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가의 발자취(年代記)

권동철(權銅哲) 2021. 8. 6. 20:59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정상화 전시전경. 사진=권동철

 

 

필자가 ‘화가 정상화 탐구’를 4회에 걸쳐 기획한 배경은 정상화 화백의 작품세계가 ‘오늘날 한국단색화와 어떤 맥락의 관계성과 독자성을 담보하고 있는가.’라는 물음 때문이다. 현재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에서 ‘정상화(5월22~9월26일, 2021)’전시가 애호가들의 뜨거운 관심을 모으며 성황리 전시 중이다. 나아가 ‘화가 정상화 탐구’기획은 국립현대미술관이 제작한 ‘정상화도록’에 수록된 평론 및 전시의 섹션별 내용을 중심으로 재구성했음을 밝힌다.<편집자 주>

 

 

작품 64-7, 1964, 캔버스에 유채, 162×130㎝. 국립현대미술관 소장. 사진=국립현대미술관

 

 

추상실험(EXPERIMENTATION ON THE ABSTRACT, 1953-1968)

 

1953년부터 68년까지는 정상화가 대학입학 이후 일본 고베로 이주하기 전까지 주로 서울에서 활동하던 시기이다. 대학재학시절에는 사물이나 인물, 풍경 등을 재현하기 위한 기초 훈련을 받아 정물화나 인물크로키와 같은 구상회화를 주로 그렸지만, 1957년 졸업 이후 앵포르멜경향의 추상회화를 제작하기 시작했다.

 

현대미술가협회(1956-61)와 악뛰엘(1962-64)등에서 당대 젊은 작가들과 함께 비정형의 표현주의적 추상에 몰두했던 정상화는 전후(戰後) 어두운 사회적 분위기를 어떻게 화폭에 담을 수 있을지 주목했다.

 

그는 이 시기의 그림을 다음과 같이 회상했다. “붓을 들고 작업을 한 적은 거의 없었어요. 빗자루나 넓적한 솔을 사용해서 마음껏 내 자신을 표현했지요. 물감을 닥치는 대로 캔버스에 던지고 뭉개고 뿌리는 걸로 일관했지요. 그토록 강렬한 그림을 제작한 것은 내 기억에 없습니다. (서성록, 환원적 구조로서의 평면정상화씨의 근작전에 즈음하여, 정상화전, 갤러리현대, 1989)”

 

 

작품 65-B, 1965, 캔버스에 유채, 162×130.3㎝. 삼성미술관 리움 소장. 사진=이만홍

 

 

정상화 작가는 강렬한 몸짓으로 역동적인 화면을 구사하고, 물감을 던지고 뭉개버림으로써 전후 1세대 청년작가로서의 뜨거운 에너지를 표출했다. ‘5회 현대전, 국립중앙공보관 1959’출품작이었던 <작품103, 58에는 구겨진 화포에 물감이 짓눌린 흔적이 보였으며, ‘1회 개인전, 국립중앙공보관, 62’에 출품되었던 원시1, 62’에는 유채를 덧발라 생긴 거친 마티에르 효과가 드러났다.

 

당시 유명 일간지에는 정상화(CHUNG SANG HWA)화백 원시, 1962’연작에 대해 액션과 타쉬즘의 표피적인 발작(방근택, 정리된 전위화단의 축도-정상화 개인미술전, 방근택, 한국일보, 19621114)”이라 평했다.

 

 

작품 68-1-9, 1968, 캔버스에 아크릴릭, 115.5×72.3㎝. 작가 소장. 사진=갤러리현대

 

 

1960년대 중반 무렵부터 앵포르멜의 후기적 요소를 보여주는 작품들이 등장했다. 19671차 도불(渡佛) 69년 일본 고베로 건너가기 전까지 그의 화면에서는 점차 격정의 에너지가 사라지고 갈색이나 회색 위주의 어두운 색조가 나타났다.

 

정상화 도불전, 신문회관, 1967’ 리플릿 표지로도 등장했던 작품65-B, 65’는 앵포르멜 특유의 두터운 마티에르 효과는 그대로였으나, 화면 위의 힘이 보다 정제되었음을 보여주고 있다.(한국과 서구의 전후추상미술:격정과 표현, 호암갤러리, 2000, 92)

 

=권동철, 이코노믹리뷰 2021.07.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