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합자료

권동철(權銅哲) 2015. 7. 19. 23:20

 

부유하는 삶-상공에서의 킬리만자로 산, 227×181.5Oil on canvas, 2012

 

 

 

이향남 작가의 <인류학적 답사기-부유하는 삶>은 오랜 세월 여행자로서 세계 곳곳을 누볐던 작가의 최근 7,8년간의 여행을 기록한 인류학적 보고서라고 할 수 있다. 아프리카, 중남미, 중국, 유럽, 혹은 내셔널지오그래픽 채널의 애청자라면 떠오를 이름들, 가령 붉은 사막, 잠베지강, 오카방고 델타, 킬리만자로, 황산, 이스터섬, 소금산 살라미스, 우유니 소금사막, 마추픽추, 몽셸 미셸 등을 작가는 손금 들여다보듯이 훤히 꿰뚫고 기억하는 사람이다. 작가는 한번 떠나면 보통 한 달에서 한 달 반 이상의 기간이 소요되는 여행 중에 트래킹과 버스, 자전거, 트럭 여행을 하며 험난한 장소에 거주한다.

 

<Anthropologist Promenade: A Drifting Life> by Lee Hyang-nam is an anthropologist report of the author's travel around the world for the past seven or eight years. The author has firm grasp of the names of Africa, Latin America, China, Europe, and the names avid readers of <National Geographic> might know well such as red dessert, Zambezi river, Okavango Delta, Kilimanjaro, Mount Huangshan, Easter island, Salamis, Salar de Uyuni, Machu Picchu, and Mont St. Michel. Her trip usually takes a month and a half or so, and she resides in tough places while trekking and traveling by bike, bus, and truck.

 

 

 

 

 

    부유하는 삶-나미비아 붉은 사막의 아침, 65×50, 2012

 

 

 

작가가 가급적 오지, 말하자면 문명의 탐욕이 통치하지 않는 풍경에 일시적 체류를 기탁하는 것은 인간 이전의 인간, 세상에 감각적으로거주한 인간으로의 회귀를 욕망하기 때문일 것이다. 걷기는 만남에 겸손한 자들의 의식(儀式)이다. 걷는 자는 생각하고 계산하고 인식하는 머리를 잃는 중에 유한한 몸의 한계를 환대하고, 그럼으로써 삶의 우연성, 일시성을 받아들이고, 그럼으로써 죽음을 환대할 기회를 만난다.

 

The author's temporary sojourn in the wild, the landscape where the greed of the civilization does not govern, must signify her desire for the return to the state of human before human who resided 'sensuously' in the world. Walking is the rite of those who are modest in the manner of encountering. The walker shows hospitality to the limits of the body while losing the brain that thinks, calculates, and perceives, accepts the contingency and temporariness of life, and thus offer hospitality to the death.

 

 

 

 

   

    부유하는 삶-피라미드와 사막, 80×80, 2012

 

 

 

작가의 보자기는 가벼움에서 떠다님으로, 떠다님에서 자유로, 자유에서 가벼움으로, 가벼움에서 강함으로 계속 확장되는 의미망을 갖는다. 나는 작가의 보자기에서 거주의 무거움과 유목의 가벼움, 거주의 불안과 유목의 평화, 거주의 집착과 유목의 자유라는 대립을 읽는다. 화면에서 빠진 인간 형상을 대체한 손수건은 삶과 인간 혹은 작가 자신의 이미지로서 많은 내포(connotation)를 갖는다.

 

From her kerchief I read the opposition between the heaviness of residence and the lightness of a nomadism, between anxiety of residence and peace of nomadism, the obsession of residence and freedom of nomadism. The shape of a human being that never appears on the screen is transformed into substitutes of a dream scene through various connotations of the kerchief.

 

 

 

 

 

 ▲서양화가 이향남(ARTIST, LEE HYANG NAM). 홍익대 미술대학원 회화전공 졸업 및 단국대 대학원 조형학예술학과 서양화전공(미술학 박사). 인사아트센터(서울), 유나이티드 갤러리, 갤러리 라메르, 갤러리 토포하우스 등에서 개인전을 가졌다. 남송국제아트쇼(성남아트센터),GRANDS MARCHES D`ART CONTEMPORAIN PROCHAINES MANIFESTATIONS (PLACE DE LA BASTILLE, 프랑스), The Edge Gallery(뉴질랜드 오클랜드 Aoter Center Museum), Modern Art Gallery(몽골 울란바토르) 등 부스개인전 및 아트페어 10회를 가졌다.

 

 

 

그녀의 화면은 물속처럼, 지구 행성이 떠돌고 있는 광막한 우주처럼, 느리고 고요하고 묵직하다. 작품을 본 뒤에도 잔상처럼 따라오는 것은 무겁게 내려앉은 풍경 위를 날고 있는 보자기(의 존재)이 가리키는 바람이다. 작가는 그럼에도떠나고 보고 육화하고 그리는 자신의 소명을 긍정한다. 미세한 바람때문에, 살아 움직이는 모든 것들이 발산하는 작고 사소한 움직임 때문에 살만한 삶이라고 작가는 말한다. 삶이 덧없는 여행이라면 그게 터벅터벅 오지를 걷는 중에 작가가 늘 만나는 삶의 진실이라면 약간 더 무거워진들 더 느려진들 더 우울할 일은 아니다.

 

Her screen is slow, calm, and weighty as if deep in the water, or in the wide universe where the earth drifts. The wind which (the existence of) the floating kerchief on the heavy landscape refers to remains as an after-image on my mind. The author, 'nevertheless,' affirms positively her calling of leaving, seeing, and drawing. She says that the life is worth living because of the wind, because of the minute and trivial movements of all living creatures. If life is transient traveling, and if it is the truth of life the author encounters while trudging along the wild, we do not need to be depressed even if it gets a little heavy or slow.

 

                                                                                                                     =양효실(미술평론)

 

 

 

 

출처=이코노믹리뷰 201419일 기사

 

 

 

 

잘 보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