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 빛 사랑

시 3:5 내가 누워 자고 깨었으니 여호와께서 나를 붙드심이로다

♣(성경강해)113강. 이 세상에 속하지 아니한 나라 (요 18:31-38)

댓글 0

♣.성경강해/요한복음 강해

2022. 1. 27.

 

엡 1:4-6
④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1)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⑤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⑥ 이는 그가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우리에게 거저 주시는 바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송하게 하려는 것이라

 

 

113강. 이 세상에 속하지 아니한 나라 (요 18:31-38)

-.정낙원 목사

 

요 18:31-38절 “이에 빌라도가 다시 관정에 들어가 예수를 불러 가로되 네가 유대인의 왕이냐 34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이는 네가 스스로 하는 말이뇨 다른 사람들이 나를 대하여 네게 한 말이뇨 35 빌라도가 대답하되 내가 유대인이냐 네 나라 사람과 대제사장들이 너를 내게 넘겼으니 네가 무엇을 하였느냐 36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라 만일 내 나라가 이 세상에 속한 것이었더면 내 종들이 싸워 나로 유대인들에게 넘기우지 않게 하였으리라 이제 내 나라는 여기에 속한 것이 아니니라 37 빌라도가 가로되 그러면 네가 왕이 아니냐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네 말과 같이 내가 왕이니라 내가 이를 위하여 났으며 이를 위하여 세상에 왔나니 곧 진리에 대하여 증거하려 함이로다 무릇 진리에 속한 자는 내 소리를 듣느니라 하신대 38 빌라도가 가로되 진리가 무엇이냐 하더라 이 말을 하고 다시 유대인들에게 나가서 이르되 나는 그에게서 아무 죄도 찾지 못하노라”

 

인간은 눈으로 보고 손에 잡혀야 존재한다고 믿습니다.

눈에 보이지 않고 손에 잡히지 않으면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성경을 펴면 우리 눈에 보이지 않고 손에 잡히지 않는 세상이 있다고 합니다.

그 세계는 믿음으로만 볼 수 있습니다.

 

오늘은 믿음으로만 볼 수가 있는 이 세상에 속하지 아니한 그 나라에 대하여 살펴볼까 합니다.

어떤 나라인가 하면 분명히 존재하나 우리 눈에는 포착되지 않는 그런 나라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 나라에 대하여 의식하지 않고 살아갑니다.

 

설령 있다고 하여도 그건 관념 속에서나 있는 나라입니다.

관념이기 때문에 동화 속의 이야기처럼 그 나라를 이해하고 마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그 나라는 실제 하는 나라입니다.

 

그 나라가 분명히 실제 하기 때문에 우리는 실제로 믿고 살아야 합니다.

신앙이 실제이어야 하는 것은 우리가 믿고 바라는 그 나라가 실제 하기 때문입니다.

나중에 만들어지는 나라가 아니고 이미 창세전에 만들어져서 실제하고 있는 나라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신앙이 마르다가 알고 있는 것처럼 나중에 죽어서 가는 그런 천국이어서는 아니 됩니다.

 

신앙생활이란 관념이 아니라 실제이어야 합니다.

이 시대 많은 교인들이 신앙생활을 취미생활 하듯이 하는 것은 모두가 마르다 처럼 천국을 먼 훗날에 가는 그런 나라로서 관념적으로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현재 예수님이 몰고 오신 천국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그 나라에서 오셨고 그 나라로 가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오셨고 가신 그 나라에 우리도 가게 됩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우리에게 그 나라와 그의 의(義)를 구하라고 하신 것입니다.

여기서 그 나라와 그의 의(義)를 구하라는 말은 그 나라에 들어갈 수 있는 의를 가지고 오신 예수그리스도를 믿으라는 말입니다.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신 것은 자기 백성들에게 하늘나라에 들어갈 수 있는 의를 주시기 위함입니다.

쉬운 말로 천국 가는 티켓을 주시기 위함입니다.

그 티켓이 예수님을 주와 그리스도로 믿는 믿음입니다.

믿음을 받은 성도는 그 나라를 소망하며 살아가게 되어 있습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이 세상 나라가 전부인줄 알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 나라에 대하여 알려고 하지도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 나라를 몰라도 세상 살아가는데 전혀 불편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의 나라의 의가 없어도 이 세상을 살아가는데 전혀 손해 보는 일이 없기 때문입니다.

 

이 모두가 죄가 우리 눈을 가려 놓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오셔서 죄로 어두워진 눈을 떠 주시는 일을 하십니다.

성령이 오셔서 그 나라 백성으로 살아가게 하십니다.

 

예수님에 의해서 눈이 떠지고 성령이 그 안에 오신 사람은 그 나라 백성으로 살아가도록 간섭을 당하게 됩니다.

그것이 예수를 믿음으로 그 나라를 소망하고 하나님을 사랑하며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이름하여 믿음 소망 사랑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통해서 그 나라를 알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상합니다.

그 나라를 몰랐을 때는 세상에 코를 박고 사는 것이 자연스러웠는데,

그 나라가 있다는 것을 알고 난 후로는 여간 신경이 쓰이는 것이 아닙니다.

뭔가 찜찜하단 말입니다.

 

왠지 그 나라가 우리를 고발하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 나라가 땅강아지처럼 흙만 파 먹고 사는 우리들에게 야~ 이놈들아! 너희들은 가야 할 나라가 따로 있는데 왜? 땅 강아지처럼 세상만 바라보고 사느냐! 라고 책망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래서 불편한 것입니다.

 

신경을 안 쓰려고 하여도 자꾸만 신경이 쓰입니다.

내 의지와 상관없이 자꾸만 신경이 쓰이니까 불편한 것입니다.

차라리 모르면 속 편하게 세상에 푹 빠져서 살겠지만!

알고 나니까 곁에서 하나님이 자꾸만 세상 사는 게 재미있느냐고 묻는 것만 같아서 세상을 쫓아가는 것이 부담스러운 것입니다.

 

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든든함도 있어요.

내가 가야 하는 곳이 따로 있다고 하니 세상이 가벼워지는 것입니다.

세상에서 나그네로 산다는 것은 고달픈 일이지만!

그래도 그 나라에 대한 소망이 있으니 고난 속에서도 희망이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생각해 보세요.

나면서부터 소경이었던 자가 있습니다.

단 한 번도 스스로 일을 해서 돈을 벌어 본 적이 없습니다.

부모가 돈 벌어 오지 않는다고 타박하지도 않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눈을 뜨게 되었습니다.

눈을 뜨고 난 후 소경의 인생이 완전히 바뀌게 됩니다.

그 동안 남에게 구걸을 하면서 살았는데 이젠 그럴 수가 없어졌습니다.

이젠 스스로 수고하고 돈을 벌어야 합니다.

 

소경으로 있을 때는 빈둥거리고 놀아도 부모가 신경 쓰이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눈을 뜨고 나니까 빈둥거리고 노는 것이 불편한 것입니다.

눈 뜨고 집에서 빈둥거리고 논다는 것은 옳지 않음을 알게 됩니다.

그래서 스스로 밥벌이라고 하게 되는 것입니다.

 

일하는 것이 힘은 들지만 그래도 기쁘고 즐겁습니다.

새로운 경험들을 하게 되니 기쁜 것입니다.

육체적인 노동으로 보면 맨 날 남에게 얻어만 먹고 살던 시절인 소경으로 있을 때가 훨씬 편할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눈을 뜨고 나니까 새로운 세상이 보이는 것입니다.

새로운 삶을 맛보게 된 것입니다.

비록 육신은 힘들지만 산다는 것이 기쁘고 감사한 것입니다.

 

아는 것이 힘이란 말이 있습니다.

맞습니다.

아는 것이 힘입니다.

다시 말해서 그 나라를 보는 것이 힘입니다.

 

남들이 알지 못하는 그 나라를 안다는 것은 엄청난 특권이고 행운입니다.

세상을 사는데 힘이 되고 소망이 됩니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에게 힘을 주고 소망을 주는 그 나라에 대하여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을 통하여서 나는 어느 나라에서 온 누구인지를 알아야 합니다.

우리의 정체성을 알아야 합니다.

내가 누구인지 알아야 합니다.

 

나는 어디서 와서!

또한 무엇을 하다가!

어디로 가는지! 에 대하여 진지하게 숙고해 보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왜 세상에 보냈는지를 알아야 합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빌라도가 예수님에게 “네가 유대인의 왕이냐!” 라고 묻습니다.

그러자 예수님이 네 말이 맞다!

“내가 유대인의 왕이다!” 라고 하십니다.

 

그러면서 이상한 말씀을 하십니다.

내가 유대인의 왕이 맞기는 맞지만!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하지 아니하였다”고 합니다.

 

만약에 내가 이 세상에 속한 유대 나라의 왕이라고 한다면 내 부하를 풀어서 싸웠을 것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내가 싸우지 않는 것은 이 나라가 내 나라가 아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무슨 말입니까?

 

빌라도야 네 눈에는 내가 이렇게 붙잡힌 것이 힘이 없어서라고 생각하느냐?

아니다! 내가 이렇게 붙잡힌 것은 힘이 없어서가 아니고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하지 아니하였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므로 저들이 나를 왕이 되어 달라고 하였어도 내가 거절을 하였다고 합니다.

 

이 나라가 내 나라가 아닌데 내가 왜? 유대 나라를 지키고자 저들과 싸우겠느냐!

나는 너희와 싸울 필요가 없다고 합니다.

설사 내가 너희와 싸워서 유대 나라를 지켜본들 그게 무슨 의미가 있겠느냐!

내 나라도 아닌 나라를 내가 지킬 이유가 없지 않느냐 라는 뜻입니다.

 

인간의 상식으로는 죽을 지경에 놓이면 본능적으로 살고자 이러저러한 말로 자기변호를 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살고자 변호하기 보다는 자기는 세상 사람들과 다름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너희들은 내 말을 못 알아듣는다는 것을 고발하고 있는 것입니다.

 

앞서서 베드로가 예수님이 가는 곳에 자기도 따라 가겠다고 합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아니라고 합니다.

지금은 너희가 내가 가는 곳에 따라 오지 못한다고 하였습니다.

예수님의 나라는 이 세상 바깥에 있기 때문입니다.

그 나라는 죽음 너머에 있는 나라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지금 죽음 너머에 있는 그 나라를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빌라도는 예수님의 말씀이 무슨 말인지 도무지 이해 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이건 예수를 빌라도에게 데리고 온 유대인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물론 제자들도 마찬가지이구요.

 

제자들도 마음 한 켠으로는 예수님이 싸워 주기를 바랬습니다.

멋들어지게 그들을 제압해 주길 바랐습니다.

그리하여 정권을 잡아서 자신들에게 한 자리씩 나눠주기를 원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라고 하면서 십자가로 죽는 길을 터벅터벅 걸어가고 있는 것입니다.

 

제자들도 당황스러운 것입니다.

제자들의 눈에 예수님의 이런 모습이 좋아 보일 리가 없습니다.

힘없이 얻어맞으면서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라고 하고 있으니 제자들이 보기에 얼마나 당황스럽겠습니까?

 

아마도 예수님의 이러한 행동이 제자들에게는 엄청난 충격이었을 것입니다.

예수를 이용해서 이 세상에서 멋지게 살려고 했는데,

예수님은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라고 하고 있으니 말입니다.

제자들 입장에서는 닭 쫓던 개 지붕 쳐다보는 꼴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막상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게 생기자 다 도망을 치고 만 것입니다.

 

암튼 예수님은 유대인들로부터 오해를 받고 죽임 당하는 사건을 맞이하게 됩니다.

그럼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죽임 당하는 사건은 유대인들의 오해로 인하여 발생하였음을 알 수가 있습니다.

 

결국 자기 백성들의 무지가 십자가 사건을 발생케 한 것입니다.

이걸 사망이 생명을 삼켰다고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이렇게 사망에게 삼킴 당한 생명을 가지고 사망을 생명으로 살려내는 창조의 일을 하십니다.

 

이건 천지가 개벽할 일입니다.

어떻게 자기를 죽인 자들을 도로 살려 낼 수가 있는가요?

당연히 저주하고 죽여야지요.

그럼에도 하나님은 예수님의 죽음을 가지고 자기 백성들을 살려내는 일을 하시고 있습니다.

 

어째서 그런가 하면 창세전에 이런 시나리오를 써 놓았기 때문입니다.

창세전 언약이 자기 백성들을 불순종 가운데 가두고서는 긍휼로 살려내는 것으로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죽이는 것도 다 창세전 언약 속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하나님과 예수님의 입장에서는 당연한 일이지만 우리 인간들 입장에서는 놀랄 일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깊도다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의 부요함이여 뉘라서 이를 알고 깨닫겠느냐! 라고 탄복을 하였던 것입니다.

 

인간의 지혜로는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측량할 수가 없다고 했습니다.

그만큼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은 비밀이고 하늘도 놀라고 땅도 놀랄 일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은 하나님의 지혜를 드러내는 것이면서 동시에 인간의 무지와 악함을 고발하고 있는 것이기도 합니다.

 

십자가 속에는 두 가지 의미가 담겨져 있습니다.

자기 백성들에게는 구원의 능력이지만,

세상 사람에게는 미련하고 어리석은 것입니다.

 

십자가는 하나님의 지혜와 인간의 어리석음을 동시에 보여주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의와 인간의 죄가 동시적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우리는 예수를 죽였는데 하나님은 우리가 죽인 그 예수를 우리의 주와 그리스도로 삼으셔서 우리를 살려내는 일을 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예수님의 십자가를 가지고 원수를 죽이지 않고 살리는 일을 하시고 있는 것입니다.

십자가 속에는 하나님의 자비로우심과 인간들의 죄가 동시에 들어가 있는 것입니다.

이런 황망할 때가 어디 있나요?

그래서 우리는 예수님의 십자가 앞에 서면 못난 죄인으로 드러나고 이런 죄인을 용서 해 주신 하나님의 그 은혜에 감사하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원수를 용서하심으로서 예수님을 향하여 욕을 하고 돌을 던지던 자들을 도리어 예수 앞에 무릎을 꿇고 입술로 주(主)라 시인하게 하십니다.

이걸 그 은혜의 영광을 찬미한다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구원하는 창세전 언약이라는 시나리오가 이렇게 써져 있습니다.

 

참 재미있지요.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 다 이래요.

인간의 지혜가 틀렸다는 것으로 일을 하십니다.

속된 말로 우리가 하는 일이 어리석음으로 들어나게 한단 말입니다.

그리하여 너희는 소경이라는 것을 고발하고 있는 것입니다.

 

자 보세요.

유대인들은 지금 자기들 것을 지키고자 예수를 죽이려고 하고 있습니다.

바리새인들은 만약에 예수님께서 그들의 신앙을 인정하고 누이 좋고 매부 좋은 식으로 하였으면 죽이지 않았어요.

그런데 사사건건 시비를 건단 말입니다.

 

사람들 앞에서 존경을 받고 살았는데 어느 날 예수가 나타나서 너희는 독사 새끼들이라고 하면서 지옥에 들어갈 놈들이라고 한단 말입니다.

거기다가 신주단지처럼 지키고 있는 율법 신앙을 뿌리째 흔들고 있는 것입니다.

자기들 밥그릇을 빼앗고 있단 말입니다.

그러니 화가 나는 것입니다.

 

누가 여러분에게 그 따위로 예수 믿을 거면 다 때려치우라고 하면 화가 안 나겠어요.

인간은 이런 말을 들으면 본능적으로 적개심이 들게 되어 있어요.

지금 바리새인들의 심정이 그러해요.

예수가 죽이고 싶도록 미운 것입니다.

 

이건 그냥 넘어갈 문제가 아니에요.

가만 두면 자기들이 지금까지 지켜왔던 모든 것들이 다 날아가게 생겼어요.

그럼 지켜야지요.

빼앗길 순 없잖아요.

 

유대인들이 지키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가요?

국가적으로는 로마로부터 유대 나라을 지키는 것이고,

신앙적으로는 율법 신앙으로 자기 의를 쌓아가는 것입니다.

 

대 제사장인 가야바가 그랬잖아요.

예수 한 사람만 죽으면 온 민족이 평안해 진다고 했습니다.

명분이 얼마나 좋습니까?

예수 때문에 나라가 망하게 생겼는데,,,

그가 죽어서 나라가 평안해지니까 얼마나 그럴듯합니까.

 

그런데 이렇게 그럴듯한 것이 바로 죄에요.

죄는 항상 인간 입장에서 보면 합당하게 보여요.

그러니 인간들은 죄를 지으면서도 그게 의로운 것이라고 여기는 것입니다.

인간들은 자기들이 하는 일이 죄라는 것을 알지 못해요.

 

자기가 하는 일은 항상 옳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모든 일을 인간 입장에서 이해하고 인간의 유익을 위하여 하기 때문입니다.

죄인들은 단 한 번도 하나님을 위하여 일을 해 본 적이 없어요.

할 수도 없어요.

 

하나님 이름을 불러도 그 바탕엔 자기 유익이 깔려 있어요.

그러면서 하나님을 위한다고 거짓말을 해요.

그래서 성경은 “하늘에 계신 분이 웃으심이여!” 라고 하는 겁니다.

하나님이 웃고 있어요.


참으로 어리석지요.

그래서 성경은 죄인을 향하여 지각이 없고 우준한 자라고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만물 가운데 하나님을 알만한 것들을 담아 놓았어요.

그럼에도 인간들은 몰라요.

도리어 하나님을 금수와 버러지 형상으로 만들어 섬기고 있어요.

이게 인간의 실존이에요.

 

좌우지간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은 인간의 어리석음에 극치를 보여주는 사건이면서 반면에 하나님의 지혜의 비밀함을 보여주는 사건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십자가는 창세로부터 감추어진 하나님의 비밀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속에는 창세전 비밀이 담겨져 있어요.

 

예수님의 십자가 속에는 하나님의 선과 인간의 선이 충돌한 것입니다.

인간의 선이 하나님 앞에서는 악으로 폭로가 되는 것입니다.

마귀는 예수님의 십자가 속에 자기 정체가 폭로 당한다는 것이 담겨 있다는 것을 몰랐어요.

 

마귀는 예수만 죽이면 자기가 이긴다고 생각했어요.

예수만 죽이면 자기가 왕이 되어서 인간들 위에 군림할 수 있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그래서 세상 모든 권세를 다 동원해서 예수를 죽이는 일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자기 무덤을 파는 것인 줄도 모르고 말이에요.

자기 정체가 폭로되는 것이란 것을 모르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죽이고자 하는 재판을 밤에 하고 있는 것입니다.

밤이란? 소경이란 뜻입니다.

옳고 그름을 분간하지 못한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은 밤을 통하여서 마귀가 하는 일이 어둠이라는 것을 폭로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선이 인간들에겐 악으로 보여서 죽임 당하게 하는 것입니다.

결국 인간의 선이 곧 악임을 드러내고 만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자기 백성들 손으로 십자가 사건을 발생하는 일을 벌리신 것입니다.

이 모두가 자기 백성들이 마귀의 손에 농락당했다는 것을 깨닫게 하시기 위함입니다.

 

성령이 임하고 난 후 이 사실을 깨닫고 통곡을 하게 됩니다.

나중에 통곡이 일어나려면 지금은 통곡할 일을 저질러야 하잖아요.

그래서 하나님은 예수님을 유대인들을 넘어지게 하려고 시온의 거치는 반석으로 보내신 겁니다.

 

거치는 반석이란? 넘어지게 하는 돌부리란 말입니다.

잘 달리고 있는 자를 돌에 걸려서 넘어지게 하시려고 예수님을 보낸 것입니다.

예수님의 오심 자체가 유대인들에게는 넘어지는 사건 속으로 휘말리게 된 것입니다.

예수님의 출현으로 유대나라는 비상이 걸린 것입니다.

 

예수님의 출생 자체가 범상치 않잖아요.

하늘에선 별이 가만히 있지 않고 예수님을 따라서 이러 저리 돌아다니고!

광야에서는 천사들이 나타나서 찬송을 하고 있습니다.

하늘에 있어야 할 천사들이 땅에 나타났다는 것은 하늘에 사건이 땅에 일어났다는 뜻입니다.

이걸 천국이 침노했다고 합니다.

묵시가 역사를 침노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 때가 어떤 때인가요?

온 천하가 호적(戶籍) 하는 때입니다.

이게 엄청 중요해요.

영적 비밀이 담겨져 있기 때문입니다.

 

호적(戶籍)이란 말이 참 재미있어요.

호적(戶籍)이란? “켄소스” 라고 하는데 이는 “남성 명사”로 써요.

그러니까 호적은 남자 아이를 아버지 족보에 올리는 일이라는 뜻이 담겨져 있습니다.

 

구약 시대는 여자는 수에 칠 가치도 없었어요.

여자는 호적에 올리지 않았어요.

예수님이 탄생 하던 시기는 아직 구약 시대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출생에 맞추어서 남자 아이를 호적에 올리는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을 영적으로 말하면 예수님을 통하여서 하나님 아버지의 아들들이 출생을 하게 된다는 말입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의 출생은 곧 하나님의 아들들이 아버지의 족보에 올려지는 사건을 담고 있는 것입니다.

 

성경은 남자를 생명을 가진 자를 말합니다.

남자는 씨를 주는 자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생명은 하나님의 생명을 말합니다.

하나님의 씨를 말합니다.

 

아담 안에서 난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생명이 없습니다.

이 세상에는 하나님의 씨를 가진 자가 없습니다.

그러니까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자들은 모두가 여자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생명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생명과 씨를 가진 분이 나타났습니다.

그 분이 바로 예수님입니다.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하는 이유도 예수님만이 하나님의 씨와 생명을 가진 분이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에는 하나님의 생명을 가진 자가 없어요.

오직 예수님만이 하나님의 생명을 가지고 있어요.

그러니 예수님만 남자인 것입니다.

 

구약 시대 모든 사람들은 여자입니다.

그 누구도 그 안에 하나님의 생명을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구약에는 하나님 아버지의 족보에 올라간 자가 없어요.

아버지 족보에는 아들만 올라가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아들은 예수님에 의해서 생겨납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탄생하실 때 천하에 호적하는 일들이 생긴 것입니다.

이는 예수님의 오심으로 천만 만국에 있는 자기 백성들이 하나님의 호적에 올라가는 일들이 일어나게 되었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이게 오순절 때 천한 각국으로부터 올라온 경건한 유대인들에게 성령 강림이 일어나는 것으로 나타난 것입니다.

 

예수님이 오신 것은 자기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생명을 주기 위함입니다.

하나님의 생명을 받은 자들은 하나님의 아들들이 되는 것입니다.

이게 창세전 언약입니다.

창세전 언약을 보면 그리스도의 피로 죄사함 받은 자들이 하나님의 아들들이 되는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에베소서 1장을 봅시다.

 

엡 1:4-10절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5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6 이는 그의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우리에게 거저 주시는 바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미하게 하려는 것이라 7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피로 말미암아 구속 곧 죄 사함을 받았으니 8 이는 그가 모든 지혜와 총명으로 우리에게 넘치게 하사 9 그 뜻의 비밀을 우리에게 알리셨으니 곧 그 기쁘심을 따라 그리스도 안에서 때가 찬 경륜을 위하여 예정하신 것이니 10 하늘에 있는 것이나 땅에 있는 것이 다 그리스도 안에서 통일되게 하려 하심이라”

 

잘 보세요.

창세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 아들들을 만든다고 하지요.

어떻게 만든다고 합니까?

예수님의 피를 뿌려서 만든다고 합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물과 피를 쏟습니다.

이건 여자가 아이를 낳는 것과 같아요.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하나님의 아들들을 낳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십자가는 비밀이라고 하는 겁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아들이 된다고 하지요.

그러니까 구약에는 아직까지 그리스도가 오시기 전이니까 아들이 없는 것입니다.

전부 여자인 것입니다.

예수님이 여자인 자기 백성들 속에 자기 씨를 주는 것입니다.

그럼 여자가 하나님의 아들들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령을 일컬어 아들의 영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성령으로 거듭 난 자드리 바로 하나님의 아들들인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탄생을 기점으로 아들들이 아버지 호적에 올려지는 사건이 천하만국에서 벌어지게 된 것입니다.

그러니까 육적으로 아들이 아버지의 족보에 올려지는 일은 곧 영적으로 언약의 후손들이 예수로 인하여 하나님의 아들들이 되는 표상이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오심으로서 비로소 하나님의 아들들이 탄생이 되는 것입니다.

 

이게 구원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언약의 후손들인 자기 신부에게 자기 안에 있는 하나님의 생명을 줌으로서 신부가 하나님의 아들이 되는 것입니다.

 

이걸 아담과 하와를 통해서 보여 주었어요.

하나님께서 아담을 깊이 잠들게 하시고 그 속에서 여자를 빼 내지요.

아담 안에는 남자와 여자가 있었어요.

 

그런데 하나님이 아담 속에서 여자를 빼낸 겁니다.

아담 속에 여자가 빠져 나오자 아담에게는 남자만 만지요.

그래서 아담은 남자가 되고 하와는 여자가 된 것입니다.

하와가 남자가 되려면 아담과 하와가 한 몸이 되어야 해요.

여자인 하와 속에 남자인 아담이 들어가서 한 몸이 되어야 하와가 남자가 된단 말입니다.

 

바울은 아담을 일컬어 그리스도의 표상이라고 했어요.

그리스도를 남편이라고 하고 교회를 아내라고 했어요.

그러니 그리스도가 남자인 겁니다.

교회는 그리스도에게서 나왔어요.

그럼 그리스도에게서 나온 자들은 여자가 되는 겁니다.

 

그리스도에게서 나온 자들이 누구인가요?

자기 백성들이에요.

교회에요.

교회인 자기 백성들이 여자에요.

 

그래서 성경은 예수님의 자기 백성들을 예수님의 신부라고 하는 겁니다.

신랑을 맞이하여서 한 몸이 되어야 하기 때문에 신부라고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신랑이고 우리는 신부에요.

신부는 남자인가요?

여자인가요?

여자이지요.

 

그런데 하나님 나라는 아들의 나라에요.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는 곳이란 말입니다.

예수 안에 있는 자는 하나님의 아들들입니다.

그래서 성경에서는 하나님의 백성들을 딸이라 하지 않고 전부 아들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생명을 가진 자라는 의미에서 그러는 거예요.

 

아들이란? 씨를 가진 자를 말해요.

그런데 신부에게는 아들의 씨가 없어요.

그래서 하나님은 아담과 하와를 결혼케 하여서 하와 속에 남자의 씨를 심어 주신 겁니다.

여자인 하와가 아담과 결혼을 함으로서 한 몸이 되어서 남자의 생명을 받게 되는 겁니다.

 

이걸 바울은 여자가 해산하여 구원을 이룬다고 했어요.

구원이란? 여자가 예수를 통해서 남자가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되는 것입니다.

영적인 말이니 잘 이해하세요.

 

그러니까 하나님이 예수님이 탄생 할 때를 맞추어서 예수가 하실 일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기 위해서 아들이 아버지 족보에 올라가는 천하에 호적 하는 일을 일어나게 하신 것입니다.

예수가 이런 일을 하실 것이라는 것을 계시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은 다 창세전 언약을 위하여서 일어나는 사건들이에요.

세상이 자기 맘대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허락 안에서 돌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예수님이 하실 일을 그 시대 육적인 사건을 가지고 상징적으로 보여 주시고 계신 것이에요.

 

유대인들 속에 아직 하나님 생명이 없어요.

아직까지 예수님이 주시지 않았어요.

언제 주시는가 하면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시고 성령으로 다시 오셔서 주어요.

그럼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어야 하는 일이 먼저 일어나야 하겠지요.

그래서 하나님이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죽이는 일을 하도록 벌이신 것입니다.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죽이시면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살리셔서 유대인들 속으로 다시 보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시고 성령으로 자기 백성들 속으로 들어오신 겁니다.

자기 백성들과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이걸 결혼이라고 합니다.

 

예수님이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셔서 하늘에 생명을 가지고 오셨어요.

이 하늘에 생명을 자기 백성들에게 주세요.

그럼 여자가 남자가 되어요.

 

예수님의 생명이 여자를 남자로 바꿔치기 한 겁니다.

이걸 성령으로 거듭남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성령으로 거듭난 성도를 일컬어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하는 겁니다.

이렇게 예수님을 통하여서 하나님의 아들들이 된 자들을 하나님 족보에 올리는 것입니다.

 

그러니 하나님께서 예수님의 출생에 맞추어서 아들이 아버지의 호적에 올라가는 사건을 벌리신 것입니다.

유대인들이 호적 하러 가는 사건은 하나의 계시사적인 사건인 것입니다.

이러 한 때에 예수님이 탄생했어요.

 

이러면 예수님을 통하여서 새로운 나라가 세워지는 겁니다.

예수를 통해서 여자가 남자로 변하는 이상한 나라가 세워지는 겁니다.

그러니 예수님은 여자가 남자가 되는 이상한 나라의 왕인 것입니다.

예수에 의해서 여자가 남자가 되는 이들이 바로 영적인 유대인이에요.

 

이게 참 중요한데!

진짜 유대인이 누구인지를 잘 기억하세요.

이걸 알아야 예수님이 유대인의 왕이라는 말을 알 수가 있습니다.

 

예수님은 영적 유대인의 왕이에요.

육적 유대인은 영적 유대인을 설명하기 위한 표상이에요.

육적 유대인도 예수를 통해서 영적 유대인이 되어야 해요.

예수의 생명을 받아서 남자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야 아들의 나라인 천국에 갈 수가 있는 것입니다.

 

천국은 아들의 나라에요.

하나님의 아들만이 갈 수가 있어요.

예수님이 아들 만들어 주고자 오신 것입니다.

그런데 유대인들은 이걸 모르고 있는 것입니다.

 

암튼 예수님의 탄생은 온 유대 사회에 큰 파장을 몰고 왔어요.

헤롯왕도 동방박사들이 와서 유대인의 왕이 났다고 하니까 왕권을 예수에게 빼앗길까봐서 비상이 걸렸지만 대제사장과 같이 성전으로 인하여 먹고 사는 율법신앙의 기득권층들도 예수님이 율법신앙을 깨트리고 있으니 자기들 밥줄이 끊기게 생겨서 비상이 걸린 것입니다.

 

정치와 종교 모두가 비상이 걸린 것입니다.

예수를 가만 두면 다 망하게 생겼어요.

그럼 안 되잖아요.

예수를 죽여야지요.

 

그래야 자기들이 살아요.

자기들이 살려면 예수를 죽일 수밖에 없어요.

그래서 정치와 종교가 하나가 되어 예수를 죽이는 일에 합세한 것입니다.

 

이게 죄인의 모습이에요.

죄인은 나 살기 위해서 남을 죽이는 자들이에요.

인간은 자기 밥그릇에 손을 대면 가만있지 않아요.

그래서 바울은 십자가의 원수들을 자기 배를 위하여 사는 자라고 했어요.

 

빌립보서 3장을 보고 갑시다.

 

빌 3:18-18= “내가 여러 번 너희에게 말하였거니와 이제도 눈물을 흘리며 말하노니 여러 사람들이 그리스도 십자가의 원수로 행하느니라 19 저희의 마침은 멸망이요 저희의 신은 배요 그 영광은 저희의 부끄러움에 있고 땅의 일을 생각하는 자라”

 

보세요.

그들의 신(神)은 배 라고 하지요.

먹고 살기 위해서 예수를 이용한다는 말입니다.

이런 자를 일컬어 십자가의 원수 노릇을 하고 있다고 합니다.

 

이건 어느 시대나 동일해요.

인간들은 자기 배를 위해서는 하나님도 죽이는 자들이에요.

그래서 죄인을 일컬어 짐승이라고 하는 겁니다.

 

짐승은 그 누구라도 자기 밥그릇을 빼앗으면 물어요.

주인이라도 물어요.

지금 유대인들이 짐승 짓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먹고 살기 위해서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는 사건을 발생시키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 때문에 조용하던 유대 나라가 두 패로 나누어지게 되었습니다.

예수를 따르는 자들과 그를 반대하는 자들 간에 두 부류로 분열이 일어납니다.

예수가 오기 전까지만 해도 유대인들은 율법 신앙으로 온 민족이 대동단결을 하였습니다.

 

그런데 예수가 나타나서 율법 신앙을 깨트리고 분열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정통이라고 지켜오던 전통신앙을 깡그리 부정하는 일들을 행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기에 기득권층들이 반발을 하기 시작하는 겁니다.

 

바리새인들의 생계는 율법신앙에서 나왔어요.

그들은 성전에서 나오는 것으로 먹고 살았어요.

그런데 예수님이 성전을 쑥대밭으로 만들고 있는 겁니다.

거룩한 성전을 강도의 굴혈이라고 하면서 신성모독하고 있어요.

 

그런데 심각한 것은 백성들이 이걸 좋다고 예수를 따른단 말입니다.

이러면 안 되지요.

백성들 손에서 성전에 이익들이 창출이 되는데 이들이 예수를 따르면 돈 줄이 끊기게 됩니다.

 

예수를 따르는 자들은 대다수가 약자들이었어요.

죄인들이에요.

죄인들은 성전 종사자들에겐 주요 고객들이에요.

이들이 죄를 짓고 제물을 가지고 와서 제사를 지내 주어야 자기들이 먹고 살아요.

 

그런데 예수가 이 죄인들을 몰고 다닌단 말이에요.

금방이라도 소요가 일어날 것 같은 것입니다.

그러니 성전에 종사하는 기득권층들이 난리가 난 겁니다.

나라가 분열이 되면 그나마 율법 신앙을 지켜오던 것들도 못 지킬 수가 있어지잖아요.

 

당시 기득권층인 바리새인들 입장에선 예수가 소외계층들을 선동하여서 나라를 뒤집어엎으려고 한다는 생각을 했어요.

어느 시대나 기득권층들은 보수를 외치고, 없는 약자들은 개혁을 외쳐요.

 

그럼 막아야지요.

명분을 만들어야지요.

그래서 만든 명분이 예수가 민족의 신앙을 부정하고 나라를 분열하는 이단으로 몬 것입니다.

 

유대인들은 지금까지는 비록 나라는 망해서 로마의 식민지로 있지만 신앙만큼은 지켜왔어요.

로마가 유대나라에 분봉 왕을 주어서 자치 구역으로 이스라엘의 신앙을 간섭하지 않았어요.

유대인들은 율법 신앙을 지켜 온다는 것에 대단한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율법 신앙으로 민족의 정통성과 정체성을 지키고 있다고 스스로를 위로했어요.

 

이건 마치 야인시대라는 드라마처럼 일제 식민지 시절에 김두한이가 종로 시장 통만큼은 조선의 자부심이라고 생각하고 일본 상인들에게 넘겨주지 않고 사즉생 생즉사(死卽生 生卽死) 정신으로 지켜낸 것과 같아요.

나라가 다 무너져도 종로 시장만 지키면 된다고 여겼어요.

상인들도 그렇게 생각하고 김두한이를 따랐어요.

 

지금 유대인들의 모습이 그러해요.

비록 나라는 힘이 없어서 식민지 생활을 하지만 종교만큼은 절대적인 자부심으로 사즉생생즉사(死卽生生卽死)의 마음으로 지켜 냈어요.

 

그런데 예수로 인하여 그 판이 근본적으로 흔들리고 있어요.

그냥 두면 깨어지게 생겼어요.

율법주의자들에겐 위기감이 팽배했어요.

 

만약에 가만 두면 예수로 인하여 민족이 보수와 진보처럼 두 패로 갈라져서 분열이 일어나서 소요가 일어나게 된다는 것은 불 보듯 뻔해요.

행여 두 편으로 갈라져서 예루살렘에서 소요가 생기면 로마 군대가 소요를 진압한다는 명목으로 예루살렘에 진입하여 됩니다.

 

로마 군인이 들어와 예루살렘에 주둔하게 되면 자연히 술집도 생기고 창기들도 따라 들어오게 되어 있어요.

무엇보다도 그들이 섬기는 이방 신(神)도 함께 들어와요.

그럼 성지가 졸지에 이방인으로 개판이 되고 말아요.

성지가 타락의 도시로 전락하고 만단 말입니다.

 

그러니 대 제사장 입장에서는 민족이 분열되는 일을 막아야 하잖아요.

그래서 내린 결론이 눈에 가시 같은 예수를 죽이는 겁니다.

예수 하나가 죽어서 온 민족이 평안해진다고 하면 그건 하나님 앞에도 옳은 일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지금 예수님을 로마 총독에게 데리고 와서 죽여 달라고 하는 겁니다.

 

이에 빌라도가 예수님에게 묻는 것이 저 사람들이 지금 너를 민족의 분열자라고 죽여 달라고 하는데, 저 사람들의 말대로 예수 네가 진정으로 민중 봉기를 일으켜서 정권을 잡고자 하느냐! 라고 묻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자 예수님이 야! 임마!

내 나라가 이 세상에 속하지 아니하였는데 무슨 정권을 잡는단 말이냐!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하지 않았기 때문에 내가 민중 봉기를 일으킬 이유도 없을 뿐더러 또한 저들과 싸워서 정권을 빼앗을 이유도 없다고 합니다.

 

빌라도가 가만히 듣고 보니 예수는 죽일 만한 죄가 없는 겁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붙잡고 죽이라고 하는 자들에게 야~ 내가 저 예수를 취조 해보니까 죽일 만한 죄를 찾지 못하겠다고 하면서 놓아 주려고 하는 것입니다.

 

빌라도가 유대인들에게 야~ 내가 예수를 심문해 보니까

예수는 예수의 나라가 따로 있다고 하면서 이 나라에 관심이 없다고 하는데,

너희들은 예수의 나라가 어디에 있는지 알고 있느냐?! 라고 묻고 있는 것입니다.

한 마디로 헐~ 입니다.

 

빌라도가 지금 우리에게 묻고 있어요.

야! 정낙원이 너 예수의 나라를 알고 있니!

너~ 이 세상에 속하지 아니한 나라를 알고 있느냐고 묻고 있는 것입니다.

그럼 우리는 답을 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실 때 우편 강도가 예수님의 나라에 대하여 말했어요.

강도가 “예수여 당신의 나라가 임할 때 나를 기억하소서!” 라고 묻지요.

그러자 예수님이 “네가 오늘밤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고 하였잖아요.

 

우편 강도는 예수님의 나라가 있다는 것을 알았어요.

그러니까 예수님에게 당신의 나라에 임할 때 나도 함께 데리고 가 달라고 하고 있는 것입니다.

강도와 예수님의 대화 속에 나와 있는 나라가 어떤 나라인가 하면 “낙원”이에요.

예수님이 오늘밤 나와 낙원에 있으리라고 하셨잖아요.

 

낙원을 다른 말로 천국입니다.

천국을 다른 말로 하늘나라 라고 합니다.

예수님의 나라는 이 땅에 있지 않고 하늘에 있는 것입니다.

강도는 예수와 함께 하늘나라로 갔어요.

 

우리도 마찬 가지입니다.

강도가 간 그 나라로 가게 됩니다.

예수님께서 강도에게 낙원에 데리고 간다고 약속을 하였듯이 우리에게도 약속을 하셨어요.

 

예수님은 우리의 왕이세요.

그러므로 예수님이 계신 곳에 우리도 있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하지 아니하였다고 한다면 예수를 믿는 우리도 이 세상에 속하지 아니하였어요.

우리의 나라도 이 세상에 없어요.

그러니 이 세상 나라에 신경 쓰지 말고 그 나라에 대하여 신경 쓰고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두 나라가 있습니다.

보이는 나라와 보이지 않는 나라가 있습니다.

히브리서 11장을 보면 “보이는 것(이 세상)”은 “보이지 않는 것(하늘나라)”으로 말미암았다고 합니다.

무슨 말인고 하니 보이는 이 세상은 보이지 않는 세상으로부터 나왔다는 말입니다.

 

예수님은 빌라도에게 보이지 않는 그 나라에 대하여 말씀해 주고 계신 것입니다.

세상 바깥에 있는 나라 말이에요.

 

그런데 우리 눈에는 보이지 않는 그 나라를 볼 수가 없어요.

감지도 안 되어요.

죄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보이지 않는 나라를 없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 나라를 의식하지 않고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알려 주는 겁니다.

예수님은 보이지 않는 그 나라에서 오셨어요.

그래서 예수님의 출생 자체가 이상한 사건 속에서 일어나게 된 것입니다.

잠시 예수님의 출생을 살펴보고 갑시다.

 

동방 박사들은 “이상한 별”을 따라와서 예수님을 만나지요.

별은 하늘(묵시)에 속하였어요.

이는 예수님이 하늘(묵시)에서 오신 분이란 말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탄생 소식을 하늘에 “별”이 전해 주는 것입니다.

 

별이 동방박사들에게 이분은 “세상 바깥에 있는 하늘 나라”에서 오셨다는 알려주고 있는 것입니다.

하늘에 속한 별은 예수에게로 인도합니다.

우리도 하늘에 속한 별을 통해서 예수님을 만나게 되는 것입니다.

 

베드로후서를 1장을 봅시다.

 

베드로후서 1장 19절 “또 우리에게는 더 확실한 예언이 있어 어두운 데를 비추는 등불과 같으니 날이 새어 샛별이 너희 마음에 떠오르기까지 너희가 이것을 주의하는 것이 옳으니라”

 

베드로가 우리 안에 이상한 샛별이 떠오르게 된다고 하지요.

그 샛별이 우리로 하여금 예수를 만나게 해 주신다고 합니다.

여기서 말하는 샛별은 하늘로부터 오신 성령을 말합니다.

성령이 하나님의 계시를 알려 주는 것을 말해요.

성령께서 예수님에 대하여 알게 해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우리 마음속에 성령을 주셔서 예수가 우리의 왕이라는 것이 믿어지고 깨달아지게 해 주신다는 말입니다.

우린 성령이 깨닫게 해주심으로 예수를 주와 그리스도로 믿게 되는 것입니다.

 

자 보세요.

지금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자신들의 왕이라는 것을 모르고 있지요.

그리고 예수님의 나라도 모르고 있습니다.

 

알다시피 유대인은 언약의 후손들이에요.

예수님의 자기 백성들이에요.

그런데 예수님이 자기들의 왕이라는 것을 모르고 있어요.

 

왜? 그런가요?

이는 아직 때가 아니라서 그래요.

그들 속에 샛별이 떠오르지 않아서 입니다.

성령이 아직 오시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자기들의 왕이라는 것을 아는 것은 누군가가 알려 주어야만 합니다.

우리의 지혜와 상식으로는 알 수가 없어요.

성령이 오셔서 알려 줄 것입니다.

 

지금은 유대인들이 예수를 죽이라고 하지만 나중에 성령이 오시고 난 후에는 예수님이 자신들의 왕이라는 사실과 자신들이 가야 할 나라가 따로 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 때부터 이 세상에 속하지 아니하는 그 나라를 위하여 살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은 아직 때가 아닙니다.

아직까지 예수의 나라는 숨겨져 있어요.

 

그럼 우리도 그 당시 유대인 속으로 들어가서 이 사건을 보아야 합니다.

그럴 때 지금 우리가 엄청난 은혜를 입고 있다는 것을 깨닫고 감사하게 됩니다.

항상 하는 말이지만 우리가 성경을 대할 때 항상 나는 죄인의 자리에 앉히고 보라고 했습니다.

구약을 볼 때나 신약을 볼 때나 동일해요.

 

내가 구약의 광야에서 하나님을 원망하고 불평하던 이스라엘 백성이고!

사사기에 나오는 틈만 나면 하나님을 배도하고 우상 숭배하는 자들이고!

오늘 본문 속에 나오는 예수를 죽이라고 하는 그 무리들이란 말입니다.

 

그러할 때 내가 예수를 죽인 하나님의 원수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하지만 이러한 원수에게 하나님의 긍휼이 덮쳐 와서 용서함을 받았다는 것을 알게 되고 그 은혜에 감사케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눈여겨보아야 할 대목이 예수님이 “유대인의 왕”이라는 이야기입니다.

 

동방 박사가 예수님을 유대인의 왕이라고 했지요.

별을 따라온 동방 박사들이 헤롯왕에게 가서 “지금 유대인의 왕이 나셨는데 그 분이 어디에 계신지 혹시 아십니까?” 라고 물었어요.

 

그런데 지금 예수님은 빌라도에게 “내가 유대인의 왕이다” 라고 하고 있어요.

그러면서 내가 유대인의 왕이 맞기는 맞는데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하지 아니하였다고 하고 있단 말입니다.

 

그럼 예수님이 말하는 유대 나라가 따로 있다는 말입니다.

이러면 당연히 예수님이 말하는 유대인도 따로 있다는 것이 되어요.

유대인이면서도 이 세상에 속하지 아니하는 유대인들이 있다는 말입니다.

이게 중요해요.

 

그럼 우리는 예수님이 말하는 유대 나라는 어디이고 또한 유대인은 누구인지 알아야 하겠지요?

그 나라가 어디에 있는가요?

그리고 누가 유대인가요?

 

그것은 바로 예수님이 계신 곳이 유대나라이고!

예수님에게 속한 백성들이 유대인입니다.

아까 말했잖아요.

진짜 유대인은 예수님을 통해서 여자가 남자가 된 성도들이라고!

 

그러니까 지금 예수님이 말씀 하시는 그 나라와 그에 백성들은 영적인 것입니다.

그러니 육이 알아듣지를 못하는 것입니다.

그 속에 예수의 생명이 없는 여자들은 몰라요.

아들에 영으로 거듭난 남자들만 알아요.

그리스도 안에서 난 하나님의 아들들만 안단 말입니다.

 

여기서 남자와 여자는 생물학적으로 남자와 여자를 말하는 것이 아니고 예수를 통해서 하늘나라 생명을 가진 성도는 남자이고 예수의 생명이 없는 자는 여자에요.

예수의 생명을 가진 자는 여자가 아니고 하나님 아들이에요.

 

다시 말합니다.

예수님이 유대인의 왕이에요.

왕이 있는 그곳이 곧 유대나라인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를 따르는 자들이 바로 유대인이구요.

이건 영적인 말이에요.

 

사도바울이 그러지요.

표면적 유대인과 이면적 유대인이 있다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표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 아니고 이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라고 합니다.

표면적 유대인은 보이는 나라에 속한 자들이고, 이면적 유대인은 예수에게 속한 자들을 말해요.

육적 이스라엘은 표면적 유대인이고, 영적 이스라엘이 이면적 유대인입니다.

 

이건 표면적 유대인에게는 충격적인 말이에요.

물론 우리에게도 충격적인 말입니다.

우리도 예수를 믿는다고 하면서도 유대인들과 같은 사고로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유대인들이 보이는 이 세상에서 강성대국을 만들고자 하였듯이 우리도 보이는 이 세상에서 성공하고 승승장구하여서 우리들의 나라에 확장을 꿈꾸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유대인들처럼 자기 욕망을 이루고자 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라고 한단 말입니다.

이 말씀은 우리에게 너희도 세상에서 승승장구하는 것을 꿈꾸지 말라는 말입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하지 아니하였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영적 유대인들이에요.

우리는 예수님을 우리의 왕으로 믿고 있어요.

그런데 우리의 왕이신 예수님이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하지 아니하였다고 하고 있잖아요.

 

그럼 예수를 주군으로 모시고 사는 우리들도 당연히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요 라는 자세로 살아야 합니다.

그래야 예수님의 신하인 것입니다.

 

아니~ 우리 왕이신 예수가 내 나라는 이 세상 나라가 아닌 다른 나라가 있다고 하잖아요.

그럼 당연히 예수님의 신하 된 자로서 우리도 이 세상 나라가 아닌 다른 나라를 생각하고 살아야 할 것이 아닙니까?

그래야 그 왕에 그 신하가 되지요.

 

성경은 애초부터 이 두 나라 이야기를 해 주고 있어요.

 

성경을 시작하면서 “태초에” 라고 합니다.

태초(太初)라는 말은 “베레쉬트” 라고 하는데 이것은 “시간의 시작”을 말해요.

창세기 1장 1절의 태초라는 말은 “최초”, “처음”, “시작”이라는 말입니다.

 

창세기 1장 1절에서의 태초와,

요한복음 1장 1절에서의 태초는 달라요.

 

창세기 1장 1절의 태초라는 “베레쉬트”는 “시간의 시작”을 말하지만,

요한복음 1장 1절에서의 태초라는 “엔 아르케”는 시간의 바깥에 이미 “선재(先在)하고 있는 세상”을 말해요.

쉬운 말로 다른 세상이라는 말입니다.

 

태초라는 말은 같은데 그 의미는 하나는 “시간적인 태초”를 말하고!

다른 하나는 “공간적인 태초” 즉 “장소적인 태초”를 말해요.

 

창세기의 태초는 “시간 개념”이라고 한다면,

요한복음의 태초는 이미 선재(先在)해 있는 “나라 개념”이에요.

 

그러니까 두 태초가 있어요.

 

“시간의 시작을 알리는 태초가 있고!”

“시간 바깥에 있는 다른 세상인 태초가 있어요.”

 

시간이 적용되는 나라를 역사라고 하고,

시간 바깥에 있는 나라를 묵시라고 합니다.

역사는 이 세상나라이고, 묵시는 이 세상에 속하지 아니한 나라입니다.

예수님이 지금 말씀 하시는 나라가 바로 묵시에 속한 나라에요.

 

묵시라는 말은 역사의 상대적인 것이에요.

묵시를 다른 말로 영원이라고도 해요.

영원이란? 시간이 없는 나라에요.

 

영원하다는 말은 시간이 길다는 말이 아니고 시간 개념이 없다는 말이에요.

이러한 상태를 영생이라고 합니다.

영생이란? 항상 존재한다는 말입니다.

 

성경에서는 영생의 삶을 “오늘 날” 이라고 하는 겁니다.

 

오늘 날이란? “항상” “현재”란 말이에요.

항상 존재하는 날을 말해요.

이렇게 항상 존재하는 자를 “산 자”라고 합니다.

하나님은 이러한 산 자의 하나님이에요.

그래서 하나님을 일컬어 영생하시는 하나님이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주기도문에서 “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 라고 하지요.

 

여기서 오늘날 일용할 양식이란? 세상에서 오늘 하루 먹을 양식이란 말이 아니에요.

성도가 구하는 양식은 세상에 양식이 아니에요.

세상 바깥에 있는 영생의 나라 양식을 구하라는 말입니다.

 

하늘나라 양식이란 말입니다.

하늘나라 양식이 바로 예수님이에요.

그래서 예수님을 일컬어 “하늘로서 온 생명의 떡”이라고 하는 겁니다.

 

예수님이 그러잖아요.

나는 하늘로서 내려온 산 떡이라고 하면서 누구든지 나를 먹는 자는 영생을 얻는다고 하잖아요.

그러니 오늘날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 라는 기도는 예수 믿으라는 말이에요.

예수 안에서 살라는 말입니다.

 

그러니까 그 나라를 의식하고 살라는 말입니다.

비록 역사 속에서 살고 있지만 예수 안에서 묵시로 살고 있다는 것을 깨닫고 세상을 초월하여서 살 수 있게 해 달라고 기도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게 오늘 날로 사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역사 속에서 묵시로 오늘 날로 사셨어요.

어디에 있어도 어떤 환경에 처하여도 영생으로 살았어요.

예수님은 세상에 살면서도 세상사람 아닌 것으로 살고 계신 것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에요.

역사 속에서 묵시적 존재로 살아야 해요.

성령이 그렇게 간섭을 하시는 것입니다.

육신의 소욕을 죽이고 성령의 소욕으로 살게 하시는 것입니다.

육적 가치로 살지 말고 영적 가치로 살게 하시는 것입니다.

 

두 사람이 있어요.

 

겉 사람과 속 사람이 있어요.

겉 사람은 역사에 속하였고,

속 사람은 묵시에 속하였어요.

 

몸뚱이는 세상 것으로 살지만, 속 사람은 영적인 것으로 삽니다.

이 둘이 항상 싸우게 되어 있어요.

그래서 성도의 삶이 고난인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묵시에서 역사로 오신 것은 역사 속에 있는 자기 백성들에게 역사 바깥에 있는 세상을 알려 주시고자 함이에요.

역사에서 묵시로 빼내려고 오신 거예요.

역사는 보이는 나라이지만 묵시는 보이지 않는 나라에요.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天地)를 창조 했다고 했지요.

무슨 말인가요?

보이지 않는 나라에 계신 분이 보이는 나라를 만들었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성경의 시작을 알리는 창세기 1장 1절에서 시간 바깥 세상에 계시던 하나님께서 시간이 적용되는 나라를 만들었다고 말씀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시작이라는 말은 누군가가 일을 하기 시작을 하였다는 말이잖아요.

그렇다면 태초 전에 누가 있다는 말이 되겠지요.

그럼 태초 전에 누가 계셨습니다.

 

그건 누가 천지를 창조 했는지를 보면 알 수가 있어요.

누가 천지를 창조 했나요?

하나님입니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 했다고 하잖아요.

 

그럼 태초 전에 있는 세상은 하나님 나라가 되겠지요.

맞아요.

이 세상 바깥에 하나님 나라가 있었어요.

 

이걸 알아야 진리를 아는 자에요.

예수님이 유대인의 왕이고, 예수님의 나라는 이 세상에 없고 다른 곳에 있다는 것을 아는 사람이 진리에 속한 사람이에요.

진리에 속한 자는 예수님의 말씀을 알아들어요.

 

진리란? 세상 바깥 이야기에요.

 

이 세상에는 진리가 없어요.

그러니 빌라도가 예수님이 “내가 유대인의 왕이다” 라고 하니 뜬금없이 “진리가 무엇이냐” 고 묻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자 예수님이 그건 너는 말해줘도 몰라!

하지만 내 백성들은 다 알아 들어!

넌 알 것 없어!

그러는 겁니다.

 

빌라도는 기껏해야 이 세상 것만 알아요.

그러니 이 세상에 속하지 아니한 나라를 말해주어도 모르는 겁니다.

동문서답 일 수밖에 없지요.

 

진리에 속한 자는 진리를 다 알게 되어 있어요.

진리는 우리가 노력한다고 알아지는 것이 아니에요.

진리이신 분이 오셔서 진리의 나라에 속한 자들에게 진리에 대하여 알려주세요.

 

그러니 진리에 대하여 논쟁하거나 변론할 필요가 없는 겁니다.

제가 가장 싫어하는 것이 복음을 가지고 너~ 잘났니! 내~ 잘났니! 잘난 척 하면서 변론하거나 논쟁하는 것입니다.

복음은 논쟁이나 변론으로 알아지는 것이 아니에요.

진리에 속한 자는 알아듣고 진리에 속하지 않은 자는 아무리 말해 주어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한 두 번 복음을 전해서 안 들으면 그만 해야지 그걸 알려 주겠다고 설치고 다니면 안 되어요.

변론하고 논쟁하면 반드시 다투게 되어 있어요.

그러니 논쟁하지 말고 변론하지 마세요.

그냥 깨달아지는 것으로 감사하고 사세요.

 

다시 말합니다.

하나님 나라는 이 세상에서는 알 수가 없어요.

왜냐하면! 이 세상 나라 바깥에 있는 나라이기 때문입니다.

세상 바깥에 있는 나라는 이 세상 방식으로 설명을 할 수가 없어요.

 

설명이란? 본 것을 이야기 해 주는 거잖아요.

그런데 이 세상 바깥에 있는 그 나라는 그 누구도 보지 못하였어요.

누군가가 우리에게 보여 주어야지만 알게 되어요.

그래야 설명 할 수가 있어요.

 

사도바울이 삼층천을 보고 와서 가히 세상 말로는 표현을 못하겠다고 하지요.

그러나 세상 바깥에 속한 사람들은 알아들어요.

믿어진단 말입니다.

 

지금 세상 바깥 나라에 계시던 예수님이 오셨어요.

예수님이 오셔서 그 나라를 이야기를 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이 말씀해 주시는 것을 듣고 믿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나라는 눈으로 보는 나라가 아니고 마음으로 믿는 나라에요.

하나님은 보이지 않는 이 나라를 믿어지게 하시려고 그 나라 백성들에게 믿음을 선물로 주어서 그 나라가 믿어지도록 해 주신 것입니다.

 

믿음을 바라는 것들이 실상이요 보지 못한 것들이 증거라고 하지요.

믿음이 오면 바라는 것들을 실상으로 믿어지게 되어요.

그러니 보지 못한 것을 본 것처럼 증거하게 되는 겁니다.

 

성경은 믿음이 없으면 도무지 알 수가 없어요.

왜냐하면! 모든 성경은 보이지 않는 그 나라에 관한 이야기들을 해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 나라가 어떤 나라인가?

아들의 나라에요.

 

천국을 일컬어 “아들의 나라” 라고 하지요.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는 나라에요.

천국에 살 아들들은 이미 예정이 되어 있어요.

이들을 일컬어 창세전에 “영생 주시기로 작정이 된 자” 들이라고 합니다.

 

하나님 앞에는 두 족보가 있습니다.

어린 양의 족보와 다른 족보입니다.

이걸 생명책과 다른 책들이라고 합니다.

“어린 양의 족보”에는 영생을 주시기로 작정된 자들이 녹명이 되어 있고 다른 책에는 땅에 속한 자들이 기록되어 있어요.

 

하나님은 아들을 보내서 창세전에 어린 양의 생명책에 녹명이 된 그 나라 백성들을 찾아오라고 하신 겁니다.

예수님이 창세전에 아버지와 언약을 하실 때 어린 양의 생명책에 녹명이 된 자들에게만 영생을 주시기로 작정을 하셨어요.

그래서 예수님이 자기 족보에 녹명이 된 자기 백성들을 찾으러 오신 겁니다.

 

여기서 눈여겨보아야 할 대목이 “영생을 주시기로 작정이 되었다” 는 말씀이에요.

무엇이라고요?

“영생을 주신다” 는 말씀입니다.

자기 백성이면 가만히 있어도 공짜로 주어요.

그러니 영생을 얻고자 일체의 노력이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인간들은 영생을 따내고자 해요.

어떤 부자 청년이 예수님에게 찾아와서 “선생이여 어떻게 하면 영생을 얻을 수 있습니까?” 라고 묻잖아요.

자기는 어려서부터 율법을 열심히 지켰다고 합니다.

그런데 아직도 영생을 얻지 못하였다고 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에게 와서 어떻게 하면 영생을 얻을 수 있는지 방법을 좀 알려 달라고 하고 있는 것입니다.

방법만 알면 자기 힘으로 영생을 따낼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게 육이에요.

인간들의 사고에요.

 

그래서 인간들이 만든 모든 종교에서는 영생을 따내라고 합니다.

여기서 나온 말이 지성이면 감천한다는 말이 나온 겁니다.

땅에서 지극정성으로 빌면 신도 감동을 하여서 영생을 준다는 겁니다.

 

그러나 성경은 영생은 우리의 열심이나 정성의 댓가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고 합니다.

그냥 공짜로 주어진다고 하고 있어요.

영생 주시기로 작정이 된 자들에게 공짜로 주어져요.

 

보세요.

영생을 주시기로 작정이 되었다고 하잖아요.

영생을 주신대요.

그것도 아무 댓가 없이 공짜로 말이에요.

 

이런 말씀에 눈이 번쩍 뜨이고 귀가 활짝 열려야 해요.

속된 말로 필이 확~ 꽂혀야 한단 말입니다.

이러한 말씀들이 믿어지는 사람이야 말로 복을 받은 성도에요.

그 나라 백성이에요.

창세전에 어린 양의 생명책에 녹명이 된 자들이란 말입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이 이 세상 오셔서 생명책을 가지고 그 안에 녹명이 된 자기 백성들을 하나씩 하나씩 찾아 가서 영생을 주시는 겁니다.

단 한 사람도 빼 놓지 않고 다 주세요.

그러니 영생에 대하여 고민하지 마세요.

나 구원 못 받으면 어쩔까 염려하거나 고민하지 마세요.

 

생명책에 녹명이 되었으면 반드시 예수 믿게 되어 있고 녹명 되어 있지 않으면 죽었다 깨어나도 예수를 못 믿어요.

여러분이 예수에 대하여 알고 싶고 그 나라에 대하여 관심이 가져진다는 것은 곧 어린 양의 생명책에 녹명이 되었다는 증거일 수 있으니 염려를 붙들어 매 놓고 감사하면서 사세요.

 

구원이니,

영생이니,

죄사함이니,

축복이니,

은혜니,,,하는 것들은 어떻게 하면 얻을 수 있을까 고민하지 마세요.

 

이러한 것들은 예수님의 자기 백성들에겐 공짜로 주어져요.

아무 공로 없이 말이에요.

이러한 것들을 따 내라고 하는 자들은 다 사기꾼이에요.

이 시대 교회 안에는 사기꾼들이 우굴 우굴해요.

그러니 정신 바짝 차리셔야 합니다.

 

우린 영생이 있는 줄도 모르고 살았어요.

그런데 어느 날 예수님이 찾아 오셔서 따로 불러내시는 겁니다.

그리고는 남들 몰래 살짝 영생을 주셨어요.

 

영생을 받고 보니 그 동안 있는 줄도 모르고 전혀 생각해 보지도 않고 감지하지도 못하던 이 세상 바깥의 나라가 보이고 믿어지는 것입니다.

삶에 안테나가 자꾸만 그 쪽으로 향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그 나라가 궁금한 것입니다.

그래서 그 나라에 소식을 자꾸만 듣고자 애를 쓰게 되는 것입니다.

 

세상 나라에서 사는 것 보다 세상 바깥에 있는 그 나라에 더 신경이 써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세상에서 나그네와 행인처럼 살게 되는 것입니다.

아!~ 내 나라는 여기에 있지 않고 세상 바깥에 있다는 믿음으로 살게 되는 것입니다.

성도에게는 이런 일이 자연적으로 일어나게 되어 있어요.

 

그래서 성도는 하나님에게 그 나라와 그 나라에 통용되는 의를 구하고 찾게 되는 것입니다.

그 나라에 의가 바로 예수님의 피인 겁니다.

예수님이 자기 피를 자기 백성들에게 뿌려 주셨어요.

그러니 천국 백성들의 특징은 모두가 예수님의 피를 바르고 있다는 것입니다.

 

피 없으면 가짜에요.

예수님의 피는 천국 백성들의 주민등록증과 같아요.

천국에 문지기가 주민등록증을 확인해요.

그러니 천국에 주민등록증을 잘 간수하세요.

누가 뭐라고 하면 이걸 보여 주어야하니까요.

 

그래서 저는 예수님의 피를 비유적으로 노름판에 장땡이와 같은 것이라고 표현을 하는 겁니다.

영생을 노름판에 장땡이로 표현을 해서 죄송합니다만!

하지만 이것만큼 실감나는 것이 없을 듯싶어서 부득불 표현을 하는 것이니 이해하세요.

 

노름판에서는 끗발이 쎈 사람이 최고에요.

그런데 그 끗발 중에서 장땡이가 최고에요.

단풍 잎사귀 둘이에요.

이것만 가지고 있으면 든든해요.

 

그 누구도 두렵지가 않아요.

이건 핵무기보다 더 강한 무기에요.

모든 입을 닫게 하고 잠재우는 능력이에요.

 

예수님의 피가 그렇단 말입니다.

죄도 이겨요.

죽음도 이겨요.

마귀도 꼼짝 못해요.

 

그런데 우리가 지금 이런 패(牌)를 가지고 있어요.

얼마나 크고 대단한 일입니까.

놀랍지 않으세요.

 

이게 놀라워야 해요.

그래야 세상이 작게 보여요.

세상살이가 아무리 힘들어도 이 패(牌)만 가지고 있으면 너끈히 이겨낼 수가 있어요.

 

이런 말씀을 들으면 가슴이 쿵쾅거려야 해요.

마치 사랑하는 애인을 만난 듯이 떨림이 일어나야 한단 말입니다.

설레임과 흥분이 일어나야 한단 말입니다.

황홀해야 합니다.

 

히브리서 11장을 보면 보이는 나라와 보이지 않는 두 나라가 나오지요.

 

보이는 것은 보이지 않는 것으로 말미암았다고 하지요.

보이는 것은 보이지 않는 것의 상대적인 것이에요.

상대를 드러내는 짝이에요.

 

이렇게 되면 보이지 않는 나라가 진짜이고 보이는 나라는 가짜가 되는 겁니다.

묵시가 실상이고, 역사는 허상이에요.

묵시가 생명이고, 역사는 죽음이에요.

 

이걸 알려 주시려고 역사 속에서도 보이는 세계와 보이지 않는 두 세계를 만드신 겁니다.

그게 바로 천지창조입니다.

천지(天地)란? 하늘과 땅이란 말입니다.

하늘나라가 있고 땅 나라가 있어요.

이 둘은 서로 대조하고 있어요.

 

하늘나라는 생명의 나라이고, 땅 나라는 죽은 나라에요.

그래서 이 세상을 일컬어 장망성이라고 하는 겁니다.

장망성이란? 죽은 자들이 살아가는 곳이란 말입니다.

 

산 자들은 땅에 사람이 아니고 하늘에 사람이에요.

땅에 속한 자들은 죽었고,

하늘에 속한 자들은 산 자들이에요.

생명이 하늘에서 와요.

 

땅은 독자적으로 생명을 만들 수가 없어요.

하늘에서 주는 것을 받아야 해요.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신 것은 자기 생명을 주시기 위함이에요.

예수님의 생명을 받으면 땅 사람에서 하늘 사람으로 거듭나요.

이걸 구원이라고 합니다.

 

신앙은 하나님으로부터 받는 것입니다.

그리고 신앙생활은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것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불신앙은 하나님이 주는 것을 받지 않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의를 받지 않고 자기가 의를 만들어 내고자 하는 것입니다.

 

자기가 죽었다고 생각하는 자는 하나님의 의를 달라고 해요.

그러나 자기가 살았다고 생각하면 섬기겠다고 해요.

이러다 망한 자들이 바로 율법주의자들이에요.

율법주의자들은 자기들이 율법을 지켰기 때문에 의롭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예수님이 의를 준다고 하여도 싫다고 거절한 겁니다.

 

사도바울은 이런 모습을 자기 의를 세우려고 하나님의 의에 복종치 않았다고 했어요.

죽은 놈이 산 자 행세를 하는 것입니다.

이게 죄에요.

 

구원이란? 땅에 나라에서 하늘나라로 이사 가는 겁니다.

 

오늘 본문을 통해서 우리는 심각한 질문을 받아야 해요.

저와 여러분은 예수를 믿는 사람들입니다.

예수를 믿는다고 한다면 십자가에 달린 우편 강도처럼 예수여 당신의 나라로 나를 데리고 가 달라고 하여야 합니다.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그러셨지요.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고!

그의 나라란? 예수님의 나라에요.

예수님의 나라에 가려면 예수의 나라에서 인정하는 의가 있어야 합니다.

 

마치 미국에 가려면 미국에서 발행하는 비자를 받아야 하듯이 예수님의 나라에 가려면 예수님께서 발급해 주는 비자를 받아야 한단 말입니다.

그 비자가 바로 그 나라에 의입니다.

 

그럼 우리는 이 세상에서 예수의 나라에게 들어갈 의에 대하여 구해야 합니다.

그 의를 받아야 한단 말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를 걱정하지 말고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고 하신 겁니다.

 

그 나라의 의는 예수님이 주세요.

예수님께서 그 나라의 왕으로 오신 거에요.

그 나라 백성들은 예수가 자신들의 왕인 줄 알아보아요.

그래서 예수를 주와 그리스도로 영접하고 믿게 되는 것입니다.

 

그 나라가 믿어지십니까?

그럼 당신은 그 나라 백성입니다.

그렇다고 한다면 세상 것으로 인하여 희비하지 마세요.

 

그냥 세상에 잠시 마실 나왔다고 생각하고 사세요.

조금 불편하면 불편한대로 사세요.

있다고 자랑하지도 말고 없다고 징징거리지도 마세요.

이 세상 것은 다 지나가는 형적이니까요.

 

있다고 행복한 것도 아니고 없다고 불행한 것도 아니에요.

행복은 외부 조건으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에요.

마음속에서부터 주어지는 것이에요.

 

주님께서 우리의 마음과 생각을 지켜 주세요.

세상 것에 빼앗기지 않도록 말입니다.

성령 안에서 의와 평강과 희락을 누릴 수 있게 해 주세요.

 

인생살이가 나그네 길이라 생각하면 불편해도 견딜만해요.

여기서 붙박이처럼 박혀서 살려고 하니까 세상 것으로 희비하게 되는 것입니다.

잠시 잠간 후면 주께서 오세요.

우리를 데리러 오신다니까요.

 

세월 잠깐입니다.

세월이 얼마나 빨리 가는지 모르겠어요.

진짜 화살같이 지나간다는 것을 느껴요.

 

시간이란?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따라서 가는 것이 달라져요.

사랑하는 사람과 있으면 시간이 금방 지나가지요.

반대로 미운 사람하고 있으면 안 가지요.

 

결국 시간이란 내가 어떤 구조 속에서 사느냐에 따라서 빨리 가기도 하고 늦게 가기도 해요.

주님의 사랑 안에서 살면 금방 지나가요.

주님이 곧 오세요.

 

그러니 신랑을 기다리는 신부처럼 기쁜 마음으로 사시기 바랍니다.

 

 

기도합시다.

하나님 아버지! 땅 강아지처럼 흙만 퍼 먹고 살던 자들에게 하늘나라가 있다는 것이 믿어지게 하시고 보여지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주님 기다리는 기쁨으로 살아가게 해 주세요. 우리의 마음이 세상 것에 빼앗기지 않도록 주께서 지켜 주세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여호와의 정하신 날"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보라 용광로 불 같은 날이 이르리니

교만한 자와 악을 행하는 자는 다 지푸라기 같을 것이라

말라기 4: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