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 빛 사랑

시 3:5 내가 누워 자고 깨었으니 여호와께서 나를 붙드심이로다

♣(성경강해)2강. 유월절과 예수그리스도 십자가 (레 2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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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강해/절기와 예수그리스도

2021. 10. 18.

 

 

딤후 3장 12-15 

무릇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자는 박해를 받으리라 악한 사람들과 속이는 자들은 더욱 악하여져서 속이기도 하고 속기도 하나니 그러나 너는 배우고 확신한 일에 거하라 너는 네가 누구에게서 배운 것을 알며 또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았나니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

 

 

2강. 유월절과 예수그리스도 십자가 (레 23:1-5)

-.정낙원 목사

 

 

 

절기 속에는 예수그리스도께서 역사 속에서 하실 일이 담겨져 있습니다.

그러므로 각각의 절기 속에는 예수님께서 자기 백성들을 죄에서 구원 하실 구속사적인 일들이 담겨져 있는 것입니다.

 

절기는 세 텀으로 구분이 되어 있는데,

이는 예수님께서 하실 세 가지 사역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역사 속 사역은 세 가지로 구분을 할 수가 있습니다.

 

첫째로, 초림 때 육체로 오셔서 백성들의 죄를 고발하다가 십자가에서 죽으시는 선지자 사역과,

둘째로, 부활하신 후에는 성령으로 성도들 안에 오셔서 도우시는 제사장 사역과,

셋째로, 재림하신 후에는 천년왕국에서 만왕의 왕으로 다스리시는 사역이 있습니다.

 

7대 절기를 1년에 담아 놓았는데,

이것이 봄, 여름, 가을 절기로 구성이 되어 있습니다.

 

봄 절기는, 예수님이 초림으로 오셔서 하신 과거적 사역을 말하고,

여름 절기는, 부활 하신 예수님이 성령으로 우리 안에 오셔서 하시는 현재적 사역을 말하고,

가을 절기는, 장차 재림하셔서 천년왕국에서 왕으로 다스리는 미래적 사역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봄 절기로는, 유월절, 무교절, 초실절이 있고,

여름 절기로는, 칠칠절(오순절)과 넉 달 농사 기간이 있고,

가을 절기로는, 나팔절, 속죄일, 초막절(장막절)이 있습니다.

 

예수그리스도의 사역은 십자가에 죽으시는 것으로 시작을 하여서 부활과 승천 그리고 성령으로 오시고 나중에 재림하는 것으로 완성이 되어집니다.

그래서 7대 절기는 유월절로 시작을 하게 됩니다.

 

창세전 언약을 보면,

예수님께서 오셔서 하실 그 첫 번째 일이 자기 백성들을 죄에서 구속하는 일입니다.

어떻게 죄에서 구속을 하는가 하면 자신의 죽음으로 하십니다.

그러므로 구속사의 첫 걸음이 십자가에서 죽으시는 것으로 시작이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절기상으로는 유월절로 나타나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은 유월절을 구속사의 첫 걸음인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으로 탐사해 보고자 합니다.

 

유월절은 7대 절기 중에서 첫 번째 절기입니다.

유월절은 이스라엘에게 있어 민족 최대의 축제일입니다.

유월절은 애굽에서 430년 동안 종살이 하던 것에서 해방이 된 날을 기념하는 절기입니다.

이건 마치 우리나라가 일본의 식민지에서 해방이 된 광복절과 같은 날입니다.

 

하나님은 모세에게 절기를 주시면서 자손대대로 지켜 행할 것을 명령하셨습니다.

절기 지킴의 목적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께서 어떻게 죄와 사망의 권세로부터 해방을 시켜주셨는지를 가르치기 위함입니다.

 

절기란? 단순하게 먹고 마시고 즐기는 명절이 아닙니다.

절기 속에는 이스라엘 민족이 여호와의 손에 이끌려 구원을 받은 역사가 담겨져 있는 것입니다.

예언사 적으로는 예수그리스도를 통한 구속사가 사진처럼 담겨져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모든 절기를 어떻게 지켜야 하는지를 세세하게 가르쳐 주셨습니다.

 

유월절을 어떻게 지킬 것인가는 출애굽기 12장에 잘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출 12:1-14절. “여호와께서 애굽 땅에서 모세와 아론에게 일러 가라사대 2. 이 달로 너희에게 달의 시작 곧 해의 첫 달이 되게 하고 3. 너희는 이스라엘 회중에게 고하여 이르라 이 달 열흘에 너희 매인이 어린 양을 취할지니 각 가족대로 그 식구를 위하여 어린 양을 취하되4. 그 어린 양에 대하여 식구가 너무 적으면 그 집의 이웃과 함께 인수를 따라서 하나를 취하며 각 사람의 식량을 따라서 너희 어린 양을 계산할 것이며 5. 너희 어린 양은 흠 없고 일년 된 수컷으로 하되 양이나 염소 중에서 취하고 6. 이달 십사일까지 간직하였다가 해질 때에 이스라엘 회중이 그 양을 잡고 7. 그 피로 양을 먹을 집 문 좌우 설주와 인방에 바르고 8. 그 밤에 그 고기를 불에 구워 무교병과 쓴 나물과 아울러 먹되 9. 날로나 물에 삶아서나 먹지 말고 그 머리와 정강이와 내장을 다 불에 구워 먹고 10. 아침까지 남겨 두지 말며 아침까지 남은 것은 곧 소화하라 11. 너희는 그것을 이렇게 먹을지니 허리에 띠를 띠고 발에 신을 신고 손에 지팡이를 잡고 급히 먹으라 이것이 여호와의 유월절이니라 12. 내가 그 밤에 애굽 땅에 두루 다니며 사람과 짐승을 무론하고 애굽 나라 가운데 처음 난 것을 다 치고 애굽의 모든 신에게 벌을 내리리라 나는 여호와로라 13. 내가 애굽 땅을 칠 때에 그 피가 너희의 거하는 집에 있어서 너희를 위하여 표적이 될지라 내가 피를 볼때에 너희를 넘어가리니 재앙이 너희에게 내려 멸하지 아니하리라 14. 너희는 이 날을 기념하여 여호와의 절기를 삼아 영원한 규례로 대대에 지킬지니라”

 

“유월절”은“페사흐”라고 하는데,

이는 “넘어간다” 라는 뜻을 담고 있습니다.

한자로 유월(踰越)이라는 말은 넘어간다는 의미인데 영어로는 페스오버(passover) 라고 합니다.

이는 죽음의 재앙이“넘어갔다”는 뜻입니다.

 

유월절은 창세전부터 이미 계획이 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들을 이렇게 구원을 해 내겠다고 창세전에 언약을 하셨습니다.

이러한 것을 아브라함 언약 속에 담아 놓은 것입니다.

아브라함 언약은 창세전 언약을 모티브로 하고 있으면서,

장차로는 예수그리스도를 통한 자기 백성들을 구원하는 이야기가 담겨져 있습니다.

 

창 15:13-17절.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정녕히 알라 네 자손이 이방에서 객이 되어 그들을 섬기겠고 그들은 사백 년 동안 네 자손을 괴롭게 하리니 14. 그 섬기는 나라를 내가 징치할지며 그 후에 네 자손이 큰 재물을 이끌고 나오리라 15. 너는 장수하다가 평안히 조상에게로 돌아가 장사될 것이요 16. 네 자손은 사 대만에 이 땅으로 돌아오리니 이는 아모리 족속의 죄악이 아직 관영치 아니함이니라 하시더니 17. 해가 져서 어둘 때에 연기 나는 풀무가 보이며 타는 횃불이 쪼갠 고기 사이로 지나더라”

 

묵시 속의 창세전 언약이 역사 속에서 아브라함 언약으로 그림자로 보여주신 것입니다.

실상은 장차 예수그리스도를 통해서 보여주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아브라함 언약은 예수그리스도께서 세우실 새 언약을 그림자로 주어진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아브라함 언약의 후손들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언약을 하실 때는 이스라엘은 단 한 사람도 없었습니다.

이 때는 이삭도 태어나기 전입니다.

 

이삭은 아브라함과 언약 하신 후에 태어났습니다.

그러므로 이삭을 일컬어 약속의 아들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이삭을 낳고 이삭은 야곱을 낳고 야곱은 12 아들을 낳았습니다.

야곱의 12 아들을 통해서 이스라엘이라는 민족이 생겨난 것입니다.

 

이것은 창세전에 하나님께서 예수님과 하신 언약을 모티브로 하고 있는 것입니다.

창세전 언약을 맺을 때는 언약의 후손은 없었습니다.

우린 그 때 언약 속에서만 존재한 묵시 속의 인물들이었습니다.

 

창세전에 묵시 속에 있던 인물들이 만물이 만들어지고 난 후에 역사 속에서 실존 일물로 나타난 것입니다.

지금 존재하고 있는 우리는 보이지 않는 창세전 언약으로부터 나온 자들입니다.

 

그래서 성도를 일컬어 창세전에 어린 양의 생명책에 녹명이 된 영생 받기로 작정이 된 자들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어린 양의 생명책에 녹명이 되어서 영생 받기로 작정이 되었다 함은 역사 속에서는 죄와 사망 가운데 가두어져 있다가 어린 양으로부터 구원을 받고 영생을 얻게 된다는 것을 내포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아브라함 언약 속에 씨눈처럼 담겨져 있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있기 전에 아브라함 언약이 먼저 있었습니다.

아브라함 언약 속에서 이스라엘이 나온 것입니다.

 

아브라함 언약이 이스라엘을 이끌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브라함 언약에 따라서 언약의 후손인 이스라엘은 먼저 이방 나라에서 객으로 살면서 종살이 하다가 사대 만에 약속의 땅으로 돌아오는 것으로 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과 언약하신 때가 되어서 이스라엘을 애굽의 종에서 구출하기 위하여 모세를 바로 왕에게 보냅니다.

모세는 하나님의 명을 받고 애굽의 왕 바로에게 나아가서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아들이므로 내어 놓으라고 합니다.

 

그러나 애굽의 왕 바로는 여호와가 누구이냐 라고 하면서 내어 놓기를 거절합니다.

이에 하나님은 모세의 손을 통하여서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가를 알려주면서 열 가지 재앙을 애굽에 내려 징벌하셨습니다.

 

하지만 바로는 재앙을 당할수록 더욱 더 강퍅해져 갑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마지막으로 애굽에 모든 장자를 죽이는 심판을 단행하겠다고 합니다.

장자를 죽이는 것은 멸문지화(滅門之禍) 하겠다는 것입니다.

당시 애굽은 온 세상의 중심이었습니다.

 

애굽이 징벌을 당한다는 것은 곧 온 세상이 심판을 받는다는 뜻입니다.

이는 곧 장차 이 세상이 심판 당할 것을 예표(豫表)하는 사건인 것입니다.

그 심판 속에서 이스라엘이 살아남는다는 것은 종말론적인 입장에서 성도가 장차 올 멸망으로부터 살아남는 것이기도 합니다.

 

하나님께서 애굽에 장자를 죽인다는 것은 죄인을 심판하고 세상을 정리하겠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도 애굽(세상)에 속한고로 장자가 죽는 심판으로부터 자유로울 수가 없습니다.

하지만 이스라엘 백성도 함께 망한다면 하나님의 약속이 무효가 되어 버립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약속도 지키지 않고 식언을 하는 분이 되고 맙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온 애굽을 심판하기 전에 모세에게 이스라엘에게 살 길을 알려 주셨습니다.

그것이 흠 없는 어린 양의 피를 문에 바르는 것입니다.

이것은 어린 양이 이스라엘의 장자를 대신하여 죽는 것입니다.

흠 없는 어린 양의 생명과 이스라엘의 생명을 맞바꾸는 것입니다.

 

죽음을 집행하는 천사가 집집마다 다닐 때 어린 양의 피가 발라져 있는 집은 이미 죽은 것으로 간주하여 그 집엔 들어가지 않고 넘어 간 것입니다.

재앙이 넘어 갔다(passover) 고 하여서 유월절이라고 합니다.

 

이스라엘에게 유월절을 지키라고 한 것은 너희는 어린 양의 죽음으로 살아난 민족이라는 것을 기억시키기 위함입니다.

어린 양의 희생을 기리는데 목적이 있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어린 양의 피 때문에 살아났습니다.

어린 양 때문에 살고 있는 것입니다.

애굽에 있을 때는 아브라함 언약의 후손이었습니다.

그러나 출애굽을 하면서 어린 양의 피 안에서 살아난 새로운 민족으로 생겨난 것입니다.

 

출애굽 한 이스라엘은 인간의 혈통에서 끊어진 자들입니다.

아브라함의 후손이 아니고 어린 양의 후손인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출애굽 한 백성들에게 유월절을 기념하라고 하신 것입니다.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살 때에 너희가 어린 양의 희생 때문에 죽음에서 살아난 것을 잊지 말고 기억하라고 유월절을 기념하여 지키라고 명절로 지정해 주신 것입니다.

명절이나 기념일들은 모두가 경험된 역사를 현재 속에서 지켜내는 것입니다.

 

기념이란? 과거의 사건을 현재화 시키는 것입니다.

 

성도들의 이 세상에서의 삶은 과거를 현재에서 살고 현재를 미래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이미 영생을 받은 자로서 살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이 기념에 담겨져 있는 것입니다.

 

출 12:24-27절. “너희는 이 일을 규례로 삼아 너희와 너희 자손이 영원히 지킬 것이니 25. 너희는 여호와께서 허락하신 대로 너희에게 주시는 땅에 이를 때에 이 예식을 지킬 것이라 26. 이 후에 너희 자녀가 묻기를 이 예식이 무슨 뜻이냐 하거든 27. 너희는 이르기를 이는 여호와의 유월절 제사라 여호와께서 애굽 사람을 치실 때에 애굽에 있는 이스라엘 자손의 집을 넘으사 우리의 집을 구원하셨느니라 하라”

 

하나님은 유월절을 규례로 삼아서 너희 자손에게 가르치라고 합니다.

이는 부모의 경험을 자손의 몸에 새기려는 것입니다.

부모는 자식들에게 하나님의 계시를 전달하는 자입니다.

부모는 자신이 경험한 하나님을 자녀들에게 가르쳐야 합니다.

 

이것은 단순한 지식 전달이 아닙니다.

부모의 하나님이 자녀의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경험케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부모들은 죽는 날까지 자녀들에게 너희는 어린 양의 희생으로 살아났고 현재도 살아가고 있으며 장차도 살아가게 된다는 것을 가르쳐야 하는 것입니다.

그것을 절기 지킴 속에다가 담아 놓은 것입니다.

 

이 사실을 바울은 알았습니다.

그래서 구약의 모든 절기는 예수님을 보여주는 그림자라고 하였던 것입니다.

 

골 2:16-17절. “그러므로 먹고 마시는 것과 절기나 월삭이나 안식일을 인하여 누구든지 너희를 평론하지 못하게 하라 17. 이것들은 장래 일의 그림자이나 몸은 그리스도의 것이니라”

 

그림자는 실상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구약의 절기도 그림자이고,

구약의 이스라엘도 그림자입니다.

구약 이스라엘이 어린 양의 피로 죄와 사망의 권세로부터 벗어나는 것도 그림자인 것입니다.

 

구약의 실상은 예수그리스도입니다.

그럼 유월절도 예수그리스도께서 실상으로 이루시게 됩니다.

유월절에 이루어지는 모든 것 하나 하나가 다 예수님께서 하시는 일들을 담고 있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유월절은 여호와의 유월절이이라는 것입니다.

 

이는 여호와를 위한 유월절이라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 자신을 위하여 유월절을 행하셨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이 하나님을 위해서 우리를 죄에서 구원을 하신다는 것입니다.

 

사 43:25절. “나 곧 나는 나를 위하여 네 허물을 도말하는 자니 네 죄를 기억지 아니하리라”

 

하나님께서 우리의 죄를 사해주시는 것은 하나님 자신을 위한 것입니다.

이는 무엇과 같은가 하면 엄마가 더러워진 아이를 두고서는 자신이 불편하니까 아이를 깨끗하게 목욕을 시키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왜 하나님께서 어린 양을 희생시키고 이스라엘을 구출하셔야만 했는가요?

이는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한 약속 때문입니다.

아브라함 언약은 하나님의 일방적인 언약입니다.

아브라함의 의지와 상관없이 맺은 언약인 것입니다.

 

쉬운 말로 애굽에 잠깐 동안 버렸다가 다시 찾을 때에 어린 양의 피로서 구원을 하겠다는 시나리오를 하나님이 쓰신 것입니다.

어린 양을 잡는 아이디어나, 그 피를 문에다 바르고 죽음에서 살려내는 아이디어, 모두가 하나님께서 제시한 것입니다.

 

그래서 여호와의 유월절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 약속을 성취해 나가시는 것입니다.

유월절은 하나님이 스스로가 하신 약속을 지키기 위하여 벌리신 사건인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를 믿고 구원을 받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창세전에 하나님께서 일방적으로 계획하신 것입니다.

우리는 창세전 언약에 이끌려 가는 것뿐입니다.

 

하나님의 원함으로 이루어진 구원이기 때문에 은혜이고 선물인 것입니다.

그래서 구원의 최종 지점이 하나님 나라에서 하나님의 풍성하신 그 은혜의 영광을 세세토록 찬미하는 자리로 나아가는 것으로 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럼 예수님께서 어떤 방식으로 유월절을 성취하셨는지를 살펴봅시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계실 때에 유월절을 어떻게 지내셨는지를 보면 유월절이 담고 있는 내용들의 진의를 잘 알 수가 있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를 지시기 전에 제자들과 마지막 유월절을 지키셨습니다.

 

마 26:1-29절. “1. 예수께서 이 말씀을 다 마치시고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2. 너희의 아는 바와 같이 이틀을 지나면 유월절이라 인자가 십자가에 못 박히기 위하여 팔리우리라 하시더라 ~ ~17. 무교절의 첫 날에 제자들이 예수께 나아와서 가로되 유월절 잡수실 것을 우리가 어디서 예비하기를 원하시나이까 18. 가라사대 성 안 아무에게 가서 이르되 선생님 말씀이 내 때가 가까왔으니 내 제자들과 함께 유월절을 네 집에서 지키겠다 하시더라 하라 하신대 19. 제자들이 예수의 시키신 대로 하여 유월절을 예비하였더라 20. 저물 때에 예수께서 열 두 제자와 함께 앉으셨더니 ~ ~ 26. 저희가 먹을 때에 예수께서 떡을 가지사 축복하시고 떼어 제자들을 주시며 가라사대 받아먹으라 이것이 내 몸이니라 하시고 27. 또 잔을 가지사 사례하시고 저희에게 주시며 가라사대 너희가 다 이것을 마시라 28. 이것은 죄 사함을 얻게 하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 29. 그러나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가 포도나무에서 난 것을 이제부터 내 아버지의 나라에서 새 것으로 너희와 함께 마시는 날까지 마시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예수님은 공생애 기간 동안 유월절을 세 번 지키셨습니다.

두 번은 전통적으로 지키는 방식으로 양을 잡아서 유월절을 지키셨습니다.

그런데 마지막 유월절은 다른 방식으로 지키셨습니다.

어린 양 대신 떡과 포도주로 지키셨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은 유월절 양으로 죽으실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떡을 주시면서 자신의 살이라고 합니다.

떡을 자신의 몸이라고 하는 것은 곧 예수님 자신이 곧 유월절 어린 양이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자신의 살과 피를 상징하는 떡과 포도주로 유월절을 지키시고는 이는 새로운 언약이라고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새 언약이라는 말은 옛 언약도 있다는 뜻입니다.

옛 언약은 어린 양으로 세운 언약이고,

새 언약은 예수님의 살과 피로 세운 언약입니다.

 

새 언약이라 함은 언약이 바뀌었다는 것입니다.

이제는 옛날 방식으로 지킬 필요가 없어졌다는 뜻입니다.

구약은 옛날 방식으로 지켰지만,

신약에서는 새로운 방식으로 지켜야 합니다.

 

구약은 어린 양의 피로서 죄와 사망의 권세로부터 해방을 받았지만,

신약에서는 예수그리스도의 피로서 죄와 사망의 권세로부터 해방이 되었습니다.

이 사실을 믿는 것이 유월절을 지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자신의 몸으로 새로운 유월절을 제정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떡과 포도주로 행하신 마지막 만찬이신 유월절을 내가 다시 올 때까지 기념하라고 하신 것입니다.

 

성만찬은 예수님의 죽으심을 기념하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이 사실을 알고 자신이 행하는 성만찬을 주께 받은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고전 11:23-29절. “내가 너희에게 전한 것은 주께 받은 것이니 곧 주 예수께서 잡히시던 밤에 떡을 가지사 24. 축사하시고 떼어 가라사대 이것은 너희를 위하는 내 몸이니 이것을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 하시고 25. 식후에 또한 이와 같이 잔을 가지시고 가라사대 이 잔은 내 피로 세운 새 언약이니 이것을 행하여 마실 때마다 나를 기념하라 하셨으니 26. 너희가 이 떡을 먹으며 이 잔을 마실 때마다 주의 죽으심을 오실 때까지 전하는 것이니라 27. 그러므로 누구든지 주의 떡이나 잔을 합당치 않게 먹고 마시는 자는 주의 몸과 피를 범하는 죄가 있느니라 28. 사람이 자기를 살피고 그 후에야 이 떡을 먹고 이 잔을 마실찌니 29. 주의 몸을 분변치 못하고 먹고 마시는 자는 자기의 죄를 먹고 마시는 것이니라”

 

주님의 죽으심을 기념하라는 것은 예수님의 죽으심을 지나간 사건으로 과거화 하지 말고 현재적인 사건으로 삶화 하라는 것입니다.

관념이 아니라 실제 믿음으로 살아가라는 것입니다.

책 속의 이야기로 두지 말고 내 자신의 삶으로 풀어 가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예수님의 죽음에 의미를 모르고서 성만찬을 행하는 것은 곧 주의 몸을 범하는 죄와 같다고 경고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죽음은 곧 자신을 대신하여 죽어주신 죽음이라는 것을 모르고서 하는 성만찬은 예수님의 죽음을 욕되게 하는 것입니다.

 

이건 마치 유대인들이 유월절의 의미도 모르면서 유월절을 지킨 것과 같은 것입니다.

신약 적으로 말하면 예수님의 죽음에 의미를 모르고서 예수를 믿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그럼 구약의 유월절 지킴 속에 담겨진 내용을 예수님께서 어떻게 성취되었는지를 봅시다.

 

첫째로, 유월절 어린 양은 흠 없는 초태생이라야 합니다.

 

출12:3-5절. “너희는 이스라엘 회중에게 고하여 이르라 이 달 열흘에 너희 매인이 어린 양을 취할지니 각 가족대로 그 식구를 위하여 어린 양을 취하되 4. 그 어린 양에 대하여 식구가 너무 적으면 그 집의 이웃과 함께 인수를 따라서 하나를 취하며 각 사람의 식량을 따라서 너희 어린 양을 계산할 것이며 5. 너희 어린 양은 흠 없고 일 년 된 수컷으로 하되 양이나 염소 중에서 취하고”

 

출 13:2절. “사람이나 짐승이나 무론하고 초태생은 다 거룩히 구별하여 내게 돌리라 이는 내 것이니라 하시니라”

 

출 13:12절. “무릇 초태생과 네게 있는 생축의 초태생을 다 구별하여 여호와께 돌리라 수컷은 여호와의 것이니라”

 

이스라엘은 유월절을 지킬 때 제물은 반드시 처음 난 숫 컷의 어린 양으로 하였습니다.

이것은 장자가 죽는 재앙에서 어린 양의 죽음으로서 자신들의 장자가 살아났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유월절을 지킬 때는 반드시 처음 난 숫 컷의 어린 양으로 지낸 것입니다.

 

초태생은 첫째 즉 맏물을 말합니다.

그리고 흠이 없다는 것은 죄가 없다는 뜻입니다.

그럼 유월절 어린 양은 흠 없는 초태생이라는 말은 죄가 없는 맏물이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모든 초태생을 하나님의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이는 장자는 하나님께 속한 자라는 뜻입니다.

종합하면 유월절 어린 양은 하나님께 속하였으면서 죄가 없는 맏물이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흠 없는 어린 양과 이스라엘의 장자를 맛 바꾼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스라엘의 장자 대신 죽은 유월절 어린 양은 곧 하나님의 장자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장자를 내어주고 이스라엘의 장자를 살리신 것입니다.

이것이 신약으로 오면 예수그리스도가 하나님의 맏아들로서 제물로 드려지고 성도들이 살아나는 것으로 나타납니다.

 

유월절에 희생할 어린 양은 나흘간 잘 간직하였다가 흠이 발견 되지 않아야 합니다.

 

만약 조금이라도 흠이 있다면 유월절 양으로 드려질 수가 없습니다.

유월절 어린 양을 의인화 하면 사람이 됩니다.

그럼 하나님의 백성들인 이스라엘을 죽음의 재앙에서 구원해 내실 구원자는 죄 없는 분이라야 하고 하나님의 장자라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가 누구냐?

바로 예수그리스도입니다.

예수그리스도는 죄가 없는 분이고 하나님의 장자이십니다.

 

이 사실을 사도 바울은 잘 증거하였습니다.

 

롬 8:29절.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로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으니 이는 그로 많은 형제 중에서 맏아들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고전 15:23절. “그러나 각각 자기 차례대로 되리니 먼저는 첫 열매인 그리스도요 다음에는 그리스도 강림하실 때에 그에게 붙은 자요”

 

바울은 예수그리스도를 맏아들이라고 합니다.

맏아들이란 많은 형제들 중에서 으뜸이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첫 열매라고 합니다.

 

어떤 형제들의 형입니까?

미리 아신 자들의 형입니다.

형제란? 한 아버지로부터 난 자들입니다.

 

예수님은 맏이이지만 흠 없는 분이십니다.

 

벧전 1:19절. “오직 흠 없고 점 없는 어린 양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한 것이니라”

 

히 9:14절. “성령으로 말미암아 흠 없는 자기를 하나님께 드린 그리스도의 피가 어찌 너희 양심으로 죽은 행실에서 깨끗하게 하고 살아계신 하나님을 섬기게 못하겠느뇨”

 

히 4:15절.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 연약함을 체휼하지 아니하는 자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한결같이 시험을 받은 자로되 죄는 없으시니라

 

우리는 죄가 있지만 예수님은 죄가 없으십니다.

그래서 우리를 대신하는 희생 제물이 될 수가 있고 우리의 구원자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이나 베드로는 예수님과 한 편이니까 예수님은 죄가 없는 분이라고 말을 할 수 있다고 합시다.

 

그러면 예수님의 반대편에 서서 죽이고자 하던 자들은 뭐라고 하는지 살펴봅시다.

 

마 27:19, 24절. “총독이 재판 자리에 앉았을 때에 그 아내가 사람을 보내어 가로되 저 옳은 사람에게 아무 상관도 하지 마옵소서…빌라도가…물을 가져다가… 손을 씻으며 가로되 이 사람의 피에 대하여 나는 무죄하니 너희가 당하라”

 

마 27:23절. “빌라도가 가로되 어찜이뇨 무슨 악한 일을 하였느냐 … ”

 

눅 23:4, 13-15절. “빌라도가 대제사장들과 무리에게 이르되 내가 보니 이 사람에게 죄가 없도다…이 사람에게서 죄를 찾지 못하였고…저의 행한 것은 죽일 일이 없느니라”

 

막 14:55절. “대제사장들과 온 공회가 예수를 죽이려고 그를 칠 증거를 찾되 얻지 못하니”

 

예수님을 죽이려고 한 유대인이나 예수님을 사형은 선고한 빌라도나 빌라도 부인조차도 예수님은 죄가 없다고 증거해 주고 있습니다.

빌라도는 유대인들이 예수를 고소하자 무슨 죄로 고소하느냐고 되묻습니다.

 

내가 아무리 죄를 찾고자 하여도 찾을 수가 없다고 합니다.

하지만 너희들이 이 예수를 십자가에 죽이라고 하니까 너희들 소원대로 내어 주기는 하지만 나는 이 예수에게 죄를 찾지 못하였으니 손을 씻으면서 난 죄가 없다고 선언 하였습니다.

 

모든 성경은 예수님은 죄 없는 하나님의 맏아들이라고 증거해 주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유월절 어린 양의 여러 조건 중에서 흠 없는 초태생이 맞다는 것을 확인 할 수가 있습니다.

 

둘째로, 예수님은 유월절에 죽어야 합니다.

 

출 12:6절. “이 달 십사일까지 간직하였다가 해질 때에 이스라엘 회중이 그 양을 잡고”

레 23:5절. “정월 십사일 저녁은 여호와의 유월절이요”

 

구약의 어린 양은 정월 14일 유월절 날에 죽었습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이 유월절 어린 양의 실상이라고 한다면 예수님도 유월절에 죽어야 합니다.

그래야 유월절 절기를 통해서 계시되어진 약속의 제물이 되는 것입니다.

 

만약 예수님께서 유월절이 아니고 다른 때에 죽었다고 한다면 유월절 어린 양으로 예언된 실상이 아니므로 세상 죄를 지고 가는 어린 양이 될 수가 없습니다.

알다시피 구약의 이스라엘이 출애굽 할 때 유월절과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은 약 1500년 간극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이 유월절 어린 양의 실체이기 때문에 반드시 1500년 전에 유월절 어린 양을 잡는 그 시간에 죽도록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유월절 어린 양이 죽는 날을 맞추기 위하여 사셨습니다.

 

요 7:2-8절. “유대인의 명절인 초막절이 가까운지라 그 형제들이 예수께 이르되…유대로 가소서…자신을 세상에 나타내소서 하니…예수께서 가라사대 내 때는 아직 이르지 아니하였거니와 너희 때는 늘 준비되어 있느니라…너희는 명절에 올라가라 나는 내 때가 아직 차지 못하였으니 이 명절에 올라가지 아니하노라”

 

예수님의 형제들이 유월절 6개월 전인 초막절에 형이 진짜 메시아라면 이런 시골에 있지 말고 예루살렘에 올라가서 당당하게 밝히라고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아직 내 때가 아니라고 하시면서 자신을 드러내기를 거부하셨습니다.

 

하지만 나중에 초막절을 지키기 위하여 예루살렘에 올라갔습니다.

예수님은 형제들이 자신을 드러내라고 할 때는 가지 않겠다고 하셨지만 유대인의 남자로서 초막절 명절을 지켜야 했으므로 예루살렘에 올라가신 것입니다.

 

형제들과의 대화를 보면 사람들에게 나타나지 않을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요한복음 7장을 보면 도리어 만천하에 드러내 놓고 활동하셨음을 보게 됩니다.

 

요 7:14절. “이미 명절의 중간이 되어 예수께서 성전에 올라가사 가르치시니”

 

요 7:37절. “명절 끝날 곧 큰 날에 예수께서 서서 외쳐 가라사대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이 때 분위기를 보면 유대 종교지도자들은 예수님을 눈에 가시처럼 여기던 때입니다.

그런데 온 유대인들이 모인 명절에 예루살렘에 나타나서 백성들을 가르치는 것입니다.

그것도 성전에서 당당하게 말입니다.

그런데 백성들이 좋아 하는 것입니다.

 

이게 종교지도자들에게는 너무도 미운 것입니다.

당시 종교지도자들은 틈만 나면 예수를 잡아서 죽이고자 하였습니다.

그래서 종교 지도자들이 종들을 보내서 예수님을 잡아 오라고 합니다.

 

요 7:43-45절. “예수를 인하여 무리 중에서 쟁론이 되니 44. 그 중에는 그를 잡고자 하는 자들도 있으나 손을 대는 자가 없었더라 45. 하속들이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에게로 오니 저희가 묻되 어찌하여 잡아오지 아니하였느냐”

 

대제사장이 종들을 보내서 예수를 잡아오라고 합니다.

그런데 종들이 잡아 오지를 못하였습니다.

대제사장의 권세이면 얼마든지 무력으로 잡아 갈 수가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잡아 가지 않은 것은 예수님이 아직 죽을 때가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요 7:30절. “저희가 예수를 잡고자 하나 손을 대는 자가 없으니 이는 그의 때가 아직 이르지 아니하였음이러라”

 

그 후에도 또 잡으려고 하였으니 그 때도 번번이 실패합니다.

 

요 8:20절. “이 말씀은 성전에서 가르치실 때에 연보 궤 앞에서 하셨으나 잡는 사람이 없으니 이는 그의 때가 아직 이르지 아니하였음이러라”

 

당시 제사장들이 어떤 자들입니까.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쥐도 새도 모르게 해 치울 수가 있는 권세를 가진 자들입니다.

그럼에도 잡지 못한 것은 아직은 예수님께서 죽을 때가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예수님께서 유월절 양으로 죽어야 하기 때문에 초막절에 죽도록 허락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인간들이 죽일 수 있는 분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허락이 떨어져야 죽일 수가 있습니다.

 

때와 기한은 하나님이 정하십니다.

죽이고 살리는 일을 하나님이 하십니다.

그러므로 인간들이 아무리 계획을 세워도 하나님께서 허락하지 않으면 이루어질 수가 없습니다.

 

이제 해가 바뀌고 유월절 때가 가까웠습니다.

 

요 12:23-24절.“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인자의 영광을 얻을 때가 왔도다 24.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

 

요 12:32-33절. “내가 땅에서 들리면 모든 사람을 내게로 이끌겠노라 하시니 33. 이렇게 말씀하심은 자기가 어떠한 죽음으로 죽을 것을 보이심이러라”

 

요 13:1-3절. “유월절 전에 예수께서 자기가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로 돌아가실 때가 이른 줄 아시고 세상에 있는 자기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시니라 ~ ~ 3. 저녁 먹는 중 예수는 아버지께서 모든 것을 자기 손에 맡기신 것과 또 자기가 하나님께로부터 오셨다가 하나님께로 돌아가실 것을 아시고”

 

유월절 양으로 돌아가셔야 할 때가 이르자 예수님께서 초막절에 형제들이 권유할 때와는 사뭇 다른 행동을 하십니다.

스스로 죽음의 길을 나서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유월절이 가까워지자 이제 인자의 영광을 얻을 때가 왔다고 하면서 자신의 죽음을 한 알의 밀알의 죽음으로 말씀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이는 자신의 죽음으로 많은 형제들을 살려내는 일을 하게 된다는 뜻입니다.

 

초막절 때는 하나님께서 백성들이 마음을 예수님을 잡지 못하도록 간섭을 하였습니다.

그래서 몇 번이고 예수를 잡고자 시도를 하였지만 실패를 하였습니다.

이는 아직까지 예수님이 죽을 때가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유월절 어린 양의 실상으로 오셨기 때문에 반드시 유월절에 죽어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다른 절기에는 백성들이 죽이고 싶어도 죽이지 못하도록 하나님께서 그들의 마음을 간섭하신 것입니다.

 

이제 유월절이 다가옵니다.

유월절 어린 양으로서 죽어야 할 때가 가까워 온 것입니다.

그러자 이번에는 초막절 때와 다르게 하나님께서 백성들의 마음을 예수를 죽이도록 격동을 시키십니다.

 

하나님께서 마귀에게 예수를 잡도록 허락을 하십니다.

 

눅 22:1-20절. “유월절이라 하는 무교절이 가까우매 2.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이 예수를 무슨 방책으로 죽일꼬 연구하니 이는 저희가 백성을 두려워함이더라 3. 열 둘 중에 하나인 가룟인이라 부르는 유다에게 사단이 들어가니 4. 이에 유다가 대제사장들과 군관들에게 가서 예수를 넘겨 줄 방책을 의논하매 5. 저희가 기뻐하여 돈을 주기로 언약하는지라 6. 유다가 허락하고 예수를 무리가 없을 때에 넘겨 줄 기회를 찾더라 7. 유월절 양을 잡을 무교절일이 이른지라 ~ 14. 때가 이르매 예수께서 사도들과 함께 앉으사 15. 이르시되 내가 고난을 받기 전에 너희와 함께 이 유월절 먹기를 원하고 원하였노라 16.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유월절이 하나님의 나라에서 이루기까지 다시 먹지 아니하리라 하시고 17. 이에 잔을 받으사 사례하시고 가라사대 이것을 갖다가 너희끼리 나누라 18.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가 이제부터 하나님의 나라가 임할 때 까지 포도나무에서 난 것을 다시 마시지 아니하리라 하시고 19. 또 떡을 가져 사례하시고 떼어 저희에게 주시며 가라사대 이것은 너희를 위하여 주는 내 몸이라 너희가 이를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 하시고 20. 저녁 먹은 후에 잔도 이와 같이 하여 가라사대 이 잔은 내 피로 세우는 새 언약이니 곧 너희를 위하여 붓는 것이라”

 

요 13:21-30절. “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시고 심령에 민망하여 증거하여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중 하나가 나를 팔리라 하시니 ~ 26.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가 한 조각을 찍어다가 주는 자가 그니라 하시고 곧 한 조각을 찍으셔다가 가룟 시몬의 아들 유다를 주시니 27. 조각을 받은 후 곧 사단이 그 속에 들어간지라 이에 예수께서 유다에게 이르시되 네 하는 일을 속히 하라 하시니 ~ 30. 유다가 그 조각을 받고 곧 나가니 밤이러라”

 

예수님께서 떠날 날이 가까워지자 제자들과 최후의 만찬을 하십니다.

그 만찬은 다름 아닌 새로운 유월절 만찬이었습니다.

다른 때는 어린 양을 잡아서 유월절을 기념하였는데 이번에는 어린 양 대신에 떡과 포도주를 가지고 하십니다.

 

예수님께서 떡을 가룟 유다에게 주면서 네가 하고자 하던 일을 하라고 합니다.

이는 예수를 팔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가룟 유다를 예수를 팔 자로 선택을 한 것입니다.

 

예수님은 처음부터 가룟 유다가 예수님을 팔 것을 알고 계셨습니다.

그러나 그 동안은 예수님이 죽을 때가 아니기 때문에 모른 척 하고 있었습니다.

이제 예수님이 죽어야 할 시간이 가까이 오자 하나님이 사단으로 하여금 가룟 유다의 마음에 들어가서 예수님을 팔도록 허락을 한 것입니다.

 

하지만 유대인들에게는 한 가지 고민이 있었습니다.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이 예수를 죽이기는 죽여야 하는데 명절 때는 수많은 사람들이 예루살렘에 가득 모이기 때문에 자칫하다간 민란이 일어 날까봐 걱정이 되어서 망설인 것입니다.

 

민란이 일어나면 유대인은 공권력이 없기 때문에 자연히 로마 군대가 동원되어서 민란을 제압하게 됩니다.

그럼 로마 군인들을 예루살렘에 주둔하게 되는 빌미를 제공해 주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명절을 피해서 예수를 죽이고자 하였습니다.

 

막 14:1-2절. “이틀을 지나면 유월절과 무교절이라 2.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이 예수를 궤계로 잡아 죽일 방책을 구하며 가로되 민요가 날까 하노니 명절에는 말자 하더라”

 

대제사장과 서기관들은 일단 민란이 일어날 소지를 없애기 위해 유월절이 지나고 난 후에 예수님을 죽이려고 계획을 세웁니다.

명절이 지난 후 사람들이 다 돌아간 후에 죽여도 늦지 않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그래서 명절에는 예수님을 죽이지 말자고 하였습니다.

 

예루살렘의 치안을 맞고 있던 총독인 빌라도 역시 혹시나 명절에 민란이 일어날 것을 우려하여 예수를 붙잡아 놓고서도 유월절에는 죽이지 않고 놓아주려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빌라도는 예수님을 심문하면서도 몇 번씩 놓아 주려고 시도를 하였던 것입니다.

 

여러 정황을 보면 빌라도는 끝까지 예수님을 안 죽이려고 하였습니다.

 

요 18:39-40절. “유월절이면 내가 너희에게 한 사람을 놓아 주는 전례가 있으니 그러면 너희는 내가 유대인의 왕을 너희에게 놓아 주기를 원하느냐 하니 40. 저희가 또 소리 질러 가로되 이 사람이 아니라 바라바라 하니 바라바는 강도더라”

 

요 19:10-16절. “빌라도가 가로되 내게 말하지 아니하느냐 내가 너를 놓을 권세도 있고 십자가에 못 박을 권세도 있는 줄 알지 못하느냐 11.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위에서 주지 아니하셨더면 나를 해할 권세가 없었으리니 그러므로 나를 네게 넘겨 준 자의 죄는 더 크니라 하시니 12. 이러하므로 빌라도가 예수를 놓으려고 힘썼으나 유대인들이 소리 질러 가로되 이 사람을 놓으면 가이사의 충신이 아니니이다 무릇 자기를 왕이라 하는 자는 가이사를 반역하는 것이니이다 13. 빌라도가 이 말을 듣고 예수를 끌고 나와서 박석(히브리 말로 가바다)이란 곳에서 재판석에 앉았더라 14. 이 날은 유월절의 예비일이요 때는 제 육시라 빌라도가 유대인들에게 이르되 보라 너희 왕이로다 15. 저희가 소리지르되 없이 하소서 없이 하소서 저를 십자가에 못 박게 하소서 빌라도가 가로되 내가 너희 왕을 십자가에 못 박으랴 대제사장들이 대답하되 가이사 외에는 우리에게 왕이 없나이다 하니 16. 이에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히게 저희에게 넘겨주니라”

 

빌라도는 예수님에게 내가 죽일 권세도 있고 놓아줄 권세도 있다고 하면서 회유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나를 죽이고 살리는 권세는 빌라도 네가 행사하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주관하신다고 하면서 너는 반드시 나를 죽이도록 선고하게 되어 있다고 합니다.

 

만약 대제사장과 서기관들의 계획대로 유월절 날에 죽지 않고 다른 날에 죽는다면 예수님은 유월절 양의 실상이 될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의 계획은 예수님이 유월절 양으로서 죽어야만 합니다.

그래야 1500년 전에 절기로 약속 해 놓으신 것이 성취가 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대제사장이나 빌라도가 예수님을 안 죽이려고 그렇게 여러 번 시도 하였음에도 하나님은 기어이 예수님이 죽도록 하신 것입니다.

결국 빌라도는 예수님의 말씀대로 하늘에 권세로 말미암아 자기의지와 상관없이 예수님을 죽이는데 가담하고 말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약속하신 메시야 임을 드러내기 위하여서 종교를 상징하는 대제사장과 세상 권세를 상징하는 빌라도를 사용하고 계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예수님을 유월절 양이 되는 일에 유대인이나 이방인 모두를 사용하신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예수님은 만유의 주가 되는 것입니다.

이방인이라고 하여서 하나님과 상관없는 자가 아니라 하나님의 약속을 이루기 위하여서 사용되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만유의 하나님이십니다.

예수님도 만유의 주이십니다.

신자나 불신자나 모두가 하나님의 약속을 위하여 살아가고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불신자나 마귀까지 하나님의 약속을 위하여 사용하고 계신 것입니다.

 

세상에는 두 부류의 사람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자녀와 마귀의 자녀가 있습니다.

그러나 둘 다 모두가 예수그리스도를 위하여 존재합니다.

천국의 주인도 하나님이고, 지옥의 주인도 하나님이십니다.

 

어떤 사람은 예수 때문에 천국에 가고,

어떤 사람은 예수 때문에 지옥에 갑니다.

베드로는 예수 때문에 천국에 갔고, 가룟 유다는 예수 때문에 지옥에 갔습니다.

 

베드로나 가룟 유다나 동일하게 죄를 지었습니다.

그런데 베드로는 용서를 받았고 가룟 유다는 용서를 받지 못하였습니다.

그 이유는 베드로는 긍휼의 그릇으로 지음을 받았고, 가룟 유다는 진노의 그릇으로 지음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토기장이입니다.

 

롬 9:21-23절. “토기장이가 진흙 한 덩이로 하나는 귀히 쓸 그릇을 하나는 천히 쓸 그릇을 만드는 권이 없느냐 22. 만일 하나님이 그 진노를 보이시고 그 능력을 알게 하고자 하사 멸하기로 준비된 진노의 그릇을 오래 참으심으로 관용하시고 23. 또한 영광 받기로 예비하신바 긍휼의 그릇에 대하여 그 영광의 부요함을 알게 하고자 하셨을지라도 무슨 말 하리요”

 

토기장이가 두 그릇을 만든 것입니다.

긍휼을 담을 그릇과 진노를 담을 그릇을 만든 것입니다.

 

모세에게는 긍휼을 담았고,

바로에게는 진노를 담았습니다.

 

이스라엘에게는 긍휼을 담고,

이방인에게는 진노를 담았습니다.

 

신자에게는 긍휼을 담고,

불신자에게는 진노를 담습니다.

 

예수 믿는 자는 긍휼을 담고,

예수 안 믿는 자에게는 진노를 담습니다.

 

그릇은 주인이 필요로 만든 것입니다.

그릇이 왜 나에게 이런 것을 담느냐 따지지 못합니다.

따지는 것이 죄입니다.

 

신자는 여기에 아멘으로 화답을 하지만 불신자는 하나님이 틀렸다고 따집니다.

하나님이 틀렸다고 따지는 그것이 곧 지옥에 갈 죄가 되는 것입니다.

자기는 옳고 하나님이 틀렸다고 하는 것입니다.

이게 영원히 저주 받을 죄인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 믿는 자들은 천국에서 하나님께 감사하다고 찬양을 하지만 예수 안 믿는 자들은 지옥에서 억울하다고 분노하면서 이빨을 가는 것입니다.

 

성도는 구원 받기로 작정이 된 자들입니다.

이 작정은 그 어떤 것으로도 돌릴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성도의 구원은 그 어떤 것으로도 끊어지지가 않는 것입니다.

 

그 어떤 것도 성도가 구원받는데 방해 할 수가 없습니다.

이런 사실을 안 바울은 세상에 그 어떤 것으로도 성도는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을 수가 없다고 하였습니다.

 

롬 8:33-39절. “누가 능히 하나님의 택하신 자들을 송사하리요 의롭다 하신 이는 하나님이시니 34. 누가 정죄하리요 죽으실 뿐아니라 다시 살아나신 이는 그리스도 예수시니 그는 하나님 우편에 계신 자요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자시니라 35.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핍박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36. 기록된바 우리가 종일 주를 위하여 죽임을 당케 되며 도살할 양 같이 여김을 받았나이다 함과 같으니라 37.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38.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39.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아무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

 

성도의 구원은 이미 확정 되어져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이 땅에서 어떤 모습으로 산다고 할지라도 성공한 인생인 것입니다.

성도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구원을 이루어가는 것입니다.

 

성도의 구원은 창세전에 이미 확정이 된 것입니다.

확정이 된 자로 이 세상에 보내심을 입은 것입니다.

그 사실을 역사 속에서 이루어가고 있는 것입니다.

 

창세전 언약 안에서 나를 바라보십시오.

창세전 언약 안에서 나를 바라보면 기쁨과 감사로 살아 갈 수가 있습니다.

그 믿음이 세상을 이기게 합니다.

 

셋째, 유월절 어린 양은 해 질 때 잡았습니다.

 

하나님은 1500년 전에 출애굽을 할 때 유월절 어린 양을 잡으면서 장차 예수님께서 죽을 시간까지도 정해 놓으셨습니다.

그럼 유월절 양을 잡는 시간과 예수님이 죽는 시간이 일치하여야 합니다.

그래야 예수님이 유월절 어린 양의 실상이 됩니다.

 

레 23:5절. “정월 14일 저녁은 여호와의 유월절이요”

 

출 12:6절. “이 달 십사일까지 간직하였다가 해질 때에 이스라엘 회중이 그 양을 잡고”

 

유월절 어린 양은‘해질 때’잡았습니다.

해질 때라는 것은‘두 저녁 사이’란 뜻입니다.

 

유대인들에게는 두 저녁이 있습니다.

 

첫 번째 저녁은 오후를 말하고,

두 번째 저녁은 해가 지고난 후의 밤을 말합니다.

 

첫 번째 저녁은 낮 12시부터 6시 해 질 때까지 시작되는 오후 저녁(Evening)을 말하고,

두 번째 저녁은 해가 떨어지고 난 후의 오후 6시부터 시작되는 밤 저녁(Night)을 말합니다.

 

해질 때라는 말은 두 저녁 사이란 뜻입니다.

 

두 저녁 사이는 저녁(낮12시)과 저녁(오후6시) 사이라는 의미입니다.

두 저녁 사이는 낮 12시부터 오후 6시 사이인 오후 3시를 가리킵니다.

 

유대인들은 유월절 양을 오후 3시에 잡았습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이 유월절 어린 양의 실상이 되려면 오후 3시에 죽으셔야 합니다.

만약 예수님께서 아침에 죽거나 밤중에 죽거나 새벽에 죽었다고 한다면 1500년 전에 유월절 양으로 계시하신 메시야가 될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이 유월절 어린 양의 실상이 맞기 때문에 정확하게 유월절 양이 죽는 그 시간에 운명하시도록 하셨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정확하게 유월절 어린 양이 죽은 그 시간에 죽으셨습니다.

 

눅 23:44-46절. “때가 육시쯤 되어 해가 빛을 잃고 온 땅에 어두움이 임하여 제 구시까지 계속하며…예수께서 큰 소리로 불러 가라사대 아버지여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 하고 이 말씀을 마치신 후 운명하시니라”

 

마 27:45-50절. “제 육시로부터 온 땅에 어두움이 임하여 제 구시까지 계속하더니 46. 제 구시 즈음에 예수께서 크게 소리질러 가라사대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하시니 이는 곧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하는 뜻이라 ~ ~ 50. 예수께서 다시 크게 소리 지르시고 영혼이 떠나시다”

 

예수님께서 삼시에 십자가에 달리시고 구시에 운명하셨습니다.

유대인 시간은 우리 시간과 6시간 차이가 납니다.

삼시는 우리 시간으로 오전 9시이고, 육시는 낮 12시 정오이고, 구시는 오후 3시입니다.

 

성경이 말하는 구시는 우리 시간으로 오후 3시가 되는 것입니다.

오후 3시는 낮 12시와 저녁 6시 사이에 중간입니다.

이것이 두 저녁 사이인 해질 때입니다.

 

예수님은 구시에 죽으셨습니다.

이는 유월절 날에 두 저녁 사이인 해질 때인 오후 3시에 유월절 어린 양이 죽는 그 시간을 정확히 맞추어서 죽으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 세상에 오신 것도 하나님이 정한 때에 오셨습니다.

예수님이 이 세상을 떠나시는 것도 하나님이 정한 때에 가십니다.

예수님은 철저하게 하나님이 정한 시나리오대로 사시다가 가셨습니다.

 

이것은 성도의 운명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도 하나님께서 창세전에 정해 놓은 시나리오대로 살다가 가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맏아들이라고 하고 우리의 형제라고 하는 것입니다.

성도들이 따라가야 할 표본으로서의 맏아들인 것입니다.

 

막 15:25절. “때가 제 삼시가 되어 십자가에 못 박으니라”

 

막 15:34절. “제 구시에 예수께서 크게 소리지르시되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하시니 이를 번역하면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하는 뜻이라”

 

예수님은 삼시에 십자가에 못 박히시고 구시에 운명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6시간 달려 계시다가 죽으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6시간 동안 구속사를 완성하신 것입니다.

 

6시간은 6일 창조를 상징합니다.

6일 창조는 역사 전체를 함축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십자가상의 6시간은 창조 6일을 의미하고 창조 6일은 역사 6000년을 상징합니다.

 

역사는 예수그리스도를 위하여 창조가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역사 전체 속에는 예수그리스도가 다 계시가 되어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역사 6000년에 펼쳐질 일들을 십자가에서 6시간에 완성하신 것입니다.

 

역사 6000년은 예수그리스도의 구속사의 시간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역사 6000년의 구속사를 6시간 동안 완성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십자가에서‘다 이루었다’고 선언하신 것입니다.

 

넷째, 유월절 어린 양(예수님)의 뼈는 꺾이지 않아야 합니다.

 

십자가 형은 고통을 극대화 하여서 죽이는 형벌입니다.

보통 하루가 지나야 죽는다고 합니다.

어떤 사람은 사흘 동안 숨이 붙어 있다가 죽기도 합니다.

그 날로 금방 죽지 않습니다.

 

이러한 것을 잘 알기 때문에 유대인들은 유월절에 예수님을 죽이는 것을 반대 하였던 것입니다.

왜냐하면 안식일에 시체가 나무에 매 달려 있으면 안 되기 때문입니다.

율법은 안식일 날 시체가 나무에 달려 있는 것을 금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유월절을 피하여서 예수를 죽이고자 한 것입니다.

 

유대인들의 하루는 저녁 6시부터 그 이튿날 저녁 6시까지입니다.

유월절은 목요일 저녁 6시부터 금요일 저녁 6시까지입니다.

금요일은 안식일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목요일에 십자가에 달리셨으니까 안식일을 몇 시간 앞두고서 달리신 것입니다.

 

몇 시간만 지나면 유월절 다음 날인 금요일이 되어 유대인들의 안식일이 됩니다.

즉 밤이 시작되는 저녁 6시 이전에 예수님과 두 강도는 십자가에서 치워져야 합니다.

지금까지의 경험으로 비추어 볼 때 십자가에 달려서 몇 시간 만에 죽는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대제사장과 서기관들이 유월절에 예수님을 죽이지 말고 유월절 다음에 죽이자고 의논한 것도 모두가 죄수가 빨리 죽지 않을 것을 계산하여 안식일에 시체가 나무에 달려 있을 것을 염두에 두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빌라도가 사형을 집행한 것입니다.

그것도 유대인들이 죽이라고 하여서 말입니다.

막상 죽이고 나니까 이제 율법을 어기는 큰 죄에 빠지게 생겼습니다.

사상 초유에 안식일에 시체가 나무에 달리는 사건이 발생 할 수가 있어진 것입니다.

 

유대인들의 생각대로라면 예수님은 유월절 막바지 시간인 구시 즉 우리 시간으로 오후 3시에 죽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아직까지 여섯 시간 만에 죽은 죄수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로마 군인들도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로마 군인도 여섯 시간 만에 죽는다는 것은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유대인들은 다급하여 로마 병정들에게 뇌물을 주고 빨리 죽여 달라고 합니다.

그래서 로마 군인들은 산 사람의 다리를 꺾어서라도 빨리 죽이고자 하였습니다.

 

요 19:31-36절. “이 날은 예비일이라 유대인들은 그 안식일이 큰 날이므로 그 안식일에 시체들을 십자가에 두지 아니하려 하여 빌라도에게 그들의 다리를 꺾어 시체를 치워 달라 하니 32. 군병들이 가서 예수와 함께 못 박힌 첫째 사람과 또 그 다른 사람의 다리를 꺾고 33. 예수께 이르러는 이미 죽은 것을 보고 다리를 꺾지 아니하고 34. 그 중 한 군병이 창으로 옆구리를 찌르니 곧 피와 물이 나오더라 35. 이를 본 자가 증거하였으니 그 증거가 참이라 저가 자기의 말하는 것이 참인 줄 알고 너희로 믿게 하려함이니라 36. 이 일이 이룬 것은 그 뼈가 하나도 꺾이우지 아니하리라 한 성경을 응하게 하려함이라”

 

유대인으로부터 뇌물을 받은 로마 병정들은 예수님과 함께 달린 강도들의 뼈를 먼저 꺾어 버립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다리를 꺾으려고 하자 이미 운명한 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다리를 꺾지 않고 죽은 것을 확인하려고 창으로 옆구리 찔렀던 것입니다.

 

두 강도들은 아직도 숨이 붙어 있는데 예수님만 죽은 것입니다.

그들도 의아해 하였습니다.

어떻게 이렇게 빨리 죽었지 라고,,,,

 

이는 예수님께서 유월절 양으로서 죽기 위해서 스스로 죽음을 불러들이신 것입니다.

 

요 10:17-18절.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시는 것은 내가 다시 목숨을 얻기 위하여 목숨을 버림이라 18. 이를 내게서 빼앗는 자가 있는 것이 아니라 내가 스스로 버리노라 나는 버릴 권세도 있고 다시 얻을 권세도 있으니 이 계명은 내 아버지에게서 받았노라 하시니라”

 

예수님은 누가 목숨을 빼앗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버린다고 하셨습니다.

여기서 버린다는 것은 속전으로 주신다는 뜻입니다.

예수님이 죽음을 불러들이신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머리를 숙이니 영혼이 떠나가셨다고 하는 것입니다.

 

요 19:30절. “예수께서 신 포도주를 받으신 후 가라사대 다 이루었다 하시고 머리를 숙이시고 영혼이 돌아가시니라”

 

머리를 숙였다는 것은 죽음을 잡은 자에게 나 이제 갈께 라고 통보한 것입니다.

이제 떠날 시간이 되었으니 내 목숨을 거두어 가라고 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뼈가 꺾이기 전에 돌아가신 것입니다.

 

이 모두가 하나님께서 유월절 양은 절대로 뼈를 꺾지 못하도록 하셨기 때문입니다.

 

민 9:12절. “아침까지 그것을 조금도 남겨 두지 말며 그 뼈를 하나도 꺾지 말아서 유월절 모든 규례대로 지킬 것이라”

 

출 12:46절. “한 집에서 먹되 그 고기를 조금도 집 밖으로 내지 말고 뼈도 꺾지 말지며”

 

유대인들은 다른 양을 먹을 때는 뼈를 꺾어서 그 속에 있는 골수도 빼내서 먹습니다.

그러나 유월절 어린 양은 절대로 뼈를 꺽지 않았습니다.

이는 장차 오실 메시야의 뼈가 꺾이지 아니할 것을 예견하시고 금하셨던 것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은 유월절 어린 양의 죽음을 완벽하게 성취하셨습니다.

 

만약 예수님의 뼈가 꺾였더라면 유월절을 통하여서 예언하신 어린 양의 실상이 아니므로 그 예수는 가짜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믿는 우리의 유월절 어린 양 되신 예수그리스도는 한 치의 오차도 없이 1500년 전에 유월절 양으로서의 예언 된 그 모습대로 죽이신 것입니다.

 

다섯째로, 유월절 어린 양의 피로 죽음에서 살아났습니다.

 

출 12:7, 27절. “그 피로 양을 먹을 집 문 좌우 설주와 인방에 바르고…여호와께서 애굽 사람을 치실 때에 애굽에 있는 이스라엘 자손의 집을 넘으사 우리의 집을 구원하셨느니라,,,,,”

 

이스라엘을 유월절 어린 양의 피로 죽음으로부터 살아났습니다.

죽음의 천사가 애굽의 장자를 죽일 때에 어린 양의 피가 발려진 집은 넘어 갔습니다.

어린 양의 피가 죽음으로부터 지켜준 것입니다.

 

그럼 예수그리스도의 피로 자기 백성들이 죽음에서 해방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예수그리스도가 유월절 어린 양의 실상이 되는 것입니다.

그럼 예수님의 죽음으로 죽은 자들이 살아나야 합니다.

 

마 27:50-53절. “예수께서 다시 크게 소리 지르시고 영혼이 떠나시다 51. 이에 성소 휘장이 위로부터 아래까지 찢어져 둘이 되고 땅이 진동하며 바위가 터지고 52. 무덤들이 열리며 자던 성도의 몸이 많이 일어나되 53. 예수의 부활 후에 저희가 무덤에서 나와서 거룩한 성에 들어가 많은 사람에게 보이니라”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시자 땅이 진동하고 바위가 터지고 무덤이 열립니다.

그리고 자던 성도들이 살아납니다.

이는 유월절 어린 양의 피로서 죽음의 재앙에서 살아난 것과 같은 것입니다.

 

예수님의 피가 죽음에서 살아나게 하신 것입니다.

이들은 구약의 성도들입니다.

예수님이 부활 하신 후에 이들을 데리고 하늘나라로 가셨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를 지시기 전에 이러한 사실을 만찬을 하시면서 제자들에게 알려 주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유월절 만찬을 하시면서 피로서 새 언약을 세우신다고 하셨습니다.

 

마 26:26-28절. “저희가 먹을 때에 예수께서 떡을 가지사 축복하시고 떼어 제자들을 주시며 가라사대 받아 먹으라 이것이 내 몸이니라 하시고 27. 또 잔을 가지사 사례하시고 저희에게 주시며 가라사대 너희가 다 이것을 마시라 28. 이것은 죄 사함을 얻게 하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

 

언약이란 약속입니다.

구약의 성도들은 유월절 어린 양으로 약속을 받았습니다.

신약의 성도들은 예수님의 피로 약속을 받았습니다.

신약의 성도는 이 약속을 믿음으로 살아갑니다.

 

예수님의 피는 죄 사함을 얻게 하려고 흘리는 피라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죽음으로 죄사함을 받은 것입니다.

죄사함 받은 것을 의롭게 되었다고 합니다.

 

죄인은 불의한 자들입니다.

스스로 의로워질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은 자기 백성들에게 예수그리스도의 의를 주어서 의롭다 여겨 주시는 일을 하셨습니다.

 

우리는 의로운 자가 아닙니다.

예수그리스도 안에서 의롭다 여겨 주심을 입은 자들입니다.

하나님은 예수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의롭다 여겨 주십니다.

 

성도가 의롭게 된 것은 오로지 예수그리스도의 피 때문입니다.

 

롬 5:9절. “그러면 이제 우리가 그 피를 인하여 의롭다 하심을 얻었은즉”

 

벧전 1:19절. “오직 흠 없고 점 없는 어린 양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한 것이니라”

 

하나님은 성도의 행실을 보고 구원한 것이 아니라 어린 양의 피를 보고 구원해 주셨습니다.

이스라엘은 어린 양의 피 안에서만 산 자가 되었습니다.

이 사실을 잊지 말라고 광야에서 성막을 주시고 흠 없는 제물의 희생제사로 죄사함을 받는 것을 가르쳐 주었습니다.

 

너희는 스스로 의로운 자가 아니고 흠 없는 제물의 피 흘리심으로 의롭다 여김을 입은 자들이라는 것을 잊지 말라는 것입니다.

성막에서 드려지는 제사는 유월절 어린 양의 피로 살고 있음을 현재화 시키는 것입니다.

제사 속에 이 정신이 담겨져 있어야 합니다.

신약적으로는 예배 속에 담겨져 있어야 합니다.

 

이스라엘이 잊어선 안 되는 것은 어린 양의 피입니다.

유월절 어린 양의 피에 의미를 모르는 자는 진정한 이스라엘이 아닙니다.

성막에서 드려지는 제사는 어린 양을 기념케 하는 제사입니다.

 

예수님이 유월절 어린 양의 실상입니다.

그럼 신약의 성도들도 예수그리스도의 피를 잊으면 안 됩니다.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에 죽으심에 의미를 모르는 자는 성도가 아닙니다.

 

히 9:14-15절. “성령으로 말미암아 흠 없는 자기를 하나님께 드린 그리스도의 피가 어찌 너희 양심으로 죽은 행실에서 깨끗하게 하고 살아계신 하나님을 섬기게 못하겠느뇨 15. 이를 인하여 그는 새 언약의 중보니 이는 첫 언약 때에 범한 죄를 속하려고 죽으사 부르심을 입은 자로 하여금 영원한 기업의 약속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예수그리스도의 피는 우리를 살게 하는 생명입니다.

그렇다고 한다면 성도는 예수그리스도의 피만 자랑하여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성도를 세상에 남겨 둔 것은 예수그리스도의 피를 증거케 하기 위함입니다.

교회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은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을 현재 속에서 기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예수그리스도의 피를 부정케 하는 자는 용서치 않으십니다.

 

히 10:28-29절. “모세의 법을 폐한 자도 두 세 증인을 인하여 불쌍히 여김을 받지 못하고 죽었거든 29. 하물며 하나님 아들을 밟고 자기를 거룩하게 한 언약의 피를 부정한 것으로 여기고 은혜의 성령을 욕되게 하는 자의 당연히 받을 형벌이 얼마나 더 중하겠느냐 너희는 생각하라”

 

사도 바울은 십자가 이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으리라고 경고를 하였습니다.

 

갈 1:8절. “그러나 우리나 혹 하늘로부터 온 천사라도 우리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찌어다”

 

출애굽 시대에는 어린 양의 피가 없는 곳에는 죽음의 재앙이 내렸습니다.

지금도 예수그리스도의 피가 없는 곳에 하나님의 진노가 머물게 됩니다.

 

예수그리스도 안에는 안식이 주어지지만,

예수그리스도 밖에는 진노만 머물게 됩니다.

 

교회란? 예수그리스도의 피로 세워진 곳입니다.

교회의 존재 이유는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증거키 위함입니다.

 

첫째도, 예수그리스도의 피를 증거하는 것이고,

둘째도, 예수그리스도의 피만 증거하여야 하고,

셋째도, 예수그리스도의 피만 증거 하는 자가 구원받은 자입니다.

 

여섯째로, 유월절을 기점으로 하여 해의 첫 달이 되게 하였습니다

 

출 12:2절. “…이 달로 너희에게 달의 시작 곧 해의 첫 달이 되게 하고”

 

신 16:1절. “아빕월을 지켜 네 하나님 여호와의 유월절 예식을 행하라 이는 아빕월에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밤에 너를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셨음이라”

 

하나님께서 유월절을 새로운 해의 시작이 되게 하셨습니다.

이는 새로운 시대가 되었다는 것을 알리는 것입니다.

유월절 이전에는 아브라함의 혈통으로 구분 하였습니다.

 

그러나 유월절 어린 양의 피로 죽음에서 건져지고 출애굽 한 자들에게는 아브라함의 혈통의 의미는 사라져 버렸습니다.

왜냐하면 어린 양의 피로 새로운 사람으로 살아났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광야에서는 혈통을 자랑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오로지 어린 양의 피만 자랑해야 합니다.

이러한 사실을 아는 사람은 새로운 시대로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유월절 어린 양의 피로 출애굽한 자들에게 애굽에서 사용하던 달력은 버리고 새로운 달력을 주신 것입니다.

너희들은 이제부터 애굽 사람이 아니고 어린 양으로 인한 새로운 사람이 되었다는 뜻입니다.

다른 나라 사람이 되었다는 말이다.

 

이스라엘은 애굽에서 쓰던 민간력과 출애굽 후에 쓰는 성력이 있다.

 

민간력과 성력의 7달의 차이가 납니다.

애굽에서의 7월 달이 출애굽 한 이스라엘에게 1월 달이 되는 것입니다.

애굽은 7에 속한 곳이지만 어린 양의 피로 출애굽한 자들은 7을 지나 8에 속한 날로 살아가는 자들인 것입니다.

 

7은 애굽 왕 바로의 역사에 속하였고,

8은 어린 양이신 예수그리스도에게 속하였습니다.

 

애굽에 사람은 7로 끝이 나고,

어린 양의 피로서 새로운 피조물로 태어난 자들은 8로 시작을 하는 것입니다.

 

구원은 7을 지나 8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7로 살아가던 애굽의 사람은 홍해에서 죽고,

어린 양으로 살아난 자들은 광야를 8로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유월절을 기점으로 해의 첫 달이 되게 하신 것에는 장차 오실 메시야를 통하여 새 시대가 열릴 것을 예언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세상의 역사는 예수그리스도를 기준으로 주전과 주후로 나누어지는 것입니다.

 

예수님 오시기 전을 BC (Before Christ) 주전이라고 하고,

예수님이 오신 후를 AD (Anno Domini) 주후라고 합니다.

 

이는 이 세상 역사는 예수그리스도를 중심으로 움직이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예수그리스도 중심으로 세상 역사를 다스리고 계심을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이건 우리 인생에서도 그대로 적용이 됩니다.

예수를 믿기 전과 예수를 믿고 난 후가 다른 인생입니다.

 

성도를 일컬어 새로운 피조물이라고 합니다.

 

고후 5:17절.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예수를 믿기 전은 옛 사람이고, 예수를 믿고 난 후는 새 사람입니다.

우리가 예수를 믿기 전에는 율법 아래서 죄와 사망에 거하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를 믿고 난 후에는 은혜 아래서 의와 생명에 속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예수 믿기 전에는 법으로 살았지만,

예수를 믿고 난 후에는 은혜로 살아갑니다.

 

법 아래 있는 자는 사망이 왕 노릇하지만,

은혜 아래 있는 자는 생명이 왕노릇 합니다.

그래서 누구든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다고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그렇게 대하십니다.

 

성도는 땅에 사람은 죽었습니다.

그리스도와 함께 하늘에 사람으로 살아난 자들입니다.

 

골 3:1-3절.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았으면 위엣 것을 찾으라 거기는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느니라 2. 위엣 것을 생각하고 땅엣 것을 생각지 말라 3. 이는 너희가 죽었고 너희 생명이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감취었음이니라”

 

나는 이전의 내가 아니라 예수 안에서 다른 나인 것입니다.

이전의 나로 살지 말고 예수 안에서 나로 살아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나는 죽고 그리스도 안에서 산다고 하였습니다.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갈 2:20절.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하나님께서 이 땅에 예수님 한 분 남기시려고 인간의 역사를 통째로 들어서 사용하셨습니다.

지금도 그렇게 사용하고 있습니다.

 

예수를 얻는 사람은 세상 전체를 얻은 것이고,

예수를 놓친 사람은 세상 전체를 놓친 사람이 됩니다.

예수라는 보배를 질그릇 속에 담고 있는 사람은 성공한 인생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성경대로 오셨습니다.

그리고 성경대로 사시다가 가셨습니다.

가시면서 너희가 본 대로 다시 오겠다고 약속을 하셨습니다.

 

지금까지 하나님께서 약속 하신 것이 역사 속에서 한 치의 오차도 없이 그대로 이루어진 것을 보았습니다.

그럼 예수님의 다시 오심이라는 약속도 한 치의 오치 없이 그대로 이루어질 것입니다.

 

유월절이 그대로 예수그리스도를 통하여서 성취가 되었다면,

또 다른 절기들도 예수그리스도께서 성취하실 것입니다.

예수님의 오심으로 모든 절기는 영적인 의미에서는 완성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역사 속에서 과거와 현재와 미래로 남겨져 있습니다.

 

이미 이루어진 절기도 있고,

현재 진행되는 절기도 있고,

장차 이루어질 절기도 있습니다.

 

봄 절기는, 과거에 완성이 되었고,

여름 절기는, 현재진행 중이고,

가을 절기는, 장차 미래에 완성이 될 것입니다.

 

일을 시작 하신 이가 끝 날까지 이루실 것입니다.

절기를 통해서 하나님의 약속은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이루어진다는 것을 믿고 위로를 받아야 하고 소망을 가져야 합니다.

 

절기는 우리들의 구원 시나리오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역사 속에서 펼쳐 가시는 창세전 언약이라는 대하드라마에 캐스팅 된 배우들입니다.

 

그것도 예수그리스도라는 주인공 편에 속한 조연들입니다.

예수그리스가 이긴 자입니다.

예수그리스도가 이긴 자이면 그에게 속한 자들도 이긴 자입니다.

 

이 세상 역사를 400M 달리기 계주라고 한다면 지금은 마지막 주자들이 달리고 있는 때입니다.

결승점이 코 앞에 있습니다.

우리가 결승 테이프를 끊어야 합니다.

 

온 세상의 이목이 마지막 주자에게 쏠려 있습니다.

마지막 주자들이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있습니다.

골인 지점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우리 앞서 달린 주자들이 하늘나라에서 응원을 합니다.

그 응원 소리가 들려지기를 바랍니다.

그리하여 남은 인생 믿음으로 잘 경주하여서 웃으면서 골인하시기를 축원드립니다.

 

마라나타!

 

 

 

 

 

 

"여호와의 정하신 날"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보라 용광로 불 같은 날이 이르리니

교만한 자와 악을 행하는 자는 다 지푸라기 같을 것이라

말라기 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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