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 빛 사랑

시 3:5 내가 누워 자고 깨었으니 여호와께서 나를 붙드심이로다

♣(성경강해)24강. 속죄일의 영적 의미 (레 16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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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강해/레위기 강해

2021. 10. 19.

 

 

딤후 3장 12-15 

무릇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자는 박해를 받으리라 악한 사람들과 속이는 자들은 더욱 악하여져서 속이기도 하고 속기도 하나니 그러나 너는 배우고 확신한 일에 거하라 너는 네가 누구에게서 배운 것을 알며 또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았나니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

 

 

24강. 속죄일의 영적 의미 (레 16장)

-.정낙원 목사

 

 

 

레위 16:29-31절. “너희는 영원히 이 규례를 지킬지니라 칠 월 곧 그 달 십 일에 너희는 스스로 괴롭게 하고 아무 일도 하지 말되 본토인이든지 너희 중에 우거하는 객이든지 그리하라 30. 이 날에 너희를 위하여 속죄하여 너희로 정결케 하리니 너희 모든 죄에서 너희가 여호와 앞에 정결하리라 31. 이는 너희에게 큰 안식일인즉 너희는 스스로 괴롭게 할지니 영원히 지킬 규례라”

 

하나님은 아론의 가문을 제사장 가문으로 선택을 합니다.

그리고 아론과 그 아들들에게 성막에서 드려지는 각종 제사를 통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의 죄를 어떻게 용서해 주시는지를 알려 주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백성들이 보는 앞에서 아론과 그 아들들에게 제사장 위임식을 거행합니다.

제사장 위임을 받은 아론은 첫 제사를 성공적으로 드립니다.

이어서 그 아들들도 제사를 지내게 됩니다.

 

그런데 아론의 첫째 아들과 둘째 아들인 나답과 아비후가 다른 불로 하나님께 분향을 하다가 즉사를 당하였습니다.

이 일 후에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민족이 모든 죄에서 사함을 받는 속죄 제사를 드리게 하십니다.

그것이 7월 10 속죄일 제사입니다.

 

속죄일 제사는 일 년에 단 한번 드려지는 제사입니다.

그래서 대속죄일이라고 합니다.

속죄일 제사 속에는 하나님께서 어떻게 자기 백성들을 죄로부터 벗어나게 해 주시는지가 담겨져 있습니다.

 

하나님은 출애굽 한 백성들에게 그들을 애굽에서 건져낸 목적을 분병하게 알려 주십니다.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라고 합니다.

나는 너희를 거룩케 하려고 애굽에서 건져냈다고 합니다.

 

레위 11:44-45절. “나는 여호와 너희 하나님이라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몸을 구별하여 거룩하게 하고 땅에 기는바 기어 다니는 것으로 인하여 스스로 더럽히지 말라 45 나는 너희의 하나님이 되려고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여호와라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

 

거룩이란? 구별된 것을 말합니다.

무엇으로부터의 구별입니까?

 

첫째, 애굽이라는 땅으로부터의 구별입니다.

둘째, 애굽적 삶과 가치로서의 구별입니다.

 

하나님은 아담이 범죄하자 에덴동산에서 추방합니다.

그리고 아담이 살아갈 땅을 저주하십니다.

하나님은 땅을 비거룩으로 규정합니다.

그래서 땅에 기어 다니는 것으로 인하여 스스로 더럽히지 말라고 합니다.

 

애굽은 죄의 나라를 상징합니다.

애굽 땅은 죄인들이 살아가는 곳을 상징합니다.

출애굽 하였다는 것은 죄의 나라로부터 빠져 나왔다는 뜻입니다.

출애굽 한 백성들에게 하나님은 탈 애굽적 삶을 살아가도록 가르치십니다.

그것이 죄와의 싸움입니다.

 

죄는 개인이 저지르는 죄도 있지만, 민족적인 죄도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하나의 유기체적 집단입니다.

무슨 말인고 하니 하나님께서 개개인을 이스라엘이라는 민족 자체를 하나로 본다는 뜻입니다.

이를 한 몸이라고 합니다.

 

한 사람이 죄를 지으면 민족 전체가 지은 죄로 간주를 하십니다.

그럼 한 사람의 죄 때문에 민족 전체가 재앙을 당하게 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온 민족이 죄를 벗는 날을 주셨습니다.

그것이 속죄일입니다.

 

속죄일은 이스라엘 민족들이 가장 기다리는 날입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이렇게 말을 합니다.

 

책 중에서 제일 중요한 책은 성경책이고,

성경책 중에서 제일 중요한 책은 레위기이고,

레위기 중에서 제일 중요한 장은 16장이고,

장소 중에 제일 중요한 장소는 지성소이고,

사람 중에 제일 중요한 사람은 대제사장이고,

날 중에 제일 중요한 날은 7월 10일 대속죄일이고,

일 중에 제일 중요한 일은 죄사함 받는 일이라고 합니다.

 

이 말은 속죄일을 가장 귀하게 여긴다는 뜻입니다.

왜 속죄일을 가장 귀하게 여길까요?

이는 속죄일이 되면 두 가지 일이 주어지기 때문입니다.

 

첫째는 민족의 죄를 벗는 날입니다.

둘째는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날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은 속죄일을 가장 귀하고 큰 절기로 지키는 것입니다.

 

속죄일은 하나님을 만나는 날입니다.

 

속죄일에는 대제사장이 지성소에 들어가는 날입니다.

지성소는 하나님이 계시는 곳입니다.

속죄일이 되면 대제사장은 에봇을 입고 흉패를 붙이고 지성소로 들어갑니다.

 

대제사장의 가슴에 붙인 흉패에는 12 가지 보석이 달려 있습니다.

그것은 이스라엘의 12 지파를 상징합니다.

온 민족이 하나님을 만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속죄일에 대제사장이 온 민족을 데리고 하나님을 만나러 가는 것입니다.

이것은 장차 예수님이 재림 하시면 모든 성도들을 하나님 앞으로 데리고 가는 것을 예표하고 있는 것입니다.

 

다니엘 9장을 보면 70 이레에 대한 예언이 나옵니다.

 

단 9:24절. “네 백성과 네 거룩한 성을 위하여 칠십 이레로 기한을 정하였나니 허물이 마치며 죄가 끝나며 죄악이 영속되며 영원한 의가 드러나며 이상과 예언이 응하며 또 지극히 거룩한 자가 기름부음을 받으리라”

 

하나님은 바벨론에서 포로로 잡혀 있는 백성들에게 위로의 말씀을 주십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과 그들이 살아갈 성을 위하여 70 이레의 기한을 정하셨다고 합니다.

그것은 70 이레가 되면 인류 역사가 마감이 된다는 뜻입니다.

 

1). 허물이 마치고,

2). 죄가 끝나며,

3). 죄악이 영속되며,

4). 영원한 의가 드러나며,

5). 이상과 예언이 응하게 됩니다.

 

70 이레는 속죄일과 같은 것입니다.

1년을 이스라엘의 전 역사라고 한다면,

7월 10일에 드려지는 속죄일은 온 민족이 죄로부터 영원히 사함을 받는 날인 것입니다.

죄를 벗고 하나님을 만나는 것은 구원의 최종 지점입니다.

이것은 모든 일을 마치고 안식하는 것과 같습니다.

 

절기로 보면 속죄일이 끝나면 초막절을 지킵니다.

초막절은 영원한 안식을 상징하는 절기입니다.

속죄일은 영원한 안식일을 지키기 위하여 이스라엘 전체가 목욕을 하는 것과도 같습니다.

 

과거 우리가 어렸을 때 설날을 맞이하기 전에 온 가족이 목욕탕에 가서 묵은 때를 씻어내고 새로운 날을 맞이한 것과도 같습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 민족은 속죄일을 가장 큰 절기로 지켰습니다.

온 민족이 죄로부터 자유 하는 날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아담과 하와가 범죄하자 에덴동산에서 추방을 합니다.

그리고 에덴동산의 문을 걸어 잠급니다.

에덴동산에서 쫓겨 난 후 죄인은 하나님을 만날 수 없게 되었습니다.

 

만나고 싶어도 하나님이 만나 주시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죄인과는 상종할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과 만나려면 먼저 죄 문제가 해결 되어야 합니다.

 

죄 문제는 죄인 쪽에서 해결 할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이 해결해 주셔야지만 가능합니다.

그것을 대 속죄일 제사 속에 담아 놓으신 것입니다.

 

성막에서 드려지는 제사에는 두 종류가 있습니다.

 

매일 드려지는 제사가 있고,

일 년에 단 한 차례 드려지는 제사가 있습니다.

 

매일 드리는 제사는 일반 제사장들이 드리고,

일 년에 단 한번 드려지는 대 속죄일의 제사는 대제사장이 드립니다.

 

일반 제사장들이 드리는 매일의 제사는 뜰과 성소에서 드려지는데,

대제사장이 일 년에 단 한 번 드리는 대 속죄일의 제사는 지성소에서 드려집니다.

 

일 년에 단 한 번 드려지는 속죄일의 제사는 원죄를 사함 받는 번제적인 의미가 있고,

매일 드려지는 제사는 하루 하루 살아가면서 짓는 삶 속에서 죄인 자범죄를 사함 받는 속죄제의 의미가 있습니다.

 

매일 드리는 제사장의 제사는 매일 짓는 죄를 위한 것이고,

일 년에 단 한 번 드리는 속죄일 제사는 일 년 동안의 모든 죄를 일괄 사함 받는 것입니다.

죄사함을 받은 자는 하나님을 만날 수 있게 됩니다.

 

제사장들은 일 년 동안 성소에서 하나님을 간접적으로 만났지만,

속죄일에는 지성소에서 대제사장이 하나님을 직접적으로 만나게 됩니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속죄일은 예수님이 재림 하신 후에 성도들이 천국에서 하나님을 만나게 되는 것을 예표하고 있기도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일 년 중에서 7월 10일 대 속죄일을 가장 귀하여 여기고 기다리게 되는 것입니다.

이는 성도들이 예수님의 재림을 기다리는 것과도 같습니다.

 

일반 제사장과 대제사장은 성도와 예수그리스도를 상징합니다.

성도들은 일반 제사장들처럼 이 땅의 교회라는 성소에서 하나님을 간접적으로 만납니다.

그러나 대제사장이신 예수그리스도는 하늘에 있는 지성소인 하나님 나라에 가셔서 하나님을 만나고 있는 것입니다.

 

속죄일의 제사에는 세 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첫째, 과거적인 의미입니다.

 

과거적 의미로는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자기 백성들을 위한 제물로 죽어 주신 것입니다.

이것은 원죄를 위한 단번의 속죄제사입니다.

 

율법 아래서 매년 7월 10일에 드려지는 속죄일의 제사는 장차 예수님께서 오셔서 드려지는 속죄 제사를 예표하고 있는 것입니다.

구약에서는 짐승으로 속죄 제사를 드렸지만 신약에서는 예수그리스도의 몸으로 드립니다.

 

히 10:1-10절. “율법은 장차 오는 좋은 일의 그림자요 참 형상이 아니므로 해마다 늘 드리는바 같은 제사로는 나아오는 자들을 언제든지 온전케 할 수 없느니라 2. 그렇지 아니하면 섬기는 자들이 단번에 정결케 되어 다시 죄를 깨닫는 일이 없으리니 어찌 드리는 일을 그치지 아니 하였으리요 3. 그러나 이 제사들은 해마다 죄를 생각하게 하는 것이 있나니 4. 이는 황소와 염소의 피가 능히 죄를 없이 하지 못함이라 5. 그러므로 세상에 임하실 때에 가라사대 하나님이 제사와 예물을 원치 아니하시고 오직 나를 위하여 한 몸을 예비하셨도다 6. 전체로 번제함과 속죄제는 기뻐하지 아니하시나니 7. 이에 내가 말하기를 하나님이여 보시옵소서 두루마리 책에 나를 가리켜 기록한 것과 같이 하나님의 뜻을 행하러 왔나이다 하시니라 8. 위에 말씀하시기를 제사와 예물과 전체로 번제함과 속죄제는 원치도 아니하고 기뻐하지도 아니하신다 하셨고(이는 다 율법을 따라 드리는 것이라) 9. 그 후에 말씀하시기를 보시옵소서 내가 하나님의 뜻을 행하러 왔나이다 하셨으니 그 첫 것을 폐하심은 둘째 것을 세우려 하심이니라 10. 이 뜻을 좇아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단번에 드리심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거룩함을 얻었노라”

 

율법은 장차 오는 좋은 일의 그림자라고 합니다.

그림자는 실상을 보여주는 사진과 같은 것입니다.

사진은 실제가 있다는 것을 알려주는 일을 합니다.

 

율법 아래서 드려지는 짐승의 제사는 사진과 같은 것이므로 참 형상이 아닙니다.

사진은 참 형상이 올 때까지 유효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율법 아래서는 매년 드린 것입니다.

예수님이 오시면 단번에 끝이 나게 됩니다.

 

하나님은 창세전에 예수그리스도의 몸으로 드리는 제사를 언약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율법으로 드려지는 짐승의 제사는 예수님께서 오셔서 자기 몸으로 드려지기까지는 예표적으로 그림자로 드려진 것입니다.

 

짐승의 제사는 예표적인 것이므로 반복하여서 드렸지만,

예수님의 몸으로 드리는 제사는 실상이므로 단 번에 끝이 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이루신 제사는 단번에 끝이 나는 제사로서 우리의 원죄를 속량해 주는 제사가 되는 것입니다.

 

둘째, 현재적 의미입니다.

 

현재적 의미로는 예수님께서 부활 하신 후에 승천하여서 대제사장으로서 하늘 보좌에서 자기 백성들이 세상에서 살아가는 삶 속에서 짓는 죄인 자범죄들을 자신의 피로서 용서 받게 하는 대언의 기도를 하고 계신 것입니다.

 

히 2:17-18절. “그러므로 저가 범사에 형제들과 같이 되심이 마땅하도다 이는 하나님의 일에 자비하고 충성된 대제사장이 되어 백성의 죄를 구속하려 하심이라 18. 자기가 시험을 받아 고난을 당하셨은즉 시험 받는 자들을 능히 도우시느니라”

 

히 7:24-25절. “예수는 영원히 계시므로 그 제사 직분도 갈리지 아니하나니 25. 그러므로 자기를 힘입어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들을 온전히 구원하실 수 있으니 이는 그가 항상 살아서 저희를 위하여 간구하심이니라”

 

롬 8:33-34절. “누가 능히 하나님의 택하신 자들을 송사하리요 의롭다 하신 이는 하나님이시니 34. 누가 정죄하리요 죽으실 뿐 아니라 다시 살아나신 이는 그리스도 예수시니 그는 하나님 우편에 계신 자요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자시니라”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우리의 원죄를 단번에 속죄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부활 하신 후에 승천하셨습니다.

지금은 하나님 우편에서 자기 백성들을 위하여 하나님 앞에서 변호를 하고 계십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십자가로 단번 속죄를 이루었습니다.

그러나 죄 아래서 난 몸으로 살아가면서 짓는 죄들이 있습니다.

우리가 죄를 지으면 사단은 하나님에게 참소를 합니다.

그럼 예수님께서는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십자가를 근거로 죄사함을 위한 변호를 하십니다.

죄사함의 변호는 매일 매일 이루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셋째, 미래적 의미입니다.

 

미래적 의미로는 예수님께서 재림하시면 모든 백성들을 천국으로 데리고 가서 하나님을 만나게 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7대 절기가 있습니다.

7대 절기는 예수님의 일생을 담겨 있습니다.

 

유월절은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임 당하신 것을 말하고.

무교절은 예수님께서 무덤 속에 계신 것을 말하고.

초실절은 예수님께서 죽음에서 부활 하신 것을 말하고,

오순절은 예수님이 성령으로 우리 가운에 오심을 말하고,

나팔절은 예수님의 재림을 말하고,

속죄일과 초막절은 예수님이 재림 하신 후에 일어나는 것을 말합니다.

초막절은 예수님과 더불어 천년동안 살아가는 천년왕국을 말합니다.

 

속죄일은 절기상으로는 나팔절 다음에 있습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이 재림하시면 모든 성도들이 일괄적으로 죄 씻음 받는 일이 일어난다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예수님이 재림 하신 후에 친히 대제사장이 되어서 속죄일을 지키게 됩니다.

그것은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셔서 자기 백성을 무사히 다 구원을 하시고 난 후에 아버지께 나아가서 보고를 하는 것입니다.

 

요 6:38-39절. “내가 하늘로서 내려온 것은 내 뜻을 행하려 함이 아니요 39.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려 함이니라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은 내게 주신 자 중에 내가 하나도 잃어버리지 아니하고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는 이것이니라”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신 것은 아버지의 뜻을 행하러 오셨습니다.

아버지의 뜻은 아버지께서 주신 자들을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는 것입니다.

다시 살린다는 말은 잠시 죽어 있던 자들을 다시 일으킨다는 뜻입니다.

 

우리가 예수를 믿으면 즉시로 구원을 받습니다.

그러나 우리 육신은 이 땅에서 정한 기한을 살다가 죽습니다.

영혼은 하늘나라로 올라가고 육신은 이 세상 무덤에 가두어지게 됩니다.

 

육신은 예수님이 재림 하셔야 하늘의 몸으로 살아나게 됩니다.

 

살전 4:13-18절. “형제들아 자는 자들에 관하여는 너희가 알지 못함을 우리가 원치 아니하노니 이는 소망 없는 다른 이와 같이 슬퍼하지 않게 하려 함이라 14. 우리가 예수의 죽었다가 다시 사심을 믿을진대 이와 같이 예수 안에서 자는 자들도 하나님이 저와 함께 데리고 오시리라 15. 우리가 주의 말씀으로 너희에게 이것을 말하노니 주 강림하실 때까지 우리 살아남아 있는 자도 자는 자보다 결단코 앞서지 못하리라 16.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로 친히 하늘로 좇아 강림하시리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17. 그 후에 우리 살아남은 자도 저희와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 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 18. 그러므로 이 여러 말로 서로 위로하라”

 

고전 15:51-52절. “보라 내가 너희에게 비밀을 말하노니 우리가 다 잠잘 것이 아니요 마지막 나팔에 순식간에 홀연히 다 변화하리니 52. 나팔 소리가 나매 죽은 자들이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고 우리도 변화하리라”

 

예수님이 재림을 하시면 우리 몸은 홀연히 변화를 입게 됩니다.

먼저 죽은 자들은 썩지 아니할 몸으로 다시 살아나고, 그 후에 살아남은 자들은 하늘의 신령한 몸으로 변화를 입게 되는 것입니다.

이는 하늘에서 살아가는 몸을 입는 것입니다.

 

쉬운 말로 두 몸이 있습니다.

땅에서 살아가는 몸과 하늘에서 살아가는 몸이 있습니다.

이것은 예수님을 통해서 보여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하늘에 계셨습니다.

그런데 이 세상으로 오시면서 이 세상에 필요한 몸을 입고 오셨습니다.

그것이 성육신입니다.

 

성도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땅에서 살아갑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오시면 우리를 하늘로 데리고 갑니다.

 

그러자면 우리의 몸도 하늘에서 살 수 있는 몸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재림하시면 우리의 몸이 홀연히 하늘의 몸으로 변화가 되는 것입니다.

이를 신령한 몸이라고 합니다.

 

신령한 몸을 입은 자들을 일컬어 하나님의 아들들이라고 합니다.

예수님은 이들을 데리고 아버지께로 나아갑니다.

그리 할 때 아버지께서 주신 자들을 하나라도 잃어버리지 아니하고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린다고 하신 말씀이 응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예수님께서 아버지로부터 받은 사명을 다 완수 하게 됩니다.

그러면 아버지께서 예수님에게 하나님의 아들들을 다스리는 통치권을 주십니다.

이를 천년왕국이 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천년왕국을 아들의 나라라고 하는 것입니다.

 

천년왕국은 에덴동산의 회복이 이루어지는 곳입니다.

아담과 하와가 생육하고 번성하고 땅을 충만케 하라는 하나님의 일을 죄로 인하여 상실한 것은 예수님과 그의 신부들이 회복하여서 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럴 때 하나님의 아들들이 하늘의 별과 같이 바다의 모래같이 그 수효가 많아져서 충만케 되어지는 것입니다.

 

속죄일이 되면 대제사장은 두 번의 제사를 드리게 됩니다.

 

첫 번째는, 자기 자신을 위한 제사입니다.

 

수송아지와 수양을 준비합니다.

수송아지로는 속죄제로 드리고, 수양으로는 번제를 드립니다.

 

두 번째는, 백성들을 위한 제사입니다.

 

두 마리 염소와 수양을 준비합니다.

두 마리 염소 중에서 한 마리는 속죄제를 드리고, 수양으로는 번제를 드립니다.

 

대제사장은 두 마리 염소를 두고 제비를 뽑습니다.

 

한 마리는 여호와를 위한 것이고,

한 마리는 아사셀을 위한 것입니다.

 

여호와를 위한 염소는 죽임을 당하고,

아사셀을 위한 염소는 산 채로 광야로 보내어 집니다.

 

두 마리 염소는 예수님을 상징합니다.

 

죽임 당한 예수님이 있고,

살아서 승천하신 예수님이 있습니다.

 

여호와를 위한 염소는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그리스도를 의미하고,

아사셀을 위한 염소는 부활 하여 승천하신 예수그리스도를 의미하고 있는 것입니다.

 

죽임 당한 염소(십자가 지신 예수님)는 우리의 원죄를 위한 제물이고,

광야로 보내진 아사셀에게 바쳐지는 염소(부활 하신 후 승천하신 예수님)는 우리의 자범죄를 위한 제물인 것입니다.

 

여호와를 위하여 죽임당한 염소는 하나님과 화목케 하는 것이고,

아사셀을 위하여 광야로 보내진 염소는 살아가면서 짓는 죄를 사함 받게 하는 것입니다.

 

여호와를 위하여 제비 뽑힌 염소는 속죄 제물로 죽입니다.

그리고 그 피를 가지고 지성소로 들어가서 일곱 번 뿌립니다.

지성소에서 나와서 살아 있는 아사셀을 위한 염소에게 두 손을 얹고 안수 기도를 합니다.

 

대제사장의 안수 기도문입니다.

 

오, 주여! 주의 백성 이스라엘집이 잘못을 범하고 배반함으로 당신 앞에서 죄를 지었나이다,

오, 주여! 간절히 비노니 이제 주께서 당신의 종 모세를 통해 주신 율법에 기록된 바

속죄의 날에 너희가 내 앞에 지은 모든 죄를 깨끗이 사하리라 하신 그 말씀대로

이제 주의 백성이 당신께 지은 모든 허물과 죄악을 이 시간 용서하옵소서!

 

대제사장은 백성을 대표하고 있습니다.

안수란? 안수를 하는 사람의 내용이 안수를 받는 사람에게 전이가 되는 것을 말합니다.

대제사장은 백성을 대표한다고 하였습니다.

백성은 죄인을 상징합니다.

 

그럼 대제사장이 염소에게 안수하는 것은 모든 백성들의 죄를 아사셀 염소에게 전가 시키는 것입니다.

그럼 아사셀 염소는 백성들이 모든 죄를 짊어지고 무인 광야로 보내어집니다.

무인 광야로 보내어진 것은 우리의 눈에서 사라지게 하셨다는 뜻입니다.

 

아사셀 염소의 영적 의미에는 두 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호크마 주석을 그대로 인용을 합니다.

 

(1) 아사셀은 히브리어 '아자젤'의 음역인데 이것은 '염소'란 뜻의 '에즈'와 '가버리다', '사라지다'란 뜻의 '아잘'의 합성어로서 곧 '속죄의 염소' 또는 '내보냄을 받은 염소'를 뜻한다는 견해이다.

 

(2) 아사셀은 히브리어 '아자젤'의 음역이다. 따라서 히브리어 '아자젤'은 '제거하다', '없애다'란 뜻의 아랍어 동사 '아잘'의 강세형으로 그 의미는 '완전한 제거'인데, 그러므로 아사셀 염소가 광야로 나가는 것은 이스라엘의 ‘모든 죄악이 멀리 제거되는 것’을 의미한다(시 103:12, 사 38:17, 렘 31:34, 히 9:26)는 견해이다.

 

아사셀은 눈에 보이지 않게 없앤다는 뜻입니다.

이것은 이스라엘의 죄를 보이지 않게 하셨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의모든 죄를 짊어진 아사셀 염소는 광야 무인지경으로 나아가서 이스라엘의 눈으로부터 사라지게 하신 것입니다.

 

이를 시편 기자는 “동(東)이 서(西)에서 먼 것처럼 우리의 죄과를 멀리 옮기셨다”고 하고,

이사야 선지자는 “우리의 죄를 우리 등 뒤로 던져서 보이지 않게 하셨다”고 하고,

예레미야 선지자는 “우리의 죄악을 사하시고 그 죄를 기억치 아니하셨다”고 합니다.

 

시 103:8-14절. “여호와는 자비로우시며 은혜로우시며 노하기를 더디 하시며 인자하심이 풍부하시도다 9. 항상 경책지 아니하시며 노를 영원히 품지 아니 하시리로다 10. 우리의 죄를 따라 처치하지 아니하시며 우리의 죄악을 따라 갚지 아니하셨으니 11. 이는 하늘이 땅에서 높음 같이 그를 경외하는 자에게 그 인자하심이 크심이로다 12. 동이 서에서 먼 것 같이 우리 죄과를 우리에게서 멀리 옮기셨으며 13. 아비가 자식을 불쌍히 여김 같이 여호와께서 자기를 경외하는 자를 불쌍히 여기시나니 14. 이는 저가 우리의 체질을 아시며 우리가 진토임을 기억 하심이로다”

 

사 38:17절. “보옵소서! 내게 큰 고통을 더하신 것은 내게 평안을 주려 하심이라 주께서 나의 영혼을 사랑하사 멸망의 구덩이에서 건지셨고 나의 모든 죄는 주의 등 뒤에 던지셨나이다”

 

렘 31:34절. “그들이 다시는 각기 이웃과 형제를 가리켜 이르기를 너는 여호와를 알라 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작은 자로부터 큰 자까지 다 나를 앎이니라 내가 그들의 죄악을 사하고 다시는 그 죄를 기억지 아니하리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아사셀 염소를 광야로 보낸 것은 백성들 눈에서 안 보이게 하셨다는 뜻입니다.

이는 자기 백성들 앞에서 죄를 완전히 치워버린 것입니다.

이 말은 우리의 죄를 짊어지신 분을 우리 눈에서 사라지게 하셨다는 뜻입니다.

우리의 죄를 짊어지고 우리 눈에서 사라지신 분이 누구신가요?

예수님입니다.

 

두 예수가 있습니다.

육체로 오신 예수님은 우리의 죄를 위하여 죽으셨고,

부활 하신 예수님은 우리의 죄를 빌어주시려고 하늘나라로 가셨습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 백성들의 모든 죄를 짊어지고 백성들 눈에 보이지 않도록 무인 광야로 보내진 아사셀 염소의 본질적 의미는 예수님께서 우리의 죄를 짊어지고 골고다에서 버림을 당하시고 부활 하신 후에 승천하여서 하나님의 보좌 곁에서 우리를 위하여 변호하고 계시고 있음을 뜻합니다.

 

우리가 죄사함을 받는 것도 두 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단번에 받은 죄사함이 있고,

날마다 받는 죄사함이 있습니다.

 

죄는 예수님의 피 흘리심으로 사함을 얻습니다.

그러므로 속죄일에 드려지는 두 마리 염소의 제사는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그리스도와 부활 하신 후에 하늘나라로 가신 예수그리스도를 상징하고 있음이 됩니다.

 

예수님이 하늘나라에서 무얼 하고 계시나요?

자기 백성들의 죄를 위하여 대언하시는 일을 하고 계십니다.

이는 자기 피로 날마다 일어나는 죄를 사해주는 일을 하고 계신다는 뜻입니다.

 

요일 2:1절. “나의 자녀들아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씀은 너희로 죄를 범치 않게 하려 함이라 그러나 만일 누가 죄를 범하면 아버지 앞에서 우리에게 대언자가 있으니 곧 의로우신 예수그리스도시니라”

 

이스라엘의 모든 죄를 짊어진 아사셀 염소를 백성들의 눈에 보이지 않게 하셨다는 것은 백성들의 죄를 보이지 않게 없애 버렸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이스라엘을 죄의 영역에서 옮겨 주셨다는 뜻입니다.

즉 더 이상 죄로부터 지배당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성도는 죄 아래 있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죄를 두려워 할 이유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죄의 권세가 성도를 지배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것을 일컬어 죄에 대하여 죽었다고 합니다.

 

죄인들이 살아가는 이 세상이 존재하는 한 죄는 사라지지 않습니다.

 

성도가 죄 없다는 말이 아니고 죄와 상관이 없이 대접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성도의 죄값을 예수그리스도에게 받았습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죄값에 대한 채무가 없어진 것입니다.

이것을 죄에서 자유하였다고 합니다.

 

하나님은 예수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들은 비록 죄를 지었다 할지라도 예수님의 피 흘리심을 보시고 죄가 없는 것으로 간과해 주시는 것입니다.

 

롬 3:25-26절. “이 예수를 하나님이 그의 피로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는 화목 제물로 세우셨으니 이는 하나님께서 길이 참으시는 중에 전에 지은 죄를 간과하심으로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려 하심이니 26 곧 이 때에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사 자기도 의로우시며 또한 예수 믿는 자를 의롭다 하려 하심이니라”

 

롬 4:7-8절. “그 불법을 사하심을 받고 그 죄를 가리우심을 받는 자는 복이 있고 8 주께서 그 죄를 인정치 아니하실 사람은 복이 있도다 함과 같으니라”

 

간과하심이란? 비록 죄를 지은 죄인이지만 예수님이 죄 값을 대신 치루어 주셨기 때문에 죄인 아닌 것으로 간주해 주시는 것입니다.

이를 그 죄를 가리우심을 받는다고 합니다.

 

이러한 일을 구약에서 다윗이 받았습니다.

다윗은 분명히 밧세바를 빼앗는 죄를 지었습니다.

그리고 그 죄를 감추려고 밧세바의 남편인 우리야를 죽였습니다.

그럼에도 하나님께서 용서 해 주셨습니다.

 

바울은 이 사실을 하나님께서는 다윗의 죄를 인정치 않으셨다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그 불법을 사해 주시고 그 죄를 가리워 주셨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다윗의 몸에 하나님의 은혜를 새겨 넣고자 하신 것입니다.

 

다윗은 죄는 용서 받았지만 그 죄를 용서 받은 사랑의 빚은 몸에 짊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다윗은 상하고 통회하는 심령으로 살아가게 된 것입니다.

자신의 죄 때문에 아무런 잘못도 없는 충신 우리야가 죽었기 때문입니다.

다윗은 우리야의 죽음을 자기 몸에 짊어지고 살아가게 된 것입니다.

 

다윗은 살아가면서 죄를 지을 때마다 우리야의 죽음이 떠오르게 됩니다.

그러므로 상한 심령이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진정 죄사함을 받은 사람은 죄로부터 용서 받은 기쁨도 있지만,

동시적으로 나 때문에 흠 없는 사람이 죽었다는 것에 대한 아픔도 있게 됩니다.

 

이러한 것을 속죄일에 담아 놓았습니다.

속죄일은 기쁨의 날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기쁨과 함께 슬픔도 담아 놓았습니다.

 

하나님은 속죄일은 큰 안식일로 지키게 하셨습니다.

 

이는 안식일 중에 안식일이라는 뜻입니다.

왜 안식일 중에서도 특별한 안식일로 지키도록 하셨을까요?

이는 속죄일이 담고 있는 의미를 백성들 몸에 새기고자 함입니다.

 

레위 16:29-31절. “너희는 영원히 이 규례를 지킬지니라 칠 월 곧 그 달 십 일에 너희는 스스로 괴롭게 하고 아무 일도 하지 말되 본토인이든지 너희 중에 우거하는 객이든지 그리하라 30. 이 날에 너희를 위하여 속죄하여 너희로 정결케 하리니 너희 모든 죄에서 너희가 여호와 앞에 정결하리라 31. 이는 너희에게 큰 안식일인즉 너희는 스스로 괴롭게 할지니 영원히 지킬 규례라”

 

안식일은 기쁨의 날입니다.

즐거움으로 예배하고 쉬는 날입니다.

그러나 속죄일의 안식일은 스스로 괴롭게 하는 날로 지키라고 하셨습니다.

 

“너희는 스스로 괴롭게 하라”고 합니다.

 

속죄일에는 괴롭게 하라고 합니다.

스스로 괴롭게 하라는 말은 상한 심령을 가지라는 말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속죄일은 겸비하고 금식하면서 지켰습니다.

이는 너희의 죄가 그냥 사해진 것이 아니고 여호와께 속한 제물이 죽임 당함으로서 주어진 것임을 기억하라는 것입니다.

 

속죄일에는 두 가지가 동시적으로 담겨져 있는 것입니다.

 

첫째는, 모든 죄를 벗고 하나님을 만난다는 기쁨입니다.

둘째는, 하나님께서 죄인에게 이러한 기쁨을 주시고자 그 아들(흠 없는 제물)을 십자가에 죽였다는 사실을 기억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주일에 교회로 모이는 것은 기쁘고 즐거운 날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세상이라는 지옥에서 천국을 상징하는 교회로 어떻게 나오게 되었나요?

예수그리스도의 죽음 때문입니다.

 

우리는 주일을 속죄일로 큰 안식일로 모이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예배하면서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를 기억케 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교회의 모임을 예수그리스도의 공로로 하나님께 예배하는 것을 최우선으로 두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우리의 죄가 고발당하고 그 죄로 인하여 예수그리스가 죽었다는 이 사실을 몸에 새기는 일을 하여야 합니다.

죄 용서 받았다고 나대지 말고 나 때문에 예수님이 죽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하는 것입니다.

 

괴롭게 한다는 말은 자기 몸을 쳐서 복종을 시킨다는 뜻입니다.

 

우리는 죄사함을 받았고,

여전히 죄사함을 받고 있으며,

앞으로도 죄사함을 받을 것입니다.

 

그러나 잊지 말아야 하는 것은 우리가 죄를 지을 때마다 예수님은 아버지에게 빌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우리가 그 어떤 죄를 지어도 아버지는 예수님의 피를 보시고 다 용서해 주십니다.

그러나 우리가 죄를 지을 때마다 예수님은 아파하십니다.

 

자식이 잘못을 저지르면 부모는 다 용서하십니다.

그러나 부모의 마음은 아픕니다.

사람이 철이 든다는 것은 부모의 마음을 헤아릴 줄 안다는 것입니다.

 

우리 몸은 하나님이 거하는 성전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몸은 죄의 병기로 사용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성령을 근심하게 하지 말라고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죄를 지으면 백번이고 용서 해 주십니다.

그러나 성령은 근심을 하십니다.

이는 못난 자식 때문에 부모의 마음이 타 들어가는 것과 같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너 용서 받았느냐?

그럼 죄와 싸우되 피 흘리기까지 싸우라고 합니다.

우리 몸을 의의 병기로 드리라고 합니다.

 

우리 몸은 우리 것이 아니고 예수그리스도의 것입니다.

그러니 몸을 죄가 주관하지 못하도록 잘 간수하여야 합니다.

몸을 잘 간수하시면 예수님이 고맙다고 하십니다.

 

장차 우리 모두는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서게 될 것입니다.

그 때 각 사람이 행한 대로 심판을 받게 됩니다.

그러므로 선한 두려움으로 살아가시길 바랍니다.

 

 

롬 6장

 

6. 우리가 알거니와 우리 옛 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 죄의 몸이 멸하여 다시는 우리가 죄에게 종노릇 하지 아니하려 함이니

7. 이는 죽은 자가 죄에서 벗어나 의롭다 하심을 얻었음이니라

12. 그러므로 너희는 죄로 너희 죽을 몸에 왕노릇 하지 못하게 하여 몸의 사욕을 순종치 말고

13. 또한 너희 지체를 불의의 병기로 죄에게 드리지 말고 오직 너희 자신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산 자 같이 하나님께 드리며 너희 지체를 의의 병기로 하나님께 드리라

14. 죄가 너희를 주관치 못하리니 이는 너희가 법 아래 있지 아니하고 은혜 아래 있음이니라

19. 너희 육신이 연약하므로 내가 사람의 예대로 말하노니 전에 너희가 너희 지체를 부정과 불법에 드려 불법에 이른 것 같이 이제는 너희 지체를 의에게 종으로 드려 거룩함에 이르라

 

 

 

 

 

 

"여호와의 정하신 날"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보라 용광로 불 같은 날이 이르리니

교만한 자와 악을 행하는 자는 다 지푸라기 같을 것이라

말라기 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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