 가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언약을 위하여 만물을 창조 하셨습니다.

 

언약은 만물 안에서 이루십니다.

만물 속에서 언약을 이루시려면 하나님이 이 세상에 오셔야 합니다.

그래서 태초에 말씀으로 계시던 하나님이 육신을 입고 이 세상에 오신 것입니다.

 

그 분이 예수님입니다.

예수님이 세상에 오신 것은 아버지께서 하신 언약을 이루시기 위함입니다.

예수님은 아버지로부터 이 세상에 보내심을 입을 때부터 아버지의 뜻에 복종하는 종의 입장에 서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아버지가 정한 때에 맞추어서 일을 하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이루시는 언약이 시작에서부터 끝이 나는 모습으로 과거와 현재와 장차 이루어지는 것으로 때를 따라서 점진적으로 심층적으로 전개가 되는 것입니다.

 

마치 요셉이 형제들로부터 버림을 당하고 애굽으로 내려가서 13년 동안 하나님께서 작정한 시나리오대로 과정을 지나온 것과 같습니다.

이 과정을 하나님의 말씀이 응할 때까지 요셉을 착고에 채워서 단련을 하였다고 합니다.

 

요셉이 양식을 다 준비해 놓고는 그 형제들이 살아가는 땅에 기근을 보내서 양식이 끊어지게 하십니다.

그리고 야곱의 아들들이 양식을 찾아서 애굽으로 내려오게 하신 것입니다.

야곱의 아들들은 자기들이 버린(죽인) 형제로부터 양식을 얻어먹고 살아나게 된 것입니다.

 

이 모습이 먼 훗날 유대인들이 예수를 죽였는데 그 예수를 통해서 유대인들이 살아나는 일을 당하는 것으로 나타난 것입니다.

약 2천 년 전에 요셉과 그 형제들의 이야기가 2천 년 후에 예수님의 초림 때에는 예수님과 유대인들 이야기로 나타났고, 또 다시 2천 년 후인 예수님의 재림 때인 지금 이 시대에는 예수님과 우리의 구원 이야기로 나타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면 예수님께서 자기 백성 구원하는 이야기가 요셉의 시대부터 현재 우리의 시대까지 구약 2천 년과 신약 2천 년 도합 4천 년이라는 시간 속에서 이루어지고 있음을 볼 수가 있습니다.

시대마다 그 모습은 다르게 나타났지만 그 속에 담겨진 영적인 의미는 모두가 동일하게 나타난 것입니다.

 

요셉과 그 형제들의 이야기는 모두가 아브라함 언약에서 나온 것입니다.

아브라함 언약에 의하여 애굽으로 내려갔고,

아브라함 언약에 의하여 애굽에서 다시 나오게 됩니다.

 

구약의 아브라함 언약이 예수님의 새 언약 안에서 완성이 되는 것입니다.

언약은 하나입니다.

그 근원을 따라가면 창세전 언약이 나옵니다.

 

언약은 하나님께서 일하시는 시나리오입니다.

창세전 언약이 드라마처럼 전개가 되는 것입니다.

드라마의 시나리오가 순서적인 회차를 거듭하면서 내용이 점진적으로 전개가 되고 심층적으로 구체화 되면서 그려지게 되는 것입니다.

 

성경을 언약의 책이라고 하는 것은 하나님의 일하심을 기록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약속하신 것을 반드시 이루어내시고 지켜내십니다.

그래서 성경은 하나님을 정의하시기를 하나님은 거짓말을 하실 수가 없고 한번 한다고 약속을 하셨으면 반드시 그 일을 지켜내신다고 말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6장을 봅시다.

 

히 6:13-20절.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실 때에 가리켜 맹세할 자가 자기보다 더 큰 이가 없으므로 자기를 가리켜 맹세하여 14. 가라사대 내가 반드시 너를 복주고 복주며 너를 번성케 하고 번성케 하리라 하셨더니 15. 저가 이같이 오래 참아 약속을 받았느니라 16. 사람들은 자기보다 더 큰 자를 가리켜 맹세하나니 맹세는 저희 모든 다투는 일에 최후 확정이니라 17. 하나님은 약속을 기업으로 받는 자들에게 그 뜻이 변치 아니함을 충분히 나타내시려고 그 일에 맹세로 보증하셨나니 18. 이는 하나님이 거짓말을 하실 수 없는 이 두 가지 변치 못할 사실을 인하여 앞에 있는 소망을 얻으려고 피하여 가는 우리로 큰 안위를 받게 하려 하심이라 19. 우리가 이 소망이 있는 것은 영혼의 닻 같아서 튼튼하고 견고하여 휘장 안에 들어가나니 20. 그리로 앞서 가신 예수께서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아 영원히 대제사장이 되어 우리를 위하여 들어가셨느니라”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찾아 가서 약속을 하십니다.

그 약속의 확실성을 자기 이름을 걸고 맹세를 하셨다고 합니다.

하나님보다 더 크신 분이 없기 때문에 자기 이름을 걸고 맹세하신 것입니다.

이를 보증이라고 합니다.

 

하나님의 맹세가 어떻게 보증이 됩니까?

이는 하나님은 거짓말을 하실 수가 없고, 하시고자 하는 일은 반드시 이루고야 마시는 하나님의 속성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언약이 주어지면 이미 완성 된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왜냐하면 중간에 포기되는 일이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미리 정하신 자를 부르시고,

부르신 자를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자를 영화롭게 하시겠다고 약속을 하셨습니다.

 

롬 8:30절. “또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미리 정하심은 창세전 계획이고,

부르시고 의롭다하심은 현재 일하심이고,

영화롭게 하심은 장차 이루어질 결과입니다.

 

하나님께서 계획을 하시고,

하나님께서 그 일을 행하시고,

하나님께서 그 일을 반드시 성취하시고 마십니다.

 

렘 33:2절. “일을 행하는 여호와,

그것을 지어 성취하는 여호와,

그 이름을 여호와라 하는 자가 이같이 이르노라”

 

언약 속에는 하나님의 명예와 자존심이 담겨져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하신 언약은 반드시 이루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이 사실을 보여주기 위하여 선택된 사람이 아브라함이고 그 후손인 이스라엘인 것입니다.

그래서 구약 성경이 이스라엘 민족의 역사로 기록되어 있는 것입니다.

 

왜 성경을 이스라엘 민족의 역사로 기록하고 있을까요?

이는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하신 약속을 그 후손들인 이스라엘 민족을 통해서 이루어 가신 것을 증거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의 민족은 아브라함의 후손들입니다.

아브라함은 갈대아 우르 사람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찾아가셔서 내가 너를 복의 조상으로 만들어 주시겠다고 하십니다.

그리고 가나안으로 빼내시고 네 후손을 하늘의 별과 같이 셀 수 없이 많아 질 것이라고 약속을 하셨습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반드시 그렇게 해 주시겠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이 약속을 근거로 아브라함의 후손들을 다루어 가십니다.

야곱과 요셉도 이 약속에 근거하여서 다스림을 받고 있는 것입니다.

요셉이 애굽에 팔려간 것도 아브라함 언약을 위해서이고,

요셉이 애굽의 총리가 된 것도 아브라함에게 하신 언약을 위해서입니다.

 

그리고 온 세상에 기근이 들어서 야곱의 자식들이 애굽으로 내려가서 요셉에게 양식을 사러 간 것도 아브라함과 하신 언약을 이루시기 위해서입니다.

아브라함 언약이 그 후손들을 이방에 객으로 살면서 번성을 하다가 그 때가 차면 약속의 땅으로 돌아오는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러자면 가나안에 머물던 언약의 후손인 야곱의 가족들이 애굽으로 내려가야 합니다.

애굽으로 내려가자면 합당한 명분이 있어야 합니다.

그것이 기근을 통해서 양식을 얻고자 하는 것으로 나타난 것입니다.

이 일을 위하여 하나님께서 요셉을 먼저 보내고 양식을 준비케 하신 것입니다.

 

알다시피 야곱은 아버지 이삭으로부터 장자의 축복을 받은 후 집에서 쫓겨나게 됩니다.

벧엘 광야에서 돌을 베게하고 잠을 잘 때 하나님이 찾아오셔서 약속을 하십니다.

그래서 야곱에게 계시하시는 하나님은 “벧엘의 하나님”이라고 합니다.

 

이는 벧엘에서 하신 약속을 이루어 가시는 하나님이라는 뜻입니다.

야곱은 벧엘에서 하나님의 약속을 받고 하란에 가서 20년 동안 종살이 하면서 아내와 자식들을 낳고 세겜을 거쳐서 30년 만에 벧엘로 돌아오게 됩니다.

 

야곱은 30년 동안 자기 힘으로 살고자 하였으나 실패하였습니다.

벧엘로 돌아갈 때는 빈손으로 올라가게 되었습니다.

야곱이 30년 동안 배운 것은 언약의 후손들은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땅을 떠나서는 살 수 없다는 것을 깨달은 것입니다.

 

야곱은 30년 만에 벧엘로 돌아와서 가족들과 살아갔습니다.

그런데 뜻하지 않게 기근이 닥친 것입니다.

양식이 없어 주림을 당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소문에 의하면 애굽에는 양식이 있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습니다.

이에 야곱은 자식들을 애굽에 보내서 양식을 사오라고 합니다.

그런데 그 양식이 다 떨어졌습니다.

기근이 한 해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계속되는 것입니다.

그럼 양식을 더 사오던지 아니면 아주 양식이 있는 곳으로 이사를 가야 합니다.

 

기근이 임한 가나안에서 더 살아갈 수가 없습니다.

양식이 있는 애굽으로 내려가야지만 살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야곱은 식솔들을 이끌고 부득불 애굽으로 내려가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일련의 일들은 모두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하신 언약을 이루기 위한 하나의 수순이었던 것입니다.

 

시편 105편을 봅시다.

 

1. 여호와께 감사하며 그 이름을 불러 아뢰며 그 행사를 만민 중에 알게 할지어다

2. 그에게 노래하며 그를 찬양하며 그의 모든 기사를 말할지어다

3. 그 성호를 자랑하라 무릇 여호와를 구하는 자는 마음이 즐거울지로다

4. 여호와와 그 능력을 구할지어다 그 얼굴을 항상 구할지어다

5. 그 종 아브라함의 후손 곧 택하신 야곱의 자손 너희는

6. 그의 행하신 기사와 그 이적과 그 입의 판단을 기억할지어다

7. 그는 여호와 우리 하나님이시라 그의 판단이 온 땅에 있도다

8. 그는 그 언약 곧 천대에 명하신 말씀을 영원히 기억하셨으니

9. 이것은 아브라함에게 하신 언약이며 이삭에게 하신 맹세며

10. 야곱에게 세우신 율례 곧 이스라엘에게 하신 영영한 언약이라

11. 이르시기를 내가 가나안 땅을 네게 주어 너희 기업의 지경이 되게 하리라 하셨도다

12. 때에 저희 인수가 적어 매우 영성하며 그 땅에 객이 되어

13. 이 족속에게서 저 족속에게로, 이 나라에서 다른 민족에게로 유리하였도다

14. 사람이 그들을 해하기를 용납지 아니하시고 그들의 연고로 열왕을 꾸짖어

15. 이르시기를 나의 기름 부은 자를 만지지 말며 나의 선지자를 상하지 말라 하셨도다

16. 그가 또 기근을 불러 그 땅에 임하게 하여 그 의뢰하는 양식을 다 끊으셨도다

17. 한 사람을 앞서 보내셨음이여 요셉이 종으로 팔렸도다

18. 그 발이 착고에 상하며 그 몸이 쇠사슬에 매였으니

19. 곧 여호와의 말씀이 응할 때까지라 그 말씀이 저를 단련하였도다

20. 왕이 사람을 보내어 저를 방석함이여 열방의 통치자가 저로 자유케 하였도다

21. 저로 그 집의 주관자를 삼아 그 모든 소유를 관리케 하고

22. 임의로 백관을 제어하며 지혜로 장로들을 교훈하게 하였도다

23. 이에 이스라엘이 애굽에 들어감이여 야곱이 함 땅에 객이 되었도다

24. 여호와께서 그 백성을 크게 번성케 하사 그들의 대적보다 강하게 하셨으며

25. 또 저희 마음을 변하여 그 백성을 미워하게 하시며 그 종들에게 교활히 행하게 하셨도다

26. 또 그 종 모세와 그 택하신 아론을 보내시니

27. 저희가 그 백성 중에 여호와의 표징을 보이고 함 땅에서 기사를 행하였도다

28. 여호와께서 흑암을 보내사 어둡게 하시니 그 말씀을 어기지 아니하였도다

29. 저희 물을 변하여 피가 되게 하사 저희 물고기를 죽이셨도다

30. 그 땅에 개구리가 번성하여 왕의 궁실에도 있었도다

31. 여호와께서 말씀 하신즉 파리떼가 오며 저희 사경에 이가 생겼도다

32. 비 대신 우박을 내리시며 저희 땅에 화염을 내리셨도다

33. 저희 포도나무와 무화과나무를 치시며 저희 사경의 나무를 찍으셨도다

34. 여호와께서 말씀하신즉 황충과 무수한 메뚜기가 이르러

35. 저희 땅에 모든 채소를 먹으며 그 밭에 열매를 먹었도다

36. 여호와께서 또 저희 땅의 모든 장자를 치시니 곧 저희 모든 기력의 시작이로다

37. 그들을 인도하여 은금을 가지고 나오게 하시니 그 지파 중에 약한 자가 하나도 없었도다

38. 그들의 떠날 때에 애굽이 기뻐하였으니 저희가 그들을 두려워함이로다

39. 여호와께서 구름을 펴사 덮개를 삼으시고 밤에 불로 밝히셨으며

40. 그들이 구한즉 메추라기로 오게 하시며 또 하늘 양식으로 그들을 만족케 하셨도다

41. 반석을 가르신즉 물이 흘러나서 마른 땅에 강 같이 흘렀으니

42. 이는 그 거룩한 말씀과 그 종 아브라함을 기억하셨음이로다

43. 그 백성으로 즐거이 나오게 하시며 그 택한 자로 노래하며 나오게 하시고

44. 열방의 땅을 저희에게 주시며 민족들의 수고한 것을 소유로 취하게 하셨으니

45. 이는 저희로 그 율례를 지키며 그 법을 좇게 하려 하심이로다 할렐루야

 

시편 105편은 아브라함 언약과 출애굽 후 광야에서 살아간 이스라엘의 역사 전체를 축약하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으로부터 시작 된 언약이 애굽에서 정한 때까지 이루어지다가 출애굽 하여서 광야로 나아와서 하나님께 예배하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약속을 하실 때는 그 후손이 한 명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네 후손이 하늘의 별과 같이 셀 수 없이 많아질 것이라고 합니다.

그러자면 큰 나라가 필요합니다.

 

그 당시의 큰 나라는 애굽입니다.

애굽에서 큰 나라가 되어서 돌아오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자면 애굽에서 번성하는 토양이 필요한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한 사람을 먼저 애굽으로 보냅니다.

그가 요셉입니다.

요셉이 먼저 가서 야곱의 식구들이 애굽으로 내려와서 잘 정착하고 번성하는 환경을 만드는 일을 한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꿈을 통해서 요셉을 애굽의 총리의 자리에 오르게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을 보세요.

야곱의 가족들을 애굽으로 보내기 전에 먼저 어떻게 합니까?

요셉을 먼저 보내지요,

그리고 난 후 기근을 보냅니다.

기근이 오자 야곱의 가족이 양식 때문에 애굽으로 내려가게 된 것입니다.

 

야곱은 애굽에 내려가지 않으려고 하였어요.

그러자 하나님이 꿈에 나타나서 애굽으로 내려가라고 합니다.

애굽에 내려가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아브라함의 언약을 이루자면 애굽에 내려가서 정한 때까지 번성하는 일을 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야곱의 후손들이 애굽으로 내려가서 요셉에 의하여 기근에서 살아나는 이야기가 430년 후에는 모세에 의하여 출애굽 하는 것으로 나타납니다.

기근 때문에 애굽으로 내려간 것이 430년 후에는 출애굽 하는 것으로 나타납니다.

이 모두가 예수그리스도에 의하여 구원 받는 것을 예표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 온 것도 창세전 언약을 이루기 위함이고,

우리가 이 세상을 떠나는 것도 창세전 언약을 이루는 것입니다.

어떨 때는 애굽으로 내려가는 것이 언약을 이루는 것이고,

어떨 때는 애굽에서 나오는 것이 언약을 이루는 것입니다.

 

구원이란? 죄와 사망으로부터 해방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먼저 죄 아래 가두어짐이 있고 나중에 죄에서 건져냄을 당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를 야곱의 가족 70명이 애굽에 내려가서 번성하다가 430년 후 큰 민족이 되어서 출애굽 하는 것으로 나타난 것입니다.

 

이 모습이 바로 창세전 언약의 내용인 것입니다.

창세전 언약을 보시면 죽음에서 생명으로 건져내는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먼저 죄 아래 가두어짐이 있고 나중에 예수그리스도의 피로 구속 받아서 하나님의 아들들이 되는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은 역설적으로 일하십니다.

살려주기 위해서 죽음에 가두어두신 것입니다.

이는 죽음의 바탕에서 생명을 낳는 창조의 일을 하신다는 뜻입니다.

 

이를 창조 기사로 말해주고 있습니다.

창조를 보면 저녁에서 아침으로 전개가 됩니다.

저녁은 어둠으로서 죽음을 상징하고 아침은 낮으로서 생명을 상징합니다.

이는 죄와 사망에서 의와 생명으로 나아옴을 의미합니다.

 

창조란? 무에서 유가 나오는 것입니다.

없음에서 있음으로 나오는 것입니다.

무(無), 혹은 없음이라는 말은 존재론적으로 없다는 뜻이 아니고 죽어 있다는 뜻입니다.

죄 아래 가두어져 있다는 뜻입니다.

 

죄 아래 가두어져 있는 자는 스스로 죄에서 나올 수가 없습니다.

누군가가 빼내 주어야 합니다.

빼내 주시는 분은 죄 바깥에 있는 분이라야 합니다.

이는 구원자는 이 세상 바깥에서 오셔야 한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창세기 1장에서 창조의 모습이 하나님의 말씀이 흑암 속에서 빛을 불러내는 것으로 나타난 것입니다.

하나님이 가라사대 라고 하시니까 빛이 나온 것입니다.

하나님이 빛을 불러내신 것입니다.

 

이것은 두 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일차적(一次的)으로, 예수그리스도의 구속사로 보면 참 빛이신 예수님이 죄와 사망의 권세 아래 있는 이 세상에 오신 것을 뜻합니다.

이차적(二次的)으로, 성도의 구원으로 보면 말씀이신 하나님인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셔서 빛의 아들들인 자기 백성들을 세상에서 교회로 불러내신 것을 뜻합니다.

 

그래서 구원이 저녁에서 아침으로 나아가는 것으로 진행이 되는 것입니다.

 

죽음에서 생명으로,

타락에서 회복으로

죄 아래서 의와 거룩으로,

법 아래서 은혜 아래로 옮겨지는 것으로 주어지는 것입니다.

언약적으로 말하면 옛 언약에서 새 언약으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살리기 위해서 죽이고,

빼내기 위해서 가두고,

양식을 주기 위해서 기근으로 양식을 끊어버리는 것입니다.

애굽에서 건져내기 위해서 애굽으로 내려가게 하신 것입니다.

역설적이지요.

 

왜 이렇게 일을 할까요?

이는 구원 속에는 오롯이 하나님의 은혜성만 담기게 하고자 하심입니다.

죽은 자는 스스로 살아 날 수가 없습니다.

그러니까 죽은 자가 살아났다는 것은 살려주신 분의 공로만이 오롯이 담겨지게 되는 것입니다.

 

구원이 되려면 먼저 버려짐이 있어야 합니다.

이건 필수 코스입니다.

구원자도 이 코스를 거쳐서 구원자의 위치에 앉게 되는 것입니다.

이걸 체휼이라고 합니다.

 

히 4:15절.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 연약함을 체휼하지 아니하는 자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한결같이 시험을 받은 자로되 죄는 없으시니라”

 

체휼이란? 직접 경험을 하셨다는 뜻입니다.

이는 죄인의 아픔을 아신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죄인의 아픔을 아시기 때문에 죄인을 위하여 구원 하실 수가 있고 우리의 연약함을 위하여 간구하실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도 죽음에 버려짐을 당하였다가 살아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예수님은 십자가에 죽이시고 살려내신 후에 만유의 주가 되게 하셨습니다.

 

요셉도 마찬가지입니다.

주가 되는 과정을 겪게 된 것입니다.

요셉이 형제들로부터 버림을 당한 것은 죽임당한 것과 같습니다.

이것은 예수님이 자기 백성들에게 죽임당한 것과 같은 것입니다.

요셉이 애굽에서 총리로 화려하게 복귀를 하는 것은 예수님께서 십자가게 죽으셨다가 부활하시어서 만유의 주가 되신 그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요셉이 자기 가족들을 기근에서 살려내는 이야기는 단순하게 굶주린 식구들을 배불리게 하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자기 백성들을 죄와 사망에서 건져내는 이야기를 예표하고 있는 것입니다.

 

구원은 구원주의 운명에 동참하는 것으로 주어지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죽으셨다가 살아나셔서 구원주가 되셨습니다.

그래서 성도들도 죽었다가 살아나는 과정을 겪게 되는 것입니다.

 

요셉은 예수님을 예표한다고 하였습니다.

그럼 요셉의 형제들도 요셉이 겪은 과정을 통과하여야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요셉의 형제들을 죽이는 일을 합니다.

그것이 양식을 사러온 형제들을 감옥에 사흘 동안 가두는 것으로 보여 주었습니다.

사흘 동안 감옥에 가두었다가 빼내고서 양식을 공짜로 주는 것입니다.

 

여기에 베냐민은 빠졌습니다.

베냐민은 야곱이 보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를 요셉은 알고 베냐민을 데리고 오라고 합니다.

그래서 요셉은 베냐민을 데리고 올 때까지 시므온을 볼모로 잡아 놓습니다.

그리고 나머지 형제들은 아비 집으로 보냅니다.

 

그리고 한참이 지났습니다.

처음 사온 양식이 다 떨어지고 맙니다.

그러자 야곱이 자식들에게 빨리 애굽으로 가서 양식을 사오라고 합니다.

하지만 자식들이 꾸물거립니다.

야곱이 뭘 꾸물거리느냐고 화를 냅니다.

 

그러자 자식들이 아비 야곱에게 자기들만 가서는 양식을 구할 수가 없다고 합니다.

그것은 애굽의 총리가 베냐민을 데리고 와야지만 양식을 준다고 하였기 때문입니다.

베냐민을 데리고 가는 조건으로 시므온이 대표로 볼모로 잡혀 있고 자신들이 돌아온 것이라고 아비에게 알려줍니다.

 

이 말을 듣고 야곱이 방성대곡합니다.

이는 베냐민을 잃을까봐 입니다.

베냐민은 요셉을 대신 하는 아들로 두고 있는데 이 베냐민마저 잃으면 야곱을 살 수가 없다고 하면서 그건 안 된다고 합니다.

 

그러자 야곱의 아들들이 그럼 우리도 안 가겠다고 버팁니다.

야곱은 왜 동생이 있다는 말을 해 가지고 이런 일을 만들었느냐고 책망합니다.

이에 야곱의 아들들이 애굽의 총리가 마치 우리 집안을 다 아는 것처럼 세세하게 물어보는데 그럼 어찌하느냐고 하면서 소상하게 말했다고 합니다.

 

상황을 보니까 베냐민을 지키다가는 모든 식구들이 다 굶어죽게 생겼습니다.

그래서 야곱은 애굽의 총리 마음을 풀어줄 유화책으로 가나안 땅의 소산물을 선물로 보냅니다.

그리고 베냐민과 함께 처음 곡식 값과 새로 살 곡식 값을 갑절로 해서 보냅니다.

 

야곱은 왜 베냐민을 다른 자식들보다 더 사랑할까요?

야곱이 베냐민을 아끼는 것은 라헬의 소생이기 때문입니다.

야곱에게는 여러 아내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 중에서 라헬을 가장 사랑했습니다.

다른 아내들은 자식을 잘 낳았는데 라헬은 자식을 낳지 못해서 엄청 아파했습니다.

그러다가 합환채를 먹고 난 후에 요셉을 낳고 그 다음에 베냐민을 낳은 것입니다.

 

특히나 라헬은 베냐민을 낳고 죽었습니다.

그러니 야곱에게 요셉과 베냐민은 보통 자식이 아닌 것입니다.

정실부인의 자식으로 가문을 이어갈 자식인 것입니다.

그런데 요셉은 일찍 잃어버렸고 베냐민만 남은 것입니다.

 

베냐민마저 잃으면 정상적인 가문의 법통이 사라지게 생긴 것입니다.

그래서 처음 양식을 사러 애굽으로 내려 갈 때는 야곱이 베냐민은 보내지 않았던 것입니다.

혹시라도 베냐민마저 잃게 될까봐서입니다.

이것은 야곱이 베냐민을 과거 요셉처럼 다른 자식들과는 다르게 대우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는 대목입니다.

 

여기서 잠깐 유대인들의 후계를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유대인들에게는 성(姓)이 없습니다.

성이 없다는 것은 부계를 따르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유대인들은 모계(母系) 사회입니다.

 

우리나라는 부계 사회로서 아버지 성을 따릅니다.

그래서 어머니가 누구인지 상관없이 아버지 씨를 가지면 아들로 인정을 받는 것입니다.

아버지에게는 누가 낳았느냐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자기 씨이냐 아니냐만 중요합니다.

그래서 조선시대에는 부인이 아이를 낳지 못하면 대신 아이를 낳아줄 씨받이가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유대인은 씨를 가지고 따지지 않습니다.

누구 씨이냐가 중요하지 않고 어머니가 누구이냐가 중요합니다.

유대인들은 아버지가 유대인이고 어머니가 이방인이면 그 자식은 이방인으로 간주합니다.

반대로 어머니가 유대인이고 아버지가 이방인이면 그 자식은 유대인으로 인정해 줍니다.

이처럼 유대인들은 어머니가 누구냐에 따라서 유대인과 비유대인으로 결정이 되는 것입니다.

 

야곱은 여러 아내를 통해서 자식을 낳았습니다.

그러나 라헬의 자식만이 적장자로 인정했습니다.

그래서 요셉에게 채색옷을 입혀 주었고 자신의 약전에 요셉을 등재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이 땅에서 하나님의 백성들이 누구인지를 보여주고자 하는 시청각 교제인 것입니다.

 

하나님은 온 세상의 하나님이십니다.

악인과 선인에게 골고루 햇빛도 주시고 비도 주십니다.

광의적인 의미에서는 신자이든 불신자이든 다 하나님의 백성인 것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말은 모두가 하나님께서 창조한 자들이라는 의미에서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건 마치 아브라함에게 이스마엘이나 이삭이나 다 아브라함의 자식인 것과 같습니다.

야곱이 네 아내를 통해서 낳은 12 아들이 다 야곱의 아들인 것과 같습니다.

 

그러나 가문을 이를 아들은 정실부인으로 낳아진 아들이라야 합니다.

아브라함에게 정실부인은 사라였습니다.

그래서 사라의 몸에서 난 이삭이 아브라함의 가문을 이를 자식인 것입니다.

 

야곱도 마찬가지입니다.

야곱이 사랑한 아내는 라헬입니다.

라헬이 정실부인입니다.

그래서 라헬에게서 난 자식이 야곱의 가문을 이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이처럼 아내가 누구인지에 따라서 적장자(嫡長子)인지 서자(庶子)인지가 구분이 됩니다.

왜냐하면 자식은 어머니 품에서 자라기 때문입니다.

어머니와 자식은 탯줄로 하나가 되어 있습니다.

뱃속에서도 하나였고 낳아져서도 자식은 어머니의 젖을 먹고 자랍니다.

어머니가 해 주신 음식을 먹고 살아갑니다.

 

어머니는 아버지의 사랑을 자식에서 심는 일을 합니다.

그러자면 어머니는 아버지의 사랑을 가장 많이 받는 사람이어야 하는 것입니다.

아버지는 사랑하는 아내에게 집안의 모든 살림을 맡깁니다.

 

곡간의 열쇠를 사랑하는 아내에게 맡기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버지로부터 가장 사랑받는 어머니로부터 태어나는 자식이 아버지의 대를 이를 적장자가 되는 것입니다.

 

이걸 하나님의 일하심으로 이해해 보세요.

그럼 답이 나옵니다.

 

지금부터 중요한 이야기를 하니까 잘 이해하고 들으시기 바랍니다.

영적인 이야기이니까 육적으로 해석하지 마시길 바랍니다.

육적으로 들으면 오해 할 수가 있으니까 다시 한 번 당부를 드립니다.

 

하나님은 만유를 지으신 창조주이십니다.

창조주는 아버지와 같습니다.

모든 피조물에게 생명을 주시기 때문입니다.

생명을 주시는 입장에서 보면 하나님은 아버지가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씨를 주시는 아버지입니다.

이러한 의미에서 세상의 수많은 종교들은 어머니가 되는 것입니다.

세상에는 수많은 종교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종교의 근원을 찾아가면 모두가 하나님이 나옵니다.

 

이방 종교에서는 신을 찾는 방식은 달라도 그 근본은 같다고 합니다.

구원 받는 방법이 각자 다를 뿐 그 근원은 같기 때문에 서로의 종교를 인정하고 배타하지 말자고 합니다.

그래서 세상의 종교는 서로 교류하고 소통이 되는 것입니다.

 

이걸 예전에 감리교 신학교 총장을 지내신 변00이라는 분은 구원을 산 정상에 올라가는 것으로 비유하여서 모든 종교는 그 근원이 같다고 가르쳤습니다.

산에 올라가는 길은 동서남북으로 있다는 것입니다.

어느 길로 올라가든지 정상으로 가면 된다는 것입니다.

 

모든 종교는 구원을 궁극적으로 두고 있으니까,

어느 길로 가든지 산 정상에 올라가면 되는 것처럼 어느 신을 믿든지 구원을 받으면 되지 않느냐 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내가 올라가는 길만이 옳은 길이고 다른 사람이 올라가는 길은 틀렸다고 배척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이걸 종교다원주의라고 합니다.

세상의 모든 종교는 이 사상을 받아 들여서 서로 간에 교류를 합니다.

이런 사상이 이 시대 종교 통합을 일으키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성경은 이를 허락하지 않습니다.

 

행 4:12절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 하였더라”

 

하나님께서 구원 얻을 이름을 예수 이외 주신 적이 없다고 합니다.

하나님이 예수 이외는 구원이 없다고 천명하신 것입니다.

이는 하나님이 예수를 구원자로 보내셨다는 뜻입니다.

 

하나님께 나아가는 길은 오직 예수라는 길 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은 예수로 낳아진 자만이 아들로 인정을 해 주신다고 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나로 말미암지 않고서는 아버지께로 갈 자가 없다고 하신 것입니다.

 

어머니란? 자식을 낳는 분이라고 했습니다.

다른 말로 구원을 해 주시는 분을 말합니다.

이러면 예수님은 어머니가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물과 피를 쏟으시고 하나님의 아들들을 낳았기 때문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예수님을 어머니라고 하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우리의 어머니는 하늘에 있는 예루살렘이라고 하였어요.

하늘 예루살렘은 하늘에 있는 성전을 말합니다.

예수님이 성전이에요.

그러니까 사도 바울이 말하는 하늘 예루살렘은 예수님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하늘 예루살렘은 예수님으로부터 낳아진 자들만이 갈 수가 있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사랑을 가장 많이 받은 분이에요.

마치 야곱의 사랑을 가장 많이 받은 라헬과 같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으로부터 낳아진 자들이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을 받을 적장자들인 것입니다.

 

하나님은 예수님에게 하나님 나라를 맡기셨습니다.

이건 하나님 나라의 곡간을 맡긴 것과 같은 것입니다.

예수님이 하나님 나라를 다스려요.

예수님으로부터 낳아진 자들만이 하나님을 올바로 알 수가 있어요.

왜냐하면 하나님의 사랑을 가장 많이 받은 예수님의 젖을 먹고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통하지 않고서는 하나님을 알 수가 없어요.

예수님은 십자가로 낳아진 자기 백성들에게 하나님에 대하여 알려주셨어요.

예수님으로부터 알아진 하나님만이 참 하나님이신 것입니다.

 

세상에는 수많은 신들이 있어요.

그것은 모두가 첩과 같아요.

하나님의 사랑이 없어요.

그러므로 세상 종교로 낳아진 자들은 유업을 받을 수 없는 서자들인 것입니다.

서자들은 아버지 집에서 살 수가 없어요.

 

적장자들은 하늘에서 살고,

서자들이 살아가는 곳은 땅이에요.

예수로 낳아진 적장자들이 살아가는 곳을 천국이라고 하고,

세상 종교로 낳아진 서자들이 살아가는 곳을 지옥이라고 합니다.

 

이처럼 아들의 신분은 어머니가 누구냐에 따라서 달라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예수님으로부터 낳아진 자들만이 아들로 인정해 주십니다.

그것은 창세전 언약을 그렇게 하셨기 때문입니다.

 

창세전 언약을 보면 예수그리스도의 피로 죄사함을 받은 자들을 하나님의 아들들이라고 하였습니다.

예수그리스도로 낳아진 하나님의 아들들이 그의 나라에서 하나님과 영원토록 살면서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미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하나님께서 이 세상에 예수라는 이름 이외는 구원 얻을 이름을 주신 적이 없다고 하는 것입니다.

예수로 낳아진 자들만이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물려받게 되는 것입니다.

이처럼 어머니가 그렇게 중요해요.

 

야곱이 베냐민을 품에 끼고 사는 것도 그의 어머니가 라헬이기 때문입니다.

얼마나 라헬을 사랑했으면 그의 아들인 요셉에게 채색 옷을 입혀 주었겠어요.

채색 옷은 적장자만 입는 옷이에요.

 

옛날 조선 시대 양반집 도련님만 입는 색동저고리 옷이에요.

서자들은 무명 옷을 입었어요.

야곱의 다른 아들들은 어머니가 다르기 때문에 무명저고리를 입힌 것입니다.

 

하나님은 어느 어미에게서 난 자식인가를 가지고 차별을 하십니다.

이게 유대인들 집안에 그대로 담겨져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어머니에 따라서 유대인과 이방인으로 갈라지게 되는 것입니다.

 

요셉이 베냐민을 챙기는 것도 한 어머니로부터 나왔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베냐민을 데리고 오지 않으면 양식을 주지 않겠다고 한 것입니다.

이는 베냐민을 자기 안으로 끌어당기고자 함입니다.

 

구원은 구원자의 운명에 동참하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요셉은 구원자이고 그 형제들은 구원을 받아야 하는 자들입니다.

구원자와 구원을 받을 자는 한 형제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한 어머니로부터 나온 것은 한 몸이라는 뜻입니다.

베냐민과 요셉은 한 몸이에요.

그럼 베냐민이 형제들에게 요셉의 위치에 서 있는 것입니다.

 

요셉이 형제들에게 양식을 주는 위치에 있습니다.

그럼 베냐민도 양식을 주는 위치에 서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요셉이 베냐민을 데리고 오지 않으면 양식을 주지 않겠다고 하는 것입니다.

 

야곱의 아들들이 이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베냐민을 데리고 가지 않으면 양식을 얻을 수 없다고 아비에게 말한 것입니다.

유다가 야곱에게 베냐민을 보내야 우리와 아버지와 우리 어린 것들이 다 살고 죽지 않게 된다고 합니다.

 

8절. “유다가 아비 이스라엘에게 이르되 저 아이를 나와 함께 보내시면 우리가 곧 가리니 그러면 우리와 아버지와 우리 어린 것들이 다 살고 죽지 아니 하리이다”

 

이렇게 되면 베냐민이 형제들에게 양식을 주는 자가 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베냐민을 데리고 가지 않으면 양식을 얻을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양식을 얻을 수 있는 길을 오직 하나 베냐민을 통해서입니다.

 

이렇게 되면 베냐민이 형제들에게 양식을 공급하는 자가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요셉의 모습과 같은 것입니다.

결국 라헬의 자식들이 다른 어미의 자식들을 살려내는 것입니다.

 

이걸 예수님과 이방인들로 이해하면 됩니다.

우리는 세상 신들을 섬기고 살던 첩의 자식들이었습니다.

이를 에베소서에서는 우리는 본질상 진노의 자식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에 의해서 낳아진 자들을 통해서 복음을 듣고 구원을 받았습니다.

 

예수님에 의하여 낳아진 자들이 대표적으로 12 사도들입니다.

교회는 12 사도들의 신앙고백 위에 세워졌습니다.

그래서 교회를 일컬어 사도들의 터 위에 세워졌다고 합니다.

12 사도가 마치 베냐민과 같은 것입니다.

 

12 사도를 낳은 분이 누구인가요?

예수님입니다.

예수님으로부터 낳아진 12 사도들로부터 이방인들이 복음을 듣고 구원을 받게 됩니다.

이건 마치 라헬의 자식인 요셉과 베냐민이 첩의 아들들에게 양식을 주어서 살게 하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요셉과 베냐민을 통해서 야곱의 가족들이 기근에서 살아나는 것은 신약적인 의미에서 복음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요셉과 베냐민을 통해서 가족들이 기근에서 살아나는 것을 통해서 신약에 일어날 일을 미리보고 있는 것입니다.

 

그럼 요셉과 그 형제들이 두 번째 만남을 살펴봅시다.

 

두 번째 만남에서는 처음 만날 때와 다름을 볼 수가 있습니다.

처음 만날 때는 요셉이 자기 정체를 밝히지 않았습니다.

형제들은 요셉을 몰라보았습니다.

 

그런데 두 번째 만날 때는 자기 정체를 밝히고 형제들도 요셉을 알아봅니다.

왜 처음에는 몰라보고 두 번째는 알아보게 할까요?

이 속에 비밀이 있습니다.

 

요셉과 베냐민은 한 어미로부터 난 형제입니다.

이는 하나 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요셉이 자기가 점치는 은 잔을 베냐민의 자루에 넣어준 것입니다.

이게 비밀이에요.

 

요셉이 다른 형제들의 자루에는 곡식만 넣었어요.

그런데 베냐민의 곡식자루에는 은 잔을 집어넣습니다.

그 은잔은 요셉이 점 칠 때 쓰는 것입니다.

 

요셉이 점쟁이인가요?

아니에요

점을 친다는 것은 신탁을 받는다는 뜻입니다.

즉 하나님으로부터 계시를 받는다는 뜻입니다.

 

요셉이 받은 계시가 뭔가요?

양식을 준비해서 백성들을 살리는 것입니다.

그 계시를 지금 베냐민에게 넘기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처음 양식은 요셉이 주는 것이지만 두 번째 양식은 베냐민 때문에 주어지는 것이기 때문에 베냐민이 주는 것이 되는 것입니다.

 

요셉이 계시를 받는 은 잔을 베냐민에게 준 것은 요셉과 베냐민은 계시를 받는 자라는 뜻입니다.

요셉과 베냐민은 한 몸과 같아요.

요셉은 먼저 나온 자이고 베냐민은 나중에 나온 자입니다.

 

이를 예수님으로 비유해 보세요.

그럼 먼저 나온 요셉은 육체로 오신 예수님을 상징하고,

나중에 나온 베냐민은 성령으로 오신 예수님을 상징하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자기가 가면 다른 보혜사를 보내주신다고 하였습니다.

보혜사가 오면 예수님을 증거한다고 하였습니다.

육체로 오신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아버지의 뜻을 전해 주었습니다.

그리고 보혜사로 오신 성령은 예수님의 것을 가지고 알리는 일을 하십니다.

이것은 마치 베냐민이 요셉의 양식을 가지고 자기 형제들을 살리는 일을 하는 것과 같습니다.

 

양식은 요셉이 준비하였습니다.

처음 양식은 요셉이 주었습니다.

그런데 두 번째 양식은 베냐민이 줍니다.

베냐민 때문에 양식을 얻을 수 있었기 때문에 두 번째 양식은 베냐민이 주는 것이라고 합니다.

영적으로 보면 베냐민이 요셉이 준비한 양식을 형제들에게 나누어준 것입니다.

이것은 요셉이 자기의 은잔을 베냐민에게 주어서 하나님의 계시를 공유하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육체로 오신 예수님과 예수님이 가시고 난 후에 오시는 다른 보혜사인 성령은 한 하나님으로서 마치 형제와 같은 것입니다.

예수님과 성령은 요셉과 베냐민처럼 한 어미에서 난 형제와 같은 것입니다.

그래서 요셉이 자기가 점 칠 때 쓰는 은잔을 베냐민에게 넘겨준 것입니다.

 

잘 보시면 베냐민이 오자 요셉은 형제들을 자기 집으로 초대합니다.

그리고 식탁을 베풉니다.

식탁을 베푼다는 것은 한 식구라는 뜻입니다.

형제들이 누구 때문에 요셉의 식탁에 초대를 받게 되었는가요?

베냐민 때문인 것입니다.

 

이건 마치 성령이 오셔서 우리로 하여금 예수그리스도의 식탁에 초대하는 것과 같습니다.

예수그리스도의 식탁이란? 예수님의 살과 피로 세운 새 언약입니다.

예수님이 제자들을 만찬에 초대를 하였어요.

예수님이 최후의 만찬 때 제자들에게 떡과 포도주를 주시지요.

먹고 마시라고 합니다.

 

떡을 자신의 살이라고 하고 포도주는 피라고 합니다.

이걸 새 언약이라고 합니다.

새 언약은 성령이 와야 효력이 생깁니다.

성령이 우리로 하여금 예수그리스도의 피로 맺은 새 언약으로 초대하시는 것입니다.

성령께서 우리 안에서 새 언약이 믿어지게 하시고 새 언약 안에서 살아가게 하시는 것입니다.

 

성령이 오심으로서 비로소 예수그리스도가 믿어지게 되고 예수그리스도의 살과 피로 맺은 새 언약을 맛보게 된 것입니다.

새 언약을 믿는 것이 요셉의 식탁에 초대 받는 것과도 같은 것입니다.

 

구원이 뭐냐?

예수님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시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베푸신 새 언약의 식탁은 용서의 식탁입니다.

 

요셉이 베푼 식탁도 용서의 식탁입니다.

요셉은 형제들을 집으로 초대하고 식탁을 베풀고서는 자신을 밝힙니다.

그리고는 그들의 잘못을 용서해 줍니다.

 

요셉이 그러는 거예요

형님들이 나를 애굽에 팔았지만 그것은 하나님께서 나를 이곳에 보낸 것이라고 합니다.

형님들을 기근 속에서 살려내시려고 나를 미리 보낸 것이라고 합니다.

 

내가 바로 왕의 꿈을 해석하고 양식을 준비하고 애굽의 총리가 된 것도 다 하나님께서 하신 일이라고 합니다.

모두가 하나님의 계획에 의하여 발생된 일이니까 지난날의 잘못으로 인하여 해를 당할까봐 두려워하지 말라고 합니다.

 

요셉이 형제들에게 하는 이러한 모든 일은 장차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들을 구원하는 일을 담아 놓은 것입니다.

구원을 받아야 하는 자들을 먼저 죄 아래 가두고 나중에 용서 받게 되는 수순으로 일을 하시는 것입니다.

 

구원을 하자면 먼저 죄 아래 가두어짐이 있어야 합니다.

구원을 하고자 원수되는 일을 벌리시는 것입니다.

원수 되게 하여서 용서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요셉이 형제들을 죄 아래 가두는 일을 먼저 합니다.

그것이 처음 양식을 사러 왔을 때 돈을 전부 그들의 양식 자루 속에 넣어서 양식을 훔쳐가는 것으로 만들어 버린 것입니다.

 

요셉의 형제들은 집에 돌아와서는 자루 속에 돈이 있는 것을 보고서 두려워합니다.

사정이야 어찌 되었든 간에 양식을 공짜로 가지고 온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 사건에 결국에는 베냐민을 끝까지 데리고 가는 것으로 나타난 것입니다.

 

야곱은 베냐민을 끝까지 안 보내고자 하였어요.

그러자 형제들은 다시 양식을 사러 요셉에게 가자면 앞서 양식 값을 치르지 않고 온 것이 도적으로 누명을 쓰게 될 것이 자명하기 때문입니다.

 

만약에 처음 양식을 제대로 값을 치르고 사온 것이라고 한다면 베냐민을 안 데리고 가도 베냐민이 아파서 못 오게 되었다고 하던가 아니면 아버지가 병증이 심해서 간호를 해야 하기 때문에 데려 올 수가 없었다는 식으로 이런 저런 핑계를 대고 무마 할 수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죄 지은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젠 핑계 댈 수가 없습니다.

의도된 것이 아니지만 양식 값을 주지 않고 왔으니 훔쳐온 것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그래서 베냐민과 함께 가지 않는다고 한다면 우리도 못 가겠다고 시위를 한 것입니다.

야곱은 마지못해서 베냐민을 보낸 것입니다.

 

요셉이 베냐민을 데려 오라고 하였으니까

베냐민이라도 데리고 가면 요셉의 마음을 달랠 수가 있지 않겠느냐?

그럼 지난번에 가지고 온 양식은 값을 치루지 않고 온 것은 자기들의 고의가 아니고 실수로 이루어진 것이라고 하면서 그 때 양식 값을 이번에 가져다주면 이해 해 줄 것이 아니겠느냐?

요셉의 형제들은 별별 생각을 다 하면서 두려워하였던 것입니다.

 

이러한 내용은 요셉의 형제들이 두 번째 양식 사러 가서 요셉이 그 형제들을 요셉의 집으로 초대하자 즉시로 보인 반응을 보면 잘 나타나 있습니다.

요셉이 형제들을 집으로 초대하자 형제들은 지난번에 양식 값을 치루지 않은 것 때문에 자기들을 옥에 가두고 노예를 삼는 줄 알고 두려워합니다.

그래서 미리 이실 직고를 합니다.

 

우리가 지난번에 와서 양식 값을 다 드렸는데 어찌 된 영문이지는 몰라도 집에 가서 보니까 자기들의 돈이 그대로 자루에 있어서 깜짝 놀랐다고 합니다.

자초지종 일이야 어찌 되었든 간에 돈을 주지 않고 왔기 때문에 결국은 양식을 도적질해 온 것이 되니까 잘못했다고 하는 것입니다.

 

요셉의 처분만 기다리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요셉의 마음먹기에 따라서 양식은 고사하고 집에 돌아 갈 수도 없고 노예 생활을 하게 생겼어요.

그래서 형제들은 자신들의 잘못이 아니라고 해명하기에 바쁜 것입니다.

 

그러자 요셉은 뜻밖의 말을 합니다.

그것은 모두가 하나님께서 하신 일이라고 합니다.

이 말은 하나님께서 형제들을 요셉에게 용서를 받는 구조를 만들어 버린 것이라는 뜻입니다.

그러자 형제들은 일제히 무릎을 꿇고 요셉에게 절하면서 주라고 합니다.

 

이건 장차 예수님과 자기백성들 간의 관계를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구원이 뭐냐?

용서 받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용서가 되려면 잘못을 알아야 합니다.

잘못을 아는 자에게 용서가 주어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요셉의 형제들이 두 번째 양식을 구하러 가서 용서를 받고 요셉의 집으로 초대를 받고 요셉의 식탁에 함께 참예하여서 식물을 먹게 되는 일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이것은 성령이 오셔서 우리의 죄를 깨닫게 하시고 예수님으로부터 용서 받음을 알게 하고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을 복음으로 받아들이게 되는 것과 같습니다.

 

영적인 말이니 오해하지 마시고 들으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예수님은 세 번 만납니다.

처음은 육체로 오신 예수님을 만납니다.

그 다음은 성령으로 오신 예수님을 만납니다.

그리고 세 번째는 재림하시는 예수님을 만나게 됩니다.

 

처음 육체로 오신 예수님은, 우리가 십자가에 못박아 죽였습니다.

이 일로 인하여 우리는 죄 아래 가두어지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요셉의 형제들이 처음 양식을 구하러 왔다가 값을 지불하지 않고 간 것과 같습니다.

 

두 번째 성령으로 오신 예수님은, 우리 안에서 죄를 깨닫게 하시고 예수님의 십자가의 대속 사건이 믿어지게 하십니다.

그리하여 입술로 주라고 고백하게 됩니다.

이것은 요셉의 형제들이 두 번째 양식을 사려고 내려갔다가 요셉으로부터 용서를 받고 절을 하면서 주라고 고백하는 것과 같습니다.

 

세 번째 예수님은 재림하면서 만나게 됩니다.

이 때는 예수님과 함께 천년왕국에서 살아가게 됩니다.

이것은 요셉의 형제들이 가나안에 있던 모든 식구들을 데리고 애굽으로 이주하여서 세 번째 요셉과 만나서 애굽에서 살아가는 것과도 같은 것입니다.

 

이처럼 요셉과 그 형제들의 만남 속에서 복음의 비밀이 담겨져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요셉의 실상이신 예수그리스도를 믿고 있습니다.

예수그리스도 안에서 요셉과 그 형제들의 이야기를 보면 곧 예수님과 우리 이야기로 보여지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 얻을 줄을 상고하거니와 모든 성경은 나에 대하여 기록하고 있느니라”

그래서 우리는 요셉의 이야기를 예수그리스도 이야기로 듣게 되는 것입니다.

모든 성경은 퍼즐처럼 흩어져 있지만 그 퍼즐을 맞추면 예수그리스도가 보여지는 것입니다.

 

부디 우리의 눈에 예수그리스도만 보여지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기도합시다.

아버지 하나님 감사합니다. 하나님의 큰 은혜가 우리에게 넘침바 되어서 하나님의 그 사랑을 하나님의 그 은혜와 사랑과 용서를 맛보았습니다. 우리는 마땅히 저주 받아야 되는데 예수그리스도가 대신 죽으심으로 우리가 다시 살아났음을 고백합니다. 요셉을 통하여서 자기를 버린 형제들에게 너희들이 나를 버린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너희들을 살리려고 먼저 보낸 것이라고 고백하게 해서 형제들로 하여금 요셉의 무릎 앞에 주라고 고백했듯이 우리 역시 예수를 죽일 수밖에 없는 자임을 알게 하셔서 우리가 예수님 아래 무릎을 꿇고 주님 그렇게 고백할 수 있게 하여주시어서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살아가는 삶 속에서 우리의 우리 됨으로 나아오지 말게 하시고 항상 예수 그리스도의 피 뿌림 속에서 나아올 수 있도록 도와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여호와의 정하신 날"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보라 용광로 불 같은 날이 이르리니

교만한 자와 악을 행하는 자는 다 지푸라기 같을 것이라

말라기 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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