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 빛 사랑

시 3:5 내가 누워 자고 깨었으니 여호와께서 나를 붙드심이로다

♣(성경강해)37강. 어른으로서의 제사장 (레 21: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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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강해/레위기 강해

2021. 11. 19.

 

 

엡 1:4-6
④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1)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⑤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⑥ 이는 그가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우리에게 거저 주시는 바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송하게 하려는 것이라

 

 

37강. 어른으로서의 제사장 (레 21:1-15)

-.정낙원 목사

 

 

 

하나님은 제사장을 백성들의 어른이라고 합니다.

 

4절. “제사장은 백성의 어른인즉 스스로 더럽혀 욕되게 하지 말지니라”

 

어른이란? ‘바알’이라고 하는데,

이는 “지도자, 주인, 남편, 소유자, 우두머리, 근본” 등 다양한 용례로 사용을 합니다.

종합적으로 말하면 백성의 으뜸이라는 뜻입니다.

 

제사장은 예수님을 예표하는 자로서 하나님의 성막을 맡은 자들입니다.

성막을 신약의 교회를 예표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을 교회의 머리라고 합니다.

머리란 어른이라는 뜻입니다.

 

그럼 제사장을 어른이라고 하는 이유를 알 수 있습니다.

제사장은 예수님이 하시는 죄사함의 일을 합니다.

성막에서 백성들의 죄 문제를 흠 없는 짐승의 제사를 통해서 속량해주는 일을 합니다.

죄사함의 제사를 드리는 자를 백성들의 어른으로 삼은 것은 이스라엘의 정체성을 잘 보여주고 있는 대목입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백성입니다.

하나님은 거룩하신 분입니다.

거룩하신 하나님과 함께 하려면 이스라엘 백성들도 거룩하여야 합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죄 아래서 태어난 자들입니다.

죄 아래서 난 자들은 스스로 거룩해 질 수가 없습니다.

거룩은 하나님이 인정하는 것이라야 합니다.

 

그렇다면 인간들 쪽에서는 거룩을 만들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거룩하게 해 주셔야지만 합니다.

하나님께서 그 아들을 보내서 거룩케 하는 일을 하셨습니다.

그것이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단번에 이루신 거룩입니다.

 

이를 성막에서 드려지는 제사 제도를 통해서 가르치고 있는 것입니다.

제사장들은 백성들에게 거룩을 가르치는 자들입니다.

 

거룩은 단번에 주어지는 단회적인 것과 계속하여 주어지는 반복적인 것이 있습니다.

 

단번에 주어지는 단회적 거룩은 거룩한 자로 거듭나는 것입니다.

이것은 출생과 같은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출애굽 시에 유월절 어린 양의 피로서 죽음의 재앙에서 건짐을 받은 것입니다.

새로운 이스라엘로 거듭난 것입니다.

 

홍해를 건너 광야로 나온 백성들은 새로운 이스라엘입니다.

애굽에서는 혈통적 이스라엘이었지만 유월절 어린 양의 피로 살아나 홍해는 건넌 후에는 어인양 안에서 생겨난 민족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광야에서 성막을 짓고 어린 양의 피로 속죄 제사를 드리게 하신 것은 백성들에게 어린 양의 피 안에서 죄사함을 누리고 있다는 것을 가르치고자 함입니다.

죄의 삯은 사망입니다.

그 사망을 어린 양의 피로서 넘어가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유월절을 기념케 하시면서 어린 양의 피가 유효하게 이스라엘을 거룩케 한다는 것을 알려주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어린 양의 피 안에서 살아가는 자들이라는 뜻입니다.

또한 어린 양의 피 안에 있을 때 죄와 사망의 권세로부터 해방을 받는다는 뜻입니다.

 

거듭나는 것은 단회적인 것입니다.

이는 영역의 이동을 말합니다.

이제부터 죄의 종이 아닙니다.

죄와 사망의 권세로부터 자유로워졌습니다.

 

단회적인 거룩을 받은 자들은 계속하여서 반복적인 거룩을 입어야 합니다.

 

죄와 사망의 권세로부터 자유로워졌다는 것은 더 이상 죄를 안 짖는다는 말이 아닙니다.

죄와 사망의 법으로 판단을 받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죄 아래서 난 몸은 여전히 죄를 짓고 살아갑니다.

그러나 어린 양의 피로 죄 없다고 간과함을 받는 것입니다.

 

더 이상 죄와 사망의 법이 주장하지 못하고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주장을 하는 것입니다.

이를 믿음으로 살아가는 것을 영의 법이라고 하고,

이렇게 영의 법으로 사는 자를 의에 종이라고 합니다.

 

어린 양의 피로 죄와 사망의 권세로부터 자유로워진 새로운 사람이 된 자들은 이제부터 새로운 피조물로서 살아가는 삶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새로운 피조물의 삶은 어린 양의 피 안에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이를 거룩한 삶이라고 합니다.

 

이것을 성막의 제사 제도를 통해서 거룩한 삶을 가르치고 있는 것입니다.

성막에서 드려지는 제사는 일상생활 속에서 저지른 죄를 사함 받는 것입니다.

이는 거룩한 자로서 거룩 안에 거하는 반복적인 것입니다.

 

성막에서 드려지는 짐승의 제사는 출애굽 때 유월절 어린 양의 피로서 죄와 사망의 권세로부터 자유케 된 것을 기념하는 것입니다.

기념은 과거의 사건을 현재화 시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기념은 과거적인 경험을 가진 자들만이 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과거에 경험되어진 사건을 현재화 시키는 것은 과거적 사건이 지금도 유효하여서 현재 속에서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제사장들은 이 사실을 백성들에게 가르쳐야 합니다.

 

성막에서 드려지는 제사는 새로운 제사가 아닙니다.

이미 출애굽 때 유월절에 드려진 제사입니다.

성막의 제사는 유월절의 반복을 뜻합니다.

 

이건 마치 우리가 어제 먹었던 밥을 오늘도 동일하게 먹는 것과 같습니다.

양식은 바뀌지 않고 항상 동일합니다.

우리는 우리 조상들이 먹었던 밥을 그대로 먹고 살아갑니다.

 

예수님은 스스로를 생명의 떡이라고 하셨습니다.

이것이 구약의 광야에서는 짐승의 제사 고기로 나타났습니다.

제사장들은 제사를 지내고 난 후에 백성들에게 제사의 고기를 먹게 하였습니다.

이는 제사를 지낸 짐승을 양식으로 주신 것입니다.

 

제사장은 성막에서 드려지는 제사의 의미를 백성들에게 날마다 가르쳐야 합니다.

백성들은 제사장들의 가르침을 받아야 합니다.

이럴 때 제사장이나 백성이나 동일한 거룩 안에 거하게 되는 것입니다.

 

어른은 과거적인 경험을 가진 분들입니다.

 

앞선 인생을 산 사람입니다.

아이가 자라서 어른이 됩니다.

어른들의 가르침을 받아서 장성한 백성들도 어른이 되어 가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에게 어른은 계시 전달자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모르는 자들은 방자하게 행합니다.

그럼 죽임을 당합니다.

그러므로 계시는 항상 전달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제사장은 계시전달자로서 어른인 것입니다.

계시의 내용이 거룩입니다.

그래서 거룩한 제사장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제사장들에게 백성들과 다른 규례를 주십니다.

제사장들이 지켜야 하는 규례 모두가 거룩과 관련이 된 것입니다.

그러니까 제사장의 규례 속에는 삶 속에서 발생하는 반복적인 거룩이 담겨져 있는 것입니다.

 

첫째, 제사장은 죽은 자(시체)를 만져서는 안 됩니다.

 

1절.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아론의 자손 제사장들에게 고하여 이르라 백성 중의 죽은 자로 인하여 스스로 더럽히지 말려니와”

 

하나님은 산 자의 하나님이십니다.

산 자와 죽은 자는 함께 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에덴동산에서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먹고 죽은 자가 되자 가차없이 에덴동산에서 추방을 해 버리신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인정머리가 없어서가 아니라 생명과 죽음은 함께 할 수 없는 이질적인 속성 때문입니다.

생명과 죽음은 빛과 어둠처럼 서로를 밀어내는 속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살아 있을 때는 아무리 사랑하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죽으면 산 자와 격리를 시켜서 무덤에 묻게 되는 것입니다.

아무리 자기가 낳은 자식이라 할지라도 죽으면 무덤에 묻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외가 있습니다.

가족들의 시체는 만져도 됩니다.

 

2. 골육지친인 부모나 자녀나 형제나

3. 출가하지 아니한 처녀인 친 자매로 인하여는 몸을 더럽힐 수 있느니라

 

골육지친이란? 한 몸이라는 것입니다.

살과 피가 같은 가족으로서 함께 살아가는 자라는 뜻입니다.

이는 아담이 하와를 보고서 이는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고 고백한 것과 같습니다.

 

제사장은 예수님을 상징합니다.

구약의 제사장의 골육지친은 신약적인 의미에서는 예수님과 한 몸인 성도들을 말합니다.

예수님 안에서 나온 자들은 예수님의 골육지친입니다.

 

예수님은 영생하시는 하나님입니다.

예수님은 죽음에 거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과 한 몸인 사람은 죽은 자가 아닌 것입니다.

 

예수 안에 있으면 영생하는 자입니다.

그래서 성도가 목숨이 끊어진 것을 죽었다 라고 하지 않고 잠을 잔다고 하는 것입니다.

이러면 제사장들의 골육지친은 죽은 자가 아니라 자는 자들이 되는 것입니다.

 

구약의 제사장은 예수님을 예표한다고 하였습니다.

그럼 참 제사장이신 예수님은 예수 안에 거하는 자들만이 골육지친이라고 여기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 안에 거하는 자들은 숨이 끊어져도 죽은 것이 아니라 잠을 자는 것이므로 목숨이 끊어진 시신을 만져도 부정한 것이 되지 않는 것입니다.

 

골육지친이라 할지라도 출가한 딸이 죽게 되면 그 시신은 만질 수가 없습니다.

유대인들은 출가한 딸은 가족으로 여기지 않습니다.

남의 식구로 여깁니다.

 

가족은 같은 집에서 살고 같은 음식을 먹고 살아가는 자를 말합니다.

비록 한 몸에서 나왔지만 다른 집에서 살고 다른 음식을 먹고 살면 남이 되는 것입니다.

남의 가족이란? 우두머리가 다른 집안의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여기에 영적인 비밀이 담겨져 있습니다.

 

가족은 한 아버지 안에서 난 자를 말합니다.

다른 가족은 아버지가 다른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아버지가 다르다는 것은 근본이 다르다는 것입니다.

 

율법 아래 있는 자와 은혜 아래 있는 자가 있습니다.

 

율법 아래 있는 자는 율법 아래 있는 자들끼리 가족이고,

은혜 아래 있는 자는 은혜 아래 있는 자들끼리 가족입니다.

 

유대인들은 율법 아래 있는 자들만 가족으로 여깁니다.

이방인과 혈통이 섞였다고 하여서 북쪽 이스라엘인들을 사마리아 인들이라고 하면서 이방인으로 여겼습니다.

 

예수 믿는 자들은 가족으로 여기지 않았습니다.

여기에 대표적인 사람이 12 제자들이었고 사도 바울이었고 초대교회 성도들이었습니다.

유대인들은 예수 믿는 자들은 다른 가족으로 여기고 죽은 자로 간주하여서 상종하지 않았습니다.

 

유대인들 입장에서는 예수를 믿는 자들은 출가한 딸과 같은 것입니다.

이건 예수님 입장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 입장에서 율법 아래 있는 유대인들은 출가한 딸과 같은 것입니다.

예수님은 율법 아래 있는 자를 죽은 자로 여깁니다.

구원을 받아야 할 자로 여겼습니다.

 

은혜와 율법은 함께 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율법 아래 있는 자는 은혜 아래 있는 자를 남으로 여기고,

은혜 아래 있는 성도들도 율법 아래 있는 자들은 남으로 여기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땅에 속한 자를 가족이라 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이 예수님의 어머니인 마리아와 그 형제들이 오는 것을 보고서 예수의 가족들이 온다고 하니까 예수님은 정생을 하시면서 누가 내 모친이고 형제냐 라고 하시면서 내 형제는 하늘에 있는 자라고 하였던 것입니다.

 

인간적으로 들으면 인정머리 없는 말로 들리지만 영적인 의미에서 죽은 자와 산 자의 관계와 같은 것이므로 섭섭해 할 말이 아닌 것입니다.

우리가 우리 가족 중에서 누가 죽으면 무덤에 묻으면서 인정머리 없는 자라고 하지 않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예수님도 육에 속한 자들은 모두가 죽은 자이므로 예수님의 가족이 아니라고 하는 것입니다.

 

신앙은 영적인 것이므로 인정에 매일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어떤 청년이 아버지를 장사 지내고 따르겠다고 하니까 죽은 자는 죽은 자들끼리 장사를 지내라고 하고 너는 나를 따르라고 하셨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영적인 일에 인정을 두지 않았습니다.

 

그러므로 영적 제사장들인 성도들은 영적으로 다른 사람들의 신앙에 인정을 둘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분별을 하고 대응하라는 뜻입니다.

육신적 대소사에는 공유하여도 신앙적인 면에서는 단호하여야 합니다.

 

둘째, 제사장은 이방인의 풍속을 좇지 말아야 합니다.

 

5-6절. “제사장들은 머리털을 깎아 대머리 같게 하지 말며 그 수염 양편을 깎지 말며 살을 베지 말고 6. 그 하나님께 대하여 거룩하고 그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하지 말 것이며 그들은 여호와의 화제 곧 그 하나님의 식물을 드리는 자인즉 거룩할 것이라”

 

제사장은 머리카락을 다 밀어서는 안 되고 몸에 문신을 해서도 안 됩니다.

머리카락은 권세 아래 있음을 상징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여자의 머리는 남자요 남자의 머리는 그리스도요 그리스도의 머리는 하나님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고린도교회 안에서 여자들이 모자를 쓰지 않는 것을 가지고 이는 여자가 머리에 모자는 쓰지 않는 것은 남편의 권세 아래 있음을 부정하는 것이므로 여자는 머리에 모자를 쓰라고 하였던 것입니다.

 

제사장들은 직무를 담당할 때는 머리를 자르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머리를 기르는 것은 하나님의 권세 아래 있음을 표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제사장이 머리를 깎는 것은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하는 것이라고 금지하였던 것입니다.

머리를 잘라서 대머리가 되는 것은 하나님의 권세에 불복종 한다는 뜻이 되므로 제사장들은 머리를 깎아서 대머리를 하지 말라고 하신 것입니다.

 

셋째, 제사장은 기생이나 부정한 여인이나 이혼당한 여인을 아내로 맞이하여서는 안 됩니다.

 

7-8절. “그들은 기생이나 부정한 여인을 취하지 말 것이며 이혼 당한 여인을 취하지 말지니 이는 그가 여호와께 거룩함이니라 8. 너는 그를 거룩하게 하라 그는 네 하나님의 식물을 드림이니라 너는 그를 거룩히 여기라 나 여호와 너희를 거룩하게 하는 자는 거룩함이니라”

 

기생이나 부정한 여인이나 이혼을 당한 여인은 음란한 자들을 뜻합니다.

이들은 모두가 부정한 자로서 남자의 경험을 가지고 있는 자들입니다.

여인에게 있어 남편은 신과 같습니다.

 

흠 있는 여인들의 남편은 우상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흠 있는 여자들은 우상 숭배 하는 자들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와 벨리알은 함께 할 수가 없습니다.

 

제사장은 하나님을 섬기는 자들이므로 하나님을 예표 하는 자들입니다.

그럼 제사장들이 우상 숭배 하는 자들을 상징하는 음란한 여인들을 취하는 것은 이방 여인을 취하는 것과 같은 것이 되는 것입니다.

 

대제사장은 반드시 숫처녀를 아내로 맞이하여야 합니다.

 

10-12절. “자기 형제 중 관유로 부음을 받고 위임되어 예복을 입은 대제사장은 그 머리를 풀지 말며 그 옷을 찢지 말며 11. 어떤 시체에든지 가까이 말지니 부모로 인하여도 더러워지게 말며 12. 성소에서 나오지 말며 그 하나님의 성소를 더럽히지 말라 이는 하나님의 위임한 관유가 그 위에 있음이니라 나는 여호와니라 13. 그는 처녀를 취하여 아내를 삼을지니 14. 과부나 이혼된 여인이나 더러운 여인이나 기생을 취하지 말고 자기 백성 중 처녀를 취하여 아내를 삼아 15. 그 자손으로 백성 중에서 더럽히지 말지니 나는 그를 거룩하게 하는 여호와임이니라”

 

여기서 말하는 처녀는 “베툴림” 이라고 하는데 이는 “순수한” “분리 된” 이라는 뜻입니다.

이는 처녀성을 가진 완전무결한 흠이 없는 여자를 말합니다.

처녀의 표적을 가진 자들을 말합니다.

 

처녀의 표적이란? 첫날 밤을 치를 때 처녀성을 상징하는 피를 보이는 여자를 말합니다.

처녀성의 피를 남편에게 준다는 것은 그 남편이 바로 자신의 피 남편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바로 우리들이 피 남편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신앙의 순결함을 예수그리스도에게만 드려야 하는 것입니다.

 

대제사장은 일반 제사장들과는 달리 그 어떤 시체라도 만져서는 안 됩니다.

 

일반 제사장들은 자기 가족의 시체는 만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대제사장은 시체 자체를 접촉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대 제사장은 가족이 죽으면 성소 안에 머물러 있어야 합니다.

이는 대제사장은 죽음 너머에 계신 분을 상징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일반 제사장은 매일매일 뜰과 성소에서 제사(예배)를 드리지만,

대제사장은 일 년에 단 한번 지성소에 들어가서 제사(예배)를 드립니다.

 

이것은 일반 제사장들은 육체로 오신 초림의 예수님을 상징하고,

대제사장은 재림하시는 예수그리스도를 상징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초림으로 오신 예수님은 흠 있는 자들을 만나 주셨지만,

재림하시는 예수그리스도는 흠 있는 자는 만날 수가 없습니다.

 

성도의 구원은 역사 속에서 이루어집니다.

역사는 시작과 끝이 있습니다.

그래서 구원이 과거 현재 미래라는 시제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과거와 현재는 초림으로 오신 예수님께서 이루어 가시지만,

미래의 구원은 재림으로 오시는 예수그리스도께서 이루어 가십니다.

과거와 현재는 역사 속에서 이루어지지만 미래 구원은 역사 바깥으로 주어지는 것입니다.

 

역사 속에서 구원하시는 예수님은 일반 제사장들을 상징하고,

역사 바깥 천국으로 데리고 가시는 재림의 예수그리스도는 대제사장을 상징합니다.

 

그래서 일반 제사장들은 일반적인 여자들을 아내로 맞이하지만,

대제사장은 반드시 정결한 숫처녀만이 아내로 맞이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역사 속에서 일하시는 성령으로 오신 예수님은 우리가 흠결이 있어도 우리의 죄를 용서해주시는 일을 하십니다.

그러나 재림하시는 예수그리스도는 역사 바깥으로 빼내시는 구원을 주시는 분이므로 흠 있는 자는 데리고 가지를 않습니다.

 

재림하시는 예수그리스도가 바로 대제사장으로서의 예수그리스도입니다.

재림하시는 예수그리스도는 완전무결한 성도들을 천국으로 데리고 가십니다.

천국에 가는 성도들을 일컬어 어린 양의 신부라고 합니다.

이들은 불같은 시험을 이기고 벗어난 정금 같은 신앙을 가진 예수그리스도의 신부들인 것입니다.

 

이들을 일컬어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의 증거로 인하여 목베임을 당한 자들이라고 합니다.

적그리스도 세력인 음녀와 짐승에게 몸을 더럽히지 아니한 자라고 합니다.

이들이 순결한 처녀인 것입니다.

 

대제사장은 부모나 자식이 죽어도 머리를 풀거나 옷을 찢어서도 안 됩니다.

 

머리를 풀고 옷을 찢는다는 것은 죽음을 애통해 하는 것입니다.

일반 제사장들은 가족이 죽으면 애통해 할 수는 있어도 대제사장은 그리 할 수가 없습니다.

이는 일반 제사장은 역사 속에서 일하시는 초림으로 오신 예수님을 상징하고,

대제사장은 재림으로 오시는 예수그리스도를 상징하기 때문입니다.

 

초림으로 오신 예수님은 구원하는 예수님이지만 재림하는 예수그리스도는 심판하는 분입니다.

초림으로 오신 예수님은 죽은 자들을 위하여 울었습니다.

그러나 재림하는 예수그리스도는 울지 않고 저주를 퍼붓습니다.

대제사장은 재림하시는 예수그리스도를 상징하므로 그 어떤 죽음에도 슬퍼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넷째, 육체에 흠이 있는 장애자는 제사장 직무를 할 수가 없습니다.

 

16-24절.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일러 가라사대 17. 아론에게 고하여 이르라 무릇 너의 대대 자손 중 육체에 흠이 있는 자는 그 하나님의 식물을 드리려고 가까이 오지 못할 것이라 18. 무릇 흠이 있는 자는 가까이 못할지니 곧 소경이나 절뚝발이나 코가 불완전한 자나 지체가 더한 자나 19. 발 부러진 자나 손 부러진 자나 20. 곱사등이나 난장이나 눈에 백막이 있는 자나 괴혈병이나 버짐이 있는 자나 불알 상한 자나 21. 제사장 아론의 자손 중에 흠이 있는 자는 나아와 여호와의 화제를 드리지 못할지니 그는 흠이 있은즉 나아와 하나님의 식물을 드리지 못하느니라 22. 그는 하나님의 식물의 지성물이든지 성물이든지 먹을 것이나 23. 장 안에 들어가지 못할 것이요 단에 가까이 못할지니 이는 그가 흠이 있음이라 이와 같이 그가 나의 성소를 더럽히지 못할 것은 나는 그들을 거룩하게 하는 여호와임이니라 24. 모세가 이대로 아론과 그 아들들과 온 이스라엘 자손에게 고하였더라”

 

육체에 흠이 있는 자가 성소에 출입하는 것은 성소를 더럽히는 것이라고 합니다.

육체에 흠이 있다는 것은 온전치 못한 상태를 말합니다.

새로운 피조물로서의 삶이 결여 되어 있다는 뜻입니다.

 

신앙생활은 전인적인 것입니다.

신앙생활은 온 몸을 다하고 온 뜻을 다하고 온 마음을 다하고 온 목숨을 다하여서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신앙생활은 도를 깨우치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는 머리로 믿는 것이 아닙니다.

모든 삶을 다해서 믿는 것입니다.

 

제사장은 백성을 대표해서 하나님을 만나는 사람들입니다.

백성들을 죄 아래 있는 하나님의 백성들을 상징합니다.

백성들의 삶은 온전치 못할 수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백성들을 만나주지 않고 중간에 제사장들을 세워서 만나는 것입니다.

중간에 제사장들을 세웠다는 것은 하나님은 죄인과 직접 상대하지 않겠다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의 연약함을 아시고 제사장을 주신 것입니다.

 

알다시피 제사장도 죄 아래서 난 죄인입니다.

죄 아래서 난 자들은 다 흠이 있는 자들입니다.

진짜 제사장은 죄와 상관없는 분이라야 합니다.

그럼에도 죄 아래서 난 흠 있는 자를 제사장으로 세우신 것은 장차 하늘로서 오실 영원한 제사장을 보여주기 위한 모형적인 인물들이기 때문입니다

 

히 7:11-28절. “레위 계통의 제사 직분으로 말미암아 온전함을 얻을 수 있었으면(백성이 그 아래서 율법을 받았으니) 어찌하여 아론의 반차를 좇지 않고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는 별다른 한 제사장을 세울 필요가 있느뇨 ~ 23. 저희 제사장 된 자의 수효가 많은 것은 죽음을 인하여 항상 있지 못함이로되 24. 예수는 영원히 계시므로 그 제사 직분도 갈리지 아니하나니 25. 그러므로 자기를 힘입어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들을 온전히 구원하실 수 있으니 이는 그가 항상 살아서 저희를 위하여 간구하심이니라 ~ 28. 율법은 약점을 가진 사람들을 제사장으로 세웠거니와 율법 후에 하신 맹세의 말씀은 영원히 온전케 되신 아들을 세우셨느니라”

 

레위 계통의 제사로는 온전함을 이룰 수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모두가 죄 아래서 난 흠 있는 자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율법의 제사장은 약점을 가진 자들이라고 합니다.

 

약점이 없는 제사장은 오직 한 분 예수그리스도입니다.

그러므로 율법으로 드려지는 제사로는 온전할 수가 없고 예수그리스도가 드리는 제사로서만이 온전하게 되는 것입니다.

 

율법 아래서 흠 있는 제사장들이 드린 짐승의 제사는 장차 흠이 없는 하늘에서 오시는 영원한 제사장이신 예수그리스도께서 짐승의 제사가 아닌 자기 몸으로 드리는 제사를 보여주기 위한 예표적인 것이었습니다.

 

구약의 제사는 죄를 없애는 제사가 아니고 다만 죄를 생각하게 하는 제사입니다.

 

히 10:1-5절. “율법은 장차 오는 좋은 일의 그림자요 참 형상이 아니므로 해마다 늘 드리는바 같은 제사로는 나아오는 자들을 언제든지 온전케 할 수 없느니라 2. 그렇지 아니하면 섬기는 자들이 단번에 정결케 되어 다시 죄를 깨닫는 일이 없으리니 어찌 드리는 일을 그치지 아니 하였으리요 3. 그러나 이 제사들은 해마다 죄를 생각하게 하는 것이 있나니 4. 이는 황소와 염소의 피가 능히 죄를 없이 하지 못함이라 5. 그러므로 세상에 임하실 때에 가라사대 하나님이 제사와 예물을 원치 아니하시고 오직 나를 위하여 한 몸을 예비하셨도다”

 

구약의 제사장들은 장차 오실 참 제사장을 보여주는 역할을 하는 자들입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의 진짜 어른이신 제사장은 예수그리스도인 것입니다.

 

예수님은 영원한 어른이십니다.

 

어른은 백성을 대표하는 사람입니다.

예수님은 모든 사람을 대표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맏아들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롬 8:29절.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로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으니 이는 그로 많은 형제 중에서 맏아들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하나님께서 성도를 구원한 것은 예수그리스도를 맏아들 되게 하시고자 함입니다.

맏아들이라는 말은 수많은 형제들이 있음을 전제로 하는 말입니다.

그래서 예수그리스도로 구원을 받은 자들을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하늘에서 오신 참 하나님의 아들에 의하여 땅에서 하나님의 아들들이 생겨난 것입니다.

이것은 한 알의 밀알이 죽어서 수많은 밀알을 낳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므로 거룩케 하는 자와 거룩케 함을 입은 자들이 한 형제가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참 사람의 본이십니다.

예수님은 온 인류의 어른(맏아들)으로서 모든 인간들에게 본이 되시는 분입니다.

그래서 구원을 맏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려는 것이라고 합니다.

 

벧전 2:21절. “그리스도도 너희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사 너희에게 본을 끼쳐 그 자취를 따라 오게 하려 하셨느니라”

 

신앙생활이란? 예수님의 운명에 동참이 되어서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성도들은 예수그리스도를 대신하는 자들로 이 세상을 존재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세상 사람들 앞에서는 제사장이 되어서 어른으로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성도들은 세상 사람들 앞에서 어른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하나님 앞에서의 옳고 그름이 무엇인지를 모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도들은 먼저 경험을 가진 자들로서 어른이 되어서 인간의 본분이 무엇인지를 세상 사람들과 다른 모습으로 살아가면서 가르쳐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이 땅에서 어떤 자세로 살아가야 하는지를 가르쳐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이방인의 허망한 것을 쫓아가지 말라고 합니다.

너희가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심을 받았으면 위엣 것을 찾으라고 합니다.

땅에 지체를 죽이고 새로운 피조물로 지음을 받은 자답게 살아가라고 하는 것입니다.

 

우린 모두가 어른입니다.

예수그리스도를 경험한 자들입니다.

예수그리스도를 아는 어른 된 자로서 하늘에 사람으로 살아가시길 바랍니다.

 

 

 

 

 

 

"여호와의 정하신 날"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보라 용광로 불 같은 날이 이르리니

교만한 자와 악을 행하는 자는 다 지푸라기 같을 것이라

말라기 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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