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 빛 사랑

시 3:5 내가 누워 자고 깨었으니 여호와께서 나를 붙드심이로다

♣(성경강해)41강. 절기 속에 담긴 예수그리스도 (레 2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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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강해/레위기 강해

2021. 12. 7.

 

엡 1:4-6
④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1)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⑤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⑥ 이는 그가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우리에게 거저 주시는 바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송하게 하려는 것이라

 

 

41강. 절기 속에 담긴 예수그리스도 (레 23:1-4)

-.정낙원 목사

 

레위 23:1-4절.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일러 가라사대 2. 이스라엘 자손에게 고하여 이르라 너희가 공포하여 성회를 삼을 여호와의 절기는 이러 하니라 3. 엿새 동안은 일할 것이요 일곱째 날은 쉴 안식일이니 성회라 너희는 무슨 일이든지 하지 말라 이는 너희 거하는 각처에서 지킬 여호와의 안식일이니라 4. 기한에 미쳐 너희가 공포하여 성회로 삼을 여호와의 절기는 이러 하니라”

 

만물은 창세전 언약에 의하여 창조가 되었습니다.

창세전 언약은 삼위 하나님께서 하신 언약입니다.

하나님이 “난 이렇게 일을 할 거야” 라고 하나님 스스로에게 하신 약속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창세전 언약은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께서 역사 속에서 각각 분담을 하여서 이루어 가시는 것입니다.

 

성부 하나님은 언약을 세우시고,

성자 하나님은 역사 속에서 그 언약을 성취하시고,

성령 하나님은 성자 하나님이 역사 속에 오셔서 이루신 언약을 자기 백성들에게 믿어지게 하시는 일들은 하십니다.

 

성부 하나님께서 성자 하나님을 역사 속에 파송을 하시어 창세전 언약을 이루도록 하셨습니다.

성자 하나님은 아버지의 명에 순종하여서 십자가에서 다 이루시고 승천하셨습니다.

승천하신 성자 하나님은 성령 하나님을 자신의 이름으로 보내서 창세전에 어린 양의 생명책에 녹명이 된 자들에게 성자 하나님이 십자가에서 이루신 것을 믿어지게 하여서 그 믿음으로 살아가게 하시는 일을 하십니다.

 

하나님은 창세전 언약을 위하여 만물을 창조 하였습니다.

 

골 1:16-17절. “만물이 그에게 창조되되 하늘과 땅에서 보이는 것들과 보이지 않는 것들과 혹은 보좌들이나 주관들이나 정사들이나 권세들이나 만물이 다 그로 말미암고 그를 위하여 창조되었고 17. 또한 그가 만물보다 먼저 계시고 만물이 그 안에 함께 섰느니라”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바 되었고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다고 합니다.

그가 만물을 주관하시고 다스리고 있다는 것입니다.

만물 속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은 그와 연관이 있는 것이라는 뜻입니다.

이를 사도바울은 로마서 1장에서 만물 가운데 하나님의 신성이 충만하다고 하였습니다.

 

세상 역사는 성자 하나님이신 예수그리스도께서 창세전 언약을 이루어가는 활동 무대입니다.

그래서 예수그리스도를 만유의 주라고 하는 것입니다.

만유의 주란? 만유를 주인으로 다스리는 분이라는 뜻입니다.

 

성자 하나님은 태초에는 말씀이신 하나님으로 계셨습니다.

말씀이신 하나님이 육신이 되어서 이 세상으로 오셨습니다.

그 분이 바로 예수그리스도입니다.



역사라는 시간 속에서 창세전 언약을 이루어 가시고자 오신 것입니다.  

창세전 언약은 예수그리스도의 피로 하나님의 백성들이 죄사함을 받아서 거룩하고 의로워지는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엡 1:3-7절. “찬송하리로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으로 우리에게 복 주시되 4. 곧 창세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5.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6. 이는 그의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우리에게 거저 주시는바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미하게 하려는 것이라 7.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피로 말미암아 구속 곧 죄 사함을 받았으니라”

 

예수그리스도의 피로 죄사함을 받아 의롭게 된 자들을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칭합니다.

예수그리스도의 피로 거룩함을 입은 자들은 하나님 나라에서 세세토록 그 은혜의 영광을 찬미하면서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성경을 열면 첫 번째 나타나는 말씀이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 하시니라’ 입니다.

이 말은 곧 태초라는 곳에 계시던 하나님이 천지를 만드셨다는 것입니다.

천지를 만드신 하나님은 천지 바깥에 계신 분입니다.

그러니까 천지 창조는 천지 바깥에 계시던 하나님이 천지 속으로 방문을 하신 것으로 시작이 된 것입니다.

 

그래서 창세기 1장의 천지 창조 기사를 무엇을 만들었다는데 초점이 있는 것이 아니고 천지 바깥에 계시던 하나님이 천지 속에 오셔서 어떤 일을 하신 것에 맞추어져 있는 것입니다.

이걸 7일 동안 갈라내고 채우고 안식하는 것으로 세 텀으로 나누어서 말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예수그리스도께서 역사 속에서 하시는 일들이 세 텀으로 나누어져 있기 때문입니다.

 

초림으로 육체로 오신 예수님은 갈라내는 일을 하시고,

성령으로 성도들 안에 오신 예수님은 채우는 일을 하시고,

재림으로 만왕의 왕으로 오실 예수님은 안식을 주시는 것입니다.

 

성경은 천지 바깥에 계신 나라를 ‘하나님의 나라’ 라고 합니다.

이를 ‘태초의 하나님 나라’ 라고 합니다.

 

요 1:1-3절.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2. 그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3.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

 

하나님의 나라는 ‘신의 나라’입니다.

창조주가 살고 있는 곳입니다.

성부 성자 성령은 모두가 창조주 하나님이십니다.

 

삼위 하나님께서 역사 속에서 창조의 일을 하시는 것입니다.

그것이 창세전에 어린 양의 생명책에 녹명이 된 자들을 죄와 사망에서 구원하는 일입니다.

그런데 그 구원이 역사 속에서 시작과 끝이라는 시간 속에서 이루어지는 것이기 때문에 과거, 현재, 미래라는 시제로 이루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과거 구원은, 죄와 사망에서 구원하는 것이고,

현재 구원은, 의와 거룩으로 자라가는 것이고,

미래 구원은, 거룩한 자가 되어서 하나님 나라로 데려감을 당하는 것입니다.

 

죄와 사망에서 구원을 받는 것은 단번에 이루어지는 것으로서 과거적인 것이고,

의와 거룩으로 자라가는 구원은 날마다 이루어가는 것으로서 현재적인 것이고,

하나님 나라에 데려감을 당하는 것은 장차 주어지는 것으로서 미래적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들의 구원이 과거와 현재와 미래라는 삼 시제로 이루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구원을 이루는 분은 예수그리스도입니다.

삼 시제로 일하시는 예수가 있습니다.

이는 예수가 셋이라는 말이 아니고 세 구분으로 일을 하신다는 뜻입니다.

 

예수그리스도는 영생하시는 분으로서 항상 존재하십니다.

그런데 역사 속에서는 과거적 예수와 현재적 예수와 미래적 예수로 나타납니다.

이는 성도의 구원이 과거와 현재와 미래로 이루어지기 때문입니다.

 

성도는 태초에서 나와서 역사 속에서 존재하다가 태초로 돌아갑니다.

구속사적으로 보면 성도는 창세전에는 언약 속에서 존재하다가 역사로 보내짐을 입고 다시 창세전으로 돌아가게 됩니다.

 

하나님은 성도를 창세전에 어린 양의 생명책에 녹명을 하였습니다.

그리고 어린 양의 생명책에 녹명이 된 자들을 이 세상으로 보내십니다.

언약의 때가 되면 그 아들을 보내서 하나님 나라로 데려가십니다.

 

이 모습이 구약 마당에서는 이스라엘의 구원으로 보여주셨습니다.

아브라함 언약 안에서 후손들을 빼내서 애굽에서 종살이 하게 하셨다가 구원자를 통해서 어린 양의 피로 씻겨서 약속의 땅으로 인도하는 것으로 나타난 것입니다.

 

성경은 하나님께서 역사 속에서 자기 백성들을 구원하는 이야기입니다.

이를 구약에서는 육적 이스라엘을 통해서 보여주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육적 이스라엘을 통해서 자기 백성들을 어떻게 구원을 해 내시는지를 그림 언어로 보여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구약을 그림자라고 합니다.

 

그림자는 실상을 전제로 존재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창세전에 예수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아들들을 창조하기로 작정을 하셨습니다.

이를 예수그리스도가 오시기 전 구약에서는 아브라함 언약을 통해서 낳아진 이스라엘을 가지고 설명을 해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영이십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영의 나라입니다.

영이라야 하나님 나라를 유업을 받을 수가 있습니다.

 

아브라함의 후손들은 육입니다.

육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을 수가 없습니다.

구원이 뭐냐?

육이 영이 되는 것입니다.

 

육이 어떻게 영이 됩니까?

이는 영으로 낳아져야 합니다.

육으로 낳아진 것은 육이고 영으로 낳아진 것은 영입니다.

 

예수님이 영이십니다.

예수그리스도로 낳아진 자들은 영적 후손이 되는 것입니다.

구약의 아브라함 후손들은 육적 백성이고, 예수그리스도 낳아진 신약의 후손들은 영적 후손들이 되는 것입니다.

 

구약은 그림자이고 신약은 실상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구약은 이스라엘 민족의 역사로 기록하고 있고, 신약은 교회의 역사로 기록하고 있는 것입니다.

구약의 육적 이스라엘을 통해서 신약의 영적 이스라엘의 구원을 설명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모든 성경은 자신에 대하여 기록하고 있다고 하였습니다.

성경 속의 모든 이야기는 예수그리스도의 구속사를 말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 살펴볼 절기도 예수그리스도께서 하실 일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바울은 구약의 절기나 먹고 마시는 것들은 모두 예수그리스도를 말해주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골 2:16-17절. “그러므로 먹고 마시는 것과 절기나 월삭이나 안식일을 인하여 누구든지 너희를 폄론하지 못하게 하라 17. 이것들은 장래 일의 그림자이나 몸은 그리스도의 것이니라”

 

절기라는 말은 “모에드” 라고 하는데,

이는 (지정하다, 만나다, 소집하다, 고정하다) 라는 뜻을 담고 있습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절기 속에다가 예수그리스도께서 하실 일들을 지정해 놓았다는 뜻입니다.

지정하신 곳에서 만나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이는 창세전이 이미 고정해 놓으셨습니다.

 

먹고 마시는 것과 절기나 월삭이나 안식일은 모두가 율법에 속한 것들입니다.

율법 속에 예수그리스도가 하실 일을 담아 놓은 것입니다.

그래서 율법에 속한 절기나 월삭이나 안식일은 예수그리스도를 보여주는 그림자 라고 하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율법은 수건이라고 하였습니다.

 

고후 3:13-18절. “우리는 모세가 이스라엘 자손들로 장차 없어질 것의 결국을 주목치 못하게 하려고 수건을 그 얼굴에 쓴 것 같이 아니하노라 14. 그러나 저희 마음이 완고하여 오늘까지라도 구약을 읽을 때에 그 수건이 오히려 벗어지지 아니하고 있으니 그 수건은 그리스도 안에서 없어질 것이라 15. 오늘까지 모세의 글을 읽을 때에 수건이 오히려 그 마음을 덮었도다 16. 그러나 언제든지 주께로 돌아가면 그 수건이 벗어지리라 17. 주는 영이시니 주의 영이 계신 곳에는 자유함이 있느니라 18. 우리가 다 수건을 벗은 얼굴로 거울을 보는 것 같이 주의 영광을 보매 저와 같은 형상으로 화하여 영광으로 영광에 이르니 곧 주의 영으로 말미암음이니라”

 

수건으로 가려졌다는 것은 희미하다는 것입니다.

예표적으로 희미하게 안다는 것입니다.

희미하게 아는 것은 실제로 아는 것이 아닙니다.

 

율법은 희미한 것입니다.

율법이라는 희미한 수건은 예수그리스도에게 돌아가면 벗겨진다고 했습니다.

율법은 사진과 같고 예수그리스도는 실물입니다.

사진과 같은 율법이 실물인 예수그리스도를 만나면 확실해지는 것입니다.

 

예수그리스도를 만나면 율법은 다 해석이 되어지는 것입니다.

즉 율법에 속한 일들은 예수그리스도로 해석하면 다 풀린다는 뜻입니다.

예수그리스도가 율법의 요구를 다 완성하셨기 때문입니다.

 

골 2:14-15절. “우리를 거스리고 우리를 대적하는 의문에 쓴 증서를 도말하시고 제하여 버리사 십자가에 못 박으시고 15. 정사와 권세를 벗어버려 밝히 드러내시고 십자가로 승리하셨느니라”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의문에 쓴 증서를 도말하고 제하여 버렸습니다.

 

도말이란? 헬라어 '엑살레이프사스' 라고 하는데,

이는 문자적으로 ‘문질러서 지워 버린다’ 라는 뜻입니다.

이는 더러운 낙서를 페인트로 칠해서 가려 버리는 것과 같은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의문에 쓴 증서는 율법적 조문을 말합니다.

예수님께서 자기의 피로 율법의 조문들을 칠해서 보이지 않게 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다 이루었다’고 선포하신 것입니다.

이는 자기 육체로 율법의 요구를 다 담아 내신 것입니다.

 

이제부터 율법적인 방법으로 하나님을 섬길 필요가 없어진 것입니다.

새로운 방법으로 하나님을 섬겨야 합니다.

그것이 예수그리스도의 공로를 앞세우고 하나님께 나아가는 것입니다.

이를 새 언약이라고 합니다.

 

바울은 다메섹에서 예수를 만나기 전까지만 해도 율법으로 하나님을 섬겼습니다.

율법으로 하나님을 섬길 때는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는 자들은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는 이단으로 보인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를 그리스도라고 믿는 그리스도인들을 죽이는 일에 앞장을 선 것입니다.

 

그런데 다메섹에서 예수님을 만나고 난 후에 완전히 달라집니다.

바울 자신이 예수가 그리스도라는 것을 믿는 그리스도인이 된 것입니다.

예수님을 만나고 난 후에 바울의 눈에서 율법이라는 비늘이 떨어집니다.

율법이라는 비늘이 떨어지고 나니까 율법이 담고 있는 모든 것들이 다 예수그리스도를 겨냥해서 주어진 것이라는 것을 안 것입니다.

 

이 사실이 믿어지자 이제는 율법 지킴으로 하나님 앞으로 나아가려는 자들이 이단이라는 것으로 보여지는 것입니다.

예수가 그리스도 라는 것을 믿지 않는 자들이 이단인 것입니다.

그래서 자기 동족들에게 율법 지킴으로 의로워지는 것이 아니고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어야 의롭다 함을 얻는다는 것을 매를 맞아 가면서도 증거를 하였던 것입니다.

 

바울은 동족들에게 매를 맞고 핍박을 받아도 이 사실을 멈출 수가 없는 것입니다.

사실이기 때문입니다.

정답이기 때문입니다.

 

신약에서는 율법적으로 절기를 지키는 것은 죄가 됩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구약의 율법을 지키는 자들은 예수그리스도의 죽으심을 헛되게 하는 것이라고 강하게 책망을 하였던 것입니다.

 

갈 4:9-11절. “이제는 너희가 하나님을 알뿐더러 하나님의 아신바 되었거늘 어찌하여 다시 약하고 천한 초등 학문으로 돌아가서 다시 저희에게 종노릇하려 하느냐 10. 너희가 날과 달과 절기와 해를 삼가 지키니 11. 내가 너희를 위하여 수고한 것이 헛될까 두려워하노라”

 

절기는 예수님께서 역사 속에서 하실 일을 담아 놓았습니다.

다른 말로 예수님의 일생이 담겨져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역사를 초월하여서 존재하시는 분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육신을 입고 이 세상으로 오실 때는 역사 속에서 하실 일을 그 몸에 짊어지고 오신 것입니다.

 

자신의 몸으로 언약을 이루는 일을 하시기 위함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지칭 하실 때 이제도 계시고, 전에도 계시고, 장차 오실 분이라고 소개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계 1:7-8절. “볼지어다 구름을 타고 오시리라 각인의 눈이 그를 보겠고 그를 찌른 자들도 볼 터이요. 땅에 있는 모든 족속이 그를 인하여 애곡하리니 그러하리라. 아멘 8. 주 하나님이 가라사대 나는 알파와 오메가라. ‘이제도 있고’ ‘전에도 있었고’ ‘장차 올 자요’ 전능한 자라 하시더라”

 

예수님은 창조주이십니다.

역사 속에서 창조의 일을 하시는 것입니다.

그것이 자기 백성들을 구원 하는 것입니다.

이 일을 이 세상이 다하는 날까지 지속이 됩니다.

 

예수님은 전에도 구원하는 일을 하셨고,

이제도 구원하는 일을 하고 계시며,

장차도 구원하는 일을 하실 것입니다.

 

그래서 성도의 구원을 삼 시제로 말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구원을 받았다,”

“구원을 이루라,”

“구원을 이룰 것이다,”

 

“구원을 받았다”는 과거 시제로서 단회적으로 일어난 것입니다.

이는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이루셨습니다.

우리는 예수그리스도의 피로서 죄와 사망의 권세로부터 해방을 받았습니다.

해방은 단회적으로 받는 것입니다.

 

이건 출애굽과 같은 것입니다.

유월절 어린 양의 피로 죽음의 재앙으로부터 벗어나 홍해를 건너서 출애굽을 하였습니다.

이는 단번에 이루어진 것으로서 두 번 세 번 반복할 필요가 없습니다.

 

“구원을 이루라”는 것은 현재 시제로 날마다 이루어가야 하는 것입니다.

이는 예수님께서 부활 하신 후에 성령으로 우리 가운데 오셔서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으로 현재 속에서 일어나는 죄의 문제를 이기게 하는 것입니다.

 

육신을 가지고 있는 한 우리는 죄로부터 자유로울 수가 없습니다.

우리의 의로서는 사단의 참소를 이길 수가 없습니다.

이를 아시고 성령은 우리 안에서 예수그리스도의 피로서 사단의 참소를 이기게 하십니다.

이것은 날마다 이루어가는 현재의 구원입니다.

 

“구원을 이룰 것이다”는 미래 시제로서 장차 이루어질 구원을 말합니다.

이는 예수님께서 재림을 하시면 일어날 것입니다.

구원의 최종 지점은 이 세상을 떠나는 것입니다.

애굽이라는 이 세상을 떠나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우리의 구원을 몸의 구속까지라고 하였습니다.

몸의 구속은 육신의 장막을 벗고서 하늘의 장막을 입고서 이 세상 바깥에 있는 하나님 나라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장차 이루어질 미래의 구원도 단회적인 사건으로 일어나게 됩니다.

예수님이 재림하시면 우리는 홀연히 변화가 되어서 공중으로 이끌림을 받게 됩니다.

새 하늘과 새 땅으로 가게 됩니다.

그리 할 때 역사 속에서 이루어지는 구원은 완성이 되어집니다.

 

이러한 구원을 예수님께서 역사 속에서 이루셔야 합니다.

그것을 절기 속에 담아 놓은 것입니다.

절기 속에도 예수님의 과거 현재 미래의 구원이 담겨져 있는 것입니다.

 

7대 절기가 있습니다.

그런데 이 절기들은 안식일에서 나왔습니다.

그래서 절기를 말하면서 제일 먼저 안식일에 대하여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레위 23:1-3절.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일러 가라사대 2. 이스라엘 자손에게 고하여 이르라 너희가 공포하여 성회를 삼을 여호와의 절기는 이러 하니라 3. 엿새 동안은 일할 것이요 일곱째 날은 쉴 안식일이니 성회라 너희는 무슨 일이든지 하지 말라 이는 너희 거하는 각처에서 지킬 여호와의 안식일이니라”

 

절기는 안식일로 출발해서 안식일로 완성이 됩니다.

 

예수님은 스스로를 안식일의 주인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렇다고 한다면 절기 또한 예수님으로부터 출발해서 예수님으로 완성이 되어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모든 절기는 안식을 담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안식의 나라입니다.

만물은 안식의 나라에서 나왔습니다.

이를 예수 안에서 나왔다고 합니다.

 

만물이 예수에게서 나와서 예수로 말미암아 존재하다가 예수로 돌아가게 됩니다.

만물은 예수님과 운명을 함께 하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이 말은 우리는 예수에게서 나와서 예수로 살다가 예수에게로 돌아가게 되어 있다는 뜻입니다.

 

절기는 1년 동안에 속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역사 전체를 1년에 함축시켜 놓았습니다.

1년을 다시 봄, 여름, 가을, 겨울이라는 사 계절로 압축을 시켜 놓았습니다.

사 계절을 한 주간 7일로 압축을 시키셨고,

한 주간 7일을 안식일 하루에 담아 놓은 것입니다.

 

절기 역시 봄, 여름, 가을, 겨울로 나누어져 있습니다.

 

1). 유월절(1/14일 금요일)

2). 무교절(1/15일 토요일) / (봄 절기)

3). 초실절(1/16일 일요일)

 

4). 칠칠절(초실절 후 50일째)

넉 달 농사 기간임 / (여름 절기)

 

5). 나팔절(7/1일)

6). 속죄일(7/10일) / (가을 절기)

7). 초막절(7/15일) /

 

8). 역사 바깥 8일 안식의 세계로 나아감 / (겨울 절기)

 

봄 절기로는 유월절 무교절 초실절이 있습니다.

여름 절기로는 칠칠절이라는 오순절이 있습니다.

오순절 이후 넉 달 동안 농사를 짓는 기간이 있습니다.

그리고 가을이 되면 나팔절 속죄일 초막절이 있습니다.

 

초막절이 지나고 나면 겨울의 긴 안식으로 들어갑니다.

이 때를 8일 대 성회 안식의 세계라고 합니다.

이는 새 하늘과 새 땅에서 누리는 천년왕국 안식의 세계로 나아가는 것을 말합니다.

 

7대 절기는 예수그리스도께서 역사 속에서 하실 일을 담고 있습니다.

그럼 각각의 절기에 맞는 예수님의 사역이 있을 것입니다.

 

봄 절기에는 봄에 맞는 시역이 있고,

여름 절기에는 여름 절기에 맞는 사역이 있고,

가을 절기에는 가을에 맞는 사역이 있을 것입니다.

 

예수님에게는 세 가지 사역이 있습니다.

이를 동방박사들이 예수님이 탄생을 하였을 때 세 가지 예물을 드리는 것 속에 담겨져 있습니다.

동방박사가 드린 예물은 황금과 몰약과 유향입니다.

세 가지 예물은 예수님의 삼 직을 예표하고 있습니다.

 

황금은 왕직을 상징하고,

몰약은 선지자직을 상징하고,

유향은 제사장직을 상징합니다.

 

예수님은 선지자 사역과, 제사장 사역과, 왕 사역을 하십니다.

 

선지자 사역은 과거적 사역이고,

제사장 사역은 현재적 사역이고,

왕 사역은 미래적 사역입니다.

 

예수님의 선지자 사역은 백성들의 죄를 고발하다가 죽임 당하는 사역입니다.

이것은 예수님께서 육체로 하신 사역입니다.

예수님의 육체적 사역은 십자가에서 죽임 당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무덤에 들어갔습니다.

무덤 속에 들어가서 사망에 가두어진 자기백성들을 끄집어내십니다.

부활 하신 후에 무덤에서 나온 자들을 데리고 승천하여서 하나님 나라로 가셨습니다.

 

이것이 유월절과 무교절과 초실절로 나타났습니다.

예수님의 육체적 사역은 단회적으로 일어난 과거적 사역으로서 봄 절기에 해당이 됩니다.

봄 절기는 예수님의 선지자적 사역으로서 단회적으로 일어나는 과거적 구원입니다.

 

예수님의 제사장 사역은 부활 하신 후 성령으로 성도들 안에 오셔서 돕는 일을 하시는 것입니다.

오순절에 성령으로 성도 안에 오신 예수님은 제사장으로서 도우시는 일을 하십니다.

성도 안에서 예수그리스도의 피로서 율법의 정죄로부터 이기게 하는 일을 하십니다.

이것은 날마다 이루어 가는 구원으로서 반복적으로 일어나는 현재 구원입니다.

 

이를 아들의 형상을 본받는다고 하고,

또한 그리스도의 충만한 분량으로 자라간다고 합니다.

이것이 예수님이 재림 하실 때까지 지속이 되어집니다.

이는 여름 절기로서 오순절 이후 넉 달 농사 기간인 것입니다.

 

농사가 다 지어지면 추수하여서 곡간에 들입니다.

이것은 가을 절기로서 나팔절 속죄일 초막절로 나타납니다.

예수님께서 나팔절에 재림을 하여서 성도들을 추수하여서 하늘 곡간인 천국으로 데리고 가서 왕 노릇하는 것으로 나타납니다.

이것은 장차 이루어져야 하는 미래적 구원입니다.

 

예수님의 삼 직은 성막에서도 보여주고 있습니다.

 

성막은 예수님을 예표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내가 성전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성막에서 일어나는 일들은 모두가 예수님께서 역사 속에서 하실 일들을 담고 있는 것입니다.

 

성막은 세 구분으로 나누어져 있습니다.

 

뜰과,

성소와,

지성소로 구분이 되어 있습니다.

 

뜰은 제물이 죽어서 번제로 태워지는 곳입니다.

이것은 예수님께서 자기 백성들의 죄 값으로 십자가에 죽으신 것을 말합니다.

이는 예수님의 선지자 사역으로서 과거적 사역입니다.

 

성소는 제사장들이 날마다 하나님께 분향을 하는 곳입니다.

제사장들은 뜰에서 제물의 피로 죄사함을 받은 후에 성소에 들어가서 일을 합니다.

이것은 부활 하신 예수님이 성령으로 성도 안에 오셔서 제사장으로서 하나님께 기도하는 일을 하고 계심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성령으로 오신 예수님은 날마다 성도들을 돕고 있습니다.

이는 예수님의 제사장 사역으로 현재적 사역을 말합니다.

 

지성소는 대 제사장이 일 년에 단 한번 들어가서 제사를 지내는 곳입니다.

성소는 일반 제사장들이 날마다 제사를 지내지만,

지성소는 대 제사장이 일 년에 단 한 차례 제사를 지냅니다.

이것은 예수님이 재림을 하시면 일어나는 미래적인 사역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날마다 제사가 드려지는 성소는 이 세상을 상징하고,

일 년에 단 한번 들어가는 지성소는 이 세상 바깥에 있는 하나님 나라를 상징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히브리서에서는 예수님께서 승천하신 것을 하늘 지성소로 들어갔다고 합니다.

 

성령으로 오신 예수님은 일반 제사장과 같고,

재림하시는 예수님은 대 제사장과 같은 것입니다.

 

‘뜰’에서 일어나는 일은 ‘봄 절기’에 해당이 되고,

‘성소’에서 일어나는 일은 ‘여름 절기’에 해당이 되고.

‘지성소’에서 일어나는 일은 ‘가을 절기’에 해당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절기나 월삭이나 안식일을 모두가 예수그리스도를 예표하는 그림자라고 말한 것입니다.

 

그림자는 실상이 오면 비켜주어야 합니다.

실상이 오기까지는 그림자가 실상 역할을 해 주어야 합니다.

그러나 실상이 왔음에도 그림자가 비켜주지 않고 실상 노릇을 하고자 하면 그 자체가 실상을 가리는 미혹이 되는 것입니다.

 

율법은 그림자로서 실상이 오기까지 필요한 것입니다.

율법은 실상에게 인도하는 길잡이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율법도 복음이 되는 것입니다.

율법이 아니고서는 실상을 만날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실상을 만난 사람은 실상을 만나게 해 준 그림자도 귀하게 여깁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내가 율법을 폐하러 온 것이 아니고 율법을 완성키 위하여 오셨다고 하시면서 천지가 없어지기 전까지는 율법의 일점일획도 없어지지 않는다고 하셨던 것입니다.

 

신앙은 율법을 폐하는 것이 아닙니다.

율법을 완성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외식하는 바리새인들에게 율법의 더 중한 바 의와 인과 신을 버렸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면서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마 23:23절. “화 있을찐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가 박하와 회향과 근채의 십일조를 드리되 율법의 더 중한바 의와 인과 신은 버렸도다 그러나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말아야 할찌니라”

 

‘이것도 행하고’는 의와 인과 신이고,

‘저것도 버리지 말라’는 율법입니다.

이것도 필요하고 저것도 필요하다고 합니다.

 

율법은 그릇입니다.

율법이라는 그릇 속에 의와 인과 신을 담으라고 합니다.

의와 인과 신은 한마디로 하면 사랑입니다.

 

율법은 형식이고, 의와 인과 신은 내용입니다.

 

형식은 내용을 담는 그릇입니다.

내용을 담기 위하여 그릇이 필요한 것입니다.

예수님은 자신의 몸으로 율법이 담아야 할 내용을 담았습니다.

 

이를 사랑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율법은 사랑의 완성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교회로 모이는 것은 율법이라는 그릇과 같습니다.

 

우리가 행하는 모든 것은 그릇입니다.

그 속에 의와 인과 신이라는 사랑을 담아야 합니다.

사랑이 담겨지지 않으면 거짓이 됩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고린도전서 13장에서 그 어떤 일을 하였다 할지라도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행하지 않으면 아무 것도 아니라고 한 것입니다.

 

사랑이 빠진 신앙의 행위는 빈 그릇과 같은 것입니다.

이를 말라기 선지자는 절기의 똥이라고 하였습니다.

똥은 양분이 빠진 찌꺼기입니다.

 

예수님이 오셨을 때 유대인들의 신앙이 똥이었습니다.

‘이 백성들이 장로의 유전으로 하나님을 섬기니까 헛되이 섬긴다’고 하였습니다.

‘이 백성이 입술로는 나를 존경하나 마음은 내게서 멀도다’ 라고 하였던 것입니다.

 

신앙의 행위는 절기 지킴과 같은 것입니다.

우리들의 신앙 속에 예수그리스도의 피 흘리심으로 주어진 구원의 감격이 있어야 합니다.

감사와 기쁨과 찬송이 있어야 합니다.

그 은혜의 영광을 찬미하는 것이 담겨져 있어야 합니다.

 

율법은 붙잡아도 안 되지만 율법을 버려도 안 됩니다.

구약적 개념의 율법을 지키는 율법주의도 안 되지만,

성도로서 마땅히 살아가야 하는 삶을 간과하는 무율법주의도 안 됩니다.

 

율법주의도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를 가리는 이단이고,

무율법주의도 성령으로 오셔서 성도의 몸을 성전으로 삼아서 산 제사를 드리는 예수그리스도의 사역을 부인하는 것으로서 이단입니다.

 

구원을 받은 성도는 천국의 서기관처럼 옛 것과 새 것을 적절하게 잘 사용할 줄 알아야 합니다.

 

옛 것은 율법이라는 형식이고,

새 것은 형식 속에 담아야 할 내용들입니다.

 

바울의 고백을 깊이 생각하시길 바랍니다.

 

고전 9:19-23절. “내가 모든 사람에게 자유 하였으나 스스로 모든 사람에게 종이 된 것은 더 많은 사람을 얻고자 함이라 20. 유대인들에게는 내가 유대인과 같이 된 것은 유대인들을 얻고자 함이요 율법 아래 있는 자들에게는 내가 율법 아래 있지 아니하나 율법 아래 있는 자 같이 된 것은 율법 아래 있는 자들을 얻고자 함이요 21. 율법 없는 자에게는 내가 하나님께는 율법 없는 자가 아니요 도리어 그리스도의 율법 아래 있는 자나 율법 없는 자와 같이 된 것은 율법 없는 자들을 얻고자 함이라 22. 약한 자들에게는 내가 약한 자와 같이 된 것은 약한 자들을 얻고자 함이요 여러 사람에게 내가 여러 모양이 된 것은 아무쪼록 몇몇 사람들을 구원코자 함이니 23. 내가 복음을 위하여 모든 것을 행함은 복음에 참예하고자 함이라”

 

바울은 때로는 율법주의처럼 행동을 하였고,

때로는 율법으로부터 해방된 모습으로 살았습니다.

필요에 따라서는 율법주의처럼 행동했고 때로는 율법으로 벗어난 자처럼 행동을 했습니다.

 

각 사람의 신앙 수준에 맞추어서 응대를 한 것입니다.

그 이유는 그 사람을 얻고자 함입니다.

진정한 자유자는 때로는 율법주의자가 되기도 하고 때로는 율법을 벗어난 자가 되기도 합니다.

이 모두가 자신의 유익을 위한 것이 아니라 상대방의 유익을 위해서입니다.

 

나는 율법을 어떤 마음으로 받고 있는가요?

 

신앙에 어린아이가 되지 말고 장성한 자가 되십시오.

어른은 어린아이를 생각하고 자기 자유를 마음대로 사용하지 않습니다.

눈높이 신앙을 가지십시오.

 

교회 안에는 신앙이 어린 형제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들이 신앙 좋다고 하는 우리를 보고 있습니다.

나의 잘난 신앙이 사람을 세우는 일을 하는지 아니면 넘어지게 하는지 잘 살피십시오.

교회에나 사람에게 거치는 자가 되지 마십시오.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여기 있는 소자 중 하나를 실족하게 하는 자는 차라리 연자 맷돌을 매고 바다에 가서 빠져 죽으라고 합니다.

이 말씀이 무슨 뜻인지 곱씹어 보시기 바랍니다.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고 넘어짐의 앞잡이입니다.

 

하나님은 모르는 자를 나무라지 않습니다.

안다고 하는 자들을 나무라십니다.

왜냐하면 어느 시대이고 안다고 하는 자들이 거치는 자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복음을 아십니까?

절기 속에 담겨진 예수그리스도의 생명을 아십니까?

알기 때문에 조심해야 하는 것입니다.

 

 

 

 

 

 

"여호와의 정하신 날"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보라 용광로 불 같은 날이 이르리니

교만한 자와 악을 행하는 자는 다 지푸라기 같을 것이라

말라기 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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