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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룡산 불회사(德龍山佛會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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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이야기

2021. 5. 6.

덕룡산 불회사(德龍山佛會寺)

- 전남 나주시 다도면 마산리

 

불회사는 동진 태화 원년(서기 366년) 인도의 마라난타 스님께서 창건하였고,

당나라 현경 초에(서기 656년) 신라의 희연조사(熙演祖師)께서 재창하였으며,

원말 지원(至元) 초 (서기 1264년경) 원진국사(圓眞國師)께서 삼창(三創)하였습니다.

조선 정조 22년(서기 1798년) 2월 덕룡산에 큰 불이나 사찰의 전각이 완전히 소실된 것을 당시의 주지 지명(知明)스님이

기미년(서기 1799년) 5월 15일 상량하였고, 1808년에 전각을 모두 복원였습니다.

그러나 6.25전쟁으로인해 몇 개의 전각만을 남겨두고 모두 모두 소실된 것을 불회사 회주 정연스님이 1991년에 주지로 부임하여 25년 간의 불사를 통해 6.25때 소실된 것을 모두 복원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

「신증동국여지승람」 등의 지리서를 보면 불회사는 과거에 불호사(佛護寺)로 기록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처음 창건 때는 불호사로 불리다가 1808년(순조 8) 무렵부터 지금과 같은 불회사로 절 이름이 바뀐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불회사에 전해 내려오는 전설.

원진국사는 한때 자신에게 은혜를 입은 적이 있는 호랑이의 도움으로 경상도 안동 땅에서 시주를 얻어 대웅전을 중건하게 되었습니다. 공사가 이루어지자 원진국사는 좋은 날을 택하여 상량식을 가질 예정이었으나, 일의 추진이 늦어져 어느새 해가 저물고 말았습니다. 이에 원진국사는 산꼭대기에 올라가 기도를 하여 지는 해를 붙잡아두고, 예정된 날짜에 상량식을 마쳤다는 것입니다. 이때 원진국사가 기도하던 자리가 바로 일봉암이라고 합니다.

(불회사 홈페이지 발췌)

 

백제는 침류왕 원년(384), 진나라에서 온 인도 승려 마라난타(摩羅難陀)가 전래하였다.

왕은 385년, 마라난타를 위해 새 도읍 한산주(漢山州/현, 경기도 광주시)에 절을 지어주었다.

(삼국유사에 나오는 내용)

마라난타는 인도의 승려로 백제에 불교를 전래한 인물로 나온다. 중국 동진(東晉)에서 옴.

마라난타에 대한 기록은 거의 없는 모양이다.

영광 불갑사에 가면 마라난타에 대한 자료가 있을까?

홈페이지의 366년과 삼국유사 384년은 많은 차이가 난다. 어쩌면 360년 경 마라난타가 백제에 들어와 포교하였는지

모른다. 그리고 384년 왕의 부름으로 궁궐에 가서 왕을 만나고 침류왕은 불교를 인정하였는지도 모른다.

1264년 원진국사가 삼창하였다는 홈페이지 내용도 의심스럽다.

동사열전엔 원진국사는 1414년 입적하였다 한다. 무려 150년을 살았다는 이야기.

1355년에 형과 함께 과거급제하였다면 이때가 대략 20세 전후이지 않을까?

'원진국사'를 인터넷 검색을 하니, 원진국사(1171~1221), 나주 불회사 원진국사탑 또는 원진국사부도 등으로 검색됨.

<고려중기의 원진>과 <고려 말, 조선 초의 생존했던 원진>은 다른 승려일까?

부도탑의 명문은 고려 중기를 가르키고 있다. 사찰의 중창과 호랑이와 처녀 관련 전설은 고려 말, 조선 초의 원진을

이야기하고 있다. 포항 보경사에도 원진국사탑이 있다.

 

불회사는 2016년 9월 초순, 운주사 가는 길에 들렸다.

목적지는 운주사였고 불회사란 사찰이 있는 줄도 몰랐다. 사전 지식이 없이 들렸던 사찰이다.

 

일주문 / 초전성지덕룡산불회사

 

진여문

진여문이 사천왕문을 대신하며 탱화의 사천왕상이 봉안되어 있다.

대양루 / 2000년 건립

범종루

대웅전 / 보물 제1310호

보수 공사 중이라 내부를 볼 수 없었다.

비자나무 숲 / 300 ~ 400년 된 비자나무의 숲이다.

석장승 / 국가민속문화재 제11호

숙종 45년(1719) 전후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

 

상사화가 피어 있어서 즐거웠다.

나한전, 명부전, 부도밭, 삼성각, 극락전 등 자세히 보지 않았다.

전남 화순으로 여행을 가면 만연사와 함께 꼭 들려봐야할 사찰이다.

원진국사탑도 꼭 봐야 한다.

 

<원진국사(圓眞國師)>

명문가 집안의 다섯 형제 중 세째로 태어남. 속명은 조한룡(曺漢龍).

부친은 철야군 조정통으로 승려 신돈을 탄핵하는 상소를 올린 인물이다.

공민왕 4년(1355) 형 경룡과 함께 과거에 급제함.

고려 멸망 이후 '충신불사이군'의 뜻을 세우고 벼슬을 버리고 승려가 됨. 법명 세염(洗染).

조선 조, 모친의 간곡한 청으로 벼슬길에 나가 참의(參議)까지 함.

(조선 조에서 형제 모두 벼슬을 함. 경룡/우의정, 응룡/판서, 한룡/참의, 변룡/참의, 현룡/감사)

모친 사후 다시 승려가 됨. 법명을 세염에서 원진으로 바꿈.

월출산 도갑사, 덕룡산 불회사 등에 주석함. 폐허가 된 불회사를 중창함.

불회사 중창과 관련하여 호랑이와 처녀가 등장하는 전설의 주인공임.

태종 14년(1414) 입적, 세조가 '국사'로 추증함.

(책 - 동사열전/ 동사열전에 사용한 '진'자는 인터넷 옥편에 나오지 않음. 보일 시변에 참 진)

 

조한룡(?~1415)은 현 금천면 죽촌리 화기마을에서 고려 시중 조정통의 셋째아들로 태어나 고려 공민왕때 벼슬이 시중(侍中)에 이르렀는데, 그의 5형제가 모두 등과하여 세상에서 ‘오룡’이라 불렀다.
조한룡은 특히 효자로 이름난 사람으로 병으로 몸져누운 아버지가 한겨울에 잉어를 잡숫고 싶다 하여 연못에 나가 얼음을 깨니 잉어 한 마리가 튀어 올라와 이를 조리하여 드렸다고 하며, 지금도 그 연못이 효자못이라는 이름으로 남아 있다.
조한룡은 고려가 망하자 불교에 입문하였다가 어머니에게 불효할 수 없다하여 다시 벼슬길에 나아가 명나라에 사신으로 가서 보의장군(保義將軍)의 관직을 받고 돌아와 늙은 어머니를 기쁘게 했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가야산에 들어가 중이 되었고 도갑사를 거쳐 현 다도면 불회사를 삼창하고, 화순 만연사 법당을 중건한 후에 원진국사의 법호를 얻었다.
1415년에 입적하여 청간대사(淸簡大師)의 시호가 내렸다.
현재 불회사 나한전에는 그의 영정이 있고 경내에 부도가 남아 있어 전라남도 유형문화재로 지정되었다.
또한 그는 효자로 유명하여 왕이 그가 태어난 곳을 ‘효자리’라 이름짓고, 조선시대 세종때 여충선효(麗忠鮮孝)라는 ‘효자리비’를 세웠다. 1971년에는 그의 고향에 ‘충효사’라는 사우를 건립하여 그를 기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