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 빛 사랑

시 3:5 내가 누워 자고 깨었으니 여호와께서 나를 붙드심이로다

♣(성경강해)21강. 집에 생기는 문둥병 (레 14:33-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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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강해/레위기 강해

2021. 10. 5.

레 14:33-34절. “여호와께서 모세와 아론에게 일러 가라사대 34. 내가 네게 기업으로 주는 가나안 땅에 너희가 이른 때에 내가 너희 기업의 땅에서 어느 집에 문둥병 색점을 발하게 하거든 35. 그 집주인은 제사장에게 와서 고하기를 무슨 색점이 집에 생겼다 할 것이요”

 

 

딤후 3장 12-15 

무릇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자는 박해를 받으리라 악한 사람들과 속이는 자들은 더욱 악하여져서 속이기도 하고 속기도 하나니 그러나 너는 배우고 확신한 일에 거하라 너는 네가 누구에게서 배운 것을 알며 또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았나니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

 

 

21강. 집에 생기는 문둥병 (레 14:33-57)

-.정낙원 목사

 


여호와께서 모세와 아론에게 하나님이 주시는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집을 짓고 살다가 그 집에 문둥병이 생기면 제사장에게 고하여서 문둥병 정결의식을 행하라고 합니다.

몸에 문둥병이 든다는 것은 들어 보아도 집에 문둥병이 든다는 말은 생경합니다.

 

알다시피 문둥병은 사람에게 생기는 것입니다.

악성 피부병을 말합니다.

옷이나 집에 생기는 것은 곰팡이 균을 말합니다.

그럼에도 하나님은 곰팡이 균과 문둥병을 동일시하여서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이는 곰팡이 균과 문둥병의 특징이 동일하기 때문입니다.

 

둘 사이에는 영적 의미가 있습니다.

곰팡이나 문둥병은 주변으로 옮기면서 썩게 합니다.

마치 감귤 상자 속에 썩은 감귤 하나가 주변의 감귤에 전염을 시켜서 썩게 하는 것과 같습니다.

 

곰팡이 균과 문둥병은 모두 죄를 상징하고 있습니다.

죄는 부패케 하는 것이므로 곁에 둘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발생 즉시로 제거하고 치료하라는 것입니다.

 

잘 보시면 그 냥 집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기업으로 주시는 땅이고 하나님이 주시는 집입니다.

이스라엘은 원래 종입니다.

 

종은 기업이 없습니다.

물론 집도 없습니다.

이스라엘이 거주하는 땅도 하나님 땅이고 우거하는 집도 하나님의 집입니다.

그러므로 집에 문둥병이 발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집에 거룩성을 해치고 있다는 뜻이 됩니다.

 

레위기는 어린 양의 피로 출애굽 한 백성들에게 주신 말씀입니다.

출애굽 한 백성들은 어린 양의 피로 거룩함을 입었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거룩을 지켜야 합니다.

 

레위기는 하나님이 주신 거룩을 어떻게 지켜나가야 하는지를 설명하고 있는 책입니다.

그러므로 사람에게나 옷이나 생활용품이나 가옥에 번진 문둥병 이야기는 하나님의 집에 거룩을 지키는 이야기가 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유월절 어린 양의 피로 구원을 받고 출애굽을 하여서 가나안으로 들어 왔습니다.

가나안에 들어 올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하신 언약 때문입니다.

그 언약은 하나님이 홀로 지키셨습니다.

하나님이 언약을 지키신 결과로 가나안 땅에 들어 온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주신 기업이라 하고 하나님이 주신 집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출애굽을 하실 때 애굽의 모든 장자들을 죽일 때 이스라엘 백성들의 집에는 어린 양의 피를 문에다 바르게 하여서 죽음의 재앙으로부터 구원해 주셨습니다.

죽음은 죄의 삯입니다.

죽음에서 살아난 것은 죄 문제가 사해졌다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집을 어린 양의 피로 죄에서 지켜 주신 것입니다.

어린 양의 피가 뿌려진 이스라엘의 집은 교회를 상징합니다.

교회는 음부(죄와 사망)의 권세가 이기지 못합니다.

이는 어린 양의 피가 죄와 사망으로부터 지켜 주시기 때문입니다.

 

가나안에 들어간 이스라엘은 독자적인 거룩으로 살아가는 자가 아니라 어린 양의 피 안에서 거룩함을 입음으로서 살아가는 자들입니다.

출애굽 한 이스라엘은 어린 양의 피 안에서 한 날 한 시에 태어난 한 가족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어린 양의 피로 생겨난 이스라엘은 사람이든 집이든 하나님께 대한 거룩을 지키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죄를 멀리하여야 합니다.

그래야 거룩하신 하나님과 동행 할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거룩케 하는 일을 하시는 것입니다.

그것이 문둥병을 치료하는 것과 정결의식 속에 담겨져 있는 것입니다.

 

구약 이스라엘은 야곱의 12 아들과 그 후손들이 12 지파로 국가를 형성하고 있습니다.

한 가족이 국가를 형성하고 있는 종교집단입니다.

크게는 12 지파이지만 신앙 안에서는 하나입니다.

이를 신약에서는 교회라고 합니다.

 

교회를 예수 그리스도의 몸이라고 하는 것은 예수 안에서 나왔기 때문입니다.

교회는 건물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구원을 받은 한 가족들의 모임인 것입니다.

이렇게 예수 안에서 한 가족으로 모인 곳을 하나님이 거하는 집이라고 합니다.

 

집이나 사람이나 동일한 것입니다.

그래서 집에 걸린 문둥병을 진단하는 법과 정결의식을 사람의 문둥병 진단법과 정결의식과 동일한 모습으로 행하는 것입니다.

 

왜 집과 사람의 문둥병 정결의식을 동일하게 할까요?

이는 교회란 성도들의 모임이기 때문입니다.

성도 한 사람 한 사람이 성전의 건물의 벽돌처럼 연결이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성도를 성령이 거하는 전(집)이라고 하는 이유도 모든 성도가 한 성령 안에서 예수그리스도의 몸으로 부르심을 입었기 때문입니다.

제사장들이 구약의 이스라엘 백성들의 집에 번진 문둥병을 어떻게 처리 하는지를 보면 예수님께서 신약의 교회를 어떻게 거룩을 지켜나가는지를 알 수가 있습니다.

 

그럼 제사장들이 집에 문둥병을 어떻게 처리 하는지를 살펴봅시다.

 

어떤 집에 문둥병의 조짐이 보이면 즉시로 제사장에게 가서 알립니다.

그럼 제사장은 그 집 안에 있는 모든 물건들을 집 밖으로 꺼내게 하고 그 집에 거하는 사람들을 즉시로 그 집에서 나오도록 합니다.

 

집을 완전히 비우고 난 후에 제사장이 가서 진단을 합니다.

만약에 문둥병이라는 의심이 들면 사람들이 출입하지 못하도록 집을 완전히 폐쇄 조치를 하고 난 후에 제사장이 7일 동안 관찰을 합니다.

 

7일 후에 문둥병이 조금이라도 더 번졌으면 문둥병이라고 결론을 내립니다.

번졌다는 것은 균이 살아서 확장되어 가고 있다는 뜻이기 때문입니다.

제사장은 일단계로 병이 든 벽돌을 빼내고 또한 그 주변에 흙들을 다 긁어내서 이스라엘 진 바깥 더러운 것들을 버리는 곳에 갖다 버리게 합니다.

 

그리고 새로운 돌을 취하여서 빼낸 돌을 대신하여서 채웁니다.

또한 깨끗한 흙을 가지고 긁어낸 자리에 도배를 하듯이 바릅니다.

그리고 다시 7일 동안 관찰을 합니다.

그럼에도 병이 사라지지 않고 조금이라도 남아 있으면 그 집은 수선을 해도 집 깊숙이 문둥병 균이 침투해 있기 때문에 사용불가 판정을 하고서 그 집은 허물고 다시 지으라고 합니다.

 

집은 교회를 상징합니다.

문둥병에 걸린 집을 허물고 새로운 집으로 지으라는 것은 죄와 사망의 권세를 이기지 못하는 교회는 하나님께서 허물어 버린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어떤 교회를 허무는가요?

예수님이 오셔서 어떤 교회를 허무셨는가를 보면 그 답을 알 수가 있습니다.

예수님은 초림 때 옛 언약인 율법 신앙으로 세워진 예루살렘 성전을 이 집은 더 이상 하나님의 집이 아니고 강도의 굴혈이라고 하면서 허물어버렸습니다.

이는 구약 교회를 허문 것입니다.

 

왜 구약 교회를 허물었을까요?

이는 율법 신앙으로는 죄와 사망 권세를 이길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율법으로 세워진 교회는 고쳐서 쓸 수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율법 지킴 속에는 인간의 의가 깊숙이 침투해 있기 때문입니다.

 

율법 신앙은 인간의 의를 근거로 하는 신앙입니다.

죄 아래서 태어난 인간의 의는 더러운 찌끼와 같습니다.

사도 바울은 배설물이라고 하였습니다.

배설물과 같은 인간의 의로는 거룩한 하나님이 거하는 성전을 지을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오셔서 허물어 버린 것입니다.

 

예수님은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으라고 하였습니다.

헌 부대는 새 술을 담을 수가 없습니다.

새 그릇에 담아야 합니다.

 

예수님의 피로 맺은 새 언약은 새 술입니다.

새 언약이라는 새 술은 율법으로 세워진 구약 교회는 담아 낼 수가 없습니다.

새로운 교회라야 담을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구약의 성전은 돌 하나도 돌 위에 덧놓이지 않고 다 허물어버린 것입니다.

 

하나님이 거하시는 성전은 하나님의 의로만 지을 수가 있습니다.

그 하나님의 의가 바로 예수그리스도의 피로 거룩케 한 의입니다.

하나님은 예수그리스도의 피로 세운 새 언약 신앙으로 새로운 성전을 지으십니다.

 

예수님이 새로운 성전의 기초석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모퉁이 돌이라고 하고 새 언약으로 생겨난 성도들을 그 집에 돌들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벧전 2:4-10절. “사람에게는 버린 바가 되었으나 하나님께는 택하심을 입은 보배로운 산 돌이신 예수에게 나아와 5. 너희도 산 돌 같이 신령한 집으로 세워지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기쁘게 받으실 신령한 제사를 드릴 거룩한 제사장이 될찌니라 6. 경에 기록하였으되 보라 내가 택한 보배롭고 요긴한 모퉁이 돌을 시온에 두노니 저를 믿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치 아니하리라 하였으니 7. 그러므로 믿는 너희에게는 보배이나 믿지 아니하는 자에게는 건축자들의 버린 그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고 8. 또한 부딪히는 돌과 거치는 반석이 되었다 하니라 저희가 말씀을 순종치 아니하므로 넘어지나니 이는 저희를 이렇게 정하신 것이라 9. 오직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데서 불러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자의 아름다운 덕을 선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10. 너희가 전에는 백성이 아니더니 이제는 하나님의 백성이요 전에는 긍휼을 얻지 못하였더니 이제는 긍휼을 얻은 자니라”

 

하나님께서 예수그리스도를 신령한 집의 모퉁이 돌로 삼으셨습니다.

그리고 예수그리스도로 낳아진 성도들을 신령한 집의 벽돌들이 되게 하였습니다.

신령한 집을 일컬어 거룩한 나라라고 하고 신령한 집에 사용된 벽돌들인 성도들을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이라고 합니다.

 

전에는 하나님의 백성이 아닌 자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수그리스도의 피로 하나님의 백성으로 삼으신 것입니다.

이는 아름다운 덕을 선전하고자 함입니다.

 

아름다운 덕이란? 예수그리스도의 피 흘리심으로 구원을 받아서 하나님의 백성이 된 것입니다.

마땅히 저주 받아야 할 자가 예수그리스도의 피 흘리심 안에서 용서 받았음을 감사하고 찬송하라는 것입니다.

이를 그 은혜의 영광을 세세토록 찬미한다고 합니다.

 

예수님이 오셔서 친히 제사장이 되어서 구약 교회를 진단해 보았습니다.

3년 동안 고치려고 해 보았습니다.

그러나 점점 더 확산이 되어서 치료 불가 판정을 내렸습니다.

문둥병이 온 집안에 가득하였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친히 그 문둥병을 몸에 짊어지고 진 밖에 나가서 고난을 받으셨습니다.

 

예수님은 참 제사장이 되어서 야곱의 12 아들로 세워진 이스라엘 민족이라는 구약의 교회를 완전히 허물고 새로 지었습니다.

그것이 신약의 12 제자로 나타났습니다.

예수님은 12 제자를 가지고 새로운 교회를 세우신 것입니다.

 

신약의 교회는 예수님의 피로 세워졌습니다.

예수님의 피 뿌림을 입은 자들이 그리스도의 몸이라는 교회를 세워갑니다.

성도는 예수그리스도의 피로 세워진 새로운 성전의 벽돌입니다.

 

엡 2:20-22절. “너희는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 위에 세우심을 입은 자라 그리스도 예수께서 친히 모퉁이 돌이 되셨느니라 21. 그의 안에서 건물마다 서로 연결하여 주 안에서 성전이 되어가고 22. 너희도 성령 안에서 하나님의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하여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느니라”

 

성전은 하나님이 거하는 집입니다.

하나님의 집에는 하나님의 의로만 가득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공로만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거하는 집은 하나님이 지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친히 하나님이 거하는 집을 짓겠다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이 거하는 집을 짓고자 오신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내가 처소를 예비하면 우리에게로 다시 오셔서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이 거하실 성전으로 만들어 주시겠다고 하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스스로를 성전이라고 하시고 성령이 그 안에 거하는 자도 성전이라고 하셨습니다.

 

구약 교회는 인간의 의로 가득했습니다.

이건 고쳐서 쓸 수가 없습니다.

치료불가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인간의 의로 가득한 구약 교회를 돌 하나도 돌 위에 덧놓이지 않게 완전히 무너뜨린 것입니다.

 

왜 돌 하나도 돌 위에 덧놓이지 못하게 하였나요?

쓸 만한 돌이 없기 때문입니다.

돌을 의인화 하면 구약 교회 교인들을 상징합니다.

 

구약 교회의 교인들은 율법의 의로 가득해서 치료가 불가합니다.

그래서 구약 교회 교인들을 상징하는 구약의 성전을 돌 하나도 돌 위에 덧놓이지 않게 다 허물어 버린 것입니다.

 

그리고 예루살렘에 거주 하던 이스라엘 민족들을 온 세계로 흩어버린 것입니다.

진 밖으로 쫓아낸 것입니다.

이는 문둥병이 걸린 돌들을 갖다 버린 것과 같은 것입니다.

온 세계로 흩어져 살게 된 이스라엘이 바로 진 밖에 버려진 돌들인 것입니다.

 

이들은 감람나무 비유에서 찍혀져 나간 가지라고 하였습니다.

때가 되면 하나님께서 잘려 나간 가지들에게 은혜를 베푸십니다.

그럼 진 밖에 있던 문둥병자가 나음을 입고 진 안으로 돌아오는 일들이 일어나게 됩니다.

이들 긍휼로 다시 접붙임을 받은 자들이라고 합니다.

 

우린 모두가 문둥병자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진 밖에서 살았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였습니다.

예수그리스도를 통해서 죄사함의 은혜가 주어진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 옛 사람을 십자가에서 죽이셨습니다.

우리 옛 사람은 문둥병에 걸린 자들입니다.

이건 고쳐서 쓸 수가 없습니다.

 

죄 아래서 난 우리의 몸속에는 죄의 균이 숨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우리의 옛 사람을 죽이신 것입니다.

그리고 성령으로 거듭나게 하여서 새로운 피조물로 창조하신 것입니다.

새로운 피조물을 성령이 거하는 전이라고 합니다.

 

새로운 피조물은 죽었다 살아나는 두 과정을 거치게 되어 있습니다.

이것이 두 세례로 나타났습니다.

물세례는 우리 옛 사람이 예수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서 죽임 당하는 것이고,

성령세례는 부활 하신 예수님이 성령으로 우리 가운데 오심으로 새로운 피조물로 거듭나서 하늘의 사람으로 살아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신약의 12 제자로 하나님이 거하시는 새로운 성전을 지었습니다.

그것이 오순절 성령 강림으로 세워진 초대 교회입니다.

초대교회는 완전히 예수그리스도의 의로 세워졌습니다.

신약 교회는 예수그리스도의 의로 주어진 거룩을 지켜야 합니다.

예수님이 친히 지켜나가십니다.

 

만약에 교회를 문둥병처럼 죄로 번지게 하는 자는 잘라내십니다.

이러한 자들은 문둥병에 걸린 돌들과 같습니다.

이건 진 밖으로 갖다 버려야 합니다.

신약에서는 이것을 출교라고 합니다.

 

예수그리스도의 피로 맺은 새 언약으로 세워진 새로운 집인 신약의 교회에서는 문둥병이 발하지 못하게 하여야 합니다.

신약의 문둥병은 예수그리스도의 의를 손상 시키는 일입니다.

신약에서의 거룩은 예수그리스도의 피 흘리심으로 주어진 의를 지키는 것입니다.

새 언약으로 세워진 신약의 교회와 성도는 예수그리그도의 의를 손상케 하는 그 어떤 것도 용납해서는 안 됩니다.

 

구약 이스라엘의 집에 생긴 문둥병은 신약의 교회 안에 침투한 죄를 상징합니다.

집에 문둥병이 생기기 못하게 하라는 것은 교회에 죄를 없이 하라는 뜻입니다.

구약의 집에 문둥병 걸린 돌을 빼내서 진 밖으로 버렸듯이 신약의 교회에서도 죄에 사로잡혀 있는 자는 분리 시켜야 합니다.

곰팡이가 생긴 돌은 타락한 성도를 말합니다.

 

새 언약으로 세워진 교회에서의 죄란 무엇인가요?

옛 언약적 사고입니다.

옛 언약적 사고는 인간에게 의미를 두는 것입니다.

인간의 행위를 의롭다 하는 것입니다.

 

신약에서의 죄는 인간적 의를 말합니다.

또한 이방인의 사고를 말합니다.

이방인들은 물질적 가치로 살아가는 자들입니다.

신약교회가 싸워야 하는 것은 인간의 의를 배격하고 이방인의 사고인 물질적 가치관이 자리 잡지 못하게 하는 것입니다.

 

성전의 벽돌 하나하나인 성도는 모두가 정결해야 합니다.

하나라도 부패하거나 타락하면 안 됩니다.

순결해야 합니다.

만약에 타락하면 제거해야 합니다.

 

제거하라는 것은 교회 안에 죄를 방치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방치해 두면 온 몸에 퍼져 나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이방인의 사고로 물들어 있던 고린도교회에 준엄하게 책망을 하였던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5장을 표준 새 번역으로 봅시다.

 

고전 5:1-13절. “여러분 가운데 음행하는 자들이 있다는 소문이 파다합니다. 심지어는 제 아비의 처와 동거하는 자까지도 있다고 하는데 그런 일은 이교도들 사이에서도 볼 수 없는 일입니다. 2. 그런 자들은 여러분의 모임에서 제거되어야 할 터인데도 그것을 슬퍼하기는커녕 오히려 잘난 체하다니 도대체 어떻게 된 일입니까? 3. 나는 몸은 비록 멀리 떨어져 있지만 마음으로는 여러분과 함께 있습니다. 그래서 내가 여러분과 함께 있는 것과 다름없이 그런 짓을 한 자를 우리 주 예수의 이름으로 이미 단죄하였습니다. 4. 그 때에 한자리에 모인 여러분과 나의 마음이 우리와 함께 계신 우리 주 예수의 권능으로 5. 그런 자를 사탄에게 내어주어 그 육체를 멸망시키도록 판결한 것입니다. 그것은 주님의 날에 그의 영혼은 구원을 받도록 하려는 것입니다. 6. 여러분이 잘난 체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적은 누룩이 온 반죽을 부풀게 한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지 못합니까? 7. 여러분은 낡은 누룩을 깨끗이 없애버리고 다시 순수한 반죽이 되어야 합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유월절 양으로서 희생되셨으므로 이제 여러분은 누룩 없는 반죽이 되었습니다. 8. 그러므로 우리는 사악과 음행이라는 묵은 누룩을 가지고 유월절을 지내지 말고 순결과 진실이라는 누룩 없는 빵을 가지고 유월절을 지냅시다. 9. 내가 여러분에게 쓴 편지에서 음란한 사람들과 사귀지 말라고 했지만 10. 음행이나 탐욕이나 약탈이나 우상 숭배를 일삼는 이교도들과 전혀 사귀지 말라는 말은 아닙니다. 그렇게 하려면 여러분은 이 세상 밖으로 나가야 할 것입니다. 11. 내가 한 말은 만일 어떤 사람이 교인이라고 하면서도 음행을 일삼거나 탐욕을 부리거나 우상을 숭배하거나 남을 중상하거나 술취하거나 약탈하거나 한다면 그런 자와는 상종하지도 말고 음식을 함께 먹지도 말라는 것입니다. 12. 교회 밖에 있는 사람들을 심판하는 것은 내가 할 일이 아닙니다. 여러분이 심판할 사람들은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이 아닙니까? 13. 교회 밖에 있는 사람들은 하느님께서 심판하실 것입니다. 여러분은 여러분 가운데 있는 그 악한 자를 쫓아내십시오.”

 

고린도 교회 안에는 아비의 아내와 간음을 행하는 자들이 있었습니다.

바울은 이러한 짓은 이방인도 하지 않는다고 하였습니다.

이건 짐승들이나 하는 짓입니다.

그런데 심각한 것은 고린도 교회가 이들을 치리하지 않고 가만히 두고 있다는 것입니다.

수수방관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성도가 만약 범죄를 하면 두 세 사람이 권면을 해서 돌이키게 하라고 합니다.

그런데 그 사람이 말을 듣지 않으면 교회에 알리라고 합니다.

교회에서 그를 권면하는데도 듣지 않으면 이방인처럼 여기라고 하였습니다.

이 말은 교회의 권면을 듣지 않는 자는 하나님 말씀을 거역하는 자로서 구원 받지 못한 이방인이라는 뜻입니다.

 

역설적으로 참 성도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면 돌이키게 되어 있다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누가 교회의 거룩성을 헤치게 하는 어떠한 범죄 한 일이 드러나거든 치리를 하라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고린도 교회는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도 않았을 뿐 더러 도리어 그 일이 합당한 것처럼 용인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왜 이러한 자를 출교 시키지 않고 그대로 두느냐고 책망을 하였습니다.

이런 자들은 사단에게 사로잡혀서 하나님의 교회를 허무는 자라고 합니다.

이것을 가만히 두게 되면 누룩처럼 번져서 온 교회가 타락케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이러한 자들을 교회에서 내어 쫓으라고 하였습니다.

 

이는 교회의 거룩성을 지키라는 것입니다.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거룩함을 입은 새로운 피조물들이 모인 곳입니다.

그러므로 누구라도 예수그리스도의 피 흘리심을 악용하거나 침해 하는 자는 그대로 두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성도 개인에게도 동일하게 적용을 하여야 합니다.

교회와 성도는 동일한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교회가 성도이고 성도가 교회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안에 죄가 틈을 타서 집을 짓지 못하게 하여야 합니다.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우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산 제사를 드려야 합니다.

이를 하나님이 받으시는 영적 예배라고 합니다.

 

영적 예배란? 새로운 피조물로서 살아가는 삶을 말합니다.

새로운 피조물은 이방인의 사고로 살아가면 안 됩니다.

이방인의 사고는 한마디로 말하면 육체의 쾌락을 쫓아가는 것입니다.

삶의 목적이 세상 일락을 즐기고 육체의 쾌락을 쫓아가는 것을 말합니다.

이건 일회성을 말하는 것이 아니고 악을 즐긴다는 것입니다.

 

성도라고 하여서 죄를 짓지 않고 살아갈 수가 없습니다.

비록 연약하여서 넘어 질 수는 있어도 죄를 먹고 마시고 즐기지는 않습니다.

우리 안에 성령이 허락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 안에 성령이 거하는 성도는 회개하고 돌이키게 되어 있습니다.

 

마귀는 예수님에게 시험하던 것으로 성도들을 시험합니다.

새로운 피조물로서 살아가는 것을 방해하고자 세상 것으로 미혹하여서 넘어지게 합니다.

이름하여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거리로 미혹합니다.

이러한 것들은 모두가 세상으로부터 온 것입니다.

 

세상으로부터 온 것이라는 말은 사단이 주는 것이라는 뜻입니다.

사단은 우리의 육체를 볼모로 잡아서 신앙을 무너뜨리고자 합니다.

또한 교회 안에서도 세상적 가치로 타락케 합니다.

 

그래서 바울은 교회 안에서 어떤 사람이 스스로를 교인이라고 하면서도 음행을 일삼거나 탐욕을 부리거나 우상을 숭배하거나 남을 중상하거나 술 취하거나 약탈하거나 한다면 그런 자와는 상종하지도 말고 음식을 함께 먹지도 말라고 하였습니다.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회에 자신이 전한 진리의 교훈을 받지 않는 자들과는 사귀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살후 3:13-15절 “형제들아 너희는 선을 행하다가 낙심치 말라 14. 누가 이 편지에 한 우리 말을 순종치 아니하거든 그 사람을 지목하여 사귀지 말고 저로 하여금 부끄럽게 하라 15. 그러나 원수와 같이 생각지 말고 형제같이 권하라”

 

데살로니가 교회는 재림 신앙으로 무장한 교회입니다.

극심한 환란 속에서도 예수님의 재림을 소망으로 삼고 믿음을 지키고 살았습니다.

그런데 어떤 자들이 세속적 가치관으로 재림 신앙을 무너뜨리고 있는 것입니다.

하늘에 소망을 버리고 땅에 가치를 쫓아가게 하는 것입니다.

 

요즘 말로 예수를 믿으면 세상에서 복 받고 잘 살아야 한다고 하는 것입니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라고 하듯이 천국에 가는 것도 좋지만 이 땅에서도 잘 먹고 잘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자 믿음이 연약한 성도들이 시험에 들어서 넘어지는 것입니다.

 

이에 바울이 너희들이 예수님의 재림을 소망하면서 살아가는 것은 참 잘하는 것이다.

그러니 낙심치 말라고 합니다.

그러면서 내가 전하여준 예수님의 재림을 농담으로 여기거나 없는 것처럼 말하는 자들은 사귀지 말라고 합니다.

그런 사람은 모든 성도들 앞에서 지목하여서 공개하여 저런 사람은 사귐을 가지지 않는 것이 좋다고 공포를 하라는 것입니다.

 

이건 평상시 바울의 성품과 반대되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아닙니다.

바울은 진리를 훼손하는 자는 용서하지 않았습니다.

예수그리스도의 복음을 가리는 자는 교회를 허무는 적으로 간주 하였습니다.

이는 그 사람이 미워서가 아니라 교회 안에 죄를 용납 할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죄 앞에서는 그 어떤 관용을 베풀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바울은 이단하고는 인사도 하지 말고 집에 들이지도 말고 멀리 하라고 하였습니다.

 

딛 3:9-11절 “그러나 어리석은 변론과 족보 이야기와 분쟁과 율법에 대한 다툼을 피하라 이것은 무익한 것이요 헛된 것이니라 10. 이단에 속한 사람을 한두 번 훈계한 후에 멀리 하라 11. 이러한 사람은 네가 아는 바와 같이 부패하여서 스스로 정죄한 자로서 죄를 짓느니라”

 

이단의 특징은 사람을 미혹하는 것입니다.

이단들은 자신들이 그럴 듯하게 공교하게 만든 교리를 가지고 설득을 시키고자 합니다.

이들은 성경을 아전인수식으로 해석을 합니다.

그리하여 특정한 사람을 추종하게 하고 자기들만이 진리를 전한다고 하면서 자기들 집단에 들어와야 구원을 받는다는 식으로 미혹을 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복음은 설득으로 믿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믿음은 설득당하는 것이 아닙니다.

믿음은 하나님이 선물로 주시는 것입니다.

인간들이 이성적으로 판단해서 받아들인다고 해서 생기는 것이 아닙니다.

 

이해하는 것과 믿는 것은 다릅니다.

이해하는 것은 이성이 하는 일이고,

믿는 것은 성령께서 하시는 일입니다.

복음을 듣게 하고 예수를 영접하는 믿음은 성령께서 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니 복음을 받아들이라고 설득을 하거나 논쟁 할 필요가 없습니다.

설득해서 복음을 믿게 하려는 자들은 근본적으로 믿음을 선물로 받지 않은 자들입니다.

본인이 믿음을 선물로 받지 않았기 때문에 설득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본인이 이성적으로 설득을 당하였기 때문입니다.

본인이 설득 당하였기 때문에 설득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고 논쟁을 하지 말라고 하였던 것입니다.

 

다시 말하지만 예수는 설득이나 논쟁으로 믿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인간 쪽에서 뭔가 해서 믿고자 하는 것은 전부 비성경적입니다.

이를 주장하는 자는 이단입니다.

 

그리고 이단들은 비윤리적이고 비도덕적인 모습으로 드러납니다.

이는 그 속에 사단이 자리 잡고 있기 때문입니다.

죄가 가득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단에 빠진 사람들은 대부분 거룩하게 살아가는 삶을 경히 여깁니다.

 

벧후 2:1-3절 “그러나 민간에 또한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났었나니 이와 같이 너희 중에도 거짓 선생들이 있으리라 저희는 멸망케 할 이단을 가만히 끌어들여 자기들을 사신 주를 부인하고 임박한 멸망을 스스로 취하는 자들이라 2. 여럿이 저희 호색하는 것을 좇으리니 이로 인하여 진리의 도가 훼방을 받을 것이요 3. 저희가 탐심을 인하여 지은 말을 가지고 너희로 이를 삼으니 저희 심판은 옛적부터 지체하지 아니하며 저희 멸망은 자지 아니하느니라

 

베드로는 거짓 선지자들이 많이 일어나서 멸망케 할 이단을 가만히 끌어들여서 예수님의 죽으심을 욕되게 한다고 합니다.

이런 자들의 특징을 호색하는 자라고 합니다.

 

호색이란? 방탕한 삶을 말합니다.

반복음적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이방인과 같이 살아가는 것입니다.

 

삶이란? 그 사람의 정체성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예수그리스도를 구주로 믿는 정체성을 가진 사람은 세상 사람들처럼 살지를 않습니다.

예수를 올 바르게 만난 성도는 반드시 삶이 바뀌게 되어 있습니다.

예수를 믿기 전에는 육신의 쾌락을 쫓아서 살았지만,

예수를 믿고 난 후에는 그러한 삶에서 돌이키게 됩니다.

 

그 안에 거하시는 성령이 이방인들처럼 살지 못하게 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 안에 성령이 거하시는 성도들은 본능적으로 세상 사람들처럼 살아가는 것을 싫어하고 멀리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삶의 지향성을 말합니다.

 

예수님은 열매로 나무를 알라고 하였습니다.

삶은 열매입니다.

나무가 예수그리스도이면 삶도 예수의 삶이 나오게 되어 있습니다.

 

성도는 예수라는 참 감람나무에 접붙임을 당한 자들입니다.

예수님이 진액을 공급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올바르게 예수에게 접붙임을 당한 성도들은 예수를 오래 믿을수록 생각하는 것이나 살아가는 모습이 세상 사람들과는 다르게 나타나는 것입니다.

 

예수 믿는다고 하면서 세상 사람들과 같은 사고방식으로 세상 사람들과 같은 가치관으로 살아간다고 하면 그건 가짜입니다.

그건 온전하게 접붙임 당하지 않은 것입니다.

이런 사람은 예수를 믿는 것이 아니고 스스로 믿는 척하는 것입니다.

이걸 외식이라고 합니다.

 

외식은 연기하는 것입니다.

예수 믿는 것은 연기하는 것이 아닙니다.

실제입니다.

연기하는 사람은 예수를 만난 사람이 아니고 구경하는 사람입니다.

성경으로 예수를 연구하는 사람이지 예수를 만난 사람이 아닙니다.

 

진짜 예수를 만난 성도는 성경적 지식을 아는 것을 신앙으로 내어 놓지를 않습니다.

성경을 통해서 예수를 만나고 예수로 살아가게 됩니다.

성경으로 예수를 연구하는 사람에게는 예수그리스도의 생명이 나타나지 않지만,

성경을 통해서 예수를 만난 사람에게는 예수그리스도의 생명이 유출되게 되어 있습니다.

 

성경을 가지고 아는 척 논쟁을 하는 사람은 예수를 믿는 사람이 아닙니다.

그건 예수를 저 만치 세워 놓고 성경을 가지고 연구하는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들의 특징이 논쟁을 좋아하고 분쟁을 일으킵니다.

그래서 바울은 교회에서 분쟁을 일으키는 사람들은 멀리 하라고 하는 것입니다.

 

롬 16:17-20절. “형제들아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교훈을 거스려 분쟁을 일으키고 거치게 하는 자들을 살피고 저희에게서 떠나라 18. 이 같은 자들은 우리 주 그리스도를 섬기지 아니하고 다만 자기의 배만 섬기나니 공교하고 아첨하는 말로 순진한 자들의 마음을 미혹하느니라 19. 너희 순종함이 모든 사람에게 들리는지라 그러므로 내가 너희를 인하여 기뻐하노니 너희가 선한데 지혜롭고 악한데 미련하기를 원하노라 20. 평강의 하나님께서 속히 사단을 너희 발 아래서 상하게 하시리라 우리 주 예수의 은혜가 너희에게 있을찌어다”

 

바울은 분쟁을 일으키는 자는 그리스도를 섬기는 자가 아니라고 합니다.

이들은 사단이라고 합니다.

왜 사단이라고 할까요?

사단은 분쟁케 하고 넘어지게 하는 자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러한 자들과는 사귀지 말라고 하는 것입니다.

 

집에 문둥병이 왜 생길까요?

언제 문둥병이 생깁니까?

불결하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깨끗하게 씻지 않으면 생기고,

집은 통풍이 안 되고 햇빛이 없으면 생깁니다.

곰팡이 균은 습기를 먹고 자랍니다.

햇빛이 없고 어둡고 습기가 차는 곳에는 반드시 곰팡이가 생기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집안은 창문을 열고 통풍도 시키고 방안에 햇볕도 들고 따뜻하게 하여서 곰팡이 균이 서식하지 못하도록 하여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신앙도 마찬가지입니다.

영적으로 의역하면 바람은 성령을 상징하고 햇빛은 하나님의 은혜를 상징합니다.

성령을 단비라고도 합니다.

우리의 마음도 말씀으로 늘 깨끗케 하여야 하고 하나님의 은혜로 충만케 하여야 합니다.

 

생명이 자라는데 있어서 비와 햇빛은 필수적인 것입니다.

우리의 신앙도 성령과 말씀은 필수적인 것입니다.

믿음은 들음에서 나고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에서 옵니다.

 

그래서 시편 기자는 복을 받은 성도는 주야로 여호와의 말씀을 묵상하는 자라고 하였습니다.

여호와의 말씀을 묵상 하다보니까 죄인의 길에 서지 않고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잘난 척 하고 교만한 자들은 그 속에서 하나님의 말씀이 달음질하지 않으니까 오만한 자리에 앉게 되고 죄인의 길을 행하게 되는 것입니다.

마음은 은혜로 굳게 함이 아름답다고 하는 것은 은혜가 오만한 자리에 앉지 못하게 하고 죄인의 길을 서지 못하게 하기 때문입니다.

 

교회이든 사람이든 그 속에 성령의 바람이 불지 않고 하나님의 은혜의 햇빛이 비취지 않으면 문둥병이 걸리게 되어 있습니다.

문둥병에 걸린 사람은 썩는 냄새가 진동을 하게 되어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을 가진 성도들은 문둥병 걸린 자들을 멀리하게 되어 있습니다.

 

바울은 그리스도 밖의 세상 모든 것은 배설물이라고 하였습니다.

세상 것은 가문이고 족보이고 학벌이고 인간의 자랑거리들입니다

우리가 은혜를 받지 않으면 인간의 자랑거리들이 자치를 합니다.

그럼 우리에게 문둥병으로 썩어가는 냄새를 풍기게 되어 있습니다.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교회 안에 이방인의 가치가 점령하면 그건 교회가 아니고 세상 종교집단입니다.

세상의 종교 집단에는 인간의 자랑거리들로 넘쳐납니다.

 

집을 의역하면 힘을 상징합니다.

사람들은 큰 집으로 자기 힘을 과시하고자 합니다.

그래서 부자들은 큰 집을 선호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고가 대형교회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왜 교회를 크게 지을까요?

그 속에 세상 가치가 자리 잡고 있기 때문입니다.

 

교인들도 큰 교회에 다니면 마치 큰 신앙이라도 되는 줄 착각을 합니다.

믿음이 없는 사람은 큰 교회를 선호합니다.

큰 교회를 선호하는 것은 큰 교회가 자기를 지켜주는 울타리가 된다고 여기기 때문입니다.

그 속에 하나님의 은혜가 없고 성령의 다스림이 없으니까 세상적 가치 기준으로 교회를 판단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사람의 수를 가치에 두지 않습니다.

그 속에 예수그리스도를 모시고 살아가는 성도는 물량적인 것에 치우치지 않습니다.

그 안에 성령이 거하는 성도는 예수로 힘을 삼고 살아가기 때문에 사람이 많이 모인다고 해서 안심하고 사람이 적게 모인다고 해서 불안해하지 않습니다.

 

교회는 사람의 수에 의미를 두어서는 안 됩니다.

오직 올바른 복음이 증거 되는 것에 의미를 두어야 합니다.

교회 안에 세상의 가치나 인간의 자랑거리들을 허용해서는 안 됩니다.

예를 들어서 세상적인 힘을 가졌다고 해서 상좌에 앉게 하고 세상 적인 힘이 없다고 해서 말석에 앉게 해서는 안 됩니다.

 

믿음의 법칙으로 해야 합니다.

비록 세상적으로는 힘이 없고 가진 것이 없다고 할지라도 믿음이 좋으면 교회 안에서 귀히 여야야 합니다.

반대로 세상 것을 많이 소유하였다 할지라도 믿음이 없으면 말씀에 다스림을 받아야 합니다.

 

죄란?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세상 힘을 의지하는 것입니다.

성경의 증거는 역설적으로 인간은 힘을 가지면 하나님을 떠나게 되어 있다고 말해주고 있습니다.

인간들은 힘을 가지면 하나님을 대적한다고 증거 해 주고 있습니다.

 

신 32:15-18절. “그러한데 여수룬이 살찌매 발로 찼도다 네가 살찌고 부대하고 윤택하매 자기를 지으신 하나님을 버리며 자기를 구원하신 반석을 경홀히 여겼도다 16. 그들이 다른 신으로 그의 질투를 일으키며 가증한 것으로 그의 진노를 격발하였도다 17. 그들은 하나님께 제사하지 아니하고 마귀에게 하였으니 곧 그들의 알지 못하던 신, 근래에 일어난 새 신, 너희 열조의 두려워하지 않던 것들이로다 18. 너를 낳은 반석은 네가 상관치 아니하고 너를 내신 하나님은 네가 잊었도다”

 

여수룬이 살찌매 하나님을 발로 뻥 걷어찼다고 합니다.

하나님을 버렸다고 합니다.

하나님을 버리고 누구에게로 갔다고 합니까?

사단에게 갔다고 합니다.

 

하나님에게 제사하여야 할 자들이 등 따습고 배가 부르니까 하나님을 버리고 마귀에게 제사를 하였다고 합니다.

이걸 간음이라고 합니다.

 

이건 구약 교회뿐만 아니라 신약의 교회사도 말해주고 있습니다.

우리의 모습에서도 찾아 볼 수가 있습니다.

가난하고 어려울 때는 하나님을 가까이 하다가 등 따습고 배가 부르면 하나님을 떠났습니다.

우리의 신앙도 마찬가지입니다.

힘들 때는 하나님을 가까이 하다가도 살기 좋아지면 하나님을 떠납니다.

 

교회가 세상의 힘을 가졌을 때를 우리는 중세암흑시대라고 합니다.

종말에는 세상의 힘을 가진 교회를 음녀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마음에 세상 것이 자리를 잡으면 문둥병이 발한 것입니다.

 

마귀는 세상의 힘을 주어서 하나님을 떠나도록 하지만,

하나님은 세상의 힘을 빼앗아서 하나님의 은혜 아래 거하도록 하십니다.

 

하나님 나라는 먹고 마시는 곳이 아니고 성령 안에서 의와 평강과 희락을 누리는 곳입니다.

성령 안에서 의와 평강과 희락을 누리면 건강한 사람이고,

우리 안에 먹고 마시는 것이 자리 잡고 있으면 문둥병이 걸린 것입니다.

 

성령 안에서 의와 평강과 희락을 누리는 사람은 통풍도 잘되고 햇빛도 잘 드는 깨끗하고 청결한 집이고, 마음속에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거리가 자리 잡고 있으면 통풍도 안 되고 햇빛이 없는 습기가 차서 악취를 풍기는 문둥병 걸린 집입니다.

 

나는 성령이 거하는 전이 맞는지 점검해 보세요.

 

나는 무엇을 힘으로 믿고 살아가는가요?

세상의 떡입니까?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입니까?

 

내가 살아가는 이유가 무엇인가요?

자기 자랑입니까?

예수그리스도의 자랑입니까?

 

내 안에 무엇으로 채워져 있나요?

땅에 것입니까?

하늘에 것입니까?

 

나는 하나님이 거하는 집이 맞는가요?

 

 

 

 

 

 

"여호와의 정하신 날"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보라 용광로 불 같은 날이 이르리니

교만한 자와 악을 행하는 자는 다 지푸라기 같을 것이라

말라기 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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