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시대의 美術人

권동철(權銅哲) 2021. 8. 6. 21:40

‘국립현대미술관 서울’ 정상화 전시전경. 사진=권동철

 

“국내에서 모노크롬 회화 특히 백색을 위주로 한 경향이 대두되고 있을 때, 정상화는 일본에서 이미 백색에 의한 모노크롬 작품을 시도하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당시 일본에서 이를 지켜보았던 평론가 나카하라 유스케가 한 다음의 지적을 보아서도 그는 개별적, 독자적으로 백색 모노크롬을 시도하고 있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70년대에 들어와서 백색에 의한 연작을 시도하였는데 그래서 백색 일색의 화가라는 이미지가 태어나기에 이르렀다. 70년대에 들어와서 서울을 중심으로 전개되었던 백색 혹은 흑색을 주로 한 작품의 동향과 직접적인 관계는 없지만, 그의 백색 일색의 작품은 한국의 그러한 동향에 호응하는 듯하다.(나카하라 유스케, 정상화의 작품, ‘정상화:페인팅 아케올로지’, 연미술, 2009)’

 

이를 시대적인 의식의 견인(牽引) 현상이라고 부를 수 없을까. 그와 같은 현대미술운동을 한 동료였던 김창열이 프랑스에서 그 독자적인 단색의 물방울 그림을 그린 것이나 뉴욕에 체류하고 있었던 김환기가 70년대에 들어오면서 화면 전체를 뒤덮는 전면점화를 시도한 것이 우연히도 같은 시기란 점은 참으로 흥미로운 사실이 아닐 수 없다.” △평면의 건축-정상화의 작가적 편력과 작품세계, 오광수 미술평론가.

 

 

무제 72-10, 1972, 캔버스에 아크릴릭, 115.5×73㎝. 작가 소장. 사진=갤러리현대

 

 

단색조추상으로의 전환(TRANSITION TO ABSTRACT MONOCHROME PAINTING, 1969-1977)

 

“1969년부터 1977년까지는 정상화(CHUNG SANG HWA)작가가 일본 고베로 이주하여 활동하던 고베(神戶))시기에 해당한다. 1년 남짓 파리로 떠났다가 고베로 건너가 체류했던 8년이라는 기간은 정상화 화백 작품 세계에 있어 가장 혁신적인 변화가 이루어졌던 시기였다. 작가 스스로도 일본에서 그림이 많이 달라졌다고 할 만큼 이 시기에는 다양한 기법이 실험되었으며, 앵포르멜 화풍에서 벗어나 단색조 회화로의 변모가 나타났다.” 오상길, 정상화 대담, 한국현대미술 다시 읽기 , ICAS, 2001, 320.

 

 

작품 G-3, 1972, 캔버스에 유채, 190×131cm. 국립현대미술관 소장. 사진=국립현대미술관제공

 

 

먼저 1969년부터 1972년까지는 작품에 원형 모티프가 자주 등장했다. 재료의 질감이 그대로 드러나던 기존 화면에서 작품 70-B-12, 1970)처럼 기하학적 도형을 단순화하여 보다 평면성을 추구하는 화면으로 표현 양식이 바뀌었다. 1972년부터는 기하학적 도형의 사용을 줄이고 백색을 사용하기 시작했는데, 백색의 범위가 점차 화면 전체로 넓어져 무제 72-12-A(1972)’와 같은 올 오버 페인팅 (all-over painting) 작품이 등장했다.

 

1973년부터는 백색 위주의 단색조 회화가 다량 제작되었고, 격자형 구조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시기별 대표 작품, 원로작가 디지털 아카이빙정상화, 2017. 출처:문화체육관광부, ()예술경영지원센터-원로작가 디지털 아카이빙 자료수집 연구지원 사업.

 

 

무제 74-F6-B, 1974, 캔버스에 유채, 226×181.5㎝. 국립현대미술관 소장. 사진=서스테인 웍스

 

 

특히 이 시기부터 그의 작품에 있어 격자형 구조가 주요한 요소로 자리 잡았다. 19679회 상파울루비엔날레, 상파울루, 브라질)에 출품하기 위해 방문했던 브라질에서 네모난 작은 돌로 넓은 대로를 메우고 있던 노동자의 모습을 본 경험은 당시 조형적 변화를 겪던 작가 에게 영향을 미쳤다.” 정상화 인터뷰, 원로작가 디지털 아카이빙-정상화, 2017. 출처:문화체육관광부, ()예술경영지원센터 원로작가 디지털 아카이빙 자료수집 연구지원 사업.

 

“1973년을 전후로 나타난 그리드(grid) 기법은 캔버스보다 비교적 다루기 쉬웠던 종이를 바탕으로 실험됐다. 주로 국립현대미술관 소장품 드로잉, 1974‘과 같이 바탕위에 종이를 대고 연필로 긁어내는 프로타주(frottage)’기법을 사용했다. 이외에도 1970년대 전반적으로 목판, 콜라주(collage), 데콜라주(décollage) 작품을 집중적으로 제작했다.” 정상화 도록, 국립현대미술관, 2021520.

 

 

‘국립현대미술관 서울’ 정상화 전시전경. 사진=권동철

 

 

◇전통화를 현대적인 것으로 만드는 자산

 

“1970년대 우리 미술계 단색조 회화 양상을 서구 모더니즘에 대한 지역적 대응으로만 읽어내기보다는 오히려 구상에서 추상으로의 시각적 대전환을 우리 안에서도 자체적으로 획득하였다는 지점에 방점을 두고 또 다른 발언의 여지와 가능성을 구해보고자 한 것이다.

 

미술평론가 임근준은 단색조 추상회화가 갖는 의미와 관련, ‘2차 세계대전/한국전쟁이 종결된 이후) 시각적 모더니티를 추구하는 데 있어서, 추상미술은 반드시 통과했어야 마땅한 얼음 지옥과도 같았다.(중략) 특히 한국에서 추상미술 운동은(일본의 경우에서와 마찬가지로) 전통화를 현대적인 것으로 만드는 기획이 되기도 했기 때문에 상당히 소중한 문화사적 자산이 아닐 수 없다.” 임근준, 동시대성과 세대변화 1987-2008, 아트인컬처, 20132월호.

 

전후 우리 미술계에서 전개되었던 추상실험, 추상미술실천은 시각적 패러다임 전환의 통로로, 지금 여기 우리 현대미술의 위치를 보다 단단하게 지탱해주는 핵심적 기제이기도 하다.”정상화의 추상, 김형미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사.

 

=권동철, 이코노믹리뷰 2021.07.29.