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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nly Jesus. 시 3:5 내가 누워 자고 깨었으니 여호와께서 나를 붙드심이로다

♣(성경강해)63강. 믿습니까? 믿어지십니까? (롬 10:1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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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강해/로마서 강해

2021. 9. 28.

 

 

딤후 3장 12-15 

무릇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자는 박해를 받으리라 악한 사람들과 속이는 자들은 더욱 악하여져서 속이기도 하고 속기도 하나니 그러나 너는 배우고 확신한 일에 거하라 너는 네가 누구에게서 배운 것을 알며 또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았나니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

 

 

63강. 믿습니까? 믿어지십니까? (롬 10:13-21)

-.정낙원 목사

 

 

 

믿습니까?

믿어지십니까?

같아 보이지만 이건 하늘과 땅 만큼이나 다릅니다.

 

믿습니까! 는 내 것이지만!

믿어지십니까! 는 내 안에서 믿어지게 해 주시는 분의 것입니다.

예수는 내가 믿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이 믿어지게 해 주시는 것입니다.

 

어떤 분이 질문을 했습니다.

어떤 목사님이 구원은 이루어가야 한다고 하는데,

어떻게 하면 구원을 이룰 수가 있습니까? 라고,,,

또한 예수님이 재림을 하시는데 신부 단장을 하여야 한다고 합니다.

어떻게 하면 신부 단장을 합니까? 라고,,

 

단호하게 말합니다.

그런 구원은 없습니다.

또한 신부 단장은 우리가 하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해 주십니다! 라고,,

 

인간들은 무슨 일이든지 자기가 주체가 되어서 행하고자 하는 못된 습성이 있습니다.

이걸 이름하여 죄라고 합니다.

죄는 자기 주체 챙기기로 발호를 합니다.

그러다 보니 성경의 이야기를 내가 해야 하는 것으로 이해를 하게 되는 것입니다.

 

거룩도 내가 이루어야 하고!

구원도 내가 이루어야 하고!

신부 단장도 내가 해야 하는 것으로 이해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천국을 왕의 아들에 혼인잔치로 비유하셨습니다.

혼인잔치에는 예복을 입고 들어가는데 그 예복은 손님들이 준비하는 것이 아니고 주인이 준비를 해 두었습니다.

청함을 입은 자들에게 주시고자 하심입니다.

 

왜? 천국을 주인이 준비한 예복을 입고 참석하게 할까요?

이는 천국에 가는 자들은 모두가 주인의 은혜를 입고 가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천국은 인간의 조건과 상관없이 간다는 말입니다.

즉 천국 백성은 차별이 없고 모두가 동등하다는 뜻입니다.

 

이 세상에서는 인간의 신분으로 차별을 하지만 천국에는 모두가 예수그리스도의 피 뿌림으로 가기 때문에 차별이 없습니다.

이건 마치 구약 이스라엘이 출애굽을 할 때 온 세상에 장자들이 죽어 나갈 때 이스라엘은 어린 양의 피를 바르고 살아난 것과 같습니다.

출애굽한 자들은 모두가 어린 양의 피로 구원을 받은 자들입니다.

 

너도 어린 양의 피를 바르고 살아났고!

나도 어린 양의 피를 바르고 살아났습니다.

이 피가 왕의 아들에 혼인 잔치에 입고 가는 예복입니다.

 

왕은 누구인가요?

하나님입니다.

그럼 그 아들은 누굴까요?

예수님입니다.

 

왕이신 하나님이 그 아들의 신부가 될 자들에게 예복을 입혀 줍니다.

즉 신부를 단장해 주신다는 말입니다.

신부는 왕이신 하나님이 입혀 주는 옷을 입으면 됩니다.

이 옷은 왕이 친히 준비한 옷입니다.

 

요한계시록 19장을 봅시다.

 

계 19:7-9= “우리가 즐거워하고 크게 기뻐하여 그에게 영광을 돌리세 어린양의 혼인 기약이 이르렀고 그 아내가 예비하였으니 8 그에게 허락하사 빛나고 깨끗한 세마포를 입게 하셨은즉 이 세마포는 성도들의 옳은 행실이로다 하더라 9 천사가 내게 말하기를 기록하라 어린 양의 혼인 잔치에 청함을 입은 자들이 복이 있도다”

 

어린 양의 혼인 기약이 이르렀습니다.

그 아내도 예비가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빛나고 깨끗한 세마포를 입혀 주십니다.

이 세마포는 성도들의 옳은 행실이라고 합니다.

그러면서 이렇게 어린 양의 혼인잔치에 청함을 입은 자들은 복을 받은 자들이라고 합니다.

 

예수님이 천국을 왕의 아들에 혼인잔치로 비유한 것을 사도 요한은 성령의 감동으로 천국에서 보았습니다.

거기에 보니 예수님이 하신 말씀과 같이 하나님이 어린 양의 신부들에게 세마포 옷을 입혀주시고 있는 것입니다.

 

이 옷을 사도 요한은 앞서 요한계시록 7장에서 말해 주었습니다.

 

계 7:9-17= “이 일 후에 내가 보니 각 나라와 족속과 백성과 방언에서 아무라도 능히 셀 수 없는 큰 무리가 흰 옷을 입고 손에 종려 가지를 들고 보좌 앞과 어린 양 앞에 서서 10 큰 소리로 외쳐 가로되 구원하심이 보좌에 앉으신 우리 하나님과 어린 양에게 있도다 하니 11 모든 천사가 보좌와 장로들과 네 생물의 주위에 섰다가 보좌 앞에 엎드려 얼굴을 대고 하나님께 경배하여 12 가로되 아멘 찬송과 영광과 지혜와 감사와 존귀와 능력과 힘이 우리 하나님께 세세토록 있을지로다 아멘 하더라 13 장로 중에 하나가 응답하여 내게 이르되 이 흰 옷 입은 자들이 누구며 또 어디서 왔느뇨 14 내가 가로되 내 주여 당신이 알리이다 하니 그가 나더러 이르되 이는 큰 환난에서 나오는 자들인데 어린 양의 피에 그 옷을 씻어 희게 하였느니라 15 그러므로 그들이 하나님의 보좌 앞에 있고 또 그의 성전에서 밤낮 하나님을 섬기매 보좌에 앉으신 이가 그들 위에 장막을 치시리니 16 저희가 다시 주리지도 아니하며 목마르지도 아니하고 해나 아무 뜨거운 기운에 상하지 아니할지니 17 이는 보좌 가운데 계신 어린 양이 저희의 목자가 되사 생명수 샘으로 인도하시고 하나님께서 저희 눈에서 모든 눈물을 씻어 주실 것임이러라”

 

요한계시록 7장은 하나님의 인(印)을 맞은 144.000명을 말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요한계시록 14장에 보면 시온 산에 서 있는 어린 양의 신부들입니다.

이들이 이마에 어린 양의 이름이 새겨져 있습니다.

즉 인을 맞은 것입니다.

 

그런데 이들이 무슨 옷을 입고 있는가 하면 모두가 어린 양의 피로 씻은 옷을 입고 있습니다.

피로 씻었다는 말은 피를 발랐다는 말입니다.

마치 출애굽 시에 이스라엘 백성들 집에 문과 설주에 인방에 어린 양의 피를 바른 것처럼 말입니다.

 

그러니까 요한계시록 19장에서 어린 양의 혼인 잔치에 청함을 입은 신부들에게 입혀 주신 옷이 바로 어린 양의 피로 씻김 받은 그 옷입니다.

이게 바로 신부가 입는 예복입니다.

이 예복을 일컬어 성도들의 옳은 행실이라고 합니다.

 

성도들이 옳은 행실이라고 하니까 우리의 어떤 행위로 이해를 하는데 그게 아니에요.

이건 육에 속한 자들이 성경을 문자적으로 보기 때문에 인간 쪽에서 뭔가 하여야 하는 식으로 해석을 하는 것입니다.

 

죄가 어떤 식으로 일을 한다고 했나요?

자기 주체 챙기기로 한다고 했지요.

육에 속한 자들은 성경의 말씀을 자기가 지켜야 하는 것으로 이해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신부단장을 하여야 한다고 하고, 우리가 구원을 이루어 가야 한다고 하는 것입니다.

 

신부 단장을 하고!

구원을 이루어 가야한다는 말은 결국 자기가 주체가 되어서 행사 하여야 한다는 뜻입니다.

이들에게는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다 이루신 것은 안 보이고 말씀만 보이는 것입니다.

예수가 안 보이니까 자기가 행하여야 한다고 하는 것입니다.

 

신앙이란? 예수를 믿는 것입니다.

 

내가 말씀대로 사는 것이 아니에요.

우리가 말씀대로 살 수가 없기 때문에 예수를 믿으라고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말씀대로 살 수가 있으면 예수를 믿을 필요가 없어요.

 

구원이란? 예수님으로부터 혜택을 입는 것입니다.

그래서 구원을 선물이라고 하고 은혜라고 하는 것입니다.

선물이니 은혜니 하는 말은 거저 받는 것이지 우리가 따 내는 것이 아니에요.

 

구원이라는 말이 무슨 뜻인가요?

외부에서 건져 준다는 말입니다.

이걸 그림으로 그려 보세요.

 

한 사람은 죄 아래 가두어져 있습니다.

독자적으로 나올 수가 없습니다.

만약에 독자적으로 나올 수가 있다고 한다면 구원이라는 말을 쓸 필요가 없습니다.

 

구원이라는 말을 쓸 때는 독자적으로 나올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외부에서 누군가가 건져 주어야지만 구원이 성립이 됩니다.

성경은 죄인의 모습을 올무에 걸린 새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덫에 걸린 새는 스스로 그 덫으로부터 나올 수가 없습니다.

누군가가 건져주어야 합니다.

이게 구원입니다.

 

그런데 거짓 목사들은 구원을 인간 쪽에서 이루어가야 한다고 합니다.

구원을 이루어 간다는 말은 방법론이 있다는 말입니다.

즉 내가 말씀대로 살아서 구원을 얻는다거나!

그도 아니면 내가 열심히 노력해서 구원을 얻어 낸다거나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이러한 것을 단호하게 부정합니다.

 

죄인은 독자적으로 의로워 질 수가 없습니다.

이건 마치 검은 피부를 가진 흑인들이 아무리 3박 4일 동안 목욕탕 안에 들어가서 몸을 푹 불려서 비누로 깨끗하게 씻어도 그 피부가 하얗게 되는 않는 것과 같습니다.

 

죄인의 상태가 그러합니다.

흑인이 희게 될 수 있는 비결은 딱 하나입니다.

겉에 흰옷을 입는 것입니다.

흰 분으로 단장하는 것입니다.

 

우리 죄인이 그러합니다.

죄인이 의로워질 수 있는 것은 오직 하나 의로운 분의 옷을 입혀 줄 때입니다.

의로운 분은 예수님입니다.

 

그 예수님이 입혀준 옷이 바로 자기 피로 적셔진 옷입니다.

이름하여 대속에 옷입니다.

이 대속에 옷을 입고 있는 것을 성도들의 옳은 행실이라고 합니다.

 

이걸 이스라엘의 결혼이야기로 비유를 듭니다.

이스라엘은 아들에 신부감은 아버지가 결정을 합니다.

아버지가 아들에 신부감으로 어떤 여자를 결정을 하면 그 신부될 사람에게 빙폐물을 보냅니다.

그럼 신부 될 사람은 시아버지가 보낸 빙폐물로 단장을 하고 기다리게 됩니다.

 

신부로 간택을 입는 사람은 가만히 있어도 시아버지가 다 알아서 해 주어요.

신부는 그냥 시아버지가 해 주는 대로 하면 됩니다.

시아버지가 보내준 준 옷을 입고 기다리면 되어요.

자기가 만든 옷을 입는 것이 아니고 시집에서 보내 준 옷을 입고 결혼식에 참석을 해요.

 

그럼 때가 되면 신랑이 데리러 옵니다.

신부는 어떻게 지내는가 하면 시아버지가 보내준 옷을 입고 신부 단장을 하고 설레임으로 신랑을 기다리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신앙도 마찬가지에요.

이미 신부 단장을 하고 있는 성도들은 하루 하루 설레는 마음으로 감사하면서 천국으로 살아요.

구원 받은 것을 생각하면 기뻐요.

잠시 후에 신랑이 온다는 것을 생각하면 마음이 설레어요.

그래서 감사하고 사는 것입니다.

 

신부는 자기가 신부단장 한다고 이러 저리 돌아다니지 않아요.

신부단장 한다고 여기저기 싸돌아다닌다는 것은 받은 빙폐물이 없다는 말입니다.

구원을 이루어 가야 한다고 하는 것은 모두가 그 안에 신랑으로부터 받은 온전한 사랑이 없기 때문입니다.

 

목사들이 왜? 방법론을 제시 할까요?

이는 교인들로부터 얻어 내야 할 것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름하여 돈이고!

열심이고 충성이고 봉사에요.

이걸 양 털 깎아 먹는다고 해요.

 

그러나 진짜 예수의 사랑을 받은 양은 이런 자들의 말을 듣지 않아요.

어떤 방법론에 현혹당하지 않는단 말입니다.

어떻게 하면 구원을 이룬다거나 신부단장을 하여야 한다는 말에 속지 않아요.

이러한 말에 속는다는 것은 그 속에 빛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 안에 진리가 없기 때문에 거짓의 말에 속아 넘어가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는다고 합니다.

 

언뜻 들으면 예수 이름을 불러 주면 구원이 주어지는 것처럼 들립니다.

과연 그럴까요?

이 말씀이 누구든지 예수 이름만 불러 주면 구원을 해 주신다는 말일까요?

 

아니에요.

오히려 그 반대의 의미를 담고 있어요.

인간의 가능성을 부정하는 말씀입니다.

 

무슨 말인고 하니 하나님은 예수를 믿게 하는 방식으로 구원을 하신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일하심을 말하는 것이지 우리더러 예수 믿어서 구원 받으라는 말이 아니에요.

예수 믿을 자들은 이미 창세전 언약으로 정해져 있어요.

아무나 예수를 믿는 것이 아니에요.

 

성경이 뭐라고 하던가요?

창세로부터 영생 주시기로 작정이 된 자들은 어린 양의 생명책에 녹명이 되었다고 하지요.

그리고 어린 양의 생명책에 녹명이 된 자들은 다 예수를 믿더라고 합니다.

 

그러니까 창세전에 구원 받기로 작정이 된 자들에게는 하나님께서 예수가 믿어지도록 하여서 구원을 해 내신다는 말입니다.

예수를 믿게 하여서 구원을 한다는 말은 하나님께서 구원시키기로 작정이 된 자들만 예수가 믿어지게 하여서 구원을 시킨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구원이 은혜이고 선물인 것입니다.

 

도나 개나 아무나 다 예수를 믿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예수를 믿게 해 주는 사람만이 예수를 믿어서 구원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오늘 본문은 구원의 방법론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일하신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어떤 말이든지 자기 안에 있는 것으로 해석을 합니다.

자기 안에서 법이 있으면 법으로 판단하고!

자기 안에 은혜가 있으면 은혜로 판단합니다.

 

법은 내가 주체가 되어서 행하는 것으로 나타나고!

은혜는 하나님이 주체가 되어서 행하는 것으로 나타납니다.

 

예를 들어서 어떤 일을 했어요.

구제를 했다고 합시다.

구제는 나타난 현상입니다.

누군가가 하였기 때문에 현상으로 나타난 것입니다.

 

그럼 묻습니다.

누가 구제를 했나요?

그 안에 법이 자리 잡고 있는 사람은 무엇이든지 자기가 주체가 되어서 움직이기 때문에 이런 사람들은 자기가 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 안에 은혜가 자리 잡고 있는 사람은 그 일을 하신 주체를 하나님에게 두기 때문에 무슨 일을 하여도 “하나님이 하셨습니다” 라고 해요.

 

나타난 결과는 동일한데 그 일을 한 주체(主體)는 달라요.

한 사람은 자기 자랑을 하고!

한 사람은 하나님을 자랑해요.

 

하나님이 우리에게 묻습니다.

야! 구제를 누가 했지!

그럼 그 안에 하나님(예수님)이 계신 분은 하나님이 하셨잖아요! 라고 합니다.

하지만 그 안에 하나님이 없는 사람은 제가 했는데요! 라고 합니다.

 

이걸 예수 믿기로 적용해 봅시다.

야! 너 예수 믿어!

예! 예수 믿습니다.

 

그 안에 하나님이 계신 성도는 “하나님이 믿게 해 주셨잖아요!” 라고 합니다.

하지만 그 안에 하나님이 없는 사람은 “예~ 제가 예수를 믿었습니다!” 라고 합니다.

한 사람은 믿음의 주체를 하나님에게 두는데!

다른 한 사람은 믿음의 주체를 자기가 행한 것으로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하늘과 땅만큼이나 다르지요.

 

이걸 오늘 본문으로 이해해 봅시다.

하나님은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하신다고 합니다.

주의 이름을 부른다는 말은 예수를 믿는다는 말입니다.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나타난 결과에요.

그럼 누가 예수를 믿느냐! 라는 질문이 남습니다.

내가 예수를 믿느냐!

아니면 하나님이 예수를 믿어지게 해 주셨느냐! 가 되겠지요.

 

내가 예수를 믿는다고 한다면 그것은 내가 일으킨 결과이므로 내 행위가 되지만!

하나님이 예수를 믿어지게 해 주셨다고 하면 그것은 하나님의 행위(은혜)가 되는 것입니다.

내 행위를 율법으로 난 의라고 하고!

하나님의 행위(은혜)를 믿음으로 난 의라고 합니다.

 

누구든지 예수 이름만 부르면 구원이 주어져요.

 

맞아요.

구원 받는 것은 참 쉬워요.

예수 믿으면 구원 받아요.

예수 이름 부르면 구원 받아요.

 

그런데 아무나 예수 이름이 불려지고 아무나 예수가 믿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에요.

죄인이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믿음이 동반되지 않으면 불가능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예수 이름을 부르게 해 주어야지만 가능하고!

하나님께서 예수가 믿어지도록 해 주어야만 가능한 일입니다.

 

그러니 인간으로서는 구원 받는 것이 쉬운 것이 아니라 아예 불 가능한 일입니다.

인간 쪽에서는 구원 받을 길이 없어요.

하나님은 인간 쪽에서 구원 받는 길을 차단해 놓았어요.

 

이걸 요한계시록에서는 다윗의 열쇠를 가지신 분이 열면 닫을 사람이 없고 닫으면 열 사람이 없다고 하는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3장을 봅시다.

 

계 3:7-13= “빌라델비아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기를 거룩하고 진실하사 다윗의 열쇠를 가지신 이 곧 열면 닫을 사람이 없고 닫으면 열 사람이 없는 그이가 가라사대 8 볼지어다 내가 네 앞에 열린 문을 두었으되 능히 닫을 사람이 없으리라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적은 능력을 가지고도 내 말을 지키며 내 이름을 배반치 아니하였도다 9 보라 사단의 회 곧 자칭 유대인이라 하나 그렇지 않고 거짓말하는 자들 중에서 몇을 네게 주어 저희로 와서 네 발 앞에 절하게 하고 내가 너를 사랑하는 줄을 알게 하리라 10 네가 나의 인내의 말씀을 지켰은즉 내가 또한 너를 지키어 시험의 때를 면하게 하리니 이는 장차 온 세상에 임하여 땅에 거하는 자들을 시험할 때라 11 내가 속히 임하리니 네가 가진 것을 굳게 잡아 아무나 네 면류관을 빼앗지 못하게 하라 12 이기는 자는 내 하나님 성전에 기둥이 되게 하리니 그가 결코 다시 나가지 아니하리라 내가 하나님의 이름과 하나님의 성 곧 하늘에서 내 하나님께로부터 내려 오는 새 예루살렘의 이름과 나의 새 이름을 그이 위에 기록하리라 13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

 

빌라델비아 교회에 예수님이 다윗의 열쇠를 가지신 분으로 나타나십니다.

예수님께서 열린 문을 두었다고 하지요.

이는 예수님이 구원의 문을 열고 닫는다는 말입니다.

이건 예수님이 자기 백성들의 구원을 챙기겠다는 말입니다.

 

다른 말로 예수가 믿어지도록 해 주셨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이 예수가 믿어지도록 해 주시니까

적은 능력을 가지고서도 예수 이름을 배반치 않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그 안에서 믿음을 지켜 주시니까

사단이 아무리 시험을 하여도 믿음을 배반치 않게 되는 것입니다.

 

이는 빌라델비아 교회 성도들이 실력이 좋아서가 아니라

하나님(예수님)이 그들 속에서 믿음을 지키도록 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기는 자가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이긴 자이지 우리가 이긴 자가 아니에요.

그리고 예수님이 자기 백성들에게 이름을 새기지 우리가 이름을 새기는 것이 아니에요.

 

이건 마치 아버지가 자식을 낳고 호적에 이름을 올리는 것과 같아요.

호적에 이름은 아버지가 올리지 자식이 올리는 것이 아니에요.

예수님께서 그들의 이마에 자기 이름을 새겨 놓았기 때문에 천국에 기둥이 되는 것입니다.

천국의 기둥은 예수님이 되게 해 주시는 것이지 우리가 되는 것이 아니에요.  

그러니까 말씀을 지켜서 천국의 기둥이 되십시오! 라고 하는 것은 전부 거짓말인 것입니다.

그건 종교꾼들이 사람의 열심을 끄집어내기 위하여 호객 행위 하는 것이에요.

 

믿음도 구원도 선물로 주어지는 것이지 인간들의 열심과 노력으로 얻어내는 것이 아니에요.

우리는 땅에 속하였고 하나님은 하늘에 속하였어요.

천국도 영생도 구원도 믿음도 하늘에 속한 것이에요.

하늘에 속한 것은 선물로 주어지는 것이지 땅에서 따 내는 것이 아니에요.

 

예수도 우리가 요구해서 오신 분이 아니에요.

하나님께서 창세전 언약을 위하여 보내어 주신 분이에요.

그러므로 예수님의 오심 자체가 선물인 것입니다.  

예수님은 창세로부터 구원 받기로 작정이 된 어린 양의 생명책에 녹명이 된 자들에게는 선물로 믿어져요.

그래서 복음인 것입니다.

 

복음이란? 기쁜 소식이란 말입니다.

예수님이 구원을 받아야 할 자기 백성들에게 선물로 오신 분이기 때문에 복음이고 기쁜 소식이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탄생 하실 때 천사들이 들에 있는 목자들에게 무슨 소식을 전해 주었나요?

예수가 너희를 구원 하실 구주라는 소식을 전해 주었어요.

누구의 구주라고요?

“너희”의 구주에요.

 

누가복음 2장을 봅시다.

 

눅 2:1-19= “이 때에 가이사 아구스도가 영을 내려 천하로 다 호적하라 하였으니 2 이 호적은 구레뇨가 수리아 총독 되었을 때에 첫 번 한 것이라 3 모든 사람이 호적하러 각각 고향으로 돌아가매 4 요셉도 다윗의 집 족속인고로 갈릴리 나사렛 동네에서 유대를 향하여 베들레헴이라 하는 다윗의 동네로 5 그 정혼한 마리아아 함께 호적하러 올라가니 마리아가 이미 잉태되었더라 6 거기 있을 그 때에 해산할 날이 차서 7 맏아들을 낳아 강보로 싸서 구유에 뉘었으니 이는 사관에 있을 곳이 없음이러라 8 그 지경에 목자들이 밖에서 밤에 자기 양떼를 지키더니 9 주의 사자가 곁에 서고 주의 영광이 저희를 두루 비취매 크게 무서워하는지라 10 천사가 이르되 무서워 말라 보라 내가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너희에게 전하노라 11 오늘날 다윗의 동네에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으니 곧 그리스도 주시니라 12 너희가 가서 강보에 싸여 구유에 누인 아기를 보리니 이것이 너희에게 표적이니라 하더니 13 홀연히 허다한 천군이 그 천사와 함께 있어 하나님을 찬송하여 가로되 14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 하니라 15 천사들이 떠나 하늘로 올라가니 목자가 서로 말하되 이제 베들레헴까지 가서 주께서 우리에게 알리신 바 이 이루어진 일을 보자 하고 16 빨리 가서 마리아와 요셉과 구유에 누인 아기를 찾아서 17 보고 천사가 자기들에게 이 아기에 대하여 말한 것을 고하니 18 듣는 자가 다 목자의 말하는 일을 기이히 여기되 19 마리아는 이 모든 말을 마음에 지키어 생각하니라”

 

예수님이 탄생 하시자 천사들이 들에 있는 목자들에게 나타나서 이 소식을 알려 주지요.

왜? 예수님의 탄생을 하늘에 있는 천사들이 알려주는가요?

이는 예수님이 하늘에서 오신 분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자기 백성들을 하늘로 데리고 가실 분이기 때문입니다.

이 사실을 천사들이 알려 주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하늘에서 오신 예수를 천사들이 누구에게 전해 줍니까?

들에 있는 목자들에게 전해 주지요.

여기서 들이란? 예루살렘 성읍과 상대적인 곳을 말해요.

예루살렘 성읍은 타락한 인간들의 세상을 상징하고, 들은 하늘나라를 상징해요.

 

그러니까 예루살렘은 역사를 상징하고, 들은 묵시를 상징해요.

그래서 묵시에 속한 천사들이 들에 있는 목자들에게 묵시에서 오신 예수님의 소식을 알려주는 것입니다.

이해가 되지요.

 

천사들이 뭐라고 하는가요?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이라고 하지요.

그 소식이 뭔가요?

 

너희를 위하여 그리스도라는 구주가 나셨다는 것입니다.

누구를 위한 구주라고 합니까?

“너희!”에요.

“너희!”

이 너희들이 누구인가 하면 “땅에서 기뻐하심을 입은 자들” 이에요.

 

그러니까 땅에서 구원 받기로 작정이 된 자들에게 예수는 구주가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창세전에 어린 양의 생명책에 녹명을 한 영생 주기로 작정이 된 자들을 위하여 예수를 구주로 보내 주신 것입니다.

이 사실을 천사들이 비록 역사 속에 있지만 “묵시에 속한 자” 들을 찾아가서 알려주는 것입니다.

 

그들이 바로 “들에 있는 목자들”이에요.

그러자 들에 있던 목자들이 천사들이 알려준 대로 예수님을 찾아가서 영접을 하잖아요.

우리는 흔히 동방박사들이 예수님을 처음 만났다고 생각하지만 아니에요.

예수님을 처음 만난 자들은 천사들에 의하여 예수님의 소식을 들은 들에 목자들이에요.

 

그 들에 목자들이 바로 우리 성도들이에요.

저와 여러분이 바로 들에 목자에요.

그래서 예수가 구주라는 것이 믿어지게 해 주신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를 구주로 믿는 것은 하나님께서 믿음을 선물로 주셨기 때문에 믿어지는 것입니다.

 

그럼 묻습니다.

들에 목자들이 자기 실력으로 예수를 알아보았나요?

아니에요.

묵시에 속한 천사들이 알려주어서 알았어요.

 

그럼 또 묻습니다.

하나님은 왜? 온 세상에 미칠 기쁜 소식이라고 하면서 예루살렘 성읍에 외치지 않고 들에 목자들에게만 살짝 알려 주셨는가요?

이는 들에 목자들이 “너희”이고 하늘나라 백성들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오심으로서 이 세상은 두 쪽으로 쫙 갈라지게 되었어요.

예수님을 기준으로 해서 “너희”와 “저희”로 갈라지는 것입니다.

마치 목자가 양과 염소를 갈라놓듯이 예수님이 천국 백성과 지옥 백성으로 갈라놓아요.

그래서 예수님을 심판주 라고 하는 것입니다.

 

너희에게는 천국에 비밀이 열려져 있지만 저희에게는 천국에 비밀이 닫혀져 있어요.

천국의 실상이 예수에요.

그러니까 너희에게는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고 나를 위한 구원자라는 것이 믿어지지만!

저희에게는 안 믿어져요.

 

그래서 너희는 예수를 주와 그리스도로 믿고!

저희는 그냥 4대 성인 중에 한 사람으로 생각하는 것입니다.

 

예수는 아무나 믿을 수가 없어요.

오직 창세전에 영생주시기로 작정을 하고 어린 양의 생명책에 녹명이 된 자들만 믿어요.

누가 영생 주시기로 작정을 하였나요?

하나님이 하셨어요.

 

누가 어린 양의 생명책에 녹명을 했습니까?

하나님이 했어요.

어린 양의 생명책에 녹명이 되었다는 말은 예수님 족보에 올려졌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탄생 하실 때 아들이 아버지 족보에 올려지는 호적 하는 일들이 발생을 하였고 천사들이 들에 있는 목자들에게 가서 이 예수가 바로 너희들을 아버지 호적에 올려주려고 오신 그 분이라는 것을 알려주었던 것입니다.

 

구원은 우리 몫이 아니고 하나님이 하실 몫이에요.

 

그러므로 하나님이 자기 백성들 찾아가서 예수님의 탄생 소식을 알려주고!

예수가 믿어지는 믿음도 선물로 주시는 것입니다.

자기 백성들은 가만히 있으면 하나님이 다 해 주세요.

마치 교통사고가 나면 ‘하이카’ 보험에서 나와서 다 해결해 주듯이,,,,

 

솔직히 생각해 보세요.

예수 믿는 것이 내 맘대로 되는가요?

안 되어요.

왜? 안 되는 줄 아세요.

 

이는 예수를 믿는 것은 하나님으로부터 믿음을 선물로 받아야지만 하기 때문입니다.

믿음을 선물로 받아야 예수가 마음으로 믿어지고!

예수가 마음으로 믿어져야 입술로 시인이 되어요.

 

이처럼 구원은 하나님의 선물로 주어지는 것이에요.

선물이라 함은 주시는 분의 마음에 달려 있는 것입니다.

받는 쪽에서 달라고 할 수가 없어요.

만약에 달라고 해서 주어지는 것이면 선물이 될 수가 없어요.

 

선물이 되려면 나는 생각하지도 않았는데 공짜로 주어지는 것입니다.

이럴 때 선물은 은혜가 되는 것입니다.

선물 속에 주시는 분의 은혜와 사랑이 담겨져 있어요.

 

선물은 아무에게나 하지 않고 사랑하는 사람에게 해요.

여러분들은 아무에게나 선물을 합니까?

아니잖아요.

사랑하는 사람에게만 하잖아요.

 

하늘나라 선물은 하나님이 사랑하는 사람에게 하는 것이에요.

그리고 선물은 높은 자가 낮은 자에게 해요.

가진 자가 없는 자에게 해요.

창조주가 피조물에게 하는 것이에요.

 

그러나 땅 나라에서는 부하 직원이 상사에게 해요.

없는 자들이 있는 자들에게 해요.

흔히들 명절 때 직장의 부하 직원이 상사에게 선물을 하잖아요.

부하가 상사에게 하는 선물은 앞으로 잘 봐 달라는 청탁의 의미가 담겨져 있기 때문에 선물이 아니고 뇌물인 것입니다.

 

높은 자가 낮은 자에게 베푸는 것은 선물이라고 하고!

낮은 자가 높은 자에게 바치는 것은 뇌물이라고 해요.

 

그리므로 믿음이라는 선물은 하나님이 인간에게 주는 것이지 인간들이 하나님에게 “믿어 줄게요” 라고 하는 것이 아니에요.

인간들이 하나님에게 “믿어 줄게요” 라고 하는 것을 뇌물이라고 해요.

 

“하나님이기 때문에 믿어 준다!”

“하나님이기 때문에 바친다!”

“하나님이기 때문에 섬긴다!”

 

이렇게 하나님이기 때문에 하는 것은 다 뇌물이에요.

하나님이기 때문에 섬긴다는 것은 하나님이 아니면 안 섬긴다는 말의 역설적 화법이에요.

그러니까 섬김이 아니고 뇌물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러한 신앙의 뇌물을 받지 않아요.

 

신 10:17절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는 신 가운데 신이시며 주 가운데 주시요

           크고 능하시며 두려우신 하나님이시라 사람을 외모로 보지 아니하시며 뇌물을 받지 아니하시고”

 

대하 19:7절 “그런즉 너희는 여호와를 두려워하는 마음으로 삼가 행하라 우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는

                  불의함도 없으시고 치우침도 없으시고 뇌물을 받는 일도 없으시니라 하니라”

 

신 16:19절 “너는 재판을 굽게 하지 말며 사람을 외모로 보지 말며 또 뇌물을 받지 말라

                  뇌물은 지혜자의 눈을 어둡게 하고 의인의 말을 굽게 하느니라”

 

뇌물은 눈을 어둡게 하고 말을 굽게 해요.  

뭐니 뭐니 해도 코 앞에 진상이 제일이고!

소금 먹은 자가 물을 켠다는 말이 있어요.

이는 받아 먹은 자는 반드시 그 반응을 보이게 된다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인간 세상에서는 뇌물이 끊이지 않는 것입니다.

그토록 뇌물을 받아 먹고 감옥으로 잡혀가는 일들이 연일 매스컴에 오르내려도 탐욕으로 가득찬 인간들에겐 소 귀에 경 읽기에요.

 

견물생심이라고 인간은 눈 앞에 보이면 나중에 산수갑산 가는 일이 있어도 일단 챙기고 보아요.

이게 인간의 본능이에요.

이 본능이 신에게까지 행사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인간들은 자신들이 신을 섬기겠다고 덤벼드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을 펴면 인간은 신을 섬길 수 없다고 합니다.

성경은 인간이 신을 섬기는 행위를 우상숭배라고 해요.

 

우상숭배가 뭐냐?

신과 거래하는 것이에요.

신에게 뇌물을 바치는 거에요.

 

이방 신들은 거래가 되어요.

뇌물을 받아먹어요.

왜냐하면! 이방 신 자체가 인간들이 만든 신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인간들과 거래가 가능한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인간들이 만든 신과 달라요.

하나님은 창조주세요.

창조주는 주시는 분이지 받는 분이 아니에요.

그러므로 창조주이신 하나님은 피조물에게 받지 않아요.

 

사도바울이 아덴에 가서 이 사실을 알려주었어요.

 

사도행전 17장을 봅시다.

 

행 17:2231= “바울이 아레오바고 가운데 서서 말하되 아덴 사람들아 너희를 보니 범사에 종교성이 많도다 23 내가 두루 다니며 너희의 위하는 것들을 보다가 알지 못하는 신에게라고 새긴 단도 보았으니 그런즉 너희가 알지 못하고 위하는 그것을 내가 너희에게 알게 하리라 24 우주와 그 가운데 있는 만유를 지으신 신께서는 천지의 주재시니 손으로 지은 전에 계시지 아니하시고 25 또 무엇이 부족한 것처럼 사람의 손으로 섬김을 받으시는 것이 아니니 이는 만민에게 생명과 호흡과 만물을 친히 주시는 자이심이라 26 인류의 모든 족속을 한 혈통으로 만드사 온 땅에 거하게 하시고 저희의 연대를 정하시며 거주의 경계를 한하셨으니 27 이는 사람으로 하나님을 혹 더듬어 찾아 발견케 하려 하심이로되 그는 우리 각 사람에게서 멀리 떠나 계시지 아니하도다 28 우리가 그를 힘입어 살며 기동하며 있느니라 너희 시인 중에도 어떤 사람들의 말과 같이 우리가 그의 소생이라 하니 29 이와 같이 신의 소생이 되었은 즉 신을 금이나 은이나 돌에다 사람의 기술과 고안으로 새긴 것들과 같이 여길 것이 아니니라 30 알지 못하던 시대에는 하나님이 허물치 아니하셨거니와 이제는 어디든지 사람을 다 명하사 회개하라 하셨으니 31 이는 정하신 사람으로 하여금 천하를 공의로 심판할 날을 작정하시고 이에 저를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신 것으로 모든 사람에게 믿을 만한 증거를 주셨음이니라 하니라”

 

아덴은 지금 그리스의 “아테네”에요.

아테네가 어떤 곳인가요?

신들이 도시에요.

 

바울이 지금 인간들이 만든 신들의 도시에 가서 진짜 신을 알려주고 있는 것입니다.

아덴에 있는 신들은 전부 인간들이 만든 신들이에요.

거기에 바울은 인간을 창조하신 신이신 창조주 하나님을 일려주고 있는 것입니다.

 

인간들이 만든 신이 어떤 신인가요?

인간들에게 받아 먹는 신이지요.

인간들이 만든 신은 인간들이 갖다 바치지 않으면 굶어 죽어요.

 

그런데 바울은 하나님은 인간들에게 받아 먹는 신이 아니고 도리어 인간들에게 생명과 호흡과 만물을 친히 주시는 신이라고 합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것으로 산다는 것을 알라고 합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께 갖다 바치려고 하지 말고 얻어 먹으라고 하는 것입니다.

얻어 먹고 있다는 것을 알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얻어 먹고 산다는 것을 알고 감사하는 것이 신앙이에요.

 

구약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가나안으로 빼낸 이유가 뭔 줄 아세요?

참 하나님을 알려주고자 함입니다.

애굽에서 아는 하나님은 인간들이 만든 신과 같이 인간들이 갖다 바쳐야 하는 신으로 알고 있는 것입니다.

이건 애굽에 신관이에요.

 

그러나 이스라엘을 지키는 하나님은 인간에게 받아 먹는 신이 아니고 도리어 인간들에게 생명과 호흡을 주시는 분이에요.

이걸 알려 주고자 출애굽을 시킨 것입니다.

 

광야에 나오니 하늘에서 떡을 주어서 먹게 하시는 것입니다.

이는 하나님은 너희에게 주시는 분이란 말입니다.

너희들이 나를 섬기는 것이 아니고 내가 너희를 섬기고 있다는 것을 알려주신 것입니다.

 

그러니까 광야에서 해야 할 일은 얻어 먹으면서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라고 하면 되어요.

신앙생활이 그 은혜의 영광을 찬미하는 것으로 나타나야 하는 이유가 그것이 창세전 언약이기 때문입니다.

 

에베소서 1장을 봅시다.

 

엡 1:3-7= “찬송하리로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으로 우리에게 복 주시되 4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5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7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피로 말미암아 구속 곧 죄 사함을 받았으니 6 이는 그의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우리에게 거저 주시는 바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미하게 하려는 것이라”

 

바울은 성령의 감동으로 창세전 언약을 알았어요.

너무 황홀한 것입니다.

그래서 찬송으로 시작을 하고 찬송으로 끝을 맺는 것입니다.

 

잘 보세요.

하나님께서 하늘에 속한 신령한 복을 주시잖아요.

누구에게 줍니까?

땅에 있는 자기 백성들에게 주는 것입니다.

 

땅에 있는 자기백성들 모습이 어떠한가요?

구원을 받아야 할 입장에 있지요.

죄 아래 가두어져 있잖아요.

 

그래서 하나님이 그 아들을 보내서 죄에서 건져내어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십니다.

어떻게 죄에서 거룩하고 흠이 없어지는가 하면 예수의 피로 되어요.

예수의 피 흘리심으로 죄에서 건져진 자들을 하나님은 하나님의 아들들로 삼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아들들이 된 자들이 뭘 하는가요?

그 은혜의 영광을 찬미한다고 하지요.

신앙생활이 뭔가 하면 그 은혜의 영광을 찬미하는 것입니다.

천국은 그 은혜의 영광을 찬미하는 곳이에요.

 

오순절 성령이 임하고 나자 성도들이 날마다 모여서 뭘 하던가요?

그 은혜의 영광을 찬미하는 일을 했어요.

날마다 모여서 예수님의 피 흘리심으로 얻은 구원에 감사하였어요.

 

언제 찬양이 나오고, 언제 감사가 나오는가요?

이는 구원이 선물로 주어진 것임을 알 때 나타납니다.

기독교 신앙은 하나님으로부터 받는 종교에요.

이걸 은혜라고 합니다.

 

하나님을 일컬어 은혜의 하나님이라고 하는 것은 주시는 분이란 말입니다.

좋은 신앙이란? 하나님으로부터 받는 것입니다.

정확하게 말해서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것을 알고 감사하는 것이 신앙이에요.

 

그럼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른다”는 말씀 속에 무슨 뜻이 담겨 있는지 살펴봅시다.

    

 

9-10절을 봅시다.

 

롬 10:9-10=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얻으리니 10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

 

무엇을 믿는다고 합니까?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얻는다고 하지요.

믿음이 뭐냐?

하나님께서 죽은 자를 살려낸다는 것을 믿는 것입니다.

 

자 보세요.

하나님께서 누구를 죽이고 살려냈다고 합니까?

주 예수에요.

 

예수를 왜? 죽였다 살려내는 일을 할까요?

여기에 창세전 언약이 담겨져 있기 때문입니다.  

창세전 언약을 보면 예수가 죽고 자기 백성들이 살아나는 것으로 되어 있어요.

그러니까 하나님이 예수를 한 알의 밀알처럼 죽여서 그 속에서 수많은 열매들을 얻어내는 것으로 사용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 속에는 자기 백성들이 죽음과 부활도 담겨져 있겠지요.

우리의 죽음과 부활도 담겨져 있겠지요.

이 사실을 믿으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마음에 믿어지느냐 에요.

 

그런데 어느 인간이 이게 믿어집니까?

이성적으로는 믿고자 해도 믿을 수가 없어요.

그럼 우리는 이런 말씀 앞에서 말 같지 않는 소리 하지 마세요! 라고 하여야 합니다.

이게 정상적인 인간이에요.

정상적인 뇌 구조를 가지고 있다면 하나님 웃기는 소리 좀 하지 마세요! 라고 하여야 합니다.

 

그런데 어떤 자들이 이걸 믿는다고 합니다.

믿어진다고 해요.

이들이 누구인가 하면 하나님으로부터 믿음을 선물로 받은 자들이에요.

 

그러니까 예수의 죽음과 부활을 믿으라는 말은 역설적이게도 육에 속한 자들을 가고 영에 속한 자들만 남으라는 말이 되는 것입니다.

영에 속한 자들만 알아듣도록 하신 것입니다.

 

영에 속한 자들에게는 마치 예수님의 탄생 때 들에 있는 목자들에게 천사들을 보내서 알려 주었듯이 하늘나라 백성들에게는 믿음을 선물로 주어서 예수가 믿어지게 해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은 지금 믿음을 선물로 받은 자들을 찾아내는 것입니다.

 

야! 너희들 중에 믿음을 선물로 받은 자들 이리 나와 봐!

그러고 있는 것입니다.

이게 전도에요.

 

전도는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을 전하는 것이에요.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을 증거하면 예수님에게 속한 자들이 나타나요.

저~ 예수가 믿어지는데요! 라고 한단 말입니다.

예수님이 내 죄를 위하여 대신 죽으셨다는 것이 믿어진다고 해요.

이런 자들이 바로 창세로부터 어린 양의 생명책에 녹명이 된 구원 받기로 작정이 된 자들이에요.

 

오늘 본문을 잘못 이해하면 구원의 방법론을 말하는 것으로 오해 할 수가 있어요.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사용하고 있어요.

우리 주변에 보면 흔히 전도를 한다고 하는 사람들을 보면 이러한 성경 구절을 외워서 입으로 시인하라고 다그치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어떤 분이 실제로 이러한 이야기를 저희 교회에 와서 한 적이 있어요.

길 가는 사람 붙잡고 예수 믿으라고!

입으로 시인하면 구원을 받는다고 호객행위를 하였다고 고백 하더라고요.

 

왜? 이런 일들이 일어나는가 하면 이는 성경을 문자적으로 보기 때문입니다.

문자적으로 보면 내가 입으로 시인하면 구원이 주어지는 것으로 해석이 되어요.

그러나 이렇게 해석하면 성경 전체의 사상과 달라집니다.

 

성경은 구원은 하나님의 선물로 주어지는 것이라고 말해주고 있습니다.

구원은 인간의 행위와 상관없이 창세전에 이미 예정이 되었다고 말하고 있어요.

이게 예정론이거든요.

그래서 성경은 창세전에 영생 주시기로 작정이 된 자들은 예수를 다 믿더라고 하는 것입니다.

 

예정론을 말하면 두 부류로 극명하게 나누어져요.



어떤 이는 할렐루야 감사합니다! 라고 하고!

어떤 자들은 신경질을 내요.

왜? 감사하고!

왜? 신경질을 낼까요?

 

감사하는 자들은 자기 의지나 노력과 상관없이 거저 주어짐에 감사하는 것입니다.

반면에 신경질을 내는 자들은 자기들이 해야 하는 것을 부정하기 때문에 짜증이 나는 것입니다.

그럼 난 뭐냐!

우린 로봇이냐!

 

결국 자신이 부정당하는 것을 참지 못하겠다는 것입니다.

나도 좀 인정해 달라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예정론을 인정하지 않는 자들은 하나님이 다 했다고 하면!

그럼 우리는 아무 것도 하지 않아도 되네!

교회 갈 필요가 없겠네!

가만히 있어도 하나님이 다 하신다면서! 라고 비아냥거리는 것입니다.

 

이들은 하나님이 하신 일이 기쁘지 않아요.

왜? 그러느냐 하면 자기가 주인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예수를 믿어도 자기 주체 챙기기를 하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를 믿어주는 자기가 기뻐야 하는 것입니다.

이게 육에 속한 자들이 특징이에요.

 

오늘 본문은 문자적으로 해석하지 말고 역(逆)으로 해석하면 됩니다.

역설적으로 해석하면 하나님께서 구원 받기로 작정이 된 자들은 예수를 입으로 시인하더라는 식이 되겠지요.

이렇게 되면 시인 속에 하나님의 은혜가 담겨져 있게 됩니다.

 

하나님 말씀은 우리가 직접 받을 수가 없어요.

왜? 그런 줄 아세요.

죄인이 하나님 말씀을 직접 받게 되면 죄인의 생각으로 해석을 하기 때문입니다.

그럼 하나님의 뜻과 다른 해석을 하게 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성경 해석을 인간에게 맡기지 않고 성령께 맡기신 것입니다.

성령은 하나님 입장에서 해석을 해요.

이렇게 성령으로 해석하신 분이 예수님입니다.

 

산상보훈을 보면 예수님의 해석법이 나옵니다.

옛 사람에게는 이렇게 말하였지만 나는 이렇게 말을 한다고 하지요.

그러면서 구약의 말씀을 전혀 다른 식으로 해석을 합니다.

이게 성령의 해석법이에요.

 

지금도 성령의 감동을 입은 사람들이 성경을 해석하면 이런 식으로 해요.

인간의 가능성으로 해석치 않고 인간의 불가능성으로 해석해요.

이러면 말씀 앞에서 죄가 고발당하게 되어요.

바울은 이 사실을 구약 이스라엘을 들어서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제부터 복음이 어떻게 인간의 가능성을 배제하고 은혜로만 증거가 되어 왔는지를 살펴보기로 합시다.

 

바울은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고 말을 합니다.

여기에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차별이 없다고 합니다.

이것은 구약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받아들일 수 없는 말이에요.

왜냐하면! 구약 이스라엘은 자신들만 하나님 백성이라고 했어요.

 

그 근거를 모세 언약을 들고 있어요.

즉 율법 신앙을 근거로 하고 있단 말입니다.

구약 이스라엘은 율법을 지키는 자가 하나님 백성이라는 신앙을 가지고 있어요.

그도 그럴 것이 율법은 모세가 하나님과 직접 대면하고 받아온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율법을 지키는 것이야 말로 구원의 근거가 된다고 믿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율법 지킴으로 구원을 하는 것이 아니라 13절에 보면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한다는 것으로 말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것을 믿을 사람이 아무도 없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구약 이사야 선지자의 고백을 인용하여서 말을 합니다.

 

이사야 52장과 53장을 봅시다.

 

사 52:7-15= “좋은 소식을 가져오며 평화를 공포하며 복된 좋은 소식을 가져오며 구원을 공포하며 시온을 향하여 이르기를 네 하나님이 통치하신다 하는 자의 산을 넘는 발이 어찌 그리 아름다운고 8 들을지어다 너의 파숫군들의 소리로다 그들이 소리를 높여 일제히 노래하니 이는 여호와께서 시온으로 돌아오실 때에 그들의 눈이 마주 봄이로다 9 너 예루살렘의 황폐한 곳들아 기쁜 소리를 발하여 함께 노래할지어다 이는 여호와께서 그 백성을 위로하셨고 예루살렘을 구속하셨음이라 10 여호와께서 열방의 목전에서 그 거룩한 팔을 나타내셨으므로 모든 땅 끝까지도 우리 하나님의 구원을 보았도다 11 너희는 떠날지어다 떠날지어다 거기서 나오고 부정한 것을 만지지 말지어다 그 가운데서 나올지어다 여호와의 기구를 메는 자여 스스로 정결케 할지어다 12 여호와께서 너희 앞에 행하시며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너희 뒤에 호위하시리니 너희가 황급히 나오지 아니하며 도망하여 행하지 아니하리라 13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보라! 내 종이 형통하리니 받들어 높이 들려서 지극히 존귀하게 되리라 14 이왕에는 그 얼굴이 타인보다 상하였고 그 모양이 인생보다 상하였으므로 무리가 그를 보고 놀랐거니와 15 후에는 그가 열방을 놀랠 것이며 열왕은 그를 인하여 입을 봉하리니 이는 그들이 아직 전파되지 않은 것을 볼 것이요 아직 듣지 못한 것을 깨달을 것임이라 하시니라”

 

사 53:1-6= “우리의 전한 것을 누가 믿었느뇨 여호와의 팔이 뉘게 나타났느뇨 2 그는 주 앞에서 자라나기를 연한 순 같고 마른 땅에서 나온 줄기 같아서 고운 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은즉 우리의 보기에 흠모할 만한 아름다운 것이 없도다 3 그는 멸시를 받아서 사람에게 싫어버린 바 되었으며 간고를 많이 겪었으며 질고를 아는 자라 마치 사람들에게 얼굴을 가리우고 보지 않음을 받는 자 같아서 멸시를 당하였고 우리도 그를 귀히 여기지 아니하였도다 4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서 하나님에게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 5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 6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며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무리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하나님께서 때가 되어서 예루살렘을 회복 하십니다.

이제 포로 된 자들을 해방 시킬 때가 된 것입니다.

그래서 파수꾼들을 보내서 시온에 가서 좋은 소식을 전하라고 합니다.

 

이제 시온을 구속 할 메시야가 오는데,,,

근데 그 모습이 영 아니올시다 에요.

인간들은 생각하기를 구원자라고 하면 영웅이 온다고 생각을 하고 있어요.

그런데 하나님이 보낸 이스라엘의 구속자는 몰골이 영 아닌 것입니다.

 

52장 14절과 53장 2절을 보세요.

 

52:14절 “이왕에는 그 얼굴이 타인보다 상하였고 그 모양이 인생보다 상하였으므로

               무리가 그를 보고 놀랐거니와”

 

53:2절 “그는 주 앞에서 자라나기를 연한 순 같고 마른 땅에서 나온 줄기 같아서

            고운 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은즉 우리의 보기에 흠모할 만한 아름다운 것이 없도다”

 

그 얼굴을 보니 타인보다 상하였다고 하지요.

이는 인간의 상식에 맞지 않다는 말입니다.

에이~! 저런 사람이 어떻게 구원자란 말이야!  

마치 여름 가뭄에 겨우 싹을 낸 연한 순 같은 겁니다.

예를 들어서 제대로 먹지 못해서 피골이 상접한 아프리카 사람들처럼 촌 놈 중에도 상 촌 놈이란 말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겉 모습을 보고 에게 게~!

저게 무슨 메시야야!

무슨 메시이야 저렇게 힘이 없어!

그래서 아무도 그를 메시야로 거들떠보지 않았어요.

 

분명히 파수꾼들은 하나님은 시온의 구속을 가져 다 주실 메시야가 온다는 아름다운 소식을 예루살렘에 전하였어요.

그러나 한 사람도 그를 귀히 여기지 않았어요.

 

그래서 바울은 우리가 전한 것을 누가 믿었느뇨? 라고 부정적으로 말하는 것입니다.

아무도 복음에 순종치 않았다고 합니다.

분명히 예수님의 말씀이 시온을 구속할 복음인데!

그 누구도 예수님의 말씀을 듣지 않았어요.

 

왜? 그런가요?

예수님의 외모를 보고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52장 15절에 보면 전혀 생소한 이야기를 한다고 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그 입을 봉한다고 합니다.

 

52:15절 “후에는 그가 열방을 놀랠 것이며 열왕은 그를 인하여 입을 봉하리니

            이는 그들이 아직 전파되지 않은 것을 볼 것이요 아직 듣지 못한 것을 깨달을 것임이라 하시니라”

 

무슨 말인고 하니 지금까지 듣지 못하던 말을 한다는 말입니다.

어떤 말입니까?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는다”는 말이에요.

 

이 말은 율법을 지켜서 구원을 얻는다는 유대인들에게는 아주 생경한 말이에요.

이 말은 아직까지 전파되지 않은 말이에요.

그러니까 깨닫지 못하는 것입니다.

 

생소하고 깨닫지 못하는 말을 하니까

이런 말을 하지 말라고 그 입을 봉하고자 하는 일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게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이에요.

 

유대인들은 율법이라는 법을 가지고 있어요.

누구든지 율법을 지켜서 구원을 받는다고 가르쳤어요.

그런데 예수님이 오셔서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는다고 합니다.

율법을 지켜서 구원을 얻는 것이 아니라 예수를 믿어서 구원을 얻는다고 합니다.

 

이러면 유대인들 입장에서는 자기들의 율법 신앙이 무너지게 생겼어요.

그래서 예수를 죽인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예수님을 살렸어요.

부활케 하셨어요.

 

오순절 성령이 임하고 나자 사도들이 이 사실을 증거합니다.

예수가 살았다고 부활의 도를 증거하기 시작을 합니다.

너희가 죽인 이 예수를 하나님이 주와 그리스도를 삼았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이제부터는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는다고 합니다.

이제 이 소리가 온 땅 끝까지 퍼졌어요.

 

이제부터 구원 얻는 방법이 바뀌었어요.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어요.

이걸 오늘 본문 20절에서 말하고 있습니다.

 

20-21= “또한 이사야가 매우 담대하여 이르되 내가 구하지 아니하는 자들에게 찾은바 되고 내게 문의하지 아니하는 자들에게 나타났노라 하였고 21 이스라엘을 대하여 가라사대 순종치 아니하고 거스려 말하는 백성에게 내가 종일 내 손을 벌렸노라 하셨느니라”

 

잘 보세요.

이사야가 말하기를 장차 하나님께서 구원을 하시는데 어떤 방식으로 하는가 하면 구원에 대하여 생각지도 않는 자들에게 찾아가서 구원을 해 주신다고 합니다.

반면에 자기가 구원을 받아야 한다고 하는 자들에게는 손을 벌려서 구원을 받지 못하게 한다고 합니다.

 

무슨 말인고 하니 유대인들처럼 자기들 힘으로 율법을 지켜서 의로워져서 구원을 얻겠다고 하는 자들에게는 구원의 길을 차단시켜 놓고!

자기가 죄인임을 알고 나 같은 것이 어떻게 구원을 얻어!

나는 지옥에 가야 마땅해! 라고 하는 그런 죄인들에게는 구원의 길을 열어 주신다는 것입니다.

 

즉 인간의 의를 앞세우고 나오는 자에게는 하나님께서 팔 벌려서 천국에 못 들어가게 하시고!

자기 의가 없는 자들에게는 예수를 믿게 해서 구원을 해 주신다는 말입니다.

이렇게 될 때 구원이 은혜로 남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왜? 구약 이스라엘에게는 종일 손을 벌려서 막았는가요?

이는 구원이 인간의 조건으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은혜로 주어지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 하나님의 은혜가 바로 예수를 믿게 해서 주어지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예수는 인간의 힘으로 믿을 수가 없어요.

오직 성령으로만 믿을 수가 있어요.

성령이 오셔서 마음으로 믿어지게 해 주셔야지만 입으로 시인을 할 수가 있어요.

그래서 성경은 누구든지 성령으로 말미암지 않고서는 예수를 주라 시인 할 수가 없다고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우리가 예수를 주라고 시인하는 그 시인이 우리 것이 아니고 성령의 것이 되겠지요.

그렇잖아요.

누구든지 성령이 아니고서는 예수를 주라 시인 할 수가 없다고 했잖아요.

그럼 우리가 예수님을 주라고 시인하는 그 시인은 우리의 시인이 아니고 성령께서 하게 해 주신 시인이므로 하나님의 것이 되는 것입니다.

 

이러면 우리의 구원이 우리의 신앙고백으로 얻은 것입니까?

아니면 하나님께서 신앙고백을 하게 해 주어서 얻어진 것입니까?

하나님께서 해 주신 것이지요.

 

이럴 때 우리가 예수를 믿는다고 하는 것을 자랑 할 수가 있습니까?

없습니까?

없지요.

자랑 할 것이 아니라 감사하여야 하겠지요.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예수가 주라는 것을 믿어지게 해 주신 것이기 때문입니다.

 

로마서 10장이 말하는 것이 뭔가요?

 

율법으로 난 의가 아니고 믿음으로 난 의로 구원을 받는다는 것을 말하고 있지요.

율법으로 난 의는 인간의 가능성으로 나오는 것이고!

믿음으로 난 의는 하나님의 은혜로 나오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우리가 예수를 믿는 것도 하나님의 은혜이고!

그 믿음으로 살아가는 것도 하나님의 은혜가 되는 것입니다.

성도가 행하는 그 모든 것이 다 하나님의 은혜에요.

 

내가 예수를 믿는 것도 은혜이고!

교회에 나오는 것도 하나님의 은혜이고!

봉사하고 충성하는 것도 하나님의 은혜이고!

복음을 전하는 것도 하나님의 은혜에요.

 

은혜 아닌 것이 하나도 없어요.

다 하나님의 은혜에요.

그래서 사도 바울은 “나의 나 된 것은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 라고 고백을 한 것입니다.

 

바울의 나의 나 된 것 속에는 예수 믿는 것도 들어가 있고!

복음 전하는 것도 들어가 있고!

복음 전하다가 핍박 받는 것도 들어가 있고!

또한 복음으로 인하여 성도들에게 사랑을 받는 것도 들어가 있어요.

 

이걸 우리에게 적용하면 예수 믿는 것도 은혜이고!

교회에 봉사하는 것도 은혜이고!

예수 믿다가 손해보고 욕 먹는 것도 다 은혜에요.

 

어째서 예수 믿다가 욕 먹는 것도 은혜가 되는가요?

이는 예수 때문에 욕을 먹기 때문입니다.

예수 자체가 은혜 덩어리에요.

그러므로 예수 때문에 당하는 모든 것이 은혜가 되는 것입니다.

 

예수 믿고 잘 되는 것도 은혜이고!

예수 믿고 망하는 것도 은혜에요.

모두가 예수를 믿는다는 것 때문에 나타나는 일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사나 죽으나 하나님의 은혜라고 한 것입니다.

 

이렇게 은혜로 행하는 것을 야고보서에서는 믿음으로 행한 행함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 행함이 없으면 가짜에요.

이건 우리더러 행하라는 말이 아니에요.

 

은혜를 받은 자들에게는 반드시 나타나는 현상을 말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오해하기를 이런 행함을 이야기 하면 마치 행위를 가르치는 것으로 오해하고 있어요.

행위와 행함은 달라요.

 

행위는 그 행위로 자기 의를 쌓는 것이고!

행함은 그 행함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드러내는 것이에요.

나에게 격발이 된 이 행위가 그 근원이 무엇인지를 살펴보세요.

하나님의 은혜입니까?

아니면 자기 열심입니까?

 

자기 열심이면 반드시 그가 행한 것을 근거로 자기 영광을 챙기게 되어 있어요.

이걸 뇌물이라고 했습니다.

이렇게 뇌물식으로 신앙생활 한 자들이 마태복음 7장 21-23절에 나오는 자들이에요.

 

마태복음 7장을 봅시다.

 

마 7:21-23=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22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치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23 그 때에 내가 저희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

 

잘 보세요.

많은 사람들이 주님 앞에 나옵니다.

이들이 무엇을 근거로 나옵니까?

자기가 행한 것들을 들고 나오지요.

 

주님 앞에는 자기가 행한 것들을 들고 나오면 안 되어요.

은혜를 앞세우고 나와야 해요.

자기가 행한 것을 근거로 나온다는 것은 자기가 행한 것에 의미를 두고 있다는 말입니다.

이게 불법이에요.  

불법이 뭐냐?

은혜 아니면 모두가 불법이에요.

 

고린도전서 13장을 보세요.

 

고전 13:1-3= “내가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말을 할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소리 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과리가 되고 2 내가 예언하는 능이 있어 모든 비밀과 모든 지식을 알고 또 산을 옮길 만한 모든 믿음이 있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가 아무 것도 아니요 3 내가 내게 있는 모든 것으로 구제하고 또 내 몸을 불사르게 내어 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게 아무 유익이 없느니라”

 

천사의 말을 할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꽝이라고 하지요.

천사의 말이 뭔가요?

복음 전하는 거에요.

예언하고 비밀을 말하고 산을 옮길 정도로 열심을 다하고 자기 몸을 불사를 정도로 헌신하고 구제하고 봉사한다고 할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꽝이라고 하지요.

 

마태복음 7장에 나오는 사람들이 들고 나온 것이 뭔가요?고린도전서 13장의 것들이에요.

여기에 뭐가 빠졌나요?

사랑이 빠졌어요.

 

이걸 제사만 지냈지 그 안에 정작 담겨져야 할 긍휼이 빠졌다고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제사를 원하지 않고 긍휼을 원하세요.

이는 제사를 지내지 말라는 말이 아니고 제사 속에 긍휼을 담으란 말입니다.

즉 무슨 일이든지 그 일 속에 하나님의 은혜를 담으란 말입니다.

 

은혜가 담겨져 있으면 그 일을 자랑할 것이 아니라

그 은혜의 영광을 찬미하는 것으로 나오게 되어 있어요.

일은 은혜가 일으킨 사건이에요.

그럼 일을 자랑 할 것이 아니라 그 은혜를 자랑하여야지요.

이걸 사도 바울은 나의 나 된 것은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라고 하는 것입니다.

 

일을 자랑한다는 것은 그 일을 행한 자기 자신도 자랑스럽다는 것입니다.

내가 자랑스러우면 안 되어요.

예수님이 자랑스러워야 해요.

 

예수님은 생명이십니다.

생명이란? 살아서 움직이는 것입니다.

그 생명이 우리 안에 들어오셨어요.

그 생명이 우리 몸을 가지고 자기의 것을 토해냅니다.

 

생명은 명사(名詞)적인 것입니다.

그런데 그 생명이 일을 하는 것은 동사(動詞)적으로 나타나요.

생명이 우리 안에 오시면 고정되어 있는 명사적으로 계시지 않고 살아서 움직이는 동사적으로 활동을 해요.

 

우리 몸에 묵시 속에서 명사로 계시던 말씀이신 하나님이 예수라는 생명으로 오셨습니다.

이 예수라는 생명이 우리 몸에서 살아서 예수라는 생명을 나타내는 동사로서 움직이며 일을 하세요.

나타날 때마다 예수가 나타나요.

 

우리 몸은 화면과 같아요.

예수님이 우리 안에서 예수님의 그림들을 그려내세요.

그럼 우리 몸에서 예수의 그림들이 그려지게 됩니다.

 

이 그림들이 바로 성령의 열매입니다.

성령이 맺게 하였기 때문에 성령의 열매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 안에 성령에 계신 성도는 이걸 알아요.

그러므로 어떤 일을 해도 자기를 자랑하지 않고 그 은혜에 감사하고 찬송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걸 믿음으로 한 행함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성경은 믿음을 명사로 말하지 않고 동사로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걸 사역(使役) 동사라고 해요.

믿음을 사역 동사라고 하는 것은 믿음이 어떤 사역 즉 어떤 일들을 한다는 말입니다.

무슨 일을 하는가 하면 성도들 안에서 예수의 주 되심을 드러내는 일을 하세요.

 

이걸 묵시와 역사로 이야기해 봅시다.

묵시는 명사적인 것입니다.

명사적으로 계시던 그 말씀이신 하나님이 “나(우리)” 라는 역사 속으로 들어오셨습니다.

우리가 역사에요.

우리 안에 예수님이 오셨어요.

 

이게 창세기 1장의 천지창조로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태초에 계시던 그 하나님이 천지(성도)라는 역사 속으로 오셨습니다.

역사가 우리라고 했잖아요.

 

그러니까 부활하신 예수님이 지금 우리 안에 오셔서 창조의 일을 하세요.

예수님이 묵시에서는 하나님 말씀이라는 명사로 계셨는데 ,

사(우리 몸) 속에 예수로 오셔서는 동사적으로 일을 하시는 것입니다.

 

무슨 일을 하십니까?

예수님 속에 있는 생명을 우리 몸으로 표현하는 일들을 하시는 것입니다.

마치 창세기 1장의 내용처럼 천지 속에다가 만물을 채우듯이 우리 안에 자신의 생명을 뿌려서 생육하고 번성하고 충만하게 하는 일을 하세요.

그 천지가 바로 성도들의 몸인 것입니다.

 

성도들의 몸은 예수님의 밭이에요.

예수님이 성도들의 몸 속에서 예수님의 생명을 생육하고 번성하고 충만케 하는 일을 하십니다.

그러므로 성도의 삶은 예수의 삶으로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이 모두가 믿음이 사역 동사로서 일을 해 내시기 때문입니다.

 

구약에 선지자들이나 신약의 사도들을 보세요.

모두가 성령에 의하여서 예수님의 삶을 살아갔어요.

성령이 예수님의 운명 속으로 끌어 당겨서 살게 하였어요.

그래서 성령이 임하게 되면 그 성령이 성도로 하여금 예수님이 걸어 가셨던 그 길을 걸어가게 하시는 것입니다.

 

이건 우리가 온전하냐 아니냐 라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고 이러한 삶에 지향성들이 나타난다는 말입니다.

삶에 지향성을 말하는 것이지 온전하게 살았느냐 아니냐를 말하는 것이 아니에요.  

그러므로 복음을 받으면 아무 것도 안하고 가만히 있는 것이 없어요.

더 적극적으로 하게 되어 있어요.

 

더 열심히 모이고!

더 열심히 사랑하고!

더 열심히 봉사하게 되어 있어요.

이 모두가 예수의 생명이 그 안에서 일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가 부활 했어요.

그 부활 하신 예수가 우리 안에 오셨어요.

우리 안에 오신 것은 우리 몸을 가지고 예수로 살아내게 하시기 위함입니다.

 

그래서 그 안에 예수님이 계신 성도는 예수님께서 하신 일들을 증거하고!

또한 예수님이 사셨던 것을 살아내게 되는 것입니다.

여기에 우리는 날마다 부인 되어지는 것입니다.

이걸 자기 십자가를 지고 예수를 좇는다고 합니다.

 

오순절 성령이 임하고 나자 초대교회 성도들이 어떻게 살던가요?

날마다 모여서 떡을 떼며 교제하고 하나님 말씀을 상고하고 그 은혜의 영광을 찬미하고 감사하는 일들을 하였지요.

이는 그 속에 예수님이 살아서 역사를 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럼 묻습니다.

오순절 성령을 받은 성도들과 지금 성령을 받은 성도들은 다른가요?

초대교회 성도들은 큰 성령을 받았고!

우리는 작은 성령을 받았는가요?

 

아니지요.

동일한 성령을 받았지요.

성령은 어제나 오늘이나 동일해요.

예수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해요.

 

초대교회 성도들도 성령에 의해서 예수를 주라고 시인하였고!

우리도 성령으로 예수를 주라고 시인해요.

모두가 한 성령을 마셨어요.

 

그럼 사도행전에 나오는 초대교회 성도들의 모습과 이 시대 성령 받은 성도들의 모습이 동일하게 나타나야 하겠지요.

왜냐하면! 초대교회 성도들 안에도 예수님이 살아서 그들을 천국 백성으로 살게 하였듯이!

지금도 예수님이 성도들 안에서 천국의 삶을 살게 하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되면 초대교회 성도들은 하나의 기준이 되는 것입니다.

후대에 나타날 성도들의 모본이 된단 말입니다.

우린 초대교회 성도들을 통해서 고발을 당해야 해요.

 

그래서 제가 그러는 겁니다.

공교하게 그럴 듯한 논리로 지은 말에 현혹당하지 말고 성경 속에 성도들이 어떻게 살았는지 성경을 상고해 보라고 하는 것입니다.  

제발 성경을 보세요.

성경 속에 믿음에 사람들이 어떻게 살았는지를 보세요.

  

초대교회 성도들이 극심한 고난 가운데서도 믿음을 지킬 수 있었던 것은 성령에 의해서입니다.

그럼 우리도 성령의 능력으로 세상을 이길 수가 있어요.

세상을 이기며 사는 자가 성령을 받은 성도에요.

성령은 믿음을 지키도록 해 주시기 때문입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을 천국으로 살게 하신 것도 성령이세요.

그 성령이 지금 우리 가운데 와 계세요.

그럼 우리도 그 성령의 능력으로 천국의 맛을 누리게 되어요.

 

교회의 머리는 예수님입니다.

그럼 그 안에 성령이 거하는 성도들의 머리도 예수님이십니다.

예수님이 성도 안에서 당신의 생명을 가지고 토해내게 하세요.

이럴 때 예수님에게 속한 생명의 풍성함들이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이걸 일컬어 성령의 열매라고 합니다.

이 열매는 우리가 맺는 것이 아니고 성령이 성도 안에서 맺게 하세요.

베드로는 이걸 신의 성품이라고 했어요.

이러한 신의 성품이 없는 자는 가짜라고 했어요.

 

스스로 확증해 보세요.

나는 예수로 살고 있는가?

나는 천국으로 사는가?



초대교회 성도들만 고난 속에서도 천국으로 산 것이 아니에요.

어느 시대나 그 안에 성령이 거하는 성도들은 하나같이 다 고난 가운데서도 천국으로 살았어요.

천국으로 산다는 것은 천국에 가치로 산다는 말입니다.

 

신앙생활이란? 머리로 도(道) 닦는 것이 아니에요.

성경적 지식을 쌓는 것이 아니에요.

어떤 심오한 진리를 깨닫고 잘난 척 주저리 주저리 하는 것이 아니란 말입니다.

예수의 생명을 삶으로 살아내는 것이에요.

 

삶이 없는 것은 죽은 것이에요.

이처럼 예수로서의 삶이 없는 것은 죽은 신앙인 것입니다.

이걸 야고보서에는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라고 하고 이런 믿음을 귀신의 믿음이라고 한 것입니다.

 

마귀가 어떤 자인가요?

속이는 자에요.

어떻게 속이는가요?

 

행함이 없는 믿음으로 속이는 것입니다.

행함과 믿음을 분리 시켜서 이원론으로 만들어 버려요.

그러니까 여기에 걸려들면 말만 무성하고 삶이 없어지는 것입니다.

바울은 이런 자들을 일컬어 변론을 좋아하고 논쟁을 하여서 분쟁을 일으켜 교회에 무너뜨리는 거치는 자라고 했습니다.

 

예수가 그 안에 있나요?

그럼 예수로 사세요.

행위다 아니다 따지지 말고!

그냥 믿어지는 것으로 사세요.

 

누가 알아주든지 안 알아주든지 괘념치 말고 자신이 받은 그 은혜로 사세요.

누가 그걸 행위라고 하든지 말든지 신경 쓰지 말고 사세요.

기쁘면 기쁨을 표현하고!

감사하면 감사를 몸으로 표현하세요.

 

성도의 행함을 행위냐 아니냐 따지지 말고!

그 은혜가 너무도 감사하여서 하시면 그건 은혜이지 행위가 아니에요.

꼭 일을 안 하는 자들이 성도의 삶을 이분법적으로 나누어서 행위냐 믿음이냐 따져요.

 

디도서 1장을 봅시다.

 

딛 1:10-13= “복종치 아니하고 헛된 말을 하며 속이는 자가 많은 중 특별히 할례당 가운데 심하니 11 저희의 입을 막을 것이라 이런 자들이 더러운 이를 취하려고 마땅치 아니한 것을 가르쳐 집들을 온통 엎드러치는도다 12 그레데인 중에 어떤 선지자가 말하되 그레데인들은 항상 거짓말장이며 악한 짐승이며 배만 위하는 게으름장이라 하니 13 이 증거가 참 되도다 그러므로 네가 저희를 엄히 꾸짖으라”

 

딛 1:15-16절 “깨끗한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깨끗하나 더럽고 믿지 아니하는 자들에게는 아무 것도 깨끗한 것이 없고 오직 저희 마음과 양심이 더러운지라 16 저희가 하나님을 시인하나 행위로는 부인하니 가증한 자요 복종치 아니하는 자요 모든 선한 일을 버리는 자니라”

 

먼저 15-16절을 설명합니다.

깨끗한 자가 하는 것은 모두가 깨끗하고 더러운 자가 하는 것은 다 더럽다고 하지요.

무슨 말인고 하니 은혜로 행하는 사람에게는 모든 것이 은혜이고 감사이지만!

은혜로 행하지 않는 자에게는 모든 것이 행위가 된다는 말입니다.

 

그 안에 은혜가 있는 사람은 행위다 아니다 따지지 않아요.

하지만 그 속에 법이 자리 잡고 있으면 행위냐 아니냐 따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이런 자들은 주둥이로만 예수를 믿는 자들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가증한 자라고 하잖아요.

 

그 안에 은혜가 있는 성도는 이 일이 행위냐 아니냐 따지지 않아요.

그냥 감사함으로 해요.

이건 누가 시켜서 하지 않아요.

자발적으로 해요.

 

모두가 자발적으로 그 은혜가 너무도 크고 감사하여서 감사함으로 해요.

누가 알아주든지 안 알아주든지 상관치 않고 자기가 받은 그 은혜로 섬기고 베풀어요.

모두가 기쁜 마음으로 해요.

 

울산목양교회 안에서도 이렇게 살아가는 성도들이 있어요.

또한 미국에 계신 모퉁이돌 모임 안에서도 있어요.

사도 바울은 서신서 마다 이런 사람들의 이름을 일일이 거명하면서 칭찬했어요.

저도 다니는 곳마다 이런 성도들의 신앙을 간증하고 있어요.

 

아니~ 이렇게 기뻐하고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잘못된 것인가요?

아니면 복음 안다고 하면서 아무 것도 안 하고 사는 자들이 잘못인가요?

스스로 판단해 보세요.

여러분은 어떤 부류입니까?

 

산 나무에서 꽃이 피듯이!

그 안에 예수가 살아 있는 사람에게서 예수의 생명이 나오는 것이 지극히 정상이에요.

안 나온다는 것은 그 예수는 죽은 예수에요.

지식으로 알아진 예수이니까 생명으로 나타나지 않는 것입니다.

 

산 나무에 물을 주면 싹을 내고 꽃을 피우지만!

죽은 나무에 물을 주면 썩어 버려요.

그러니까 산 예수를 모시고 사는 성도는 물가에 심기운 나무처럼 생명이 풍성해 져요.

하지만 예수를 지식으로 알고 있는 자들은 성경을 알면 알수록 더욱 더 패역해 지고 완악해 지고 부정적인 사람이 되고 영적 깡패가 되어가는 것입니다.

 

바울은 이런 자들을 뭐라고 하던가요.

거짓말쟁이고 악한 짐승이고 게으름쟁이라고 하지요.

마땅치 않은 것을 가르쳐서 집으로 온통 엎드러지게 하는 자들이라고 합니다.

다시 말해서 교회에 거치는 자들이란 말입니다.

 

이런 자들을 엄히 꾸짖으라고 하지요.

왜? 꾸짖겠어요.

틀렸기 때문입니다.

이런 자들이 바로 영지주의자들이에요.

복음을 자기 사욕으로 이용하는 자들이에요.

 

초대교회 당시에 이런 자들이 교회를 어지럽게 하고 성도들의 신앙을 엎드러지게 하였다고 한다면 지금도 이런 자들이 있겠지요.

맞아요.

있어요.

 

이런 자들이 어디에 많다고 합니까?

할례당에게 많다고 하지요.

할례당이 누구인가요?

자칭 복음 안다고 하는 자들에게 많다는 말입니다.

 

만약에 복음의 내용을 지적으로 동의하는 것이 신앙이라고 한다면 마귀도 구원을 받아야 해요.

왜냐하면! 마귀도 하나님과 예수에 대하여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사도행전 19장을 봅시다.

 

행 19:12-16= “심지어 사람들이 바울의 몸에서 손수건이나 앞치마를 가져다가 병든 사람에게 얹으면 그 병이 떠나고 악귀도 나가더라 13 이에 돌아다니며 마술하는 어떤 유대인들이 시험적으로 악귀 들린 자들에게 대하여 주 예수의 이름을 불러 말하되 내가 바울의 전파하는 예수를 빙자하여 너희를 명하노라 하더라 14 유대의 한 제사장 스게와의 일곱 아들도 이 일을 행하더니 15 악귀가 대답하여 가로되 예수도 내가 알고 바울도 내가 알거니와 너희는 누구냐 하며 16 악귀 들린 사람이 그 두 사람에게 뛰어올라 억제하여 이기니 저희가 상하여 벗은 몸으로 그 집에서 도망하는지라”

 

약 2:19 “네가 하나님은 한 분이신 줄을 믿느냐 잘 하는도다 귀신들도 믿고 떠느니라”

 

잘 보세요.

귀신들도 하나님을 안다고 하지요.

그리고 예수를 믿지 않는 사람들이 바울의 손수건을 가지고 병도 고치고 귀신도 쫓아냈어요.

 

스게아의 일곱 아들도 그랬어요.

그러자 귀신들이 그러잖아요.

야! 이놈아 나는 예수도 알고 바울도 아는데 네 놈들은 누구냐 라고 하면서 혼쭐을 내잖아요.

 

무슨 말인가요?

예수를 지식으로 아는 것이 신앙이 아니란 말입니다.

신앙이란? 예수로 사는 것이에요.

 

예수가 생명이기 때문에 지식으로 머물 수가 없어요.

예수님이 우리 안에서 우리 몸을 도구로 하여서 예수님의 생명을 살아 내신단 말입니다.

이건 지극히 정상적인 것이에요.

 

이건 마치 살아 있는 사람이 움직이는 것과 같아요.

반대로 죽은 자는 움직이지 않는 것과 같은 이치에요.

그러니까 믿음과 행함을 분리하여서 해석하고자 하지 마세요.

 

아니~ 산 사람이 살아서 움직이는 것을 가지고 당신 그러면 안 돼!

그건 죄냐!

그러면 우짭니까?

 

복음을 곡해하는 자들이 성도가 행하는 모든 것은 죄라고 하니까

그의 가르침을 받은 자들은 마치 믿음으로 행하는 그것도 죄가 되는 줄 알고 있어요.

그래서 아무 것도 안 해요.

그러면서 성도의 삶을 이야기 하면서 무조건 그것은 행위 아니냐 라고 지랄을 떨어요.

 

이건 아니에요.

믿음으로 행하는 것은 감사의 표현이고 은혜 받음에 대한 반응이에요.

믿음으로 행하는 것은 은혜이지 결코 죄가 될 수가 없어요.

그렇다고 한다면 사도들이나 초대교회 성도들이 행한 것들을 성경은 죄라고 해야 한단 말입니다.

 

그러나 성경 어디에도 그들의 신앙적 삶을 죄라고 한 적이 없어요.

아니! 오순절 성령 강림 후에 성도들이 재물을 교회에 바친 것을 죄라고 하던가요?

날마다 교회로 모여서 떡을 떼며 나눈 것이 죄라고 하던가요?

마게도냐 교인들이 예루살렘 교회를 위하여 연보한 것을 죄라고 하던가요?

아니잖아요.

 

바울은 도리어 하나님의 은혜라고 칭찬을 했어요.

그런 걸 하라고 했어요.

연보도 인색함으로 하지 말고 미리 미리 준비 했다가 풍성함으로 하라고 했어요.

바울이 서신서마다 사람들 이름을 거명하고 칭찬한 것은 그들이 은혜로 행한 일 때문이에요.

바울은 성도의 행함을 하나님의 은혜로 보았기 때문에 장려하고 칭찬을 한 것입니다.

 

지금 제가 행함에 포카스를 맞추고 있는 것이 아니고,

예수의 생명은 이렇게 나타난다는 것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믿음 없는 행함은 죄가 되지만 믿음으로 행한 행함은 귀한 은혜에요.

믿음으로 행한 행함을 베드로는 하나님이 공급하는 힘이라고 했어요.

이게 예수로 사는 자들의 움직임이에요.

 

율법주의도 안 되지만!

무 율법주의도 안 되어요.

행함을 가르치는 자도 안 되지만!

행할 필요가 없다고 가르치는 자도 안 되어요.

 

즉 하나님 말씀대로 살아서 거룩해져야 한다고 하는 성화주의자도 안 되지만!

복음을 안다고 하면서 죄인이 하는 것은 모두가 죄라고 하면서 아무 것도 할 필요가 없다고 하는 자들도 안 되어요.

 

신앙생활이란? 예수의 생명으로 사는 것입니다.

예수의 생명으로 사는 것에는 율법의 정죄함으로부터 자유하며 사는 것도 있지만!

예수님의 마음으로 살아가는 것도 있어요.

이 둘은 분리 될 수가 없어요.

 

무슨 말인고 하니 누구든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다는 것을 믿음으로 자기 행위로부터 자유하고 사는 것도 있지만!

예수님의 성품적인 것들로 살아내는 것도 있어요.

 

믿음과 행함은 분리 할 수가 없어요.

마치 무용수와 그의 행동을 분리할 수가 없는 것과 같아요.

무용수의 행동이 무용이듯이 성도가 믿음으로 사는 것이 곧 행함인 것입니다.

 

믿음으로 행하나요?

그럼 그건 행위가 아니고 은혜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사랑 안에서 행하는 모든 것은 은혜입니다.

 

예수가 믿어진다는 것이 기쁘지 않나요?

그 기쁨을 몸으로 표현하세요.

믿음으로 표현되어지는 것은 모두가 주님의 영광이에요.

 

무용수가 자기 안에 있는 것을 춤으로 표현해 내는 것이 영광이듯이!

믿음이 우리 안에서 기쁨이 되어서 우리 삶 속에서 은혜와 사랑으로 나타나는 것은 주님의 영광이 되는 것입니다.

 

부디 성령 안에서 주어지는 의와 평강과 희락이 관념이 아니라 실제로 우리들의 삶 속에서 나타나지기를 축원합니다.

 

 

기도합시다.

하나님 아버지! 우리의 상식과 이성으로는 예수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을 믿을 수 없음에도 믿음을 선물로 주셔서 믿어지게 해 주신 것을 감사합니다. 이 믿음이 우리 안에서 예수님의 생명으로 나타나게 일하심도 감사합니다. 신앙의 내용들이 사라져 가는 시대에 믿음이 관념이 아니라 생명으로 하루 하루의 삶 속에서 살아지게 해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여호와의 정하신 날"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보라 용광로 불 같은 날이 이르리니

교만한 자와 악을 행하는 자는 다 지푸라기 같을 것이라

말라기 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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