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음악 인문학

권동철(權銅哲) 2017. 4. 8. 21:27


Sprint, 193.9×259.1, 2015




희망의 몸짓에 휘날리는 갈기

 

인적 없는 황야를 향해 발걸음을 옮겼고, 나 자신을 두려워하며 산 속을 헤맸지요. 냇물에 내 가련한 모습이 비치기라도 하면 깜짝 놀라며 나를 피해 뒤로 물러났소. , 당신이 연민과 인정을 잃지 않았다면…….”<빌헬름 텔(WILHELM TELL), 프리드리히 폰 쉴러(Friedrich von Schiller) 지음, 이재영 옮김, 을유문화사>

 

 

지난밤 청록의 물살이 거세게 출렁였나보다. 비릿한 물 내음이 여명의 안개와 섞여 소리도 없이 후각을 파고들었다. 여전히 달빛여운이 흐릿하게 깔려 있는 광야(曠野). 해풍이 뭍으로 스며들자 킁킁거리며 코를 벌름거리던 말()들의 희끗한 갈기가 희뿌연 안개 속에 휘날리자 환상적인 군무가 펼쳐지듯 미묘한 풍경이 순간 각인됐다. 아주잠시동안이었다.

 

소록소록 빗줄기 지나가다 메마른 대지에 생명수를 선물하듯 조금씩 촉촉하게 젖어들었다. 비 그친 뒤의 햇살은 눈이 부시도록 깨끗하고 사물을 원형의 아름다움으로 더욱 부각시켰다. 부드럽고 유려한 등과 허리와 가슴의 탄력적인 근육은 곡선미를 더해 율동적으로 비쳐졌다. 천천히 한 걸음씩 옮기다 온 몸을 흔들며 물기를 털어낼 때 바람에 날리는 벚꽃 잎처럼 물방울들이 허공에서 하얗게 부서지는 것이었다.

 

새잎이 돋아나는 아름드리 나무아래서 움트는 대지를 바라다본다. 꽃봉오리와 연둣빛 잎사귀에 내려앉는 영롱한 아침이슬의 차갑고 해맑은 따스함이 잠깐의 탄성만으로는 숨길 수 없는 매혹의 빛깔로 반짝였다. 어찌 그 찬란한 광영을 못 본채 지나칠 것인가. 첼리스트 파블로 카잘스(Pablo Casals)가 연주한 바흐의 무반주첼로모음곡 선율이 묵시의 눈빛에 세월의 흐름을 담고 무심히 엄중한 듯 흐르는데.

 

-하며 안도의 숨을 내쉬는 소리가 가늘게 들렸다. 눈물겨웠었나, 입가엔 잔잔한 미소가 흐른다. 여유로운 산보 서로를 바라보는 격려의 몸짓으로 자상하게 등을 토닥이는데 생의 깊은 회환을 되돌아보는 우수에 젖은 눈빛이 그윽하였다. 그런 마음에 스며드는 황혼의 시간 속으로 하루가 다르게 성장하는 자그마한 생명들이 가벼이 살랑살랑 흔들리는 것이 느껴왔다. 멜로디는 다감하고 부드러운 속삭임으로 강물처럼 흘러간다. 잠자던 가지에 생령을 불어넣는 저 뜨거운 관조의 노래이어라    




Sprint, 290.9×181.8Mixed Media, 2017




자아를 북돋우는 꿈

소통, 조화, 들숨과 날숨이 뿜어내는 입김, 산뜻하고 선명하게 들려오는 박자의 절묘함과 서로를 읽어내는 믿음의 희생의, 스스로 낮춰 더욱 아름다워지는 결집미학이다. 그들의 숨결은 바로 내 앞에서 느껴오듯 실제성의 생동감 넘치는 동적감흥을 전달한다.

 

가로2m90의 대작(大作), 박진감 넘치는 생의 열망 속으로 달려가는 무리 속에서 풋풋했던 순수시절에 내딛던 설렘의 첫걸음이 떠올라 두 손을 움켜잡으며 나도 다시 한 번 달리고 싶어지는 것이었다. 해빙기(解氷期)에 고개를 내민 돌부리들을 땅위로 끌어올려 뒹굴게 하는 멋을 부여하고 바람 속 회오리를 잠재우는 묘약이라고 누군가 나직하게 말했다.

    



Retrospection, 116.8×91, 2016


 


무엇?’이라고 되묻는 순간, 말발굽아래 잔돌들이 구르는 소리를 내는 듯 리얼한 마티에르와 시간을 가늠할 수 없는 흔적의 스크래치(scratch)가 눈에 들어왔다. 청회색 단색조화면너머 자유의 몸짓으로 질주하는 가슴 두근거리는 어떤 희열의 맥박을 생생하게 더욱 고조시키는 배후를 목격한 것이다.

 

완전함의 형상이란 이런 것인가. 뜨거운 입김을 대기에 흩날리는 일체의 마음 찬탄의 행진을 누가 멈출 수 있는가. 생의 진정한 의미를 찾기 위하여, 미래의 빛나는 영상의 주인공으로 스스로 성숙시켜 나아가는 저 하이데거(Martin Heidegger)의 기투(Entwurf). 오오 자아를 북돋우는 소망, 시간을 뛰어넘는 영혼을 가지고 싶다했던가. 희망의 꽃이 되기를!


경제월간 인사이트코리아(Insight Korea) 20174월호

 

 


배병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