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 빛 사랑

시 3:5 내가 누워 자고 깨었으니 여호와께서 나를 붙드심이로다

♣(성경강해)106강. 세상에 남겨 두신 이유 (요 17:1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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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강해/요한복음 강해

2022. 1. 15.

엡 1:4-6
④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1)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⑤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⑥ 이는 그가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우리에게 거저 주시는 바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송하게 하려는 것이라

 

 

106강. 세상에 남겨 두신 이유 (요 17:15-26)

-.정낙원 목사

 

요 17:15-26= “내가 비옵는 것은 저희를 세상에서 데려가시기를 위함이 아니요 오직 악에 빠지지 않게 보전하시기를 위함이니이다 16 내가 세상에 속하지 아니함 같이 저희도 세상에 속하지 아니하였삽나이다 17 저희를 진리로 거룩하게 하옵소서 아버지의 말씀은 진리니이다 18 아버지께서 나를 세상에 보내신 것같이 나도 저희를 세상에 보내었고 19 또 저희를 위하여 내가 나를 거룩하게 하오니 이는 저희도 진리로 거룩함을 얻게 하려 함이니이다 20 내가 비옵는 것은 이 사람들만 위함이 아니요 또 저희 말을 인하여 나를 믿는 사람들도 위함이니 21 아버지께서 내 안에 내가 아버지 안에 있는 것같이 저희도 다 하나가 되어 우리 안에 있게 하사 세상으로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믿게 하옵소서 22 내게 주신 영광을 내가 저희에게 주었사오니 이는 우리가 하나가 된 것같이 저희도 하나가 되게 하려 함이니이다 23 곧 내가 저희 안에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셔 저희로 온전함을 이루어 하나가 되게 하려 함은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과 또 나를 사랑하심 같이 저희도 사랑하신 것을 세상으로 알게 하려 함이로소이다 24 아버지여 내게 주신 자도 나 있는 곳에 나와 함께 있어 아버지께서 창세 전부터 나를 사랑하시므로 내게 주신 나의 영광을 저희로 보게 하시기를 원하옵니다 25 의로우신 아버지여 세상이 아버지를 알지 못하여도 나는 아버지를 알았삽고 저희도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줄 알았삽나이다 26 내가 아버지의 이름을 저희에게 알게 하였고 또 알게 하리니 이는 나를 사랑하신 사랑이 저희 안에 있고 나도 저희 안에 있게 하려 함이니이다”

 

오늘 본문을 보면 소속이야기가 나옵니다.

예수님이 내가 세상에 속하지 아니한 것같이 제자들도 세상에 속하지 아니하였다고 합니다.

예수님이나 제자들은 소속이 세상이 아니라고 합니다.

 

세상이 아니라고 한다면 그럼 어디일까요?

세상의 밖이겠지요.

세상 밖이 어디입니까?

하늘입니다.

 

예수님은 하늘에서 오셨습니다.

이제 예수님은 세상에서의 일을 마치고 하늘로 가십니다.

그런데 제자들은 하늘로 데리고 가지 않겠다고 합니다.

 

세상에 속하지 아니하였다고 하면서도 말이에요.

그러면서 아버지가 예수님을 세상에 보낸 것처럼 예수님도 제자들을 세상에 보낸다고 합니다.

왜? 보냈을까요?

 

그 이유가 23절에 나옵니다.



23절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셨다는 것과,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신 것과 같이 너희들도 사랑하셨다는 것을 세상이 알게 하려는 것이라”

 

무슨 말인고 하니!

예수님은 하나님이 보내서 오신 분이라는 것을 세상에 알려주게 하기 위함이고!

또한 하나님이 예수님을 보내서 자기 백성들을 찾아내서 구원한다는 것을 알려주기 위함이라고 합니다. 

즉 제자들을 세상에 남겨 두어서 세상 속에서 하나님으로부터 사랑을 받은 자들이 있다는 것을 알려 주기 위함이라고 합니다.

곧 세상 사람들에게 너희들 중에 하나님 백성이 있음을 알리기 위함이라고 합니다.

 

뭔가 이상하지 않나요.

하나님께서 편애한다는 생각이 들지요.

많은 사람들 속에서 제자들을 골라내서 “나는 이 아이들을 사랑한다!” 라고 티를 낸단 말이에요.

누구 약 올리는 것도 아니고!

그것도 은밀하게 하지 않고 공개적으로 말이에요.

 

이건 마치 야곱이 많은 자식들 중에서 유독 요셉에게만 채색옷을 입혀 준 것과 같아요.

요셉의 형제들 입장에선 아버지가 요셉을 편애한다는 것을 대번에 알아보아요.

왜? 야곱이 요셉에게는 특별한 옷을 입혀 주었을까요? 

이는 하나님의 언약을 위해서입니다.

야곱이 요셉을 특별히 사랑한 것이 오늘 본문이 말하는 내용이에요.



오늘 본문이 뭐라고 하나요?

세상 중에서 하나님 사랑을 입을 자들이 있다고 하잖아요.

요셉처럼 특별한 옷을 입을 자들이 있다고 하잖아요.

 

요셉은 아버지의 편애로 인하여 형제들로부터 미움을 받게 됩니다.

결국에는 형제들로부터 버림(죽임) 당하는 길로 나아가게 되어요.

엄밀히 말하면 요셉은 형제들이 죽인 것이 아니고 아버지가 죽인 거에요.

왜냐하면! 아버지가 요셉을 형제들로부터 미움을 받도록 편애를 하였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창세전 언약이 담고 있는 내용입니다.

성경에 기록된 모든 것들은 언약을 위한 증거들입니다.

그러니 야곱의 가정사에서 일어나는 일도 언약을 보여주는 일이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지금 제자들을 야곱이 요셉을 대하듯이 대하고 있어요.

제자들을 하나님으로부터 사랑을 받은 자라는 것을 증거키 위함이라고 하잖아요.

그럼 예수님도 야곱처럼 제자들을 공개적으로 편애하고 있는 겁니다.

세상 속에서 난 이 아이들을 사랑한다고 한단 말입니다.

 

그럼 하나님의 사랑을 받지 못한 세상이 가만 둘리가 없지요.

하나님으로부터 사랑을 받지 못한 자들 입장에선 하나님으로부터 사랑을 받은 제자들은 눈에 가시처럼 보이겠지요.

미워요.

 

미우면 죽여야지요.

결국 하나님은 자기 백성들을 세상으로부터 죽임 당하도록 하신 겁니다.

요한계시록 6장을 보면 천국에서 순교자들이 하나님에게 원수를 갚아 달라고 하면서 세상을 끝장내 달라고 신원합니다.

그러자 하나님은 조금 기다리라고 합니다.

그 이유는 아직도 세상엔 너희들처럼 죽음 당할 동무들이 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저와 여러분들이 죽어야 할 대기표를 뽑고 기다리고 있는 중이에요.

이제 곧 우리의 번호를 부를 것입니다.

세상에서 하나님으로부터 사랑을 입으면 죽임 당해요.

성경을 보면 하나님의 사랑을 입은 자들은 한결같이 미움 받고 죽임을 당했어요.

 

이러면 공식이 하나 나오지요.

 

<하나님으로부터 사랑 받음 = 세상으로부터 미움 받음>

<구원 = 죽음>

 

세상이란 광의적으로 온 세상을 말하지만 영적인 의미에서는 육에 속한 형제들을 말해요. 

가인이 그랬잖아요.

하나님이 아벨을 편애하니까 가인이 신경질이 나서 아벨을 죽여 버리잖아요.

아벨이 죽은 이유는 단 하나에요.

하나님으로부터 사랑을 받은 것이에요.

 

가인이 아벨을 죽인 이 그림 속에는 온 세상의 그림이 다 그려져 있어요.

세상에서는 하나님으로부터 사랑을 받는 것이 죄에요.

세상에서 미움 받지 않고 죽임 당하지 않으려면 하나님으로부터 사랑을 받으면 안 되어요.

 

그런데 이게 어디 우리 맘대로 되나요.

하나님이 일방적으로 난 너를 사랑한다고 하잖아요.

많고 많은 사람들 중에서 하나님이 아브람을 찾아와서 넌 내꺼 그랬잖아요.

그러니 아브람은 본토친척 아비 집으로부터 떠나야 하는 신세가 되고 만 것입니다.

 

이러면 뭔가 감(感)이 잡히지 않나요?

왜? 성도의 인생살이가 이렇게 고달픈지!

왜? 내 인생이 내 맘대로 안 되는지 말이에요.

 

하나님은 이 세상에 두 사람으로 구분을 해요.

 

차별해서 대해요.

하나님으로부터 사랑을 입은 자와 입지 못한 자로 말이에요.

이건 야곱과 에서를 통해서 보여주셨어요.

나는 야곱은 사랑하고 에서는 미워했다고 하였어요.

 

하나님은 사랑이세요.

사랑은 미움을 바탕으로 드러나요.

사랑이 사랑으로 드러나려면 사랑의 상대적인 것이 있어야 드러납니다.

성경적인 입장에서 사랑은 구원을 말해요.

 

그렇다고 한다면 구원 받지 못하는 자들이 있어야 합니다.

구원 받은 것이 사랑이라고 하면 구원 받지 못함은 미움이에요.

하나님은 사랑이라는 것을 어떻게 드러내는가 하면 구원 받지 못하는 자들 앞에서 자기 백성들을 구원하면서 나는 이들을 사랑했다고 말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구원을 받은 성도는 하나님은 사랑이시라고 해요.

그러나 구원을 받지 못한 사람들은 하나님을 나쁘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자신이 사랑을 받지 못하였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죄의 본질이 드러납니다.

왜? 하나님을 나쁘다고 합니까?

자기가 사랑 받지 못하였기 때문입니다.

 

세상에서의 죄에 기준은 자기 사랑을 받느냐 못 받느냐로 결정해요.

모든 사람들은 이 기준을 가지고 있어요.

이 기준은 자기 사랑으로 만들어진 것이에요.

 

나는 사랑 받아야 한다는 자기 기준에 미흡하기 때문에 하나님을 밉다고 하는 것입니다.

피조물이 자기 기준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저주에요.

왜냐하면! 이게 계속하여서 하나님이 하시는 일에 반기를 들기 때문입니다.

 

죄가 뭐냐?

자아가 살아 있는 거에요.

자기 생각을 갖는 것입니다.

자아가 자기 생각을 갖게 만든 겁니다.

 

자아가 자기 기준을 갖게 하여서 하나님이 하시는 일에 토를 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누구는 천국에 보내고, 누구는 지옥에 보내는 것을 부당하다고 하는 겁니다.

하나님이 애초에 천국에 갈 사람과 지옥에 갈 사람을 창조했어요.

이 두 사람을 가지고 뭔가 보여 주어야 할 일이 있어서 그렇게 만드셨어요.

 

그런데 죄인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요.

하나님은 모두를 구원하는 것이 아니고 어느 특정한 사람만 구원한단 말이에요.

그 특정한 사람 속에 자기가 속하지 않았다는 것을 아니까 뿔따구가 나는 것입니다.

그러니 하나님이 미운 겁니다.

 

그러자 하나님이 야! 임마!

지음을 받은 물건이 어떻게 자신을 지으신 분을 틀렸다고 말할 수가 있느냐!

이 놈이~ 아주 시건방지네!

그래서 지옥에 보내는 겁니다.

지옥 백성이기 때문에 시건방진 행동을 하는 것입니다.

 

피조물은 창조주를 논할 수가 없어요.

그런데 피조물이 자기 마음에 안 든다고 하나님 나빠요 라고 한단 말이에요.

하나님은 이걸 죄라고 해요.

 

가인이 그랬어요.

하나님! 어떻게 자기 제사는 거부하고 아벨의 제사만 받을 수 있어요.

하나님 참 나빠요.

그러자 하나님이 가인에게 그렇게 말하는 것은 네 속에 죄가 있어서 그런다고 했어요.

 

창조주의 깊으신 뜻도 모르고 자기 맘대로 판단하는 그것이 죄란 말이에요.

자기 맘대로 판단한다는 것은 자기가 곧 창조주란 말입니다.

이 얼마나 악한 것입니까.

이러면 하나님이 왜? 죄를 미워하는지 알겠지요.

 

하나님은 사랑을 드러내려고 미움도 만들었어요.



하나님은 천지라는 전혀 다른 두 세계를 창조했어요.

천지는 서로 하나 될 수가 없어요.

중간에 궁창을 만들어서 서로 왕래가 되지 않도록 하셨어요.

마치 천국과 지옥이 구렁이 끼어서 왕래 할 수가 없듯이 말이에요.

 

하나님은 천지를 가지고 뭔가 일을 하세요.

무슨 일인가 하면 분리하고 갈라내는 일을 하세요.

하나님이 창조한 세상은 항상 두 편으로 나누어지게 되어 있어요.

 

하나님이 이 세상에서 자기 백성을 구원하는 일은 모두가 창조에 속한 일이에요.

창조란? 어떤 근거로 말미암아 활동하는 것을 말해요.

근거가 언약이에요.

 

이 세상이라는 역사는 창세전 언약을 근거로 만들어졌어요.

하나님은 이 세상이라는 역사 속에서 언약에 관한 일들을 하시는 것입니다.

언약에 속한 사건들이 일어나게 되는 거에요.

 

언약이 뭔고 하니 세상에서 자기 백성을 찾아내서 예수의 피뿌림으로 구원하는 일이에요.

그러니까 세상에 속한 자와 속하지 않은 자로 갈라내는 일을 한단 말이에요.

이처럼 세상 역사는 가만있지 않고 언약에 따라서 어떤 사건들이 늘 일어나게 되어 있는 겁니다.

왜냐하면! 언약이 그 속에서 촉매가 되어서 역사 속에서 창조의 일을 하기 때문입니다.

역사 속에서 예수님 편과 예수님 받대 편으로 갈라지는 사건들이 일어난단 말이에요.



하나님은 언약을 위해서 만물을 창조 했잖아요.

그럼 이 세상에 속한 모든 것은 언약을 위하여 존재하는 것입니다.

이 세상은 언약의 도구들이에요.

이 세상을 움직이는 그 근거가 하나님의 언약입니다.

 

일월성신도 언약의 도구이고 천재지변도 언약의 도구입니다.

하늘에 속한 것도 언약의 도구이고 땅에 속한 것도 언약의 도구입니다.

천사들이나 권세들도 언약을 위하여 사용이 되어져요.

 

하나님께서 애굽을 징벌 할 때 하늘과 땅에 속한 모든 것을 가지고 사용하셨어요.

 

물로도 사용하시고,

개구리로도 사용하시고,

독종으로도 사용하시고,

흑암으로도 사용하시고,

죽고 사는 것으로도 사용하셨어요.

 

이처럼 하나님은 이 세상에 속한 모든 것들을 가지고 언약을 위하여 사용하고 있어요.

마귀도 언약을 위하여 사용하고!

천사도 언약을 위하여 사용하고 있어요.

 

절간에 스님도 언약을 위하여 사용하고!

무당도 언약을 위하여 사용하고!

목사도 언약을 위하여 사용하고 있어요.

 

바른 복음을 전하는 목사도 언약을 위하여 사용하고!

다른 복음을 전하는 목사도 언약을 위하여 사용하고 있어요.

우리가 흔히 말하는 이단들도 언약을 위하여 사용하고 있어요.

 

만물은 마치 어린이집에서 아이들이 가지고 노는 “은물”과 같아요.

은물이란? 교육을 위한 장난감 교제를 말합니다.

선생님은 장난감을 교제로 어린 아이들에게 무엇인가를 설명을 합니다.

그럼 어린아이는 장난감을 통해서 사실을 알아갑니다.

 

어린아이들이 그림책을 보잖아요.

그림책엔 그림만 가득해요.

그런데 아이들은 그 그림으로 내용을 이해합니다.

 

이 세상이 그림책과 같아요.

하나님의 언약을 알게 하는 시청각 교제에요.

우린 만물을 통해서 언약을 알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언약을 위해서 만물이 만들어졌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죄가 눈을 가려 버렸습니다.

죄가 눈을 가리고 나니 인간들은 만물을 통해서 언약을 보지 못하는 것입니다.

언약을 보지 못하고 나타나는 현상에만 눈이 고정 되어 있습니다.

 

나에게 일어나는 일들을 언약적인 관점으로 보지 않고 그저 나타나는 현상만 보는 거에요.

그러니 몸뚱이 따라서 울다가 웃다가 하는 겁니다.

몸뚱이가 편하면 하나님 고맙습니다!

몸뚱이가 불편하면 하나님 미워요! 그래요.

 

왜? 내 몸뚱이에서 이러한 일들이 일어나는지에 대하여서는 관심이 없어요.

몰라요.

내가 언약을 위하여 창조가 되었다는 것을 모르는데 어찌 알겠어요.

 

우리는 내가 왜? 무엇을 위해서 사는 지에는 관심이 없어요.

오로지 자기가 산다는 것에만 정신이 팔려 있습니다.

마치 어린아이들이 장난감을 가지고 뭔가를 알아가고 배워가야 하는데 그냥 장난감을 가지고 노는 데에만 정신을 파는 것과 같아요.

 

그런데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들에게 툭툭 간섭을 하십니다.

어떤 사건들을 일으켜서 관심을 가지게 하세요.

내가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궁구하게 하신단 말이에요.

우리 인생이라는 장난감을 가지고 뭔가를 알아 가게 하는 일을 하십니다.

 

하나님으로부터 간섭을 받은 성도는 사건을 통해서 하나님의 일하심을 배우게 되어요.

만물을 통해서 언약을 보게 되어요.

하나님의 일하심을 읽어낸단 말입니다.

 

성도는 하나님을 보는 촉을 가지고 있어요.

만물을 통해서 하나님의 일하심을 읽어내는 안목을 가졌단 말입니다.

그러니 성도는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통해서 하나님의 계시를 보게 되는 것입니다.

 

솔로몬은 백성들이 만물을 통해서 하나님을 볼 수 있는 안목을 달라고 기도를 했어요.

 

하나님 이 백성들이 보리밭에 깜부기 하나만 생겨도 하나님을 생각게 하시고!

메뚜기 한 마리가 뛰어도 하나님을 기억케 하시고!

이웃 나라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도 하나님을 찾게 해 달라고 했어요.

이는 만물을 통해서 하나님을 볼 수 있는 눈들을 달라고 기도한 겁니다.

 

솔로몬의 기도는 곧 예수님의 기도에요.

예수님이 지금 우리 안에서 이런 기도를 하고 계세요.

아버지! 이 놈들이 만물을 통해서 아버지의 일하심을 깨닫게 해 달라고 기도하고 계세요.

 

태풍이 온 나라를 강타해서 수많은 피해가 속출했습니다.

뉴스마다 태풍을 말합니다.

사람들은 태풍이라는 나타난 현상만 보고 있습니다.

그 누구도 태풍이 언약을 위한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한번은 예수님이 제자들과 갈릴리 바다를 배를 타고 항해합니다.

그런데 갑자기 태풍이 붑니다.

큰 파도가 일고 배에 물이 들어오자 제자들은 혼비백산합니다.

서로 소리치면서 빨리 물을 퍼 내라고 아우성입니다.

 

그런데 그 와중에 예수님은 천하태평으로 고물을 베고 주무십니다.

제자들 눈에는 잠을 자고 있는 예수님이 너무도 야속합니다.

어쩜 이런 상황에 잠이 오느냐고 궁시렁 거립니다.

 

보다 못해서 주무시는 예수님을 깨웁니다.

좋게 깨울 리가 있겠어요.

심정적으로 보면 아마도 발로 툭툭 치면서 깨웠을 것 같아요.

 

물도 뿌리면서 좀 일어나 보시지요!

지금 이 경황이 잠이 옵니까! 

참으로 대단하십니다!

어쩜 그렇게 무심합니까!

속으로 온갖 조소와 욕을 했을 겁니다.

 

잠에서 깨어난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묻습니다.

모르는 척 하시면서 왜~!

무슨 일이 있냐?

왜? 잘 자고 있는 사람을 깨우느냐고 합니다.

 

이에 제자들이 주둥이를 내밀고 실룩거리면서 이구동성으로 말합니다.

눈이 있으면 좀 보세요!

지금 태풍이 불어서 배에 물이 들어와 배가 가라앉게 생긴 것이 안 보입니까!

제자들의 몰골이 전부 물에 빠진 생쥐처럼 형편이 없습니다.

 

예수님은 전혀 미안한 기색이 없습니다.

적반하장 격으로 도리어 화를 내십니다.

에라이! 이 믿음 없는 놈들아!

그래 이런 태풍이 분다고 그 지랄들이냐! 지랄을~

헐~,,,



제자들이 할 말을 잃습니다.

예수님이 황당해 하는 제자들에게 일갈합니다.

너희들은 내가 누군지 그렇게도 모르겠니!

그 많은 기적을 보고서도 내가 하나님이라는 것을 모르겠느냐!

이 등신들아!

 

너희들이 알고 있는 하나님은 도대체 어떤 하나님이냐!

떡 주는 하나님이냐!

아니면 병 고쳐주는 하나님이냐!

 

나는 만물을 다스리는 하나님이다!

죽고 사는 것을 주관하는 하나님이란 말이다!

너희들이 정녕 나를 생명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이라는 것을 알았다면 태풍 앞에서 이렇게 지랄을 떨지 않았을 것이다!

너희들이 나를 모르니 나와 다니면서도 죽네 사네 한다는 겁니다.

 

그러면서 바람을 보고 꾸짖습니다!

바람아! 이제 그만 불어라!

그러자 금새 바람이 멎고 파도가 잔잔해집니다.

사납던 바다가 언제 그랬느냐는 식으로 평온합니다.

 

제자들은 서로 얼굴을 쳐다보면서 경악을 합니다.

헉~

세상에 우째 이런 일이 일어날 수가 있단 말인가!

그러면서 도대체 이 분이 뉘시길래 바람도 말을 듣는고!

 

그럼 묻습니다.

제자들에 타고 가는 배에 태풍이 왜? 불었을까요?

이는 제자들에게 예수님이 창조주라는 것을 알려 주시기 위해서입니다.

제자들은 태풍만 보였지 그 태풍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은 잊고 있었습니다.

무엇보다도 자기들과 함께 동행하고 계시는 예수님이 만물을 다스리시는 창조주 하나님이라는 것을 모르고 있습니다.

 

지금도 동일합니다.

우리도 제자들만큼이나 등신들입니다.

입술로는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이라고 하면서도 막상 그렇게 살지 않습니다.

 

여호와는 죽이기도 하시고 살리기도 하시고!

높이기도 하시고 낮추기도 하시고!

가난케도 하시고 부하게도 하시고!

아프게도 하시고 싸매기도 하시는 분이라고 기도는 멋들어지게 합니다.

 

그런데 막상 이러한 일들이 일어나면 죽겠다고 난리를 칩니다.

마치 예수님과 한 배를 타고 가는 제자들처럼 말이에요.

그러니 우리가 제자들을 욕할 처지가 아니에요.

도리어 제자를 통해서 나를 보아야 합니다.

 

우리는 예수를 믿는다고 하지만 실상에선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안 믿어요.

현실을 믿고!

상황을 믿고!

나타난 현상만 볼 줄 알았지 그 현상을 일으킨 하나님을 보지 못하고 있어요.

그러니 나타나는 현상만 보고 미친년 널뛰듯이 죽네 사네 하면서 난리를 치고 있는 것입니다.

 

바울은 만물 가운데 하나님을 알만 한 것들이 들어 있다고 했습니다.

그럼 우린 만물을 통해서 하나님을 보아야 하잖아요.

사건을 통해서 하나님의 간섭하심과 일하심을 읽어야 하잖아요.

하나님을 믿는 신자라고 한다면 말이에요.

 

그런데 우린 만물만 보고 사건만 보았지 하나님은 보지 못하고 있습니다.

내게 왜?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는 생각하지 못하고 있어요.

그래서 잠언에서는 미련한 놈은 절구에 넣고 공이로 찧어도 그 미련을 버리지 못한다고 했어요.

 

인류사에 있어 만고불변의 진리는 인간은 변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2천 년 전에 인간이나 지금 인간이나 한 치도 변함이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에 대하여 소경이라는 것엔 동일하다는 말입니다.

그러니 태풍을 통해서 하나님이 일을 하고 계신다는 것을 읽어 내지를 못하는 것입니다.

 

그럼 묻습니다.

태풍이 왜? 불었을까요?

우리는 이번 태풍을 통해서 무얼 보았나요?

어떤 생각을 했습니까?

 

어제 뉴스 시간에 완도에 계신 전복 양식하는 분과의 통화하는 내용이 나왔습니다.

전복 양식 어구가 전부 육지로 올라 왔다고 합니다.

앵커가 어부가 하는 말이 무슨 뜻인지 감(感)을 잡지 못합니다.

 

바다에 있어야 할 전복이 육지로 올라 왔어요!

전부 죽었다는 말이잖아요.

이젠 망했다는 말이에요.

피해액이 100억이 된답니다.

 

이번에는 화면이 내륙 지방을 보여줍니다.

과수원에 배와 사과가 전부 낙과 하였습니다.

내일 모래가 추석인데!

출하를 앞두고 있었는데!

하루아침에 날 벼락을 맞았습니다.

 

이번에 화면은 도시를 보여줍니다.

교회의 종탑이 무너집니다.

간판이 날아갑니다.

아파트에 창문이 통째로 깨어집니다.

 

가로수가 부러지고 뽑힙니다.

차량은 물에 잠기어 있습니다.

가옥은 침수가 되어서 난리입니다.

무너지고, 부서지고, 깨어지고, 넘어지고, 쓸어갑니다.

 

어떤 분은 컨테이너에 깔려 죽었고!

어떤 이는 옥상에 올라갔다가 바람에 날려서 떨어져 죽었고!

어떤 이는 부러진 가로수에 깔려서 죽었고!

어떤 이는 날아가는 간판에 맞아 죽었고!

어떤 이는 물에 빠져서 죽었습니다.

 

방송에서 며칠 전부터 태풍이 올라오니 준비를 철저히 하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현실은 참담합니다.

준비하고 대비한들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뻔히 눈을 뜨고도 태풍 앞에서는 어찌 할 수가 없습니다.

이게 인간의 한계이고!

이러한 일들이 일어나는 곳이 바로 우리가 몸 담고 살아가는 세상입니다.

 

이건 우리가 바라는 바가 아니에요.

그런데 원치 않는 일들이 일어났어요.

누가 일어나게 했는가요?

하나님입니다.



왜? 일으켰을까요?

그 속에 김 집사가 있고 박 장로가 있어서 그래요.

이 정 목사도 있어서 그래요.

우리가 어리석은 부자처럼 살고 있으니 훅~ 불어 버린 겁니다.

꿈 깨고 정신 차리라고!

네가 살 곳은 여기가 아니고 하늘이라는 것을 알려 주려고 말이에요.

 

세상은 그냥 하나님이 한번 훅 불면 날아갈 것들입니다.

오늘 밤 하나님이 오라고 하면 준비하고 대비하여도 갈 수밖에 없어요.

분명히 말합니다.

 

하나님이 지금이라도 오라고 하시면 살고 싶어도 살 수가 없습니다.

그냥 미련 없이 가야합니다.

마치 어리석은 부자처럼 곡간을 헐고 더 크게 짓고 제물을 쌓고 또 쌓아도 하나님께서 오라고 하면 쌓아 둔 것을 그대로 두고 가야할 인생이 바로 이 세상에 속한 것들입니다.

반대로 하나님이 살라고 하시면 죽고 싶어도 죽을 수가 없습니다.

 

제주도에서 중국 어선 두 척이 침몰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산 사람이 있고 죽은 사람이 있습니다.

5명이 죽고 12명이 살아났습니다.

 

동일한 상황 속에서 어떤 사람은 물 속에 빠져 죽는가 하면 어떤 사람은 살아납니다.

어째서 그럴까요?

하나는 하나님이 데리고 가셨고, 하나는 남겨 두신 겁니다.

 

홍해 바다를 건넙니다.

이스라엘도 홍해를 뛰어 들고, 애굽 사람도 뛰어 듭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은 살았고, 애굽은 몰살합니다.

왜? 그럴까요?

하나님이 그렇게 하셨어요.

 

환경은 중요치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어떤 환경이나 상황 속에서도 살아난 자가 있고 죽는 자가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살릴 자는 살리고 죽일 자는 죽인다는 거에요.

홍수 속에서도 살아 난 자들이 있는가 하면 죽은 자들이 있어요.

하나님이 어떤 이에겐 죽음으로 다가오고 어떤 이에겐 생명으로 다가옵니다.

 

어떤 이는 재앙에서 죽고, 어떤 이는 재앙에서 삽니다.

왜? 그럴까요?

모두가 언약 때문입니다.

언약이 그 위에서 활동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언약을 보면 죽는 자가 있고 사는 자가 있어요.

구원 받을 자가 있고 버려짐을 당할 자가 있어요.

두 사람이 매를 갈고 있어도 하나는 데려감을 당하고 한 사람은 버려짐을 당해요.

이게 언약의 내용이에요.

하나님은 이 언약을 바탕으로 일을 하세요.

그렇기 때문에 동일한 환경이나 상황 속에서도 산 자가 있는가 하면 죽는 자가 있는 것입니다.

 

어떤 이는 예수(언약) 때문에 죽고!

어떤 이는 예수(언약) 때문에 살아납니다.

어떤 이는 예수(언약) 때문에 천국에 가고!

어떤 이는 예수(언약) 때문에 지옥에 갑니다.

 

한쪽에서는 더워서 죽고!

한쪽에서는 추워서 죽고!

한쪽에서는 가물어서 죽고!

한 쪽에서는 홍수로 죽어갑니다.

이게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에 모습이에요.

 

결국 이 세상은 죽음이 넘실대는 “죽음의 바다” 라는 말입니다.

그런데 인간들은 모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더러 알려 주라고 합니다.

세상의 본질을 알려주라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성도를 세상에 남겨 둔 것은 이 사실을 알리기 위함입니다.

세상은 망하고!

인간은 반드시 죽게 된다고!

그러나 죽음이 끝이 아니고 그 후에 심판이 있음을 알려 주어야 합니다.

 

파수꾼은 사실을 전하면 됩니다.

보고 들은 것을 그대로 말하면 됩니다.

태풍이 오면 태풍이 온다고 알려주면 됩니다.

하나님이 장차 이 세상을 철거 한다는 것을 알려주면 됩니다.

 

세상이여!

태풍을 다스리는 하나님을 생각하라고!

망대가 무너져 사람이 깔려 죽었다고 애석해 할 것이 아니라 너희도 회개치 않으면 이와 같이 망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바람을 가지고 말을 하십니다.

애들아! 너희들 아무리 준비하고 대비한다고 하여도 소용이 없단다!

만물은 내 뜻대로 움직이고 있단다!

만물은 너희들 뜻대로 움직이지 않는단다!

 

그럼 성도라고 한다면 이러한 현실을 어떻게 받아 들여야 할까요?

일어나 머리를 들어야지요.

하늘을 보아야지요.

이 세상은 언약대로 망한다는 것을 알아야지요.

 

하나님은 언약을 위해서 태풍을 사용하십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태풍을 통해서 하나님의 일하심을 읽어내야 합니다.

태풍을 세상 사람과 다른 안목으로 보아야 합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데리고 가지 않고 세상에 남겨둔다고 하십니다.

그리고 세상에 보낸다고 합니다.

왜? 세상에 남겨 두십니까?

왜? 세상에 보냅니까?

 

세상은 하나님에 대하여 소경이니 세상에다 하나님을 알려주라고 남겨 두신 겁니다.

세상은 어둠입니다.

제자들은 빛에 속하였습니다.

 

빛을 어둠에 보냅니다.

땅에다 하늘을 보내는 거에요.

왜? 보낼까요?

너희는 어둠이라는 것을 알려주기 위해서입니다.

하늘이 있다고 알려 주기 위해서에요.

밝히 보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성도는 세상에 하늘나라로 사는 자들이에요.

하나님과 동행하면서 사는 자들이에요.

세상은 하나님 나라에 대하여 어둠이고 소경입니다.

 

그러니 성도가 세상에다가 하나님 나라를 알려주어야 합니다.

물론 세상은 성도의 말을 안 듣습니다.

그들을 설득하라고 남겨 둔 것이 아니고 실상을 고발키 위함입니다.

 

세상에 성도가 존재한다는 것 자체가 심판입니다.

고발입니다.

세상은 성도로 하여금 고발을 당하고 있는 것입니다.

 

고발한다는 것은 다름이란 말입니다.

다름으로 있을 때 고발이 됩니다.

그렇다고 한다면 성도는 세상을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세상 사람들과 다른 모습으로 살아야 하겠지요.

 

세상을 떠나는 모습으로 살아야 하겠지요.

출애굽 정신으로 살아야 합니다.

출애굽 정신으로 산다는 것은 장차 가야 할 곳을 지향하고 산다는 말입니다.

가야 할 곳을 소망하며 살아야 합니다.

가야 할 곳을 소망 하게 되면 현실에서 일어나는 일들은 넉넉히 이길 수가 있어요.

 

우리가 흙에 속하였을 땐 흙이 전부인줄 알았어요.

그런데 하늘로 옮기워지고 난 후 흙은 안개처럼 사라질 것이고 하늘이 실상임을 알게 되었어요.

새로운 눈을 갖게 되었습니다.

 

아담 안에 있을 땐 땅만 보였는데!

예수 안에 오고 난 후 하늘이 보이기 시작하였어요.

달려가는 방향이 달라졌습니다..

 

살아가는 의미가 달라졌어요.

아담 안에선 세상에서 살고자 살았는데!

예수 안에 들어와서는 세상에서 떠나고자 살게 됩니다.

 

구원이란? 영역이 이동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우린 모두가 아담 안에 있었어요.

죄와 사망 가운데 가두어져 있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우리를 덜렁 집어서 예수 안으로 옮겨 주셨습니다.

의와 생명으로 옮겨 주셨습니다.

어둠에서 빛으로 옮겨 주셨어요.

 

고물상에 가면 폐지를 줍는 크레인이 있습니다.

입이 불가사리같이 쩍 벌어져서 물건을 움켜쥐는 것 있잖아요.

보았지요.

 

이 크레인이 차에 실려진 폐지 중에서 한 움쿰 집어서 다른데 옮기잖아요.

아니면 쌓인 것 중에서 차로 옮기듯이 옮기잖아요.

폐지가 이쪽에서 저쪽으로 옮겨지는 것은 자기 의지와 상관이 없어요.

크레인이라는 강력한 힘에 의해서 옮겨졌어요.

 

구원이 이와 같아요.

우리는 폐지처럼 가만히 있는데 예수라는 크레인이 와서 우리를 보쌈을 해 가는 것입니다.

이걸 마귀 입장에선 강탈당하는 거에요.

 

예수님께서 우리를 세간살이로 비유했어요.

도적이 집안에 물건을 훔치려면 먼저 집 주인을 묶어 놓고 그 집 세간살이들을 가져간다고 하였잖아요.

 

지금 예수님이 마귀의 집에 도적으로 오셨어요.

마귀가 성도를 세간으로 붙잡아 두고 있는 것입니다.

마치 바로 왕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종으로 부리고 있는 것처럼 말이에요.

그래서 하나님이 재앙으로 바로를 혼 내고 자기 백성들을 끄집어내신 것입니다.

 

예수님이 마귀라는 집 주인을 결박을 하고 자기 백성들을 찾아 가는 것입니다.

이걸 전리품이라고 해요.

성도는 전리품이에요.

예수님이 전쟁에서 이기고 취한 물건이란 말입니다.

 

구원은 뭐냐?

예수님이 자기 백성을 찾아 가는 것입니다.

바로 입장에선 이스라엘을 강탈당하는 것과 같아요.

집안에 노예를 빼앗기는 것과 같아요.

 

아니 생각해 보세요.

이스라엘은 애굽에서 태어낳고,

애굽에서 교육받고 자랐고,

애굽에 것으로 먹고 입고 마시면서 살았어요.

바로가 공을 들여서 키워 놓았어요.

 

그런데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너희는 이리 나와 그런단 말입니다.

졸지에 이스라엘과 애굽인으로 갈라지는 일이 발생을 하고 만 것입니다.

이건 누구도 예상치 못한 일이에요.

이스라엘도 모르고 애굽인들도 몰랐어요.

그런데 하나님이 갈라내더란 말입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갈라낸 자들을 하나 되게 한다는 말이 나와요.

누구랑 하나 되게 하는가 하면,

예수님하고 하나 되게 하세요.

예수님이 하늘에서 왔지요.

 

그럼 예수님과 하나가 되는 사람은 누구입니까?

하늘에 속한 사람이겠지요.

하늘로서 난 사람은 예수님과 하나가 되어요.

 

쉽게 말할게요.

예수님이 하늘에 사람들을 끌어 당기는 자석으로 오셨어요.

자석 알지요.

쇠붙이를 붙이는 것 있잖아요.

 

저는 어렸을 때 이 자석 놀이를 많이 했어요.

자석을 모래 속으로 쓱~ 밀고 다니면 그 속에서 작은 쇠붙이들이 자석에 척척 달라붙어요.

옛날에 저희 집에 말굽자석이 있었어요.

바늘을 잃어버리면 그걸로 찾곤 했어요.

 

어머니가 눈이 어두워서 바늘을 곧잘 잃어버리곤 했어요.

호롱불 아래서 바늘을 잃어버리면 찾기 힘들어요.

그럼 자석으로 방 바닥을 쑤윽~ 훑으면 바늘이 척~ 하고 달라붙어요.

 

지금 예수님이 하늘에서 말굽자석처럼 오셨어요.

왜? 오셨는가 하면 하늘에 사람들을 찾기 위해서에요.

예수님이 사람들 곁으로 쓰윽~ 지나가면 하늘에 속한 사람들이 자기 의지와 상관없이 끌려가요.

자석의 힘이 쇠붙이를 끌어당기듯이 예수님이 자기 백성들을 끌어 당겨요.

 

예수님이 자신이 십자가에 죽는 것을 놋뱀 사건으로 비유했잖아요.

자신이 높이 달리면 자기 백성들을 하늘로 이끈다고!

이끈다는 말이 자석처럼 끌어당기는 거에요.

그럼 자기 백성들은 자석에 붙어 버리는 쇠붙이처럼 예수님에게 붙어 버려요.

이걸 하나 됨이라고 해요.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언약을 하시지요.

네 후손이 바다의 모래같이 많고, 하늘에 별과 같이 많을 것이라고 하잖아요.

모래는 땅에 속한 것이고,

별은 하늘에 속한 것이에요.

이는 곧 땅에 속한 자들도 있고, 하늘에 속한 자들도 있다는 말입니다.

 

이스마엘을 땅에 속하였고,

이삭은 하늘에 속하였어요.

그러니 이스마엘은 바다의 모래 같은 후손들을 낳아서 한 민족을 이루고!

이삭은 하늘에 별과 같은 후손들을 낳아서 한 민족을 이루게 됩니다.

 

아브라함의 집안은 온 세상의 축소판과 같아요.

이 세상에 두 민족이 있어요.

바다의 모래 같은 자들과,

하늘에 별과 같은 자들이 있어요.

 

자 이렇게 이해하세요.

보이는 것은 보이지 않는 것으로부터 나왔다고 했지요.

보이는 것은 역사이고,

보이지 않는 것은 묵시라고 합니다.

 

그러니 역사는 묵시로부터 나왔잖아요.

묵시는 안 보이고,

역사는 보여요.

그러니까 보이는 이 역사 위에 묵시가 있어요.

 

마치 우리 머리 위에 묵시가 천정처럼 떡하니 내려다보고 있어요.

묵시는 우리가 하는 모든 일을 보고 있어요.

역사는 묵시를 벗어 날수가 없어요.

그 아래서 움직여요.

 

묵시는 고정되어 있고,

역사는 시작과 끝이 있어요.

역사는 미완성으로서 강물처럼 흘러가요.

마치 낙동강처럼 흘려요.

편의상 낙동강을 역사라고 합시다.

 

낙동강 위에 묵시가 고정이 되어 있어요.

묵시가 하늘에 떠 있는 태양처럼 낙동강 700리를 훤히 보고 있어요.

무슨 일을 하는지 다 알아요.

이처럼 묵시가 하늘에서 자기 아래로 흐르는 낙동강이라는 역사를 다 보고 있어요.

 

묵시 속에 누가 계신가 하면 예수님이 계세요.

그 아래로 역사가 흐르는데 그 속에 두 백성이 흐르고 있는 겁니다.

하늘에 별과 같이 하늘에 속한 자들도 있고!

바다의 모래와 같이 땅에 속한 자들이 함께 살고 있어요.

마치 애굽이라는 나라에 이스라엘과 애굽인들이 섞여서 함께 살고 있는 것과 같아요.

 

예수님이 십자가라는 작대기 하나 들고서 흘러가는 낙동강 물줄기 속에서 자기 백성과 자기 백성 아닌 자들을 둘로 갈라내는 것입니다.

너희와 저희로 갈라내는 일을 하세요.

 

이건 마치 창세기 1장을 보면 하나님이 만드신 세상이 혼동과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그 위에 하나님의 신이 운행하시는 것과 같아요.

운행을 하신다는 말은 살핀다는 말이에요.

 

위에서 간섭을 하신단 말입니다.

낙동강이라는 역사가 흐르고 있는데,

예수님이 그 위에 묵시로서 고정이 되어서 흘러가는 인간들을 이리 저리 간섭을 하시는 것입니다.

 

간섭을 한다는 말은 편 가르기를 한다는 말이에요.

한 쪽은 예수 편에 세우고, 한 쪽은 그냥 그대로 두는 겁니다.

한군데 섞여 있다가 어떤 사람들을 한쪽으로 쓰윽~ 갈라 놓는 것입니다.

 

마치 재활용품을 분리수거 하여 같은 것끼리 모으듯이 하고 있어요.

하늘에 속한 자들은 하늘에 속한 자들끼리 모으고!

땅에 속한 자들은 땅에 속한 자들끼리 모아요.

 

모인 자들끼리는 통해요.

대화가 되어요.

그러니 자기들끼리 모이게 되는 것입니다.

한쪽으로 갈라진 자들을 예수님의 피로 범벅을 하여서 하나로 만드는 겁니다.

이걸 예수 안에서 하나 됨이라고 합니다.

 

쉬운 예로 들게요.

강냉이 뻥튀기 있지요.

강냉이 위에다 엿 조청을확 붓습니다.

그럼 강냉이 하나 하나가 조청으로 범벅이 되어요.

 

그럼 이 놈들이 서로 끌어 당겨요.

슬금슬금 한 덩어리가 되어요.

그리곤 척 달라붙어서 떨어지지 않고 하나가 되는 겁니다.

이걸 하나 됨이라고 합니다.

 

과거에 명절이 되면 강냉이를 뻥튀기해서 엿 조청에다 범벅을 해서 과자를 만들어 먹었잖아요.

그 만드는 과정처럼 예수님이 자기 백성들을 자기 피로 범벅을 해서 한 뭉텅이로 만드는 겁니다.

예수님이 자기 백성들을 강냉이 뻥튀기 한 것을 엿 조청에 범벅을 해서 손으로 꾹꾹 눌러서 동그랗게 한 덩어리를 만드는 것처럼 한 덩어리로 만드는 겁니다.



이걸 오늘 본문에서 예수 안에서 하나 됨이라고 합니다. 

예수님의 피가 엿 조청처럼 자기 백성들을 범벅을 해요.

그럼 예수의 피로 범벅이 된 자들끼리 모여요.

그리곤 우리 형제 아이가 그런단 말이에요.

 

이걸 그리스도의 몸이라고도 하고 교회라고도 해요.

교회는 예수의 피로 범벅이 된 자들이 모이는 곳이에요.

그래서 예수 안에서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예수 안에서 하나 된 자들은 세상에 속하지 않는 자들이 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예수님이 기도하지요.



누구를 위하여 기도합니까?

예수의 피로 하나 된 자들을 위해서 기도합니다.

자기 백성들을 위하여 기도하잖아요.

 

왜? 기도합니까?

이들은 세상에 속하지 아니하였기 때문에 세상으로부터 핍박을 당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세상으로부터 핍박을 당하더라도 삐지거나 넘어지지 말고 아버지가 끝까지 잘 보호해 달라는 것입니다.

 

이들이 세상과 타협하지 않고 살게 해 달라고 기도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걸 오늘 본문에서 악에 빠지지 않게 보존 해 달라고 합니다.

우리가 이만큼이라도 예수를 믿고 있는 것은 우리가 믿음이 좋아서가 아니에요.

모두가 예수님이 기도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예수님의 기도를 들으시고 예수를 믿게 하시고 있기 때문이에요.

 

분명히 환경적으로 보면 예수 믿지 말고 교회 밖으로 도망을 갈 법 한데도 지금 이나마 이렇게 버티고 있는 것은 모두가 하나님이 우리를 붙잡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성도는 예수 안 믿는 것이 예수 믿는 것보다 더 힘들어요.

예수 안 믿기가 안 되어요.

차라리 예수 믿는 것이 나아요.

 

교회 안 오는 것보다 교회 오는 것이 나아요.

성도라고 하면서 교회보다 세상이 좋다고 한다면 그 신앙은 가짜에요.

그가 안다고 하는 복음이 관념일수가 있어요.

가짜이고 관념이기 때문에 교회보다 세상이 더 좋은 것입니다.

 

유유상종이에요.

하나님은 같은 것끼리 모으세요.

하늘에 속한 자는 교회로 모으고!

땅에 속한 자는 세상으로 모아요.

 

이런 말을 하면 어떤 분들은 자기는 복음을 알고 예수를 믿기 때문에 확신이 있다고 해요.

여러분 인간의 확신은 믿을 것이 못 되어요.

바리새인들은 너무도 확신이 강했어요.

 

자기들은 하나님 백성이라고 믿었어요.

자기들은 반드시 천국에 갈 것이라 믿었어요.

그 누구도 그들의 확신을 의심하지 않았어요.

 

그런데 예수님이 지옥에 보냈어요.

이들이 확신이 없어서 지옥에 간 것이 아니에요.

예수님이 인정하는 믿음이 아니고!

예수님이 주신 확신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이단들을 보세요.

신0지를 보세요.

이00가 예수라고 하는데도 그걸 믿어요.

자기들은 죽지 않고 영생 한다고 믿어요.

과천에 새 예루살렘이 세워진다고 믿어요.

확신이 대단해요.

 

하나님은 확신 보고 구원해 주시지 않아요.

 

예수님이 주신 믿음은 교회로 모이지 세상으로 모이지 않아요.

예수님이 주신 확신은 날마다 자기를 부인하고 죽이지 일락을 쫓아가지 않아요.

복음 안다고 하면서 교회의 모임을 등한시 하는 것은 복음을 자기 사욕을 좇는데 이용하는 것이에요.

그런 복음은 없어요.

그러니 확신 좋아하지 마세요.

 

우리가 어디에 속하여 있느냐를 보세요.

내가 하늘에 속하였으면 하늘에 속한 자들과 하나 되게 되어 있어요.

이건 자연적인 현상이에요.

말로는 하늘에 속하였다고 하면서 하늘에 속한 자들과 함께 있지 않고, 땅에 속한 자들과 하나 되어 세상에 놀고 있으면 그건 아니지요.

 

예수님이 무슨 기도를 합니까?

이들이 세상에 속하지 아니 하였다고 하지요.

그러니 세상에 빠지지 말게 해 달라고 기도하고 있잖아요.

하나 되게 해 달라고 하잖아요.

그럼 예수님에 백성이라고 한다면 세상과 분리되어 있어야지요.

하늘나라 백성들과 뻥튀기한 강냉이처럼 엿으로 범벅이 되어서 하나로 뭉쳐져 있어야지요.

 

분명히 말합니다.

예수님은 자기 백성들을 날마다 출애굽을 시켜요.

세상에서 빼내요.

 

세상과 다른 곳이 교회에요.

교회는 묵시에 속한 곳이에요.

교회는 누가 모이는가 하면 하늘에 속한 자들이 모이는 곳이에요.

 

교회에 모임을 천국이라고 해요.

교회는 죄와 사망으로부터 벗어난 자들이 안식하는 곳이에요.

역사를 출애굽한 엿새를 지나고 온 자들이 묵시라는 일곱째 날로 모이는 곳이에요.

 

그러니 일곱째 날에 속한 자들은 교회로 모이고 싶어해요.

오순절 성령이 임하자 날마다 모이잖아요.

묵시 안에서 유유상종으로 모이잖아요.

하나님이 유유상종으로 모이게 하세요.

 

하나님은 분리하세요.

 

세상을 살아가는 삶도 세상 사람들과 다르게 분리하세요.

이방인의 풍습을 쫓지 말라고 하세요.

그것은 지나간 때가 족하다고 하세요.

 

이젠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심을 입었기 때문에 이방인들처럼 살지 말라고 간섭하는 것입니다.

우리기 이만큼이라도 세상 사람들과 다른 하늘나라 생각으로 다른 모습으로 살아가는 것도 하나님이 간섭을 하셨기 때문이에요.

우리의 원함대로 간섭하지 않고 하나님의 원함으로 간섭을 하셨기 때문에 이 좋은 날 세상 사람들과 놀러 가지 않고 교회에 와서 말씀을 듣고 있는 것입니다.

 

인간은 하나님의 뜻을 몰라요.

모를 정도가 아니라 아예 어긋나 있어요.

반대로 생각한단 말입니다.

 

하나님은 죽이고자 다가오는데 우리는 잘 살게 해 주세요 라고 합니다.

이런 사고로 하나님을 섬긴 민족이 바로 이스라엘이에요.

구약 이스라엘은 자기들은 하나님의 백성이기 때문에 이 세상에서 강대국이 되어서 길이 살아남아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그것이 하나님 뜻인 줄 알았어요.

 

그런데 하나님은 이와 반대로 말씀하세요.

너희들은 이 세상에 분깃이 없고 하늘에 있다고 합니다.

아브라함은 약속의 땅으로 불러내고서는 내가 너에게 준다고 한 땅은 여기에 없고 하늘에 있다고 합니다.

 

그리고는 아브라함을 나그네 생활을 하게 합니다.

아브람 입장에선 완전히 망한 거에요.

아버지 집에 있으면 호의호식하고 살 수 있었어요.

등 따습고 배 부르게 살 수가 있었단 말입니다.

 

하나님을 머리로만 믿는 일이라고 한다면 구태여 가나안까지 올 필요가 없어요.

그냥 갈대아 우르에서 믿으면 되니까요.

아버지 집에서 믿으면 되잖아요.

그런데 하나님은 아브람에게 부모 친척 아비 집을 떠나라고 합니다.

이건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은 머리로 믿는 것이 아니고 몸으로 경험하는 것이란 말입니다.

 

아브람은 여기 보다 더 좋은 세상이 있는 줄 알고 따라 나왔어요.

인간의 본성상 더 나은 것이 아니면 안 따라가요.

그러니까 아브람도 하나님 따라 가면 좋은 세상이 있다고 생각한 겁니다.

하나님이 아브람에게 네 후손을 바다의 모래처럼 많게 해 주고 하늘에 별 같이 많게 해 준다고 하니 얼마나 마음이 설레었겠어요.

 

당시에 자식이 많다는 것은 최고의 복이었어요.

그런데 그 자식을 바다의 모래같이 많게 해 주고 하늘에 별과 같이 많게 해 준다고 하잖아요.

그러니 얼마나 기대가 되겠어요.

 

그런데 막상 가나안 땅에 오니 하나님이 땅도 안 주고 자식도 안 주는 겁니다.

아브라함이 왜? 안주느냐고 물으니 네가 살 땅은 여기에 없고 하늘에 있다고 합니다.

그리고 네 후손도 하늘에 있다고 합니다.

네 후손은 네가 낳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이 나아주겠다고 합니다.

이런 황당할 때가 있나요.

 

땅도 하늘에 있고 후손도 하늘에 있대요.

후손이 하늘에 있다는 말은 하늘에 방식으로 준다는 말입니다.

하늘에 방식이 뭔고 하니 약속이에요.

하나님께서 이 세상에서 하시는 일을 모두가 이 약속을 근거로 하세요.

 

약속을 믿게 하려고 믿음을 주셨어요.

믿음을 받으면 보이는 것을 쫓아가지 않고 보이지 않는 것을 쫓아가게 되어 있어요.

믿음은 하늘에 것을 소망하게 되어 있어요.

 

그러니 믿음이 오면 땅에서 잘 되는 것이 아니고 망하게 되는 것입니다.

땅에 것이 무너지게 하세요.

이게 아브라함 후손들의 운명이에요.

구약 이스라엘의 역사에요.

 

유대인들은 어떻게 하든지 이 세상에서 유대나라를 부국강성하게 하기를 바랐어요.

그것도 하나님 힘을 빌려서 말이에요.

이건 언약에 없는 내용이에요.

 

이걸 지금 우리에게 적용해 봅니다.

우린 예수를 믿고 세상에서 잘 살고 싶어해요.

그래서 눈만 뜨면 예수 잘 믿어 줄 테니 세상 것을 달라고 합니다.

 

그러나 언약을 보면 세상에서 잘 된다는 것이 없어요.

도리어 세상을 떠나게 한다고 되어 있어요.

언약 속에는 일곱째 날에 교회에 모이라고 되어 있어요. 

그러니 교회에 모이지 않고 놀러 다닌다는 것은 그 사람은 일곱째 날에 속한 사람이 아니란 말이에요.

엿새 속에 속하였기 때문에 세상에서 놀고 있는 겁니다.

 

우리가 예수를 믿는다고 하면서 언약의 후손들이 모이는 교회의 모임보다 세상 사람들과 세상에서 노는 것을 좋아한다는 것은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이용해서 로마로부터 벗어나고자 독립운동을 하는 것과 똑 같아요.

유대인들이 로마로부터 독립하고자 한 것은 결국 세상에 정착하겠다는 말입니다.

세상이 좋기 때문에 세상에 뿌리를 내리고자 하는 것입니다.

 

그러자 예수님이 찬물을 끼얹는 소리를 하고 있습니다.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라고 해 버립니다.

그러자 유대인들이 뿔따구가 나서 예수를 죽여 버립니다.

 

구약 이스라엘은 약속의 후손들을 보여주는 그림자에요.

이걸 기능적 이스라엘이라고 해요.

이것은 어떤 것을 보여주시기 위하여 사용을 하신다는 말입니다.

마치 어린이 집에 있는 은물과 같아요.

 

그럼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은 어떤 역할을 맡기셨는가요.

하나님의 아들 역할을 맡긴 거에요.

그래서 이스라엘을 내 아들이라고 합니다.

 

출애굽기 4장을 봅시다.

 

출 4:21-23=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네가 애굽으로 돌아가거든 내가 네 손에 준 이적을 바로 앞에서 다 행하라 그러나 내가 그의 마음을 강퍅케 한즉 그가 백성을 놓지 아니하리니 22 너는 바로에게 이르기를 여호와의 말씀에 이스라엘은 내 아들, 내 장자라! 23 내가 네게 이르기를 내 아들을 놓아서 나를 섬기게 하라 하여도 네가 놓기를 거절하니 내가 네 아들 네 장자를 죽이리라 하셨다 하라 하시니라”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내 아들” 이라고 하지요.

그것도 “내 장자” 라고 하잖아요.

지금 하나님이 모세를 바로에게 보냈어요.

 

모세가 바로에게 갑니다.

바로가 모세에게 넌 누구냐! 라고 묻습니다.

그러자 모세가 여호와가 보내서 왔다고 합니다.

 

여호와가 자기 아들을 찾아오라고 했다고 합니다.

그러자 바로가 모세를 아래 위로 쭉 훑어보더니 야~ 어디서 거지 깽깽이 같은 놈이 와서 헛 소리를 한다고 죽이고자 합니다.

 

이에 모세가 너 내 말 안 들으면 혼 난다!

내 말 안 들으면 너희 애굽에 장자들이 다 죽는다!

그러니 좋은 말 할 때 들으라고 합니다.

나중에 후회하지 말고!

 

바로가 기가 찬 겁니다.

그래서 이 놈이 어디서 헛 소리를 하느냐고 죽이고자 하니 모세가 지팡이로 기적을 행합니다.

바로가 모세를 보고 어쭈구리~

이 놈 봐라!

제법인데!

 

그러면서 바로가 애굽에 술사들을 불러서 야! 너희들도 기적을 행해 봐!

그러자 애굽에 술사들이 기적을 행합니다.

이에 모세가 기적의 강도를 더 높입니다.

그러자 애굽에 술사들이 전하(殿下) 이 놈은 보통 놈이 아닙니다!

우리가 못 이기겠습니다!

 

바로가 벌레 씹은 얼굴로 모세에게 묻습니다.

뭘 원하는데!

아! 글쎄! 하나님 아들을 내어 놓으라니까!

그들이 누구인데!

이스라엘!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장자야!

 

이스라엘이 출애굽 하는 것은 이 세상을 떠나는 것의 모형이에요.

물론 출애굽 속에는 다양한 영적 의미가 있어요.

그러나 이스라엘의 출애굽은 성도가 죄악 된 세상을 떠나는 것의 모형을 담고 있어요.

 

그럼 유대인도 출애굽을 당하게 되어 있어요.

세상으로부터 떠남을 요구받게 된단 말입니다.

그런데 유대인들은 로마로부터 벗어나 독자적인 나라를 세우고 싶은 겁니다.

이건 출애굽이 아니라 그냥 애굽에 있는 거에요.

그래서 하나님은 유대인들을 온 세계에 흩어버린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속에 하나님의 아들에 모습들을 담아 놓았어요.

 

이스라엘은 하나님 아들 역할을 하고 있는 겁니다.

그럼 이 시대 하나님 아들이 누구인가요?

성도들이에요.

그렇다고 하면 성도들도 이 세상으로부터 떠나는 삶을 요구받게 되겠지요.

망하게 되어 있어요.

 

성도는 세상에서 망해야 되요.

흥하면 안 되어요.

여기서 흥한다! 망한다! 라는 개념은 돈이 많고 적음의 이야기가 아니에요.

이 세상을 어떻게 보느냐 에요.

어떤 정신으로 세상을 사느냐를 묻고 있는 것입니다.

 

돈이 많아도 세상을 떠나는 자세로 살면 그 사람은 망하는 삶을 살고 있는 것이고!

돈이 없어 가난하게 살아도 세상에 미련을 두고 산다면 그 사람은 흥하는 삶을 살고 있는 것이에요.

하늘에 소망을 두고 살면 망한 자이고, 땅에 소망을 두면 흥한 자에요.

물질적 가치가 아니라 영적 가치로 말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 아들이라고 했지요.

하나님 아들을 보여주는 모형이라고 했지요.

그런데 이들이 세상에서 흥하는 삶을 살지 못하고 망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이건 하나님 아들은 망하게 되어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이걸 예수님에게 적용해 봅시다.

 

진짜 하나님 아들은 누구입니까?

예수님이지요.

그렇다고 한다면 이스라엘 속에는 예수님의 모습이 담겨져 있겠지요.

 

그럼 묻습니다.

구약 이스라엘이 흥했습니까?

망했습니까?

망했지요.

 

왜? 망했나요?

그건 예수님이 망하게 되어 있기 때문이에요.

이스라엘은 예수님의 모습으로 연기를 해야 해요.

 

이스라엘의 망함은 하나님의 아들이 이 세상에서 망한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는 겁니다.

하나님 아들이 누구라고 했나요?

예수님이지요.

물론 성도도 포함되어 있어요.

 

그럼 예수님이 이 세상에서의 모습이 어떠할까요?

흥하는 자의 모습일까요?

망하는 자의 모습일까요?

망하는 자로 있겠지요.

 

그래요.

예수님은 이 세상에서 망하는 모습으로 살았어요.

죽임 당했어요.

그것도 자기 백성이라고 하는 자들의 손에 말이에요.

 

어째서 그런가요?

이게 창세전 언약이 그렇게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창세전 언약은 아들의 피로서 자기 백성이 구원받는 이야기로 되어 있습니다.

 

구원 받는다는 것은 용서 받는 다는 말입니다.

용서가 되려면 원수로 있어야 하겠지요.

원수가 되려면 은혜를 원수로 갚아야 하잖아요.

 

맞아요.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은혜로 부르셨어요.

아브라함 후손들이 이스라엘입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으로부터 은혜를 입은 민족이에요.

그런데 이 놈들은 틈만 나면 하나님을 배도했어요.

이게 사사기에요.

 

사사기를 보세요.

늘 배도하는 역사이잖아요.

아주 징그러워요.

우리가 그래요.

아주 징그러운 놈들이에요.

 

이방인들은 자기 신을 배도하지 않았어요.

의리를 지켰어요.

그러나 이스라엘을 툭 하면 자기 신을 배도했어요.

우상을 섬겼어요.

 

툭 하면 자기들이 섬기는 신인 하나님을 떠나잖아요.

이방인들이 보아도 이스라엘을 참으로 나쁜 인간들이에요.

이런 놈들은 당연히 지옥에 가야해요.

그런데 이런 나쁜 인간들에게 하나님이 용서가 주어져요.

하나님의 사랑이 부어져요.

 

이방인 입장에선 반칙인 거에요.

왜? 지옥에 안 보내고 천국에 보내느냐고!

그래서 하나님에게 데모 합니다.

왜? 우리에겐 용서 안 해주고 저들에게만 해 주느냐고 따집니다.

이에 하나님이 그건 내 맘이라고 합니다.

 

이스라엘이 이런 모습을 보니 자기들이 엄청난 은혜를 입었다는 것을 알게 된 겁니다.

그래서 천국에서 주여 감사합니다 라고 어린양에게 찬송을 드리는 것입니다.

이렇게 황감 할 때가 어디에 있느냐 라고 하면서!

하루 이틀도 아니고 세세토록 말이에요.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말입니다.

 

이 모두가 창세전 언약에 담겨 있는 거에요.

창세전 언약을 보면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배도하게 되어 있어요.

하나님의 언약을 어기게 되어 있어요.

 

그리고 멸망당해요.

죽어요.

하나님은 멸망당한 자들에게 은혜를 쏟아 부어요.

죽은 자에게 생명을 주신단 말입니다.

 

신명기 31장과 레위기 26장을 이어서 봅시다.

 

신 31:20-22= “내가 그들의 열조에게 맹세한 바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그들을 인도하여 들인 후에 그들이 먹어 배부르고 살지면 돌이켜 다른 신들을 섬기며 나를 멸시하여 내 언약을 어기리니 21 그들이 재앙과 환난을 당할 때에 그들의 자손이 부르기를 잊지 아니한 이 노래가 그들 앞에 증인처럼 되리라 나는 내가 맹세한 땅으로 그들을 인도하여 들이기 전 오늘날에 나는 그들의 상상하는 바를 아노라 22 모세가 당일에 이 노래를 써서 이스라엘 자손에게 가르쳤더라“

 

레위기 26장을 봅시다.

 

레위기 26:40-46= “그들이 자기 죄와 그 열조의 죄와 및 그들이 나를 거스린 허물을 자복하고 또 자기들이 나를 대항하였으므로 41 나도 그들을 대항하여 그 대적의 땅으로 끌어 갔음을 깨닫고 그 할례 받지 아니한 마음이 낮아져서 그 죄악의 형벌을 순히 받으면 42 내가 야곱과 맺은 내 언약과 이삭과 맺은 내 언약을 생각하며 아브라함과 맺은 내 언약을 생각하고 그 땅을 권고하리라 43 그들이 나의 법도를 싫어하며 나의 규례를 멸시하였으므로 그 땅을 떠나서 사람이 없을 때에 땅이 황폐하여 안식을 누릴 것이요 그들은 자기 죄악으로 형벌을 순히 받으리라 44 그런즉 그들이 대적의 땅에 거할 때에 내가 싫어 버리지 아니하며, 미워하지 아니하며, 아주 멸하지 아니하여 나의 그들과 세운 언약을 폐하지 아니하리니 나는 여호와 그들의 하나님이 됨이라 45 내가 그들의 하나님이 되기 위하여 열방의 목전에 애굽에서 인도하여 낸 그들의 열조와 맺은 언약을 그들을 위하여 기억하리라 나는 여호와니라 46 이상은 여호와께서 시내산에서 자기와 이스라엘 자손 사이에 모세로 세우신 규례와 법도와 율법이니라”

 

모세가 지금 예언을 하고 있어요.

좋은 예언이 아니고 아주 흉한 예언을 하고 있어요.

망한다는 예언이에요.

 

너희들은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등따습고 배가 부르면 하나님 언약을 어길 것이라고 합니다.

그럼 말 할 수 없는 재앙과 환란을 당하게 되고 그 땅에서 쫓겨나서 만민 중에서 흩어지게 된다고 합니다. 

그럼 이스라엘은 망하고 이방에 객이 되어서 자신들의 잘못을 깨닫게 회개하게 된다고 합니다.


아! 우리가 하나님의 언약을 잊고 살았구나!

비로서 하나님을 기억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럼 하나님은 그들을 용서 하세요.

 

이게 언약이에요.

언약 속을 보면 하나님의 백성이 은혜를 입어 놓고서는 하나님을 배도해요.

그럼 하나님은 멸망을 시켜요.

죽여 버린단 말이에요.

 

그리고 죽은 자들 위에 자비의 손길을 내 밀고 살려내세요.

이게 창세전 언약이 담고 있는 내용이고 모세가 시내 산에서 받은 언약이에요.

그래서 구약의 이스라엘은 세상에서 망하는 역사를 가지게 되는 것입니다.

 

구약 이스라엘은 신약의 성도를 상징해요.

 

성도도 이스라엘처럼 망하게 되어 있어요.

언약 안에 머무는 것이 아니고 언약을 어기게 되어요.

무슨 말인고 하니 예수 안 믿고 자기 힘 믿고 산다는 말이에요.

예수의 피를 믿지 않고 자기 행위를 믿는단 말이에요.

 

우리 몸뚱이는 언약을 담아내지를 못해요.

왜냐하면! 우리 몸이 죄 아래 팔린 몸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언약은 우리 몸이 죄 아래 가두어져 있다는 것을 고발하는 식으로 일을 해요.

 

언약이 겨냥하는 것은 예수님의 죽음 안으로 우리를 가두는 것이에요.

우리가 예수를 죽였다는 것을 알게 하신단 말입니다.

내가 언약을 지킬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나는 죄인이고 예수님의 피로 용서 받을 수 밖에 없다는 것을 알게 되어 있어요.

 

그러므로 하나님으로부터 은혜를 많이 받으면 받을수록 자기가 죄인임을 깊이 알아가요.

하나님 뜻대로 살 수 없는 인간이라는 것을 절감하게 되어요.

자기가 죄인임을 절감 하면 할수록 예수님의 피 흘리심으로 용서 받고 산다는 것에 감사가 더해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은혜를 많아 받은 사람일수록 할 말이 없어지고 감사를 많이 하게 되는 것입니다.

 

천국에 누가 가느냐 하면 용서 받은 자들이 가요.

자기가 하나님의 원수라는 것을 아는 자들이 가요.

내가 예수를 죽인 자라는 것을 아는 자들이 가요.

 

아까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아들에 기능을 맡은 자들이라고 했지요.

이스라엘이 망했다는 것은 하나님의 아들이 이 세상에서의 모습이 망하는 모습으로 주어졌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고 장자에요.

예수님이 망했어요.

그럼 예수 안에 있는 자들도 망하게 되어 있어요.

 

세상에서 망한다는 말은 세상에 분깃이 없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은 언약 백성들에게는 이 세상의 분깃이 없도록 하셨습니다.

그래서 구약 이스라엘은 망하는 역사로 이루어진 것입니다.

 

이게 엄청 중요해요.

이스라엘의 이 세상에 역사는 반드시 망해야 해요.

흥하면 안 되어요.

망한 자들에게 하나님 나라가 침범해 오는 거에요.

 

그래서 구약 이스라엘이 로마에게 망했을 때 예수님이 오신 겁니다.

이스라엘이 망한 상태에서 예수님이 오신 것은 하나의 예표적인 사건이에요.

무슨 예표인가 하면 예수님은 죽은 자를 살리러 오신다는 예표에요.

 

예수님이 죽은 자를 살리려면 자기 백성들은 죽어 있어야 해요.

망해 있어야 한단 말입니다.

그래야 예수님이 오셔서 살려내는 일을 하세요.

 

죽은 자에게 생명을 주는 일을 하신단 말입니다.

죽은 자에게 자신의 생명을 주어서 자기 안으로 끌어 당겨요.

이걸 하나 됨이라고 합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몇 가지 유의하여 보아야 할 말씀들이 있습니다.

 

“예수 안”이라는 말씀과,

“하나 됨” 이라는 말씀과,

“세상으로 보낸다” 는 말씀이 나옵니다.

 

예수님은 먼저 아버지께서 내 안에 있고 내가 또한 아버지 안에 있다고 합니다.

이렇게 안에 거하는 것을 하나 됨이라고 합니다.

예수님이 왜? 오셨는가 하면 하나 되게 하려고 오셨어요.

 

죄인을 일컬어 두 마음을 품은 자들이라고 하지요.

원래 인간은 죄를 짓기 전에는 하나님과 한 마음으로 살았어요.

그런데 죄가 들어오면서 두 마음이 생기고 만 것입니다.

 

자기 마음을 갖게 된 거에요.

이걸 하나님 같이 되었다고 합니다.

독자적인 생각을 갖게 된 것입니다.

 

선악과를 먹고 자아가 생기자 하나님의 마음과 충돌이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죄가 독자적인 마음을 가지고 살게 한단 말이에요.

하나님을 떠나 스스로 하나님이 되고 만 것입니다.

 

뱀이 하와에게 너 선악과 먹으면 하나님 같이 된다고 하였잖아요.

하와가 선악과를 먹고 하나님 같이 되었어요.

자기 마음을 가지게 되었어요.

 

자기 마음을 가지게 되니 자기 마음대로 판단하고 심판하는 일을 하게 되는 겁니다.

이게 바로 왕이에요.

죄인은 다 왕이에요.

 

그래서 누구의 간섭을 받기 싫어하는 것입니다.

갓 태어난 자식도 부모의 간섭을 싫어해요.

그래서 자식들은 머리가 커지면서 어떻게 하든지 부모로부터 벗어나고자 하는 것입니다.

이 모두가 죄가 몰고 온 두 마음 때문이에요.

 

예수님은 죄가 몰고 온 것을 제거하러 오셨어요.

“두 마음”을 “한 마음”으로 만들어 주세요.

“두 사람”을 “한 사람”으로 만들어 주세요.

아버지와 하나 되게 하시고 하나 된 마음을 주세요.

 

두 마음이란? 두 사람이란 말이에요.

두 사람이니까 두 마음이 있는 겁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나는 왕이로소이다” 라고 하는 놈을 죽이는 일을 하세요.

“나는 왕이로소이다” 라고 하는 놈이 죽으면 한 사람이 되고 한 마음이 되어요.

 

자 보세요.

우리는 역사에 속하였어요.

역사에 속한 것은 반드시 망하게 되어 있어요.

그런데 우리는 흥하고자 해요.

 

그럼 묵시가 우리에게 쳐들어 올 때 어떤 식으로 처 들어오는가요?

우리는 망하게 하는 식으로 쳐 들어오겠지요.

우리 라는 역사를 폐하고 우리 안에 묵시를 편만케 하시겠지요.

즉 나를 죽이고 예수로 살게 한단 말입니다.

 

우리가 은혜를 받게 되면 나는 점점 쇠하게 되고 예수가 점점 흥하게 되어요.

우리 몸에서 예수님의 흔적들이 나타난단 말입니다.

이렇게 생각해 보세요.

 

하나님의 은혜라는 바다가 있어요.

우릴 그 속에 집어넣었어요.

우리는 은혜라는 바다에서 수영을 하고 있어요.

수영을 할 때 물 장구치고 풍덩거리잖아요.

그럼 물이 튀겠지요.

 

목욕탕에 가서 목욕을 할 때 물이 옆으로 튀잖아요.

아무리 안 튀게 하려고 하여도 안 되지요.

그 물이 하나님 은혜라고 생각해 보세요.

그럼 내 몸에서 하나님 은혜라는 물이 튈 때마다 내 주변에 있는 사람들에게 묻겠지요.

 

다시 말해서 우리가 은혜의 바다에 헤엄을 치면서 물을 튀기면 내 주변에 있는 사람들이 하나님 은혜를 맛 보게 될 것이 아니에요.

어~ 이건 뭐지!

이런 것은 처음 맛 보는데!

이걸 그 은혜의 영광을 찬미한다고 해요.

 

그래서 오늘 본문을 보면 예수님께서 아버지가 나를 보낸 것처럼 나도 저희를 세상에 보낸다고 하시는 것입니다.

이 세상은 죽은 곳이에요.

그런데 생명이신 예수님이 오셨어요.

아버지 이름으로 오셨어요.

 

예수님이 풀썩 거릴 때마다 생명이 나타나겠지요.

아버지가 보여지겠지요.

그럼 세상은 예수님을 통해서 하나님을 알게 되어요.

우리도 예수님을 통해서 아버지를 알게 되었어요.

 

그런데 이 일을 지금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하고 있어요.

자신은 아버지께로 올라 가면서 제자들을 세상에서 하늘로 데려 가지 않고 도리어 세상에 남겨두고서 세상으로 보냅니다.

왜? 보냅니까?

예수님에게 받은 것을 보여주라고 보내심을 입는 겁니다.

이걸 예수의 증인이라고 합니다.

 

성령이 오시면 예수의 증인이 되어요.

증인이란 보고 듣고 한 것을 증거하는 자에요.

그럼 성령이 오시면서 그냥 오시지 않고 뭔가 가지고 오세요.

뭘 가지고 오는가 하면 예수님에 것을 가지고 오세요.

하늘에 속한 것들을 가지고 온단 말이에요.

 

제가 예전에 외국에서 근무 할 때가 있었어요.

근무를 마치고 귀국을 할 때 선물을 사옵니다.

그 때 무슨 선물을 사왔을까요?

 

우리나라 제품을 사왔겠어요.

아니면 외국 제품을 사왔겠어요.

당연히 외국 제품이지요.

 

그럼 하늘에서 성령이 예수 이름으로 우리에게 오셨어요.

무얼 가지고 오셨겠어요.

하늘에 것을 가지고 왔겠지요.

 

예수님에 것을 가지고 왔겠지요.

그래요.

성령은 하늘에 것을 가지고 왔고 예수님에 것을 가지고 왔어요.

 

그럼 성령을 받은 사람은 무얼 내어 놓을까요?

예수님에 것을 내어 놓겠지요.

하늘에 것을 내어 놓겠지요.

 

성령은 땅에 것 가지고 오지 않았어요.

성령 받았다고 하면서 하늘에 속한 것을 내어 놓지 않고 땅에 것을 내어 놓으면 안 되어요.

이걸 의로 말하면 예수님에 의를 내어 놓아야지 자기 의를 내어 놓으면 안 된단 말입니다.

예수님의 것을 내어 놓지 않고 자기 것을 내어 놓으면 그건 가짜에요.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다 이루신 새 언약을 내어 놓아야지, 인간이 말씀대로 살아야 한다는 옛 언약을 내어 놓으면 안 되어요.

인간의 가능성을 말하면 그 사람은 성령 받은 사람이 아니에요.

땅에 것을 말하면 그 사람은 성령 받은 사람이 아니에요.

 

예수님이 지금 제자들을 세상에 남겨 두는 이유는 하늘 이야기 하라고 남겨 두신 겁니다.

예수님에 것을 증거하라고 남겨 두신 거에요.

이제 예수님은 남겨진 자기 백성들에게 하늘에 것을 공급해 주세요.

우린 그것으로 세상에다 나 이런 것 받았다 라고 보여주면 되어요.

 

천국을 보여주고!

영생을 보여주고!

은혜를 보여주고!

용서를 보여 주면 되어요.

 

그래서 바울은 너희가 용서 받았으니 용서 하라고 하는 거에요.

하나님이 먼저 용서를 주세요.

그럼 우리는 그 용서를 토해내게 되어요.

이걸 하나님이 공급하는 힘이라고 해요.

다른 말로 성령의 열매라고 합니다.

 

그럼 세상 사람들은 이상하게 생각해요.

그건 자기들에게 없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럼 칭찬하는 것이 아니고 깔보고 핍박을 해요.

 

저 인간들은 맨날 못 알아듣는 말만 한다고 욕을 해요.

그 욕을 먹으세요.

욕 안 먹으면 안 되어요.

욕을 먹게 되어 있어요.

 

그래서 예수님이 기도하고 있는 겁니다.

아버지 저 놈들이 날 증거하다가 욕 들어 먹어도 넘어지지 말라고!

삐지지 말라고 기도하고 있어요.

 

그러니 보이는 환경 보지 말고 그 환경을 다스리는 하나님을 보세요.

일어난 사건만 보지 말고 그 사건을 일으키신 하나님을 보세요.

그럼 환경이나 사건이 크게 보이지 않아요.

작게 보인단 말입니다.

 

몸을 죽이는 자를 두려워하지 마세요.

그 놈들도 다 하나님 허락 받고 하는 놈들이에요.

죽고 사는 문제는 하나님께 맡기고 살게 하신 그 날 동안 좀 당당하게 사세요.

 

세상 속에서 세상을 보지 말고 삼층천에 올라가서 보세요.

그럼 넉넉히 이겨요.

부디 믿음으로 세상을 이기면서 사시길 바랍니다.

 

 

기도합시다.

하나님 아버지! 세상 산다는 것이 만만치 않습니다. 그러나 세상을 이기신 분이 우리 안에 있다는 이 사실을 잊지 말게 하옵소서. 우리가 잊고 있으면 툭툭 간섭하셔서 야!~ 니 속에 내가 있다는 것을 수시로 알려 주세요. 우리를 깨닫는 것이 둔하니까요. 우리가 둔하더라도 주님께서 세미하게 알려 주세요. 예수님에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여호와의 정하신 날"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보라 용광로 불 같은 날이 이르리니

교만한 자와 악을 행하는 자는 다 지푸라기 같을 것이라

말라기 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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